기자명김정인 교수(건축학부)
“먹방”, “스킨십”, “대박”, “파이팅”, “한류” 등 한국인의 삶을 담은 단어들이 하나둘씩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등재되고 있다는 소식은 이제 그리 낯설지 않다. 그중에는 “달고나(dalgona)”도 있다. 설탕과 베이킹소다를 가열해 부풀린 뒤, 어린 시절 길거리에서 모양을 찍어 먹던 바로 그 간식이 어느새 세계인의 어휘로 초대받고 있다. 단순한 설탕 조리법에, 한 시대의 감성과 놀이, 긴장과 실패의 맛까지 모두 끌어안은 쉽게 설명하기 어려운 즐거운 추억과 감성을 담은 단어가 이제 세계인의 입에 오르고 있다.
생각해 보면 이러한 현상은 현대건축에서 우리가 목격하는 상황과 크게 다르지 않다. 건축과 도시의 상상에서, 기존 언어로는 충분히 포착되지 않는 낯선 감정이나 분위기를 건축학도라면 한 번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특히 서울이나 동경, 상하이처럼 변화가 빠르고 밀도가 현저히 높은 동아시아의 거대 도시에서는 더욱 그렇다. 이들 도시의 리듬과 속도, 생활방식을 담은 “건축”을 생각하는 것은 이제 기존 틀만으론 불가능한 새로운 감각과 사고를 동반한다. 19세기 말 유럽에서 동아시아로 건너온 “건축(建築)”이라는 말 자체가 이미 거대한 문화 번역의 결과물이었음을 생각하면, 동아시아의 건축가들이 새로운 어휘를 발명하거나 차용하는 상황은 오히려 자연스럽다.
지난 세기, 특히 일본의 건축가들이 “마(間)”나 “카라마리시로(からまりしろ)” 같은 고유어를 전면에 내세우며 세계 건축계에서 독자적 위치를 구축해 왔다. 영어로 번역하기 어려운 이 일본어들은 공간, 정서, 관계를 독특하게 사유해 세계 건축 담론에서 강력한 경쟁력을 갖는다.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건축”이라는 단어 또한 일본이 근대 유럽의 Architecture를 번역하며 만든 말이니, 전문 건축용어의 무비판적 사용은 자칫 한국에서 유럽-일본이라는 이중 번역망 안에서 세계와 소통하는 구조를 만들 수 있다.
한편, 지구화된 건축적 미학과 개념의 소비는 서구인에게 낯선 동아시아의 감각들을 그 역사적 맥락과 무관하게 하나의 이미지로 단순화하는 경향을 보이기도 한다. 한 예로, “선(禪)”의 건축적 담론과 전파를 떠올려 보자. 중국에서는 “찬”, 일본에서는 “젠”, 한국에서는 “선”이라 읽히는 이 한자는 오늘날 세계인의 머릿속에서 ‘일본적 건축 감성’, Zen Architecture의 대명사가 돼 있다. 과거 제국주의적 시선과 문화 번역의 비대칭성은 현대에 와서 문화의 국가주의적 경쟁을 부추기며 건축 담론의 단순 구도를 만들기도 한다.
이 지점에서 자연스러운 질문이 따라온다. 그렇다면 한국에 사는 나는 세계인에 어필할 고유한 건축 언어를 갖고 있는가? 도시와 건축 담론의 세계무대에 내놓을 독자적 단어를 나는 몇이나 가지고 있을까? 내 건축적 정서의 부재일까 아니면, 그것을 언어화할 과정과 담론 자체가 한국에서 아직 불완전하기 때문일까? 하이데거가 “언어는 존재의 집”이라고 말했듯, 우리가 어떤 말로 ‘세계를 부르는가’는 그 세계가 어떤 방식으로 드러날지를 결정한다. 결국, 남다른 감성과 느낌의 언어를 갖지 못한 “건축”은 존재의 의미가 희미해지기 마련이다. 제국주의와 식민화의 유산을 품은, 그 "건축"을 넘어설 새로움이 필요하다.
“달고나”가 세계인의 언어에 편입된 이유를 다시 생각해 본다. 설탕과 베이킹소다는 누구나 아는 재료지만, 두 재료가 만나 예상치 못한 “무언가”가 새로 일어난 것이다. 모양을 찍는 순간의 긴장감, 실패했을 때의 씁쓸함, 성공했을 때의 달콤함이 한데 뒤섞여 만든 새로운 경험의 총합이 “dalgona”라는 단어를 어필하게 한다. 그저 단어 하나가 추가된 사건이 아니라, 언어가 새로운 감각을 위해 확장한다.
창조력을 요구하는 건축적 사고에도 이런 언어의 확장은 필요하다. 세계 건축 담론에 존재하지 않는 공간 경험을 표현할 어휘가 어딘가 있을 것이다. 그것은 단순히 신조어 만들기가 아니라, 우리가 세계와 관계 맺고 느끼는 것을 스스로 정의하는 창조의 여정이다. 언어가 가능성을 열어주듯, 새 언어는 새로운 건축을 출현하게 할 수 있다. 우리가 건축을 어떻게 명명하느냐에 따라 건축의 세계는 달라진다.
그렇다면 우리의 건축은 어떤 단어로 세계인의 감성을 흔들 수 있을까. 그 대답은 각자의 몫이지만, 지금의 부재가 새로운 가능성의 시작이길 바라본다. “달고나”는 설탕보다 달지만, 다층적인 감각을 세계에 남긴다. 평범한 설탕이 첨가물과 가열로 “달고나”가 되는 것처럼, 새로운 세대의 감각이 만들어낼 변화된 의미망의 출현을 기대해 본다. 미래 건축가들이 스스로의 언어로 준비된 그 순간, “건축 아닌 건축”의 신세계가 세상 앞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이다. ㅣ 김정인 교수(건축학부) ssnews@ss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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