夷戎蠻狄(이융만적)이란 사서삼경 중 [서경書經]에서 언급한 것이랍니다. 동쪽의 오랑캐인 동이(東夷), 서쪽의 오랑캐인 서융(西戎), 남쪽의 오랑캐인 남만(南蠻), 북쪽의 오랑캐인 북적(北狄)을 말한 것으로 중화민족인 입장에서 동서남북의 이민족들을 미개한 오랑캐라고 지칭한 데서 유래한 것이랍니다.
오랑캐 夷(이)의 구성은 큰 대(大)와 활 궁(弓)으로 이루어졌답니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랍니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죠. 弓(궁)에 대한 갑골문의 자형은 활의 모양을 그대로 그린 모양이며, 금문에 와서 활시위를 매지 않은 모양으로 변화하였답니다. 이는 곧 쓰지 않을 때는 활시위를 풀어 둠으로써 활의 탄력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夷(이)자에 담긴 뜻은 언제나 활(弓)을 지니고 다시는 사람(大)들이란 의미를 담고 있답니다.夷자는 ‘오랑캐’나 ‘동방종족’을 뜻하는 글자이다. 夷자는 大(클 대)자와 弓(활 궁)자가 결합한 모습이다. 그러나 갑골문에서의 夷자는 矢(화살 시)자와 己(자기 기)자가 결합한 형태였다. 여기서 己자는 새끼줄을 뜻하는 것으로 夷자는 화살에 새끼줄이 감겨있다는 뜻을 표현한 것이다. 夷자는 본래 중국 변방에 거주하던 이민족을 뜻하던 글자였다. 이민족을 뜻하는 글자에 화살과 새끼줄을 그려 넣었던 것은 이들이 유목민족이었기 때문이다. 유목민족들은 활도 잘 쏘았지만 방목한 짐승을 밧줄을 이용해 잡는 것에도 능숙했다. 夷자는 그러한 유목민족의 특징을 묘사한 글자이다.회의문자 大(대 ☞ 사람)와 弓(궁)의 합자(合字). 사람이 활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뜸. 옛날 東方(동방)의 오랑캐를 夷(이)라고 불렀으므로, 음(音)을 빌어 이 글자가 쓰임. 또 평정하다(平定--), 항상 변(變)하지 않다 등의 뜻으로 빌어 쓰임.
오랑캐 戎(융)은 창 과(戈)와 한 손에 무기를 들고 있는 ‘十’의 모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戈(과)는 긴 나무자루 끝에 날카로운 창과 낫과 같이 또 다른 가지가 달린 무기를 나타낸 상형글자랍니다. 이러한 창은 싸움에 쓰이는 무기를 뜻하기 때문에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전쟁’과 같은 의미를 지니게 된답니다. 戎(융)과 비슷한 글자로 戒(계)가 있는데, 그 의미는 긴 자루의 창(戈)을 두 손으로 잡고(廾)서 지키고 있음을 말하죠. 즉 두 손으로 잡고 있다는 것은 위협만을 줄 뿐 찌르거나 베는 등의 살상을 가하지 않는다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그러나 한 손(十)으로 칼이나 창(戈)을 들고 있음은 곧 찌르거나 베어 살상(殺傷)가한다는 ‘오랑캐 戎(융)’자가 되죠. 중국입장에 서쪽 변에 사는 무리들을 서융(西戎)이라 하였답니다. 戎(병장기 융/오랑캐 융)은 회의문자로 창과(戈; 창, 무기)部와 甲(갑; 갑옷)의 합자(合字)이다. 무기(武器)의 뜻이다. 그래서 戎(융)은 ①병장기(兵仗器: 병사들이 쓰던 온갖 무기) ②병거(兵車), 싸움 수레 ③군사(軍士), 병사(兵士) ④오랑캐, 되(북방 오랑캐) ⑤싸움, 전쟁(戰爭), 전투(戰鬪) ⑥너, 그대 ⑦돕다 ⑧크다 ⑨난잡하다(亂雜--) 따위의 뜻이 있다. 같은 뜻을 가진 한자는 병사 병(兵), 군사 군(軍)이다. 용례로는 싸움에 쓰는 큰 수레를 융헌(戎軒), 싸움에 쓰는 수레를 융거(戎車), 하사관 아래의 군인인 병사를 융사(戎士)나 융병(戎兵), 병기로 전쟁에 쓰는 모든 기구를 융기(戎器)나 융구(戎具), 오랑캐로 중국에서 주변에 살던 미개한 종족을 멸시하는 말을 융적(戎狄), 출진의 몸차림을 융장(戎裝), 군대에서 쓰는 여러 가지의 무기와 기구를 융계(戎械), 군대에 관한 사무를 융무(戎務), 군대에서 쓰는 무기와 기치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을 융물(戎物), 오랑캐 나라의 궁정을 융정(戎庭), 야만한 나라를 융국(戎國), 싸움에 쓰는 활을 융궁(戎弓), 군사에 관한 일을 융사(戎事), 싸움터로 싸움이 벌어진 곳을 융장(戎場), 오랑캐의 무리들을 융족(戎族), 혼란한 모양 또는 흐트러진 모양을 몽융(蒙戎), 재앙을 가져오게 하는 전쟁을 화융(禍戎), 군사에 관한 일을 잘 다스림을 힐융(詰戎), 군사의 우두머리를 원융(元戎), 전쟁을 일으킴을 흥융(興戎), 전쟁을 하고 있는 동안을 일컫는 말을 융마지간(戎馬之間), 부모의 상중에 있는 사람이 상복을 벗고 출전하는 일을 일컫는 말을 석최종융(釋衰從戎), 붓을 던지고 창을 쫓는다는 뜻으로 학문을 포기하고 전쟁터로 나아감을 비유하여 이르는 말을 투필종융(投筆從戎) 등에 쓰인다.회의문자 창과(戈 ☞ 창, 무기)部와 甲(갑 ☞ 갑옷)의 합자(合字). 무기(武器)의 뜻.
오랑캐 蠻(만)의 구성은 어지러울 련(䜌)과 벌레 충(虫)으로 이루어졌습니다. 䜌(연)은 상대에게 하는 말(言)이 잣아 놓은 실타래의 실(絲)처럼 끝없이 이어지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지럽다’는 뜻이 담겨 있을 뿐만 아니라 끝없는 말로써 가르친다는 데서 ‘다스리다’의 뜻도 있다. 그러니 蠻(만)자에는 전쟁시 끝없이 무리지어 어지러울 정도(䜌)로 벌레들(虫)처럼 몰려오는 남쪽 오랑캐라는 뜻으로, 옛날에 중국 사람들이 자기나라 남쪽에 사는 깨지 않은 족속들을 얕잡아 일컫는 말이죠.蠻(만)이란 글자는 뜻을 나타내는 벌레훼(虫☞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와 음을 나타내는 글자. (련→만)로 이루어진 글자이다. 뱀을 신성시하는 종족의 이름이라고 설명하고 있다.蠻(만)에는 '오랑캐'라는 뜻 외에도 '미개민족', '모멸하다', '난폭하다', '야만적이다'란 뜻이 있다.지리적으로 생각해보면 남만의 위치는 양쯔강 남쪽이다. 중국의 중심이라 할 수 있었던 낙양으로 부터 아주 먼 남쪽에 위치한 곳이라서 중국문화를 받아들이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까닭에 미개한 족속, 야만인이란 뜻이 더해진 것 같다.또한 남만의 특징은 무엇이 있어 중국인들은 남쪽 오랑캐라고 인식했을까?이 지역의 기후는 덥고 습한지역이다. 그런 곳에는 벌레도 뱀도 많다. 원래 벌레란 잡아도 잡아도 끝이 없는 성가진 존재이다. 여름날에 모기에 시달려 본 사람이라면 알 것이다. 하여 성가신 모기를 잡으려고 칼을 빼든다는 어이없는 말도 있지 않은가? 삼국지에서 유비가 죽은 후 각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제갈량은 끝까지 반기를 들었던 남만의 맹획을 7번이나 잡았다가 풀어준 일이 있다. 물어뜯으려 덤빈것이 맹획이라면 칼을 빼든 것은 제갈량이라 할 수 있을 것 같다. 아무리 신출귀몰하는 재주를 가진 제갈량이라도 별 도리가 없으니 마음을 얻고자 풀어주었던 것이다.형성문자뜻을 나타내는 벌레훼(虫 ☞ 뱀이 웅크린 모양, 벌레)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䜌(련→만)로 이루어짐. 중국(中國) 지방(地方)에 사는 뱀을 신성시하는 종족(種族)의 이름.
오랑캐 狄(적)은 큰개 견(犭)과 불화(火)로 구성되었습니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인답니다. 火(화)는 한데 모은 나뭇가지나 통나무에서 불타오르며 생긴 불꽃을 본뜬 상형글자죠. 이에 따라 狄(적)에 담긴 의미는 큰 개들(犭)처럼 말을 타고서 중원을 침략해 방화(火)를 일삼는 북쪽 이민족을 북적(北狄)이라 하였답니다.狄(적)은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개)部와 음을 나타내는 亦(역→적)이 합하여 이루어진 글자이다. 犭은 개사슴을 뜻하지만 개사슴이란 동물은 없고 사나운 들개가 있을 뿐이다. 아마도 들개를 뜻하는 말인가 싶다. 그러니 개견(犬)과 동일시 되는 말이다.북쪽에 살고있는 족속을 왜 개와 같다는 뜻으로 적이라고 했을까? 중국사전에서 狄(적)을 찾아보았다.적(狄)은 중국고대의 북방민족으로 북방에 거주하고 살았기 때문에 북적이라고 통칭했다. 진한이후 중원에 대하여 북방민족을 통칭하는 말이 되었다. 그들은 새의 털이나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입고 굴속에서 살며 곡식을 먹지 않는다.지리적으로 북방은 매우 추운 곳이다. 농사를 지을 수 없는 땅이다. 그러니 땅 속에 굴을 파고 살며 들짐승을 잡아 먹고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런 곳에 살다보면 품성이 강인해지지 않을 수 없을 것 같다.들개는 사냥감을 물면 물고늘어져서 사냥감이 죽기 전까지는 좀처럼 놓는 법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 집요함을 가진 족속이 북적이라 할 수 있겠다. 형성문자 뜻을 나타내는 개사슴록변(犭(=犬) ☞ 개)部와 음(音)을 나타내는 글자 亦(역의 생략형(省略形)→적)이 합(合)하여 이루어짐.
積善餘慶(적선여경)이란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는 뜻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입니다. 역경(易經)의 문언전(文言傳)〉에 실려 있는 한 구절로 살펴보면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은 하루아침과 하루 저녁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유래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변론하여야 할 일을 변론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 由辯之不早辯也)."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쌓을 積(적)은 벼 화(禾)와 꾸짖을 책(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禾(화)의 자형은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곡식의 이삭이 익어 수그러진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즉 고개를 숙인 이삭(丿)과 좌우로 뻗은 잎사귀(一), 그리고 줄기(丨)와 뿌리(八)를 그려내고 있죠. 責(책)의 자형상부 ‘主’모양은 본디 초목에 돋아난 가시를 뜻하는 朿(자)가 변한 것이랍니다. 貝(패)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죠.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로 활용했는데, 여느 바다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개가 아니라 남중국해나 인도양 등지에서 나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아주 단단한 것이었답니다. 갑골문의 자형은 두 쪽으로 벌려진 조개의 모습이었으나 금문으로 오면서 두 개의 촉수를 내민 현재의 글자모양을 갖추게 되었답니다. 이 貝(패)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재화와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됩니다. 이에 따라 責(책)의 의미는 꾸어간 돈(貝)을 갚으라고 채찍 같은 것을 동원하여 독촉(朿)한다는 데서 ‘꾸짖다’ ‘조르다’ ‘책임을 지우다’ 등의 뜻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積(적)의 전체적인 의미는 각자 벤 볏단(禾)을 책임지고(責) 쌓는다는 데서 ‘쌓다’ ‘포개다’ 등의 뜻이 생겨났답니다.
착할 선(善)의 구성은 양 양(羊)과 말다툼할 경(誩)의 생략형으로 짜여 있습니다. 羊(양)은 예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는데, 두 뿔과 몸통 및 네 발 그리고 꼬리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羊(양)은 牛(소)와 함께 신에게 바치는 대표적인 동물로 희생할 犧(희)의 자형을 이루고, 또한 착하고 온순하다는 이미지를 빌어 살펴볼 善(선)자의 부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금문에 처음 보인 善(선)의 자형하부는 본래 말씀 언(言)자 두 개가 겹쳐진 誩(경)이었는데, 단순화하여 입(口)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言(언)은 입(口)에서 나온 소리(辛)를 나타낸 글자로써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언어적 행위와 관련된 뜻을 지니게 된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말다툼 한다는 것을 誩(경)이라는 글자에 담았죠. 그러나 사람이 아닌 양(羊)의 경우에는 두 마리 이상이 어울려도 그 하는 말들이(言+言) 오순도순 정답게 보여 ‘착하다’ ‘좋다’는 의미를 부여 했습니다.
남을 餘(여)의 구성은 밥 식(食)과 나 여(余)로 짜여있습니다.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는데,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에 담아 뚜껑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랍니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답니다. 余(여)는 나무(木)로 지붕(亼)을 인 작은 집을 의미하는 상형글자인데, 홀로 들어가 있으니 여유롭기도 하였을 겁니다. 그래 ‘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남다’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답니다. 따라서 餘(여)의 전체적인 의미는 음식(食)을 먹고도 남아(余)돈다는 데서 ‘남다’ ‘넉넉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경사 慶(경)의 구성은 사슴 록(鹿)의 생략형과 한 일(一), 그리고 마음 심(心)과 뒤져서 올 치(夂)로 짜여 있습니다. 鹿(록)은 수사슴의 아름다운 뿔과 머리, 그리고 몸통과 네 발의 모양을 그려낸 상형글자입니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인데, 여기서는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을 뜻합니다. 夂(치)는 발의 모양을 상형한 발 止(지)를 뒤집어놓은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뒤처져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慶(경)에는 옛사람들의 선물풍속이 담겨 있답니다. 요즘처럼 옷감이 흔한 시절에는 큰 선물이 아니겠지만, 옷감이 귀한 옛날에는 사슴가죽이 아주 귀한 물건이었답니다. 그래서 경사스러운 날 사슴(鹿)가죽을 선물할 때는 한결(一)같고 진실한 마음(心)을 담아 정중한 발걸음으로 다가가(夂)가 건네주었다는 데서 ‘경사’ ‘하례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自强不息(자강불식)이란 대자연의 운행질서를 본받아 스스로 힘써 노력함을 쉬지 않는다는 뜻이랍니다. 『周易(주역)』 「象傳(상전)」의 건괘(乾卦)에 “천체의 운행질서는 건실하다. 군자는 그것을 본받아 스스로 힘쓰며 쉬지 않는다(天行健, 君子以自强不息)”고 한 기록에서 유래했답니다. 자신의 목표를 이루는 데 있어 ‘끊임없는 노력’만 한 게 없는 것 같습니다. 서두르거나 욕심내지 않고 자신만의 꿈을 그려가며 오늘을 직시하는 것, 모두에게 필요한 덕목인 것 같습니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쓰죠.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랍니다.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이루어져 있는데, 코(自) 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 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따라서 ‘自’는 오늘날 ‘-로부터’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답니다.
굳셀 强(강)은 넓을 홍(弘)과 벌레 충(虫)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弘(홍)은 활 궁(弓)과 사사로울 사(厶)로 구성되었는데, 弓(궁)에 대한 갑골문의 자형은 활의 모양을 그대로 그린 모양이며, 금문에 와서 활시위를 매지 않은 모양으로 변화하였습니다. 이는 곧 쓰지 않을 때는 활시위를 풀어 둠으로써 활의 탄력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입니다. 厶(사)는 활의 가장 단단한 부위를 표시한 것이라고도 하나, 팔뚝 厷(굉)의 생략형으로 보는 게 의미적으로 설득력을 갖습니다. 또한 화살을 쏠 때의 소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답니다. 따라서 弘(홍)의 의미는 활(弓) 시위를 힘껏 당겨(厶) 쏠수록 멀리 나아간다는 이치를 담아 ‘넓다’, ‘크다’는 뜻을 부여하였죠. 虫(충)은 벌레나 파충류 그리고 양서류와 같은 생물들이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굴이나 집을 지어 사는 벌레의 총칭이랍니다. 따라서 强(강)의 전체적인 의미는 쌀벌레의 일종인 바구미(虫)를 뜻한 것으로, 몸체는 작지만 단단하여 한 번 기승을 부리면 쌀에 대한 피해가 크다(弘) 하여 사람의 주식인 쌀을 없애는 ‘강한 놈’으로 인식한 데서 ‘강하다’의 뜻이 생겼으며, ‘억지를 부리다’는 뜻은 파생한 것이랍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지만, 허신이 『설문(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랍니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답니다.
숨 쉴 息(식)은 코를 상형한 스스로 자(自)와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心(심)은 사람의 심장을 본뜬 상형글자죠. 고대 사람들은 ‘마음’ 혹은 몸을 운용하는 주체인 ‘영혼’이 심장에 머물고 있다고 보아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답니다. 따라서 息(식)의 전체적인 의미는 심장(心)을 에워싸고 있는 폐가 코(自)를 통해 무형의 기운을 들이고 내보내는 작용인 ‘호흡’을 뜻합니다. 또한 생명의 원천인 호흡과 심장의 박동은 한시도 쉬지 않고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서 대(代)를 이어주는 자식(子息)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답니다.
積善餘慶(적선여경)이란 ‘선한 일을 많이 한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다’라는 뜻으로, 좋은 일을 많이 하면 후손들에게까지 복이 미친다는 말입니다. 역경(易經)의 문언전(文言傳)에는 “선을 쌓은 집안은 반드시 남는 경사가 있고, 불선을 쌓은 집안에는 반드시 남는 재앙이 있다. 신하가 그 임금을 죽이고, 자식이 그 아비를 죽이는 일이 벌어진 것은 하루아침과 하루 저녁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니다. 그 유래는 점차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니, 변론하여야 할 일을 변론하지 않은 데서 비롯된 것이다(積善之家, 必有餘慶, 積不善之家, 必有餘殃, 臣弑其君, 子弑其父, 非一朝一夕之故, 其所由來者漸矣, 由辯之不早辯也)”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쌓을 積(적)은 벼 화(禾)와 꾸짖을 책(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禾(화)의 자형은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곡식의 이삭이 익어 수그러진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즉 고개를 숙인 이삭(丿)과 좌우로 뻗은 잎사귀(一) 그리고 줄기(丨)와 뿌리(八)를 그려내고 있죠. 責(책)의 자형상부 ‘主’ 모양은 본디 초목에 돋아난 가시를 뜻하는 朿(자)가 변한 것이랍니다. 貝(패)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죠.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로 활용했는데, 여느 바다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개가 아니라 남중국해나 인도양 등지에서 나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아주 단단한 것이었답니다. 갑골문의 자형은 두 쪽으로 벌려진 조개의 모습이었으나 금문으로 오면서 두 개의 촉수를 내민 현재의 글자 모양을 갖추게 되었답니다. 이 貝(패)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재화와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됩니다. 이에 따라 責(책)의 의미는 꾸어간 돈(貝)을 갚으라고 채찍 같은 것을 동원하여 독촉(朿)한다는 데서 ‘꾸짖다’, ‘조르다’, ‘책임을 지우다’ 등의 뜻이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積(적)의 전체적인 의미는 각자 벤 볏단(禾)을 책임지고(責) 쌓는다는 데서 ‘쌓다’, ‘포개다’ 등의 뜻이 생겨났답니다.
착할 선(善)은 양 양(羊)과 말다툼할 경(誩)의 생략형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羊(양)은 예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는데, 두 뿔과 몸통 및 네 발 그리고 꼬리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羊(양)은 牛(소)와 함께 신에게 바치는 대표적인 동물로 희생할 犧(희)의 자형을 이루고, 또한 착하고 온순하다는 이미지를 빌어 살펴볼 善(선) 자의 부수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금문에 처음 보인 善(선)의 자형하부는 본래 말씀 언(言) 자 두 개가 겹쳐진 誩(경)이었는데, 단순화하여 입(口)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言(언)은 입(口)에서 나온 소리(辛)를 나타낸 글자로써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언어적 행위와 관련된 뜻을 지니게 된답니다. 따라서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말다툼한다는 것을 誩(경)이라는 글자에 담았죠. 그러나 사람이 아닌 양(羊)의 경우에는 두 마리 이상이 어울려도 그 하는 말들이(言+言) 오순도순 정답게 보여 ‘착하다’, ‘좋다’는 의미를 부여했습니다.
남을 餘(여)는 밥 식(食)과 나 여(余)로 이루어졌습니다.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에 담아 뚜껑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랍니다. 보통 명사로 쓰일 때는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답니다. 余(여)는 나무(木)로 지붕(亼)을 인 작은 집을 의미하는 상형글자인데, 홀로 들어가 있으니 여유롭기도 하였을 겁니다. 그래 ‘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남다’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답니다. 따라서 餘(여)의 전체적인 의미는 음식(食)을 먹고도 남아(余)돈다는 데서 ‘남다’, ‘넉넉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경사 慶(경)은 사슴 록(鹿)의 생략형과 한 일(一) 그리고 마음 심(心)과 뒤져서 올 치(夂)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鹿(록)은 수사슴의 아름다운 뿔과 머리 그리고 몸통과 네 발의 모양을 그려낸 상형글자입니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인데, 여기서는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을 뜻합니다. 夂(치)는 발의 모양을 상형한 발 止(지)를 뒤집어놓은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뒤처져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慶(경)에는 옛사람들의 선물풍속이 담겨 있답니다. 요즘처럼 옷감이 흔한 시절에는 큰 선물이 아니겠지만, 옷감이 귀한 옛날에는 사슴가죽이 아주 귀한 물건이었답니다. 그래서 경사스러운 날 사슴(鹿)가죽을 선물할 때는 한결(一)같고 진실한 마음(心)을 담아 정중한 발걸음으로 다가가(夂) 건네주었다는 데서 ‘경사’, ‘하례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近取諸身(근취저신) 遠取諸物(원취저물)이란 가깝게는 소우주인 자기 몸에서 대자연의 구성 원리와 진리를 찾고 멀게는 각각의 모든 사물에서 대자연의 변화원리를 찾아야 한다는 뜻으로, 易經(역경)의 繫辭上傳(계사상전)에 등장하는 우주변화원리를 함축하고 있는 주역의 대표적인 사자성어랍니다.
가까울 近(근)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도끼 근(斤)으로 이루어졌습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닙니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되어 쓰입니다. 斤(근)은 도끼 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랍니다. 따라서 近(근)의 전체적인 의미는 도끼(斤)를 사용하여 땔나무를 하러 갈(辶) 수 있는 거리는 비교적 집 부근이기에 ‘가깝다’는 뜻이 생겨났습니다.
취할 取(취)는 귀 이(耳)와 오른손을 뜻하는 또 우(又)로 구성되었는데, 자형에 담긴 뜻은 전쟁의 참혹함이 그대로 반영되어 있습니다. 고대의 부족이나 혹은 나라 간의 전쟁에서 승자는 패자의 한쪽 귀(耳)를 잘라 전리품으로 삼는 풍속이 있었답니다. 즉 상대의 귀(耳)를 잘라 꾸러미에 꿰어 손(又)에 들고 온 숫자로써 전공(戰功)을 따졌는데, 이에 따라 ‘취하다’, ‘손아귀에 넣다’라는 뜻이 발생했죠.
어조사 諸(저, 모두 제)는 입(口)에 나팔 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은 말씀 언(言)과 놈 자(者)로 이루어졌습니다. 者(자)는 본래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죠. 그런데 현재 자전에서 者(자)를 찾으려면 耂(로) 부수에서 찾아야 되는 ‘회의글자’로 분류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그 해석 또한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耂)이 나이 어린사람에게 말할 때(白) ‘이놈저놈’ 한다는 데서 ‘놈’이란 의미가 부여되었죠.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자형하부의 ‘白’은 솥단지가 변화된 것이며 상부의 ‘耂’는 나물이나 고깃덩어리가 부글부글 끓으면서 솟아오르는 김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삶다’가 본뜻이었습니다. 그런데 솥에 삶은 국을 ‘이놈저놈’이 나누어 먹는다는 뜻을 담아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는 ‘놈 者(자)’로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불 화(灬)를 더해 ‘삶을 煮(자)’를 별도로 제작하였답니다. 따라서 諸(제)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놈저놈(者)이 말(言)한다는 데서 ‘모두’, ‘모든’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에서는 어조사로써 ‘-에, -에서’라는 뜻으로 다른 글자를 보조하는 역할을 하고, 읽을 때는 ‘저’로 읽는답니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장되었답니다.
멀 遠(원)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옷 길 원(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辶(착)은 또 다른 자형인 辵(착)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다닐 행(行)의 생략형인 彳(척)과 발의 상형인 止(지)로 이루어져 길거리(行)를 걸어간다(止)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袁(원)은 윗옷을 뜻하는 衣(의)와 둥근(ㅇ→口) 목걸이를 의미하는 변형된 口로 이루어져 있답니다. 외투와 같이 긴 옷을 뜻하죠.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평상복이 아닌 외투와 같은 정장(袁) 차림을 하고서 길을 나설(辶) 때는 가까운 곳이 아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간다는 데서 ‘멀리’, ‘심오한’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물건 物(물)은 소 우(牛)와 말 물(勿)로 구성되었습니다. 牛(우)는 소의 뿔과 몸통을 강조한 상형글자랍니다. 소(牛)는 예나 지금이나 한 가정의 재산목록 중 상위를 차지할 만큼 큰 물건(物件)이었죠. 勿(물)에 대해 허신은 『설문(說文)』에서 “勿은 큰 고을이나 작은 마을에 세운 깃발을 말한다. 깃대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세 개의 깃발이 있는데, 여러 색의 천을 사용하며 깃 폭의 상하를 다르게 한다.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때문에 다급히 모이는 것을 ‘勿勿’이라 한다”고 하였답니다. 갑골문에도 보이지만 학자들의 해석이 각양각색이랍니다. 그러나 현재는 주로 ‘부정’과 ‘금지’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성한 장소의 출입을 금하는 깃발로 생각됩니다. 즉 장대 끝에 세 가지 색깔의 깃발을 매단 모양의 상형글자로 신성한 의미를 담아 특정지역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禁止)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얼룩무늬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物(물)의 전체적인 의미는 소(牛) 중에서도 얼룩무늬(勿)가 들어간 우량한 것을 최고의 ‘물건’으로 여긴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모든 존재를 뜻하는 ‘만물’, ‘사물’ 등의 뜻으로도 확장되었습니다.
運命讀法(운명독법)이란 누구나 타고난 운명이 있는데, 그러한 행로를 읽어내는 방법이란 뜻으로 고대동양에서는 주로 관상이나 사부팔자 점사 등을 통해 그 사람의 운명을 판단해왔습니다.
운명이란 천명과도 같은 선천적인 메시지가 담긴 명(命)이 이미 결정된 것이라면, 운(運)은 후천적으로 자신의 마음과 몸의 움직임에 따라 얼마든지 변화할 수 있답니다. 내 몸의 주체인 마음에 따라 하루에도 수시로 바뀌는 것이 ‘운’이랍니다. 그러니 운을 좋은 쪽으로 바꾸고 싶다면 마음가짐과 몸가짐부터 바꿔야 합니다.
자신의 운명을 예지하거나 빈부귀천(貧富貴賤)을 추리하는 데 있어 관상법만큼 확실한 방법은 없을 것 같습니다. 관상법이란 사주(四柱)와 같은 어떤 부호를 토대로 추정하는 게 아니라 얼굴과 같은 형상과 거기에 나타난 기색(氣色)으로 그 사람의 지난 과거나 현재의 상태를 살펴 다가올 미래를 예측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옛말에 “나이 40이 넘으면 자신의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자신의 언행과 마음상태가 그대로 우리 몸에 반영되기 때문이죠. 실제로 연륜과 경험이 많은 노인들은 그 사람의 안색과 행동거지만을 보고서도 그 사람의 이력을 알아내곤 합니다.
옮길 運(운)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군사 군(軍)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니고 있죠.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입니다. 軍(군)의 구성은 덮을 멱(冖)과 수레 차(車)로 이루어졌는데, 冖(멱)은 사람이 에워싼다는 의미를 지닌 쌀 勹(포)가 간략화 된 것이죠. 車(차)는 우마차의 바퀴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자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현재 자형에서는 하나의 바퀴(曰)만을 그려놓았는데, 중앙의 ‘丨’은 굴대를 나타냈고 아래위의 ‘二’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굴대의 빗장이죠. 갑골문에 보이는 것처럼 고대의 수레는 두 바퀴로 만들어졌는데,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두 마리의 말에게 씌우는 멍에의 모양은 두 兩(량)으로 그 원형을 갖춘 글자가 바로 수레 輛(량)입니다. 자전거(自轉車)와 같이 자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거’라 하고 자동차(自動車)와 같이 타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차’라고 발음합니다. 이에 따라 軍(군)의 의미는 네 마리의 말이 끄는 전차(車)에 세 사람이 타고 그 주위를 열 명의 보병이 에워싼(勹) 것을 1승(乘)이라 하였으며, 이를 곧 ‘군사’라 하였습니다. 주(周)나라 때의 병제(兵制)를 보면, 2천500명으로 구성된 사(師) 5개를 연합한 1만2천500명이 1軍(군)이었답니다. 따라서 運(운)의 전체적인 의미는 예부터 대규모로 군부대가 움직일 때는 지휘관과 군수물자를 실은 병차(車)를 에워싼(冖) 보병의 발걸음에 맞추어 천천히 이동(辶)하는 게 보편적이었다는 데서 ‘돌다’ ‘옮기다’ ‘움직이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목숨 命(명)의 구성은 명령할 령(令)과 입 구(口)로 짜여 있습니다. 令(령)은 모일 집(亼)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병부 절(卩)로 이루어져 있는데, 여기에서 亼(집)은 높다랗게 팔자지붕으로 지어진 사당이나 공공건물을 의미합니다. 즉 한마을의 촌장이나 제사장이 거주하는 높다란 건물(亼)안에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卩)이라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무언가 말(口)로써 명령(令)을 내린다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확장되어 꿇어앉은 사람의 운명이 지위 높은 사람의 한 마디에 달려있다는 데서 ‘목숨’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답니다.
읽을 讀(독)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팔 매(賣)로 이루어졌습니다.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됩니다. 賣(매)는 선비 사(士)와 살 매(買)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사(士)자는 본디 날 출(出)이 변화된 것이랍니다. 買(매)는 그물 망(罒)과 조개 패(貝)로 짜여 있습니다. 罒(망)의 본디글자는 网(망)인데, 쓰기 편하게 축약한 것으로 그 의미는 장사하는 사람은 돈(貝)이 될 만한 물건이라면 투망을 던지듯 망(网)을 쳐서 ‘사들인다’는 행위를 그리고 있죠. 또한 반대의미를 지닌 賣(매)는 미리 사들였던 돈 될 만한 물건(買)을 이제는 적당한 이문을 붙여 내다파는(出) 행위를 그려내 ‘팔다’는 뜻을 부여했습니다. 따라서 讀(독)의 전체적인 의미는 상인이 손님에게 물건을 팔기(賣)위하여 외쳐대듯 소리(言)를 내어 책을 ‘읽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법 法(법)은 물 수(氵)와 갈 거(去)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去(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去는 사람이 서로 어긋나간다는 뜻이다. 大(대)로 구성되었고 자형하부의 凵(거)모양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와 고대인들의 주거지인 동굴을 의미하는 口(구)모양으로 그려져 있죠. 따라서 그 의미는 사람(大)이 주거지인 동굴(口)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물을 버리는 구덩이 위에서 대변을 보고 사람의 상형이라는 설로 ‘버리다’가 본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法(법)의 의미는 물(水)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게 순리적이라는 것으로 자연적인 ‘규칙’을 의미합니다. 또 한편으로는 물(水)과 같이 순리적이지 못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규범’적 의미도 담고 있죠. 그러나 더 본래적인 의미는 法(법)의 옛글자인 ‘법 灋(법)’ 자에 담겨 있습니다. 灋자의 구성은 물 수(氵)와 해태 치(廌), 그리고 갈 거(去)로 짜여 있습니다. 옛 사람들은 앞에 공평함을 뜻하는 물(氵)을 놓고서 옳고 그름(是非)과 선과 악(善惡)을 가려내는, 상체는 사슴(鹿)을 닮았고 하체는 새(鳥)의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인 해태에게 가서(去) 판정을 받았다고 합니다.
百材皆度(백재개도)란 온갖 재료들은 모두가 자기만의 도수를 갖고 있다는 뜻으로, 『장자·잡편』제25 <칙양편>의 “사람은 각자가 자기 생각에 따라 추구해가기 때문에 옳다고 여기는 것 속에도 틀린 것이 있다네. 가령 큰 택지에 비유해 본다면 온갖 재료들이 모두가 자기 도수에 맞는 것과 같고, 큰 산에 비추어 본다면 나무와 돌들이 그 기반을 이루고 있는 거나 같지. 이것을 일러 한 마을의 여론이라 하는 거야.”라는 데서 연유했습니다.
일백 百(백)의 구성은 한 일(一)과 흰 백(白)으로 짜여 있습니다. 一(일)은 지사글자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답니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일)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답니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서는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었습니다. 여기서는 ‘온갖’이란 뜻으로 쓰였답니다.
재목 材(재)의 구성은 나무의 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과 재주 재(才)로 이루어졌습니다. 才(재)에 대한 해석은 한나라의 문자학자인 허신이 『說文』에서 풀이한 “才는 초목이 처음 나온 모습이다. 丨(곤)이 위로 자라 一(일)을 관통하여 앞으로 가지와 잎이 생기려는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一(일)은 땅을 뜻한다.”라고 한 해석을 따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가지와 잎이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이란 뜻을 가지며 ‘처음 初(초), 처음 哉(재), 처음 始(시)’와 서로 통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초목의 성장에 따라 才(재)는 아직 잎이나 가지가 나오지 않은 상태며, 屮(철)은 가지나 잎이 어느 정도 자란 것을, 之(지)는 줄기와 가지가 보다 자란 것을, 그리고 出(출)은 더욱 더 자란 모습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說文解字』식의 해석입니다. 따라서 ‘될성부른 놈은 떡잎만 보아도 안다’는 이유에서 ‘재주’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따라서 材(재)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린 싹(才)이 자라나 동량으로 쓰일 만큼 큰 나무(木)가 되었다는 데서 ‘재목’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다 皆(개)는 견줄 비(比)와 고백(告白)에서처럼 말하다는 뜻으로 쓰인 말할 백(白)으로 구성되었는데, 比(비)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한 모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갑골문의 자형들을 살펴보면 같은 뜻의 글자라 하더라도 그 구성부수의 순서나 위치가 바뀌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할 때, 从(종)이나 比(비)는 같은 의미를 지닌 글자로 보입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从(종)은 두 사람이 서로 따라간다는 뜻으로 정해지면서 현재 쓰이는 從(종)의 옛글자로서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이의 간체자(簡體字)로도 쓰이고 있습니다. 또한 比(비)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앉아(匕) 있다는 데서 ‘견주다’ ‘나란히 하다’의 뜻이 발생했습니다. 이에 따라 皆(개)는 여러 사람(比)이 다 같이 찬동하며 말한다(白)는 데서 ‘모두’ ‘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법도 度(도, 헤아릴 탁)는 여러 서(庶)의 생략형과 또 우(又)로 이루어졌습니다. 庶(서)는 집 엄(广)과 스물 입(卄) 그리고 불 화(灬)로 짜여 있는데, 广(엄)은 한쪽 벽면이 트인 우마차를 보관하는 창고(庫)나 관공서(廳)와 같은 건물을, 卄(입)은 열 십(十) 두 개가 겹친 것으로 스물을, 灬(화)는 불 화(火)와 같은 뜻으로 주로 자형의 하부에 놓이며 모닥불이란 뜻을 지닙니다. 이에 따라 그 의미는 한쪽 벽면이 트인 건물(广) 안에 따뜻한 모닥불(灬)을 피우고 여러 사람(卄)들이 불을 쬐고 있는 모습을 본떠 ‘무리’나 ‘여러 사람’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又(우)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닙니다. 따라서 度(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여러 사람(庶)의 손길(又)을 거쳐 만든 것이 곧 ‘법도’라는 것이며, 또한 여러 사람의 손으로 ‘헤아리다’는 뜻으로 쓰일 때는 ‘탁’으로 읽습니다.
數米而炊(수미이취)란 쌀알을 일일이 세어서 밥을 짓는다는 뜻으로, 『장자莊子·잡편雜篇』제23 <경상초>편의 “그들은 머리카락을 세어가며 빗질을 하고, 쌀알을 세어서 밥을 짓는 것 같은 일을 했었지. 그렇게 작은 일에 얽매여 가지고서야 어떻게 세상을 구제할 수 있겠느냐? 이들이 한 것처럼 현명한 사람을 등용하면 백성들도 벼슬을 얻으려고 서로 다투고, 지식인에게 벼슬을 맡기면 백성들은 간악해져 서로를 속이게 될 거야.”라는 대목에서 유래했답니다.
셀 數(수, 자주 삭)의 구성은 별 이름 루(婁)와 칠 복(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婁(루)는 없을 무(毋)와 가운데 중(中) 그리고 여자 여(女)로 이루어진 회의글자지만, 금문에 새겨진 자형을 보면 상형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즉 다소곳이 앉은 여인(女)이 머리를 틀어 올려 온갖 장식을 하는 모양이랍니다. 그래서 ‘아로새기다’ ‘드문드문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별자리를 나타내는 28수(宿)의 열여섯 번 째 별자리의 이름으로 보다 많이 쓰이고 있습니다. 攵(복)은 攴(복)의 간략형으로 손(又)에 회초리나 몽둥이(卜)를 들고서 친다는 뜻을 지녔답니다. 일반적으로 글월 문(文)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등(等) 글월 攵(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이죠. 따라서 數(수)의 전체적인 의미는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여자(婁)의 머리에 온갖 장식을 하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손에 쥔 작은 막대기(攵)로 여러 번 두들기고 헤아린다는 데서 ‘셈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장식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주 매만진다하여 ‘자주’라는 뜻도 갖고 있답니다.
쌀 米(미)는 벼와 기장의 알맹이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가로획(一)을 중심으로 상하에 각각 세 점이 곡식의 낟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米(미)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米는 곡식의 알맹이라는 뜻이다. 벼와 기장의 알맹이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습니다.
말 이을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레나룻을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죠.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되었습니다.
불 땔 炊(취)는 불 화(火)와 하품 흠(欠)으로 이루어졌는데, 火(화)는 장작더미 위로 타오르는 불꽃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죠. 欠(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欠은 입을 벌려서 내부의 공기를 내보냄을 뜻한다. 공기가 사람의 위로부터 나가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인데,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모양 그대로랍니다. 여기선 입을 벌리고 숨을 내쉬며 바람을 분다는 뜻이죠. 이에 따라 炊(취)의 의미는 밥을 짓기 위해 모닥불(火)이 잘 타도록 입으로 바람을 분다(欠)는 데서 ‘불 때다’ ‘밥을 짓다’는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장자莊子·내편內篇』제3<양생주養生主>편에서는 인간답게 살아가는 삶을 길러주는 주된 방법을 말하고 있습니다. 백정 포정이 문혜군을 위해 소를 잡는데, 그 모습을 지켜보던 문혜군이 “아! 훌륭하구나! 기술이 어떻게 이러한 경지에 이를 수 있단 말인가!”라고 감탄합니다. 이어 포정이 그 도에 대해 길게 설명해주자, “훌륭하구나! 나는 포정의 말을 듣고서 생명력을 기르는 양생의 도를 터득했노라.”고 말한 대목에서 유래했답니다.
기를 養(양)은 양 양(羊)과 밥 식(食)으로 구성되었습니다. 羊(양)의 자형상부는 두 개의 뿔을, 중앙은 통통한 몸통과 네 다리를, 그리고 하부는 꼬리를 그려낸 상형글자입니다. 양은 유순하고 깨끗해 고대 사람들은 신에게 바치는 소중한 제물로 여겼답니다. 그래서 羊(양)이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상서롭다’는 뜻을 지니게 되죠.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삼합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는데,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에 담아 뚜껑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랍니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답니다. 따라서 養(양)의 전체적인 의미는 먹을 것(食)을 주는 대로 얌전하게 받아먹는 양(羊)처럼 통통하게 살을 찌운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날 生(생)은 땅(土)에서 풀이나 나무가 싹터(屮) 자라나는 모습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로 ‘낳다’를 본뜻으로 하고 ‘살아 있다’는 뜻도 지니고 있습니다. 후대로 오면서 또한 ‘날것’ ‘삶’이란 뜻으로도 확장되었답니다.
주인 主(주)의 본래글자는 자형상부에 놓인 불똥 주(丶)로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데 등잔의 불꽃과 같은 모양을 본뜬 것입니다.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등잔(王)과 불꽃(丶)을 본떠 主(주)자를 제작하였는데, 그 뜻이 불을 관리하는 ‘주인’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자 다시 불(火)의 뜻을 강조해 심지 炷(주)를 따로 만들었답니다.
齊物論(제물론)에서는 세상 만물은 모두가 같다는 논리를 펼친다는 것으로, 제물론편의 “모든 사물은 저것 아닌 것이 없고, 동시에 이것 아닌 것이 없습니다. 저것에서 보면 저것이 보이지 않지만 이것에서 보면 저것이 저것인줄 압니다. 그러므로 ‘저것은 이것에서 나오고 이것 또한 저것에서 나온다.’고 말합니다. 이는 곧 저것과 이것이 동시에 생긴다는 설명입니다.”와 같은 주장에서 연유되었답니다.
가지런할 齊(제)는 갑골문에 창끝모양 세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것을 보리이삭과 같은 곡물로 해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현재의 자형인 齊(제)를 눈여겨보면 그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걸 알 수 있습니다. 도(刀)나 氏(씨), 그리고 중앙부의 辛(신) 모양은 모두가 도검류와 관련이 깊으며 자형하부는 그것을 가지런히 꽂을 수 있는 대(臺)라 할 수 있죠. 따라서 齊(제)의 의미는 창이나 도검류를 나무로 만든 형틀에 가지런히 꽂아놓은 모습이라는 데서 ‘가지런하다’ ‘같다’는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물건 物(물)은 소 우(牛)와 말 물(勿)로 구성되었습니다. 牛(우)는 소의 뿔과 몸통을 강조한 상형글자죠. 소(牛)는 예나 지금이나 한 가정의 재산목록 중 상위를 차지할 만큼 큰 물건(物件)이었습니다. 勿(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勿은 큰 고을이나 작은 마을에 세운 깃발을 말한다. 깃대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세 개의 깃발이 있는데, 여러 색의 천을 사용하며 깃 폭의 상하를 다르게 한다.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때문에 다급히 모이는 것을 ‘勿勿’이라 한다.”고 하였답니다. 갑골문에도 보이지만 학자들의 해석이 각양각색이랍니다. 그러나 현재 주로 ‘부정’과 ‘금지’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성한 장소의 출입을 금하는 깃발로 생각됩니다. 즉 장대 끝에 세 가지 색깔의 깃발을 매단 모양의 상형글자로 신성한 의미를 담아 특정지역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禁止)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얼룩무늬라는 뜻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物(물)의 전체적인 의미는 소(牛) 중에서도 얼룩무늬(勿)가 들어간 우량한 것을 최고의 ‘물건’으로 여긴다는 뜻이 담겨 있으며, 모든 존재를 뜻하는 ‘만물’ ‘사물’ 등은 확장된 것이랍니다.
말할 論(론)은 말씀 언(言)과 둥글 륜(侖)으로 구성되었습니다. 言(언)과 語(어)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직접 말하는 것을 言(언)이라 하고,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것을 語(어)라고 한다. 口(구)로 구성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辛의 하부에서 一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됩니다. 여기서 侖(륜)은 합할 합(合)의 생략형과 상고시대에 대나무를 쪼개 만든 죽간본(竹簡本)을 의미하는 책 책(冊)으로 짜인 회의글자입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뜻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담긴 책(冊)을 한데 모아(合) 논리성을 갖춘 뒤 말(言)을 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죠. 따라서 논문(論文)이란 여러 사람들의 의견을 문서나 책을 통해 파악하고 정리하여 논리성을 제시한 뒤 자신의 의견을 제시하는 글을 말합니다.
蓬頭突鬢(봉두돌빈)이란 쑥대처럼 더벅머리에 구레나룻이 삐져나왔다는 뜻으로, 『장자·잡편』제30 <설검편>의 “서민의 검을 사용하는 자들은 더벅머리에 구레나룻은 삐져나왔고, 모자는 눌러 썼는데 무늬도 없는 끈으로 묶고 있으며, 뒤가 짧은 저고리를 입고 눈을 부릅뜬 채 어투도 매우 사납고, 임금님 앞에서 서로를 치면서 위로는 상대의 목을 자르고 아래로는 간이나 폐를 찌릅니다.”라는 대목에서 유래했으며, 비슷한 말로 봉두난발(蓬頭亂髮)이 있습니다.
쑥 蓬(봉)의 구성은 두 포기의 풀을 본뜬 풀 초(艸)의 간략형인 초(艹)와 만날 봉(逢)으로 이루어졌습니다. 逢(봉)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끌 봉(夆)으로 구성되었습니다. 夆(봉)은 뒤져서 올 치(夂)와 풀 무성할 봉(丰)으로 구성되었는데,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았으나 대체적으로 정상적인 발걸음이 아닌 어긋난 발모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여기서 丰(봉)의 갑골문 모양을 참조하면 뿌리 부분이 흙덩이로 싸여 있는 나무모양인 점으로 미루어 볼 때, 묘목(丰)을 땅에 심은 뒤 두발로 엇 딛으며(夂) 다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逢(봉)의 의미를 살펴보면 옛사람들은 종교의식의 하나로 산봉우리에 올라 하늘과 소통하는 의미로 나무를 심고 발로 다졌는데(夆), 이 때 많은 사람이 쉬엄쉬엄 산봉우리로 올라와(辶) 함께 했다는데서 ‘만나다’ ‘점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따라서 蓬(봉)의 전체적인 의미는 동북아지역에 자생하는 것으로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逢) 있는 풀(艹)이라는 데서 ‘쑥’을 지칭하게 되었습니다.
머리 頭(두)의 구성은 제사 그릇 두(豆)와 머리 혈(頁)로 이루어졌습니다. 豆(두)는 뚜껑(-)을 덮어 따뜻한 국물을 담을 수 있는 발(ㅛ)이 달린 비교적 작은 그릇(口)을 본뜬 것으로 일반적으로 제기(祭器)를 의미합니다. ‘콩’이란 의미는 콩이나 팥을 뜻하는 ‘좀콩 荅(답)’과 발음이 비슷한 데서 가차하여 쓴 것이며, 보다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식물을 뜻하는 풀 초(艹)를 더해 ‘콩 荳(두)’를 별도로 제작하였답니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頭(두)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릇(豆)처럼 생긴 머리통(頁)이라는 데서 ‘머리’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갑자기 突(돌)은 구멍 혈(穴)과 개 견(犬)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상고시대에는 주로 땅에 굴을 파고 사는 혈거(穴居)생활을 했는데, 사람이 들고나는 굴과 같은 문(穴)에서 개(犬)는 제문이 아니니 갑자기 튀어나온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주로 동물을 본뜬 개 견(犬), 소 우(牛), 양 양(羊), 돼지 시(豕) 등이 본래 모습처럼 옆으로 되어있지 않고 세로로 된 것은 종이가 없던 옛날 옆이 좁은 죽간(竹簡)에 쓰기 쉽도록 하기 위해서 그랬답니다.
살쩍 鬢(빈)의 구성은 머리털 드리워질 표(髟)와 손 빈(賓)으로 이루어졌습니다. 髟(표)는 길게 머리를 늘어뜨린 노인을 뜻하는 장(長)과 역시 길게 자란 머리털을 뜻하는 삼(彡)으로 짜여 ‘머리털 길게 드리워진 모양’을 그려내고 있습니다. 賓(빈)의 구성요소를 보면 집 면(宀), 발 지(止)를 뒤집은 부수와 조개 패(貝)로 짜여 있습니다. 그 짜여 진 의미를 유추하자면 이렇죠. 남의 집(宀)을 방문하기 위해 발걸음(止)을 놓을 때는 반드시 값나가는 선물(貝)을 가지고 간 사람은 융숭한 대접을 받기 마련이죠. 이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조개가 화폐로 유통되었던 상고시대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에 따라 입만 가지고 가는 客자와 더불어 손님을 뜻하는 글자이긴 하지만 좀 더 고급스러운 국빈(國賓)이나 귀빈(貴賓)에 붙여 썼습니다. 따라서 鬢(빈)의 전체적인 의미는 머리털이 드리워진(髟) 귀밑사이로 귀빈(賓)과도 같이 살짝 빛나는 털이라는 데서 ‘살쩍’ ‘귀밑털’이라는 뜻을 부여했습니다.
無病自灸(무병자구)란 불편한 질병도 없는데 괜히 뜸을 뜬다는 뜻으로, 『장자·잡편』제29 <도척편>의 “유하계가 걱정스레 다시 묻습니다. ‘도척 그놈이 전에 말한 것처럼 자네 뜻을 거역했겠지?’ 이에 공자가 대답합니다. ‘그렇다네. 말하자면 나는 아프지도 않은데, 괜히 뜸을 뜬 꼴이 되었어. 재빨리 내달려 호랑이 머릴 건드리고 수염을 잡아당겼으니, 하마터면 호랑이 밥을 면치 못할 뻔했다네.’” 라는 대목에서 유래했습니다.
없을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습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춥니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습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답니다.
병 病(병)은 병들어 기댈 녁(疒)과 셋째 천간 병(丙)으로 구성되었습니다. 疒(녁)은 사람이 질병에 걸려 침상에 드러누운 모양을 본떴죠. 자형 중에 ‘亠’모양은 침대(ㅡ)에 누워 있는 환자(丶)를 뜻하고 나뭇조각 장(爿)의 간체자 모양인 ‘丬(장)’은 다리가 달린 침대인데, 붓으로 쓰기에 편리하게 세워 놓은 것일 뿐입니다. 그래서 疒(역)자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대부분 질병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됩니다. 갑을병정(甲乙丙丁)으로 시작되는 천간(天干)은 식물의 성장과정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들인데, 씨앗에 뿌리가 내리고(甲), 싹이 움터 자라나(乙), 땅속(內)으로부터 나무줄기(一)가 형성된 모습이 바로 丙자에 해당합니다. 이에 따라 病(병) 자에는 부상이 아닌 몸 속 장부의 부조화로 발생된 내과(內)과적 질환(一)으로 병석에 누워(疒) 있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쓰죠.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입니다.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짜여 있는데, 코(自)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自’는 ‘--로부터’ 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뜸 灸(구)의 구성은 오랠 구(久)와 불 화(火)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久(구)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久는 사람을 뒤에서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의 두 정강이 뒤에 뭔가 달려있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보이지 않습니다. 이 久(구)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한 쪽 다리를 잘랐으니 그 걸음걸이 더뎌 목적지에 다다르기 까지는 ‘오래’ 걸린다는 것, 둘째는 다리에 족쇄를 채웠으니 또한 그 걸음걸이가 ‘오래’ 걸린다는 것, 셋째는 사람의 뒤꽁무니를 붙들고서 놓아주지 않으니 당사자로서는 아주 ‘길고 오래’동안 붙들린 것처럼 느낀다는 것, 마지막으로 사람의 등이나 엉덩이에 불에 달군 쇠붙이로 낙인을 찍게 되면 그 흔적이 ‘오래 간다’는 것 등 입니다. 필자가 보기에는 마지막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갖게 했답니다. 처음에는 죄수나 노예를 구별하기 위한 낙인이었지만, 후에는 뜸과 치료술로도 쓰였을 겁이다. 그런데 久(구)자가 이러한 본뜻과는 달리 ‘오래’라는 의미로 쓰이자, 원래의 뜻을 살리기 위해 불 火(화)를 더해 ‘뜸 灸(구)’를 따로 만든 겁니다.
獨往獨來(독왕독래)란 홀로 갔다가 홀로 돌아온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11<재유편>의 “모든 사물을 제대로 보존할 줄 아는 사람이 사물에 구애받지 않음을 명백하게 알았다면, 어찌 천하 백성을 다스리는 일 뿐이겠습니까! 그러한 사람은 천지 사방을 드나들고 온 나라 안을 노닐면서 홀로 갔다가 홀로 옵니다. 이러한 경지를 홀로 있음이라 합니다. 홀로 있는 사람을 일러 ‘지극히 존귀한 사람’이라 한답니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했습니다.
홀로 獨(독)은 큰 개 견(犭)과 누에 촉(蜀)으로 구성되었습니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이죠. 蜀(촉)은 누에의 상형(罒)과 고치에 싸인(勹) 번데기(虫)를 의미합니다. 獨(독)자는 이 두 동물의 식생과 관련하여 그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즉 큰 개(犭)와 누에(蜀)는 먹이를 주면 오직 혼자만 먹으려 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시키며 ‘홀로’ 떼어놓아야 별탈이 없다는 데서 ‘홀로’ ‘홀몸’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갈 往(왕)의 구성은 조금 걸을 척(彳)과 본래 임금 왕(王) 자 위에 발모양을 본뜬 발 지(止)모양이었는데, 주인 주(主)로 간략화 되었습니다. 彳(척)에 대해 『說文』에서 “彳은 작은 걸음으로 걷는다는 뜻이며 사람의 다리를 형성하는 세 부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세 부위는 넓적다리와 정강이, 그리고 발을 말하는 것으로 움직일 때 활용되는 다리 전체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王(왕)은 일반 무사들이 가지고 있는 도끼보다도 더 크고 머리부위에 장식이 달린 ‘큰 도끼’를 본뜬 모양입니다. 이러한 큰 도끼는 부족의 우두머리나 한 나라의 왕만이 가질 수 있다는 데서 ‘임금’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죠. 이에 따라 往(왕)의 의미는 왕(王)이 발걸음(止)을 내디뎌 천천히 간다(彳)는 데서 ‘가다’는 뜻과 함께 지나가버린 ‘과거’를 뜻하기도 한답니다.
올 來(래)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來는 주나라가 얻은 상서로운 보리인 래모(來麰)를 말한다. 한줄기의 보릿대와 두 개의 보리이삭으로 까끄라기의 가시를 본떴다. 하늘이 내려준 것이므로 ‘가고 오다’의 래(來)로도 쓰인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에서는 본디 보리의 뜻으로 쓰였으나 후대에 ‘오다’는 뜻으로 확장되자 보리의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보리 麥(맥)자를 별도로 만들었답니다.
形若槁木(형약고목)이란 사람의 형체가 마치 마른나무와도 같이 심신이 아주 고요한 상태를 말하는 것으로, 『장자·외편』제21 <전자방편>에서 공자가 노자를 보고서 “제가 눈이 어두워진 걸까요? 아님 제가 본 그대로 일까요? 조금 전 선생의 형체는 마른 나무와 같이 꿈쩍도 하지 않았으며, 마치 사물을 잊고 인간 세상을 떠나 홀로 서 계신 것 같았습니다.”라는 대목해서 연유되었습니다.
모양 形(형)은 통나무로 형틀을 짠 ‘우물 난간’의 모양을 본뜬 ‘우물 井(정)’이 변한 幵(견)과 터럭 삼(彡)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여기서 ‘평평할 幵(견)’은 붓글씨를 쓸 때 일정한 크기로 쓸 수 있도록 균형을 잡아주는 틀을 말하며, 彡(삼)은 붓으로 아름답게 꾸민다는 뜻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形(형)자의 의미는 일정한 격자형의 틀(幵)을 놓고 붓(彡)으로 글자나 어떤 사물의 모양을 그려낸다는 데서 ‘꼴’ ‘형상’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같을 若(약)의 구성은 풀 초(艹)와 오른쪽 우(右)로 이루어졌습니다. 갑골문에는 사람이 두 손에 뭔가를 쥐고 머리위로 들어 올려 흔들어대는 모양인데, 아마도 신대를 잡은 무녀가 점을 치는 행위인 것 같기도 합니다. 그래서 신(神)이 말하려는 것과 무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같다’는 의미를 나타내려한 것이 아니었던가 추측해 봅니다. 그러나 글자 역시 사상의 발전에 따라 그 표현도 달라지는데, 현재자형을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합니다. 艹(초)는 풀 艸(초)의 간략형으로 무성하게 돋아난 풀을 뜻하는데, 두 개의 싹날 屮(철)로 구성되었습니다. 艹(초)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초목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되죠. 右(우)는 오른손을 뜻하는 又(우)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습니다. 자신이 아닌 남을 도울 때는 주로 오른손(又)을 사용하면서 입(口)도 거들게 되는 것처럼 ‘돕다’가 본뜻이었는데, ‘오른손’이라는 의미로 쓰이자 사람 인(亻)을 더해 ‘도울 佑(우)’를 별도로 제작하였답니다. 따라서 若(약)의 전체적인 의미는 손(右)으로 골라 뽑아내는 풀(艹)이 비슷비슷 하다는 데서 ‘같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만약’이나 ‘너’의 의미는 가차된 것이랍니다.
마를 槁(고)의 구성은 나무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과 높을 고(高)로 이루어졌습니다. 高(고)는 성(城)의 망루를 본뜬 상형글자죠. 高(고)자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출입구(口)를 갖춘 성곽(冂)위에 높이 지어진 망루(자형상부의 亠+口)를 상형한 것으로 높이 치솟은 모양에서 ‘높다’ ‘뽐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비싸다’ ‘뛰어나다’ 등은 파생된 뜻입니다. 따라서 槁(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가 지나치게 높게(高) 자라 수액공급이 잘 안되어 말라죽었다는 데서 ‘마르다’ ‘말라 죽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일상에서는 槁(고) 자 보다는 같은 뜻을 지닌 枯(고) 자가 보다 많이 쓰인답니다.
나무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한그루의 나무를 표현하였습니다.
甘井先竭(감정선갈)이란 물맛이 달디 단 샘물은 사람이 많이 찾으니 먼저 말라버린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20 <산목편>의 “곧은 나무는 먼저 잘리고 단 샘물은 먼저 마르는 법입니다. 그런데 선생께서는 의도적으로 지식을 잘 포장하여 우매한 사람들을 놀라게 하고, 몸을 수양한답시고 남의 추잡함을 들춰내면서도 자신은 해와 달같이 밝게 빛난 듯이 행동을 하고 있다.”는 대목에서 유래했습니다.
달 甘(감)은 입(口)안에 있는 혀(一)로 무언가를 맛보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 지사글자랍니다. 특히 혀 중에서도 끝부분은 오미(五味) 중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있으며, 신맛은 혀 안쪽의 가장자리, 매운맛은 혀 앞쪽의 가장자리, 쓴맛은 혀의 안쪽부분, 그리고 짠맛은 혀 전체로 그 맛을 느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입(口)안의 혀 중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있는 혀끝(一)을 나타내어 ‘달다’의 뜻과 함께 ‘맛있다’는 의미를 표현하였답니다. 甘(감)에 대해 『說文』에서는 “甘은 맛이 좋다는 뜻이다. 입(口)안에 음식물(一)을 머금은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다른 부수에 甘(감)이 더해지면 음식물의 맛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우물 井(정)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丼은 여덟 가구가 하나의 우물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우물 위에 나무로 짜 얹은 형틀을 본떴으며 가운데 점(丶)은 두레박의 모양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에는 가운데 점이 없는 井(정)자가 보입니다. 여덟 가구에 하나의 우물이란 후대에 시행한 정전제(井田制)를 말한 것으로 井(정)자와 같이 구등분한 땅의 중앙은 여덟 가구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나라에 바치는 공전(公田)이며, 사방 외곽 여덟 곳의 땅은 사전(私田)으로 각자가 경작하여 개인이 소유하게 됩니다.
먼저 先(선)의 구성은 갈 지(之)의 변형과 어진사람 인(儿)으로 짜여 있습니다. 앞서서 가는(之) 어질고 본받을 만한 사람(儿)이란 뜻이 담겨 있죠. 갑골문에도 왼발을 뜻하는 止(지)모양에 儿(인)으로 그려져 있어, 사람들 앞에서 먼저 간다는 데서 ‘먼저’ ‘나아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다할 竭(갈)의 구성은 설 립(立)과 어찌 갈(曷)로 이루어졌습니다. 立(립)은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이 평평한 땅(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그려낸 상형글자죠. 나중에는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거나 ‘세우다’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답니다. 曷(갈)은 가로 왈(曰)과 빌 개(匃, 빌 갈)로 구성되었습니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죠.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랍니다. 匃(개)는 사람 인(人)과 없다는 뜻도 지닌 망할 망(亡)으로 구성되었는데, 사람(人)이 뭔가 부족하고 갖은 게 없어서(亡) 빌린다는 데서 ‘빌다’ ‘구걸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曷(갈)은 어떤 이에게 자신의 사정을 말(曰)하고 뭔가를 구걸(匃)한다는 데서 ‘어찌’ ‘어찌하여’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따라서 竭(갈)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立)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며 구걸(曷)한다는 데서 ‘다하다’ ‘없어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履適忘足(이적망족)이란 신발이 꼭 들어맞으면 발이 있다는 것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19<달성편>의 “발이 있다는 것을 잊는 것은 신발이 꼭 들어맞기 때문이고, 허리가 있다는 것을 잊는 것은 허리띠가 알맞기 때문이다. 옳고 그름을 잊을 줄 아는 것은 마음이 자연스레 알맞기 때문이고, 안으로 마음이 변화하지 않고 밖으로 다른 사물에 이끌리지 않는 것은 하는 일마다 경우에 알맞기 때문이다.”는 대목에서 유래했답니다.
밟을 履(이, 리)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다시 부(復, 되돌아올 복)로 이루어졌습니다. 尸(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尸는 늘어져 있다는 뜻이다. 엎드려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랍니다. 죽은 사람을 뜻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했죠. 여기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신발을 신으려는 사람을 나타냅니다. 復(복, 다시 부 )의 구성은 조금 걸을 척(彳)과 돌아올 복(㚆=复)으로 짜여 있습니다. 彳(척)은 여기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네 거리’를 본뜬 行(행)의 생략형으로 보아야 그 의미가 살아납니다. 复(복)은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참조할 때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는 도구인 ‘풀무’와 발을 뜻하는 止(지)가 더해진 모양이었으나 현재자형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답니다. 여기서 말한 풀무는 발을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로 밟을 때마다 통 속의 칸막이가 왕복으로 오가며 바람을 일으킵니다. 이에 따라 復(복)의 의미는 풀무(复)와 같이 오고가다(行)가 본뜻이었으나 ‘돌아오다’는 의미로 더 쓰였고, 또한 ‘회복하다’ ‘다시’라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답니다. 따라서 履(이)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尸) 길을 오가기(復)위해 신발을 신는 모습을 그려내 ‘신’ ‘신다’ ‘밟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맞을 適(적)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밑동 적(啇)으로 이루어졌습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답니다. 啇(적)은 임금 제(帝)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는데, 帝(제)는 꽃봉오리를 연결해주는 꽃대를 상형한 것이었죠. 그런데 帝(제)가 임금이란 뜻으로 쓰이자 본뜻을 보존하기 위하여 ‘꼭지 체(蒂, 대, 蔕와 뜻이 같음)’를 별도로 제작하였습니다. 여기서 帝(제)아래에 더해진 ‘口’모양은 열매를 뜻합니다. 그래서 啇(적)의 의미는 꽃이 핀 후 맺힌 열매의 배꼽에 해당하는 ‘밑동’을 뜻하게 되었죠. 따라서 適(적)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뭇가지의 꼭지에 매달린 열매(啇)가 알맞게 익어감(辶)을 그려내 ‘맞다’ ‘마땅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잊을 忘(망)의 구성은 망할 망(亡)과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습니다.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합니다. 더불어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답니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인데, 여기서는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이죠. 따라서 忘(망)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 몸의 주체인 마음(心)에서 없어져버렸다(亡)는 데서 ‘잊다’의 뜻을 갖게 되었습니다.
발 足(족)은 사람의 다리를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 있다”라고 하였습니다.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답니다.
伯樂治馬(백락치마)란 말 조련사 백락이 말을 길들인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9<마제편>의 “백락이 나타나 ‘내가 좋은 말로 만들겠다.’며 말의 털을 지지고 깎고 말굽을 깎아내고 인두로 지져대고, 또 굴레에 매어 여러 마리를 연결하거나 구유와 마판에 매어 놓으니 죽는 말이 열에 두세 마리나 되었습니다. 또한 훈련을 시킨다며 굶기고 목마르게 한 채 달리고 또 달리게 하는가 하면 여러 가지로 다독이며 길을 들입니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했답니다.
맏 伯(백, 패)의 구성은 사람 인(亻)과 흰 백(白)으로 이루어졌습니다. 亻(인)은 서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人(인)의 변형자이며, 다른 부수의 좌변에 주로 놓입니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 이르러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어 희다는 뜻을 가진 白(백)과 구분하기 시작하였습니다. ‘희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어서인지 ‘아뢰다’는 뜻도 있답니다. 이에 따라 伯(백)의 의미는 형제를 대표하여 윗사람에게 아뢰는(白) 사람(亻)이란 데서 ‘맏아들’뿐만 아니라 ‘우두머리(패)’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즐길 樂(락, 풍류 악, 좋아할 요)은 상형글자로 현악기와 타악기를 그려내고 있습니다. 즉 줄이나 실을 의미하는 두 개의 작을 요(幺)는 거문고 해금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를, 가운데 흰 백(白)은 북과 같은 타악기를 본 뜬 것입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를 받침으로 한 현악기(幺)와 타악기(白)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겨 있죠. 그래서 ‘풍류’를 뜻하기도 하고 ‘좋아 한다’는 의미로도 쓰였답니다.
다스릴 治(치)의 구성은 물을 뜻하는 물 수(氵)와 나 이(台,별 태)로 짜여 있습니다. 台(이)는 사사로울 사(厶)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를 입가(口)에 주름(厶)지으며 빙긋이 웃는다하여 ‘기뻐하다’ 혹은 웃는 주체인 ‘나’자신을 뜻한다고 본답니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의미를 더해서 보자면, 台(이)는 ‘목숨’을 뜻한다고 보아야 해석이 용이합니다. 즉 목구멍을 뜻하는 ‘목’은 입(口)이요, 숨구멍을 뜻하는 ‘숨’은 코(厶)를 말한다고 볼 수 있죠. 스스로 자(自)가 본디 코를 의미하였듯 厶(사) 역시 코를 뜻하면서 입을 상형한 口(구)와 더불어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목숨(목:口, 숨: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데 가장 중요한 ‘호흡’과 ‘섭생’을 의미하면서 복지(福祉)를 나타내죠. 달리말해 생명력을 유지하는 코(厶)와 입(口)이 윤택(氵)해야 몸이 잘 다스려진다는 데서 ‘다스리다’ ‘관리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답니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입니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답니다.
鼓盆而歌(고분이가)란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한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18<지락편>에 등장합니다. 장자의 벗 혜자가 아내의 주검을 앞에 두고 노래를 하고 있는 장주에게 “자네 부인은 함께 살아오며 자식들을 기르다가 이제 늙어 죽었는데, 곡은 못할망정 동이를 두드리며 노래를 해! 이거 너무 심하지 않은가!”라는 데서 연유하였답니다.
북 鼓(고)의 구성은 악기 이름 주(壴)와 가를 지(支)로 짜여 있습니다. 壴(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壴는 악기를 진열해 놓고 서서 위에서 본 모양이다. 屮(철)과 豆(두)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습니다. 나무 받침대(ㅛ) 위에 놓인 북(口)을 본뜬 것인데, 자형의 상부(士)는 북을 장식한 모양이죠. 고대에는 壴(주)가 북을 의미하였지만 후에 북의 종류를 총괄하여 북 鼓(고)로 통일하였답니다. 즉 손(又)에 막대(十)를 쥐고서 북(壴)을 두드린다는 데서 ‘북’을 뜻할 뿐 아니라 ‘두드리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습니다.
말 이을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레나룻을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죠.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되었답니다.
동이 盆(분)의 구성은 나눌 분(分)과 그릇 명(皿)으로 짜여 있습니다. 分(분)은 나눈다는 뜻을 지닌 여덟 팔(八)과 칼날과 칼등을 본떠 만든 칼 도(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 의미는 칼(刀)로 뭔가를 나눈다(八)는 데서 ‘나누다’란 뜻을 갖게 되었죠. 皿(명)은 밥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랍니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새로운 글자를 형성할 때는 대부분 자형의 하부에 놓여 그릇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따라서 盆(분)은 어떤 물건을 칼로 잘게 나누어(分) 보관할 수 있는 그릇(皿)이라는 데서 ‘동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노래 歌(가)는 노래 가(哥)와 하품 흠(欠)으로 구성되었습니다. 哥(가)는 두 개의 ‘옳을 가(可)’로 이루어졌는데, 可(가)에 대한 해석은 두 가지로 나뉩니다. ‘ㄱ’자 모양의 농기구로 땅을 일구면서 입(口)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과 누군가 뭔가를 요청했을 때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ㄱ) 입(口)에서 나오는 소리는 곧 ‘옳다’거나 ‘허락’한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입니다. 중요한 것은 可(가)의 의미요소는 입을 상형한 口(구)에 있다는 점이죠. 그래서 可(가)를 겹쳐 쓴 哥(가)는 목소리를 길게 늘어 뽑아 노래함을 뜻하고는 있지만 보다 그 의미를 확실하게 나타내기 위해 크게 입을 벌린 모양을 본뜬 欠(흠)자를 더하여 ‘노래 歌(가)’를 만들었답니다.
泥塗曳尾(니도예미)란 차라리 진흙탕 속에서라도 꼬리를 끌며 살아가겠다는 뜻으로, 헛된 욕망을 버린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장자·외편』제17 <추수편>편의 “그렇다면 ‘이 거북이는 죽어서 뼈만 남긴 채 소중하게 받들어지기를 바랄까요, 아니면 차라리 살아남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다니기를 원했을까요?’ 초나라의 두 대부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대답합니다. ‘아 그야! 살아서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고 다니려 할 겁니다.’그러자 장자가 말합니다. ‘그럼 돌아가시오. 나도 진흙 속에서 꼬리를 끌며 살아가겠소이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했답니다.
진흙 泥(니)의 구성은 물길을 뜻하는 수(水)의 간략형인 물 수(氵)와 그치다는 뜻을 지닌 니(尼)로 이루어졌습니다. 尼(니)는 살아 있던 사람이 어느 날 갑자기 주검(尸)으로 변화(匕)했다는 데서 ‘그치다’ ‘정지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이에 따라 泥(니)는 그쳐(尼) 괸 물(氵)에 가라앉은 흙이라는 데서 ‘진흙’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진흙 塗(도)는 도랑 도(涂)와 흙 토(土)로 짜여 있습니다. 涂(도)는 물 수(氵)와 나 여(余)로 구성되었죠. 余(여)는 나무(木)로 지붕(亼)을 인 작은 집을 의미하는 상형글자인데, 홀로 들어가 있으니 여유롭기도 하였을 겁니다. 그래서 ‘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남다’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죠. 이에 따라 땅위 일정한 부분들이 여유롭게(余) 패인 곳이 줄지어 이어지니 물(氵)이 흐를 수 있다는 데서 ‘도랑’ ‘개천’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塗(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늘 물이 흐르는 도랑(涂) 밑의 흙(土)은 진흙탕이 될 수밖에 없다는 데서 ‘진흙’이란 뜻을 부여받게 되었답니다.
끌 曳(예)의 구성은 가로 왈(曰)과 벨 예(乂)로 짜였습니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죠.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랍니다. 乂(예)는 낫을 이용하여 풀을 좌우로 베는 모양을 그려낸 자형으로 은유적으로 풀을 베는 행위는 곧 ‘다스림’을 뜻하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曳(예)의 의미는 노예나 포로를 낫과 같은 날카로운 무기(乂)와 위협적인 말(曰)로써 폭행을 가하며 어디론가 끌고 간다는 데서 ‘끌다’ ‘끌고 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꼬리 尾(미)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사람의 머리털이나 짐승의 털 모양을 본뜬 털 모(毛)로 이루어졌습니다. 尸(시)의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입니다. 죽은 사람과 흡사하기도 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여기선 동물의 엉덩이부분을 뜻한답니다. 이에 따라 尾(미)의 의미는 동물의 엉덩이 부분(尸)에 나 있는 털(毛)이라는 데서 ‘꼬리’를 뜻하게 되었답니다.
深根寧極(심근녕극)이란 자신의 본성인 근본을 깊이 간직하고 궁극의 경지에서 편안히 머물며 때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16 <선성편>의 “시절의 운명이 잘 맞아 천하 세상에 자기의 뜻을 크게 펼쳤다면, 사람들을 지극한 도와 합일 된 상태인 지일至一로 되돌려 놓고선 자기 자신은 흔적도 남기지 않았을 겁니다. 시절의 운명이 잘 맞지 않아 천하 세상이 크게 곤궁에 빠지게 된다면, 다만 자신의 근본을 깊이 간직하고 궁극의 경지에 편안히 머물면서 때를 기다렸을 겁니다. 이것이 바로 몸을 온전히 보존하는 도랍니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했답니다.
깊을 深(심)의 구성은 물줄기가 흩어지고 모이는 강을 상형한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깊을 삼(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穼(삼)의 본래자형은 청동기 문화를 반영한 금문에 보이는데, 횃불(火)을 들고 깊은 갱도(穴)에 들어가 광물을 채굴하는 모양(㴱, ‘깊을 심’의 옛글자)이었으나 현재자형으로 간략화 되었답니다. 즉 어두운 동굴(穴)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긴 나뭇가지(木)로 측정한다는 행위적 요소가 새롭게 가미되었죠. 따라서 深(심)의 전체적인 의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穴)과도 같은 물속(氵)을 긴 나뭇가지(木)를 넣어보아야 알 수 있다는 데서 ‘깊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뿌리 根(근)의 구성은 나무의 외양을 본뜬 나무 목(木)과 그칠 간(艮)으로 이루어졌습니다. 艮(간)은 눈 목(目)의 간략형과 사람의 모습이 변화됨을 뜻하는 ‘匕(화)’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회의글자입니다. 즉 눈(目)을 뒤로 되돌아보는 사람(匕)의 모습을 담은 글자로, 앞에 산이나 언덕(阝=阜)이 나타나면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艮)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限界)나 한정(限定)의 뜻을 내포하고 있답니다. 따라서 根(근)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의 가지는 하늘을 향해서는 거침없이 자랄 수 있지만 땅속으로 자라야 하는 뿌리는 돌과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그쳐야(艮) 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뿌리’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습니다.
편안할 寧(녕)은 본래 자형인 편안할 寍(녕)과 장정 정(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寍(녕)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과 지붕을 본뜬 집 면(宀)과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며 심장을 상형한 마음 심(心), 그리고 음식물을 담은 그릇을 상형한 그릇 명(皿)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이는 제사와 관련한 글자죠. 즉 종묘나 사당(宀)에 그릇(皿) 가득 제물을 차려 올리니 마음(心)이 놓여 ‘편안하다’는 뜻이 발생했답니다. 여기에 보다 사실적인 의미를 드러내기 위해 우뚝한 제단모양의 丁(정)을 첨가하였습니다.
다할 極(극)은 나무 목(木)과 빠를 극(亟)으로 구성되었습니다. 亟(극)의 구성은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두 이(二)와 사람 인(亻), 그리고 입 구(口)와 오른손을 의미 하는 또 우(又)로 짜여 있죠. 그 뜻은 금문에 나타난 자형에서처럼 하늘(一)과 땅(一), 혹은 아래위가 꽉 막힌 광물을 채굴하는 갱도에서 일을 하는 사람(亻)이 입(口)으로 소리치고 손에 든(攴) 곡괭이와 같은 도구를 다급하게 움직이는 모양을 본떠 ‘빨리’ ‘자주(기)’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極(극)의 전체적인 의미는 갱도에서 광물을 채굴(亟)하기 위해 천정을 떠받는 들보(木)를 세우거나, 기둥을 세워 집을 지을 때 중추적인 역할과 정점이기도 한 대들보(木)를 올리는 작업은 정성스러움과 함께 재빨리(亟)해야 한다는 뜻을 담아 ‘지극’ ‘정점’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답니다. 그래서 우리가 사는 지구의 극점을 남극(南極)과 북극(北極)으로 표현할 뿐만 아니라 우주의 극점 또한 남극성(南極星)과 북극성(北極星)을 한 축으로 보고 있습니다.
吐故納新(토고납신)이란 묵은 것을 토해내고 새것을 들이마신다는 호흡법의 일종으로, 낡고 좋지 않은 것을 버리고 새롭고 좋은 것을 받아들이는 기를 수련하는 도인법의 하나입니다. 특히 『장자·외편』제15<각의편>에서 “숨을 깊게 들이쉬고 내쉬는 것, 탁한 기운을 토해내고 신선한 기운을 들이쉬는 것, 곰이 척추를 세우고 새가 날개를 활짝 펼치는 것과 같은 도인법은 장수하려는 것일 따름이다.”는 내용에서 유래했답니다.
토할 吐(토)의 구성은 입 구(口)와 흙 토(土)로 이루어졌습니다. 口(구)는 입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먹고, 말하다’의 뜻으로 뿐만 아니라 입을 통해 할 수 있는 행위적 의미를 담게 됩니다. 土(토)는 갑골문을 살펴보면 흙무더기를 쌓아 놓은 모습이나 인문학적 의미가 더해져 땅(一)에서 초목(十)이 자라나는 모습을 본뜬 글자로도 해석하는데, 즉 뭔가를 내부로부터 밀어내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吐(토)의 전체적인 의미는 먹었던 음식을 입(口)을 통해 다시금 내뱉는(土)다는 데서 ‘토하다’ ‘게우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옛 故(고)의 구성은 옛 고(古)와 칠 복(攵)으로 이루어졌습니다. 古(고)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였죠. 갑골문에서는 입에 문 악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죠. 아버지와 자식 간을 보통 1세대(世代)라 하는데, 이 때 쓰인 世자는 열 십(十)에 스물 입(卄)의 합자인 30을 의미합니다. 이에 따라 옛날이라는 의미는 대략 열(十) 세대(10☓30=300)인 3백여 년 가량 사람들의 입(口)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즉 3백여 년 전을 뜻한답니다. 攵(복)은 오른 손(又)에 나무 막대기(卜)를 들고 있는 攴(복)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여 ‘때리다’ ‘치다’ ‘다듬다’ 등의 의미를 더해줍니다. 따라서 故(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오래된 옛날(古) 일을 다시 들추어내(攵) 그 까닭을 깬다는 데서 ‘까닭’ ‘연유’라는 뜻으로 뿐만 아니라 古(고)의 뜻을 되살려 ‘옛날’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답니다.
들일 納(납)은 가는 실 사(糸)와 안 내(內)로 짜여 있습니다. 糸(사)는 가느다란 실을 감아놓은 실타래를 본뜬 상형글자죠. 內(내)는 들 입(入)과 먼데 경(冂)으로 이루어졌는데, 入(입)에 대해 『說文』에서는 “入은 안으로 들어감을 말한다.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형 외곽의 멀 冂(경)은 들 坰(경)의 옛글자인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을 邑(고을 읍)이라 하고 읍 밖을 郊(성 밖 교)라 하며, 郊의 밖을 野(들 야)라 하고 野의 밖을 林(수풀 림)이라 하며 林의 밖을 冂(먼데 경)이라 합니다. 따라서 먼 곳(冂)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온다(入)는 데서 ‘안’ ‘들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죠. 따라서 納(납)의 전체적인 의미는 옷감을 짜기 위한 실타래(糸)를 물감에 넣으면 잘 빨아들인다(內)는 데서 ‘들이다’ ‘접수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새로울 新(신)의 구성은 메울 신(辛)의 생략형인 설 입(立)과 나무 목(木) 그리고 도끼 근(斤)으로 짜여 있습니다. 소리요소이기도 한 辛(신)은 죄인의 이마나 팔뚝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던 문신의 도구를 상형한 것으로 본래 ‘죄’를 뜻하였으나 묵형(墨刑)을 당할 때의 고초가 몹시도 매서웠기 때문에 ‘맵다’와 ‘살상’의 뜻으로까지 확대 되었습니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죠. 또한 도끼의 모양을 본뜬 斤(근)의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랍니다. 따라서 新(신)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나무(木)에 생채기(辛)를 내거나 도끼(斤)로 자르게 되면 새롭게 새싹이 돋아난다는 점에서 ‘새롭다’는 뜻을 부여받게 되었답니다. 그러나 본뜻은 도끼 등으로 잘라낸 ‘땔나무’였는데, ‘새롭다’는 의미로 쓰이자 풀 초(艹)를 더하여 ‘섶나무 薪(신)’을 별도로 제작하게 되었습니다.
推舟於陸(추주어륙)이란 물이 없는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한다는 뜻으로, 억지나 고집을 부려 어떤 일을 실행하려 함을 말한 겁니다. 『장자·외편』제14 <천운편>에서 공자의 행동을 노나라의 태사가 안연에게 “이는 마치 육지에서 배를 밀고 가려는 것과 같은 짓이지. 애만 썼지 공로도 없고 자신에게는 반드시 재앙이 돌아갈 것이네. 자네 스승은 아직도 끊임없이 변화하는 것에 따라 사물에 순응해야 하는 것이 무궁한 이치임을 모르고 있는 것 같네.”라는 내용에서 유래했습니다.
밀 推(추, 밀 퇴)의 구성은 손 수(扌)와 새 추(隹)로 짜여 있습니다. 扌(수)는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약자로 쓰기 편하게 한 획을 줄인 겁니다.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推(추)의 의미는 새(隹)가 날개를 벌리고 적을 밀어내듯이 손(扌)을 써서 ‘떠밀거나’ ‘옮기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배 舟(주)는 네모난 모양의 조각배를 본뜬 상형글자랍니다. 舟(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舟는 배를 말한다. 옛날에 공고(共鼓)와 화적(貨狄)이 나무를 쪼개어 배를 만들고 나무를 깎아 노를 만들어 통하지 못했던 곳을 건너게 하였다.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을 보면 여러 개의 판자를 덧대어 만든 직사각형의 네모진 배, 즉 거룻배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며, 여기에 돛을 단 모양의 배를 본뜬 것이 凡(범)자랍니다.
어조사 於(어)의 구성은 깃발 언(㫃)과 얼음 빙(冫)으로 이루어졌지만, 금문과 소전에 그려진 자형은 까마귀의 상형입니다. 본디 감탄사의 일종인 ‘오!’였지만, ‘--에서’ ‘--에’와 같이 어조사인 ‘처소격’으로 뿐만 아니라 ‘--보다’(비교격), ‘--를’(목적격) 등과 같이 그 쓰임이 참으로 많답니다.
뭍 陸(륙, 육)의 구성은 언덕 부(阝)와 언덕 륙(坴)으로 이루어졌습니다. 阝(부)는 인공으로 만든 계단을 본뜻으로 한 阜(부)의 약자(略字)랍니다. 갑골문을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 모양인데, 고대 황하유역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토굴을 오르내리기 쉽게 통나무를 깎아 계단을 만든 모양이었죠. 또한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기 쉽도록 흙을 깎아내 계단을 만들었는데 본뜻인 ‘계단’보다는 ‘높은 언덕’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답니다. 坴(륙)은 버섯 록(圥)과 흙 토(土)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는 버섯(圥)이 솟아 오른 것처럼 땅(土)이 돋아 오른 ‘작은 언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답니다. 따라서 陸(륙)의 전체적인 의미는 산과같이 높은 언덕(阝)과 구릉과 같은 작은 언덕(坴)이 잇닿아 이루어진 ‘뭍’ ‘육지’를 뜻하게 되었습니다.
水靜燭眉(수정촉미)란 물이 고요하면 수염과 눈썹도 밝게 비춘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13 <천도편>의 “성인의 고요함이란 고요함이 좋다고 해서 일부러 고요한 건 아닙니다. 만물 어느 것도 그의 마음을 어지럽히지 못하기 때문에 고요한 겁니다. 물이 고요하면 수염과 눈썹도 밝게 비추며, 평평하기가 수준기와 같아서 대목수도 그것을 본받습니다. 물이 고요해도 밝은데, 하물며 정신이나 성인의 마음이 고요할 때는 어떻겠습니까!”라는 내용에서 유래했답니다.
물 水(수)는 강물이 한데 모아지고 나누어지는 물줄기를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氵)로 표시하거나 氺(수)로 쓰이기도 합니다. 水(수)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水(수)는 평평하다는 뜻이다. 북쪽 방위를 나타내는 오행이다. 여러 물줄기가 나란히 흐르는 가운데 미미한 양(陽)의 기운이 있는 것을 본떴다.”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의 자형이 역(易) 괘체 중의 하나인 물을 뜻하는 坎(감, ☵)을 세로로 세운 것과 같아 외곽의 陰(음, --)이 가운데 陽(양, ㅡ)을 에워싼 모양에 빗대어 설명한 겁이다.
고요할 靜(정)은 푸를 청(靑)과 다툴 쟁(爭)으로 구성되었습니다. 靑(청)은 날 생(生)의 간략형과 붉을 단(丹)으로 짜여 있는데 여기서 붉은 뜻을 갖은 丹(단)은 안료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는데 이것들은 땅속 깊은 곳에서만 발굴됩니다. 이에 따라 구리(丹)가 산화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서 착안하여 ‘푸르다’는 뜻을 부여하였답니다. 爭(쟁)은 손톱 조(爫)와 다스릴 윤(尹)으로 이루어졌습니다. 尹(윤) 자의 ‘彐’라는 부수는 요즘에는 ‘돼지머리 혜’나 ‘고슴도치 머리’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오른 손으로 뭔가를 쥐고 있는 모습인데, 삐침 별(丿)은 지휘봉이나 깃발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이에 따라 爭(쟁)의 의미는 우두머리(尹)가 무리를 다스리기 위해 통솔의 상징물을 오른 손에 쥐고서 지휘를 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손(爫)을 써서 그 상징물을 빼앗기 위해 서로 ‘다투다’는 뜻을 나타낸 겁니다. 따라서 靜(정)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나 사물의 다툼(爭)이 없는 땅속 깊은 곳(靑)과 같다하여 ‘고요하다’는 뜻을 부여했답니다.
촛불 燭(촉)은 모닥불의 모양을 상형한 불 화(火)와 나라 이름 촉(蜀)으로 이루어졌습니다. 蜀(촉)은 누에의 상형(罒)과 고치에 싸인(勹) 번데기(虫)를 의미한다는 데서 ‘누에’ ‘나비 애벌레’를 뜻하게 되었으며, 중국 사천성의 옛 지명이 ‘촉나라’였던 점에서 ‘나라 이름’을 뜻하기도 합니다. 특히 이 지역은 고대부터 누에고치에서 뽑아 짠 비단의 산지였죠. 따라서 燭(촉)의 의미는 기다란 누에(蜀)처럼 생긴 촛대에 불(火)이 붙은 모양을 그려내 ‘촛불’이란 뜻을 부여했답니다.
눈썹 眉(미)의 구성은 눈썹모양을 그려낸 자형상부와 눈 목(目)으로 이루어졌습니다. 目(목)은 사람의 한 쪽 눈을 본뜬 것으로 쓰기에 편리하도록 세로로 세운 모양이죠. 따라서 眉(미)의 의미는 눈(目)위의 눈썹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눈썹’이란 뜻과 함께 장수하여 ‘눈썹이 긴 노인’을 의미하기도 하였답니다.
大惑不解(대혹불해)란 크게 미혹된 자는 평생토록 자신의 허물을 풀어내지 못한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12 <천지편>의 “자신의 미혹됨을 알고 있는 사람은 크게 미혹된 것은 아닙니다. 크게 미혹된 자는 평생토록 자신의 허물을 풀어내지 못하고, 크게 어리석은 자는 평생토록 자신의 잘못을 깨닫지 못합니다. 그러니 세 사람이 길을 갈 때 한 사람만이 미혹되어 있다면 가려고 한 목적지에 이를 수 있습니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했습니다.
큰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랍니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습니다.
미혹할 惑(혹)은 혹 혹(或)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었습니다. 或(혹)은 창과 같은 무기를 뜻하는 戈(과)와 백성을 의미하는 口(구) 그리고 사람들이 살아가는 영토를 뜻하는 一(일)로 구성되었습니다. 그 뜻은 적군이 침입하지나 않을까 의심되어 무기(戈)를 들고서 국민(口)과 영토(一)를 지킨다는 것으로, 요즘과 같이 나라 간의 경계선(囗 나라 국)이 확실치 아니하여 늘 적의 침입에 대비해 경계태세로써 ‘의심’한다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또한 아직 확실한 경계선은 없지만 국방과 백성 그리고 영토를 갖추었으니 ‘나라(역)’이란 뜻도 함유하고 있습니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죠. 따라서 惑(혹)의 전체적인 의미는 마음(心) 가운데 혹시나 하는 의구심(或)이 일어 혼란스럽다는 뜻이랍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랍니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답니다.
풀 解(해)의 구성은 동물의 머리에 난 뿔을 상형한 뿔 각(角)과 칼 도(刀), 그리고 소 우(牛)로 이루어졌습니다. 갑골문과 금문을 살펴보면 칼(刀)이 아니라 두 손(廾)으로 그려져 있는데, 소(牛)를 잡을 때는 두 손(廾)으로 단숨에 쇠뿔(角)을 뽑아버림을 그려낸 것이었답니다. 그러다 소전에 이르러 두 손(廾) 대신 칼(刀)로 바뀌었죠. 따라서 解(해)의 전체적인 의미는 소(牛)를 식용으로 할 때는 날카로운 칼(刀)로 두 뿔(角)사이를 쳐 절명시킨 뒤 부위별로 해체한다는 데서 ‘가르다’ ‘해부하다’는 뜻뿐만 아니라 ‘깨닫다’ ‘통달하다’는 뜻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었답니다.
盜亦有道(도역유도)란 도둑질에도 도가 있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10 <거협편>의 “어느 곳인들 도 없는 곳이 있겠느냐? 방안에 어떤 물건이 감추어져 있는지 잘 알아맞히면 성인(聖)의 경지이고, 가장 앞장서서 침입하는 것이 용기(勇)이며, 훔쳐 나올 때 가장 뒤에 서는 게 의리(義)이고, 도둑질이 성공할지 못할지를 아는 게 지식(知)이며, 훔친 것을 고르게 나누는 게 어짊(仁)이란다. 이 다섯 가지 덕목을 갖추지 않고서 큰 도둑이 된 자란 이 세상에 아직까진 없었단다.”라는 내용에서 유래했습니다.
훔칠 盜(도)의 구성은 침 연(㳄)과 그릇 명(皿)으로 짜여 있습니다. 㳄(연, 선)에 대해서 허신은 『說文』에서 “㳄은 뭔가를 원하고 바랄 때 입에 고이는 액체이다. 欠(흠)과 水(수)로 구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사람의 입에서 침이 튀어나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다른 부수에 더해져 주로 부러움이나 탐욕 등과 관련 된 뜻을 지닌답니다. 皿(명)은 밥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죠. 따라서 盜(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릇(皿)에 담긴 음식을 보고서 침을 흘리다(㳄) 몰래 집어 먹는다는 데서 ‘훔치다’는 뜻이 생겨 낳는데, 이는 생계형 좀도둑을 말합니다.
또 亦(역)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亦은 사람의 팔 아래 겨드랑이를 뜻한다. 大(대)로 구성되었으며, 좌우 두 획은 겨드랑이 모양을 본뜬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의 자형은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의 팔 아래 두 개의 점을 표시해 겨드랑이를 나타냈답니다. 본뜻은 ‘겨드랑이’였으나 ‘또’라는 의미로 쓰이자 ‘겨드랑이 腋(액)’을 별도 제작하였죠.
있을 有(유)의 구성은 손(手)의 모양을 뜻하는 자형상부의 屮(좌)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달월(月)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有(유)는 손(屮)에 고기 덩이(肉=月)를 쥐고 있다는 데서 ‘가지고 있다’ ‘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답니다.
길 道(도)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쉬엄쉬엄 갈 착(辶)과 머리카락과 이마 그리고 코(自)를 그려낸 머리 수(首)로 짜여 있습니다. 머리(首)를 앞세우고 재촉하지도 않고 천천히 발걸음(辶)을 앞으로 내 딛는 게 바로 道(도)의 의미입니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통행하는 길이라는 의미보다는 모든 개체가 본능적으로 가야할 운명적인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죠. 그래서 각자가 가야할 운명적인 길을 말할 때는 道(도)라고 합니다. 따라서 ‘道(도)를 닦는다’ 할 때는 자신의 영성(靈性)을 맑고 밝게 하여 보다 나은 마음의 영역을 넓히는 겁니다. 그 길은 오가는 게 아니라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同類相從(동류상종)이란 같은 종류끼리는 서로를 따르고 어울린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31 <어부편>의 “같은 종류끼리는 서로 어울리고 같은 소리가 서로 호응하는 것은 본래 자연의 이치랍니다. 내가 체득한 것은 접어두고 선생이 일삼고 있는 일에 대해 살펴봅시다. 선생이 하고 있는 일은 인간 세상의 일입니다. 천자ㆍ제후ㆍ대부ㆍ서민 등 이 네 가지 계층의 사람들이 스스로 알아서 올바른 길을 가게 하는 것이 다스림의 미학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한 가지 同(동)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이지만 통일된 해석이 없답니다. 인문적인 접근을 한다면 대나무와 같이 속이 텅 비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마디마디를 절단해도 거의 한결같은 크기라는 뜻이 내포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또한 한 무리(冖)의 사람들이 모두 한(一) 목소리(口)를 낸다고도 보아 ‘한 가지’ ‘함께’ ‘다같이’ 등의 뜻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무리 類(유, 류)의 구성은 깨닫기 어려울 뇌(頪)와 개 견(犬)으로 짜여 있습니다. 頪(뇌)는 쌀 미(米)와 머리 혈(頁)로 구성되었습니다. 米(미)는 벼와 기장의 알맹이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가로획(一)을 중심으로 상하에 각각 세 점이 곡식의 낟알을 표시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눈이 강조되어 있습니다. 또한 책의 면수(페이지)를 나타낼 때는 ‘책면 엽’으로 읽는답니다. 따라서 頪(뇌)는 곡식의 낱알이나 쌀(米)은 그놈이 그놈 같아 그 모양(頁)을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지니고 되었습니다. 犬(견)은 개의 옆모양을 본뜬 것으로 가장 큰 특징인 입으로 내민 혀(丶)를 강조하였습니다. 따라서 類(유)의 전체적인 의미는 개(犬)는 그 생김생김이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렵다((頪)는 데에서 ‘닮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한편으로 인문학적인 해석을 한다면 米(미)는 식물을, 犬(견)은 동물을, 頁(혈)은 사람을 대표함으로써 각각의 종(種)을 나타내 ‘무리’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서로 相(상)은 나무 목(木)과 눈 목(目)으로 구성되었습니다. 木(목)은 한 그루의 나무를 가지와 줄기 뿌리까지 본뜬 상형글자이며, 目(목)은 사람의 한 쪽 눈을 본뜬 것으로 쓰기에 편리하도록 세로로 세운 모양입니다. 相(상)의 본뜻은 어린 묘목(木)의 성장을 눈(目)으로 살펴보는 데서 ‘보다’ ‘살피다’ ‘돕다’인데, 오늘날 주로 쓰이는 ‘서로’ 란 뜻은 살피고 보살핀 데서 파생된 겁이다. 한편 나무(木)의 싹이 움트는 모습을 살펴보면 항상 대칭적으로 싹눈(目)이 형성됨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서로’라는 의미의 파생과정을 엿볼 수 있습니다.
좇을 從(종)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辵)과 좇을 종(从)으로 짜여 있습니다. 辵(착)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辵은 갑자기 가거나 갑자기 멈춘다는 뜻이며 彳(척)과 지(止)로 구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 辵(착)은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從(종)에서 활용되었습니다. 대부분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입니다. 从(종)은 갑골문의 자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글자로 두 사람(人)을 나란히 그렸습니다. 즉 어떤 사람(人)이 앞서가는 다른 어떤 사람(人)을 따르고 있는 모양으로 추종자와 인도자, 혹은 뜻이 맞는 사람끼리 어울린 모양을 그려내고 있는데 從(종)의 원형글자입니다. 따라서 從(종)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람(人)이 앞서가는 사람(人)을 따라간다(辵)는 뜻을 담아냈습니다.
內聖外王(내성외왕)이란 내면적으로는 성인의 덕을 갖추고 외면적으로는 제왕으로서의 능력을 갖춘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33[천하편]의 “내적으로는 성인의 덕을 갖추고 외적으로는 제왕으로서의 능력을 갖추는 내성외왕內聖外王의 도는 암울하게 드러나지 못했고, 단단히 막혀 피어나지 못했으며, 온 세상 사람들은 각자 자기가 하고 싶은 것을 하면서 자신이 하는 것이 도술道術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아 슬픈 일입니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답니다.
안 內(내)의 구성은 들 입(入)과 먼데 경(冂)으로 이루어졌습니다. 入(입)에 대해 『說文』에서는 “入은 안으로 들어감을 말한다.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형 외곽의 멀 冂(경)은 들 坰(경)의 옛글자인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을 邑(고을 읍)이라 하고 읍 밖을 郊(성 밖 교)라 하며, 郊의 밖을 野(들 야)라 하고 野의 밖을 林(수풀 림)이라 하며 林의 밖을 冂(먼데 경)이라 합니다. 따라서 먼 곳(冂)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온다(入)는 데서 ‘안’ ‘들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성스러울 聖(성)의 구성은 사람의 귀 모양을 본뜬 귀 이(耳)와 입 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 그리고 오뚝할 정(壬)으로 짜여 있습니다. 현재 자형으로만 볼 때, 壬(임)과 壬(정)은 같지만 초기 갑골문에서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壬(임)의 갑골문자형은 ‘工’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두 개의 도끼’ ‘베틀’ 혹은 ‘사람이 임신한 모양’ 또는 그 모습이 마치 짐을 진 것 같다하여 ‘짊어지다’의 뜻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壬(정)의 갑골문을 보면 우뚝한 땅(土)위에 서있는 사람(亻)을 그려내고 있는데, 그 흔적이 ‘드릴 呈(정)에 남아 있습니다. 이에 따라 聖(성)자에는 상대방의 말을 잘 들어주고(耳)서 좋은 말씀(口)으로 잘 다독이는 데 뛰어난(壬) 사람이라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즉 사람들의 마음을 잘 헤아려(耳) 가르침(口)을 펼치는 데 뛰어난 사람(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밖 外(외)의 구성은 저녁 석(夕)과 점 복(卜)으로 짜여 있습니다. 夕(석)은 해가 서산으로 지고 반달이 동쪽 산허리에 걸친 모양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갑골문에는 반달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月(월)이나 夕(석)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답니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月(월)은 달 자체를, 夕(석)은 밤을 뜻하다, 밤을 뜻하는 夜(야)의 등장으로 夕(석)은 또다시 해질녘으로 세분화 되었습니다. 卜(복)은 거북이를 불에 굽기 위해 올가미를 씌워 옆에서 본 것을 상형화한 글자로 특히 복갑(腹甲)의 갈라진 금을 보고서 점을 쳤답니다. 그 갈라진 금(卜)을 보고서 말(口)해 주는 게 바로 점(占)이죠. 이러한 행위는 해 뜰 무렵인 이른 아침(早)에 점(卜)을 보아야야만 신의 계시를 탁월(卓)하게 알아낼 수 있는 것이지, 신성한 기운이 사라진 밤(夕)에 보는 점(卜)은 계시에서 벗어난다(外)고 여겼습니다.
임금 王(왕)은 일반 무사들이 가지고 있는 도끼보다도 더 크고 머리부위에 장식이 달린 ‘큰 도끼’를 본뜬 모양입니다. 이러한 큰 도끼는 부족의 우두머리나 한 나라의 왕만이 가질 수 있다는 데서 ‘임금’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후대로 오면서 철학적인 의미도 부여했는데, 『說文』에서 “王은 천하가 돌아가는 곳”이라며, 가로의 삼 획이 의미하는 하늘 땅 사람을 관통하는 것이 왕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즉 제일 상부의 一은 하늘(天), 가운데 一은 땅(地), 제일 아래 一은 사람(人)을 의미하는데, 이 셋을 아울러 관통(丨)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왕(王)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천지인을 관통한 왕은 하늘의 천신(天神)을 향해서는 천제(天祭)를, 곡식을 관장하는 지신(地神)을 위해서는 지제(地祭)를, 왕실을 있게 한 인신(人神)에 해당하는 조상신을 위해서는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주관하게 된답니다.
厚貌深情(후모심정)이란 외모를 두텁고 부드럽게 잘 꾸미고 있지만 자신의 속마음은 깊숙이 감추고 있다는 뜻으로, 『장자·외편』제32편 [열어구]의 “사람의 마음은 산이나 강보다 위험하고, 자연을 아는 것보다도 더 어려운 겁니다. 자연에는 봄, 여름, 가을, 겨울과 아침저녁이라는 규칙적인 변화가 있지만, 사람은 두꺼운 얼굴 속에 자신의 감정을 깊이 감추고 있습니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두터울 厚(후)의 구성은 기슭 엄(厂)과 두터울 후(㫗)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글자의 원형이라 할 수 있는 갑골문을 보면 산기슭(厂) 비탈면에 쇠를 얻기 위해 설치한 광석을 녹이기 위한 도가니(㫗)를 연상케 합니다. 철광석을 녹이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용기와는 달리 두텁게 해야 한다는 데서 ‘두텁다’ ‘두터이 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도가니모양이 현재자형인 㫗(후)모양으로 변형되었는데, 자형상부의 日(일)은 쓰개 모(冃)의 변형이라 할 수 있습니다. 冃(모)는 겨울철 찬바람을 막기 위해 얼굴 전체를 가리고(冂) 두 눈(二)만 내놓은 모습을 그리고 있는, 즉 아이(子)가 춥지 않도록 두텁게 머리를 감싼다(冃)는 데서 ‘두텁다’는 뜻을 유추할 수 있습니다.
얼굴 貌(모)의 구성은 해태 태(豸: 벌레 치)와 얼굴 모(皃)로 짜여 있습니다. 豸(태)에 대해 『說文』에서는 “豸는 긴 등뼈를 지닌 짐승이 살금살금 가면서 엿보아 죽이려고 하는 모양이다.”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입을 크게 벌리고 있는 모양의 육식동물임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표범(豹표)이나 승냥이(豺시)처럼 먹잇감을 노릴 때 몸을 낮추는 모양을 그려냈다고 할 수 있죠. 皃에 대해 『說文』에서는 “皃는 드러난 모습을 뜻한다. 儿(인)으로 구성되었다. 자형상부의 白(백)은 얼굴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단옥재는 이에 대한 주석에서 ‘容(용)은 내면을 말한 것이고 皃(모)는 외면을 말한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따라서 貌(모)의 전체적인 의미는 몸 전체의 모습(豸) 뿐만 아니라 얼굴(皃)까지도 그려낸다는 데서 ‘모양’ ‘얼굴’이라는 뜻을 부여했답니다.
깊을 深(심)의 구성은 물줄기가 흩어지고 모이는 강을 상형한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깊을 삼(穼)으로 이루어졌습니다. 穼(삼)의 본래자형은 청동기 문화를 반영한 금문에 보이는데, 횃불(火)을 들고 깊은 갱도(穴)에 들어가 광물을 채굴하는 모양(㴱, ‘깊을 심’의 옛글자)이었으나 현재자형으로 간략화 되었습니다. 즉 어두운 동굴(穴)의 깊이를 가늠하기 위해 긴 나뭇가지(木)로 측정한다는 행위적 요소가 새롭게 가미되었죠. 따라서 深(심)의 전체적인 의미는 깊이를 알 수 없는 동굴(穴)과도 같은 물속(氵)을 긴 나뭇가지(木)를 넣어보아야 알 수 있다는 데서 ‘깊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뜻 情(정)의 구성은 마음 심(忄)과 푸를 靑(청)으로 짜여 있습니다. 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인 忄(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습니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작용과 관련이 깊습니다. 靑(청)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靑은 동쪽 방향을 나타내는 색이다. 木(목)은 火(화)를 낳는다(오행의 상생관계, 목생화木生火를 뜻함). 生(생)과 丹(단)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문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데, 자형(丹)이 형성된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아 구리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붉은 뜻을 갖은 丹(단)은 안료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따라서 구리(丹)가 산화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 착안하여 ‘푸를 靑’이라 하였죠. 따라서 情(정)의 전체적인 의미는 깊은 마음(忄)속에서 우러나는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靑) ‘사랑’이나 ‘정’을 말한답니다.
格物致知(격물치지)란 사물을 정확히 헤아려 자신의 지혜를 이룬다는 뜻으로, 대학大學』경經 제1장의 “옛날 천하에 명덕을 밝히려 했던 사람은 먼저 자신의 나라를 잘 다스렸고, 그 나라를 다스리려 했던 사람은 먼저 자신의 가정을 반듯하게 했으며, 그 가정을 반듯하게 하려했던 사람은 먼저 자신의 몸을 닦았고, 그 몸을 닦으려 했던 사람은 먼저 자신의 마음을 바르게 하였으며, 그 마음을 바르게 하려 했던 사람은 먼저 자신의 의지를 진실하게 하였고, 그 의지를 진실되게 하려 했던 사람은 먼저 자신의 지혜를 이루었으며, 지혜를 이루는 것은 사물을 정확히 헤아리는데 있습니다.”라는 구절에서 유래했습니다.
격식 格(격)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각각 각(各)으로 짜여 있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各(각)은 뒤처져 올 치(夂)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뒤처져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口(구)는 움푹하게 파인 고대인들의 거주지인 움집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저마다 자기의 움집(口)으로 돌아간다(夂)는 데서 ‘각각’ ‘각기’라는 뜻이 생겨났다. 따라서 格(격)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의 가지가 제각각(各) 뻗어 자라는 것 같아도 일정한 형식에 따라 자란다는 데서 ‘격식’이라는 뜻을 부여 하였다.
물건 物(물)은 소 우(牛)와 말 물(勿)로 구성되었다. 牛(우)는 소의 뿔과 몸통을 강조한 상형글자이다. 소(牛)는 한 가정의 재산목록 중 상위를 차지할 만큼 큰 물건(物件)이다. 勿(물)에 대해 『說文』에서는 “勿은 큰 고을이나 작은 마을에 세운 깃발을 말한다. 깃대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세 개의 깃발이 있는데, 여러 색의 천을 사용하며 깃 폭의 상하를 다르게 한다.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때문에 다급히 모이는 것을 ‘勿勿’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지만 학자들의 해석이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현재 주로 ‘부정’과 ‘금지’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성한 장소의 출입을 금하는 깃발로 생각된다. 장대 끝에 세 가지 색깔의 깃발을 매단 모양의 상형글자로 신성한 의미를 담아 특정 지역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禁止)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얼룩무늬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物(물)에는 소(牛) 중에서도 얼룩무늬(勿)가 들어간 칡소를 최고의 ‘물건’으로 여긴다는 뜻이 담겨있으며, 모든 존재를 뜻하는 ‘만물’ ‘사물’ 등은 확장된 뜻이다.
이를 致(치)의 구성은 이를 지(至)와 칠 복(攵)으로 짜여 있다. 至(지)에 대해 허신 『說文』에서 “至는 새가 높은 곳으로부터 날아와 땅으로 내려온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땅을 뜻하고 상형글자다.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온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혹자는 화살이 멀리에서 날아와 땅에 꽂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로 날아갔던 새가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담은 상형글자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새가 하늘로 날아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不(불)이라 하여 ‘--이 아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했고, 그 날아갔던 새가 다시 땅에 이르는 것을 至(지)라 하였다. 攵(복)은 攴(복)의 간략형으로 손(又)에 회초리나 몽둥이(卜)를 들고서 친다는 뜻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글월 문(文)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등(等) 글월 攵(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인다. 따라서 致(치)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곳에 이를(至) 수 있도록 회초리를 들고서 친다(攵)는 데서 ‘이르다’는 뜻을 부여하였다.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視而弗見이란 (마음이 몸에 깨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몸의 주인인 마음이 다른데 가 있으면 눈이 대상물을 향해 있어도 알아차릴 수 없음을 말한 겁니다. 『중용中庸』제16장의 “보려고 해도 보이지 않으며, 들으려 해도 들리지 않지만, 만물의 본체이니 빠뜨려질 수 없습니다.”라는 대목에서 유래했습니다.
볼 視(시)의 구성은 보일 시(示)와 볼 견(見)으로 이루어졌습니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봅니다. 따라서 이 示(시)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제사나 귀신 혹은 신령한 의미를 담게 됩니다. 따라서 視(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신에게 바친 제단(示) 위의 제물에 이물질이 끼거나 이상이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본다(見)는 데서 ‘보다’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말 이을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렛나루를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죠.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되었습니다.
아니 弗(불)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굽은 나무(세로의 두 획)를 한 가닥의 끈(弓)을 이용하여 ‘바르게 편다’는 데서 ‘바로잡다’가 본뜻이라고 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활 弓(궁)의 자형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활대(弓)를 만들기 위해 두 줄로 묶어둔(丿+丨, 세로의 두 획) 나무는 아직은 활로 쓸 수 없다는 데서 ‘아니다’는 뜻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습니다.
볼 見(견)의 구성은 눈 목(目)과 사람의 발모양을 본뜬 사람 인(儿)으로 이루어졌습니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罒)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죠. 인체 중에서도 유독 눈을 강조한 회의글자입니다. 여타 다른 동물의 시각이 아니라 오직 사람(儿)의 입장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본다(目)는 데서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道不遠人(도불원인)이란 도란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으로, 『中庸중용』제13장에서 유래하였습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란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사람이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사람을 멀리하면 그것은 진정 도를 닦는다고 여길 수 없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주자는 이에 대한 주석에서 “道는 본성을 따를 뿐이니, 진실로 여러 사람이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만약 도道를 행하는 자가 비천하고 알기 쉬운 것을 싫어하여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도리어 고차원적이고 심원하여 행하기도 어려운 일에만 힘쓴다면 이는 도道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삶의 지침이 되고 있는 수도란 외딴 산골과 같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속에서 닦아야 함을 말한 겁니다.
길 道(도)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쉬엄쉬엄 갈 착(辶)과 머리카락과 이마 그리고 코(自)를 그려낸 머리 수(首)로 짜였습니다. 머리(首)를 앞세우고 재촉하지도 않고 천천히 발걸음(辶)을 앞으로 내 딛는 게 바로 道(도)의 의미이죠. 일반적으로 말하는 통행하는 길이라는 의미보다는 모든 개체가 본능적으로 가야할 운명적인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가야할 운명적인 길을 말할 때는 道(도)라고 합니다. 따라서 ‘道(도)를 닦는다’ 할 때는 자신의 영성(靈性)을 맑고 밝게 하여 보다 나은 마음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며, 그 길은 오가는 게 아니라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입니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습니다.
멀 遠(원)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옷 길 원(袁)으로 구성되었습니다. 辶(착)은 또 다른 자형인 辵(착)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다닐 행(行)의 생략형인 彳(척)과 발의 상형인 止(지)로 짜여 길거리(行)를 걸어간다(止)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袁(원)은 윗옷을 뜻하는 衣(의)와 둥근(ㅇ→口)목걸이를 의미하는 변형된 口로 짜여 있습니다. 외투와 같이 긴 옷을 뜻하죠.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평상복이 아닌 외투와 같은 정장(袁) 차림을 하고서 길을 나설(辶) 때는 가까운 곳이 아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간다는 데서 ‘멀다’ ‘아득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습니다.
사람 人(인)은 서서 손을 내민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다른 자형에 더해지며 좌변에 놓일 때는 亻(인)모양으로, 그리고 하변에 놓일 때는 儿(인)으로 변형됩니다. 『說文』에서는 “人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이 글자는 주문(籒文)으로 팔과 다리의 모양을 본뜬 겁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주문(籒文)이라 함은 열 가지의 서체의 하나로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라는 사람이 창작한 한자의 글씨체(字體)로,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답니다.
事有終始(사유종시)란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다는 뜻으로 『대학大學』경經 제1장의 “사물에는 근본과 말후가 있으며,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는데, 그것의 선후를 알면 도에 가깝습니다.”에서 유래하였습니다.
일 事(사)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처음에는 기록을 주로 하는 사관(史官)을 뜻하였습니다. 이는 자형의 유래가 같은 ‘역사 史(사)’와 ‘벼슬아치 吏(리)’ 역시 갑골문에는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죠.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정의한 것처럼 史(사)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리)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사)는 ‘직책’으로 분화되었습니다.
있을 有(유)의 구성은 손(手)의 모양을 뜻하는 자형상부의 屮(좌)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달월(月)로 이루어졌습니다. 이에 따라 有(유)는 손(屮)에 고기 덩이(肉=月)를 쥐고 있다는 데서 ‘가지고 있다’ ‘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죠.
끝날 終(종)의 구성은 가는 실 사(糸, 멱)와 겨울 동(冬)으로 짜여 있습니다. 糸(사)는 누에고치에서 막 뽑아 잣아 놓은 실타래를 본뜬 상형글자죠. 冬(동)은 뒤져서 올 치(夂)와 얼음 빙(冫)으로 구성되었습니다. 고문의 상형글자에는 두 개의 언 나뭇잎이 매달린 모양이나 겨울이라는 의미전달이 명확치 않습니다. 그래서 후대에 얼음을 뜻하는 빙(冫)자 위에 뒤져서 올 치(夂)를 얹어 ‘겨울’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답니다. 즉 얼음(冫)이 언 빙판길에서는 어기적거리며 천천히 뒤져 걸을(夂) 수밖에 없음을 나타냈죠. 따라서 終(종)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계절의 마지막인 겨울(冬)을 의미요소로 삼아 실(糸)의 ‘끝’을 뜻해 ‘마치다’ ‘마지막’ ‘죽다’ 등으로 확장되었답니다.
처음 始(시)의 구성은 여자 녀(女)와 나 이(台: 별 태, 대 대)로 짜여 있습니다. 女(녀)는 모계사회 때 형성된 상형글자로 여자가 무릎을 꿇고 손을 합장하고서 신에게 기도하는 모습이었으나 후에 부계사회로 전환되면서 여자의 총칭으로 쓰였습니다. 台(이)는 사사로울 사(厶)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를 입가(口)에 주름(厶)지으며 빙긋이 웃는다하여 ‘기뻐하다’ 혹은 웃는 주체인 ‘나’자신을 뜻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의미를 더해서 보자면, 台(이)는 ‘목숨’을 뜻한다고 보아야 해석이 용이할 것 같습니다. 즉 목구멍을 뜻하는 ‘목’은 입(口)이요, 숨구멍을 뜻하는 ‘숨’은 코(厶)를 말한 겁니다. 스스로 자(自)가 본디 코를 의미하였듯 厶(사) 역시 코를 뜻하면서 입을 상형한 口(구)와 더불어 우리 생명을 유지하는 목숨(목:口, 숨:厶)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즉 우리가 살아가는 데 가장 중요한 호흡작용과 섭생을 의미하면서 복지(福祉)를 나타낸 거죠. 달리 말해 생명력을 유지하는 코(厶)와 입(口)이 윤택(氵)하기만 하면 잘 다스려진다는 의미가 ‘다스릴 治(치)’에 함축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여자(女)가 새로운 목숨(台)을 잉태한 순간 그 아이의 생명력이 시작된다는 데서 ‘처음’이라는 뜻을 부여했습니다.
道法自然(도법자연)이란 “도는 ‘스스로 그러한’ 자연을 본받는다”는 뜻으로, 도덕경 제25장의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으며,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습니다(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라는 대목에서 유래했습니다. 이에 대해 하상공은 주석에서 “사람은 편안하고 고요하며 조화롭고 부드러운 땅에 씨앗을 뿌려 오곡을 수확하고, 땅을 파서 달콤한 샘물을 얻으며, 수고로움을 끼쳐도 원망하지 않고 공로가 있어도 내세우지 않는 땅을 마땅히 본받아야 합니다. 하늘은 담담하고 고요히 요동치지 않으면서 베풀어도 그 보답을 바라지 않으며, 만물을 낳고 길러도 거두어들이는 것이 없습니다. 도는 맑고 고요하여 말도 없이 은밀하게 정과 기를 운행하여 만물이 저절로 이루어지게 합니다. 도의 본성은 스스로 그러해서 따로 본받을 것이 없습니다”고 했습니다.
길 道(도)는 쉬엄쉬엄 갈 착(辶)과 머리카락과 이마 그리고 코(自)를 그려낸 머리 수(首)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머리(首)를 앞세우고 재촉하지도 않고 천천히 발걸음(辶)을 앞으로 내딛는 게 바로 道(도)의 의미이죠. 일반적으로 말하는 통행하는 길이라는 의미보다는 모든 개체가 본능적으로 가야 할 운명적인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그래서 각자가 가야 할 운명적인 길을 말할 때는 道(도)라고 합니다. 따라서 ‘道(도)를 닦는다’고 할 때는 자신의 영성(靈性)을 맑고 밝게 하여 보다 나은 마음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죠. 그 길은 오가는 게 아니라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야 합니다.
법 法(법)은 물 수(氵)와 갈 거(去)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去(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去는 사람이 서로 어긋난다는 뜻이다. 大(대)로 구성되었고 자형 하부의 凵(거) 모양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습니다. 갑골문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와 고대인들의 주거지인 동굴을 의미하는 口(구) 모양으로 그려져 있습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사람(大)이 주거지인 동굴(口)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물을 버리는 구덩이 위에서 대변을 본 사람의 상형이라는 설로 ‘버리다’가 본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法(법)의 의미는 물(水)은 높은 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게 순리라는 것으로 자연적인 ‘규칙’을 의미한 동시에 ‘본받다’라는 뜻으로도 확장되었습니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입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씁니다.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죠.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짜여 있는데, 코(自) 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 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따라서 ‘自’의 현재 의미는 ‘--로부터’와 ‘자기 자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습니다.
그러할 然(연)은 고기 덩이를 뜻하는 육달월(月=肉)과 개 견(犬)으로 이루어진 개고기 연(肰) 그리고 불 화(灬)로 구성되었습니다. 이 글자에는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동이족만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죠. 지금은 유교 및 불교적 사상이 유입되어 개고기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습니다. 즉 개(犬)를 통째로 불(灬)에 그슬려 그 고기 덩이(月=肉)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러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鶴長鳧短(학장부단)이란 학의 다리는 길고 오리 다리는 짧다는 뜻으로, [장자莊子ㆍ외편外篇]-제8편 변무駢拇장의 “물오리의 다리가 짧다고 길게 이어주면 고통스러워하고, 학의 다리가 길다고 짧게 잘라버리면 서글퍼 합니다. 그러므로 본래부터 긴 것을 짧게 잘라서는 안 되고, 본래부터 짧은 것을 길게 이어주어서도 아니 됩니다. 태어난 그대로 두면 어떠한 걱정꺼리도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인의란 사람의 참된 모습은 아닙니다. 그러니 저 인의를 갖춘 사람들은 얼마나 걱정꺼리가 많겠습니까!”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학 鶴(학)의 구성은 새 높이 날 확(隺, 뜻 고상할 각)과 새 조(鳥)로 짜여 있다. 隺(확)은 하늘을 상징하는 덮을 멱(冖)과 새 추(隹)로 구성되었는데,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그래서 隺(확)의 의미는 새(隹)가 하늘(冖)을 뚫듯이 ‘높이 낢’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늘을 뚫을 만큼 높이 나니 ‘고상하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또한 허신은 鳥(조)에 대해서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현재의 자형 중간부위를 말하며 하부의 네 개의 점은 꼬리를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鶴(학)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늘 높이 나는(隺) 새(鳥)를 나타내 ‘학’이나 ‘두루미’를 뜻하게 되었다.
길 長(장)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노인을 본뜬 상형글자다. 長(장)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長은 오래되고 멀다는 뜻이다. 兀(올)과 匕(화)로 구성되었다. 亾(망)은 소리요소이다. 兀(올)은 높고 멀다는 뜻이다. 오래되면 변화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사람의 긴 머리와 발을 그린 것으로, 특히 사람의 신체 중 가장 긴 것이 머리카락이므로 ‘길다’는 뜻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보다는 노인의 머리카락이 보다 길므로 ‘어른’을 뜻하기도 하였다. 즉 자형의 상부는 풀어헤친 머리칼을 본뜬 모양이며 하부는 발의 모양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보통 남자들은 정수리나 머리 뒷부분에 상투를 틀어 올렸는데, 머리숱이 드문 노인들은 그냥 산발한 채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長(장)의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노인을 상형한 것으로 본뜻은 ‘산발한 노인’이었다가 ‘어른’ ‘우두머리’ ‘길다’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늘이다’는 뜻은 확장된 것이다.
오리 鳧(부)는 앞서 살핀 새 조(鳥)와 안석 궤(几)로 이루어졌는데, 여기서 几(궤)는 비교적 짧은 날개를 지닌 새가 폴짝 날아오르는 모양을 그려낸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에 따라 鳧(부)는 비교적 짧은 날개깃으로 뛰어오르듯(几) 날아가는 새(鳥)라는 데서 ‘오리’를 뜻하게 되었다.
짧을 短(단)의 구성은 화살 시(矢)와 제기그릇 두(豆)로 짜여 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이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豆(두)는 뚜껑(-)을 덮어 따뜻한 국물을 담을 수 있는 발(ㅛ)이 달린 비교적 작은 그릇(口)을 본뜬 것으로 일반적으로 제기(祭器)를 의미한다. ‘콩’이란 의미는 콩이나 팥을 뜻하는 ‘좀콩 荅(답)’과 발음이 비슷한 데서 가차하여 쓴 것이며, 보다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식물을 뜻하는 풀 초(艹)를 더해 ‘콩 荳(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따라서 短(단)의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보기로 한다. 옛날에는 길이를 재는 수단으로 가장 보편적으로 쉽게 볼 수 있는 화살(矢)과 누구 집에나 소장하고 있는 제기그릇(豆)을 기준으로 삼아 이들보다 짧은 것을 ‘짧다’고 한 데서 그 의미를 뜻하게 되었다.
一葉知秋(일엽지추)란 나무에 매달렸던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서 가을이 다가옴을 안다는 뜻으로, 한 가지 일을 보고서도 장차 오게 될 일을 미리 짐작할 수 있다는 의미로도 쓰인다. 『회남자淮南子』에서 그 유래를 찾을 수 있는데, “작은 것으로써 큰 것을 밝히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짐을 보고서 한 해가 저물어 감을 안다. 항아리 속의 얼음을 보고서 세상이 추워졌음을 알 수 있다. (以小明大 見一葉落 而知歲之將暮, 覩甁中之氷, 而天下之寒)”는 것. 만산홍엽으로 물들 가을이 다가 오고 있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잎 葉(엽)은 풀 초(艹)와 나뭇잎 엽(枼)으로 구성되었다. 枼은 대 세(世)와 나무 목(木)으로 짜여 있다. 여기서 30이라는 수를 의미하는 世는 셀 수없이 많은 수, 즉 나무(木) 가지에 수없이 붙어 있는 이파리를 뜻한다. 따라서 葉은 나무(木)에 셀 수없이(世) 매달린 나뭇잎(艹)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가을 秋(추)의 구성은 벼 화(禾)와 불 화(火)로 이루어졌지만, 초기글자인 갑골문을 살펴보면 메뚜기를 그려 넣고 그 아래 불꽃을 상형한 불 화(火)로써 가을이란 뜻을 나타냈다. 가을 추수기를 전후해 메뚜기 떼가 출몰하는 중원지방의 특성일 뿐만 아니라 퇴치법이 암시된 것이다. 즉 밤에 불을 피워 올리기에 앞서 모닥불 주변에 구덩이를 파놓고 모여드는 메뚜기 떼를 태워죽이거나 묻어 죽였던 풍속이 반영된 것이다. 그러다 소전으로 오면서 메뚜기 대신 가을을 의미하는 ‘고개 숙인 벼이삭’의 상형인 벼 화(禾)가 새로운 자형으로 나타나게 되면서 ‘가을’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從吾所好란 내가 좋아하는 것을 좇겠다는 뜻으로, 『論語논어』「述而篇술이편」에서 유래했다. 즉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경제적인 부를 추구할 수만 있다면 설령 채찍을 잡고 말을 모는 하찮은 직업일지라도 나는 할 것이다. 그러나 만약 그것을 추구할 수 없다면, 내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좇을 것이다(子曰: "富而可求也, 雖執鞭之士, 吾亦爲之; 如不可求, 從吾所好.")”라는 대목에서다. 예나 지금이나 자신이 좋아서 하는 일은 싫증은커녕 그 분야의 전문가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높다.
좇을 從(종)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辵)과 좇을 종(从)으로 짜여 있다. 辵(착)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辵은 갑자기 가거나 갑자기 멈춘다는 뜻이며 彳(척)과 지(止)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辵(착)은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從(종)에서 활용되었다. 대부분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따라서 辶(착)과 더해 만든 글자 중에는 빠를 迅(신)처럼 발걸음을 재촉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더딜 遲(지)와 같이 멈추어 선 듯 한 의미로도 활용되고 있다. 从(종)은 갑골문의 자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글자로 두 사람(人)을 나란히 그렸다. 즉 어떤 사람(人)이 앞서가는 다른 어떤 사람(人)을 따르고 있는 모양으로 추종자와 인도자, 혹은 뜻이 맞는 사람끼리 어울린 모양을 그려내고 있는데 從(종)의 원형글자이다. 따라서 從(종)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람(人)이 앞서가는 사람(人)을 따라간다(辵)는 데서 ‘좇다’ ‘따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나 吾(오)는 손가락을 활용하여 숫자 5를 뜻하는 다섯 오(五)와 사람의 입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로 구성되었는데, 그 뜻은 손(五)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口)한다는 데서 ‘나’를 의미하게 되었다.
바 所(소)의 구성은 지게 호(戶)와 도끼 근(斤)으로 짜여 있다. 戶(호)는 사람이 거주하는 방으로 통하는 외짝 문을 말하며, 보다 큰 문은 두 짝으로 만들어진 門(문)으로 집 초입의 대문 등을 말한다. 斤(근)은 도끼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따라서 所(소)의 전체적인 의미는 땔나무를 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던 도끼(斤)는 눈에 잘 띄는 방문(戶)곁 시렁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놓아 둔데서 ‘곳’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좋을 好(호)의 구성은 여자 여(女)와 아들 자(子)로 이루어졌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好(호)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머니(女)가 순진무구한 아이(子)를 따스한 품에 안고 있는 정겨운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좋고 아름답기 때문에 ‘좋다’ ‘아름답다’ 등의 뜻을 부여하였다.
大化有四란 사람이 한평생 살다보면 네 번의 큰 변화를 겪게 되는데, 유아기와 청년기, 노년기와 사망기로 나눌 수 있다. 『列子열자ㆍ天瑞篇천서편』에서 유래한 것으로 그 내용을 살펴보면 “사람이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큰 변화가 네 번 있게 된다. 유아기와 청년기 노년기 그리고 죽음이라는 단계다. 사람이 유아기일 때는 기운과 의지가 오롯하고 한결같아 그 조화로움이 지극하였다. 그러니 어떤 사물도 해치지 않았고 덕성도 잘 갖추어져 더 이상 더할 필요가 없었다.(人自生至終,大化有四:嬰孩也,少壯也,老耄也,死亡也. 其在嬰孩,氣專志一,和之至也;物不傷焉,德莫加焉.)”는 대목에서다. 이어지는 글에서는 청년기엔 혈기가 왕성하고 욕망에 사로잡히니 덕성이 쇠약해지기 시작하고, 노년기에는 기력이 쇠약해지니 대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그 몸을 쉬고 싶어 하고, 죽음에 이르러서는 왔던 곳으로 되돌아가 안식하고자 한다는 것. 그 누구도 생로병사를 벗어날 순 없다는 것이 자연의 법칙이다. 중요한 건 그 변화를 받아들이고 인정하는 것이다.
큰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될 化(화)는 서 있는 사람을 측면에서 본 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비수 비(匕)로 짜여 있다. 匕(비)에 대해 『說文』에서는 “匕는 서로 더불어 나란히 늘어서다는 뜻이다. 人(인)이 반대로 된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匕(비)는 또한 밥을 먹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쓰이기에 숟가락(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匕(비)가 다른 자형에 더해져 숟가락(匙)이란 뜻도 있지만, 化(화)에서처럼 정상적인 사람(亻)이 늙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匕)을 뜻하기도 한다. 즉 정상적인 사람(亻)이 늙거나 병들어 웅크리고 있는 모양(匕)은 곧 바뀌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바뀌다’는 뜻을 갖은 變(변) 자에 비해 짧은 시간에 바뀐다는 의미가 化(화) 자에 담겨 있다. 이러한 내용은 꽃 화(花)자를 보면 분명해진다. 즉 나뭇가지나 풀대(艹)에 꽃망울이 맺힌 가 싶더니 며칠도 지나지 않아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며 그 모습을 완전히 바꿔버리기(化) 때문이다.
있을 有(유)의 구성은 손(手)의 모양을 뜻하는 자형상부의 屮(좌)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달월(月)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有(유)는 손(屮)에 고기 덩이(肉=月)를 쥐고 있다는 데서 ‘가지고 있다’ ‘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넉 四(사)는 초기글자인 갑골문에서는 옆으로 네 개의 선을 그은 ‘亖’모양이었는데, 후대로 오면서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의 입과 코 모양을 본뜬 ‘四’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 가차한 것이다. 四(사)에 대해 『說文』에서는 “四는 음(陰)의 숫자이다. 넷으로 나뉜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亖’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正本淸源이란 근본을 바르게 하고 근원을 맑게 한다는 뜻으로, 요즘 거의 모든 언론에서 2015년 교수들이 선정한 올 해의 사자성어로 지목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같이 그 출전을 『漢書한서·刑法志형법지』라고 하는데 실상은 그렇지가 않다는 것이다. 내용이야 크게 문제될 것은 없지만 글자와 배열도 다르다. “어찌하여 의당 근원을 맑게 하고 근본을 바르게 해야 하는 이유와 생각을 말한다면 율령을 잘 정리하기 위해서다.(豈宜惟思所以淸原正本之論,删定律令)”라는 대목이다. 오히려 『晉書진서·武帝紀무제기』의 “思與天下式明王度,正本清源”라는 대목이 더 명확하다.
바를 正(정)은 한 일(一)과 발 지(止)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正(정)자는 흙이나 나무로 만든 목책을 둘러친 성(城)을 뜻하는 ‘囗’모양과 止(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소전에 이르러서 단순하게 ‘一’모양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애초에 正(정)의 의미는 공격목표인 성곽(囗)을 향해 가다(止), 즉 ‘정벌하다’가 본뜻이었으나 후에 파생된 ‘바로잡다’ ‘바르다’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칠 정(征)’자를 별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지식을 더해 한자를 해석한 한나라의 허신은 正(정)에 대해 『說文』에서 “正은 옳다는 뜻이며 一(일)로 구성되었는데, 한 곳에 멈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한 곳(一)에 멈추어 서서(止) 살피는 게 ‘바른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오히려 한 길(一)을 따라 가도록 하는 것(止)이 ‘바른 일’이라는 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나을 것 같다. 止(지)는 ‘멈춘다’는 뜻도 있지만 많은 자형에서 ‘가다’는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즉 정사 政(정)에서처럼 한 나라의 올바른 정치이념에 따라 일관(一)되게 국민이 따라가도록(止) 독려(攵)하는 것이 위정자가 의도한 ‘바른 일’이기 때문이다.
근본 本(본)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한 일(一)로 짜여 있는 지사글자다. 나무(木)의 밑 부분, 즉 뿌리를 나타내기 위한 표식(一 )이었으나, 나중에는 나무에 국한하지 않고 사물의 본질이나 근본을 말하는 뜻으로 발전하였다.
맑을 淸(청)의 구성은 물 수(氵)와 푸를 청(靑)으로 짜여 있다. 氵(수)는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강을 본뜬 水(수)를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한 것으로 자형의 좌변에 놓여 강이나 물의 뜻으로 쓰인다. 靑(청)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靑은 동쪽 방향을 나타내는 색이다. 木(목)은 火(화)를 낳는다(오행의 상생관계, 목생화木生火를 뜻함). 生(생)과 丹(단)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문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데, 자형(丹)이 형성된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아 구리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붉은 뜻을 갖는 丹(단)은 안료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구리(丹)가 산화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서 착안하여 ‘푸를 靑’이라 하였다. 따라서 淸(청)의 전체적인 의미는 푸른 빛(靑)을 띤 물(氵)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근원 源(원)은 물 수(氵)와 근원 원(原)으로 구성되었다. 氵(수)는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강을 본뜬 水(수)를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한 것으로 자형의 좌변에 놓여 강이나 물의 뜻으로 쓰인다. 原(원)은 산기슭이나 낭떠러지를 상형한 기슭 엄(厂)과 샘 천(泉)으로 짜였다. 泉(천)은 옹달샘(白)에서 솟아오른 물(水)이 흘러내리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따라서 原(원)의 의미는 산기슭(厂) 옹달샘에서 흘러내리는 물줄기(泉), 즉 강물을 이루는 ‘근원’이라는 뜻이었지만 ‘언덕’이나 ‘들판’이라는 뜻으로도 쓰이자, 그 의미를 보다 확실히 하기위해 강을 뜻하는 ‘氵’를 더해 源(원)자를 제작하였다.
削足適履란 발을 깎아 신에다 맞춘다는 뜻으로, 실제 상황은 고려치 않고 얼토당토 않는 방법을 억지로 끼워 맞추려는 의도를 말한다. 『淮南子회남자』「說林訓설림훈」의 “물과 불은 서로 싫어하나 그들 사이에 솥이 있으면 오미를 조화롭게 하며, 뼈와 살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도적이 이들을 이간질하면 부자간에도 서로 위험에 처하게 된다. 길러야 한다는 이유 때문에 길러야 할 것을 해치는 것은 비유컨대 발을 깎아 신에다 맞추고, 머릿살을 깎아 갓에다 맞추는 것과 같다.(水火相憎 鏏在其間 五味以和 骨肉相愛 讒賊間之 而父子相危 夫所以養而害所養 譬猶削足而適履 殺頭而便冠.)”고 한 대목에서 유래 했다.
깎을 削(삭)의 구성은 닮을 초(肖)와 칼날과 칼등의 모양을 상형한 칼 도(刂=刀)로 이루어졌다. 肖(소, 초)는 작을 소(小)와 고기 육(肉)의 또 다른 표현인 月(월)로 짜여 있다. 그 뜻은 고깃덩어리로 이루어진 몸뚱어리(肉)가 나이가 들어갈수록 점점 작아져(小) 결국에는 사라진다는 뜻이 담겨 있다. 옛사람들은 부모에 대한 효도가 극진했다. 부모님 역시 세상의 이치에 따라 해를 거듭할수록 그 몸집이 점점 작아져 노쇠해져 가는데, 자식 된 도리(道理)를 다해도 그 모습마저 닮아갈 수 없음을 안타까워했다. 不肖(불초)란 노쇠해가는 부모님을 닮지 못한 자식의 안타까움을 담은 용어다. 따라서 削(삭)의 전체적인 의미는 뼈에 붙은 살을 조금씩(肖) 칼(刂)로 베어낸다는 데서 ‘깎아내다’ ‘줄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발 足(족)은 사람의 다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 있다”라고 하였다.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 자형상부의 口(구)를 허벅지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說文』에서는 몸 전체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맞을 適(적)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밑동 적(啇)으로 이루어졌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啇(적)은 임금 제(帝)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는데, 帝(제)는 꽃봉오리를 연결해주는 꽃대를 상형한 것이었다. 그런데 帝(제)가 임금이란 뜻으로 쓰이자 본뜻을 보존하기 위하여 ‘꼭지 체(대艹 + 帝, 蔕와 뜻이 같음)’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여기서 帝(제)아래에 더해진 ‘口’모양은 열매를 뜻한다. 그래서 啇(적)의 의미는 꽃이 핀 후 맺힌 열매의 배꼽에 해당하는 ‘밑동’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適(적)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뭇가지의 꼭지에 매달린 열매(啇)가 알맞게 익어감(辶)을 그려내 ‘맞다’ ‘마땅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신 履(리)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다시 부(復, 되돌아올 복)로 이루어졌다. 尸(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尸는 늘어져 있다는 뜻이다. 엎드려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을 뜻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신발을 신으려는 사람을 나타낸다. 復(복, 다시 부 )의 구성은 조금 걸을 척(彳)과 돌아올 복(㚆=复)으로 짜여 있다. 彳(척)은 여기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네 거리’를 본뜬 行(행)의 생략형으로 보아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复(복)은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참조할 때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는 도구인 ‘풀무’와 발을 뜻하는 止(지)가 더해진 모양이었으나 현재자형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 여기서 말한 풀무는 발을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로 밟을 때마다 통 속의 칸막이가 왕복으로 오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따라서 復(복)의 전체적인 의미는 풀무(复)와 같이 오고가다(行)가 본뜻이었으나 ‘돌아오다’는 의미로 더 쓰였고, 또한 ‘회복하다’ ‘다시’라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따라서 履(이)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尸) 길을 오가기(復)위해 신발을 신는 모습을 그려내 ‘신’ ‘신다’ ‘밟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一心三觀이란 한 마음에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음을 세 가지 측면에서 관찰하는 방법을 말하는 것으로, 불교 천태종(天台宗)의 공관(空觀) 가관(假觀) 중관(中觀)이라는 세 가지 관법을 뜻한다. 즉 공관(空觀)은 삼라만상이 모두 공(空)하거나 무(無)하므로 한 물건도 실재하는 것이 없다고 관하는 법이다. 가관(假觀)은 삼라만상의 어느 한 물건도 실재하는 것은 아니지만 현상적으로는 분명하게 있는 것을 관하는 법이다. 또 중관(中觀)은 모든 법이 공(空)이나 무(無)도 아니며 유(有)도 아닌, 공이면서 유이며, 유이면서 공임을 관하는 중도적 입장의 관법을 말한다. 이 일심삼관의 사상은 회삼귀일(會三歸一)의 사상과 함께 진리를 깨닫는 수행법의 일종이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마음 心(심)은 사람의 심장을 본뜬 상형글자다. 고대 사람들은 ‘마음’ 혹은 몸을 운용하는 주체인 ‘영혼’이 심장에 머물고 있다고 보아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다.
석 三(삼)은 옆으로 세 개의 선을 그은 모양으로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이기도 하지만, ‘거듭’ ‘자주’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 三(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三은 하늘ㆍ땅ㆍ사람의 도(道)를 뜻하며, 자형에서 보듯 一과 二가 짝을 이루어 三이 되었으니 완전수인 성수(成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동양학에서는 천지인을 뜻하면서도 사물을 이루는 기본수로 인식, 천지인뿐만 아니라 삼태극(三太極)에서 보여주듯 삼원사상(三元思想)을 확립하게 되었다.
볼 觀(관)의 구성요소는 황새 관(雚)과 볼 견(見)으로 짜여있다. 雚의 자형은 머리모양(艹)과 두 눈(口口)을 강조하면서 새 추(隹)를 첨가하였는데, 황새의 특징 중에서도 특히 두 눈을 강조하였다. 이는 황새의 식생을 파악한 것으로 물 가운데 고요히 서서 먹잇감을 주도면밀하게 살피다가 순식간에 낚아채는 동적 면모가 담겨 있다. 見(견) 역시 눈을 강조한 것으로 사람의 발모양을 상형한 사람 인(儿)에 눈 목(目)을 더해 오감 중에서도 보는 것을 중시하고 있다. 따라서 觀(관) 자에는 황새(雚)가 먹잇감을 주도면밀하게 쏘아보거나 사람(儿)이 사물을 눈여겨 바라본다(目)는 의미, 즉 철저하게 ‘눈으로 자세히 본다’는 뜻이 담겨 있다.
豁然貫通이란 사물의 이치에 대해 막혀 있던 것이 꾸러미를 꿰듯 환하게 통하는 것을 이르는 말로, 환하게 통하여 도를 깨달음을 일컽는다. 주희가 정자의 뜻을 취하여 『大學대학』을 주석한 글에서 유래했는데, “이른바 지혜에 이르게 되는 것이 사물의 이치를 연구하는 데에 있다고 하는 것은, 자신의 지혜를 이루려고 한다면 사물을 대하여 그 이치를 궁구하는 데에 있음을 말한 것이다. 대개 사람의 마음은 신령하여 지혜가 있지 않을 수 없으며, 천하의 만물은 이치가 있지 아니한 것이 없는데, 다만 그 이치를 궁구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 지혜 가운데 미진한 부분이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대학에서 처음 가르칠 때에는 반드시 배우는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의 모든 사물을 대하여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이치에 근거하여 더욱 궁구함을 더해 그 궁극에 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다. 오랫동안 힘쓰고 나서 하루아침에 활연관통의 경지에 이르게 되면 모든 사물의 겉과 속, 정밀함과 조박함이 모두 드러나게 되며, 내 마음의 온전한 본체와 커다란 작용이 모두 밝혀지는 경지에 도달하게 되는 것이다. 이를 일러 ‘사물의 이치가 규명되었다’고 하며, 또한 이를 일러 ‘지혜에 이르렀다’고 하는 것이다.(所謂致知在格物者,言欲致吾之知,在即物而窮其理也。蓋人心之靈莫不有知,而天下之物莫不有理,惟於理有未窮,故其知有不盡也。是以大學始教,必使學者即凡天下之物,莫不因其已知之理而益窮之,以求至乎其極。至於用力之久,而一旦豁然貫通焉,則眾物之表裡精粗無不到,而吾心之全體大用無不明矣。此謂物格,此謂知之至也.)”라고 하였다.
뚫린 골 豁(활)은 해칠 해(害)와 골 곡(곡)으로 이루어졌다. 害(해)는 집안(宀)에 들어 앉아 어지럽게 난 풀(丯)처럼 남을 헐뜯는 말(口)을 하는 경우를 그려내는 회화적요소를 가미해 ‘해치다’는 뜻을 보다 구체화 시켰다고 볼 수 있다. 谷(곡)은 자연스레 흐르는 물길(八이 겹친 부분)사이로 솟아난 바위(口)를 상형한 글자로 강의 상류인 ‘계곡’ ‘골짜기’를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豁(활)의 전체적인 의미는 남을 헐뜯(害)을 때는 확 트인 계곡(谷)처럼 거침이 없다는 데서 ‘확 뚫린 골짜기’ ‘열리다’ ‘통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할 然(연)은 고기 덩이를 뜻하는 육달월(月=肉)과 개 견(犬)으로 이루어진 개고기 연(肰) 그리고 불 화(灬)로 구성되었다. 이 글자에는 개고기를 식용으로 하는 동이족만의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지금은 유교 및 불교적 사상이 유입되어 개고기를 제사상에 올리지 않지만 고대에는 그렇지 않았다. 즉 개(犬)를 통째로 불(灬)에 그슬려 그 고기 덩이(月=肉)를 제사상에 올리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기에 ‘그러해야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꿸 貫(관)은 어떠한 사물을 꿰뚫은 모양의 꿰뚫을 관(毌)과 조개 패(貝)로 구성되었다. 貝(패)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로 활용했는데, 여느 바다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개가 아니라 남중국해나 인도양 등지에서 나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아주 단단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貫(관)은 화폐로 쓰인 조개(貝)를 꿰뚫어(毌)서 휴대하기 편리하도록 꾸러미로 가지고 다녔다는데서 ‘꿰다’ ‘통과하다’는 뜻으로 쓰였으며, 이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도 가운데 구멍이 뚫린 ‘엽전’으로 발전하였다.
통할 通(통)은 사람이 쉬엄쉬엄 가는 모양을 담아 낸 갈 착(辶)과 길 용(甬)으로 구성되었다. 甬(용)은 자형상부를 이루는 뭔가를 매달거나 들 수 있는 손잡이 모양과 쓸 용(用)으로 이루어졌는데, 用(용)은 통나무 속을 파내거나 대나무와 같이 속이 빈 ‘나무통’ 혹은 잔가지를 엮어 만든 ‘울타리’를 본떴다고도 하며, 일각에서는 금문이나 소전의 자형을 보고 점사(卜)가 딱 들어맞으면(中) ‘사용한다’는 데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그런데 ‘나무통’의 용도로 보다는 그 뜻이 속이 빈 통나무와 같이 담으로 둘러진 ‘골목길’로 더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通(통)의 전체적인 의미는 골목길(甬)이 또 다른 길로 이어져 나아갈(辶) 수 있다는 데서 ‘통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視而不見이란 (마음이 몸에 깨어 있지 않으면) 보아도 보이지 않는다는 뜻으로, 몸의 주인인 마음이 다른데 가 있으면 눈이 대상물을 향해 있어도 알아차릴 수 없음을 말한 것이다. 『大學대학』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음이 몸에 있지 아니하면 보아도 보이지 않으며, 들어도 들리지 아니하고, 먹어도 그 맛을 알지 못한다. 이것이 바로 몸을 닦는 수련인데, 자신의 마음을 올바르게 깨어 있게 하는데 있다.(心不在焉, 視而不見, 聽而不聞, 食而不知其味. 此謂修身在正其心)”고 하였다. 그러니 자신의 넋이 나가서는 몸에서 일어나는 어떠한 감각도 올바르게 알아차릴 수 없다.
볼 視(시)의 구성은 보일 시(示)와 볼 견(見)으로 이루어졌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示(시)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제사나 귀신 혹은 신령한 의미를 담게 된다. 따라서 視(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신에게 바친 제단(示) 위의 제물에 이물질이 끼거나 이상이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본다(見)는 데서 ‘보다’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말 이을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렛나루를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볼 見(견)의 구성은 눈 목(目)과 사람의 발모양을 본뜬 사람 인(儿)으로 이루어졌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罒)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인체 중에서도 유독 눈을 강조한 회의글자이다. 여타 다른 동물의 시각이 아니라 오직 사람(儿)의 입장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본다(目)는 데서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一了百當이란 스스로 배워서 하나를 깨닫게 되면 백 가지 일을 미루어 알 수 있다는 뜻으로, 『傳習錄전습록』에서 유래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학문이란 다른 사람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새로운 앎도 중요하지만, 그것은 자기 스스로가 깨달아 감화되는 것만은 못하다. 스스로 배워야만 하나를 깨닫게 되어도 백 가지 일을 미루어 알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다른 사람을 바탕으로 한 감화가 아무리 많다 해도 스스로 체득할 수는 없다.(學問也要點化, 但不如自家解化者, 自一了百當; 不然, 亦點化許多不得)”고 하였다. 배움에 있어, 스스로 체득(體得)하지 않고서는 지식(知識)은 얻을 수 있을지언정 마음을 바탕으로 한 지혜(知慧)는 얻기가 쉽지 않다는 것.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마칠 了(료)는 산모의 뱃속에서 양손을 몸에 붙인 채 막 출산되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해산이 ‘끝났다’는 데서 ‘마치다’의 뜻이 발생했다. ‘깨닫다’는 확장된 것이다.
일백 百(백)의 구성은 한 일(一)과 흰 백(白)으로 짜여 있다. 一(일)은 지사글자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일)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서는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마땅할 當(당)의 구성은 높일 상(尙)과 밭 전(田)으로 이루어졌다. 尙(상)은 여덟 팔(八)과 향할 향(向)으로 구성되었으며, 向(향)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과 지붕을 본뜬 집 면(宀)과 집의 입구를 뜻하는 입 구(口)로 이루어졌다. 고대 마을의 가옥구조는 중앙의 광장이나 신전을 중심으로 외곽에 배치되어 있는데, 집(宀)의 입구(口)가 모두 중앙의 신전이나 특정 건물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향하다’라는 뜻과 함께 방향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이에 따라 尙(상)의 의미는 집(向) 중에서도 신전과 같은 특별한 건물은 일반 가옥과는 달리 지붕위에 깃발(八)과 같은 표식을 하여 모든 사람이 신성하게 받들어 모신다는 데서 ‘숭상하다’ ‘높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當(당)의 전체적인 의미는 부족의 신을 모시는 신전(尙)에 딸린 밭(田)은 당연히 마을 공동으로 경작해야 한다는 데서 ‘마땅히’란 뜻이 발생했다.
反身而誠이란 나 자신을 돌이켜보는 것을 진실 되고 정성스럽게 하라는 뜻으로, 『孟子맹자』「盡心篇진심편」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맹자가 말하기를 ‘만물의 모든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내 자신을 돌이켜 봄을 진실 되고 정성스럽게 행한다면 이보다 큰 즐거움은 없다. 또 힘써 내 안에서 모든 걸 용서하는 마음을 실행한다면 인(仁)을 구함에 있어 이 보다 더 가까운 길은 없다.’(孟子曰 萬物皆備於我矣. 反身而誠 樂莫大焉. 强恕而行 求仁莫近焉)”고 하였다. 우주의 운행이치는 물론 만사만물의 이치가 내 몸 안에 모두 갖추어져 있으니 내 자신을 돌이켜 봄이 가장 좋은 공부라는 것, 또한 모든 걱정꺼리나 괴로움 역시 내 자신 안에서 일어나는 것이니 관계에서 비롯된 트라우마를 닦는 것은 곧 내 안에서 깨끗하게 용서하는 일이란 것.
되돌릴 反(반)의 구성은 기슭 엄(厂)과 또 우(又)로 짜여 있다. 厂(엄)은 산기슭이나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또한 又(우)는 오른손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양 손의 사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두 손(又)을 사용하여 낭떠러지(厂)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 담겼다. 또한 如反掌(여반장)의 ‘손바닥 뒤집듯이’에서처럼 ‘뒤집다’는 뜻도 있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말 이을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렛나루를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정성 誠(성)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이룰 성(成)으로 이루어졌다.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成(성)의 글자형성은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관련이 깊다. 십간은 곡식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수확되어 창고에 갈무리되었다가 다시 파종되는 일련의 순서를 나타낸다. 즉 씨앗이 파종되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내리게 되는데, 甲(갑)의 자형하부가 곧 뿌리를 뜻한다. 乙(을)은 싹이 터 어느 정도 자라난 모양을, 丙(병)은 자라나 저마다 꼴의 형태를 갖춘 것을, 丁(정)은 장성하게 자라난 모양을, 戊(무)는 지나치게 웃자라지 못하도록 전지가위를 이용해 잘라주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장성하게 자라(丁) 전지(戊)해 줄 정도가 되면 식물의 성장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誠(성)의 전체적인 의미는 말(言)한 것이 원하는 대로 이루어질(成) 수 있도록 몸과 마음을 다한다는 데서 ‘정성’ ‘순수한 마음’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終身之憂란 몸이 다해 죽을 때까지 가진 걱정꺼리란 뜻으로, 적어도 지성인이라면 인(仁)과 예(禮)로써 대도를 행하지 못할까 걱정해야지 일상에 얽매인 작은 걱정은 하지 않음을 이르는 지도자로서의 걱정꺼리를 말한다. 『孟子맹자』「離婁篇이루편」에서 유래했다. 맹자는 말하기를 “군자가 보통사람과 다른 이유는 그 본심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군자는 인(仁)으로써 그 본심을 지니며 예(禮)로써 그 본심을 유지한다. 인이 있는 사람은 남을 사랑하며, 예를 지닌 사람은 남을 공경한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항상 남의 사랑을 받고, 남을 공경하는 사람은 항상 남으로부터 공경을 받는다.(孟子曰 君子所以異於人者,以其存心也。君子以仁存心,以禮存心。仁者愛人,有禮者敬人。愛人者人恆愛之,敬人者人恆敬之.)”고 전재하며, “그러기 때문에 군자는 죽을 때까지 인(仁)과 예(禮)를 행하지 못할까 걱정하되 하루아침에 일어나는 걱정꺼리는 없는 것이다. 다만 걱정꺼리가 있다면 이와 같은 것이다.(是故君子有終身之憂,無一朝之患也。乃若所憂則有之.)”라고 했다.
끝날 終(종)의 구성은 가는 실 사(糸, 멱)와 겨울 동(冬)으로 짜여 있다. 糸(사)는 누에고치에서 막 뽑아 잣아 놓은 실타래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冬(동)은 뒤져서 올 치(夂)와 얼음 빙(冫)으로 구성되었다. 고문의 상형글자에는 두 개의 언 나뭇잎이 매달린 모양이나 겨울이라는 의미전달이 명확치 않다. 그래서 후대에 얼음을 뜻하는 빙(冫)자 위에 뒤져서 올 치(夂)를 얹어 ‘겨울’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즉 얼음(冫)이 언 빙판길에서는 어기적거리며 천천히 뒤져 걸을(夂) 수밖에 없음을 나타냈다. 따라서 終(종)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계절의 마지막인 겨울(冬)을 의미요소로 삼아 실(糸)의 ‘끝’을 뜻해 ‘마치다’ ‘마지막’ ‘죽다’ 등으로 확장되었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는 어조사로 쓰였다.
근심할 憂(우)는 머리 혈(頁)과 마음 심(心) 그리고 천천히 걸을 쇠(夊)로 짜여 있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되어 있다. 心(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夊(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따라서 천천히 걸을 夊(쇠)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더디 걷거나 끌려가지 않으려는 뜻을 담게 된다. 이에 따라 憂(우) 자에 담긴 내용은 머리(頁)와 가슴(心) 속에 온통 걱정꺼리가 가득 차 그 발걸음(夊)마저도 무거워 보이는 모양을 그려 ‘근심하다’ ‘걱정하다’의 뜻을 담았다.
存而不論이란 어떤 것이 존재하기는 하지만 그 존재하는 이유를 논하지는 않는다는 뜻으로, 『莊子장자』「齊物論제물론」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육합(六合=천지)의 밖에 또 다른 뭔가가 존재하지만 이에 대해 성인은 논하지 않았으며, 육합의 안에 대해 성인은 논하기는 하였지만 따지지는 않았다. 역사책에 세상 다스리는 일을 선대왕들이 기록한 것에 대해 성인은 논의하기는 하였지만 변별하지는 않았다.(六合之外,聖人存而不論,六合之內,聖人論而不議. 春秋經世先王之志,聖人議而不辯.) 무변대한 우주! 이제 성인이 아니더라도 과학의 힘이 풀어내고 있다.
있을 存(존)은 재주 재(才)의 변형과 아들 자(子)로 짜여 있다. 才(재)에 대한 해석은 갑골문이 발견되기 전까지는 한나라의 문자학자인 허신의 『說文解字』에서 풀이한 “才는 초목이 처음 나온 모습이다. 丨(곤)이 위로 자라 一(일)을 관통하여 앞으로 가지와 잎이 생기려는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一(일)은 땅을 뜻한다.”라고 한 해석을 따랐다. 이에 따라 가지와 잎이 아직 생기지 않았기 때문에 ‘처음’이란 뜻을 가지며 ‘처음 初(초), 처음 哉(재), 처음 始(시)’와 서로 통한다고 했다. 그래서 초목의 성장에 따라 才(재)는 아직 잎이나 가지가 나오지 않은 상태며, 屮(철)은 가지나 잎이 어느 정도 자란 것을, 之(지)는 줄기와 가지가 보다 자란 것을, 그리고 出(출)은 더욱 더 자란 모습을 나타낸다고 보는 것이 『說文解字』식의 해석이다. 따라서 ‘될성부른 놈은 떡잎만 보아도 안다’는 이유에서 ‘재주’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 발견되고 부터는 전혀 다른 해석이 가해지고 있다. 즉 才(재)에 대한 갑골문이나 금문의 자형은 ‘땅의 경계표시 혹은 측량을 하기위해 땅에 박아놓은 나무로 만든 표식’으로 보여 진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存(존)의 전체적인 의미는 세대번식을 뜻하는 아이(子)가 특별한 경계구역(才)에 있음을 나타내 ‘시간’적으로 존재하는 ‘있음’을 뜻하고 있다.
말 이를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렛나루를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知足不辱이란 만족함을 알면 욕된 꼴을 당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道德經도덕경』제44장에서 유래했다. 글 내용을 살펴보면, “명예와 내 몸 중 어느 것이 더 가까이 할 것인가? 몸과 재산 중 어느 것이 더 중요한가? 얻음과 잃어버림 중 어느 것이 더 큰 병폐인가? 너무 아끼다보면 반드시 더 크게 쓰게 되고, 너무 많이 감추어 두면 반드시 더 많이 잃게 된다. 만족함을 알면 욕된 꼴을 당하지 않고, 적당히 그칠 줄을 알면 위태롭지 않으며, 오래오래 살 수 있다.(名與身孰親? 身與貨孰多? 得與亡孰病? 甚愛必大費,多藏必厚亡。知足不辱,知止不殆,可以長久.)”고 하였다.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우리네 인생, 아득바득 욕심 부릴 일이 아닌 것 같다.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발 足(족)은 사람의 다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 있다”라고 하였다.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 자형상부의 口(구)를 허벅지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說文』에서는 몸 전체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여기서는 ‘만족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욕되게 할 辱(욕)은 별 신(辰)과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辰(신)은 조개가 입을 벌리고 촉수를 내미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조개는 달을 비롯한 별들의 운행질서에 따라 일정하게 움직이는 특성을 보이는 점을 감안하여 ‘별 신’ 혹은 ‘때 신’으로도 쓰인다. 농경문화가 발달한 동양에서는 별의 움직임에 따라 농사철을 가늠하기 때문에 이 辰(신, 진)이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농사(農)와 관련되거나 새벽 신(晨)처럼 때와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천체(辰)의 운행질서를 어기고 제 마음대로 손써(寸) 인위적으로 일을 하게 되면 욕을 당하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말할 論(론)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둥글 륜(侖)으로 이루어졌다. 侖(륜)은 모일 집(亼)과 책 책(冊)으로 구성되었다. ‘모이다’ ‘모으다’의 뜻을 지닌 亼(집)은 많은 글자에 쓰이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는 ‘밥뚜껑’ ‘지붕’ ‘거푸집’ 등 다양한 용도를 지닌 단순화된 자형이다. 冊(책)은 상형문자로 종이가 발명되기 전, 대나무를 일정한 크기로 쪼갠 것을 잘 다듬어 엮어 만든 죽간(竹簡)을 본떠 만든 글자다. 그래서 고서(古書)를 보면 세로 줄을 그어 한문을 기록한 것을 볼 수 있는데, 바로 이러한 대나무에 기록한 것을 본떠 제작하였기 때문에 그랬다. 이에 따라 侖(륜)은 죽간으로 만든 책(冊)을 둥글게 말아 한데 모아둔다(亼)는 데서 ‘둥글다’ ‘조리를 세우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論(론)의 전체적인 의미는 여러 사람들의 의견이 담긴 책(冊)을 한데 모아(亼) 논리성을 갖춘 뒤 말(言)을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知所先後란 어떤 일을 하는데 있어 먼저 할 것과 나중에 할 것을 알아야한다는 뜻으로, 『大學대학』제1장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세상 모든 것에는 근본과 말단이 있으며, 세상 모든 일에는 끝과 시작이 있는데, 어떠한 것을 먼저하고 어떤 것을 나중에 할 것인가를 안다면 이것이 바로 인간이 도를 통하는데 있어 가까운 길이다.(物有本末,事有終始,知所先後,則近道矣.)”라고 하였다. 일의 선후를 아는 것만큼 중요한 게 있을까!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바 所(소)의 구성은 지게 호(戶)와 도끼 근(斤)으로 짜여 있다. 戶(호)는 사람이 거주하는 방으로 통하는 외짝 문을 말하며, 보다 큰 문은 두 짝으로 만들어진 門(문)으로 집 초입의 대문 등을 말한다. 斤(근)은 도끼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따라서 所(소)의 전체적인 의미는 땔나무를 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던 도끼(斤)는 눈에 잘 띄는 방문(戶)곁 시렁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놓아 둔데서 ‘곳’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먼저 先(선)의 구성은 갈 지(之)의 변형과 어진사람 인(儿)으로 짜여 있다. 앞서서 가는(之) 어질고 본받을 만한 사람(儿)이란 뜻이 담겨 있다. 갑골문에도 왼발을 뜻하는 止(지)모양에 儿(인)으로 그려져 있어, 사람의 앞에서 먼저 간다는 데서 ‘먼저’ ‘나아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뒤 後(후)의 구성은 조금 걸을 척(彳)과 작을 요(幺) 그리고 뒤져서 올 치(夂)로 이루어져있다. 여기서 彳(척)은 많은 사람들이 다니는 네거리를 나타낸 行(행)의 생략형이다. 고문에 나타난 幺(요)는 두 개의 원이 꼬인 모양으로 실타래를 본뜬 실 사(糸)의 자형 중에 하부의 小가 생략된 것으로 본다. 그래서 그 뜻은 ‘작다’ ‘그윽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지만 여기서는 발목을 묶은 끈으로 쓰였다. 夂(치)는 발의 모양을 상형한 발 止(지)를 뒤집어놓은 것으로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뒤처져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따라서 後(후)의 전체적인 의미는 발목(夂)에 족쇄나 끈(幺)으로 묶인 죄수가 길(彳=行)을 걷자니 자꾸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데서 ‘뒤지다’ ‘늦다’ ‘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道不遠人이란 도란 인간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는 뜻으로, 『中庸중용』제13장에서 유래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도란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사람이 도를 닦는다고 하면서 사람을 멀리하면 그것은 진정 도를 닦는다고 여길 수 없다.(子曰:道不遠人。人之爲道而遠人,不可以爲道)”고 하였다. 주자는 이에 대한 주석에서 “道는 본성을 따를 뿐이니, 진실로 여러 사람이 알 수 있고 행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에 항상 사람에게서 멀리 떨어져 있지 않다. 만약 道를 행하는 자가 비천하고 알기 쉬운 것을 싫어하여 별 볼일 없다고 생각한 나머지, 도리어 고차원적이고 심원하여 행하기도 어려운 일에만 힘쓴다면 이는 道라고 생각할 수 없을 것이다.(道者,率性而已,固眾人之所能知能行者也,故常不遠於人。若爲道者,厭其卑近以爲不足爲,而反務爲高遠難行之事,則非所以爲道矣.)”라고 하였다.
삶의 지침이 되고 있는 수도란 외딴 산골과 같이 멀리 있는 게 아니라 우리 일상의 삶속에서 닦아야 함을 말한 것이다.
길 道(도)의 구성요소를 살펴보면 쉬엄쉬엄 갈 착(辶)과 머리카락과 이마 그리고 코(自)를 그려낸 머리 수(首)로 짜여 있다. 머리(首)를 앞세우고 재촉하지도 않고 천천히 발걸음(辶)을 앞으로 내 딛는 게 바로 道(도)의 의미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통행하는 길이라는 의미보다는 모든 개체가 본능적으로 가야할 운명적인 ‘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래서 각자가 가야할 운명적인 길을 말할 때는 道(도)라고 한다. 따라서 ‘道(도)를 닦는다’ 할 때는 자신의 영성(靈性)을 맑고 밝게 하여 보다 나은 마음의 영역을 넓히는 것이다. 그 길은 오가는 게 아니라 계속 앞으로만 나아가야 한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멀 遠(원)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옷 길 원(袁)으로 구성되었다. 辶(착)은 또 다른 자형인 辵(착)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다닐 행(行)의 생략형인 彳(척)과 발의 상형인 止(지)로 짜여 길거리(行)를 걸어간다(止)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袁(원)은 윗옷을 뜻하는 衣(의)와 둥근(ㅇ→口)목걸이를 의미하는 변형된 口로 짜여 있다. 외투와 같이 긴 옷을 뜻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평상복이 아닌 외투와 같은 정장(袁) 차림을 하고서 길을 나설(辶) 때는 가까운 곳이 아닌 집에서 멀리 떨어진 곳을 간다는 데서 ‘멀다’ ‘아득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 人(인)은 서서 손을 내민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지며 좌변에 놓일 때는 亻(인)모양으로, 그리고 하변에 놓일 때는 儿(인)으로 변형된다. 『說文』에서는 “人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 글자는 주문(籒文)으로 팔과 다리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문(籒文)이라 함은 열 가지의 서체의 하나로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라는 사람이 창작한 한자의 글씨체(字體)이다.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越官之禍이란 자신이 맡은 관직을 벗어나 월권을 행함으로써 받는 불행이란 뜻으로, 『韓非子한비자』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 옛날 한나라의 소후왕이 술에 취해 자고 있었는데, 모자를 전담하는 전관이 임금이 추위에 떠는 것을 보고선 몸 위에 옷을 덮어주었다. 잠에서 깨어난 왕은 기쁜 나머지 시중들에게 ‘누가 옷을 덮어주었는가?’라고 묻자 ‘전관’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나 왕은 옷을 담당하는 전의 전관 모두에게 죄를 내렸다. 전의에게 벌을 내린 것은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했기 때문이고, 전관에게 벌을 내린 것은 자신의 직무를 벗어나 월권을 했기 때문이라 했다. 임금 자신이 추위에 떠는 것보다도 자신의 임무를 벗어나 월권을 행하는 해로움이 추위보다 심하다고 여겼기 때문이다.(昔者韓昭侯醉而寢, 典冠者見君之寒也, 故加衣於君之上, 覺寢而說, 問左右曰: "誰加衣者?" 左右答曰: "典冠." 君因兼罪典衣殺典冠.其罪典衣, 以爲失其事也; 其罪典冠, 以爲越其職也.非不惡寒也, 以爲侵官之害甚於寒.)”, 즉 자신의 임무에 충실해야 함을 역설한 것이다.
넘을 越(월)의 구성은 달릴 주(走)와 도끼 월(戉)로 이루어졌다. 走(주)는 사람이 고개를 뒤로 재친 모습을 그려낸 夭(요)와 왼 발의 모양을 본뜬 止(지)로 짜여 있다. 夭(요)는 정면에서 바라 본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자에 고개를 젖힌 머리(丿)를 나타낸 상형글자이다. 夭(요)는 다양한 뜻을 담고 있는데, 여기서는 앞으로 내달리기(止)위해 연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夭) 뛰어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戉(월)은 부족 내의 큰 의식을 치를 때 그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장식용으로 활용했던 ‘큰 도끼’모양의 무기를 말한다. 따라서 越(월)의 전체적인 의미는 국경을 넘어온 적을 향해 도끼(戉)와 같은 무기를 들고서 내달려간다(走)는 데서 ‘넘다’ ‘초과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벼슬 官(관)은 집 면(宀)과 쌓일 퇴(㠯)로 구성되었다. 宀(면)은 지붕과 양 벽면을 본뜬 것으로 사람이 사는 집을 뜻한다. 보통 맞배지붕처럼 대칭구조로 이루어진 지붕형태를 취한 집을 의미한다. 㠯(퇴)는 흙을 쌓아 만든 작은 언덕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官(관)은 언덕이나 토대를 쌓아(㠯) 지은 집(宀)으로 ‘관청’을 뜻하였다. 그래서 공무를 위해 벼슬아치들이 주로 머물기 때문에 ‘벼슬’이란 뜻도 지녔으며, 여기에 식사를 제공하게 되면 밥 식(食)을 더해 ‘객사 館(관)’이 형성되기도 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는 어조사로 쓰였다.
재앙 禍(화)’의 구성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물을 차려놓은 제단을 본뜬 상형글자 보일 시(示)와 입 비뚤어질 괘(咼)로 짜여 있다. 상서롭지 못한 뜻을 지닌 咼(괘)는 뼈 발라낼 과(冎)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冎(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冎는 사람의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둠을 뜻하는 상형글자로 머리의 융기된 뼈를 말한다.”고 하였다. 『列子』에 보면 “염(炎)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친척이 죽으면 살을 도려내어 버린다.”고 하였다. 즉 사체(死體)의 살보다는 뼈를 중시하는 장례풍습으로 아마도 유골(遺骨)이 곧 동기감응(同氣感應)에 따라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 고대 동양 사람들의 사상적 맥락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살을 발라낸 앙상한 뼈(冎)만으로 된 입(口)은 비뚤어져 보인 데서 ‘입이 비뚤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한편으로 살코기가 붙어 있는 골(骨)이 살을 다 발라낸 괘(咼)로 변화(骨 → 咼)되었다는 점으로 미루어 해석해도 교훈적 의미를 유추해낼 수 있다. 즉 그 의미는 조상이나 신(神)에게 제사를 지내는데, 살코기는 자기들이 다 발라 먹고 남은 뼈(冎)를 제사 상(示)위에 올려놓고 적당히 형식만 갖추어 주문 외듯 나불거려(口) 보았자 오는 것은 ‘재앙’ 뿐이라는 것이다.
德薄位尊이란 도덕심은 없으면서 지위만 높다는 뜻으로, 인격과 능력을 먼저 갖추지도 않은 채 오직 자신의 출세를 위해 기회주의적인 행동을 일삼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이다. 『周易주역』「繫辭傳계사전」에서 유래했는데, 그 내용을 살펴보면 “도덕심은 없으면서 지위만 높고, 지혜는 작은데 도모하는 것은 크고, 역량은 작은데 막중한 임무를 맡게 되면 재화(災禍)가 미치지 않을 이가 드물 것이다!(徳薄而位尊, 知小而謀大, 力小而任重, 鮮不及矣! )”라고 하였다. 즉 사회적인 도덕심과 지혜로움도 없으면서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람치고 그 신상에 재앙이나 화를 당하지 않은 사람이 드물다는 것이다.
덕 德(덕)의 구성은 다닐 행(行)의 생략형인 척(彳)과 클 덕(㥁)으로 이루어져 있다. 行(행)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어떠한 행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인다. 㥁(덕)은 곧을 직(直)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었는데, 直(직)에 대한 갑골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눈(罒) 위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丨)를 상형한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수직의 막대는 측량을 위해 세운 것이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인문학적인 해석을 더하고 있다. 즉 수직과 수평의 측량막대는 ‘ㄴ’자형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여러 사람(十)의 눈으로 보더라도(目) 곧고(丨) 바르게(一) 되어있음을 형상화한 글자가 바로 直(직)이다. 따라서 德(덕)의 전체적인 의미를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열 사람(十)의 눈(目)으로 보더라도 한결(一)같은 마음(心)으로 행동(彳)하는 사람을 가리켜 德(덕)을 지닌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성인(聖人)의 경지를 넘어선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열 사람이란 많은 사람, 즉 대중이나 국민을 뜻한다.
엷을 薄(박)은 풀 모양을 상형한 풀 초(艹)와 넓을 부(溥)로 이루어졌다. 溥(부)는 물줄기가 갈라지고 모이는 강을 본뜬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펼 부(尃)로 구성되었는데, 尃(부)는 클 보(甫)와 사람의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甫(보)는 갑골문을 참조할 때 초목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을 상형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인데,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尃(부)는 밭(田)에 뿌린 곡식의 모(屮)가 잘 자라도록 일일이 손(寸)으로 넓게 옮겨 심는다는 데서 ‘펼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薄(박)의 전체적인 의미는 땅위에 넓게(溥) 퍼져서 자라는 풀(艹)은 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엷다는 데서 ‘엷다’ ‘가볍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자리 位(위)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설 립(立)으로 이루어졌다. 立(립)은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이 평평한 땅(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나중에는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거나 ‘세우다’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따라서 位(위)의 의미는 벼슬아치를 하는 사람(亻)들이 서열에 따라 자신의 위치에 서(立)있다는 데서 ‘자리’ ‘지위’를 뜻하게 되었다. 경복궁에 가보면 관리들의 직급에 따라 나열된 품계석을 볼 수 있는데, 바로 벼슬의 지위를 나타낸다.
높을 尊(존, 술그릇 준)의 구성은 우두머리 추(酋)와 마디 촌(寸)으로 이루어졌다. 酋(추)는 술항아리를 본뜬 유(酉)와 오랫동안 잘 발효시켜 좋은 향이 퍼짐(八)을 표현한 자형이다. 즉 잘 발효된 좋은 술은 우두머리와 같은 높은 사람이 마실 수 있으니 ‘추장’ 혹은 ‘우두머리’와 같은 뜻으로도 확장되었는데, 본뜻은 ‘잘 익은 술’이란 뜻이다. 寸(촌)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 자형에서는 두 손으로 바침을 뜻한다. 즉 잘 익은 좋은 술(酋)을 두 손(寸)으로 들고서 제사상 혹은 윗사람에게 바치는 모양에서 ‘높이다’ ‘공경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높이다’는 뜻으로 할 때는 ‘존’으로 읽지만 ‘술잔’과 같은 제기(祭器)의 용도로 쓰일 때는 ‘준’으로 발음한다.
狡免三窟이란 똑똑한 토끼는 만약을 위해 세 개의 굴을 파 놓는다는 뜻으로, 대부분『史記사기』「孟嘗君列傳맹상군열전」에서 유래했다고 하지만, 『史記사기』에는 이러한 내용이 없고 『戰國策전국책』에 그 내용이 보인다.
즉 제나라의 재상인 맹상군과 그 식객(食客) 3000여 명 중의 한사람이었던 풍훤(馮諼)과 얽힌 이야기에서 유래했다. 풍훤은 행색이 초라해 식객들에게 천대를 받으며 1년여를 보내며 감추어진 재능을 발휘할 기회를 기다렸다.
당시 맹상군은 산동성 동남쪽에 위치한 설(薛)지역에 1만호의 식읍을 가지고 있었는데, 3천여 명의 식객을 먹이기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이 필요해 식읍 백성들에게 돈놀이를 하고 있었다. 그런데 식읍민들은 도무지 갚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이 때 풍훤이 자청하며 “빚을 받으면 무얼 사올까요?”라고 묻자 맹상군은 “보시기에 우리 집에 부족한 게 있을 것이요.( “責畢收, 以何市而反?” 孟嘗君曰: “視吾家所寡有者.”라고 한다. 풍훤은 그곳으로 가 빚쟁이들에게 차용증을 가져오게 하고선 ‘맹상군이 여러분의 빚을 탕감해주라 했다’며, 차용증을 불태워버리자 백성들은 은혜에 감읍한다. 돌아와서는 무엇을 사왔느냐는 맹상군에게 “소신은 재상을 위해 의로움(義)을 사왔습니다(乃臣所以爲君市義也)”라고 말하자 못마땅한 기색이 역력했다.
일 년 후 맹상군은 새로 즉위한 민왕(泯王)의 미움을 사 재상에서 파직 당하자 그 많던 식객들은 모두 떠나버렸다. 실의 빠진 맹상군은 풍훤의 권유에 따라 식읍지인 설 땅으로 갈 수 밖에 없었다. 설 땅에 도착하기도 전 백리 밖까지 마중 나온 백성들이 열렬히 환호하며 그를 맞이하자, 맹상군은 풍훤에게 “선생이 전에 나를 위해 의로움을 샀다고 한 것을 오늘에서야 깨달았소(先生所爲文市義者, 乃今日見之.)”라고 말한다. 풍훤은 “똑똑한 토끼는 만약을 위해 세 개의 굴을 파놓아 죽음의 위협을 피한답니다. 지금 재상께서는 한 개의 굴을 뚫었을 뿐입니다. 아직은 베개를 높이 베고 편안히 잠을 잘 수는 없지요. 이에 따라 재상을 위해 나머지 두 개의 굴을 뚫어 드리지요.(馮諼曰: 狡免有三窟, 僅得免其死耳. 今君有一窟, 未得高枕而臥也. 請爲君復鑿二窟.)” 라고 말한다.그리고 풍훤은 두 번째의 굴을 파기위해 위(魏.)나라의 혜왕(惠王)을 은밀히 만나 맹상군을 등용을 하여 제나라를 견제할 것은 제안한다. 이를 받아들인 혜왕은 10승의 수레에 황금을 보내는데, 풍환은 은밀히 귀뜸으로 맹상군에게 응하지 말고 뜸을 들이라고 제안한다. 이러한 사실이 제나라 민왕에게 알려지게 되고, 아차 싶었던 민왕은 그때서야 맹상군의 진가를 알아차리고 사신을 보내 직위를 복직시켰다. 이로써 두 번째 굴이 완성된 셈이다.
나머지 세 번째를 굴을 파기위해 풍훤은 민왕을 설득하여 설 땅에 제나라의 종묘를 세우게 하고 선왕조로부터 전승되어온 제기(祭器)를 안치하게 한다. 선대의 종묘가 맹상군의 식읍지에 있는 한 이전처럼 함부로 내치지는 못할 것이라는 계산에서였다. 풍훤은 “이제 새 개의 굴을 완성하였으니 재상께서는 고침안면을 누리십시오(三窟已就, 君姑高枕爲樂矣.)”라고 말한다. 이후 맹상군은 수십 년 동안 재상의 자리를 유지하며 편안한 삶을 살았다고 한다.
君子不器란 군자는 한 가지 용도로만 쓰이는 그릇이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한두 가지 재능개발에만 몰입할 게 아니라 두루두루 살피고 공부해 원만해져야 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論語논어』「爲政篇위정편」에서 유래했다. ‘전문가 바보’라는 말이 있다. 한 가지만 잘해가지고는 온전한 인격을 갖춘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말이다. 사회적 병폐나 우리 몸의 질병 역시도 계통적이거나 통합적 안목으로 보아야만 올바른 진단을 할 수 있다. 부분적 시각보다 숲 전체를 볼 수 있는 눈이 필요한 때이다.
임금 君(군)의 구성은 다스릴 윤(尹)과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이루어졌다. 尹(윤)은 지휘봉 역할을 하는 지팡이(丿)를 오른손(彐=又)으로 쥐고 있는 모양을 그려낸 것으로, 권위의 상징인 지팡이를 쥐고 있기에 ‘다스리다’는 뜻을 부여하였다. 이에 따라 君(군)의 의미는 통치의 상징인 지팡이를 오른손에 쥐고(尹)서 입(口)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곧 ‘임금’이나 ‘주권자’라는 뜻이다.
아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였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또한 후대로 오면서 남자의 경칭으로 쓰이기도 하고, 스승이나 작위의 이름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그릇 器(기)는 네 개의 입 구(口)와 개 견(犬)으로 구성되었다. 器(기)자는 고대의 장례풍속인 순장(殉葬)제와 관련이 깊다. 특히 지배계급의 왕족이 사망하면 죽은 사람과 가까운 아내나 신하, 그리고 첩이나 노예를 시신과 함께 묻는 순장은 고대문명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습속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지증왕 3년(서기 502년) 3월에 순장법을 금지하는 법령이 반포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사람대신 동물, 특히 동물 중에서도 사람 가까이서 잘 지켜주는 개를 금은으로 만든 귀중한 보물 및 그릇 등과 함께 무덤 속에 묻었다. 따라서 器(기)의 전체적인 의미는 죽은 사람의 시신 곁에 순장한 개(犬)와 귀중한 보물 및 평소 망자가 사용했던 그릇(네 개의 口)을 부장품으로 함께 묻었던 고대인의 장례습속을 표현한 것으로 ‘그릇’ ‘도구’라는 뜻이 담겨있다.
爲政以德이란 정치를 하려거든 덕으로써 해야 한다는 뜻으로, 『論語논어』「爲政篇위정편」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백성을 위한 정치를 하려거든 덕으로써 해야 한다는 것은, 비유하자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들이 그를 중심으로 함께 운행하는 것과 같다.(子曰,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而衆星共之.)”고 했다. 정치의 핵심이 되고 있는 德(덕)이란 무엇인가! 여러 사람(十)의 눈(目)으로 보더라도 한결(一) 같은 마음(心)으로 행동(行)하는 사람만이 갖출 수 있는 양심이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떠한가!
할 爲(위)의 자형하부는 코끼리의 모양인 象(상)의 변형이며 상부의 爫(조)는 코끼리의 기다란 코를 붙잡은 사람의 손을 뜻하는 상형글자이다. 즉 만리장성과 같이 무거운 석재가 쓰이는 건축물 등을 축조할 때, 인간에 비해 엄청난 힘을 지닌 코끼리를 동원한 고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이 글자에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 스스로가 아닌 ‘코끼리를 부려 일하다’는 뜻이 함축된 ‘하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정사 政(정)의 구성은 바를 정(正)과 칠 복(攵)으로 이루어졌다. 正(정)은 한 일(一)과 발 지(止)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正(정)자는 흙이나 나무로 만든 목책을 둘러친 성(城)을 뜻하는 ‘囗’모양과 止(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소전에 이르러서 단순하게 ‘一’모양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애초에 正(정)의 의미는 공격목표인 성곽(囗)을 향해 가다(止), 즉 ‘정벌하다’가 본뜻이었으나 후에 파생된 ‘바로잡다’ ‘바르다’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칠 정(征)’자를 별도로 만들었다. 攵(복)은 攴(복)의 간략형으로 손(又)에 회초리나 몽둥이(卜)를 들고서 친다는 뜻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글월 문(文)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등(等) 글월 攵(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인다. 따라서 政(정)의 전체적인 의미는 백성들이 올바른(正) 길로 갈 수 있도록 지휘봉을 들고 지도(攵)한다는 데서 ‘나라를 다스리는 일’, 즉 ‘정사’를 뜻하게 되었다.
써 以(이)의 옛글자인 㠯(이)의 모양이 흙을 쌓아올린 형태로 볼 때, 사람(人)이 자형 좌변에 놓인 어떤 도구(丄)를 사용하여 흙(丶)을 퍼 올리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어떠한 도구를 사용한다는 ‘--로써’라는 기구격 조사로 주로 활용된다.
덕 德(덕)의 구성은 다닐 행(行)의 생략형인 척(彳)과 클 덕(㥁)으로 이루어져 있다. 行(행)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어떠한 행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인다. 㥁(덕)은 곧을 직(直)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었는데, 直(직)에 대한 갑골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눈(罒) 위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丨)를 상형한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수직의 막대는 측량을 위해 세운 것이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인문학적인 해석을 더하고 있다. 즉 수직과 수평의 측량막대는 ‘ㄴ’자형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여러 사람(十)의 눈으로 보더라도(目) 곧고(丨) 바르게(一) 되어있음을 형상화한 글자가 바로 直(직)이다. 따라서 德(덕)의 전체적인 의미를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열 사람(十)의 눈(目)으로 보더라도 한결(一)같은 마음(心)으로 행동(彳)하는 사람을 가리켜 德(덕)을 지닌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성인(聖人)의 경지를 넘어선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열 사람이란 많은 사람, 즉 대중이나 국민을 뜻한다.
居敬窮理란 항상 공손한 태도를 견지하면서 이치를 궁구한다는 뜻으로, 주자학에서 내세운 두 가지 수양론(修養論)이다. 즉 거경이란 내적인 수양 방법으로써 항상 몸과 마음을 조신하고 바르게 갖는 태도며, 궁리란 외적인 수양법으로써 널리 사물의 이치를 궁구하여 정확한 지식을 얻는 것을 말한다. 다시 말해 실천론적인 의미의 거경(居敬)과 인식론적인 뜻의 궁리(窮理)를 합하여 거경궁리라고 한다.
살 居(거)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옛 고(古)로 이루어졌다. 尸(시)의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과 흡사하기도 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거주하는 집의 지붕을 뜻한다. 古(고)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서는 입에 문 악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아버지와 자식 간을 보통 1세대(世代)라 하는데, 이 때 쓰인 世자는 열 십(十)에 스물 입(卄)의 합자인 30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옛날이라는 의미는 대략 열(十) 세대(10☓30=300)인 3백여 년 가량 사람들의 입(口)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즉 3백여 년 전을 뜻한다. 따라서 居(거)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오랫동안(古) 살아왔던 집(尸)을 그려내 ‘살다’ ‘있다’ ‘가주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공경할 敬(경)은 진실로 구(苟)와 칠 복(攵)으로 구성되었다. 苟(구)는 현재자형에는 풀 초(艹)로 되어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머리장식의 일종인 북상투 관(卝)으로 그려져 있고, 勹(포)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이며 구(口)는 금문과 소전에 와서야 첨가 되었다. 즉 머리장식(卝)을 하기 위해 다소곳이 꿇어앉은 모양(勹)에서 장식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신하다’ ‘근신하다’본뜻이었는데, 여기에 입(口)조심까지 더해졌다. 그러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관(卝)이 풀 초(艹)로 변하면서 ‘풀이름’ 또는 ‘진실로’ ‘구차하다’는 뜻으로 가차되었다. 攵(복)은 회초리나 몽둥이를 손에 들고 있는 칠 攴(복)과 같은 뜻을 지닌 부수로 주로 자형의 우방에 놓이며 ‘치다’ ‘때리다’ 등의 뜻을 더해준다. 따라서 敬(경)의 전체적인 의미는 의관을 잘 갖추어 조신하고 근신(苟)할 수 있도록 독려(攵)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를 공경하는 마음자세를 갖추도록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궁할 窮(궁)의 구성은 구멍 혈(穴)과 몸 궁(躬)으로 짜여 있다. 穴(혈)은 고대의 주거의 형태로 땅을 파내어 만든 동굴형태 집의 출입구를 본뜬 것으로 상형글자이다. 躬(궁)은 몸 신(身)과 소리요소인 활 궁(弓)으로 구성되었지만 본래자형에서는 弓(궁)이 아닌 등뼈 려(呂)이다. 身(신)은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졌다. 呂(려)는 등뼈를 두 마디의 척추 뼈로 압축하여 그린 것으로 일정한 크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음악의 ‘가락’이나 ‘음률’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躬(궁)의 의미는 허리를 펴 서있을 수도(身) 있고 등뼈를 이용하여 구부릴 수도(呂) 있는 ‘사람의 몸’을 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窮(궁)의 전체적인 의미는 좁다란 구멍(穴) 안에서는 몸(躬)을 펴거나 구부리기가 어렵다는 데서 ‘궁하다’ 또는 ‘궁지에 몰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다스릴 理(리)의 구성은 구슬 옥(玉)과 마을 리(里)로 이루어져 있다. 玉(옥)자는 옥으로 만든 둥근 구슬 세 개(三)를 실에 꿰어(丨) 놓은 모습인데,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점(丶)을 생략한 채 王(왕)자처럼 쓴다. 里(리)는 밭 전(田)과 흙무더기를 쌓아놓은 모양을 상형한 흙 토(土)로 구성되었다. 일정한 농토(田)를 중심으로 흙(土)을 쌓아 올려 줄지어서 집을 짓고 산다는 데서 ‘마을’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理(리)의 전체적인 의미는 옥(玉)은 줄지어 늘어선 마을(里)처럼 땅속 깊은 곳에 줄기지어 있다는 데서 ‘도리’나 ‘이치’를 뜻할 뿐 아니라 그 옥을 캐내어 아름답게 다듬는다는 데서 ‘다스리다’ ‘무늬를 내다’는 뜻이 파생되었다.
屋烏之愛란 지붕위의 까마귀마저 사랑스럽다는 뜻으로, 누군가를 사랑하게 되면 그 사람이 사는 지붕위의 흉물스러운 까마귀까지도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다. 전한(前漢) 말에 유향(劉向)이 고대의 제후나 선현들의 행적·일화·우화 등을 편집한 『說苑설원』에서 유래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태공이 마주보며 말하길 ‘신이 듣기로 그 사람을 사랑하게 되면 아울러 그 사람 집 지붕위에 앉아 있는 까마귀마저 사랑스럽고, 그 사람을 증오하게 되면 그 집의 종들까지도 미워진다’고 했습니다.(太公對曰 臣聞 愛其人者 兼屋上之烏 憎其人者 憎其儲庶)”라는 구절이다. 두보(杜甫) 또한 [奉贈射洪李四丈봉증사홍이사장]이라는 시에서 “장인어른 댁 지붕위의 까마귀, 아내가 좋으니 까마귀 또한 좋구나.(丈人屋上烏 人好烏亦好)”라고도 했다. 우리 속담에도 “아내가 귀여우면 처갓집 말뚝 보고도 절한다.”고 했으니, 예나지금이나 사랑의 힘은 실로 크고도 위대하다는 생각이 든다.
집 屋(옥)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이를 지(至)로 이루어져 있다. 尸(시)의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과 흡사하기도 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 至(지)에 대해 허신 『說文』에서 “至는 새가 높은 곳으로부터 날아와 땅으로 내려온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땅을 뜻하고 상형글자다.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온다는 뜻이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혹자는 화살이 멀리에서 날아와 땅에 꽂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나 하늘로 날아갔던 새가 땅으로 내려오는 모습을 담은 상형글자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새가 하늘로 날아가 잘 보이지 않는 것을 不(불)이라 하여 ‘--이 아니다’는 부정적인 의미를 부여했고, 그 날아갔던 새가 다시 땅에 이르는 것을 至(지)라 하였다. 따라서 屋(옥)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몸을 숙이고 들어가거나 들어가서도(至) 웅크리고(尸) 있어야 할 만큼 ‘작은 집’을 말하며, 또는 작다는 데서 ‘수레 덮개’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까마귀 烏(오)는 까마귀를 본뜬 상형글자다. 『說文』에서는 “烏는 효성스러운 새를 뜻하며 상형글자다.”고 하였다. 새 鳥(조)와 달리 자형의 상부의 눈을 나타내는 一(일)이 없는데, 까마귀는 몸 전체는 물론 눈까지도 까맣기 때문에 생략되었다. 그 소리를 빌어 ‘烏呼오호’와 같이 감탄사로도 쓰이며, ‘어찌’라는 의문사로도 활용되고 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는 어조사인 ‘~의’로 쓰였다.
사랑 愛(애)자는 손톱 조(爫)와 덮을 멱(冖), 그리고 마음 심(心)과 천천히 걸을 쇠(夊)로 구성되어 있다. 조(爫)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爪는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을 ‘爪’라 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冖(멱)은 천이나 수건 등으로 어떤 물건을 덮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夊(쇠)에 대해 허신은 “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천천히 걸을 夊(쇠)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더디 걷거나 끌려가지 않으려는 뜻을 담게 된다. 이 愛(애) 자를 살펴보면 옛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다. 사랑은 줄다리기라는 말처럼 일방적이어서는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의 닫힌 마음(冖 +心)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얻으려는데(爫), 상대는 마음을 줄듯 말듯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것(夊)이 오래가는 사랑법이란 데서 ‘사랑’을 뜻하게 되었다.
戴盆望天이란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서 하늘을 바라본다는 뜻으로, 동이를 이고서 하늘을 올려다보기는 어렵다는 데서 한 사람이 동시에 두 가지 일을 병행하기는 어려움을 이르는 말이다. 『史記사기』를 쓴 사마천이 벗 임안(任安)에게 보낸 편지 보임소경서(報任少卿書)에서 유래하였다. 내용의 일부를 옮겨 본다. “제가 어릴 때는 자유분방한 재주만을 업고 설쳐댔지만 장성해서는 마을사람 누구도 명예롭게 여기지도 않았답니다. 다행히 주상께서 선친의 인연을 생각해 보잘것없는 재주나마 궁을 드나들며 펼칠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저는 ‘물동이를 머리에 이고서 어떻게 하늘을 바라볼 수 있겠는가’를 생각하며, 빈객들과의 만남을 끊고 집안일마저 잊은 채 밤낮으로 온 정신을 다하여 미력한 재주나마 온 마음으로 직분에 힘써 주상의 마음에 들려 했지만 일은 곧 그렇게 되지도 않고 크게 어긋나고 말았답니다.(僕少負不羈之材, 長無鄕曲之譽, 主上幸以先人之故, 使得奏薄伎, 出入周衛之中. 僕以爲戴盆何以望天, 故絶賓客之知, 亡室家之業, 日夜思竭, 其不肖之才力, 務一心營職, 以求親媚於主上, 而事乃有大謬不然者夫.)”라는 내용이다. 법가(法家)의 경전인 『韓非子한비자』에서도 “오른손으로는 둥근 원을 그리고 동시에 왼손으로는 반듯한 네모를 그리려하면, 두 가지 모두 완전하게 그려낼 수 없다.(右手畫圓, 左手畫方, 不能兩成.)”고 했다. 다재다능(多才多能)한 자가 한 분야에서 성공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일 戴(대)의 구성은 다를 이(異)와 才(재)의 간략형인 열 십(十) 그리고 창 과(戈)로 짜여 있다. 異(이)에 대해 자전에서는 밭 전(田)과 함께 공(共)으로 짜인 것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금문을 살펴보면 괴이한 탈을 쓰고 있는 사람을 상형한 것이다. 異(이)에 대해『說文』에서는 “異는 나눈다는 뜻이며, 廾(공)과 畀(비)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畀(비)는 물건(田)을 나누어 준다(廾)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단옥재는 주석에서 “(어떤 물건이든) 나누게 되면 이것과 저것의 다름이 있게 된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금문에 새겨진 모양은 ‘귀신의 탈을 쓰고 있는 무당과 같은 사람’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귀신의 탈을 썼으니 ‘기이’하기도 하고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뜻을 담게 되었다. 才(재)는 초목이 어느 정도 자란 모양을 본뜬 글자였지만 ‘재주’나 ‘재능’을 뜻하게 되었다. 또한 베고 찌르는 살상용 무기를 본뜬 戈(과)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찌르고 자르는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戴(대)의 전체적인 의미는 귀신의 탈을 쓴 기이한 형색을 한 사람(異)이 머리위로 몽둥이(十)이나 창(戈)을 치켜든 모습을 그려내 ‘이다’ ‘머리 위에 올려놓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동이 盆(분)의 구성은 나눌 분(分)과 그릇 명(皿)으로 이루어졌다. 分(분)은 나눈다는 뜻을 지닌 여덟 팔(八)과 칼날과 칼등을 본떠 만든 칼 도(刀)로 이루어졌다. 그 뜻은 칼(刀)로 뭔가를 나눈다(八)는 데서 ‘나누다’란 뜻을 갖게 되었다. 皿(명)은 밥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새로운 글자를 형성할 때는 대부분 자형의 하부에 놓여 그릇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盆(분)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누어(分) 먹을 음식물을 담는 그릇(皿)이라는 데서 ‘동이’ ‘질그릇’을 뜻하게 되었다. 금문을 보면 제기에 올려 진 사람의 형상을 그려내고 있어 맹(孟)와 비슷한 문화적 양상을 엿볼 수 있다.
바랄 望(망)은 망할 망(亡)과 달 월(月), 그리고 오뚝할 임(壬)으로 구성되었다. 亡(망)은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소리요소이면서 보름달이 날이 지날수록 이지러져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높다란 언덕위에 올라(壬) 둥근 보름달(月)을 바라보며 자신의 소원을 빈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바라본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눈을 강조한 臣(신)을 亡(망)대신 첨가해 보름 朢(망)자를 따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하늘 天(천)은 큰 대(大)와 한 일(一)로 이루어진 회의글자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一(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天(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위로 끝없이 펼쳐진 허공(一)을 표시하여 ‘하늘’이란 뜻을 부여하였다.
온 지구촌이 축구공의 향방을 쫒으며 열광하고 있다. 그야말로 단일종목으로는 지구촌 최대의 축제가 아닐 수 없다. 축구의 기원은 BC 7∼6세기 무렵 고대 그리스에서 행한 에피스키로스라는 공을 차고 던지는 간단한 형식의 게임에서 유래되었다고 전해지며, 고대 동아시아의 중원에서는 이보다 먼저 축구형식의 공놀이가 행해졌다는 설도 있다.
찰 蹴(축)의 구성은 발 족(足)과 이룰 취(就)로 짜여 있다. 足(족)은 넓적다리 및 무릎을 뜻하는 ‘口’에 발의 모양을 상형한 止(지)가 더해진 것으로 다리 전체를 상형한 것이다. 就(취)는 서울 경(京)과 더욱 우(尤)로 구성되었다. 京(경)은 상형글자로 옛날에는 높은 언덕위에 신전을 모시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서 산데서 유래하였다. 특히 높다랗게 지은 집을 뜻하기도 하는데, 튼실한 기둥(小)을 세우고 그 위에 내실(口)을 조형하며 제일 상부에 지붕(亠)을 덮은 모양이다. 즉 주거용의 집이라기보다는 궁궐이나 관공서와 같은 건물을 뜻하는데, 그러한 건물이 밀집한 곳이 ‘수도’인데서 ‘서울’이라는 의미를 부여 하였다. 尤(우)는 손(又)의 끝부분 즉 손가락에 난 상처를 점(丶)으로 표시한 상형문자다. 따라서 就(취)의 의미는 손에 상처(尤)를 입어가면서 까지 높은 건축물(京)을 지어 올렸다는 데서 목표한 바를 ‘이루어내다’는 뜻과 함께 ‘나아가다’ ‘쫓다’는 등의 의미가 파생하였다. 이에 따라 蹴(축)의 전체적인 의미는 공과 같은 어떠한 사물을 뒤쫓아(就) 가 발(足)로 찬다는 데서 ‘차다’는 뜻이 발생하였다.
공 球(구)는 구슬 옥(玉)과 구할 구(求)로 구성되었다. 玉(옥)자는 옥으로 만든 둥근 구슬 세 개(三)를 실에 꿰어(丨) 놓은 모습인데, 글자를 만드는 원칙 중에 하나가 아무리 많은 숫자라 할지라도 보통 3으로 축약하는 것이다. 玉(옥)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자에 이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물건을 뜻하는 품(品)이나 별빛을 받아 형성된다는 수정(晶) 등이 그 용례다. 또한 왕(王)자와 구분하기 위해 점(ㆍ)을 하나 추가하였지만 다른 글자와 만날 때, 즉 산호(珊瑚) 진주(珍珠)에서처럼 점을 생략한 채 王(옥)으로 쓴다. 求(구)는 짐승의 가죽을 벗겨낸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자형의 상부는 머리가죽과 귀를, 하부의 氺모양에서 가운데(亅)는 몸통을, 좌우로 삐친 것은 네 다리의 가죽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고대에는 의복을 짓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짐승의 가죽을 벗겨 몸에 걸쳤다. 본뜻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뜻하였지만, 가죽을 ‘구하다’ ‘모으다’는 뜻으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옷 衣(의)’를 더해 ‘갓옷 裘(구)’를 따로 제작하였다. 따라서 求(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짐승의 가죽(求)을 둥근 구슬(玉)과 같은 모양으로 만든 것, 즉 ‘둥근 가죽 공’을 뜻하였다. 또한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求)에 장식으로 매단 구슬 모양의 옥(玉)이라는 데서 ‘구슬’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蹴球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둥근 공(球)을 쫓아가 차는(蹴) 놀이를 말한다. 둥근 공 하나로써 많은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축구! 대한민국의 건아들도 지구촌의 많은 사람들에게 유쾌하고 통쾌한 승전보를 울려 주면 좋겠다.
事上磨鍊이란 자신의 맡은 바 일을 하면서 자신을 연마하고 단련한다는 뜻으로, 양명학의 내용을 담고 있는 『傳習錄전습록』에서 유래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심신이 고요할 때는 좋은 의견과 생각이 떠오르다가도 일을 하게 되면 그렇지 않은데 어찌 그런가요?’ 라고 여쭈자 왕양명은 ‘그것은 심신을 고요한 곳에서 수양할 줄만 알고 자신을 이겨내는 극기의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사람은 어떤 일에 부닥치면 그 일에 빠지기 쉽다. 사람이라면 반드시 일을 하면서 자신을 연마해야만 비로소 입지를 세워 고요함 속에서도 안정될 수 있고 움직임 속에서도 안정될 수 있는 것이란다.’(問: ‘靜時亦覺意思好. 才遇事,便不同. 如何?’ 先生曰:‘是徒知養靜,而不用克已工夫也. 如此臨事便要傾倒. 人須在事上磨,方立得住,方能諍亦定,動亦定.)”라고 말해주었다. 이는 곧 수양공부란 내외(內外)나 동정(動靜)에 구애되지 말고 일관되게 해야 함, 즉 동정일여(動靜一如)를 주장한 것이다. 자신을 닦는 수련은 일상 속에서 하는 것이지 깊은 산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라는 것.
일 事(사)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처음에는 기록을 주로 하는 사관(史官)을 뜻하였다. 이는 자형의 래원이 같은 ‘역사 史(사)’와 ‘벼슬아치 吏(리)’ 역시 갑골문에는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정의한 것처럼 史(사)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리)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사)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 따라서 事(사)는 특정한 분야에서 이루어지는 ‘일’을 뜻하게 되었다.
위 上(상)은 사람의 생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지사(指事)글자다. 갑골문에 새겨진 자형을 보면 드넓은 지평선을 의미하는 긴 횡선 위에 보다 짧은 가로선을 그은 ‘二’모양이다가 금문으로 오면서 위의 짧은 횡선이 세로로 바뀐 ‘丄’모양이었으며, 그러다 상단 오른쪽에 점(丶) 하나를 더 찍어 오늘날의 자형이 되었다. 그 뜻은 지평선(一)보다 높은 위치(卜)를 나타내 ‘위’ ‘높다’ 등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갈 磨(마)의 구성은 삼 마(麻)와 앞에서 살펴본 돌 석(石)으로 이루어졌다. 麻(마)는 집 엄(广)과 삼실 파(朩朩)로 구성되었다. 广(엄)은 사방을 벽으로 감싼 집(宀)과는 달리 한쪽 벽만을 쌓아 올린 개방형 건물을 뜻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창고나 관청 같은 건물의 용도를 말한다. 파(朩朩)는 두 개의 삼줄기 껍질 빈(朩)으로 구성되었는데, 朩(빈)은 나무 木(목)과는 그 래원이 다르다. 즉 대마(大麻)라는 삼(屮)껍질을 쪼개서(八) 잘게 짼 삼실을 뜻한다. 이에 따라 麻(마)는 개방형 건물과 같은 창고(广)에 삼껍질을 벗겨 잘게 째 한데 묶어 걸어둔 삼실(朩朩)이라는 데서 ‘삼’을 뜻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대마초의 원료라는 점에서 ‘마비시키다’의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磨(마)의 전체적인 의미는 잘게 짼 삼껍질(麻)을 반듯한 돌(石)위에 얹어놓고 짓찧다보면 삼은 물론 돌도 반질반질 윤이 난다는 데서 ‘갈다’ ‘닳다’는 뜻과 함께 돌을 강조하여 ‘숫돌’ ‘맷돌’이란 뜻도 지니게 되었다.
불릴 鍊(련)의 구성은 쇠 금(金)과 가릴 간(柬)으로 이루어졌다. 金(금)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고 금문에 보이는데, 잘 살펴보면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리요소인 금(今)의 생략형에다 흙(土)에 덮여 있는 두 덩어리(두 점)의 금을 나타낸 형성글자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금문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금(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 청동기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의 대표명사가 되었다.柬(간)은 묶을 속(束)과 여덟 팔(八)로 구성되었다. 束(속)은 나뭇가지(木)를 줄로써 동여맨(口) 모양을 한 회의글자다. 숫자 8을 나타내기도 하는 八(팔)은 어떤 물건을 쪼개거나 나눈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鍊(련)의 전체적인 의미는 철광석을 용광로에 넣고 잡석과 쇠(金)를 가려낸다(柬)는 데서 ‘불리다’ ‘정련하다’ ‘단련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知行合一이란 앎과 행동이 서로 들어맞는다는 뜻으로, 참된 지식은 반드시 실행이 따라야 함을 말한다. 명나라 왕수인(王守仁, 호 양명, 1472-1528)에 의해 형성된 양명학(陽明學) 사상의 하나로, 지식(知)과 실행(行)이 모두 마음의 활동으로서 하나라는 뜻이다. 지에 보다 중점을 둔 주희(朱熹)의 선지후행(先知後行)에 대립되는 개념이다. 알고도 행하지 않는 것은 아직 진정으로 안다고 할 수 없다고 하여, 실천함으로써 지와 행이 일치한다는 것을 역설한 실천과 동시에 체험을 중요시하고 있다.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다닐 行(행, 항렬 항)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거리에서의 행위적 요소로 쓰이지만 ‘항렬(行列)’이나 같은 ‘또래’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합할 合(합)의 구성은 모을 집(亼)과 어떠한 물건을 뜻하는 口(구)모양으로 이루어졌다. ‘모이다’ ‘모으다’의 뜻을 지닌 亼(집)은 많은 글자에 쓰이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는 ‘밥뚜껑’ ‘지붕’ ‘거푸집’ 등 다양한 용도를 지닌 단순화된 자형이다. 合(합)의 의미는 어떠한 물건(口)을 모아둔다(亼)는 데서 ‘합하다’는 뜻을 지녔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見危授命이란 위험을 보면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論語논어』「憲問헌문」편에서 유래 했다. 제자 자로가 스승 공자에게 인간다움에 대해 여쭤보자 “이익 나는 일에 직면했을 때는 의리를 먼저 생각하고, 국가나 소속 단체 등이 위험에 처했을 때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를 하며, 오래 전의 약속도 잊지 않고 평생의 말로 삼는다면 인간답다고 할 수 있다.(見利思義 見危授命 久要不忘 平生之言 可以爲成人矣.)고 하였다. 특히 나라가 위험에 처했을 때 의로움을 앞세워 목숨 바쳐 국가와 민족을 위해 싸우는 것을 말한다. 안중근 의사가 휘호로 썼던 구절로도 잘 알려져 있다.
요즘 우리 사회에는 공자의 말씀에 부합되는 사람이 몇이 될까! 선거철만 되면 숱한 공약(公約)아닌 공약(空約)을 남발하는 입후보자들, 지금이야말로 인간다운 의인(義人)이 필요한 때이다.
볼 見(견)의 구성은 눈 목(目)과 사람의 발모양을 본뜬 사람 인(儿)으로 이루어졌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罒)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인체 중에서도 유독 눈을 강조한 회의글자이다. 여타 다른 동물의 시각이 아니라 오직 사람(儿)의 입장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본다(目)는 데서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위태할 危(위)의 구성은 우러러볼 첨(厃)과 병부 절(㔾)로 이루어졌다. 厃(첨)은 산기슭이나 벼랑(厂) 위에 위태롭게 올라선 사람(人=⺈)을 그려내 밑에 있는 사람이 올려다보는 형국을 나타낸 것이다. 㔾(절)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그려낸 것이다. 이에 따라 危(위)는 절벽위에 올라간 사람(厃)을 벼랑아래에 있는 사람(㔾)이 올려다보자니 ‘위태롭고’ ‘두렵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줄 授(수)의 구성은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약자인 수(扌)와 받을 수(受)로 이루어졌다. 受(수)의 구성은 손톱 조(爫)와 덮을 멱(冖), 그리고 또 우(又)로 이루어졌다. 爫(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爪는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을 ‘爪’라 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반면에 손바닥이 위로 향하게 하는 것은 ‘掌(장)’이라고 한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자형을 이룰 때 주로 爫(조)로 쓰이는 경우가 많다. 여기서 冖(멱)은 어떤 물건을 뜻한다. 又(우)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에 따라 受(수)는 손(爫)으로 어떠한 물건(冖)을 잡아서 주니 오른 손(又)으로 받는다는 데서 ‘받다’ ‘얻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授(수)의 전체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이 받을(受) 수 있도록 손을 내밀어 준다는 데서 ‘주다’ ‘전하다’는 뜻을 부여했다.
목숨 命(명)의 구성은 명령할 령(令)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令(령)은 모일 집(亼)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병부 절(卩)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亼(집)은 높다랗게 팔자지붕으로 지어진 사당이나 공공건물을 의미한다. 즉 한마을의 촌장이나 제사장이 거주하는 높다란 건물(亼)안에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卩)이라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무언가 말(口)로써 명령(令)을 내린다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확장되어 꿇어앉은 사람의 운명이 지위 높은 사람의 한 마디에 달려있다는 데서 ‘목숨’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開卷有益이란 책을 펼치기만 해도 이로움이 있다는 뜻으로, 책을 가까이에 두고 독서를 권유할 때 쓰이는 말이다. 그 출처는 왕벽지(王闢之)의 『승수연담록(繩水燕談錄)』에 기록된 송나라 태종이 한 말에서 유래했다. 태종은 기쁜 마음으로 하루에 3권의 책을 읽었는데, 신하들이 휴식을 취해가며 읽으라고 권유하자 “책이란 펼치기만 해도 이로움이 있는 법이네. 그렇기에 짐은 피로를 느끼지 못한다네!(開卷有益, 朕不以爲勞也)”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갈수록 책을 읽는 인구가 줄어들어 요즘 출판업계는 최대의 불황을 맞고 있다. 책은 ‘마음의 양식’이라 했다. 남아수독오거서(男兒須讀五車書)는 고사하고 지하철이나 버스 간에서 책을 펼친 사람을 보기가 어렵다. 책을 가까이 하지 않은 사람의 말에는 향기가 없다(語言無味)는 말을 음미해볼 필요가 있다.
열 開(개)의 구성은 문 문(門)과 열 개(开)로 이루어졌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开(개)는 빗장을 뜻하는 ‘一’모양과 두 손으로 받들 공(廾)으로 구성되었는데, 두 손(廾)으로 빗장(一)을 들어 올려 문을 여는 모양이다. 따라서 開(개)의 전체적인 의미는 두 손으로 빗장을 들어 올려(开) 두 개의 문짝으로 된 대문(門)을 연다는 데서 ‘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책 卷(권)의 구성은 두 개의 손(手)을 형상화한 자형 상부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병부 절(㔾=卩)로 이루어졌다. 이 글자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아직 종이가 발명되지 않아 대나무를 쪼개 엮어 만든 죽간(竹簡)에 기록을 하였는데, 보통 둘둘 말아서 보관하였다. 따라서 卷(권)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나무를 쪼개 만든 죽간본을 두 손(手)으로 둘둘 말은(㔾) 것, 즉 쪼갠 대나무를 엮어 만든 모양을 그대로 본뜬 ‘책(冊)’을 뜻하게 되었다.
있을 有(유)의 구성은 손(手)의 모양을 뜻하는 자형상부의 屮(좌)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달월(月)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有(유)는 손(屮)에 고기덩이(肉=月)를 쥐고 있다는 데서 ‘가지고 있다’ ‘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더할 益(익, 넘칠 일)은 물 수(水)와 그릇 명(皿)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의 水(수)는 옆으로 뉘여 있는 모양인데, 바로 물이 넘치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皿(명)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다. 본디 제기용 그릇이었지만 일반적인 ‘그릇’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따라서 益(익)의 전체적인 의미는 찰랑찰랑한 그릇(皿)에 물(水)을 더하면 넘치는 모양을 회화적으로 표현하여 ‘더하다’ ‘이롭다’ ‘넘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反求諸己란 어떠한 잘못을 도리어 자신에게서 찾는다는 뜻으로, 『孟子맹자』「公孫丑공손추」에서 유래했다. 맹자가 공자의 핵심논제인 인(仁)을 설명할 때 “인이라는 것은 활 쏘는 것과 같다. 활을 쏠 때는 몸을 바르게 한 이후에 쏴야 한다. 쏴서 화살이 과녁에 맞지 않으면 자기를 이긴 자를 원망할 게 아니라 도리어 자신에게서 진 이유를 찾아야 한다(仁者如射 射者正己而後發 發而不中 不怨勝己者 反求諸己而已矣)”는 내용이다. 모든 것의 근본적 원인은 남에게 있는 게 아니라 자신에게 있다는 말이다.
되돌릴 反(반)의 구성은 기슭 엄(厂)과 또 우(又)로 짜여 있다. 厂(엄)은 산기슭이나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또한 又(우)는 오른손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양 손의 사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두 손(又)을 사용하여 낭떠러지(厂)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 담겼다. 또한 如反掌(여반장)의 ‘손바닥 뒤집듯이’에서처럼 ‘뒤집다’는 뜻도 있다.
구할 求(구)는 짐승의 가죽을 벗겨낸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자형의 상부는 머리가죽과 귀를, 하부의 氺모양에서 가운데(亅)는 몸통을, 좌우로 삐친 것은 네 다리의 가죽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고대에는 의복을 짓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짐승의 가죽을 벗겨 몸에 걸쳤다. 본뜻은 짐승의 가죽으로 만든 ‘옷’을 뜻하였지만, 가죽을 ‘구하다’ ‘모으다’는 뜻으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옷 衣(의)’를 더해 ‘갓옷 裘(구)’를 따로 제작하였다.
어조사 諸(저, 모두 제)의 구성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은 말씀 언(言)과 놈 자(者)로 이루어졌다. 者(자)는 본래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그런데 현재 자전에서 者(자)를 찾으려면 耂(로)부수에서 찾아야 되는 ‘회의글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그 해석 또한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耂)이 나이 어린사람에게 말할 때(白) ‘이놈저놈’ 한다는 데서 ‘놈’이란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자형하부의 ‘白’은 솥단지가 변화된 것이며 상부의 ‘耂’는 나물이나 고깃덩어리가 부글부글 끓으면서 솟아오르는 김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삶다’가 본뜻이었다. 그런데 솥에 삶은 국을 ‘이놈저놈’이 나누어 먹는다는 뜻을 담아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는 ‘놈 者(자)’로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불 화(灬)를 더해 ‘삶을 煮(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따라서 諸(제)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놈저놈(者)이 말(言)한다는 데서 ‘모두’ ‘모든’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여기서는 ‘에서, 에게서’와 같은 어조사로 쓰였기 때문에 ‘저’로 읽어야 한다.
몸 己(기)는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 글자 중 하나다. 갑골문의 자형 역시 지금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몇 군데 매듭을 지어놓은 새끼줄의 상형’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문자가 있기 전 고대 사람들이 새끼줄이나 띠 따위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은 결승문자(結繩文字)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흔적이 ‘기록할 記(기)’나 ‘벼리 紀(기)’에 남아 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본뜻을 잃고 ‘일어날 起(기)’나 ‘왕비 妃(비)’에서처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도 동시에 나타내고 있지만 그 기원은 다르다. 己(기)에 대해 『說文』에서는 “己는 방위상 중궁을 뜻한다. 만물이 안으로 갈무리 하므로 구부러진 모양을 본떴다. 己(기)는 戊(무) 다음에 오며, 사람의 배를 상징한다.”라고 하였다.
哀悼란 옷깃을 부여잡고 눈물을 닦으며 어떤 이의 죽음을 슬퍼함을 이르는 말이다. 이천십사년 사월! 온 나라는 애도의 물결로 서글프다. 원통함과 분노가 사람들의 가슴을 먹먹하게 하고 있다. 누가 사월을 잔인한 달이라고 했던가. 처연(悽然)한 서글픔이 가슴을 떠나지 않는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슬플 哀(애)의 구성은 옷 의(衣)와 사람의 입 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로 이루어졌다. 衣(의)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衣는 의지한다는 뜻이다. 윗옷을 衣(의)라 하고 아래옷은 常(상)이라 하며, 두 명의 사람을 뒤덮은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은 두 사람이 아니라 목을 중심으로 옷깃이 좌우로 나뉜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상체에 입는 옷을 말한다. 치마를 나타내는 현재의 자형은 치마 裳(상)이다. 따라서 哀(애)의 전체적인 의미는 옷깃(衣)을 부여잡아 입(口)을 가리고 서글프게 운다는 데서 ‘슬프다’ ‘서러워하다’의 뜻을 부여하였다.
슬퍼할 悼(도)의 구성은 마음 심(忄)과 높을 탁(卓)으로 이루어졌다. 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인 忄(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卓(탁)성은 점 복(卜)과 새벽 조(早)로 짜여 있다. 卜(복)은 갑골문이나 금문 그리고 소전, 현재의 자형과 별반 차이 없이 거의 원형 그대로 전해져 오는 글자 중의 하나로 거북이의 배딱지나 소의 견갑골을 불에 구울 때 만들어지는 잔금으로 점을 쳤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早(조)는 태양을 본뜬 해 일(日)과 열 십(十)으로 구성되었는데, 자형하부의 十(십)을 해가 뜬 높이를 가늠하여 시간을 알 수 있는 ‘측량 막대’로 해석한다. 그러나 아침 朝(조)를 보면 해(日)를 중심으로 상하에 풀 초(艹)의 생략형으로 십(十)을 배치하고 달(月)을 첨가하여 ‘아직 해는 수풀 속에 잠겨있고 달은 서녘하늘가에 걸려 있는 새벽’을 뜻 한데서 볼 수 있듯, 早(조)는 이제 막 수풀(十)속을 벗어나 떠오르는 해()의 운행 시점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卓(탁)에 담긴 의미는 해가 뜰 무렵인 이른 아침(早)에 점(卜)을 보아야야만 신의 계시를 탁월하게 알아낼 수 있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러나 신성한 기운이 사라진 밤(夕)에 보는 점(卜)은 계시에서 벗어나는 경우가 있음을 나타낸 글자가 바로 바깥 外(외)자이다. 卓(탁)은 본디 이른 아침에 점을 보다는 의미였지만, ‘탁자’의 뜻으로 확장된 것은 산가지 등으로 점을 볼 때는 주로 탁자 위에서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悼(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른 아침에 점을 보듯(卓) 신성한 마음(忄)으로 ‘슬퍼하다’ 또는 이른 나이의 ‘어린이의 죽음’을 뜻하기도 하였다.
博學審問이란 널리 배우고 자세하게 묻는다는 뜻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이 반드시 갖추어야 할 태도를 말한다. 『中庸중용』제20장에 “널리 배우며, 살펴 자세히 묻고, 신중하게 생각하며, 밝게 판단하고, 도탑게 행해야 한다(博學之,審問之,慎思之,明辨之,篤行之)”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주희는 이에 대한 주석에서 “이는 진실하게 하려는 자의 수양조목이다. 배우고 묻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은 善을 가려내서 알게 되는 ‘知’로, 배워서 아는 것이다. 도탑게 행하는 것은 단단히 붙잡아서 어질게 되는 ‘仁’으로, 이롭다고 여겨 행하는 것이다. 정자는 말하기를 “이 다섯 가지 가운데 하나라도 빠뜨리게 되면 학문이 아니다.”(此誠之之目也. 學、問、思、辨,所以擇善而爲知,學而知也. 篤行,所以固執而爲仁,利而行也. 程子曰:「五者廢其一,非學也.」)고 하였다.
넓을 博(박)의 구성은 열 십(十)과 펼 부(尃)로 짜여있다. 十(십)에 대해 『說文』에서는 “十은 완전히 갖춘 수이다. 一은 동과 서쪽이고 丨은 남과 북쪽이니 사방과 중앙을 갖추었다.”라고 하였다. 한자에서 숫자 十(십)은 완성수로 여기기 때문에 신(神)이 아닌 인간에게는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둑이나 무술에 있어서 그 경지가 아무리 뛰어나다할지라도 최고 9단일뿐 10단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많다’ ‘넓다’는 뜻으로 쓰였다. 尃(부)는 클 보(甫)와 사람의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甫(보)는 갑골문을 참조할 때 초목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을 상형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인데,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尃(부)는 밭(田)에 뿌린 곡식의 모(屮)가 잘 자라도록 일일이 손(寸)으로 넓게 옮겨 심는다는 데서 ‘펼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博(박)의 전체적인 의미는 모판에 심은 농작물의 모종을 보다 넓은(十) 땅에 옮겨 심는다(尃)는 데서 ‘넓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배울 學(학)은 양손으로 잡을 ⺽(국)과 효 효(爻), 그리고 덮을 멱(冖)과 아들 자(子)로 구성되었다. ⺽(국)은 자형의 밑변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양 손으로 뭔가를 잡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爻(효)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爻는 교차한다는 뜻이다. 易(역) 六爻(육효)의 앞머리가 교차하는 것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고문의 그림에서는 점을 치거나 숫자를 셀 때 썼던 산가지가 흩어져 있는 모양인데, 여기서는 사물의 이치를 밝힌 책을 뜻한다. 冖(멱)은 천이나 수건 등으로 어떤 물건을 덮은 모양을 본뜬 것이나 여기서는 건물의 지붕이 변한 모양이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간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學(학)의 전체적인 의미는 서당과 같은 건물(冖)에서 아이들(子)이 양 손(臼)으로 책(爻)을 펼치고 사물의 이치를 ‘배우다’ ‘깨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살필 審(심)의 구성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리고 지붕을 인 사람이 사는 집을 상형한 집 면(宀)과 차례 번(番)으로 이루어졌다. 番(번)은 분별할 변(釆)과 밭 전(田)으로 구성되었다. 釆(변)은 차례로 난 짐승의 발자국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즉 그 발자국을 보고서 어떤 짐승인지 ‘분별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田(전)은 밭의 경계를 나타낸 둑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대체적으로 농작물을 길러내는 농토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사냥터’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番(번)은 사냥터나 밭(田)에 난 짐승의 발자국(釆), 또는 밭(田)에 씨앗을 뿌리고 지나간 농부의 발자국(釆)이 연이어 난 모양을 본뜬 것으로 ‘차례’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審(심)의 전체적인 의미는 집안(宀)에 동물이나 혹은 누가 다녀갔는지 곳곳을 차례차례(番) 살펴본다는 데서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그렇게 자기 집안을 살피게 되니 ‘환히 알다’라는 뜻도 발생하였다.
물을 問(문)의 구성은 문 문(門)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외짝의 문은 戶(호)인데 단출하고 가난한 집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에 비해 門(문)은 부잣집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의 입을 상형한 口(구)는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다. 따라서 問(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문이나 방문(門)을 사이에 두고 인사말(口)을 하면서 안부를 ‘묻다’가 기본 뜻이다.
生寄死歸란 인간의 삶이란 잠시 의탁하여 머무는 것이며 죽음이란 본디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라는 뜻으로, 『淮南子회남자·精神訓정신훈』에서 유래하였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우임금이 남쪽 지방을 살피기 위해 강을 건널 때 황룡이 나타나 배를 등으로 치받으려 하자,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가 아연실색했다. 그러나 우임금은 밝게 웃으면서 ‘나는 천명을 힘을 다하여 온 백성을 위해 일하고 있다. 삶이란 잠시 머물다 가는 것이요, 죽음은 온 곳으로 돌아가는 것이니 어찌 이깟 일로 심신의 화평함이 흔들리겠는가’라고 하였다. 즉 용보기를 마치 도마뱀 본 듯하며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자, 용은 곧 귀를 내려뜨리고 꼬리를 치켜들며 도망쳤다. 우임금은 만물 보기를 또한 미세한 것까지도 살핀 것이다.(禹南省方 濟于江 黃龍負舟, 舟中之人 五色無主 禹乃熙笑而稱曰 ‘“我受命於天 竭力而勞萬民. 生寄也 死歸也, 何足以滑和.’ 視龍猶蝘蜓 顔色不變 龍乃弭耳掉尾而逃. 禹之視物亦細矣.)”라는 대목에서 유래했다.
날 生(생)은 땅(土)에서 풀이나 나무가 싹터(屮) 자라나는 모습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로 ‘낳다’를 본뜻으로 하고 ‘살아 있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후대로 오면서 또한 ‘날것’ ‘삶’이란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부칠 寄(기)의 구성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과 지붕을 본뜬 집 면(宀)과 기이할 기(奇)로 이루어졌다. 奇(기)는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의 모양을 상형한 큰 대(大)와 옳을 가(可)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可(가)는 사람이 이동수단으로 이용했던 말(馬)이 변화된 모양이다. 갑골문의 자형 역시 사람(大)이 말(可)과 같은 동물위에 올라탄 모양인데서 ‘기이하다’의 뜻을 부여하였다. 따라서 寄(기)의 전체적인 의미는 뭔가를 보다 빨리 전하기 위해 말을 탄 사람(奇)이 집안(宀) 사람들에게 소식을 전한다는 데서 ‘부치다’ ‘보내다’의 뜻이 생겼다. 여기서는 ‘의탁하다’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죽을 死(사)는 부서진 뼈 알(歹=歺)과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을 나타낸 匕(비) 자로 구성되었다. 歹(알)에 대해 『說文』에서는 “歺은 뼈가 부서진 잔해를 말한다. 뼈 발라낼 冎(과) 자를 반 쪼갠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冎(과) 자는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둔 것인데, 이를 또 반으로 쪼개니 뼈의 잔해라는 뜻이다. 따라서 歺(알: 歹)이 다른 부수와 자형을 이룰 때는 ‘죽음’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즉 앙상하게 뼈만 남은 백골(歹) 앞에서 사람이 꿇어앉아(匕)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돌아갈 歸(귀)의 구성은 흙덩이 모양을 본뜬 부수(자형좌변 상부)와 발 지(止) 그리고 비 추(帚)로 짜여 있다. 자칫 자형좌변상부의 흙덩이 모양을 언덕 阜(부)에서 열 십(十)이 생략된 것으로 잘못 보기도 하는데, 阜(부)는 통나무나 흙을 깎아 만든 계단을 뜻하는 상형글자라는 점이 다르다. 발의 모양을 본떠 만든 자형인 止(지)는 멈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가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帚(추)는 빗자루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지만, 조합된 부수 또한 나름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자잘한 나뭇가지나 헝겊(巾)을 한데 묶어(冖) 만든 빗자루를 손으로 잡고(彐)서 쓸거나 닦아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歸(귀)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옛날의 결혼 풍속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남자는 장가를 들고 여자는 시집을 간다고 했다. 남자는 먼저 신부의 집에서 보통 3년 정도 처가살이를 하며 딸을 준 보답을 해야 하는데, 즉 장가(丈家)는 장인 장모님의 집을 말한다. 신부는 3년 동안 부모님의 품에서 살다 이제는 남편의 부모님이 계시는 시댁(媤宅: 시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따라서 歸(귀)의 전체적인 의미는 흙덩이(자형좌변 상부)와 신부의 주된 역할이 될 빗자루(帚)를 들고서 간다(止)는 뜻인데, 시집을 간 신부는 좀처럼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어 시댁의 풍토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身土不二)으로 가져간 흙을 물에 조금씩 타서 마셨다고 한다. 이러한 결혼 풍속 때문에 歸(귀)는 ‘돌아간다’ ‘시집간다’ ‘돌려보내다’는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吟風弄月이란 밝은 달빛을 받으며 노닐면서 맑은 바람결에 따라 시를 읊는다는 뜻으로, 한가롭게 자연을 벗하며 노니는 전원생활을 상징적으로 그려내고 있다. 예나지금이나 누구나 마음속에 품어봄직한 은퇴 후 노년생활의 정경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연을 벗할 수 있는 심신의 사전준비가 필요하다. 대부분 전원생활을 꿈꾸며 자연 속으로 들어가지만 1-2년도 지나지 않아 편리한 도시생활로 복귀하는 경우를 많이 본다. 고독과 외로움을 긴 시간 벗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읊을 吟(음)의 구성은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와 이제 금(今)으로 이루어졌다. 今(금)은 모일 집(亼)과 미칠 급(及)의 옛글자인 ‘ㄱ’모양으로 구성되었다. ‘모이다’ ‘모으다’의 뜻을 지닌 亼(집)은 많은 글자에 쓰이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는 ‘밥뚜껑’ ‘지붕’ ‘거푸집’ 등 다양한 용도를 지닌 단순화된 자형이다. 그래서 今(금)은 세월이 흐르고 쌓여서(亼) 오늘에 이르렀다(ㄱ)는 데서 ‘이제’ ‘오늘’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吟(음)의 전체적인 의미는 입(口)으로 길게(今) 소리를 낸다는 데서 ‘읊다’ ‘탄식하다’ ‘끙끙거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바람 風(풍)은 무릇 범(凡)과 벌레 충(虫)으로 구성되었다. 風(풍)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風은 팔풍(八風)을 말한다. 동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명서풍(明庶風)이라 하고, 동남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청명풍(淸明風)이라 하며, 남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경풍(景風)이라 하고, 서남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양풍(涼風)이라 하며, 서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창합풍(閶闔風)이라 하고, 서북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부주풍(不周風)이라 하며, 북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광막풍(廣莫風)이라 하고, 동북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융풍(融風)이라 한다. 虫(훼)로 구성되었고, 凡(범)이 소리요소다. 바람이 일면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8일이면 벌레(蟲)는 변화한다.”고 하였다. 風(풍)은 무릇 범(凡)과 벌레 충(虫)으로 구성된 회의글자다. 凡(범)은 본래 바람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배의 ‘돛’을 뜻하였으나 ‘무릇’이나 ‘평범’ 등의 의미로 쓰이자, 그 뜻을 더 명확히 하고자 일정한 크기의 천(베)을 뜻하는 巾(건)을 더하여 ‘돛 帆(범)’을 따로 제작하였다. 또한 虫(충)은 여러 벌레를 의미하는 蟲(충)의 생략형이다. 따라서 風(풍)의 전체적인 의미에는 바람을 추상적으로 그려낸 게 凡(범)인데, 즉 바람결(凡)에 휩싸여 벌레들(虫)이 이동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봄바람이 불면 겨우내 웅크렸던 벌레들이 깨어난다는 뜻도 유추해 볼 수 있다.
희롱할 弄(농, 롱)은 구슬 옥(玉)과 두 손으로 받들 공(廾)으로 이루어져 있다. 玉(옥)은 옥구슬 세 개(三)를 실에 꿰어(丨) 놓은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글자를 만드는 원칙 중에 하나가 아무리 많은 숫자라 할지라도 보통 3으로 축약해 버린다. 玉자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글자에 이 법칙이 적용되고 있다. 물건을 뜻하는 품(品)나 별빛을 받아 형성된다는 수정(晶) 등이 그 용례다. 또한 왕(王)자와 구분하기 위해 점(ㆍ)을 하나 추가하였지만 다른 글자와 만날 때, 즉 산호(珊瑚) 진주(珍珠)에서처럼 점을 생략한 채 王(왕)자로 쓰지만 ‘구슬’이란 뜻을 갖는다. 廾(공)은 두 손으로 뭔가를 받들어 올리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지만, 여기서는 두 손으로 가지고 놀다는 뜻을 지니게 된다. 즉 옥(玉)으로 만든 구슬을 두 손(廾)으로 만지작거리며 노는 모양을 그려내 ‘희롱하다’ ‘즐기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달 月(월)은 반달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月(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月은 이지러진다는 뜻이다. 태음(太陰)의 정수로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三陰三陽論(삼음삼양론)에 따르면 음기(陰氣)가 가장 큰 상태를 태음이라 하며, 그 다음이 소음 궐음 순이다. 陽(양)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태양으로 항상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實(실)이라 하며, 陰(음)인 月(월)은 이지러져 있는 때가 많기에 闕(궐)이라 한다. 그래서 갑골문 등에도 반달과 같은 모양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글자인 夕(석)은 해가 서산으로 지고 반달이 동쪽 산허리에 걸친 모양이라 할 수 있다. 갑골문에는 반달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月(월)이나 夕(석)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月(월)은 달 자체를, 夕(석)은 밤을 뜻하다, 밤을 뜻하는 夜(야)의 등장으로 夕(석)은 또다시 해질녘으로 세분화 되었다.
同根連枝란 같은 뿌리와 잇닿은 가지라는 뜻으로 형제자매를 이르는 말이다. 이백(李白)의 시 對雪獻從兄虞城宰(대설헌종형우성재: 눈 오는 날 우성고을 수령으로 있는 종형에게)라는 시를 음미해보면 형제간의 우애를 엿볼 수 있다. “어젯밤 양원에서, 이 아우가 추위에 떨고 있음을 형은 몰랐지, 뜰 앞의 눈 덮힌 나무를 바라보자니, 형 생각에 애간장이 끊어질 듯 하오(昨夜梁園裡 弟寒兄不知 庭前看玉樹 腸斷憶連枝)”라는 시다. 요즘엔 형제자매의 애뜻한 정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하나 둘이니.
한 가지 同(동)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이지만 통일된 해석이 없다. 인문적인 접근을 한다면 대나무와 같이 속이 텅 비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마디마디를 절단해도 거의 한결같은 크기라는 뜻이 내포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또한 한 무리(冖)의 사람들이 모두 한(一) 목소리(口)를 낸다고도 보아 ‘한 가지’ ‘함께’ ‘다같이’ 등의 뜻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뿌리 根(근)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그칠 간(艮)으로 이루어졌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艮(간)은 눈 목(目)의 간략형과 사람의 모습이 변화됨을 뜻하는 ‘匕(화)’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회의글자다. 즉 눈(目)을 뒤로 돌려보는 사람(匕)의 모습을 담은 글자로, 앞에 산이나 언덕(阝=阜)이 나타나면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艮)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限界)나 한정(限定)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根(근)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의 가지는 하늘을 향해서는 거침없이 자랄 수 있지만 땅속으로 자라야 하는 뿌리는 돌과 같은 장애물을 만나면 그쳐야(艮) 된다는 점을 강조하여 ‘뿌리’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잇닿을 連(연, 련)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수레 거(車)로 짜여 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車(거)는 우마차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자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 자형에서는 하나의 바퀴(曰)만을 그려놓았는데, 중앙의 ‘丨’은 굴대를 나타냈고 아래위의 ‘二’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굴대의 빗장이다. 갑골문에 보이는 것처럼 고대의 수레는 두 바퀴로 만들어졌는데,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게 일반적이었다. 두 마리의 말에게 씌우는 멍에의 모양은 두 兩(량)으로 그 원형을 갖춘 글자가 바로 수레 輛(량)이다. 따라서 連(연)의 전체적인 의미는 수레의 바퀴(車)가 연속해서 굴러가듯이 연이어 간다(辶)는 데서 ‘잇닿다’ ‘이어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가지 枝(지)는 나무 모양을 상현한 나무 목(木)과 가를 지(支)로 구성되었다. 支(지)는 대나무 가지(个)를 손(又)에 쥐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본뜻은 ‘가지’이다. 또한 손에 나뭇가지를 쥐고서 지팡이 삼으니 ‘지탱하다’는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따라서 枝(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의 줄기에서 갈려 나온 가지(支)를 뜻한다.
法古創新이란 옛것을 본받아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뜻으로, 옛것을 거울삼되 그것을 바탕으로 변화를 주어 새로운 것을 만들어 가면서도 근본을 잃지 않음을 이르는 말이다. 온고지신(溫故知新)과도 일맥상통한 성어다. 우리에겐 수많은 고전(古典)이 있다. 한자로 이루어진 경전은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수천 년이 지난 지금사람도 한자에 능통하다면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으니, 얼마나 다행한 일인가.
법 法(법)은 물 수(氵)와 갈 거(去)로 구성되어 있다. 去(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去는 사람이 서로 어긋나간다는 뜻이다. 大(대)로 구성되었고 자형하부의 凵(거)모양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와 고대인들의 주거지인 동굴을 의미하는 口(구)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사람(大)이 주거지인 동굴(口)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물을 버리는 구덩이 위에서 대변을 보고 사람의 상형이라는 설로 ‘버리다’가 본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法(법)의 의미는 물(水)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게 순리적이라는 것으로 자연적인 ‘규칙’을 의미한다. 또 한편으로는 물(水)과 같이 순리적이지 못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규범’적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러나 더 본래적인 의미는 法(법)의 옛글자인 ‘법 灋(법)’ 자에 담겨 있다. 灋자의 구성은 물 수(氵)와 해태 치(廌), 그리고 갈 거(去)로 짜여 있다. 옛 사람들은 앞에 공평함을 뜻하는 물(氵)을 놓고서 옳고 그름(是非)과 선과 악(善惡)을 가려내는, 상체는 사슴(鹿)을 닮았고 하체는 새(鳥)의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인 해태에게 가서(去)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여기서는 '본받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옛 古(고)의 구성은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서는 입에 문 악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아버지와 자식 간을 보통 1세대(世代)라 하는데, 이 때 쓰인 世자는 열 십(十)에 스물 입(卄)의 합자인 30을 의미한다. 따라서 옛날이라는 의미는 대략 열(十) 세대(10☓30=300)인 3백여 년 가량 사람들의 입(口)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즉 3백여 년 전을 뜻한다.
비롯할 創(창)의 구성은 곳집 창(倉)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倉(창)은 창고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상부의 亼(집)모양이 지붕을 나타냈으며 중간의 戶(호)는 물건이나 사람이 들고나는 출입문을, 그리고 자형하부의 口(구)는 온갖 물품을 저장할 수 있는 내부의 공간을 그려내 ‘곳집’ ‘창고’라는 뜻을 부여했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오늘날 주로 주방에서 쓰는 칼과 같이 한 쪽 면만 날을 세우고 다른 한 면은 양념 등을 다질 수 있도록 등을 만든 것을 ‘刀(도)’라고 한다. 따라서 創(창)의 전체적인 의미는 창고(倉)에 보관되어 있는 물건들을 사용할 때는 칼(刂)이라는 도구를 통해 적당한 크기로 가공함에 따라 새로운 모습으로 탄생한다는 데서 ‘비롯하다’ ‘만들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새로울 新(신)의 구성은 메울 신(辛)의 생략형인 설 입(立)과 나무 목(木) 그리고 도끼 근(斤)으로 짜여 있다. 소리요소이기도 한 辛(신)은 죄인의 이마나 팔뚝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던 문신의 도구를 상형한 것으로 본래 ‘죄’를 뜻하였으나 묵형(墨刑)을 당할 때의 고초가 몹시도 매서웠기 때문에 ‘맵다’와 ‘살상’의 뜻으로까지 확대 되었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또한 도끼의 모양을 본뜬 斤(근)의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따라서 新(신)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나무(木)에 생채기(辛)를 내거나 도끼(斤)로 자르게 되면 새롭게 새싹이 돋아난다는 점에서 ‘새롭다’는 뜻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은 도끼 등으로 잘라낸 ‘땔나무’였는데, ‘새롭다’는 의미로 쓰이자 풀 초(艹)를 더하여 ‘섶나무 薪(신)’을 별도로 제작하게 되었다.
陽春和氣란 따사로운 봄철의 화창한 기운이란 뜻으로, 고려시대 김부식(金富軾)이 편저한『三國史記삼국사기』에 이 성어가 보인다. 즉 “따사로운 봄철의 화창한 기운은 풀과 나무 모두 꽃피우게 하지만, 추운 겨울이 오면 유독 소나무와 잣나무만이 뒤늦게 시든다.(陽春和氣 草木皆華 至於歲寒 獨松栢後彫)”는 대목에서 시절을 표현하고 있다. 입춘(立春)을 지나서도 한파는 계속되니 ‘봄은 왔건만 봄 같지가 않다(春來不似春)’는 성어가 떠오른다. 그래도 모든 사물은 땅속으로부터 오는 봄을 맞아들이기 위해 내밀하게 준비하고 있을 것이다.
볕 陽(양)의 구성은 언덕 부(阝)와 볕 양(昜)으로 이루어졌다. 阝(부)는 인공으로 만든 계단을 본뜻으로 한 阜(부)의 약자(略字)다. 갑골문을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 모양이다. 즉 고대 황하유역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토굴을 오르내리기 쉽게 통나무를 깎아 계단을 만든 모양이었다. 또한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기 쉽도록 흙을 깎아내 계단을 만들었는데 본뜻인 ‘계단’보다는 ‘높은 언덕’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昜(양)은 태양을 본뜬 (日)과 햇볕이 내리 쬐이는 모양(一 + 勿)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둥근 해(日)아래에 T자형의 장대를 세워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햇살을 빗금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陽(양)의 전체적인 의미는 햇볕(昜)이 내리 쬐이는 양지바른 언덕(阝)이란 데서 ‘양지’ ‘볕’을 뜻하게 되었다.
봄 春(춘)의 구성은 풀 철(屮)과 진칠 둔(屯)이 변한 자형상부와 태양을 본뜬 해 일(日)로 짜여 있다. 屯(둔)은 풀 철(屮)과 삐침 별(丿)로 구성되었다. 그 뜻은 초목(屮)이 싹을 틔워 가지나 잎이 어느 정도 자라고 있는데 칼이나 낫으로 베어(丿)버려 더 이상 자라지 않음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군사들이 진을 치기위해 풀을 베어 내거나 임시 막사를 치면 그 밑에 있는 풀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진 칠 屯(둔)이라고도 하였다. 春(춘)의 갑골문을 보면 막 땅거죽을 뚫고 올라오는 싹(屮)과 싹을 틔우기는 했지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 자람을 멈추고 어렵게 견디고 있는 싹(屯)을 태양(日)위에 그려 넣은 모양이다. 고대인들 역시 봄(春)을 새싹이 돋아나기는 하지만 아직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시절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화할 和(화)의 구성은 벼 화(禾)와 입 구(口)로 짜여 있다. 禾(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禾는 좋은 곡식이라는 뜻이다. 2월에 처음 싹이 트고 자라서 8월에 익는데, 사계절 중 중화(中和)의 기운을 받으므로 禾(화)라 하였다. 禾(화)는 木(목)이다. 목(木)기운이 왕성하면 살고, 금(金)기운이 왕성하면 죽는다. 木(목)으로 구성되었으며 그 이삭의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禾(화)의 자형은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곡식의 이삭이 익어 수그러진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즉 고개를 숙인 이삭(丿)과 좌우로 뻗은 잎사귀(一), 그리고 줄기(丨)와 뿌리(八)를 그려내고 있다. 口(구)는 입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먹고, 말하다’의 뜻으로 뿐만 아니라 한 개체나 들고나는 문 등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따라서 和(화)의 전체적인 의미는 풍성하게 수확한 오곡백과(禾)를 여러 사람이 나누어 먹는다(口)는 의미로 해석하기도 하나, 본디 글자는 입 구(口)가 아니라 풍요와 즐거움을 상징하는 피리 약(籥)이었던 ‘조화될 龢(화)’였다. 즉 풍악(龠)을 울리는 즐거움과 풍성한 먹을 것(禾)이 어우러지니 모든 사람이 ‘화합’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기운 氣(기)는 기운 기(气)와 쌀 미(米)로 구성되어 있다. 气(기)는 구름이나 수증기가 하늘로 올라가는 모습으로, 눈에 보이지 않는 파동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글자이다. 그래서 보다 구체적으로 그 뜻을 나타내기 위해 쌀(米)로 밥을 지을 때 솥에서 나는 증기(气)를 덧붙여 ‘기운’의 모습을 형상화 하였다. 모든 사물은 이러한 보이지 않는 기운, 즉 파동으로 연결되어 있음을 옛사람들은 이미 파악한 것이다.
輾轉反側이란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뒤척 저리 뒤척한다는 뜻으로, 아름다운 여인을 사모하여 잠을 이루지 못함을 이르는 말이다. 그 유래는 공자가 엮은 『詩經시경』의 국풍편에 나오는 관곤저구(關關雎鳩)라는 시구에서 유래했다. 즉 “꾸룩! 꾸룩! 물수리는 강 모래톱에 머무르고/아름다운 아가씨는 군자의 좋은 짝이구나./크고 작은 마름 풀은 이리저리 흘러가고/아름다운 아가씨는 자나 깨나 사랑을 구하는구나./구해도 얻지 못하니 자나 깨나 생각하고/생각하고 또 생각하다 밤이 새도록 뒤척이는구나(關關雎鳩 在河之州, 窈窕淑女 君子好逑, 參差荇菜 左右流之, 窈窕淑女 寤寐求之, 求之不得 寤寐思服, 悠哉悠哉 輾轉反側) 하였다. 남녀 간의 사랑만큼 가슴 절절한 게 있을까! 누군가를 사랑할 수 있음은 살아 있음이 아닐까!
구를 輾(전)의 구성은 수레 거(車)와 펼 전(展)으로 이루어졌다. 車(거)는 우마차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자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 자형에서는 하나의 바퀴(曰)만을 그려놓았는데, 중앙의 ‘丨’은 굴대를 나타냈고 아래위의 ‘二’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굴대의 빗장이다.展(전)은 주검 시(尸)와 펼 전(㠭)의 간략형, 그리고 옷 의(衣)의 생략형으로 구성되었다. 尸(시)는 사람이 웅크리고 있는 자세로 죽음을 뜻하기도 하지만 ‘진열하여 늘어놓다’라는 의미도 있다. 또한 工(공)은 장인이 정교하게 만든 물건을 의미하는데 네 개(㠭)를 겹쳐놓았으니, 여러 사람이 볼 수 있도록 ‘펼쳐놓다’라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그 의미는 잘 만들어진 상품(㠭)을 옷자락(衣)을 펼치듯이 진열하여 늘여놓다(尸)라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輾(전)의 전체적인 의미는 수레(車)의 바퀴가 뭔가를 펼치듯(展)이 구른다는 데서 ‘구르다’ ‘돌아눕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구를 轉(전)의 구성은 수레모양을 상형한 수레 거(車)와 오로지 전(專)으로 짜여 있다. 專(전)은 자형상부의 실을 잣아 감아두는 실패모양(叀)과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실패(叀)를 손(寸)으로 잡고서 물레에 잣아 둔 실을 감을 때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마음을 집중(專心)하여야만 실이 꼬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로지’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轉(전)의 의미는 수레(車)의 바퀴가 굴러가듯 손으로 잡은 실패(專)를 돌려 실을 감는다는 데서 ‘구르다’ ‘옮기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되돌릴 反(반)의 구성은 기슭 엄(厂)과 또 우(又)로 짜여 있다. 厂(엄)은 산기슭이나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또한 又(우)는 오른손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양 손의 사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두 손(又)을 사용하여 낭떠러지(厂)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 담겼다. 또한 如反掌(여반장)의 ‘손바닥 뒤집듯이’에서처럼 ‘뒤집다’는 뜻도 있다.
곁 側(측)의 구성은 사람의 모양을 상형한 사람 인(亻)과 법칙 칙(則)으로 이루어졌다. 則(칙)은 솥 鼎(정)의 간략형인 조개 패(貝)와 칼 도(刀)로 구성되었다. 則(칙)이라는 글자는 금문에서 볼 수 있는데, 솥을 뜻하는 鼎(정)의 그림문자와 칼 刀(도)가 새겨져 있다. 금문(金文)이란 은나라시대의 종정문(鐘鼎文), 즉 제기(祭器) · 무기(武器) · 악기(樂器) 등에 새긴 명문(銘文)으로 주로 틀에 글자를 써서 새기고 금속을 녹여 부어서 주조(鑄造)한 것이므로 필사체(筆寫體)인 경우가 많다. 주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청동제품인 솥(鼎)에 법 삼을만한 글귀를 날카로운 칼(刂=刀)을 이용하여 새겨 넣기도 하였다. 이에 따라 則(칙)의 의미는 제사용으로 쓰이는 청동 솥(鼎=貝)에 조각 칼(刂)을 이용해 본받을 만한 글귀를 새겨 넣었음을 그려낸 것으로, 청동제품에 새겨진 내용은 곧 사람으로서 지켜야 될 도덕적인 내용에서부터 법령 등과 같은 ‘법칙’이 주된 것이었다. 따라서 側(측)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람(亻)이 주조된 커다란 솥의 측면에 본받을 만한 글귀를 새긴다(則)는 데서 ‘곁’ ‘옆’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伴食宰相이란 임금을 곁에 모시고 함께 밥만을 먹는 재상이란 뜻으로, 특별하게 하는 일도 없이 자리만 차지하고 있는 무능한 재상이나 대신을 비꼬아 이르는 말이다. 그 유래는 당 현종의 무능한 신하 노회신(盧懷愼)에서 비롯되었다. 현종이 양귀비에 빠져 정사에 소홀하기 전에는 유능한 인재를 등용하여 ‘開元의 治’라 불릴 만큼 국정을 잘 다스렸는데, 이러한데에는 어진 재상 요숭(姚崇)의 공로가 컸다. 그런데 요숭이 지병으로 눕자 대신 노회신이 국정을 도모했으나 능력부족으로 사사건건 요숭을 찾아 상의하자, 다른 대신들이 조롱의 뜻으로 밥이나 축내는 반식재상(伴食宰相)이라고 수군거렸다는 것이다.
짝 伴(반)의 구성은 사람의 서 있는 모습을 상형한 사람 인(亻)과 반 반(半)으로 이루어졌다. 半(반)은 ‘나누다’라는 뜻을 지닌 여덟 팔(八)과 소 우(牛)의 생략형으로 짜여 있다. 즉 소(牛)는 그 몸집이 너무나 커서 식용으로 할 때는 척추를 중심으로 절반으로 나누지(八) 않으면 운반이나 관리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요즘에도 도살장에서는 소를 절반(半)으로 나누어(八) 정육한다는 데서 ‘반’ ‘절반’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伴(반)의 전체적인 의미는 자신의 반쪽(半)과도 같은 사람(亻)이라는 데서 ‘짝’ ‘동반자’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밥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다. 皀(급)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의미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皀)에 담아 뚜껑(亼)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재상 宰(재)는 갑골문에도 등장하는 자형으로 그 구성은 집 면(宀)과 매울 신(辛)으로 이루어졌다. 갑골문에 그려진 宀(면)은 지붕뿐만 아니라 양 벽면을 길게 늘어뜨려 그려내고 있어 깊숙하고 은밀한 내부모양을 암시하고 있는데, 여기서는 사람의 주거 공간 중 부엌을 뜻한다. 辛(신)은 동물을 잡거나 요리하는 날카로운 도구이면서 노비나 죄인에게 이마나 팔뚝에 먹물 문신을 뜨는 꼬챙이를 상형한 것으로 ‘죄’를 뜻하였다. 또한 묵형(墨刑)을 당할 때의 고초가 몹시도 매서웠기 때문에 ‘맵다’와 ‘살상’의 뜻으로까지 확대 되었다. 따라서 宰(재)의 전체적인 의미는 왕을 위해 음식을 요리할 수 있는 주방(宀)이라는 곳에서 날카로운 도구(辛)로 먹을 것을 만든다는 데서 본래는 ‘요리사’뜻했는데, ‘재상’ ‘가신’이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서로 相(상)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눈 목(目)으로 짜여 있다. 木(목)은 한 그루의 나무를 가지와 줄기 뿌리까지 본뜬 상형글자이며, 目(목)은 사람의 한 쪽 눈을 본뜬 것으로 쓰기에 편리하도록 세로로 세운 모양이다. 相(상)의 본뜻은 어린 묘목(木)의 성장을 눈(目)으로 살펴보는 데서 ‘보다’ ‘살피다’ ‘돕다’인데, 오늘날 주로 쓰이는 ‘서로’ 란 뜻은 살피고 보살핀 데서 파생된 것이다. 한편 나무(木)의 싹이 움트는 모습을 살펴보면 항상 대칭적으로 싹눈(目)이 형성됨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서로’라는 의미의 파생과정을 엿볼 수 있다.
間於齊楚란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란 뜻으로, 국력이 약한 나라가 강국들 사이에 끼여 괴로움을 당함을 이르는 말이다. 전국시대 7웅인 제·초·조·한·위·연·진나라가 서로 패권을 다툴 때 제나라와 초나라 사이에 낀 등(藤)나라가 외교적 곤란을 당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예나 지금이나 열강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는 나라들은 눈치 외교를 해야 하는 어려움을 당하기는 마찬가지인가 보다.
사이 間(간)의 구성은 문 문(門)과 태양의 모양을 상형한 해 일(日)로 짜여 있다. 門(문)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門은 듣는다는 뜻이다. 두 개의 戶(호)로 구성되었으며 상형글자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 역시 현재의 모양에서처럼 두 개의 문으로 그려져 있다. 허신이 ‘듣는다’고 풀이한 것은 문을 통해 집안에서든 밖에서든 들을 수 있기 때문인 것 같다. 따라서 間(간)의 전체적인 의미는 문(門)틈사이로 새들어오는 햇빛(日)이라는 데서 ‘틈’ ‘사이’라는 뜻을 담아냈다.
어조사 於(어)의 구성은 깃발 언(㫃)과 얼음 빙(冫)으로 이루어졌지만, 금문과 소전에 그려진 자형은 까마귀의 상형이다. 본디 감탄사의 일종인 ‘오!’였지만, ‘--에서’ ‘--에’와 같이 어조사인 ‘처소격’으로 뿐만 아니라 ‘--보다’(비교격), ‘--를’(목적격) 등과 같이 그 쓰임이 참으로 많다.
제나라 齊(제, 가지런할 제)는 갑골문에는 창끝모양 세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것을 보리이삭과 같은 곡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형인 齊(제)를 눈여겨보면 그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도(刀)나 氏(씨), 그리고 중앙부의 辛(신) 모양은 모두가 도검류와 관련이 깊으며 자형하부는 그것을 가지런히 꽂을 수 있는 대(臺)라 할 수 있다. 따라서 齊(제)의 의미는 창이나 도검류를 나무로 만든 형틀에 가지런히 꽂아놓은 모습이라는 데서 ‘가지런하다’ ‘같다’는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여기서는 ‘제나라’를 의미한다.
초나라 楚(초, 회초리 초)는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그 구성은 수풀 림(林)과 짝 필(疋, 발 소)로 이루어졌다. 林(림)은 두 개의 나무 목(木)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木(목)의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이에 따라 두 개의 나무(木)를 겹쳐 나무들이 우거진 ‘수풀’을 뜻하게 되었다. 疋(소)는 무릎아래 종아리와 발을 국부적으로 본뜬 것이다. 또한 발은 둘이라는 데서 짝 필(疋)로도 쓰인다. 따라서 楚(초)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가 우거진 수풀(林) 사이를 사람이 오간다(疋)는 데서 ‘우거지다’는 뜻을 지녔지만 ‘회초리’란 뜻도 지니게 되었으며, 여기서는 ‘초나라’를 뜻한다.
刻鵠類鶩이란 고니를 새기려다 잘못되더라도 집오리와 비슷하게 된다는 뜻으로, 옛 성현이 남긴 글을 익힘에 완전히 다 배우지는 못한다할지라도 최소한 가까이는 갈 수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後漢書후한서·馬援傳마원전』에서 유래했다. 후한의 명장 마원이 두 조카에게 보낸 편지에 “백고라는 사람을 본받으면 그렇게 되지는 못한다하더라도 하는 일에 조심하고 신중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이른바 고니를 새기려다 이루지 못한다 하더라도 집오리와는 비슷하게 된단다(效伯高不得,猶為謹敕之士,所謂刻鵠不成尚類鶩者也)”라고 타일렀다.
새길 刻(각)은 돼지 해(亥)와 칼 도(刂)로 구성되었다. 亥(해)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亥는 뿌리라는 뜻이다. 10월이 되면 미약한 양기(陽氣)가 일어나 왕성한 음기(陰氣)와 접한다. 二(상)으로 구성되었으며, ‘二’은 上(상)의 옛글자이다. 한 사람은 남자이고 한 사람은 여자다. 乚(은)으로 구성되었는데, 아이 밴 모양을 본뜬 것이다. 『春秋傳춘추전』에도 ‘亥의 두 획은 머리모양이고 여섯 획은 몸의 모양이다.’고 했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소전의 자형을 설명한 것으로 남녀가 교합하여 아들(子)을 낳는다는 것, 즉 12지지가 亥(해)에서 끝나지만 다시 子(자)로 이어지는 순환관계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돼지라는 뜻은 가차한 것이며 허신의 설명처럼 남녀, 즉 음양(陰陽)을 나타낸 글자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따라서 刻(각)의 전체적인 의미는 조각칼(刂)을 이용하여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음양(陰陽), 즉 양각(陽刻) 혹은 음각(陰刻)으로 ‘새김’을 뜻한다.
고니 鵠(곡)의 구성은 알릴 고(告)와 새 조(鳥)로 이루어졌다. 告(고)는 소를 상형한 소 牛(우)와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이루어졌는데, 그 의미는 제단에 제물로 소(牛)를 바친 뒤 제사를 주관하는 사람이 신에게 아뢴다(口)는 데서 ‘아뢰다’ ‘알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鳥(조)에 대해 『說文』에서는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鳥(조)는 비교적 꽁지가 긴 새를 의미하는 상형글자이며, 반면에 새 隹(추)는 꽁지가 짧고 통통한 작은 새를 그린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鵠(곡)의 전체적인 의미는 겨울을 알려주는(告) 새(鳥)라는 데서 ‘고니’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활쏘기의 표적이 된다는 데서 ‘과녁’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무리 類(유, 류)의 구성은 깨닫기 어려울 뇌(米+頁)와 개 견(犬)으로 짜여 있다. ‘米+頁’는 쌀 미(米)와 머리 혈(頁)로 구성되었다. 米(미)는 벼와 기장의 알맹이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가로획(一)을 중심으로 상하에 각각 세 점이 곡식의 낟알을 표시하고 있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눈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책의 면수(페이지)를 나타낼 때는 ‘책면 엽’으로 읽는다. 따라서 뇌(米+頁)는 곡식의 낱알이나 쌀(米)은 그놈이 그놈 같아 그 모양(頁)을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犬(견)은 개의 옆모양을 본뜬 것으로 가장 큰 특징인 입으로 내민 혀(丶)를 강조하였다. 따라서 類(유)의 전체적인 의미는 개(犬)는 그 생김생김이 비슷하여 구별하기 어렵다((米+頁)는 데에서 ‘닮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한편으로 인문학적인 해석을 한다면 米(미)는 식물을, 犬(견)은 동물을, 頁(혈)은 사람을 대표함으로써 각각의 종(種)을 나타내 ‘무리’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고 볼 수도 있다.
집오리 鶩(목)의 구성은 힘쓸 무(敄)와 앞에서 살펴 본 새 조(鳥)로 이루어졌다. 敄(무)는 務(무)의 간략형이다. 務(무, 업신여길 모)는 창 모(矛)와 칠 복(攵) 그리고 힘 력(力)으로 구성되었다. 矛(모)는 긴 나무자루 끝에 날카롭고 뾰족한 쇠를 박은 ‘창’을 본뜬 상형글자다. 攵(복)은 攴(복)의 간략형으로 손(又)에 회초리나 몽둥이(卜)를 들고서 친다는 뜻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글월 문(文)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등(等) 글월 攵(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인다. 力(력)은 끝이 세 갈래인 오늘날의 쇠스랑과 같은 농기구를 본뜬 것이다. 즉 논밭(田)에서 가래나 쇠스랑과 같은 농기구(力)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내(男)와 같은 힘이 요구됨을 표현한 것이다. 이에 따라 務(무)의 의미는 전쟁과 관련된 글자로 창(矛)과 몽둥이(攵)이로 찌르고 때리며 싸우는 것에 온 힘(力)을 다하는 일을 그려낸 것으로 ‘힘쓰다’는 뜻을 지녔다. 또한 창과 몽둥이를 휘두르는 일은 상대에게는 모욕적인 행위여서 ‘업신여기다’ 뜻도 함께 지니고 있다. 따라서 鶩(목)의 전체적인 의미는 집안의 두엄자리나 검불더미 등을 힘써(敄) 뒤지는 새(鳥)라는 데서 ‘집오리’라는 뜻을 부여했다.
轉迷開悟란 어지럽고 미혹된 번뇌에서 벗어나 마음의 문을 열어 깨달음에 이르렀음을 이르는 말이다. 불교의 대오각성(大悟覺醒)하여 열반(涅槃)에 이름과도 일맥상통하는 사자성어다. 이러한 깨달음에 이르는 법에는 돈오돈수(頓悟頓修)와 돈오점수(頓悟漸修)가 있는데, 돈오돈수는 ‘단박에 깨치고 단박에 닦는다’는 뜻으로 완전한 지혜를 얻어 더 이상 수행할 것이 없는 경지에 이름을 말하고, 돈오점수란 깨치고 나서도 점진적으로 수행을 쌓아야 깨침의 경지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 자신을 닦는 수행이란 우리 사는 일상에서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언행일치(言行一致)만 된다면!
구를 轉(전)의 구성은 수레 거(車)와 오로지 전(專)으로 짜여 있다. 車(거)는 우마차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자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 자형에서는 하나의 바퀴(曰)만을 그려놓았는데, 중앙의 ‘丨’은 굴대를 나타냈고 아래위의 ‘二’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굴대의 빗장이다. 갑골문에 보이는 것처럼 고대의 수레는 두 바퀴로 만들어졌는데,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게 일반적이었다. 두 마리의 말에게 씌우는 멍에의 모양은 두 兩(량)으로 그 원형을 갖춘 글자가 바로 수레 輛(량)이다. 자전거(自轉車)와 같이 자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거’라 하고 자동차(自動車)와 같이 타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차’라고 발음한다. 專(전)은 자형상부의 실을 잣아 감아두는 실패모양(叀)과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실패(叀)를 손(寸)으로 잡고서 물레에 잣아 둔 실을 감을 때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마음을 집중(專心)하여야만 실이 꼬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로지’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轉(전)의 의미는 수레(車)의 바퀴가 굴러가듯 손으로 잡은 실패(專)를 돌려 실을 감는다는 데서 ‘구르다’ ‘옮기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미혹할 迷(미)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쌀 미(米)로 이루어져 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따라서 辶(착)과 더해 만든 글자 중에는 빠를 迅(신)처럼 발걸음을 재촉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더딜 遲(지)와 같이 멈추어 선 듯 한 의미로도 활용되고 있다. 米(미)는 벼와 기장의 알맹이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가로획(一)을 중심으로 상하에 각각 세 점이 곡식의 낟알을 표시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통팔달의 교차로를 의미한다. 따라서 迷(미)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통팔달의 갈림길(米)에서 어디로 가야할까(辶)하고 망설인다는 데서 ‘미혹되다’ ‘망설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열 開(개)의 구성은 문 문(門)과 열 개(开)로 이루어졌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开(개)는 빗장을 뜻하는 ‘一’모양과 두 손으로 받들 공(廾)으로 구성되었는데, 두 손(廾)으로 빗장(一)을 들어 올려 문을 여는 모양이다. 따라서 開(개)의 전체적인 의미는 두 손으로 빗장을 들어 올려(开) 두 개의 문짝으로 된 대문(門)을 연다는 데서 ‘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깨달을 悟(오)의 구성은 마음 심(忄)과 나 오(吾)로 이루어졌다.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인 忄(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작용과 관련이 깊다. 吾(오)는 손가락을 활용하여 숫자 5를 뜻하는 다섯 오(五)와 사람의 입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로 구성되었는데, 그 뜻은 손(五)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口)한다는 데서 ‘나’를 의미하게 되었다. 따라서 悟(오)의 전체적인 의미는 내 자신(吾)이 누구인지 마음(忄)으로 알아간다는 데서 ‘깨닫다’ ‘도리를 알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車水馬龍이란 수레의 행렬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나는 용과 같다는 뜻으로, 몹시 분주한 모양을 빗대어하는 말이다. 이 말은『後漢書·明德馬皇后紀후한서·명덕마왕후기』에서 유래했다. 동한의 명장이었던 마원(馬援)의 딸은 명제(明帝)의 비로 입궁하여 후에 태후에 봉해졌다. 문무백관들의 신뢰를 받은 마태후, 몇몇 간신들이 태후의 형제들을 제후에 봉해줄 것을 황제에게 건의하고 아부하려 들자 “그들은 모두 여유가 있고,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인사를 올리고 있소. 그들의 집 앞 수레의 행렬은 마치 흐르는 물과 같고 말의 움직임은 하늘을 나는 용처럼 분주합디다(車如流水, 馬如游龍)”라며 청을 물리쳤다는 것. 권력자에게 줄을 대려는 아부꾼들의 행렬을 빗댄 말이긴 하지만, 힘찬 청마(靑馬)의 해를 맞아 그 기세가 국력으로 살아나길 기대해본다.
수레 車(거, 차)는 우마차의 바퀴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자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 자형에서는 하나의 바퀴(曰)만을 그려놓았는데, 중앙의 ‘丨’은 굴대를 나타냈고 아래위의 ‘二’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굴대의 빗장이다. 갑골문에 보이는 것처럼 고대의 수레는 두 바퀴로 만들어졌는데,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게 일반적이었다. 두 마리의 말에게 씌우는 멍에의 모양은 두 兩(량)으로 그 원형을 갖춘 글자가 바로 수레 輛(량)이다. 자전거(自轉車)와 같이 자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거’라 하고 자동차(自動車)와 같이 타력에 의해서 움직이면 ‘차’라고 발음한다.
물 水(수)는 강물이 한데 모아지고 나누어지는 물줄기를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氵)로 표시하거나 氺(수)로 쓰이기도 한다. 水(수)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水(수)는 평평하다는 뜻이다. 북쪽 방위를 나타내는 오행이다. 여러 물줄기가 나란히 흐르는 가운데 미미한 양(陽)의 기운이 있는 것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이 역(易) 괘체 중의 하나인 물을 뜻하는 坎(감, ☵)을 세로로 세운 것과 같아 외곽의 陰(음, --)이 가운데 陽(양, ㅡ)을 에워싼 모양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용 龍(룡, 용)은 상상의 동물을 그려낸 것으로, 용이 머리(立)와 몸뚱이(月)를 꿈틀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飛) 모양의 ‘용’을 표현한 것이다. 龍(용)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龍은 비늘을 갖은 동물 중의 우두머리다. 몸체를 숨길 수도 있고 드러낼 수도 있으며, 아주 작게 할 수도 크게 할 수도 있고, 짧게 할 수도 길게 할 수도 있다. 춘분이 되면 하늘로 오르며 추분이 되면 내려와 깊은 연못 속으로 잠긴다. 肉(육)으로 구성되었으며, 자형의 우변은 날아가는 모양(飛)이다. 童(동)의 생략형이 소리요소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임금’이나 ‘뛰어난 인물’에 비유되곤 한다. 龍(용)은 상상의 동물 가운데 하나로 기린ㆍ봉황ㆍ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서 천자에 비유되며, 인도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용의 모습은 9가지 종류의 동물을 합성한 것으로 얼굴은 낙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몸통은 뱀, 머리털은 사자, 비늘은 물고기, 발은 매, 귀는 소와 닮은 모양이다.
良禽擇木(양금택목)이란 현명한 새는 서식하기 좋은 나무를 선택해서 둥지를 튼다는 뜻으로, 어질고 현명한 사람은 훌륭한 군주를 가려서 섬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春秋左氏傳춘추좌씨전』에서 유래했다. 공자가 치국(治國)의 도를 유세하기 위해 위나라에 갔을 때, 공문자가 대숙질을 공격하기 위해 공자에게 상의하자 “제사 지내는 일에 대해선 배운 일이 있습니다만, 전쟁에 대해선 전혀 아는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다. 그 자리를 물러나온 공자는 제자에게 서둘러 수레에 말을 매라고 일렀다. 제자가 그 까닭을 묻자 공자는 “한시라도 빨리 위나라를 떠나야겠다.”며 이렇게 대답했다. “현명한 새는 좋은 나무를 가려서 둥지를 틀고, 어질고 현명한 신하는 군주를 가려서 섬기는 것이다.(良禽擇木而棲,賢臣擇主而事)”라며, 위나라를 떠나버렸다.
어질 良(양, 량)은 초기자형인 갑골문과는 비교가 어려울 만큼 변화되었다. 본래 良(량)은 본체 좌우의 다른 별체를 오갈 수 있도록 지붕을 인 회랑을 상형한 글자로 눈비가 와도 편리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편안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날짐승 禽(금)은 자형 상부를 이루는 부수(人+文+凵)와 발자국 유(禸)로 구성되어 있다.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긴 자루나무 끝에 그물을 맨 그림이었으며 한나라의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의 자형과 비슷한 유형을 지니게 되었다. 그래서 대부분이 자형 상부를 今(금)으로 보면서 소리요소로 파악하는데, 나의 생각은 좀 다르다. 문자라는 것은 학문의 발달과 함께 다양한 의미가 추가 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글자 역시 사유 체계의 발달과 함께 사물을 본뜬 상형(象形)의 회화적인 단순함에서 벗어나 보다 세부적인 요소가 가미된 지식을 담게 되기 때문이다. 禽(금) 자에는 이러한 글자의 발달 과정이 잘 담겨있다. 자형 상부를 이루는 부수들을 보면, ‘人’은 새장의 지붕을, 무늬를 뜻하는 ‘文’은 아름다운 무늬를 띤 새를, ‘凵’은 새장을 뜻한다. 여기에 짐승 발자국을 뜻하는 禸(유)를 더해 사람이 아닌 짐승임을 강조했다. 따라서 禽(금)의 전체적인 의미는 지붕(人)을 씌워 새(文)가 도망가지 못하도록 새장(凵)에 가두어(禸) 두었다는 것이니, 금(禽)은 곧 날짐승을 대표하는 글자로 규정되었다.
가릴 擇(택)은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간략형인 수(扌)와 엿볼 역(睪)으로 구성되었다. 睪(역)은 사람 눈을 상형한 목(目)을 옆으로 뉘인 모양과 다행 행(幸)으로 구성되었다. 幸(행)은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죄수들의 목과 팔다리에 채우는 형구의 일종인 ‘칼’로 보여 진다. 그러나 대부분 소전체에 그려진 자형을 보고서 일찍 죽을 요(夭)와 거스를 역(逆)자에서 쉬엄쉬엄 갈 착(辶)이 생략된 글자로 파악해 일찌감치 죽는 요절(夭折)을 거절하여 면했으니(逆) 다행이라는 의미로 풀이한다. 갑골문에 그려진 자형대로 풀이하자면 아마도 ‘목과 팔다리에 칼을 채우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긴다는 교훈적 의미가 담긴 것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睪(역)은 형구의 일종인 칼(幸)을 채운 죄수가 눈(目)을 힐끔거리며 눈치를 본다는 데서 ‘엿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擇(택)의 전체적인 의미는 눈망울을 사방으로 휘돌리며 엿보아서(睪) 원하는 것을 손(扌)을 사용하여 선택한다는 데서 ‘가려내다’ ‘선택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나무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즉 한그루의 나무를 표현하였다.
倒行逆施란 어떠한 일의 차례를 뒤집어 거꾸로 시행한다는 뜻으로, 도리에 순종하지 않고 상도를 벗어나 일을 억지로 추진함을 말한다. 『史記·伍子胥사기·오자서』에서 유래하였다. 초나라의 오자서는 아버지와 형제가 초평왕에게 살해되자 오나라로 도망쳐 합려의 신하가 되어 초나라를 공격하여 승리하고 원수를 갚았는데, 그 방법이 이미 죽은 초평왕의 무덤을 파헤쳐 300번이나 채찍을 내리쳤다. 이 소식을 들은 친구 신포서가 질책하는 편지를 보내오자 “이니 날은 저물고 갈 길은 멀어 도리에 어긋나줄 알면서도 순리에 거스르는 행동을 했다(日暮途遠吾故倒行而逆施之)”고 편지를 가져온 이에 말했다는 것.
넘어질 倒(도)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상형한 사람 인(亻)과 이를 도(到)로 이루어졌다. 到(도)는 이를 지(至)와 한쪽은 칼날 또 다른 면은 칼등이 있는 모양을 본뜬 칼 도(刂=刀)로 구성되었는데, 至(지)에 대해 『說文』에서는 “至는 새가 높은 곳으로부터 날아와 땅으로 내려온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땅을 뜻하고 상형글자다. 위로 올라가지 않고 아래로 내려온다는 뜻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일부에서는 화살이 멀리에서 날아와 땅에 꽂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라 해석하기도 한다. 到(도) 자의 의미를 살필 때는 ‘화살’로 해석하는 게 용이하다. 즉 화살(至)을 쏘며 칼(刂)을 들고 적을 무찌른다는 데서 ‘이르다’ ‘도달하다’는 뜻을 지닌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倒(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화살과 칼(到)로써 상대방인 적군(亻)을 무너뜨린다는 데서 ‘넘어뜨리다’ ‘거꾸러뜨리다’ ‘죽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다닐 行(행, 항렬 항)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거리에서의 행위적 요소로 쓰이지만 ‘항렬(行列)’이나 같은 ‘또래’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거스를 逆(역)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거스를 역(屰)으로 이루어졌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屰(역)이 새겨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사람을 본뜬 大(대) 자를 거꾸로 새긴 모양이다. 이에 따라 왔던 길을 다시 거꾸로 거슬러(屰) 간다(辶)는 데서 ‘거스르다’는 뜻뿐만 아니라 되돌아오는 자를 ‘맞이하다’는 의미도 있다.
베풀 施(시)의 구성은 깃발 언(㫃)과 문장의 끝에 놓여 종결의 의미를 갖고 있는 어조사 야(也)로 이루어졌다. 㫃(언)은 갑골문이나 금문에 새겨진 것을 살펴보면 깃대(方)에 매단 깃발이 펄럭이는(人) 모양을 그려낸 것인데, 인문학적인 의미로 해석하면 사람(人)이 나아가야 할 방향(方)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깃발’을 말한다. 특히 고대 씨족사회에서는 부족을 상징하는 깃발을 신전 등에 꽂아 일족(族)의 위용을 과시했을 뿐만 아니라 이동을 할 때도 부족의 깃발을 앞세우고 옮겨(旅)다녔다. 也(야)는 금문과 소전에 나타난 모양으로 볼 때,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래서 허신도 『說文』에서 ‘也는 女陰也’라고 하였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也(야)가 단순히 여성의 생식기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의 자궁(子宮)을 뜻한다. 이러한 흔적은 땅(土)은 만물을 키워내는 어머니(也)라는 점에서 ‘땅 地(지)’, 물(氵)은 만물을 키워내는 근원(也)이라는 점에 ‘못 池(지)’라 하였음을 볼 수 있다. 따라서 施(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부족의 특성을 알리는 상징적인 깃발(㫃)을 꽂아둔 신전은 곧 아이를 키워내는 어머니의 자궁(也)처럼 마을 사람 모두에게 안위를 제공한다는 데서 ‘베풀다’는 뜻을 부였으며, ‘널리 퍼지다’ ‘퍼지다’ ‘번식하다’의 의미는 확장된 것이다.
藏頭露尾란 머리는 감추었지만 꼬리는 드러나 있다는 뜻으로, 사실을 숨겨두려고 하지만 거짓의 실마리는 이미 드러나 있다는 것. 원나라 장가구(張可久)가 지은 『점강진·번귀거래사點降唇·飜歸去來辭』에서 유래했다. 즉 꿩이나 타조는 적에게 쫓기면 머리를 덤불속에 숨기지만 꼬리가 드러난 줄도 모른다는 것으로, 세상이 다 아는 사실을 감추려 하는 일을 두고 하는 말이다.
감출 藏(장)의 구성은 풀 초(艹)와 착할 장(臧)으로 짜여 있다. 艹(초)는 두 포기의 풀을 본뜬 것으로 풀 草(초)의 본디글자이며 모든 풀의 총칭으로서 보통 자형의 상부에 놓이는 艸(초)의 간략형이다. 臧(장)은 평상이나 형틀을 의미하는 나뭇조각 장(爿)과 노예의 튀어나온 눈을 뜻하는 신하 신(臣) 그리고 창과 같은 무기를 뜻하는 창 과(戈)로 구성되었다. 즉 그 의미는 형틀(爿)에 묶여 뾰쪽한 창(戈)끝으로 전쟁 포로의 눈(臣)을 찌르니, 잡혀온 노예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 ‘착하다’는 의미를 부여 했다. 여기에 풀 초(艹)를 더한 藏(장) 갖은 고초를 당한 노예(臧)가 옥을 도망쳐 나와 풀숲(艹)에 숨어버렸으니, ‘숨다’ 또는 ‘감추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머리 頭(두)의 구성은 제사 그릇 두(豆)와 머리 혈(頁)로 이루어졌다. 豆(두)는 뚜껑(-)을 덮어 따뜻한 국물을 담을 수 있는 발(ㅛ)이 달린 비교적 작은 그릇(口)을 본뜬 것으로 일반적으로 제기(祭器)를 의미한다. ‘콩’이란 의미는 콩이나 팥을 뜻하는 ‘좀콩 荅(답)’과 발음이 비슷한 데서 가차하여 쓴 것이며, 보다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식물을 뜻하는 풀 초(艹)를 더해 ‘콩 荳(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되어 있다. 따라서 頭(두)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릇(豆)처럼 생긴 머리통(頁)이라는 데서 ‘머리’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슬 露(로)의 구성은 비 우(雨)와 길 로(路)로 이루어졌다. 雨(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雨는 물이 구름으로부터 떨어진다는 뜻이다. 一(일)은 하늘을 본떴고 冂(경)은 구름을 상형하였는데, 물방울이 그 사이에서 떨어진다.”고 하였다. 달리 해석한다면, 하늘(一)아래 한정된(冂) 지역에 국한하여 빗방울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路(로)의 구성은 발 족(足)과 각각 각(各)으로 짜여 있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있다”라고 하였다. 各(각)은 뒤처져 올 치(夂)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뒤처져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口(구)는 움푹하게 파인 고대인들의 거주지인 움집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저마다 자기의 움집(口)으로 돌아간다(夂)는 데서 ‘각각’ ‘각기’라는 뜻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路(로)는 일방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가고(足) 오는(各) ‘길’을 의미한다. 따라서 露(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오가는 길가(路)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잎에 맺힌 물방울(雨)이라는 데서 ‘이슬’을 뜻하게 되었다. 여기선 ‘드러나다’는 의미로 쓰였다.
꼬리 尾(미)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사람의 머리털이나 짐승의 털 모양을 본뜬 털 모(毛)로 이루어져 있다. 尸(시)의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과 흡사하기도 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여기선 동물의 엉덩이부분을 뜻한다. 이에 따라 尾(미)의 의미는 동물의 엉덩이 부분(尸)에 나 있는 털(毛)이라는 데서 ‘꼬리’를 뜻하게 되었다.
牛生馬死란 소는 살아나고 말은 죽는다는 뜻으로, 소와 말의 습성을 빌어 삶의 지혜를 비유적으로 적용할 때 쓰인다. 소와 말을 호수에 동시에 던지면 발 빠른 습성을 지닌 말은 엄청난 속도로 뭍으로 나오지만 소는 느릿느릿 여유롭게 헤엄쳐 나온다. 그러나 홍수가 난 물속에서는 이야기가 달라진다. 조급한 습성의 말은 거센 물길을 역류하며 힘을 과시해 보지만 결국엔 지치고 지쳐 물에 빠져 죽는다. 하지만 소는 물길을 거스르지 않고 거센 물결에 몸을 맡긴 채 여유롭게 물가로 빠져나와 살게 된다는 것.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속담과 진배 없다.
소 牛(우)는 소의 뿔과 몸통을 강조한 상형글자이다. 牛(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牛는 일하다와 어떠한 이치라는 뜻이며, 두 개의 뿔과 머리를 나타낸 이 셋과 양 어깨 및 꼬리의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소는 농경문화에서는 논밭을 일구는 일(事)의 대명사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을 대신해서 천제(天祭)에 바치는 제물로 쓰임에 따라 상서로움을 안고 있는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돼지(豕)나 말(馬), 코끼리(象) 등은 네 다리를 그려 넣고 있는데 반해 신성한 의미의 소(牛)는 다리를 그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牛(우)자는 어떤 중요한 물건(物件)을 나타내거나 제사와 관련된 희생(犧牲)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날 生(생)은 땅(土)에서 풀이나 나무가 싹터(屮) 자라나는 모습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로 ‘낳다’를 본뜻으로 하고 ‘살아 있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후대로 오면서 또한 ‘날것’ ‘삶’이란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죽을 死(사)는 부서진 뼈 알(歹=歺)과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을 나타낸 匕(비) 자로 구성되었다. 歹(알)에 대해 『說文』에서는 “歺은 뼈가 부서진 잔해를 말한다. 뼈 발라낼 冎(과) 자를 반 쪼갠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冎(과) 자는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둔 것인데, 이를 또 반으로 쪼개니 뼈의 잔해라는 뜻이다. 따라서 歺(알: 歹)이 다른 부수와 자형을 이룰 때는 ‘죽음’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즉 앙상하게 뼈만 남은 백골(歹) 앞에서 사람이 꿇어앉아(匕)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死灰槁木이란 불이 꺼진 식은 재와 말라 죽은 나무란 뜻으로, 자기 자신 자체도 잊어버린 극도의 고요한 상태를 말한다. 『장자』「제물론」에서 언급되고 있는데 보다 자세한 것은 『채근담』에 기록되어 있다. “움직임을 좋아하는 자는 구름 속의 번개 같고 바람 앞의 등불 같으며, 고요함을 즐기는 자는 식은 재 같고 마른 나무와 같다. 모름지기 멈춘 물속에 떠 있는 구름처럼 고요하면서도 솔개가 날아오르고 물고기처럼 뛰는 기상이 있어야 한다. 이것이야말로 도(道)의 심체(心體)를 갖춤이라(好動者雲電風燈, 嗜寂者死灰槁木. 須定雲止水中, 有鳶飛魚躍氣象, 纔是有道的心體)”라고 하였다. 수행의 요결을 말하고 있다. 즉 지나친 움직임이나 지나친 고요함보다는 움직이는 가운데도 고요함을 갖추고 고요함 가운데도 움직임이 있어야 한다는 말이다. 정중동(靜中動)과 동중정(動中靜)의 조화를 이루어야 함을 강조한 것이다.
죽을 死(사)는 부서진 뼈 알(歹=歺)과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을 나타낸 匕(비) 자로 구성되었다. 歹(알)에 대해 『說文』에서는 “歺은 뼈가 부서진 잔해를 말한다. 뼈 발라낼 冎(과) 자를 반 쪼갠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冎(과) 자는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둔 것인데, 이를 또 반으로 쪼개니 뼈의 잔해라는 뜻이다. 따라서 歺(알: 歹)이 다른 부수와 자형을 이룰 때는 ‘죽음’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즉 앙상하게 뼈만 남은 백골(歹) 앞에서 사람이 꿇어앉아(匕)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재 灰(회)의 구성은 손(又)이 변형된 자형상부와 모닥불이 타오르는 모양을 본뜬 불 화(火)로 이루어졌다. 갑골문이나 금문, 소전에 이르기 까지 火(화) 자 위에 손(又)이 그려져 있었다. 又(우)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에 따라 灰(회)의 의미는 손(又)으로 만질 수 있을 만큼 불길(火)이 사그라들었다는 데서 타고남은 ‘재’를 뜻하게 되었다.
마를 槁(고)의 구성은 나무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과 높을 고(高)로 이루어졌다. 高(고)는 성(城)의 망루를 본뜬 상형글자다. 즉 高(고)자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출입구(口)를 갖춘 성곽(冂)위에 높이 지어진 망루(자형상부의 亠+口)를 상형한 것으로 높이 치솟은 모양에서 ‘높다’ ‘뽐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비싸다’ ‘뛰어나다’ 등은 파생된 뜻이다. 따라서 槁(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 지나치게 높게(高) 자라 수액공급이 잘 안되어 말라죽었다는 데서 ‘마르다’ ‘말라 죽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일상에서는 槁(고) 자 보다는 같은 뜻을 지닌 枯(고) 자가 보다 많이 쓰인다.
나무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즉 한그루의 나무를 표현하였다.
愛蓮說(애련설)이란 연꽃을 군자에 비유하여 사랑한 송나라 주돈이의 글이다. 일부를 옮겨보면 “나는 유독, 진흙에서 나왔으나 진흙탕에 물들지 않고, 맑고 출렁이는 물에 씻겼으나 요염하지도 않고, 줄기의 속은 비었고 밖은 곧으며, 덩굴은 뻗지 않고 가지도 치지 아니하며, 향기는 멀수록 더욱 맑고, 꼿꼿하고 깨끗이 서 있어 멀리서 바라볼 수는 있으나 함부로 가지고 놀 수 없는 연꽃을 사랑한다. 내가 말하건대, 국화는 꽃 중에 속세를 피해 사는 자요, 모란은 꽃 중에 부귀한 자요, 연꽃은 꽃 중에 군자다운 자라고 할 수 있다.(予獨愛蓮之出淤泥而不染,濯清漣而不妖,中通外直,不蔓不枝,香遠益清,亭亭靜植,可遠觀而不可褻玩焉。予謂菊花之隱逸者也;牡丹花之富貴者也;蓮花之君子者也)
사랑 愛(애)자는 손톱 조(爫)와 덮을 멱(冖), 그리고 마음 심(心)과 천천히 걸을 쇠(夊)로 구성되어 있다. 조(爫)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爪는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을 ‘爪’라 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冖(멱)은 천이나 수건 등으로 어떤 물건을 덮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夊(쇠)에 대해 허신은 “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천천히 걸을 夊(쇠)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더디 걷거나 끌려가지 않으려는 뜻을 담게 된다. 이 愛(애) 자를 살펴보면 옛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다. 사랑은 줄다리기라는 말처럼 일방적이어서는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의 닫힌 마음(冖 +心)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얻으려는데(爫), 상대는 마음을 줄듯 말듯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것(夊)이 오래가는 사랑법이란 데서 ‘사랑’을 뜻하게 되었다.
연밥 蓮(연, 련)의 구성은 풀 초(艹)와 잇닿을 연(連)으로 이루어졌다. 艹(초)는 풀 艸(초)의 간략형으로 무성하게 돋아난 풀을 뜻하는데, 두 개의 싹날 屮(철)로 구성되었다. 艹(초)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초목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連(연)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수레 거(車)로 짜여 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車(거)는 우마차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자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 자형에서는 하나의 바퀴(曰)만을 그려놓았는데, 중앙의 ‘丨’은 굴대를 나타냈고 아래위의 ‘二’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굴대의 빗장이다. 그래서 連(연)은 수레의 바퀴(車)가 연속해서 굴러가듯이 간다(辶)데서 ‘잇닿아 가다’ ‘이어지다’를 뜻한다. 따라서 蓮(연)의 전체적인 의미는 연뿌리가 마치 수레바퀴가 잇닿아(連) 있듯 한 식물(艹)이란 데서 ‘연밥’ ‘연실’ ‘연꽃’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말씀 說(설, 기뻐할 열)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기쁠 태(兌)로 짜여 있다. 言(언)은 입(口)에서 나온 소리(辛)를 나타낸 글자로써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언어적 행위와 관련된 뜻을 지니게 된다. 兌(태)는 여덟 팔(八)과 형 형(兄)로 구성되었다. 입(口)을 강조한 사람(儿)인 형은 아우를 말로써 타이르거나 또는 형제를 대표해 조상신(示)에게 축문을 아뢰는 사람(兄)이란 뜻이 祝(축)에 담겨 있다. 그런데 여기서 兌(태)는 사람(儿)이 누군가에게 말하며 웃을 때 입(口)가에 지는 주름(八)을 나타낸 것으로 기뻐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따라서 說(설)의 전체적인 의미는 다른 사람에게 말(言)을 할 때는 입가에 미소를 띠며 기뻐하는(兌) 마음이 담겨 있어야 한다는 데서 ‘말씀’이란 뜻과 함께 ‘기뻐하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狐假虎威란 여우가 호랑이의 위세를 빌려 호기를 부린다는 뜻으로, 남의 권세를 빌려 위세를 떤다는 의미다. 『戰國策전국책』「楚策초책」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자.
전국시대 초나라에는 실권을 장악한 소해휼이라는 재상이 있었는데, 이웃나라들이 몹시 두려워했다. 초나라 선왕을 그것을 이상히 여기며 신하들에게 묻자 강을이 대답하길 “모든 짐승을 잡아먹는 호랑이가 어느 날 여우를 잡았습니다. 여우가 말하길 ‘감히 그대는 날 잡아 먹질 못할 걸세. 천제께서 나를 백수의 왕으로 임명했네. 이제 그대가 날 잡아 먹으면 천제의 명을 거역하는 걸세. 그대가 날 믿지 못하겠다면 내가 앞장설 테니 따라와 보게. 모든 짐승들이 날 보면 감히 달아나지 않겠는가?’ 호랑이는 여우의 말대로 그 뒤를 따라 갔습니다. 과연 모든 짐승들이 달아났답니다. 실은 짐승들이 호랑이를 보고 달아난 것이었지만 호랑이는 그 사실을 깨닫지 못한 것이지요.(虎求百獸而食之 , 得狐. 狐曰: ‘子無敢食我也. 天帝使我長百獸, 今子食我, 是逆天帝命也. 子以我為不信, 吾為子先行, 子隨我後, 觀百獸之見我而敢不走乎?’ 虎以為 然, 故遂與之行. 獸見之皆走. 虎不知獸畏己而走也)” 연이어 말하길 “이웃나라들이 소해휼을 두려워하는 것이 아니라 실은 대왕이 거느린 백만 대군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이지요.”
여우 狐(호)의 구성은 큰 개 견(犭)과 오이 과(瓜)로 이루어졌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인다. 瓜(과)는 상형글자로 오이덩굴에 열려 있는 오이의 모양을 그려냈다. 자형외곽은 넝쿨을 뜻하고 가운데는 길쭉하게 매달려 있는 오이와 같은 열매를 의미한다. 이에 따라 狐(호)의 의미는 오이(瓜)처럼 그 몸이 길쭉한 개(犭)와 비슷한 ‘여우’를 뜻한다.
빌 叚(가)는 금문에 처음 보이는데, 바위산과 같은 산기슭(厂엄)아래에서 채굴한 광물을 뜻하는 두 점(二)과 우변에 그것을 잡으려는 두 손(ㄷ의 반대모양과 又)이 그려져 있다. 즉 산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모양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곧 대자연에서 사람들이 좋아 하는 옥이나 금 또는 광물을 잠시 ‘빌려’ 쓴다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범 虎(호)는 호랑이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것으로 자형상부는 머리를, 가운데(厂과 七)는 늘름한 몸통을, 그리고 하부는 사람의 발(儿)을 가차하여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다른 부수에 더해 새로운 자형을 만들 때는 보통 하부의 발(儿)을 생략한 채 虍(호)만을 사용하는데, 그래도 호랑이라는 본뜻은 그대로 있다.
위엄 威(위)의 구성은 도끼 월(戉)의 변형인 개 술(戌)과 여자 여(女)로 이루어져 있다. 戉(월)은 부족 내의 큰 의식을 치를 때 그 위엄과 권위를 나타내기 위해 장식용으로 활용했던 ‘큰 도끼’모양의 무기를 말한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威(위)는 모계사회 때의 유풍을 담은 글자로 그 의미는 가정 내의 모든 일을 관장했던 여자(女) 가장의 위엄을 나타내기 위해 거실과 같은 곳에 큰 도끼(戉)를 걸어두었던 것을 그려낸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위엄은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는 다만 ‘시어머니’로서의 역할로 축소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위엄’을 뜻하면서도 ‘시어머니’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儉而不陋 華而不侈란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다는 뜻으로, 백제 건축물에 대한 『三國史記삼국사기』의 저자 김부식의 평이다. “백제의 시조 온조왕 15년 정월에 새로운 궁궐을 지었는데 검소하지만 누추하지 않았고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았다(十五年 春正月 作新宮室 儉而不陋 華而不侈)”는 대목에서 유래하였다. 이러한 김부식의 평은 백제에만 국한되지 않고 우리 조상들이 남긴 건축문화가 그렇다. 중국의 지나치게 거대하고 화려함, 일본의 축소지향적인 정원문화와는 달리 원림 속에 녹아들려는 자연친화적인 우리 조상들의 지혜가 담긴 문화유산정신이다.
검소할 儉(검)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다 첨(僉)으로 이루어졌다. 僉(첨)은 모일 집(亼)과 사람의 입을 뜻하는 두 개 입 구(口)로 짜인 부르짖을 훤(吅)과 두 개의 사람 인(人)으로 짜여 있다. ‘모이다’ ‘모으다’의 뜻을 지닌 亼(집)은 많은 글자에 쓰이고 있는데, 때에 따라서는 ‘밥뚜껑’ ‘지붕’ ‘거푸집’ 등 다양한 용도를 지닌 단순화된 자형이다. 이에 따라 그 의미는 여러 사람(人人)들이 한데 모여(亼) 이구동성(吅)으로 말한다하여 ‘모두’ 혹은 ‘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儉(검)의 전체적인 의미는 거두어 들인 곡식을 모든 사람(僉)에게 나누어주는 사람(亻) 입장에서는 ‘넉넉하지 못하다’ ‘적다’는 뜻이 생겨났고, 이러한 사람을 가리켜 ‘검소하다’는 뜻을 부여했다.
말 이을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렛나루를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되었다.
아닐 不(부, 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빛날 華(화)는 풀 초(艹)와 잎이 늘어진 가운데 화려하게 꽃봉오리가 진 모양을 상형한 모양으로 이루어져 ‘꽃’을 뜻하였다. 그런데 주나라 때부터 쓰였던 꽃봉오리를 본떠 만든 이 ‘꽃 華(화)’가 붓으로 쓰기가 쉽지 않자 초서(草書)가 유행한 한나라 말 무렵부터 간편하게 쓰기 위해 꽃 화(花)를 별도로 만들었고, 華(화)는 ‘화려하다’ ‘빛나다’ ‘번성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사치할 侈(치)는 사람 인(亻)과 많을 다(多)로 구성되었다. 亻(인)은 서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多(다)에 대해 한대(漢代)의 문자학자 허신은 『說文』에서 “多는 포개어졌다는 뜻이다. 夕(석)이 포개어진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저녁이란 어둠이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多(다)라 한다. 夕(석)이 포개어지면 多(다)가 되고, 日(일)이 포개어지면 疊(첩)이 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고기육(肉)의 모양이 ‘夕’과 비슷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多(다)자 역시 두 개의 고깃덩어리(夕)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라 ‘많다’라는 뜻이 생겨 낳다. 따라서 侈(치)의 전체적인 의미는 상하기 쉬운 고깃덩이를 쌓아두고(多) 혼자만 먹는 사람(亻)을 가리켜 ‘오만’하고 ‘사치스럽다’고 여겼다.
擧案齊眉란 밥상을 눈썹 높이로 들어 올려 조신하게 남편 앞으로 나아간다는 뜻으로, 남편을 깍듯이 공경한다는 의미로 쓰인다. 주경야독하며 학문에 일가를 이루었던 양홍과 그의 아내 맹광의 소박하고 빈한한 삶을 살면서도 서로를 존중하고 공경한 일화를 기록한 『後漢書후한서·梁鴻傳양홍전』에서 유래하였다.
들 擧(거)는 마주들 여(舁)와 더불어 여(与) 그리고 손 수(手)로 구성되었다. 舁(여)의 자형상부는 두 손을 마주하는 모양이며 하부는 두 손으로 뭔가를 받드는 형태(두 손으로 받들 공廾)로 짜여 있다. 与(여)는 짚이나 나무껍질 등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또한 手(수)는 다섯 손가락과 손목 부위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擧(거)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의 민속놀이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하게 꼰 새끼줄(与)을 두 사람이 마주들(舁)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손(手)을 써서 ‘들어 올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책상 案(안)의 구성은 편안할 안(安)과 나무 목(木)으로 이루어졌다. 安(안)의 구성은 집 면(宀)과 여자 여(女)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 그려진 宀(면)은 지붕뿐만 아니라 양 벽면을 길게 늘어뜨려 그려내고 있어 깊숙하고 은밀한 내부모양을 암시하고 있다. 주로 사람이 주거하며 사는 집을 뜻한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安(안)자의 본래 의미는 신을 모신 사당(宀)에서 고요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女)을 뜻하였다. 고대 모계사회에서는 신을 모신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부계사회로 오면서 그 뜻이 여자(女)가 집안(宀)에 머물러 있어야 가족의 화목이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따라서 案(안)의 전체적인 의미는 편안하게 앉아서(安) 책을 보거나 글을 쓸 수 있도록 가공된 나무(木)라는 데서 ‘책상’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가지런할 齊(제)는 갑골문에는 창끝모양 세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것을 보리이삭과 같은 곡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형인 齊(제)를 눈여겨보면 그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도(刀)나 氏(씨), 그리고 중앙부의 辛(신) 모양은 모두가 도검류와 관련이 깊으며 자형하부는 그것을 가지런히 꽂을 수 있는 대(臺)라 할 수 있다. 즉 칼이나 창을 일정하게 짠 틀에 나란히 꽂아둔 모양을 본떠 ‘가지런하다’는 뜻을 부여했다.
눈썹 眉(미)의 구성은 눈썹모양을 그려낸 자형상부와 눈 목(目)으로 이루어졌다. 目(목)은 사람의 한 쪽 눈을 본뜬 것으로 쓰기에 편리하도록 세로로 세운 모양이다. 따라서 眉(미)의 의미는 눈(目)위의 눈썹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눈썹’이란 뜻과 함께 장수하여 ‘눈썹이 긴 노인’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긴 장마를 뜻하는 한자는 어떻게 만들어 졌을까!
올해 들어 가장 긴 장마가 계속되고 있다. 옛사람들은 이러한 장마를 어떻게 글자로 표현했을까! 살펴보면 볼수록 옛 사람들의 지혜가 글자 속에 농축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사흘 이상 계속되는 비를 표현한 글자가 장마 림(霖)이다. 당연히 비를 뜻하는 비 우(雨)가 부수로 역할을 하고 있다. 즉 하늘(一)아래 한정된(冂) 지역에 국한하여 빗방울(::)이 떨어지는 상황을 글자화 한 것이다. 수풀이 우거진 숲(林)에 그치지 아니하고 계속해서 내리는 비(雨)를 뜻한다. 서로 통용되는 글자로 물 수(氵)를 더한 글자가 장마 림(淋)이며 동일한 뜻을 지닌 비슷한 글자로 비(雨)가 지나치게 내려 숲(林)이 물(氵)로 범람한 모양을 그려낸 장마 람(䨬)이라는 글자도 있다.
장마가 계속되면 저지대는 침수되기 마련이다. 이러한 내용을 그려낸 글자가 있다. 괼 담(湛, 잠길 침, 장마 음)은 빗물을 뜻하는 물 수(氵)와 심할 심(甚)으로 이루어졌다. 甚(심)은 맛있는 음식(甘)이나 남녀(匹)의 애정은 자칫 지나치기 쉽다는 뜻을 담아 ‘심하다’ ‘정도가 지나치다’ 등의 의미로 쓰이는데, 즉 지나치게(甚) 많은 비가 내려 물(氵)에 잠긴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장마가 계속되어 드높은 성곽의 누각(高)까지도 물(氵)에 잠긴 모양을 그려내 장마 호(滈)가 만들어졌다. 이에 비해 짧은 장마를 표현한 글자도 있는데, 즉 함지박(函) 정도만 가득 채울 정도의 비(雨)라는 데서 장마 함(涵)이라는 글자도 만들어졌다.
또한 지루할 정도로 지리멸렬하게 10일 이상 계속되는 비를 뜻하는 글자도 있다. 장마 음(霪)인데, 시원한 소낙비도 아니고 찌질찌질 음란(淫)하게 계속 내리는 비(雨)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에 비해 농작물에 유익하도록 때맞추어 오는 비를 뜻하는 장마 주(霔)도 있다. 글자의 주요한 뜻을 지닌 물댈 주(注)는 물길(氵)을 큰 강과 같은 주류(主)에서 끌어 댄다는 데서 ‘물을 대다’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여기에 적당히 비(雨)도 내렸으니 농부의 마음이 어땠을까!
蜀犬吠日이란 촉나라의 개는 해를 보고 짖어댄다는 뜻으로, 식견이 부족한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촉나라, 지금의 사천성 일대는 산지가 많고 늘 운무가 짙게 드리워 일 년 내내 해를 볼 수 있는 날이 그리 많지 않다. 이 탓에 이곳의 개들은 모처럼 해를 보면 뜬금없는 것으로 여겨 짖어댄다는 데서 유래했다. 비슷한 성어로 월견폐설(越犬吠雪: 따뜻한 날씨의 월나라의 개는 좀처럼 볼 수 없는 눈을 보면 짖어댄다)이 있다.
누에 蜀(촉, 애벌레 촉)은 누에의 상형(罒)과 고치에 싸인(勹) 번데기(虫)를 의미한다는 데서 ‘누에’ ‘나비 애벌레’를 뜻하게 되었으며, 중국 사천성의 옛 지명이 ‘촉나라’였던 점에서 ‘나라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이 지역은 고대부터 누에고치에서 뽑아 짠 비단의 산지였다.
개 犬(견)은 개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개의 가장 큰 특징인 혀를 내민 입모양을 점(丶)으로 표현하였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자형의 좌변에 놓일 때는 주로 犭(견)을 사용하게 된다. 『說文』에서는 “犬은 개가 한쪽 발을 들고 있는 모양으로 상형글자이다. 공자는 ‘犬(견) 자를 보면 개를 그려놓은 것 같다.’고 했다.”라고 하였다.
짖을 吠(폐)는 입 구(口)와 앞서 살펴본 개 견(犬)으로 이루어졌다.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이다. 여기서는 개가 짖어대는 입을 뜻한다. 따라서 吠(폐)의 전체적인 의미는 개(犬)가 뭔가를 보고서 짖어대는 입(口)을 그려내 ‘짖어대다’ ‘욕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날 日(일)은 태양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해의 둥근 모양 가운데에 점(丶) 혹은 ‘一’과 같이 한 획을 그려 넣었다. 그 의미에 대해서는 여러 주장이 있다. 그 중에서도 태양의 흑점(黑點)이라는 설과 검은 까마귀라는 주장이 있는데, 태양과 세발 까마귀를 숭배한 고대 사람들의 신화적 이야기가 반영된 것으로 보는 게 타당할 것 같다. 『說文』에서는 “日은 가득 차 있음을 말한 것이다. 태양의 정기 및 모양이 이지러지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과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태양의 둥근 모양과는 달리 네모지게 그린 것은 거북껍질이나 소의 견갑골 등에 새기려면 아무래도 둥글게 칼을 쓰는 것보다는 결을 따라 네모지게 하는데 편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가운데 一(혹은 점)에 관해서는 흑점 혹은 새발까마귀라며 논란이 많은데, 북두칠성의 제6성 양 옆에 위치한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보필(輔弼)성을 지목하여 명명한 것을 볼 때 결코 옛사람들의 지혜를 무시할 수는 없다고 본다.
沐猴而冠이란 원숭이를 목욕시킨 후 관을 씌웠다는 뜻으로, 의관은 훌륭하나 마음은 사람답지 못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史記사기』「項羽本紀항우본기」에서 유래했다. 유방으로부터 진나라의 수도 함양을 넘겨받은 항우는 약탈과 방화를 일삼고 민심도 잃게 된다. 함양은 사람들도 떠나고 폐허가 되자 반대를 무릅쓰고 자신의 고향인 팽성으로 옮기려 하자 간의대부 한생(韓生)이 천도불가론을 펼쳤으나 듣지 않자 혼잣말로 중얼거리듯 “원숭이를 목욕시킨 후 관을 씌운 꼴이군!(沐猴而冠)”이라 하자, 다른 사람으로부터 이의 속뜻을 전해들은 항우는 끓는 기름가마에 삶아 죽이고 말았다. 결국 천도를 감행한 항우는 한생의 예언대로 유방에게 패하고 자결하고 만다.
머리 감을 沐(목)의 구성은 물 수(氵)와 나무 목(木)으로 짜여 있다. 여기서 木은 소리요소이기는 하지만, 의미요소로도 쓰였다. 하늘에서 비(雨)가 쏟아져 내리면 나무의 늘어진 가지에 붙은 이파리들은 자연스레 씻김을 하게 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나뭇가지처럼 늘어진 머릿결(木)을 가지런히 빗어내며 물(氵)로 헹궈 감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원숭이 猴(후)의 구성은 큰 개 견(犭)과 과녁 후(侯)로 이루어졌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인다. 侯(후)의 초기글자인 갑골문을 살펴보면 과녁을 그린 ‘厂’모양과 화살을 뜻하는 矢(시)로 구성되었는데, 한나라의 소전에 이르면서 현재의 자형과 비슷한 형태를 갖추었다. 현재의 자형의 좌변에 놓인 亻(인)은 사람의 뜻이 아니라 과녁을 뜻하는 ‘厂’이 변한 것이며, 자형상부에 놓인 ‘勹’모양이 사람을 뜻한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侯(후)에 대한 의미를 전체적으로 볼 때, 옛날에는 ‘활을 잘 쏘는 사람’에게 벼슬을 내렸기에 ‘제후’ 또는 ‘벼슬 이름’이란 뜻과 함께 ‘과녁’이란 의미로 고착화되었다. 활을 쏘면서 이 과녁(侯)을 살피는 사람(亻)이란 구성으로 ‘살피고 바라보다’가 본뜻인 候(후)는 ‘날씨’ ‘기후’ ‘5일’이란 의미로까지 확장되었다. 따라서 猴(후)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물에 대해 잘 살펴보는(侯) 특징을 지닌 개(犭)와 비슷하게 생긴 동물을 뜻해 ‘원숭이’란 의미를 부여했다.
이을 而(이)는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사람의 옆얼굴에 난 구렛나루를 의미하기도 하였지만 코밑과 턱에 난 수염을 뜻하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인 ‘수염’보다는 말을 이어주는 어조사로써 널리 쓰이고 있다. 즉 위아래의 수염처럼 말을 ‘머뭇거리다’가도 다음 문장으로 ‘이어줌’ 을 뜻해 ‘말 이을 이’로 확장되었다.
갓 冠(관)의 구성은 덮을 멱(冖)과 으뜸 원(元) 그리고 손을 뜻하는 촌(寸)으로 짜여 있다. 冖(멱)은 천이나 수건 등으로 어떤 물건을 덮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元(원)은 사람의 머리를 나타내는 二(이)와 사람의 다리 모양을 표현한 儿(인)으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인체의 머리(二)를 강조하여 ‘머리’ ‘으뜸’ ‘두목’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冠(관)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의 머리(元)위에 천으로 만든 모자, 즉 갓을 손(寸)으로 씌워주는(冖) 모양으로 고대의 성년식인 관례(冠禮)를 치르는 모습을 담아 ‘갓’이라는 뜻을 부여 했다.
光陰如箭이란 세월의 흐름이 쏜살같이 날아가는 화살과 같이 빠르다는 뜻으로, 세월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광음유수(光陰流水), 광음여시(光陰如矢) 등이 있다. 여기서 광음(光陰)이란 밝게 빛나는 태양과 밤을 의미하기도 하는 달이라는 뜻으로 흘러가는 시간이나 세월을 말한다.
빛 光(광)은 불 화(火)의 변형부수와 어진사람 인(儿)으로 구성되었다. 火(화)는 타오르는 불꽃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갑골문과 금문을 참조해 볼 때, 光(광)자를 이루는 자형상부의 모양에서 세 점으로 된 것은 불 화(火)의 변형이며 一(일)은 불을 담은 화로로 보인다. 또한 자형하부는 사람이 꿇어앉은 모양이다. 따라서 光(광)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둠을 밝히기 위해 사람(儿)이 머리 위로 불꽃(火)이 타오르는 횃불이나 화로를 들고 있는 모양으로 인위적으로 밝힌 빛을 뜻한다. 또 한편으로 우리 인체 중에 빛의 입자인 광자(光子)가 가장 많이 발현되는 곳이 머리부위인 점을 감안해 보면, 성인(聖人)에게 나타난 후광(後光)과도 전혀 무관하지는 않을 것이다.
응달 陰(음)의 구성은 언덕 부(阝)와 그늘 음(侌)으로 이루어졌다. 阝(부)는 인공으로 만든 계단을 본뜻으로 한 阜(부)의 약자(略字)다. 갑골문을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 모양이다. 즉 고대 황하유역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토굴을 오르내리기 쉽게 통나무를 깎아 계단을 만든 모양이었다. 또한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기 쉽도록 흙을 깎아내 계단을 만들었는데 본뜻인 ‘계단’보다는 ‘높은 언덕’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陰(음)의 옛글자인 侌(음)은 이제 금(今)과 이를 운(云)으로 구성되었다. 今(금)은 모일 집(亼)과 미칠 급(及)의 옛글자인 ‘ㄱ’모양으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는 세월이 흐르고 쌓여서(亼) 오늘에 이르렀다(ㄱ)는 데서 ‘이제’ ‘오늘’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云(운)은 휘몰아 가는 뭉게구름을 상형한 ‘구름’의 본래 글자였으나, ‘이르다’ ‘말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자 뜻을 보다 명확히 하기 위해 빗방울(雨)을 머금은 구름(云)이란 뜻을 담아 ‘구름 雲(운)’자를 따로 만든 것이다. 이에 따라 侌(음)은 하늘에 지금(今) 막 구름(云)이 피어오른 모양을 그려내 ‘그늘이 지다’는 뜻을 부여했다. 따라서 陰(음)의 전체적인 의미는 높은 산이나 언덕(阝)으로 인해 생긴 그늘(侌)을 그려내 ‘그늘’ ‘응달’을 뜻하게 되었다.
같을 如(여)는 여자 여(女)와 사람의 입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이에 따라 如(여)의 의미는 시대적인 변천에 따라 다른 뜻이 파생되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최초의 의미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女)이 소원하는 말(口)과 ‘같이’ 이루어달라는 데서 ‘같다’는 뜻이 발생했다. 그러다 모계사회가 무너지고 남자 중심의 유교가 널리 유행하면서 여자(女)는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라 부모 남편 자식의 말(口)에 따라야 한다는 데서 ‘따르다’는 뜻도 파생하였다.
화살 箭(전)의 구성은 대나무를 상형한 대 죽(竹)과 앞 전(前)으로 이루어졌다. 前(전)은 초기 문자인 갑골문에 비해 자형이 많이 변해 버렸다. 초기에는 발을 뜻하는 止(지) 아래에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는 대야의 모양과 물방울이 그려져 있다. 즉 제사에 참여하기에 앞서 반드시 손발을 씻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앞서’ ‘먼저’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금문에 이르러서는 세숫대야의 모양이 ‘月(월)’의 형태를 취해 ‘肯(긍)’으로, 또는 ‘止아래에 舟’의 모양이다가 오늘날과 같은 ‘前’의 형태로 변했다. 그 뜻은 조상신을 모신 사당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숫대야(月)에 발(止)을 담가 깨끗이 씻고 의관을 칼(刀=刂)로 자르듯 가지런히 한 후에 제사를 지낸다하여 ‘앞서’ ‘먼저’란 뜻을 부여했다. 또한 자형상부에 놓였던 止(지)의 의미를 살려 ‘앞으로 나아가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箭(전)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나무(竹)로 만든 화살은 앞(前)으로 날아간다는 데서 ‘화살’ ‘화살대’를 뜻하게 되었다.
美人薄命이란 아름다운 사람은 명운이 적어 요절하기 쉽다는 뜻으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인 소식(蘇軾)이 양주지방의 관리로 있을 때 파란만장한 삶을 살다 요절한 젊고 어여쁜 여승의 이야기를 듣고서 지은 [薄命佳人詩박명가인시]의 “예로부터 아름다운 사람은 다분히 명운이 적다. 문을 닫고 봄이 끝나고 나면 버드나무 꽃도 지고 말리라(自古佳人多薄命 閉門春盡楊花落)”라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비슷한 말로 홍안박명(紅顔薄命)이 있다.
아름다울 美(미)의 구성은 두 개의 뿔과 털에 감싸인 통통한 몸집을 지닌 양의 모습을 상형한 양 양(羊)과 큰 대(大)로 짜여 있다. 大(대)는 두 팔을 활짝 편 사람의 모습을 담아 사람의 몸짓으로 나타낼 수 있는 가장 커다란 모양, 즉 크다는 의미를 부여했다. 일반적으로 아름다운 무늬를 띈 새의 깃털이나 양의 탈(羊) 등으로 머리를 장식한 사람(大)을 이르러 ‘아름답다’고 했지만, 제사문화와 관련지어 유추해보면 상서로운 동물로 여긴 양(羊)을 제물로 바칠 때는 크고 통통(大)한 놈을 ‘아름답게’ 여겨 제상(祭床)에 올렸었다. 동서양 공히 미인도에 나타난 미의식은 ‘크고 통통함’이었다.
사람 人(인)은 서서 손을 내민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지며 좌변에 놓일 때는 亻(인)모양으로, 그리고 하변에 놓일 때는 儿(인)으로 변형된다. 『說文』에서는 “人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 글자는 주문(籒文)으로 팔과 다리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문(籒文)이라 함은 열 가지의 서체의 하나로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라는 사람이 창작한 한자의 글씨체(字體)이다.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엷을 薄(박)의 구성은 풀의 모양을 상형한 풀 초(艹)와 넓을 부(溥)로 이루어졌다. 溥(부)는 물 수(水)의 간략형(氵)과 펼 부(尃)로 구성되었는데, 尃(부)클 보(甫)와 사람의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형성되었다. 甫(보)는 갑골문을 참조할 때 초목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을 상형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인데,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尃(부)는 밭(田)에 뿌린 곡식의 모(屮)가 잘 자라도록 일일이 손(寸)으로 넓게 옮겨 심는다는 데서 ‘펼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溥(부)는 물길(氵)아 널리 퍼진다(尃)는 데서 ‘넓다’는 뜻을 함축하게 되었다. 따라서 薄(박)의 전체적인 의미는 풀(艹)이 넓게(溥) 자란다는 데서 ‘엷다’ ‘적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목숨 命(명)의 구성은 명령할 령(令)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令(령)은 모일 집(亼)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병부 절(卩)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亼(집)은 높다랗게 팔자지붕으로 지어진 사당이나 공공건물을 의미한다. 즉 한마을의 촌장이나 제사장이 거주하는 높다란 건물(亼)안에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卩)이라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무언가 말(口)로써 명령(令)을 내린다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확장되어 꿇어앉은 사람의 운명이 지위 높은 사람의 한 마디에 달려있다는 데서 ‘목숨’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南柯一夢이란 남쪽의 나뭇가지 아래서의 한 바탕 꿈이란 뜻으로, 덧없는 꿈이나 한때의 헛된 부귀영화를 이르는 말이다. 당나라 이공좌(李公佐)의 『南柯記남가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송대의 『侯鯖錄후청록』에서 유래한 한바탕 봄날의 꿈이란 뜻의 일장춘몽(一場春夢)과 심기재(沈旣濟)의 『枕中記침중기』에서 유래한 한단에서의 꿈이란 뜻의 한단지몽(邯鄲之夢)과 비슷한 의미를 지니고 있다.
남녘 南(남)은 고대인들이 살았던 천막과 같은 움집의 출입구가 해가 잘 드는 남쪽을 향해 난 모양을 본뜬 것으로 지금도 집을 지을 때 남향을 선호하는 이유다. 갑골문과 금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일부에서는 남쪽에 배치된 악기를 모양을 상형하였다고 하나, 글자모양을 보았을 때 남쪽을 향해 난 출입구를 갖춘 움집이라는 데서 ‘남쪽’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가지 柯(가)의 구성은 나무 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과 옳을 가(可)로 이루어졌다. 可(가)의 구성은 입의 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와 ‘ㄱ’자모양의 농기구, 혹은 ‘숨 막힐고(亏 자형하부)로 이루어졌다. 可(가)에 대한 해석은 두 개로 나뉜다. ‘ㄱ’자 모양의 농기구로 땅을 일구면서 입(口)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과 누군가 뭔가를 요청했을 때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ㄱ, ‘숨 막힐 고’의 반대 모양) 입(口)에서 나오는 소리는 곧 ‘옳다’거나 ‘허락’한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따라서 柯(가)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뭇가지(木)를 이용해 자루를 한 농기구(可)라는 데서 ‘자루’ ‘도끼자루’ ‘가지’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꿈 夢(몽)의 구성은 눈썹을 뜻하는 ‘艹’와 눈 목(目) 그리고 덮을 멱(冖)과 저녁 석(夕)으로 짜여 있다.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눈썹(艹)과 눈(目)이 강조된 누워있는 사람과 함께 침상을 뜻하는 爿(장)이 그려져 있었으나 현재 자형에서는 빠지고 대신 冖(멱)과 저녁시간임을 알리는 夕(석)이 첨가 되었다. 꿈의 의미를 보다 구체화시켰다고 볼 수 있다. 즉 저녁(夕)에 이불을 덮고(冖) 잠을 자면서 눈썹(艹)을 움직이며 눈(目)으로 무언가를 본다는 의미를 담았다. 분명 눈을 감고 자면서 일상에서처럼 무언가를 눈으로 보는 것을 회화적으로 그려냈다고 볼 수 있다.
有備無患이란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다는 뜻으로, 사전에 미리 준비되어 있다면 우환을 당하지도 않고 뒷걱정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書經서경·說命열명』편에서 유래했다. 은나라의 재상이었던 부열(傅說)이 고종 임금에게 아뢴 “좋은 일이거들랑 행동으로 옮기되 행동은 그 때에 맞게 하십시오. 자신의 능력을 자랑하게 되면 그 공덕을 잃게 됩니다. 오직 모든 일은 그 갖추어야 될 것이 있는 법이니, 준비가 되어 있으면 걱정할 필요가 없게 됩니다.(處善以動 動有厥時 矜其能 喪厥功 惟事事 及其有備 有備無患)”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있을 有(유)의 구성은 손(手)의 모양을 뜻하는 자형상부의 屮(좌)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달월(月)로 이루어졌다. 이에 따라 有(유)는 손(屮)에 고기 덩이(肉=月)를 쥐고 있다는 데서 ‘가지고 있다’ ‘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갖출 備(비)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 상형한 사람 인(亻)과 갖출 비(자형의 우변)로 이루어져 있다. 자형 우변은 화살 통에 거꾸로 꽂혀 있는 화살의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자형상부의 ‘艹’모양은 화살의 깃 모양이 변한 것이며, 하부의 ‘厂 +用’모양은 화살 통에 꽂혀있는 화살대를 본뜬 것이다. 따라서 備(비)의 의미는 병사(亻)가 언제든 뽑아 쏠 수 있도록 준비된 화살(자형우변)이라는 데서 ‘갖추다’ ‘준비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없을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근심 患(환)의 구성은 꿸 관(串)과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여긴 심장을 상형한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串(관)은 꼬챙이 찬(丳)의 본래 자형으로 고대 화폐의 일종인 조개의 가운데 구멍을 뚫어 꿴 모습, 또는 두 개의 고기(丨을 제외한 모양)를 불에 굽기 위해 긴 꼬챙이(丨)에 꿴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꿰다’ ‘익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患(환)은 마음(心)이 꿰뚫어질(串) 만큼 아픈 상태로 요즘말로 하면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질환이라는 데서 ‘근심’ ‘걱정’ ‘병’을 의미하게 되었다.
樂不思蜀이란 향락에 빠져 조국이었던 촉나라는 생각지도 않는다는 뜻으로, 눈앞의 쾌락에 젖어 자기의 본분을 망각하는 어리석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촉나라를 세운 유비(劉備)가 죽고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아들 유선(劉禪)은 제갈량이 죽은 후 위나라가 사마소를 앞세워 침공하자 스스로 손을 묶고 성문을 열고 투항해 버린다. 사마소는 투항한 유선과 장수들에게 주연을 베푸는데, 장수들은 대접을 받으며 고국이 그리워 눈물을 흘리지만 오직 유선만은 향락에 빠진다. 보다 못한 사마소가 고국이 그립지 않느냐고 묻자 유선은 “이렇게 즐거우니 촉나라는 생각나지도 않습니다(此間樂不思蜀)”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즐길 樂(락, 풍류 악, 좋아할 요)은 상형글자로 현악기와 타악기를 그려내고 있다. 즉 줄이나 실을 의미하는 두 개의 작을 요(幺)는 거문고 해금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를, 가운데 흰 백(白)은 북과 같은 타악기를 본 뜬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를 받침으로 한 현악기(幺)와 타악기(白)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래서 풍류를 뜻하기도 하고 좋아한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생각할 思(사)는 뇌를 뜻하는 정수리 신(囟)의 간략형인 田(전)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었다. 囟(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囟은 머리의 두개골이 합해진 부위를 말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정수리 부위의 숨골, 즉 어린이의 머리가 단단하게 굳지 않았을 때 아직 닫히지 않은 부위를 말한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思(사)의 전체적인 의미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여기서 ‘田’모양은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뇌를 의미하는데, 요즘 두뇌력의 측정지수인 IQ를 뜻하고 있다. 또한 감성지수인 EQ를 의미하는 心(심)은 동양적인 정감을 뜻한다. 따라서 선조들이 강조한 생각이라는 것은 이성적인 뇌(田)의 판단뿐만 아니라 가슴(心)으로 느끼는 정감까지 아우러져 나와야 만이 진정한 ‘생각’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나라 이름 蜀(촉)은 누에의 상형(罒)과 고치에 싸인(勹) 번데기(虫)를 의미한다는 데서 ‘누에’ ‘나비 애벌레’를 뜻하게 되었으며, 중국 사천성의 옛 지명이 ‘촉나라’였던 점에서 ‘나라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이 지역은 고대부터 누에고치에서 뽑아 짠 비단의 산지였다.
白駒過隙이란 흰 망아지가 지나감을 문틈으로 잠시 봄과 같이 아주 짧은 순간을 뜻하는 것으로, 세월이 빨리 지나감 혹은 인생의 덧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莊子장자·知北遊지북유』에 “사람이 하늘과 땅 사이에 사는 것은 마치 흰 망아지가 지나감을 문틈으로 잠시 봄과 같이 짧은 순간일 뿐이다.(人生天地之間 若白駒之過隙 忽然而已)”라고 한 대목에 유래 하였다. 인생이 참으로 덧없고 순식간 임을 동서양의 많은 현자들이 숱하게 설파하였으니, 일촌광음불가경(一寸光陰不可輕)이다.
흰 白(백)은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본뜬 것으로 손톱의 흰 부위를 나타낸 데서 ‘희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외에도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 이르러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어 희다는 뜻을 가진 白(백)과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희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어서인지 ‘아뢰다’는 뜻도 있다.
망아지 駒(구)의 구성은 말 마(馬)와 글귀 구(句)로 이루어졌다.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句(구)는 갑골문의 자형은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뭔가를 안은 듯 한 모양을 옆에서 본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이에 따라 句(구)의 의미는 입에서 나온 말(口)을 한 단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문장의 ‘단락’이나 ‘글귀’ ‘구절’을 뜻하기도 하며, 또한 어떠한 물체(口)를 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올가미’ ‘함정’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駒(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말(馬)은 말이지만 아직은 덜 자라 사람이 품에 안을 정도(句)의 어린 ‘새끼 말’ ‘망아지’를 뜻하게 되었다.
허물 過(과)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입 비뚤어질 와(咼)로 이루어져 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咼(와)는 살 발라낼 뼈 과(冎)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冎(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冎는 사람의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둠을 뜻하는 상형글자로 머리의 융기된 뼈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列子』에 보면 “염(炎)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친척이 죽으면 살을 도려내어 버린다.”라고 하였다. 즉 사체(死體)의 살보다는 뼈를 중시하는 장례풍습으로 아마도 유골(遺骨)이 곧 동기감응(同氣感應)에 따라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 고대 동양 사람들의 사상적 맥락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살을 발라낸 앙상한 뼈(冎)만으로 된 입(口)은 비뚤어져 보인 데서 ‘입이 비뚤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過(과)의 전체적인 의미는 입이 비뚤어진 사람의 입(咼)에서 나온 말은 심성이 곱지 못해 말 역시 잘못되어 나온다(辶)는 데서 ‘허물’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그 말이 정도를 넘어선다는 데서 ‘지나치다’의 뜻도 함유하게 되었다.
틈 隙(극)의 구성은 언덕 부(阝)와 벽 틈 극(小+曰+小)으로 이루어졌다. 阝(부)는 인공으로 만든 계단을 본뜻으로 한 阜(부)의 약자(略字)다. 갑골문을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 모양이다. 극(小+曰+小)의 소전체를 보면 어떠한 틈(曰) 사이로 물이 흘러나오는(두 개의 小) 모양을 그려내 ‘벽 틈’이란 뜻을 부여했다. 따라서 隙(극)의 전체적인 의미는 언덕이나 벽(阝) 사이로 물이 흘러내리는(小+曰+小) 모양을 그려내 ‘틈’ ‘구멍’이란 뜻을 부여했다.
桃園結義란 복숭아나무가 우거진 동산에서 의형제를 맺었다는 뜻으로, 서로 다른 사람이 사리사욕을 버리고 의로운 일을 하기위해 뜻을 모을 때 자주 사용되는 성어다. 나관중의『삼국지연의』에 등장하는 유비(劉備) 관우(關羽) 장비(張飛)가 나라와 백성의 안위를 걱정하며 의기투합한데서 유래 했다. 그 대목을 살펴보면 “장비가 말하길 ‘우리 집 뒤뜰에는 복숭아 동산이 있는데 이제 막 꽃이 무성하게 피어오르고 있답니다. 내일 동산에서 천지에 제를 지내고 우리 세 사람이 의형제를 맺어 한 마음으로 협력한 후에야 대사를 도모할 수 있을 겁니다’(飛曰:「吾莊後有一桃園,花開正盛;明日當於園中祭告天地,我三人結為兄弟,協力同心,然後可圖大事.」)라고 하였다. 세 사람은 다음날 의형제를 맺고서 뜻을 함께 했다.
복숭아나무 桃(도)는 나무 목(木)과 조짐 조(兆)로 구성되었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兆(조)는 고대 사람들이 길흉(吉凶)을 알아보기 위해 거북이를 불에 구워 배딱지나 등딱지의 갈라진 줄무늬 잔금을 보았던 것에서 유래한 상형글자다. 그 갈라진 금을 보고서 어떤 일의 ‘조짐’을 파악하였고, 또한 그 갈라진 잔금이 아주 많아 ‘많다’는 뜻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桃(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열매의 씨앗에 많은(兆) 잔주름이 난 나무(木), 혹은 아주 많은(兆) 열매를 매단 나무(木), 바로 복숭아나무로 해석할 수 있다.
동산 園(원)은 에워쌀 위(囗)와 옷 길 원(袁)으로 구성되었다. 囗(위)는 사방을 에워싼 모양을 나타낸 자형으로 ‘둘레 위(圍)’의 본 글자이며, 또한 일정한 경계안의 지역을 뜻하는 ‘나라 국(國)’의 옛 글자이기도 하다. 袁(원)은 윗옷을 뜻하는 衣(의)와 둥근(ㅇ→口)목걸이를 의미하는 변형된 口로 짜여 있다. 외투와 같이 긴 옷과 함께 온갖 장식으로 치장한 모습을 뜻한다. 여기서는 온갖 장식으로 치장한 것과 같은 꽃과 열매를 맺은 다양한 나무라는 뜻으로 가차되었다. 따라서 園(원)의 전체적인 의미는 아름다운 꽃과 열매를 매단 나무들(袁)이 울타리로 둘러싸여(囗) 있는 모양, 즉 ‘동산’을 뜻하게 되었다.
맺을 結(결)의 구성은 가는 실 사(糸)와 길할 길(吉)로 짜여 있다. 糸(사)는 누에고치에서 막 뽑아 잣아 놓은 실타래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吉(길)의 구성은 선비 사(士)와 입 구(口)로 짜여 있다. 士(사)의 갑골문을 보면 청동(靑銅)으로 만든 도끼모양을 그렸다. 그러나 한나라의 문자학자인 허신(許愼)은 인문학적인 지식을 더해 “士는 어떤 일(事)을 뜻한다. 숫자는 一에서 시작하여 十에서 끝나며, 士자의 구성은 一과 十으로 짜여있다.”라고 하였다. 동양학에서 十(십)은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 지극한 경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士(사)자의 의미는 하나(一)에서 열(十)까지 모든 일에 통달한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요즘에도 士(사)자가 들어가는 바둑의 기사(棋士)나 도사(道士)와 같이 해당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에게 붙여주는 칭호로 쓰이고 있다. 이에 따라 吉(길)은 하나에서 열까지 사물의 이치를 낱낱이 아는 성인과 같은 사람(士)이 일러주는 말씀(口)을 귀담아 들으면 좋은 일만 생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結(결)의 전체적인 의미는 좋고 길조를 보이는 것(吉)들을 흩어 지지 않도록 실(糸)로 단단히 묶는다는 데서 ‘맺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마치다’ ‘끝맺다’는 확장된 것이다.
옳을 義(의)는 양 양(羊)과 나 아(我)로 구성되었다. 羊(양)은 예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는데, 두 뿔과 몸통 및 네 발 그리고 꼬리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갑골문에 나타난 我(아)의 자형은 세 개의 칼날을 지닌 삼지창의 모양이었지만 금문과 전서를 거치면서 손의 모양을 상형한 손 수(手)와 창이나 칼과 같은 무기류를 뜻하는 창 과(戈)로 이루어진 현재의 자형이 되었다. 즉 손(手)으로 창(戈)을 들고서 방어하는 주체자인 ‘나’를 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손수(我) 상서로운 동물인 양(羊)을 잡아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일은 의당 해야 할 일이었기 때문에 그 행위를 ‘바르고’ ‘옳은’ 것으로 여겼다.
指鹿爲馬란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는 뜻으로, 윗사람을 농락하고 권세를 함부로 휘두름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史記』「秦始皇本紀」에서 유래했다. 천하를 통일한 진시황은 얼마 지나지 않아 죽고 많다. 이때 그의 죽음을 틈타 환관 조고(趙高)는 후계자로 지명된 맏아들 부소를 계략을 세워 죽이고, 어린 호해를 허수아비 2세 황제로 옹립한다. 그리고 권력을 유린하는데 걸림돌이었던 승상 이사마저 죽음으로 몰아넣고 자신이 승상의 자리에 올라 권세를 확인하고자 한 방법이 바로 지록위마였다. 『史記』에 “사슴을 2세 황제에게 바치며 ‘말입니다’라고 하자 황제는 웃으며 ‘승상이 잘못 본 것이오. 사슴을 일러 어찌 말이라 하오?’라며 좌우 군신들에게 묻자, 묵묵부답하거나 조고의 말을 따라 말이라고 하였다.(持鹿獻於二世曰:‘馬也’ 二世笑曰:‘丞相誤耶,謂鹿爲馬’問左右,左右或默,或言馬以阿順趙高.)”라고 기록되어 있다.
가리킬 指(지)의 구성은 사람의 손을 뜻하는 수(手)를 쓰기 간편하게 생략한 손 수(扌)와 맛 지(旨)로 짜여 있다. 旨(지)는 비수 비(匕)와 그릇의 모양을 나타낸 ‘日’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즉 그릇(日)에 담긴 음식물을 수저나 국자(匕)를 이용해 맛을 본다는 데서 ‘맛’ ‘맛있는 음식’을 본뜻으로 하고 있다. 여기에 손 수(扌)를 더한 指(지)는 ‘음식 맛을 보는 손’을 본뜻으로 하였지만 그 손 중에서도 식지(食指)로 주로 맛을 보기 때문에 ‘손가락’이란 의미도 파생되었으며, 아울러 특정한 사물을 가리킬 때는 다섯 손가락 중에서도 두 번째 손가락인 식지만을 펴 가리키기 때문에 ‘가리키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사슴 鹿(록)은 수사슴의 아름다운 뿔과 머리, 그리고 몸통과 네 발의 모양을 그려낸 상형글자다. 鹿(록)에 대해 『說文』에서는 “鹿은 사슴과의 짐승을 말한다. 머리와 뿔,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 새와 사슴은 다리가 서로 비슷하기 때문에 比(비)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아름다운 뿔의 모양이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할 爲(위)의 구성은 손톱 조(爫)와 코끼리 상(象)의 변형으로 이루어졌다. 조(爫)에 대해 『說文』에서는 “爪는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을 ‘爪’라 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象(상)은 코끼리의 특징이기도 한 긴 코와 넓은 귀, 엄니 그리고 네 발과 꼬리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다. ‘코끼리’가 본뜻이지만 ‘상상하다’ ‘그리다’의 뜻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한비자韓非子・해로解老』편에서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코끼리를 볼 일이 드물어서 죽은 코끼리의 뼈를 줍게 되면, 그것을 근거로 살아있는 모습을 상상하여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모두 象(상)이라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원전 2-3세기에 살았던 한비자보다 훨씬 이전시대에는 중원의 대륙에도 코끼리가 살았다는 이야기다. 즉 만리장성과 같이 무거운 석재가 쓰이는 건축물 등을 축조할 때, 인간에 비해 엄청난 힘을 지닌 코끼리(象)를 동원(爫)한 고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이 글자에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 스스로가 아닌 ‘코끼리를 부려 일하다’는 뜻이 함축된 ‘하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野壇法席이란 부처님의 법문을 듣기 위해 드넓은 들판에 단을 세우고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마련한 자리를 뜻한다. 즉 많은 사람을 수용할 수 없는 법당을 벗어나 넓은 공터에 단을 세우고 설법을 듣고자 함이다. 석가가 영취산에서 법화경(法華經)을 설법했을 때는 무려 3백만 명이나 모였다고 하니, 질서도 없고 시끌벅적하였을 것이다. 이에 따라 경황이 없고 요란스런 상태를 가리켜 비유적으로 쓰이던 말이 일반화되어 일상적으로 통용되고 있다.
들 野(야)의 구성은 마을 리(里)와 줄 여(予)로 이루어졌다. 里(리)는 밭 전(田)과 흙무더기를 쌓아놓은 모양을 상형한 흙 토(土)로 구성되었다. 일정한 농토(田)를 중심으로 흙(土)을 쌓아 올려 줄지어서 집을 짓고 산다는 데서 ‘마을’을 뜻하게 되었다. 予(여, 나 여)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予는 밀어서 준다는 뜻이며 서로서로 내밀어 주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즉 베틀에서 베를 짤 때, 방추로 날줄을 먼저 매고 또 다른 실을 감은 북을 좌우로 오가게 하며 옷감을 직조하는데 바로 그 북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북을 좌로 ‘주고’ 우로 ‘주기’ 때문에 ‘주다’라는 의미를 부여 했으며, 후에 ‘나’라는 의미로 가차되었다. 따라서 野(야)의 전체적인 의미는 마을(里)에 사는 사람들에게 곡식은 물론 땔나무 등 많은 것을 안겨주는(予) 드넓은 땅이라는 데서 ‘들판’을 뜻하게 되었다.
단 壇(단)의 구성은 흙무더기를 쌓은 모양을 상형한 흙 토(土)와 믿음 단(亶)으로 이루어져 있다. 亶(단)은 곳집 름(㐭)과 아침 단(旦)으로 구성되었다. 㐭(름)은 수확한 곡식을 넣어두는 창고의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곳간이나 창고의 뜻을 지닌 ‘곳집 廩(름)’의 옛글자다. 旦(단)은 동쪽 땅(一) 위로 해(日)가 솟아오르는 모양을 그려내 ‘아침’이란 뜻을 담고 있다. 이에 따라 亶(단)은 일용할 양식이 가득 들어차 있는 곳간(㐭)에 찬란한 아침햇살(旦)이 비추니 주인 된 입장에서는 보는 것만으로도 ‘미덥고’ 마음이 ‘도타웠을 것’이다. 따라서 壇(단)의 전체적인 의미는 천지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장방형으로 된 창고(亶)처럼 흙(土)을 쌓아올려 만든 ‘단’이나 ‘제터’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법 法(법)은 물 수(氵)와 갈 거(去)로 구성되어 있다. 去(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去는 사람이 서로 어긋나간다는 뜻이다. 大(대)로 구성되었고 자형하부의 凵(거)모양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와 고대인들의 주거지인 동굴을 의미하는 口(구)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사람(大)이 주거지인 동굴(口)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물을 버리는 구덩이 위에서 대변을 보고 사람의 상형이라는 설로 ‘버리다’가 본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法(법)의 의미는 물(水)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게 순리적이라는 것으로 자연적인 ‘규칙’을 의미한다. 또 한편으로는 물(水)과 같이 순리적이지 못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규범’적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러나 더 본래적인 의미는 法(법)의 옛글자인 ‘법 灋(법)’ 자에 담겨 있다. 灋자의 구성은 물 수(氵)와 해태 치(廌), 그리고 갈 거(去)로 짜여 있다. 옛 사람들은 앞에 공평함을 뜻하는 물(氵)을 놓고서 옳고 그름(是非)과 선과 악(善惡)을 가려내는, 상체는 사슴(鹿)을 닮았고 하체는 새(鳥)의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인 해태에게 가서(去)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자리 席(석)은 집 엄(广)과 스물 입(卄), 그리고 수건 건(巾)으로 구성되었다. 广(엄)은 지붕은 있지만 사면의 벽 중 일부는 애초부터 쌓지 않고 개방한 차고나 조정의 건물을 말한다. 卄(입)은 열 십(十) 두 개가 겹친 것으로 스물을 뜻한다. 巾(건)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수건을 본뜬 것이지만, 여기서는 바닥에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깐 천을 뜻한다. 따라서 席(석)의 전체적인 의미는 개방형 공간(广)에 스무 명(卄) 이상의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융단이나 천(巾)을 깔아 자리를 마련한다는 데서 ‘자리’ ‘깔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靑眼視란 눈을 홀기지 않고 맑고 친밀한 마음으로 바라봄을 뜻하며, 반대말인 백안시(白眼視)는 눈의 흰자위를 드러내며 업신여기거나 차가운 마음으로 바라봄을 말한다. 『晉書진서』「阮籍傳완적전」에 나온다. 죽림칠현(竹林七賢)의 한 사람이었던 완적은 노장사상을 흠모하며 대나무 숲에 은거하고 있었다. 법질서에 얽매인 사대부들이 그를 찾으면 속물로 여기며 백안시했고, 술과 거문고를 들고서 산수를 벗하려 하는 자연인이 찾아들면 몹시 반기며 청안시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푸를 靑(청)의 구성은 날 생(生)의 간략형과 붉을 단(丹)으로 짜여 있다. 여기서 붉은 뜻을 갖은 丹(단)은 안료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다.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문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데, 자형(丹)이 형성된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아 구리일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구리(丹)가 산화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서 착안하여 ‘푸르다’는 뜻을 부여하였다.
눈 眼(안)의 구성은 겉으로 보이는 눈의 모양을 상형한 눈 목(目)과 그칠 간(艮)으로 이루어졌다. 艮(간)은 눈 목(目)의 간략형과 사람의 모습이 변화됨을 뜻하는 ‘匕(화)’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회의글자다. 즉 눈(目)을 뒤로 돌려보는 사람(匕)의 모습을 담은 글자로, 앞에 산이나 언덕(阝=阜)이 나타나면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艮)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限界)나 한정(限定)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眼(안)의 전체적인 의미는 밖으로 드러난 눈동자를 비롯한 흰자위 등의 눈(目) 뿐만이 아니라 눈 속 깊숙이에 내재한 수정체 초자체 망막 등과 같은 드러나지 않은 눈 전체(艮)를 뜻한다. 그래서 눈을 전담한 의료의 분과를 目(목)과라 하지 않고 眼科(안과)라 한 것이다.
볼 視(시)의 구성은 보일 시(示)와 볼 견(見)으로 이루어졌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示(시)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제사나 귀신 혹은 신령한 의미를 담게 된다. 見(견)의 구성은 눈 목(目)과 사람의 발모양을 본뜬 사람 인(儿)으로 짜여 있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罒)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인체 중에서도 유독 눈을 강조한 회의글자이다. 여타 다른 동물의 시각이 아니라 오직 사람(儿)의 입장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본다(目)는 데서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視(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신에게 바친 제단(示) 위의 제물에 이물질이 끼거나 이상이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본다(見)는 데서 ‘보다’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自激之心이란 스스로를 옥죄거나 내적 갈등으로 부딪치는 마음이란 뜻으로, 자기 자신이 한 일에 대해 잘못했거나 부족하다고 느끼는 자기 비하(卑下)의 마음상태를 이르는 말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하면 이러한 자격지심을 느낄 때 자기계발과 발전의 계기를 만들 수도 있다. 자신의 부족함을 몸소 느낄 때, 분발할 수 있는 힘도 생기는 법이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쓴다.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다.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짜여 있는데, 코(自)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自’의 현재 의미는 ‘--로부터’ 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부딪칠 激(격)의 구성은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강을 본뜬 水(수)를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한 수(氵)와 노래할 교(敫)로 이루어졌다. 敫(교)는 고백(告白)하다에서처럼 ‘아뢰다’는 뜻도 지닌 흰 백(白)과 놓을 방(放)으로 구성되었다. 放(방)은 모 방(方)과 칠 복(攵)으로 짜여 있는데, 여기서 方(방)은 동서남북 사방을 의미한다. 즉 한 곳에 매여 있는 것을 사방(方)으로 흩어지도록 회초리를 들어 친다(攵)는 의미를 담아 ‘놓아 준다’는 뜻을 부여한 것이다. 이에 따라 敫(교)는 입에서 나온 소리(白)가 사방으로 메아리친다(放)는 데서 ‘노래하다’는 뜻을 부여했다. 따라서 激(격)의 전체적인 의미는 노랫소리가 사방으로 메아리치듯(敫) 흐르던 물(氵)이 바위나 제방 등에 거세게 부딪치며 흐른다는 데서 ‘부딪치다’ ‘세차다’ ‘격렬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마음 心(심)은 사람의 심장을 본뜬 상형글자다. 고대 사람들은 ‘마음’ 혹은 몸을 운용하는 주체인 ‘영혼’이 심장에 머물고 있다고 보아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다.
立身揚名이란 몸을 바로 세워서 이름을 드날린다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그 실력을 인정받아 출세를 하여 세상에 이름을 드날림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孝經효경』「開宗明義章개종명의장」의 “신체는 물론 모발과 피부는 부모에게 받은 것이니 감히 훼손되거나 손상되지 않게 하는 것이 효도의 시작이며, 몸을 바로 세워 도를 행하여 후세에 명성을 드날려 부모님까지 영달케 하는 것이 효도의 마지막이다(身體髮膚 受之父母 不敢毁傷 孝之始也. 立身行道 揚名於後世 以顯父母 孝之終也)”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설 立(입, 립 )의 구성은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이 평평한 땅(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나중에는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거나 ‘세우다’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오를 揚(양)의 구성은 손 수(扌)와 볕 양(昜)으로 이루어졌다. 扌(수)는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약자로 쓰기 편하게 한 획을 줄인 것이다. 昜(양)은 태양을 본뜬 日(일)과 햇볕이 내리 쬐이는 모양(一 + 勿)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둥근 해(日)아래에 T자형의 장대에 깃발(勿)을 달아 세워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햇살에 휘날리는 깃발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揚(양)의 전체적인 의미는 손(扌)으로 깃발을 매단 장대(昜)를 세워 올린다는 데서 ‘날리다’ ‘오르다’ ‘바람에 흩날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름 名(명)의 구성은 저녁 석(夕)과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짜여 있다. 夕(석)은 달의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로 해질녘 동쪽 산위로 떠오르는 모양을 그렸다. 고대에는 夕(석)이 해질녘과 밤을 의미하였지만 후대에 보다 구체적으로 밤을 의미하는 밤 야(夜)를 제작하였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깜깜한 밤(夕)에는 그 사물이나 사람의 구체적인 특징을 입(口)으로 말하여야 구분할 수 있었다는 데서 ‘이름’을 뜻하게 되었다.
春寒老健이란 봄추위와 노인의 건강이란 뜻으로, 모든 사물은 늘 변화를 거듭하고 있는데 양기가 솟아오르는 봄에 잠깐 오는 추위나 노인의 건강은 오래갈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조선후기의 학자 조재삼(趙在三)이 자녀의 교육을 위해 저술한 『松南雜識송남잡지』에서는 “봄추위, 가을더위, 노인의 건강 세 가지는 모두 오래 가지 못하는 것으로 본디 구양수가 한 말인데, 지금의 ‘건(健)’은 ‘골[骨]’자가 와전된 것이다(春寒秋熟老健 三者 不久長之物 本歐陽之語 今健字訛骨).”라고 설명하고 있다.
봄 春(춘)의 구성은 풀 철(屮)과 진칠 둔(屯)이 변한 자형상부와 태양을 본뜬 해 일(日)로 짜여 있다. 屯(둔)은 풀 철(屮)과 삐침 별(丿)로 구성되었다. 그 뜻은 초목(屮)이 싹을 틔워 가지나 잎이 어느 정도 자라고 있는데 칼이나 낫으로 베어(丿)버려 더 이상 자라지 않음을 그려내고 있다. 또한 군사들이 진을 치기위해 풀을 베어 내거나 임시 막사를 치면 그 밑에 있는 풀은 더 이상 자라지 못하기 때문에 진 칠 屯(둔)이라고도 하였다. 春(춘)의 갑골문을 보면 막 땅거죽을 뚫고 올라오는 싹(屮)과 싹을 틔우기는 했지만 아직 추위가 가시지 않아 자람을 멈추고 어렵게 견디고 있는 싹(屯)을 태양(日)위에 그려 넣은 모양이다. 고대인들 역시 봄(春)을 새싹이 돋아나기는 하지만 아직 추위가 완전히 물러가지 않은 시절로 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찰 寒(한)의 구성은 지붕과 벽면을 상형한 집 면(宀)과 나무기둥을 얼기설기 엮어 맨 모양의 짤 구(冓)의 생략형, 그리고 고드름 모양의 얼음 빙(冫)으로 짜여 있다. 冓(구)에 대해 『說文』에서는 “冓는 목재를 교차시켜 쌓아 놓은 것을 뜻하며, 대칭지어 교차한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즉 집이나 어떤 물건을 만들기 위해 쌓아 둔 목재가 뒤틀리지 않게 위해 교차해서 보관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또한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얽어 만든 모양이기도 하다. 따라서 寒(한)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를 이용해 기둥과 벽면을 만들고(冓) 지붕(宀)을 얹어 집을 갖추었지만 집안에 얼음(冫)이 얼어붙을 만큼 춥다는 데서 ‘차다’ ‘차갑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늙을 老(로, 노)는 사람의 머리털이나 짐승의 털 모양을 본뜬 털 모(毛)의 변형과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상형한 사람 인(人), 그리고 지팡이 모양이 변환된 비수 비(匕)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老(로)의 의미는 머리카락(毛)을 길게 산발하고 허리를 굽힌 사람(人)이 지팡이(匕)를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노인’을 뜻한다.
굳셀 健(건)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모양을 본뜬 사람 인(亻)과 세울 건(建)으로 이루어졌다. 建(건)의 구성은 길게 걸을 인(廴)과 붓 율(聿)로 짜여 있다. 廴(인)은 사람이 걷는다는 의미로 보다는 사물의 동태적 상황을 나타내는데 주로 활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돌 廻(회)에서처럼 물길이 빙빙 돈다든지, 끌 延(연)에처럼 시간을 연장하거나 뭔가를 끌어들인다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聿(율)은 붓 대(丨)를 손으로 잡고(彐)있는 모양과 함께 동물의 가는 털을 모아 만든 붓(二)의 형태를 담아 글자로 만든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만들고자하는 집이나 물품을 만들기에 앞서 붓(聿)을 이용해 도면 위에 자세하게(廴) 그려놓고서 그에 따라 세워 감을 뜻하고 있다. 따라서 健(건)의 전체적인 의미는 허리를 곧게 펴고 자세를 바르게 세운(建) 사람(亻)은 ‘튼튼하고’ ‘굳세다’는 뜻을 함축하고 있다.
諸行無常이란 모든 행위나 존재는 영원하지 않다는 뜻으로, 우주의 만사만물은 한시도 고정됨이 없이 늘 변화하고 변화하여 영원할 수 없다는 것. 불교의 핵심논리인 삼법인(三法印: 諸行無常, 諸法無我, 涅槃寂靜) 가운데 하나다. 비유적으로 인생의 덧없음을 말하기도 한다. 그래서 『金剛經금강경』에서는 “모든 유위법(有爲法)은 꿈이나 허깨비 같고 물거품이나 그림자 같고, 이슬이나 번개 같기 때문에 마땅히 이렇게 관찰해야 한다(一切有爲法 如夢幻泡影 如露亦如電 應作如是觀)”고 말하고 있다.
모두 諸(제)의 구성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은 말씀 언(言)과 놈 자(者)로 이루어졌다. 者(자)는 본래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그런데 현재 자전에서 者(자)를 찾으려면 耂(로)부수에서 찾아야 되는 ‘회의글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그 해석 또한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耂)이 나이 어린사람에게 말할 때(白) ‘이놈저놈’ 한다는 데서 ‘놈’이란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자형하부의 ‘白’은 솥단지가 변화된 것이며 상부의 ‘耂’는 나물이나 고깃덩어리가 부글부글 끓으면서 솟아오르는 김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삶다’가 본뜻이었다. 그런데 솥에 삶은 국을 ‘이놈저놈’이 나누어 먹는다는 뜻을 담아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는 ‘놈 者(자)’로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불 화(灬)를 더해 ‘삶을 煮(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따라서 諸(제)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놈저놈(者)이 말(言)한다는 데서 ‘모두’ ‘모든’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다닐 行(행, 항렬 항)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거리에서의 행위적 요소로 쓰이지만 ‘항렬(行列)’이나 같은 ‘또래’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여기서는 사물의 형태나 존재를 의미하고 있다.
없을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항상 常(상)의 구성은 높일 상(尙)과 수건 건(巾)으로 짜여 있다. 尙(상)은 집(向) 중에서도 신전과 같은 특별한 건물은 일반 가옥과는 달리 지붕위에 깃발(八)과 같은 표식을 하여 모든 사람이 신성하게 ‘받들어 모신다’는 뜻이 담겨 있다. 巾(건)은 허리에 차고 있는 수건을 본떴다. 따라서 常(상)의 전체적인 의미는 요즘도 그렇지만 그 옛날 고상한 사람(尙)은 늘 허리춤에 수건(巾)을 차고 다닌다는 데서 ‘항상’이란 뜻이 부여되었다. 본뜻은 ‘치마’였으나 ‘늘’ ‘항상’이라는 의미로 쓰이자 ‘치마 裳(상)’을 별도로 제작하였다.
一騎當千이란 한 사람의 기병이 적군 천명을 당해낸다는 뜻으로, 남달리 뛰어난 무술이나 기술이 있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전쟁이 드문 요즘에는 혼자서 수많은 사람의 몫을 해내는 사람을 일컫기도 한다. 『戰國策전국책』의 “한 사람이 열 명을 당해내고, 열 사람이 백 명을 당해내고, 백 사람이 천 명을 당해낸다.(而當十,十而當百,百而當千)”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말 탈 騎(기)의 구성은 말 馬(마)와 기이할 奇(기)로 이루어졌다.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奇(기)는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의 모양을 상형한 큰 대(大)와 옳을 가(可)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可(가)는 사람이 이동수단으로 이용했던 말(馬)이 변화된 모양이다. 갑골문의 자형 역시 사람(大)이 말(可)과 같은 동물위에 올라탄 모양인데서 ‘기이하다’의 뜻을 부여하였다. 이 奇(기) 자 만으로도 사람이 말을 탄 모양을 그려냈지만 다른 뜻으로 전용되자 말 馬(마)를 더해 ‘말을 타다’ ‘기병’을 뜻하게 되었다.
마땅할 當(당)의 구성은 높일 상(尙)과 밭 전(田)으로 이루어졌다. 尙(상)은 여덟 팔(八)과 향할 향(向)으로 구성되었으며, 向(향)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과 지붕을 본뜬 집 면(宀)과 집의 입구를 뜻하는 입 구(口)로 이루어졌다. 고대 마을의 가옥구조는 중앙의 광장이나 신전을 중심으로 외곽에 배치되어 있는데, 집(宀)의 입구(口)가 모두 중앙의 신전이나 특정 건물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향하다’라는 뜻과 함께 방향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이에 따라 尙(상)의 의미는 집(向) 중에서도 신전과 같은 특별한 건물은 일반 가옥과는 달리 지붕위에 깃발(八)과 같은 표식을 하여 모든 사람이 신성하게 받들어 모신다는 데서 ‘숭상하다’ ‘높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當(당)의 전체적인 의미는 부족의 신을 모시는 신전(尙)에 딸린 밭(田)은 당연히 마을 공동으로 경작해야 한다는 데서 ‘마땅히’란 뜻이 발생했다.
일천 千(천)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한 일(一)로 이루어졌다. 즉 사람을 상형한 亻(인)자에 한 획(一)을 그으면 ‘일천’, 두 획(二)을 그으면 ‘이천’, 세 획(三)을 그으면 ‘삼천’을 뜻하는 약속글자였다.
異曲同工이란 연주하는 곡은 다르지만 그 기교적 절묘함은 같다는 뜻으로, 비유적으로 방법은 다르나 그 결과는 같음을 이르는 말이기도 하다. 당나라 한유(韓愈)의 「進學解진학해」라는 시의 “양웅과 사마상여의 기교는 같으나 곡조는 다르구나(子雲相如, 同工異曲)”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사람마다 삶의 형태나 수행방법은 달라도 궁극적으로 추구하는 목적은 같다고 볼 수 있다. 삶과 죽음, 각 민족이나 종교권에서 행하는 가르침은 달라도 영성의 승화를 위한 목적은 같다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다를 異(이)에 대해 자전에서는 밭 전(田)과 함께 공(共)으로 짜인 것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금문을 살펴보면 괴이한 탈을 쓰고 있는 사람을 상형한 것이다. 異(이)에 대해『說文』에서는 “異는 나눈다는 뜻이며, 廾(공)과 畀(비)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畀(비)는 물건(田)을 나누어 준다(廾)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단옥재는 주석에서 “(어떤 물건이든) 나누게 되면 이것과 저것의 다름이 있게 된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금문에 새겨진 모양은 ‘귀신의 탈을 쓰고 있는 무당과 같은 사람’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귀신의 탈을 썼으니 ‘기이’하기도 하고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뜻을 담게 되었다.
굽을 曲(곡)은 曲(곡)에 관한 부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참조해 보면 두 개의 손을 뜻하는 왼손 좌(屮)와 오른 손(又) 사이에 밭 전(田)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밭에서 두 손을 사용하여 일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굽은 대바구니의 상형인 曲(곡)으로 단순화 된 것이다. 그래서 『說文』에서는 “曲은 휜 그릇에 물건을 담은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즉 광주리 모양을 본떴다 하여 ‘굽다’ 또는 ‘굽은 자(曲尺)’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여기서는 확장된 의미의 ‘곡조’나 ‘악곡’을 뜻한다.
한 가지 同(동)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이지만 통일된 해석이 없다. 인문적인 접근을 한다면 대나무와 같이 속이 텅 비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마디마디를 절단해도 거의 한결같은 크기라는 뜻이 내포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또한 한 무리(冖)의 사람들이 모두 한(一) 목소리(口)를 낸다고도 보아 ‘한 가지’ ‘함께’ ‘다같이’ 등의 뜻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장인 工(공) 자는 갑골문과 금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글자인데, 대체적으로 장인들이 일을 할 때 쓰던 길이를 재거나 뭔가를 깎아내고 구멍을 파는 ‘공구’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工(공)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工은 정교하게 꾸민다는 뜻이다. 사람이 가늠자(規矩)를 들고 있는 것을 본떴으며, 巫(무)자와 글자의 제작의도가 같다.”라고 하였다. 다른 부수에 工(공)이 더해지면 도구로써 일을 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편으로는 소리를 내기위해 틀에 매달린 석경(石磬)으로 보기도 한다. 여러 음계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각기 정교하게 돌을 깎아 다듬어야 한다는 데서 ‘장인’ ‘기교’ ‘솜씨’ 등의 뜻이 발생하였다.
性命雙修란 마음과 몸을 동시에 함께 닦는 뜻으로, 도교 내단학(內丹學)에서 주장하고 있는 수행방법인데 마음을 닦는 성공(性功: 心 神)수련과 몸을 닦는 명공(命功: 身 氣)수련으로 나눌 수 있다. 송대에 이르러 내단학이 정립된 이후 통설적으로 성명쌍수론이 일반화 되었는데, 장백단으로 대표되는 도교 남종에서는 성공수련에 앞서 명공수련이 선행되어야 한다며 선명후성(先命後性)을 주장하였고, 왕중양의 북종에서는 이와는 반대로 선성후명(先性後命)을 제기하여 내단수련의 양대산맥을 이루었다. 그러나 심신일체라는 관점에서 보더라도 성명(性命)은 결코 선후로 나누기 곤란하다는 것이 후대 내단가들의 주장이다. 물론 命보다는 性이 더 본원적이지만 육신을 품부한 이상 적어도 유위(有爲)적 수련에 있어서는 성명을 분리할 수 없다. 때로 근기(根機)에 따라 선후개념을 도입하여 성공(性功)을 강조하거나 명공(命功)부문을 중요시할 수는 있다. 그러나 우리 인체 및 정신구조가 유기적 관계라는 점을 고려할 때 항상 성과 명이 조화된 상태에서만 수련의 목적인 승화개념이 성립될 것으로 보인다.
성품 性(성)은 마음 심(忄)과 날 생(生)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인 忄(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작용과 관련이 깊다. 生(생)은 땅거죽(土)을 뚫고 자라나는 풀(屮)을 본떠 ‘낳다’라는 뜻을 부여 했다. 따라서 性(성)의 전체적인 의미는 변화무쌍하게 나타나는 우리 마음(忄)이 자라나는(生) 본체라는 데서 ‘성품’ ‘성질’을 뜻하게 되었다. 즉 하늘이 부여한 생명의 본체인 ‘본성’을 말하는데, 그것은 누구나 같은 근원에서 출발한 본래부터 밝은 빛의 존재(明德)였다.
목숨 命(명)의 구성은 명령할 령(令)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令(령)은 모일 집(亼)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병부 절(卩)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亼(집)은 높다랗게 팔자지붕으로 지어진 사당이나 공공건물을 의미한다. 즉 한마을의 촌장이나 제사장이 거주하는 높다란 건물(亼)안에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卩)이라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이를 보다 구체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무언가 말(口)로써 명령(令)을 내린다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확장되어 꿇어앉은 사람의 운명이 지위 높은 사람의 한 마디에 달려있다는 데서 ‘목숨’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여기서는 사람의 몸을 뜻한다.
쌍 雙(쌍)의 구성은 두 개의 새 추(隹)와 또 우(又)로 이루어졌다. 隹(추)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又(우)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雙(쌍)의 전체적인 의미는 두 마리의 새(隹+隹)를 사람의 손(又)으로 잡고 있다는 데서 ‘둘’ ‘한 쌍’을 뜻하게 되었다.
닦을 修(수)의 구성은 바 유(攸)와 터럭 삼(彡)으로 짜여 있다. 攸(유)는 사람 인(亻)과 땀 흘리는 모양을 형상화 한 곤(丨) 그리고 칠 복(攵)으로 구성되었다. 그 뜻은 스승이 손에 회초리를 들고(攵=攴)서 제자(亻)가 땀을 흘리며(丨) 열심히 몸을 단련하도록 독려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특히 금문(金文)에 새겨진 세 개의 점(氵→丨)을 핏방울(血)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몽둥이(攵)이로 때린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보는 것 같다. 彡(삼)은 가지런하게 난 짐승의 윤기 있는 털을 본뜬 것인데, 다른 자형에 더해져 ‘빛나다’는 뜻을 지니게 한다. 따라서 修(수)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람(亻)이 땀 흘려(丨) 열심히 몸을 단련하도록 회초리를 들고(攵)서 독려하여 결국엔 빛이 나도록(彡)한다는 데서 ‘닦다’ ‘다스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攸(유)에 담긴 뜻이 신체를 통한 닦음이라면, 彡(삼)은 몸 안의 내면 즉 마음수양을 나타냈다.
百福自集이란 세상의 모든 복이 저절로 모여든다는 뜻으로, 『採根譚채근담』의 “성질이 조급하고 마음이 거친 자는 하나의 일도 이루기 어렵고, 마음이 화기롭고 기운이 평화로운 사람에게는 세상의 모든 복이 저절로 모여든다(性躁心粗者一事無成, 心和氣平者百福自集)”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마음이 화기로와야 만이 몸에서 풍기는 기운이 평화로울 수 있다. 곧 자신의 내면을 올바르게 다스리지 못한다면 심화기평(心和氣平)은 이룰 수 없다. 올 한 해는 모두가 여유롭고 넉넉한 마음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아름다움이 넘쳐나는 사회가 되었음 좋겠다.
일백 百(백)의 구성은 한 일(一)과 흰 백(白)으로 짜여 있다. 一(일)은 지사글자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일)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서는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복 福(복)은 보일 시(示)와 가득할 복(畐)으로 구성되었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여기서 畐(복)은 향기로운 술이 가득 담긴 술병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福(복)의 전체적인 의미는 정성스럽게 빚은 향기로운 술을 술병(畐) 가득 담아 제사 상(示)에 올려놓으면 축복이 내린다는 데서 ‘복’ ‘복 내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비단 조상에게 제사를 지내는 일 뿐만 아니라 매사에 정성을 쏟으면 ‘복’은 저절로 오게 되어 있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쓴다.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다.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짜여 있는데, 코(自)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自’의 현재 의미는 ‘--로부터’ 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모일 集(집)은 새 추(隹)와 나무의 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으로 구성되었다.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따라서 集(집)의 전체적인 의미는 큰 나무(木)가 높다랗게 서 있으면 온갖 잡새들(隹)이 모여들게 마련이란 데서 ‘모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擧世皆濁이란 온 세상을 들추어보아도 모두가 흐리다는 뜻으로, 『楚辭초사』「漁父辭어부사」에서 유래하였다. 초나라의 충신이었던 굴원(屈原)이 간신들의 모함으로 벼슬길에서 물러나 초라한 모습으로 강가를 거닐며 시를 읊고 있는데, 그를 알아본 나이든 어부가 어쩌다가 이 모양이 되었냐고 물었다. 굴원이 “온 세상을 들추어보아도 모두가 흐려있는데 나 홀로 맑고, 뭇사람들이 취해 있는데 나 홀로 깨어 있었기 때문에 쫓겨났다오(擧世皆濁 我獨淸 衆人皆醉 我獨醒 是以見放)”라고 말하자 어부는 “성인은 사물에 엉기거나 막힘이 없이 세상과 그 추이를 함께 한다오. 세상 사람이 모두 흐려 있다면 어찌하여 그 진흙물을 더 흐르게 하여 그 물결을 드높이지 않았으며, 뭇사람들이 모두 취했다면 어찌하여 그 지게미 배불리 먹고 박주나마 마시지도 않았단 말이요? 무슨 까닭에 홀로 깊은 생각으로 고결하게 행동해 스스로 추방을 당한단 말이요?(聖人不凝滯於物,而能與世推移. 世人皆濁,何不淈其泥而揚其波? 衆人皆醉,何不餔其糟而歠其釃? 何故深思高舉,自令放爲)”라고 하였다. 강직한 성품의 굴원과 세속에 어울러 살라는 어부의 생각이 대비된다. 오늘날의 상황과 결코 다르지 않다. 결국 굴원은 울분을 참지 못하고 강물에 투신하였는데, 옳고 그름을 가름하기가 쉽지 않다.
들 擧(거)는 마주들 여(舁)와 더불어 여(与) 그리고 손 수(手)로 구성되었다. 舁(여)의 자형상부는 두 손을 마주하는 모양이며 하부는 두 손으로 뭔가를 받드는 형태(두 손으로 받들 공廾)로 짜여 있다. 与(여)는 짚이나 나무껍질 등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또한 手(수)는 다섯 손가락과 손목 부위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擧(거)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의 민속놀이에서 볼 수 있는 거대하게 꼰 새끼줄(与)을 두 사람이 마주들(舁) 뿐만 아니라 또 다른 많은 사람들이 함께 참여해 손(手)을 써서 ‘들어 올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대 世(세)는 열 십(十)에 스물 입(卄)의 더한 합자인데, 30을 의미하면서 ‘대’를 뜻한다. 숫자 一(일)에 세로 선을 내리 그어 1의 10배를 뜻하는 ‘열’이 되었고, 동일한 방법으로 세로 선 두 개를 그어 내리면 스물 卄(입), 세 개는 서른 卅(삽)이 되었다. 즉 숫자 30을 뜻하는 卅(삽)의 변형글자이며, 보통 남녀가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는 데서 ‘대’를 뜻하게 되었다. ‘세상’ ‘인간’이란 뜻은 파생한 것이다.
다 皆(개)는 견줄 비(比)와 고백(告白)에서처럼 ‘말하다’는 뜻으로 쓰인 말할 백(白)으로 이루어졌다. 比(비)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앉아(匕) 있다는 데서 ‘견주다’ ‘나란히 하다’의 뜻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皆(개)는 여러 사람(比)이 다 같이 찬동하며 말한다(白)는 데서 ‘모두’ ‘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흐릴 濁(탁)의 구성은 강을 본뜬 水(수)를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한 수(氵)와 누에 촉(蜀)으로 이루어졌다. 蜀(촉)은 누에의 상형(罒)과 고치에 싸인(勹) 번데기(虫)를 의미한다는 데서 ‘누에’ ‘나비 애벌레’를 뜻하게 되었으며, 중국 사천성의 옛 지명이 ‘촉나라’였던 점에서 ‘나라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특히 이 지역은 고대부터 누에고치에서 뽑아 짠 비단의 산지였다. 누에고치(蜀)에서 실을 뽑아내기 위해서는 뜨거운 물(氵)에 담가야 하는데, 이 때 고치 속의 번데기로 인해 물이 혼탁해지기 마련이라는 데서 ‘흐리다’ ‘혼탁하다’ ‘더럽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雪中送炭이란 눈 속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땔감인 숯을 보내준다는 뜻으로, 어려움에 처한 사람에게 급히 온정을 베푼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그 유래는 송나라 범성대(范成大)의 [大雪送炭與芥隱대설송탄여개은]이라는 시 중의 “눈 속 추위에 떠는 사람에게 숯을 보내주는 온정도 없이, 꾸며진 풍경에 의지해 시가 나오기를 바라는가(不是雪中須送炭, 聊裝風景要詩來)”라는 대목에서다.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요즘 우리 주변에는 따스한 온정이 필요한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드러나지 않게 많은 사람들이 외로운 사람들에게 온정을 베푸는 모습을 볼 때마다 가슴이 따스해지는 느낌이다.
눈 雪(설)은 비 우(雨)와 고슴도치 머리 계(彐)로 구성되었다. 雨(우)는 하늘에서 방울져 내리는 비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허신은 雨(우)에 대해 “雨는 물이 구름으로부터 떨어진다는 뜻이다. 一(일)은 하늘을 본떴고 冂(경)은 구름을 상형하였는데, 물방울이 그 사이에서 떨어진다”고 하였다. 달리 해석한다면, 하늘(一)아래 한정된(冂) 지역에 국한하여 빗방울이 떨어지는 상황을 글자화 한 것이다. 여기서 彐(계)는 빗자루를 의미하는 비 혜(彗)의 생략형으로, 전체적인 의미는 하늘에서 비(雨)가 나리는 데 빗자루(彐)로 쓸어 내야 할 형태를 지니고 있는 게 백설(白雪)의 눈이라는 뜻이다.
가운데 中(중)은 간단한 자형임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갑골문에 새겨진 모양은 어떠한 공간을 나타낸 ‘口’모양에 긴 장대(丨)를 세워둔 모양인데, 장대의 상부에는 두세 가닥의 깃발도 함께 그려져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보다 간략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가운데 쓰인 ‘口’모양에 대해 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설,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한 판이라는 설, 장대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기위해 달아 놓은 나무틀이라는 설, 해의 변형으로 정오를 뜻한다는 설 등이다. 필자가 보기에 갑골문과 금문을 참조할 때, 마을(口)의 중앙광장에 부족의 상징인 깃발을 단 장대(丨)를 세웠다는 데서 ‘중앙’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보낼 送(송)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웃을 소(关)로 짜여 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关(소)는 현재 사용되고 있는 웃을 笑(소)의 옛글자다. 두 글자 모두 자형 하부는 고개를 뒤로 젖히며 웃어 제친다는 의미가 담긴 어릴 夭(요)에 나눈다는 의미를 띤 八(팔)과 바람에 하늘거리며 몸을 비비꼬듯이 웃는다는 의미를 담은 대 竹(죽)으로 짜여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을 멀리 떠나보낼(辶) 때는 밝게 웃으면서(关=笑) 보내야 한다는 데서 ‘보내다’는 뜻을 부여했다.
숯 炭(탄)은 뫼 산(山)과 기슭 엄(厂) 그리고 불 화(火)로 구성되었다. 山(산)은 높이 솟은 세 개의 산봉우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다. 厂(엄)은 낭떠러지나 가파른 절벽을 본뜬 상형글자다. 火(화)는 타오르는 불꽃을 본뜬 상형글자로 주로 자형의 하부에 놓일 때는 연화발이라 하여 ‘灬’로 쓰기도 한다. 따라서 炭(탄)의 전체적인 의미는 숯의 주재료인 통나무를 구하기 쉬운 산(山) 기슭(厂)에 토굴과 같은 공간을 만들어 나무를 쌓은 다음 불(火)을 붙여 일정시간이 지난 뒤 입구를 봉하여 ‘숯’을 만들어내는 과정을 그려내고 있다.
虎視牛行이란 호랑이의 날카로운 눈으로 주변의 정황을 살피고 황소의 육중한 걸음걸이처럼 행동한다는 뜻으로, 신중하고도 조심스럽게 일을 해 나감을 이르는 말이다. 이 사자성어는 근자에 만들어진 것으로 큰일을 하기에 앞서 표어처럼 자기다짐의 의미로 애용되고 있다. 즉 자신이 처한 현실을 호랑이처럼 예리한 눈으로 살피되, 그 행동은 소처럼 착실하고 꾸준하게 헤쳐 나가 자신의 목표를 성취함을 이르는 말이다. 고대 동아시아에서 호랑이는 신령스러운 동물이자 신안(神眼)으로 묘사되고, 소는 도가와 불가에서 수행의 상징으로 삼기도 했다. 노자가 소를 타고 함곡관을 지나 유유자적 서역으로 갔듯 도를 닦는 수단이었으며, 사찰에 그려진 심우도(尋牛圖)에서 소는 곧 깨우쳐야 될 불성(佛性)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범 虎(호)는 호랑이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것으로 자형상부는 머리를, 가운데(厂과 七)는 늘름한 몸통을, 그리고 하부는 사람의 발(儿)을 가차하여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다른 부수에 더해 새로운 자형을 만들 때는 보통 하부의 발(儿)을 생략한 채 虍(호)만을 사용하는데, 그래도 호랑이라는 본뜻은 그대로 있다.
볼 視(시)의 구성은 보일 시(示)와 볼 견(見)으로 이루어졌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따라서 이 示(시)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제사나 귀신 혹은 신령한 의미를 담게 된다. 見(견)의 구성은 눈 목(目)과 사람의 발모양을 본뜬 사람 인(儿)으로 짜여 있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罒)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인체 중에서도 유독 눈을 강조한 회의글자이다. 여타 다른 동물의 시각이 아니라 오직 사람(儿)의 입장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본다(目)는 데서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視(시)의 전체적인 의미는 신에게 바친 제단(示) 위의 제물에 이물질이 끼거나 이상이 없는지 눈을 크게 뜨고 본다(見)는 데서 ‘보다’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소 牛(우)는 소의 뿔과 몸통을 강조한 상형글자이다. 牛(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牛는 일하다와 어떠한 이치라는 뜻이며, 두 개의 뿔과 머리를 나타낸 이 셋과 양 어깨 및 꼬리의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소는 농경문화에서는 논밭을 일구는 일(事)의 대명사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을 대신해서 천제(天祭)에 바치는 제물로 쓰임에 따라 상서로움을 안고 있는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돼지(豕)나 말(馬), 코끼리(象) 등은 네 다리를 그려 넣고 있는데 반해 신성한 의미의 소(牛)는 다리를 그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牛(우)자는 어떤 중요한 물건(物件)을 나타내거나 제사와 관련된 희생(犧牲)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다닐 行(행, 항렬 항)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거리에서의 행위적 요소로 쓰이지만 ‘항렬(行列)’이나 같은 ‘또래’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傲霜孤節이란 매서운 서릿발에도 굴하지 않고 홀로 꼿꼿하게 절개를 지키는 충신(忠臣)이나 국화(菊花)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국화는 묵객(墨客)에게 사랑을 받았던 매난국죽(梅蘭菊竹)의 하나로 가을을 상징하기도 한다. 조선시대의 문인 이정보(李鼎輔 1693-1766)의 시조 “국화야, 너난 어이 삼월 춘풍 다 지내고 낙목한천(落木寒天)에 네 홀로 피었나니 아마도 오상고절(傲霜孤節)은 너뿐인가 하노라.”와 함께 생각나는 황국(黃菊)이 만개한 요즘이다. 우아한 풍치와 고상한 절개(雅致高節)를 상징하는 매화, 겉은 부드럽지만 안으로는 강인한 성품(外柔內剛)의 난초, 그리고 오상고절의 국화, 추위 속에서도 고고하게 절개를 지키는(歲寒孤節) 대나무를 그래서 사군자(四君子)라 칭해 왔다.
거만할 傲(오)의 구성은 사람이 서 있는 모양을 본뜬 사람 인(亻)과 희롱하며 놀 오(敖)로 이루어져 있다. 敖(오)는 날 출(出)의 변형인 토(土)와 놓을 방(放)으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 나타난 出(출)은 발의 모양을 상형한 止(지)와 혈거시대의 주거지인 동굴모양을 본뜬 凵(감)으로 새겨져 있는데, 곧 ‘걸어서 동굴 밖으로 나가다’가 본뜻이다. 放(방)은 모 방(方)과 칠 복(攵)으로 짜여 있다. 여기서 方(방)은 동서남북 사방을 의미한다. 즉 한 곳에 매여 있는 것을 사방(方)으로 흩어지도록 회초리를 들어 친다(攵)는 의미를 담아 ‘놓아 준다’는 뜻을 부여한 것이다. 이에 따라 敖(오)는 아이들을 집밖으로 내보내(出) 마음껏 뛰어놀 수 있도록 풀어놓아(放) 주니, 온갖 ‘희롱을 떨며 놀다’ ‘떠들썩하게 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傲(오)의 전체적인 의미는 성인(亻)이 되어서도 아이들처럼 온갖 희롱을 떨거나 떠들썩하게 논다(敖)면 남의 눈에는 ‘거만’하고 ‘건방’지게 보일 수 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서리 霜(상)의 구성은 비 우(雨)와 서로 상(相)으로 짜여 있다. 雨(우)는 하늘(一)에서 내리는 빗방울(;;)은 한정된 곳(冂)에만 내리는 특징을 그려내고 있다. 相(상)의 본뜻은 어린 묘목(木)의 성장을 눈(目)으로 살펴보는 데서 ‘보다’ ‘살피다’ ‘돕다’인데, 오늘날 주로 쓰이는 ‘서로’ 란 뜻은 살피고 보살핀 데서 파생된 것이다. 한편 나무(木)의 싹이 움트는 모습을 살펴보면 항상 대칭적으로 싹눈(目)이 형성됨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서로’라는 의미의 파생과정을 엿볼 수 있다. 따라서 霜(상)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늘에서 비(雨)로 내리기는 하지만 차가운 날씨 탓에 얼어 대칭적(相)적인 모양을 띄고 있다는 데서 ‘서리’를 뜻한다.
외로울 孤(고)의 구성은 아들 자(子)와 오이 과(瓜)로 이루어져 있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瓜(과)는 상형글자로 오이덩굴에 열려 있는 오이의 모양을 그려냈다. 자형외곽은 넝쿨을 뜻하고 가운데는 달랑 하나만 열려 있는 오이와 같은 열매를 의미한다. 따라서 孤(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덩굴에 매달린 오이(瓜)처럼 의지할 부모가 없는 자식(子)이라는 데서 ‘외로움’을 뜻한다.
마디 節(절)은 대나무 모양을 상형한 대 죽(竹)과 곧 즉(卽)으로 구성되었다. 卽(즉)은 고소할 급(皀)과 병부 절(卩)로 이루어졌는데, 皀(급)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卩(절)은 나무를 쪼개 만든 신분을 알 수 있는 병부(兵符)나 신표(信標)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은 모양을 나타낸다. 즉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밥그릇(皀) 앞으로 다가 앉아(卩) 숟가락을 들고서 ‘곧’ 밥을 먹으려는 모양을 그려내고 있어, 밥상 ‘가까이’ 혹은 ‘다가가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의 뜻을 나타낸 글자로 이미 기(旣)자가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서 밥상(皀)에서 고개를 돌린 모양(旡)을 그리고 있어 ‘이미’ ‘벌써’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節(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나무(竹)를 빌어 식물의 마디를, 즉(卽)을 빌어서는 동물의 관절이라는 뜻을 담은 데서 ‘마디’가 본뜻이며, ‘시기’ ‘절제’ ‘절약’ 등의 뜻은 파생된 것이다.
肝膽相照(간담상조)의 한자적 의미
肝膽相照란 간과 담을 드러내놓고 서로에게 내보일 정도로 친밀한 사귐을 말한다. 당대의 명문장가인 한유가 절친 유종원이 죽자 그를 기려 [柳子厚墓誌銘유자후묘지명]을 썼는데, 바로 그 묘지명에서 유래했다. 한유는 묘지명에 궁지에 빠진 벗을 위한 유종원의 뜨거운 우정을 찬양하고, 이어 우정을 가장한 경박한 사귐에 대해 “사람이란 어려운 처지에 놓였을 때 그 절개와 의리가 드러난다. 평온하게 각자의 집에서 살 때는 서로 그리워하고 기뻐하며 술자리의 여흥을 즐기기 위해 서로를 불러다가 자랑꺼리들과 지나친 우스갯소리도 하면서 서로를 낮추기도 한다. 또한 손을 맞잡고서 간과 담을 서로 내보이며, 하늘의 태양을 가리키고선 눈물을 흘리며 죽으나 사나 서로 배신하지 말자고 맹세할 때는 참으로 믿을 만하다. 그러나 작은 이해(利害)관계가 털끝만큼이라도 나면 눈을 돌리며 서로 모른 체 한다. 더구나 함정에 빠지기라도 하면 손을 뻗어 구해주기는커녕 도리어 더욱더 밀쳐버리고 돌까지 던져대는 인간들이 대부분이다(士窮乃見節義. 今夫平居里巷相慕悅,酒食遊戲相徵逐,詡詡強笑語,以相取下,握手出於肺肝相示,指天日涕泣,誓生死不相背負,真若可信. 一旦臨小利害,僅如毛髮比,反眼若不相識. 落陷阱不一引手救,反擠之,又下石焉者,皆是也.)라고 적고 있다.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간 肝(간)의 구성은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달월(月)과 방패 간(干)으로 이루어져 있다. 干(간)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의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갑골문에 그려진 자형상부의 ‘一’모양은 양 쪽 끝이 뾰족한 찌르개로 되어 있으며 하부는 손잡이(十)다. 이에 따라 肝(간)의 의미는 우리 몸의 면역계를 담당하고 있는 방패(干)와 같은 장기(月=肉)라는 데서 ‘간’을 뜻할 뿐만 아니라 중요한 장기라는 데서 ‘요긴하다’의 뜻도 지니고 있다. 오행 중 목(木)에 해당하는 간(肝)부의 작용은 음(陰)의 간장과 양(陽)의 담낭이 부부관계라 할 수 있는 음양관계를 맺으며 우리 몸의 근육 신경 손발톱 눈과 상호 연계작용을 하면서 지각 운동 혈액대사 발열 영양대사 해독 등에 관여하고 있다.
쓸개 膽(담)의 구성은 육달월(月=肉)과 이를 첨(詹)으로 짜여 있다. 肉(육)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데,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月(육)’과 간략히 쓰기도 한다. 詹(첨)은 벼랑(厂)위에 위태롭게 있는 사람(人: 자형상부)에게 위험상황을 잘 분별(八)할 수 있도록 소리쳐 말한다(言)는 데서 ‘살펴보다’가 본뜻이나 ‘이르다’ ‘도달하다’ 등의 뜻으로 쓰이자 그 뜻을 명확히 하기위해 눈 목(目)을 더해 ‘볼 瞻(첨)’을 제작하였다. 따라서 膽(담)의 전체적인 의미는 몸 전체의 위험상황을 감지(詹)하는 장부(肉=月)인 ‘쓸개’를 뜻하게 되었다.
서로 相(상)은 나무 목(木)과 눈 목(目)으로 구성되었다. 木(목)은 한 그루의 나무를 가지와 줄기 뿌리까지 본뜬 상형글자이며, 目(목)은 사람의 한 쪽 눈을 본뜬 것으로 쓰기에 편리하도록 세로로 세운 모양이다. 相(상)의 본뜻은 어린 묘목(木)의 성장을 눈(目)으로 살펴보는 데서 ‘보다’ ‘살피다’ ‘돕다’인데, 오늘날 주로 쓰이는 ‘서로’ 란 뜻은 살피고 보살핀 데서 파생된 것이다. 한편 나무(木)의 싹이 움트는 모습을 살펴보면 항상 대칭적으로 싹눈(目)이 형성됨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서로’라는 의미의 파생과정을 엿볼 수 있다.
비출 照(조)의 구성은 밝을 소(昭)와 모닥불의 불꽃을 상형한 불 화(火)가 자형의 아래에 놓일 때 쓰이는 화(灬)로 이루어졌다. 昭(소)는 태양을 본뜬 해 일(日)과 부를 소(召)로 구성되었는데, 召(소)는 입 구(口)와 소리요소인 칼 도(刀)로 짜여있다고 하지만 여기서 刀(도)는 손의 모양이 변형된 것이다. 즉 召(소)는 입(口)으로 소리쳐 부르고 손바닥(刀)을 연신 안으로 굽히며 오라는 신호다. 이에 따라 昭(소)는 환하게 빛나는 태양(日)을 불러들였다(召)는 데서 ‘밝다’ ‘빛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照(조)의 전체적인 의미는 인위적으로 횃불이나 모닥불(灬)을 피워 어둠을 밝힌다(昭)는 데서 ‘비추다’ ‘환하게 밝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善游者溺이란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지기 쉽다는 뜻으로, 자만심에 빠져 자칫 방심하다가는 일을 그르치기 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淮南子회남자』「原道訓원도훈」의 “헤엄 잘 치는 사람이 물에 빠지기 쉽고, 말 잘 타는 사람이 떨어지기 쉬우니, 각기 좋아서 하는 것이지만 도리어 스스로 화를 부른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지나치게 좋아하는 일을 하는 자는 일찍이 거기에 빠지지 않은 자가 없었으며, 이익만을 다투는 자는 일찍이 궁핍해지지 않은 자가 없었다(夫善游者溺,善騎者墮,各以其所好,反自爲禍. 是故好事者未嘗不中,爭利者未嘗不窮也.)”는 대목에서 유래했다. 자신이 목표로 삼은 것을 이룬 자가 경계해야 할 것은 자만심과 방심이다. 잘 해 왔기에 어느 순간 자만심에 빠지기 쉽고, 그 자만심 때문에 방심하기 쉽다. 세상사가 그렇다. 처음 임할 때는 스스로가 조심하지만, 익숙해지면 자만심에 빠진다. 그래서 초보운전자보다도 능수능란한 운전자가 사고를 많이 내는 법이다.
착할 선(善)의 구성은 양 양(羊)과 말다툼할 경(誩)의 생략형으로 짜여 있다. 羊(양)은 예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는데, 두 뿔과 몸통 및 네 발 그리고 꼬리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羊(양)은 牛(소)와 함께 신에게 바치는 대표적인 동물로 희생할 犧(희)의 자형을 이루고, 또한 착하고 온순하다는 이미지를 빌어 살펴볼 善(선)자의 부수로 활용되고 있다. 금문에 처음 보인 善(선)의 자형하부는 본래 말씀 언(言)자 두 개가 겹쳐진 誩(경)이었는데, 단순화하여 입(口)을 강조하고 있다. 言(언)은 입(口)안의 혀(二)를 통해 나오는 말을 어떠한 기운(상부의 二)으로 기호화 한 것이다. 따라서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말다툼 한다는 것을 誩(경)이라는 글자에 담았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양(羊)의 경우에는 두 마리 이상이 어울려도 그 하는 말들이(言+言) 오순도순 정답게 보여 ‘착하다’ ‘좋다’는 의미를 부여 했다.
헤엄칠 游(유)의 구성은 흩어지고 모이는 강줄기를 상형한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깃발 유(斿)로 이루어졌다. 斿(유)는 깃발 언(方+人)과 아들 자(子)로 구성되었는데, 언(方+人)은 사람(人)이 나아가야 할 방향(方)을 알려주는 이정표와 같은 ‘깃발’을 말한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斿(유)는 부족의 이동이나 풍물을 할 때 보통 아이들(子)이 맨 앞에 서서 깃발(方+人)을 든 모습을 그려내 ‘깃발’ ‘놀다’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따라서 游(유)의 전체적인 의미는 물(氵)속에서 즐겁게 논다(斿)는 데서 ‘헤엄치다’ ‘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놈 者(자)는 본래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그런데 현재 자전에서 者(자)를 찾으려면 耂(로)부수에서 찾아야 되는 ‘회의글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그 해석 또한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耂)이 나이 어린사람에게 말할 때(白) ‘이놈저놈’ 한다는 데서 ‘놈’이란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자형하부의 ‘白’은 솥단지가 변화된 것이며 상부의 ‘耂’는 나물이나 고깃덩어리가 부글부글 끓으면서 솟아오르는 김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삶다’가 본뜻이었다. 그런데 솥에 삶은 국을 ‘이놈저놈’이 나누어 먹는다는 뜻을 담아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는 ‘놈 者(자)’로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불 화(灬)를 더해 ‘삶을 煮(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빠질 溺(익, 닉)의 구성은 물 수(氵)와 약할 약(弱)으로 이루어졌다. 弱(약)은 두 개의 활 궁(弓)과 ‘丿’모양이 겹친 모양으로 구성된 회의글자다. 먼저 弓(궁)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弓은 도달한다는 뜻이다. 가까운 곳에서 멀리까지 도달하는 것이며, 상형글자다. 옛날에 揮(휘)라는 사람이 활을 만들었다. 『주례周禮』에 ‘육궁이 있는데, 왕궁(王弓)과 고궁(孤弓)은 갑옷이나 과녁에 쏘는 데 쓰이고, 협궁(夾弓)과 유궁(庾弓)은 들개가죽으로 만든 과녁이나 날짐승과 들짐승을 쏘는 데 쓰이고, 당궁(唐弓)과 대궁(大弓)은 배우려는 자가 쏘는 활이다’.”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활의 모양을 그대로 그린 모양이며, 금문에 와서 활시위를 매지 않은 모양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곧 쓰지 않을 때는 활시위를 풀어 둠으로써 활의 탄력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자전에서는 弱(약)의 기본구성요소를 弓(궁)으로 분류하고는 있지만 이에 대한 풀이는 몇 가지로 나뉜다. 즉 활로 보는 경우, ‘오래된 활의 시위가 끊어져 너덜거리는 모양’을 겹쳐 놓은 것으로 활시위가 낡았으니 당연히 ‘약하다’는 것이다. 또는 ‘새끼 새가 두 날개를 늘어뜨린 모양’ 혹은 ‘구부정한 나무를 본뜬 모양’이라는 설 등을 제시하며 ‘약하다’의 뜻을 풀이하고 있다. 따라서 溺(익)의 전체적인 의미는 물(氵)에 빠진 활은 덧댄 가죽이 풀어져 약해진다(弱)는 데서 ‘빠지다’ ‘그르치다’ ‘약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訥言敏行이란 말은 더디고 과묵하지만 행동에 있어서는 재빠르다는 뜻으로, 말만을 앞세우지 않고 자신의 계발이나 남을 위한 선행에는 민첩하다는 말이다. 『論語논어』「里仁」편의 “군자는 하고자 하는 일에 대해 말을 앞세우지는 않지만 그 실천에 있어서는 민첩하게 행동한다(君子欲 訥於言 而敏行)”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말만 번지르르하고 그에 대한 행동이 따르지 않으면 실속이 없다. ‘빈 깡통이 요란하다’고 자신감이 없거나 내실이 없으면 오히려 자신을 내세우기 위해 말이 많은 법이다. 실천이 없는 공약(公約)은 그야말로 공약(空約)일 뿐이다.
말 더듬을 訥(눌)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안 내(內)로 이루어졌다. 內(내)는 들 입(入)과 먼데 경(冂)으로 이루어졌다. 入(입)에 대해 『說文』에서는 “入은 안으로 들어감을 말한다.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자형 외곽의 멀 冂(경)은 들 坰(경)의 옛글자인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을 邑(고을 읍)이라 하고 읍 밖을 郊(성 밖 교)라 하며, 郊의 밖을 野(들 야)라 하고 野의 밖을 林(수풀 림)이라 하며 林의 밖을 冂(먼데 경)이라 한다. 이에 따라 먼 곳(冂)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온다(入)는 데서 ‘안’ ‘들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訥(눌)의 전체적인 의미는 입을 통해 말(言)을 하려는데 입안(內)에서 맴돈다는 데서 ‘말을 더듬다’ ‘과묵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말씀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言(언)에 대해 『說文』에서는 “직접 말하는 것을 言(언)이라 라고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것을 語(어)라고 한다. 口(구)로 구성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辛의 하부에서 一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즉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口)을 통해 찌르듯이(辛)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재빠를 敏(민)의 구성은 매양 매(每)와 칠 복(攵)으로 이루어졌다. 每(매)는 비녀를 꽂아 아름답게 치장한 머리모양의 자형상부와 어미 모(母)로 구성되었다. 母(모)는 두 손을 마주하고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을 본뜬 女(녀)자에 유방을 가리키는 두 점을 강조하여 ‘아이를 낳아 젖을 주는 여자’, 즉 산모(産母)를 뜻하였으나 ‘어머니’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은 많아야 하나둘 아이를 낳지만 고대에는 다산(多産)이 곧 축복이자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는 머리를 올려 예쁜 머리장식의 하나인 아름다운 비녀를 꽂을 수 있었다. 즉 자형상부는 머리를 올려(丿) 비녀(一)를 꽂은 모양이다. 그러한 모습을 담은 글자가 바로 ‘많다’는 뜻을 지닌 매양 每(매)로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만의 특권이었다. 攵(복)은 회초리나 몽둥이를 손에 들고 있는 칠 攴(복)과 같은 뜻을 지닌 부수로 주로 자형의 우방에 놓이며 ‘치다’ ‘때리다’ 등의 뜻인데, 여기서는 비녀를 꽂는 손의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이에 따라 敏(민)의 의미는 여자의 머리장식(每)을 위해서는 비녀를 꽂는 손길(攵)이 재빠르고 민첩해야 함을 뜻하고 있다.
다닐 行(행, 항렬 항)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거리에서의 행위적 요소로 쓰이지만 ‘항렬(行列)’이나 같은 ‘또래’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多言數窮이란 지나치게 말이 많으면 자주 궁지에 몰리게 됨을 이른 말로, 『道德經도덕경』제5장의 “말이 많으면 궁벽해짐이 잦으니, 그 중간(중용)을 지키는 것만 못하다(多言數窮,不如守中)”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하상공은 이에 대한 주석으로 “너무 많은 일은 신(神)을 해치고 말이 많으면 그 몸을 해치니 입을 열어 혀를 움직이면 반드시 재난과 근심이 따르게 된다. 가운데 있는 덕을 지키는 것만 못하니, 정(精)과 신(神)을 함양하고 길러서 기(氣)를 아끼고 말을 적게 해야 한다(多事害神,多言害身,口開舌舉,必有禍患. 不如守德於中,育養精神,愛氣希言)”라고 하였다. 하상공은 또 다른 주석에서 “지혜로움을 아는 사람은 자신의 행동을 귀히 여길 뿐, 입을 놀려 말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사불급설(駟不及舌)이라 했다. 즉 네 마리 말이 끄는 아무리 빠른 마차도 사람의 혀 놀림에는 미치지 못하니, 말이 많으면 근심 걱정도 많아지게 된다.”고 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삼사일언(三思一言)이라고 했다. 말을 하기에 앞서 적어도 세 번 정도 생각하다보면 말로인한 실수가 줄어든다는 것. 오죽했으면 ‘침묵은 금’이라 했겠는가.
많을 多(다)는 두 개의 고기 육(肉)의 간략형인 육달월(月)로 이루어졌다. 多(다)에 대해 한대(漢代)의 문자학자 허신은 『說文』에서 “多는 포개어졌다는 뜻이다. 夕(석)이 포개어진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저녁이란 어둠이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多(다)라 한다. 夕(석)이 포개어지면 多(다)가 되고, 日(일)이 포개어지면 疊(첩)이 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고기육(肉)의 모양이 ‘夕’과 비슷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多(다)자 역시 두 개의 고깃덩어리(夕)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라 ‘많다’라는 뜻이 생겨났다.
말씀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言(언)에 대해 『說文』에서는 “직접 말하는 것을 言(언)이라 라고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것을 語(어)라고 한다. 口(구)로 구성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辛의 하부에서 一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즉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口)을 통해 찌르듯이(辛)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자주 數(삭, 셀 수)의 구성은 별 이름 루(婁)와 칠 복(攵)으로 이루어졌다. 婁(루)는 없을 무(毋)와 가운데 중(中) 그리고 여자 여(女)로 이루어진 회의글자지만, 금문에 새겨진 자형을 보면 상형글자임을 알 수 있다. 즉 다소곳이 앉은 여인(女)이 머리를 틀어 올려 온갖 장식을 하는 모양이다. 그래서 ‘아로새기다’ ‘드문드문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별자리를 나타내는 28수(宿)의 열여섯 번 째 별자리의 이름으로 보다 많이 쓰이고 있다. 攵(복)은 攴(복)의 간략형으로 손(又)에 회초리나 몽둥이(卜)를 들고서 친다는 뜻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글월 문(文)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등(等) 글월 攵(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인다. 따라서 數(수)의 전체적인 의미는 머리카락을 틀어 올린 여자(婁)의 머리에 온갖 장식을 하면서 흐트러지지 않도록 손에 쥔 작은 막대기(攵)로 여러 번 두들기고 헤아린다는 데서 ‘셈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장식물이 떨어지지 않도록 자주 매만진다하여 ‘자주’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
궁할 窮(궁)의 구성은 구멍 혈(穴)과 몸 궁(躬)으로 짜여 있다. 穴(혈)은 고대의 주거의 형태로 땅을 파내어 만든 동굴형태 집의 출입구를 본뜬 것으로 상형글자이다. 躬(궁)은 몸 신(身)과 소리요소인 활 궁(弓)으로 구성되었지만 본래자형에서는 弓(궁)이 아닌 등뼈 려(呂)이다. 身(신)은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되어졌다. 呂(려)는 등뼈를 두 마디의 척추 뼈로 압축하여 그린 것으로 일정한 크기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음악의 ‘가락’이나 ‘음률’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躬(궁)의 의미는 허리를 펴 서있을 수도(身) 있고 등뼈를 이용하여 구부릴 수도(呂) 있는 ‘사람의 몸’을 뜻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窮(궁)의 전체적인 의미는 좁다란 구멍(穴) 안에서는 몸(躬)을 펴거나 구부리기가 어렵다는 데서 ‘궁하다’ 또는 ‘궁지에 몰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通則不痛이란 온 몸의 기혈순환이 조화롭게 잘 소통이 된다면 아프지 않는다는 뜻으로, 동양의학의 핵심 논제이다. 그러나 不通則痛(불통즉통), 즉 기혈순환이 순조롭게 소통되지 않으면 통증이 오게 된다는 말이다. 기혈이 울체되거나 막히면 대사 작용을 할 수 없으니, 오장육부는 물론 각 기관들이 원활하게 자신의 역할을 할 수 없어 병적현상이 발현되기 마련이다.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건강은 물론 영적 성장을 위해 기(氣)수련을 하고 있다. 기란 모으는 게 아니고 대우주의 정미한 기운과 소통시키는 것이다. 간혹 기를 하단전에 모으려는 사람이 있는데, 유한한 우리 몸에 얼마나 모으겠는가! 우주 가득 무한하게 펼쳐진 기, 내 몸과의 소통이 과제이다.
통할 通(통)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길 용(甬)으로 구성되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따라서 辶(착)과 더해 만든 글자 중에는 빠를 迅(신)처럼 발걸음을 재촉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더딜 遲(지)와 같이 멈추어 선 듯 한 의미로도 활용되고 있다. 甬(용)은 자형상부를 이루는 뭔가를 매달거나 들 수 있는 손잡이 모양과 쓸 용(用)으로 구성되었다. 用(용)은 통나무 속을 파내거나 대나무와 같이 속이 빈 ‘나무통’ 혹은 잔가지를 엮어 만든 ‘울타리’를 본떴다고도 하며, 일각에서는 금문이나 소전의 자형을 보고 점사(卜)가 딱 들어맞으면(中) ‘사용한다’는 데서 유래를 찾기도 한다. 그러나 甬(용)의 금문과 소전을 살펴보면 손잡이가 달린 나무통이 유력하다. 본뜻을 살리고자 나무 목(木)을 더하여 제작한 ‘통 桶(통)’을 보아도 그렇다. 이러한 나무통은 곡식을 담거나 분량을 재는 기구로도 사용되었지만, 때로는 이를 두들겨 멀리까지도 소통할 수 있는 통신수단으로 활용되었는데 청동기가 보급되면서 동종(銅鐘)이 이를 대신한 것 같다. 그런데 이러한 ‘나무통’의 용도로 보다는 그 뜻이 속이 빈 통나무와 같이 담으로 둘러진 ‘골목길’로 더 쓰이게 되었다. 따라서 通(통)의 전체적인 의미는 골목길(甬)이 또 다른 길로 이어져 나아갈(辶) 수 있다는 데서 ‘통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곧 則(즉, 법칙 칙)은 솥 鼎(정)의 간략형인 조개 패(貝)와 칼 도(刀)로 구성되었다. 則(칙)이라는 글자는 금문에서 볼 수 있는데, 솥을 뜻하는 鼎(정)의 그림문자와 칼 刀(도)가 새겨져 있다. 금문(金文)이란 은나라시대의 종정문(鐘鼎文), 즉 제기(祭器) · 무기(武器) · 악기(樂器) 등에 새긴 명문(銘文)으로 주로 틀에 글자를 써서 새기고 금속을 녹여 부어서 주조(鑄造)한 것이므로 필사체(筆寫體)인 경우가 많다. 주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청동제품인 솥(鼎)에 법 삼을만한 글귀를 날카로운 칼(刂=刀)을 이용하여 새겨 넣기도 하였다. 따라서 則(칙)의 전체적인 의미는 제사용으로 쓰이는 청동 솥(鼎=貝)에 조각 칼(刂)을 이용해 본받을 만한 글귀를 새겨 넣었음을 그려낸 것으로, 청동제품에 새겨진 내용은 곧 사람으로서 지켜야 될 도덕적인 내용에서부터 법령 등과 같은 ‘법칙’이 주된 것이었다. ‘곧’ ‘만일 ~이라면’, 이러한 뜻은 파생된 것으로 이 때 읽을 때는 ‘즉’으로 발음한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아플 痛(통)은 병들어 기댈 역(疒)과 길 용(甬)으로 이루어져 있다. 疒(녁)은 사람이 질병에 걸려 침상에 드러누운 모양을 본떴다. 자형 중에 ‘亠’모양은 침대(ㅡ)에 누워 있는 환자(丶)를 뜻하고 나뭇조각 장(爿)의 간체자 모양인 ‘丬(장)’은 다리가 달린 침대인데, 붓으로 쓰기에 편리하게 세워 놓은 것일 뿐이다. 그래서 疒(역)자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대부분 질병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甬(용)은 通(통)자에서 살펴본 대로이다. 따라서 痛(통)의 의미는 전신의 세포에 영양분을 공급하는 혈관이나 에너지를 전달해주는 경락과 같은 길(甬)이 막혀 발생하는 통증으로 인해 병석에 누워(疒)있다는 데서 ‘아프다’는 뜻을 표현했다.
不遷怒란 자신의 분노를 남에게 옮기지 말아야 함을 뜻한 것으로, 『論語논어』에서 유래했다. 지금으로부터 약 2,500여 년 전, 노나라의 애공(哀公)과 공자(孔子)가 이야기를 주고받았는데, 애공이 “제자들 가운데 누가 배우기를 좋아합니까?(弟子孰爲好學)”라고 묻자, 공자는 “안회라는 제자가 있었는데 배우기를 무척이나 좋아했답니다. 그는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남에게 옮기는 법이 없었고, 같은 잘못을 두 번해서 되풀이 하는 일도 없었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단명하여 죽고 말았지요. 지금은 그가 죽고 없으니, 지금껏 그 보다 배우기를 좋아하는 자가 있음을 들은 바가 없답니다(有顔回者好學. 不遷怒, 不貳過. 不幸短命死矣. 今也則亡, 未聞好學者也)”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우리네 마음, 잘 다스리지 않으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걷잡을 수 없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마음(心)의 노예(奴)가 되어버림이 곧 ‘성냄’이다. 따라서 화가 치밀면 얼른 ‘저 놈이 누구지’ 하고 마음의 노예에서 깨어나 알아차리면 ‘화’는 사라진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옮길 遷(천)의 구성은 쉬엄쉬엄 걸어가는 모양을 그려낸 착(辵)의 간략형인 쉬엄쉬엄 갈 착(辶)과 오를 선(䙴, 천)으로 이루어졌다. 䙴(선)은 두 손을 내려 뭔가를 잡고 있는 모양의 덮을 아(襾)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상형한 큰 대(大),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의 모양을 그린 병부 절(㔾)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는 꿇어앉은(㔾) 사람(大)을 가마에 태워 마주 들고(襾)가는 모양으로 遷(천)의 옛글자다. 따라서 遷(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을 가마에 태워(䙴) 천천히 간다(辶)는 데서 ‘옮기다’ ‘바꾸다’ 등의 뜻을 부여했다.
성낼 怒(노)의 구성은 노예 노(奴)와 사람의 심장을 본뜬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奴(노)는 여자 여(女)와 또 우(又)로 구성되었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又(우)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닌다. 이에 따라 奴(노)는 전쟁에서 패한 나라의 여자들(女)을 포로로 붙잡아(又) 온 데서 연유한 자형으로 ‘종’ ‘노예’를 뜻한다. 따라서 怒(노)의 전체적인 의미는 포로 붙잡혀 온 노예(奴)의 마음(心)을 나타내 ‘화내다’ ‘성내다’를 표현하였다. 마음의 관점에서 해석한다면, 우리네 마음은 잘 다스리지 않으면 종잡을 수 없을 만큼 천방지축으로 날뛴다. 걷잡을 수 없이 이리 저리 뛰어다니는 마음(心)의 노예(奴)가 되어버림이 곧 ‘성냄’이다.
必作於細란 모든 일은 반드시 작은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뜻으로, 『道德經도덕경』제63장의 “천하의 어려운 일도 반드시 쉬운 것에서부터 시작되고, 천하의 큰일도 반드시 미세한 일에서부터 시작된다(天下難事必作於易,天下大事必作於細)”고 한 대목에서 유래하였다. 즉 “쉬운 일로부터 어려운 일이 생겨나고 미세한 것으로부터 큰 것으로 발전하는 것(從易生難,從細生著)”이다. 『韓非子한비자』에서도 “천 길이나 되는 높은 제방도 개미나 땅강아지의 작은 구멍으로 인해 무너지고, 백척 높이의 고대광실도 아궁이 틈에서 나온 작은 불씨로 인해 타버린다(千丈之堤以螻蟻之穴潰, 百尺之室以突隙之烟焚)”고 했다. 세상의 모든 일은 반드시 그 조짐이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지혜로운 사람은 조그마한 조짐에 주목하고 사전에 그 대책을 강구한다.
반드시 必(필)의 초기글자인 갑골문을 살펴보면 긴 자루가 달린 국자와 함께 몇 개의 물방울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제사를 지낼 때 술을 퍼 담는 기구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제사를 지낼 때는 술은 반드시 필요한 제수(祭需)였다는 점에서 술을 담는 국자 역시 반드시 함께 있어야할 용품이기에 ‘반드시’라는 의미를 가차한 것이다. 그러나 必(필)자를 사전에서 찾으려면 心(심)부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인문학적인 해석을 해본다. 즉 마음(心)에 깊이 각인시키려면 반드시 말뚝(丿)을 박듯이 해야만 된다는 데에서 ‘반드시’ ‘꼭’이란 뜻이 발생했고, 잔인하기는 하지만 생명을 완전히 죽이려면 반드시 심장(心)에 비수(丿)를 꽂아야만 한다는 데에서 ‘반드시’라는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지을 作(작)은 사람 인(亻)과 잠깐 사(乍)로 구성되었다. 亻(인)은 서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人(인)의 변형자이며, 다른 부수의 좌변에 주로 놓인다. 乍(사)는 ‘잠깐’이라는 뜻과 함께 ‘짓다’라는 의미로도 쓰이는데,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보면 뚜렷하지는 않지만 옷깃을 만들기 위해 바느질을 하는 모양으로 보여 진다. 따라서 作(작)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亻)이 바늘을 손에 쥐고 옷을 짓는(乍) 모양을 그려낸 것으로 ‘짓다’ ‘만들다’라는 뜻으로 쓰이고 있다.
어조사 於(어)의 구성은 깃발 언(㫃)과 얼음 빙(冫)으로 이루어졌지만, 금문과 소전에 그려진 자형은 까마귀의 상형이다. 본디 감탄사의 일종인 ‘오!’였지만, ‘--에서’ ‘--에’와 같이 어조사인 ‘처소격’으로 뿐만 아니라 ‘--보다’(비교격), ‘--를’(목적격) 등과 같이 그 쓰임이 참으로 많다.
가늘 細(세)의 구성은 가는 실 사(糸)와 밭 전(田)으로 이루어졌다. 糸(사)는 누에고치에서 막 뽑아 잣아 놓은 실타래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현재자형은 田(전)으로 단순하게 그려져 있지만 『說文』에는 ‘정수리 신(囟)’으로 기록하고 있다. 囟(신)은 정수리 부위의 숨골, 즉 머리가 단단하게 굳지 않은 갓난아이의 숨골을 말하는 것으로 여기서는 아주 ‘어리다’는 뜻으로 쓰였다. 이에 따라 細(세)는 실타래의 가는 실(糸)이나 아직은 어린 갓난아이(囟)를 그려내 ‘가늘다’ ‘미미하다’ ‘작다’는 뜻을 나타냈다.
食少事煩이란 먹는 것은 적고 하는 일은 많다는 뜻으로, 자신의 몸은 돌보지 않고 과로할 만큼 많은 일을 해치움을 말한다. 『삼국지三國志』에서 유래한 것으로, 제갈량이 두 번째 출사표를 던지고 위나라의 사마의와 대치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속전속결하려고 하였으나 사마의는 전령과 사자만을 뻔질나게 보내며 지구전을 펼쳤다. 사마의가 제갈량의 사자에게 “제갈공께서는 하루 일과는 어떻고 식사는 어떻소?(諸葛公起居何如?食可幾(許)米?)”라고 묻자 “식사는 적게 하시고, 거의 하루 종일 정사를 손수 살피시고 열람하십니다(三四升. 二十罰已上皆自省覽)”라고 하자 “먹는 것은 적고 할 일은 많으니, 어찌 오래 버틸 수 있겠는가?(食少事煩 安能久平?)”라고 하였다. 결국 천하의 제갈량도 병을 얻어 54세의 이른 나이로 사망하고 말았다. 우리 몸 역시 일정한 내구연한을 가진 물질이다. 지나치게 사용하면 그만큼 노화현상도 빨리 와 결국엔 죽음을 면치 못한다. 마음만 앞세우지 말고 몸도 돌봐가면서 할 일을 해야 함을 깨우치는 교훈이라 할 수 있다.
밥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다. 皀(급)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의미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皀)에 담아 뚜껑(亼)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적을 少(소)는 초기글자인 갑골문을 살펴보면 ‘작다’는 뜻을 지닌 ‘小(소)’는 세 개의 점으로, 그리고 少(소)는 네 개의 점으로 표시되었다. 두 글자 모두 작은 뭔가를 표시한 것으로 새겨져 있다. 이러한 小(소)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小는 사물이 아주 작다는 뜻이며 八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즉 어떤 사물(丨)을 반으로 나누었기(八) 때문에 작아졌다는 의미로 해석하고 있다. 또한 少(소)에 대해서는 小(소)를 의미요소로 ‘丿’모양을 소리요소로 파악하였다. 일반적으로 小(소)는 어떠한 사물이 ‘작다’는 뜻으로, 그리고 少(소)는 ‘적다’는 의미로 구분하여 활용하고 있으나 고대에는 거의 동일한 의미로 쓰였다.
일 事(사)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처음에는 기록을 주로 하는 사관(史官)을 뜻하였다. 이는 자형의 유래가 같은 ‘역사 史(사)’와 ‘벼슬아치 吏(리)’ 역시 갑골문에는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정의한 것처럼 史(사)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리)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사)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
괴로워할 煩(번)의 구성은 불 화(火)와 머리 혈(頁)로 이루어졌다. 火(화)는 장작더미 위로 타오르는 불꽃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책의 면수(페이지)를 나타낼 때는 ‘책면 엽’으로 읽는다. 따라서 煩(번)의 전체적인 의미는 온 몸의 불꽃(火)같은 마음의 열기가 머리(頁)에 집중되어 있다는 데서 ‘괴로워하다’ ‘낯 뜨겁다’ ‘번거롭다’ ‘바쁘다’ 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여인의 치마폭에 놀아나다 나라를 멸망에까지 이르게 한 군주는 역사에서 숱하게 볼 수 있다. 그러한 사실들이 교훈으로 전해오지만 늘 되풀이되는 것은 왜일까! 아마도 인간이기에 그럴까! 남녀 간 사랑의 역사는 예나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일천 千(천)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한 일(一)로 이루어졌다. 즉 사람을 상형한 亻(인)자에 한 획(一)을 그으면 ‘일천’, 두 획(二)을 그으면 ‘이천’, 세 획(三)을 그으면 ‘삼천’을 뜻하는 약속글자였다.
쇠 金(금)은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이다. 본래는 주물하기 쉬운 청동(靑銅)을 의미하였지만 때에 따라 ‘황금’을 뜻하기도 한다. 金(금)에 대해 『說文』에서는 “金은 다섯 가지 색의 쇠를 뜻한다. 그 가운데서도 황금을 으뜸으로 여긴다. 금은 땅속에 오래 묻어두어도 녹이 생기지 않고, 백 번을 제련해도 감소하지 않으며 모양을 바꾸어도 변하지 않는다. 서쪽을 나타내는 오행이다. 흙에서 생겨나므로 土(토)로 구성되었으며 거푸집의 좌우에서 붓을 때 쇠가 흙속에 있는 모양을 본떴다. 今(금)은 소리요소가 된다.”고 하였다. 金(금)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고 금문에 보이는데, 잘 살펴보면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리요소인 금(今)의 생략형에다 흙(土)에 덮여 있는 두 덩어리(두 점)의 금을 나타낸 형성글자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금문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금(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 청동기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살 買(매)의 구성요소는 그물 망(罒)과 조개 패(貝)로 짜여 있다. 罒(망)의 본래 모양은 网(망)으로 족대와 같이 손잡이가 없는 그물, 즉 새와 같은 날짐승을 잡기위해 공간에 쳐놓은 ‘그물’을 말한다. 貝(패)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로 활용했는데, 여느 바다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개가 아니라 남중국해나 인도양 등지에서 나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아주 단단한 것이었다. 갑골문의 자형은 두 쪽으로 벌려진 조개의 모습이었으나 금문으로 오면서 두 개의 촉수를 내민 현재의 글자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장사하는 사람은 돈(貝)이 될 만한 물건이라면 투망을 던지듯 망(网)을 쳐서 사들인다는 데서 ‘사들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웃을 笑(소)는 대나무 죽(竹)과 어릴 요(夭)로 구성되었다. 竹(죽)은 대나무의 곧은 줄기와 죽순껍질을 상형한 글자다. 초기자형인 笑(소)의 소전(小篆)을 보면 夭(요)가 아니라 개 견(犬)으로 되어 있는데, 예서체로 넘어오면서 현재의 자형인 사람의 모습을 담은 夭(요)로 바뀌었다. 夭(요)는 정면에서 바라 본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자에 고개를 뒤로 젖힌 머리모양(丿)을 나타낸 상형글자이다. 夭(요)는 다양한 뜻을 담고 있는데, 앞으로 내달리기 위해 연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뛰어가는 모습에서는 어린아이들과 같다하여 ‘어리다’는 뜻을, 머리를 갸웃거리며 요염하게 교태를 부린다하여 ‘예쁘고 아름답다’는 뜻을, 또한 고개를 젖히고 있는 모양에서는 ‘일찍 죽는다’ 하여 요절(夭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즉 夭(요)자가 갖는 핵심은 바로 고개를 전후좌우로 흔들어 댄다는 행위적 요소이다. 따라서 笑(소)의 전체적인 의미는 작은 바람결에도 몸체를 일렁이는 대나무 숲의 모습과 함께 바스락거리는 소리요소를 동시에 대나무(竹)에서 취하였고, 또한 사람이 즐거움에 겨워 고개를 전후좌우로 흔들어대는 모습(夭)을 더해 ‘웃음’의 소리와 행위를 나타냈다.
千金買笑란 천금을 주고 웃음을 산다는 뜻으로, 쓸데없는 일에 돈을 허비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열국지列國志』에서 유래한 것으로, 서주의 마지막 군주 유왕(幽王)은 포사라는 여인을 사랑했는데, 그녀는 좀체 웃는 일이 없었다. 그래서 유왕은 갖은 수단을 동원하여 웃게 하려했으나 그럴 수 없었다. 마침내 유왕은 포사를 웃게 한 자에게 천금의 상을 내린다고 내걸었다. 그러자 신하 곽석보가 거짓 봉화를 올렸다가 제후들이 허탕치고 돌아가는 모습을 보면 웃을 것이라 제안하자, 유왕은 려산의 별궁에서 지내며 봉화를 올리자 제후들은 적이 침입한줄 알고 허겁지겁 왔다가 돌아갔는데, 그 때마다 포사는 자지러지게 웃었다. 이러한 일이 잦자 결국 견융(犬戎)이 침입했을 때는 누구도 거들떠보지 않아 유왕은 피살되고 서주는 멸망하였다.
남부지방의 가뭄이 심각하다. 논밭은 타들어가고 농부들의 가슴도 애가 탄다. 모내기철에 자우(慈雨)라도 내려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예나지금이나 통치자의 치덕(治德)이 부족하면 가뭄이 온다고 했다.
가물 旱(한)의 구성은 해 일(日)과 방패 간(干)으로 이루어졌다. 日(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日은 가득 차 있음을 말한 것이다. 태양의 정기 및 모양이 이지러지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과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태양의 둥근 모양과는 달리 네모지게 그린 것은 거북껍질이나 소의 견갑골 등에 새기려면 아무래도 둥글게 칼을 쓰는 것보다는 결을 따라 네모지게 하는데 편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干(간)은 상대의 공격을 막아주는 방패의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갑골문에 그려진 자형상부의 ‘一’모양은 양 쪽 끝이 뾰족한 찌르개로 되어 있으며 하부는 손잡이(十)다. 따라서 旱(한)의 전체적인 의미는 뜨거운 해(日)의 기운이 너무 내리 쬐여 방패(干)로 막아야 할 상황이라는 데서 ‘가물다’ ‘가뭄’을 뜻하게 되었다.
가물귀신 魃(발)의 구성은 귀신 귀(鬼)와 달릴 발(犮)로 이루어졌다. 鬼(귀)는 귀신의 모습을 상상하여 만든 탈을 쓰고 쭈그려 앉아 있는 무당을 상형한 글자다. 자형상부의 귀신머리 불(丿+田)이 곧 기괴하게 만든 탈이고, 그걸 쓰고 있는 사람(儿)의 모양이 갑골문과 금문의 자형이었다. 소전에 이르러 ‘厶(사)’모양이 첨가되었는데 발꿈치라는 설과 함께 삿되게 사람을 해치는 ‘귀신’을 뜻하기 위한 표시로 보기도 한다. 이에 따라 鬼(귀)는 대자연의 신이 아닌 사람이 죽어서 혼령으로 나타난 조상신을 뜻한다. 犮(발)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견(犬)과 오른손 모양을 본뜬 우(又)의 간략형인 ‘丿(별)’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즉 개(犬)의 털을 뽑으려 손(又)을 대려 하면 도망친다는 데서 ‘달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본뜻인 털을 ‘뽑다’의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뜻보다는 ‘달리다’의 뜻으로 활용되자 본래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손 수(扌)를 더해 ‘뽑다(拔)’의 뜻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魃(발)의 전체적인 의미는 털 뽑힌 개(犮)처럼 못생긴 귀신(鬼)을 형상화하여 ‘가뭄을 관장하는 신’을 뜻하게 되었다.
旱魃이란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는 몹시 심한 가뭄을 뜻한다. 이는 [삼황오제]에서 유래 했는데, 한발(旱魃)은 가뭄을 관장하는 아주 못생긴 여신으로 그녀가 머무는 곳에는 비 한 방울도 내리지 않고 초목이 타들어갈 정도로 열기가 대단했다는 신화에서 비롯됐다. 그래서 사람들은 한발을 원망하며 그녀를 불에 태우는 기우제(祈雨祭)를 지내기도 했다.
예나지금이나 사람은 주변 환경의 영향을 받는다. 쑥이 삼나무 밭에서는 쑥쑥 자라듯(麻中之蓬) 사람 역시 누구와 사귀느냐에 따라 많은 영향을 받는다. 특히나 아직 인성이 확립되지 않은 어린아이는 백지와 같아서 무엇을 보고 듣느냐에 따라 그림이 그려진다.
맏 孟(맹)의 구성은 아들 자(子)와 그릇 명(皿)으로 이루어졌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皿(명)은 음식을 담을 수 있는 넓은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다. 본디 제기용 그릇이었지만 일반적인 ‘그릇’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이에 따라 커다란 그릇(皿)에 아기(子)를 담고 있는 것으로 그림이 그려지는데, 이 孟(맹)자에는 고대인들의 맏아들에 대한 인식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글자 중의 하나이다. 자형의 변화는 없었지만 글자에 담긴 이야기 자체가 곧 역사적 인식을 함께 하고 있다. 첫째로 아직 정상적인 혼례풍속이 정착되기 이전의 고대시대에는 약탈혼이 성행했는데, 빼앗아온 여자가 낳은 첫아이는 자신의 아이가 아닐 가능성이 높아 혈통으로 인정할 수 없다는 데서 그 ‘첫아이’는 제물로 바쳤다는 풍속. 둘째는 지금도 여전히 그렇지만 햇곡식이나 그것으로 빚은 술 등 처음으로 나온 것을 천신과 조상신에게 바치는 고대인들의 의례 때문이었다는 것. 이러한 역사적 바탕위에서 만들어진 孟(맹)자는 문화가 성숙된 후대로 오면서 그 의미 또한 변화하였다. 약탁혼이 아닌 정해진 배필과 만나 맏아들(子)을 낳으면 제기용의 큰 그릇(皿)에 올려 조상신에게 안녕을 빌 뿐만 아니라 맏아들을 중심으로 가문이 이어지고 번성하기를 기원하였다는 점에 ‘맏아들’이란 뜻을 갖게 되었다. 따라서 옛사람들의 이름자 중에 孟(맹)이나 伯(백)자 들어가면 ‘맏아들’임을 알 수 있다.
어미 母(모)는 두 손을 마주하고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을 본뜬 女(녀)자에 유방을 가리키는 두 점을 강조하여 ‘아이를 낳아 젖을 주는 여자’, 즉 산모(産母)를 뜻하였으나 ‘어머니’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은 많아야 하나둘 아이를 낳지만 고대에는 다산(多産)이 곧 축복이자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었다.
석 三(삼)은 옆으로 세 개의 선을 그은 모양으로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이기도 하지만, ‘거듭’ ‘자주’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 三(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三은 하늘ㆍ땅ㆍ사람의 도(道)를 뜻하며, 자형에서 보듯 一과 二가 짝을 이루어 三이 되었으니 완전수인 성수(成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동양학에서는 천지인을 뜻하면서도 사물을 이루는 기본수로 인식, 천지인뿐만 아니라 삼태극(三太極)에서 보여주듯 삼원사상(三元思想)을 확립하게 되었다.
옮길 遷(천)의 구성은 쉬엄쉬엄 걸어가는 모양을 그려낸 착(辵)의 간략형인 쉬엄쉬엄 갈 착(辶)과 오를 선(䙴, 천)으로 이루어졌다. 䙴(선)은 두 손을 내려 뭔가를 잡고 있는 모양의 덮을 아(襾)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상형한 큰 대(大),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의 모양을 그린 병부 절(㔾)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는 꿇어앉은(㔾) 사람(大)을 가마에 태워 마주 들고(襾)가는 모양으로 遷(천)의 옛글자다. 따라서 遷(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을 가마에 태워(䙴) 천천히 간다(辶)는 데서 ‘옮기다’ ‘바꾸다’ 등의 뜻을 부여했다.
孟母三遷이란 대유학자인 맹자의 어머니가 자식교육을 제대로 하기 위해 세 번이나 집을 옮겼다는 뜻으로, 주위환경이 아이들 교육에 지대한 영향을 미침을 말해주고 있다. 한나라의 유향(劉向)이 여인들의 이야기를 모아 지은 『열녀전烈女傳』에 수록되어 있다. 처음에는 맹자의 집이 묘지 근처에 있어선지 장례놀이를 일삼자, 시장어귀로 이사를 했는데 이제는 장사꾼 놀이를, 그래서 “다시 서당부근으로 이사했더니 제기 그릇을 진설해놓고 신주 앞으로 나아가거나 물러나며 절을 하고 예를 갖추면서 놀았다. 맹자의 어머니는 ‘참으로 내 아들이 살만한 곳이로구나’해서 마침내 그곳에 정착하였다(復徙舍學宮之傍. 其嬉遊乃設俎豆揖讓進退. 孟母曰:「真可以居吾子矣」遂居之.)”고 한다.
우리가 인간으로 태어나 한 생을 살다가는 이유는 뭘까! 누구에게나 부여된 본성, 즉 본래부터 밝고 맑은 명덕(明德)을 회복하고자 함이 아닐까!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의 핵심 논지를 복귀무극(復歸無極)이라 하지 않았을까!
밝을 明(명)은 창문의 생략형 글자인 일(日)과 달 월(月)로 구성되었다. 明(명)에서 자형좌변의 (日)은 태양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본디글자에서는 囧(경)이다. 囧(경)은 창문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빛이 들어 밝아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月(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月은 이지러진다는 뜻이다. 태음(太陰)의 정수로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三陰三陽論(삼음삼양론)에 따르면 음기(陰氣)가 가장 큰 상태를 태음이라 하며, 그 다음이 소음 궐음 순이다. 陽(양)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태양으로 항상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實(실)이라 하며, 陰(음)인 月(월)은 이지러져 있는 때가 많기에 闕(궐)이라 한다. 그래서 갑골문 등에도 반달과 같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明(명)은 어둠이 내린 밤에 달빛(月)이 창문(囧)을 통해 집안을 비추니 ‘밝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거울 鏡(경)의 구성은 쇠 금(金)과 다할 경(竟)으로 이루어졌다. 金(금)은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이다. 본래는 주물하기 쉬운 청동(靑銅)을 의미하였지만 후대로 오면서 모든 금속을 아우르는 대표명사가 되었다. 竟(경)은 소리 음(音)과 사람 인(儿)으로 짜여 있다. 『說文』에서는 “소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몸 밖으로 나옴이 마디마디가 있는 것을 音(음)이라 한다.”이라고 했는데, 갑골문 등에서는 입(口)에 나팔과 같은 관악기를 불고 있는 모양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竟(경)의 뜻은 사람(儿)이 관악기의 연주(音)를 끝냄을 나타낸 것으로, ‘끝나다’ ‘다하다’ 등의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鏡(경)의 전체적인 의미는 주물한 청동기(金)의 표면을 매끄럽게 마치면(竟) 얼굴을 비출 수 있다는 데서 ‘거울’ ‘거울삼다’를 뜻하게 되었다.
발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발’이란 뜻과 함께 ‘멈추다’ ‘그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물 水(수)는 강물이 한데 모아지고 나누어지는 물줄기를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氵)로 표시하거나 氺(수)로 쓰이기도 한다. 水(수)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水(수)는 평평하다는 뜻이다. 북쪽 방위를 나타내는 오행이다. 여러 물줄기가 나란히 흐르는 가운데 미미한 양(陽)의 기운이 있는 것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이 역(易) 괘체 중의 하나인 물을 뜻하는 坎(감, ☵)을 세로로 세운 것과 같아 외곽의 陰(음, --)이 가운데 陽(양, ㅡ)을 에워싼 모양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明鏡止水란 밝고 깨끗한 거울과 멈추어선 고요한 물이라는 뜻으로, 삿된 생각이 없는 밝고 맑은 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자莊子』「덕충부편德充符篇」에서 유래한 것으로, 노나라에서 죄를 지어 다리를 잘린 왕태(王駘)라는 사람에게 배우는 제자가 공자만큼이나 많아 그 이유를 제자가 묻자 공자는 “사람의 인품은 흘러가는 물에는 비춰 볼 수가 없고 고요한 물에 비추어 보아야 한다. 오직 고요한 것만이 고요하고자 하는 모든 것을 고요하게 할 수 있다(人莫鑑於流水 而鑑於止水 唯止能止衆止)”고 하였다. 비슷한 문장으로 “거울이 밝으면 먼지가 끼지 못하고, 먼지가 내려앉으면 밝지 못한다. 어진 사람과 오래토록 함께 있으면 허물이 없어진다(鑑明則塵垢不止 止則不明也 久與賢人處 則無過)”고도 했다.
큰 그릇은 더디 만들어지고 큰 소리는 드물게 나오는 법(大器晩成, 大音希聲)이라고 하였다. 큰 일을 도모하자면 오랜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 어찌 보면 우리 인생사 역시 긴 항해이자 일대 역사(役事)라 할 수 있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울 鳴(명)의 구성은 입 구(口)와 새 조(鳥)로 짜여 있다.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이다.
또한 허신은 鳥(조)에 대해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현재의 자형 중간부위를 말하며 하부의 네 개의 점은 꼬리를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鳴(명)의 전체적인 의미는 새(鳥)가 주둥이(口)를 벌리고 소리를 내는 것을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운다고 본데서 ‘울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놀랄 驚(경)의 구성은 공경할 경(敬)과 말 마(馬)로 이루어졌다. 敬(경)은 진실로 구(苟)와 칠 복(攵)으로 구성되었는데, 苟(구)는 현재자형에는 풀 초(艹)로 되어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머리장식의 일종인 북상투 관(卝)으로 그려져 있고, 勹(포)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이며 구(口)는 금문과 소전에 와서야 첨가 되었다. 즉 머리장식(卝)을 하기 위해 다소곳이 꿇어앉은 모양(勹)에서 장식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신하다’ ‘근신하다’본뜻이었는데, 여기에 입(口)조심까지 더해졌다. 그러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관(卝)이 풀 초(艹)로 변하면서 ‘풀이름’ 또는 ‘진실로’ ‘구차하다’는 뜻으로 가차되었다. 攵(복)은 회초리나 몽둥이를 손에 들고 있는 칠 攴(복)과 같은 뜻을 지닌 부수로 주로 자형의 우방에 놓이며 ‘치다’ ‘때리다’ 등의 뜻을 더해준다. 따라서 敬(경)은 의관을 잘 갖추어 조신하고 근신(苟)할 수 있도록 독려(攵)한다는 것인데, 곧 누군가를 공경하는 마음자세를 갖추도록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驚(경)의 전체적인 의미를 살펴보면, 사람과 달리 길들여지지 않은 말(馬)은 안장이나 재갈 등을 갖추어(敬)주려 하면 앞발을 치켜 올리며 깜짝 놀란다는 데서 ‘놀라다’ ‘겁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 人(인)은 서서 손을 내민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지며 좌변에 놓일 때는 亻(인)모양으로, 그리고 하변에 놓일 때는 儿(인)으로 변형된다. 『說文』에서는 “人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 글자는 주문(籒文)으로 팔과 다리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문(籒文)이라 함은 열 가지의 서체의 하나로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라는 사람이 창작한 한자의 글씨체(字體)이다.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一鳴驚人이란 평소 울지 않던 새가 크게 울어 사람을 놀래킨다는 뜻으로, 평소 말없이 과묵하던 사람이 갑자기 큰 일을 일으켜 사람들을 놀라게 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골계열전滑稽列傳」에서 유래했다. 춘추전국시대의 제나라 위왕은 젊은 나이에 왕위에 올랐지만 3년이 넘도록 정사는 돌보지 않고 주색에 빠져 있자, 신하 순우곤이 왕에게 “이 나라에는 큰 새가 한 마리 있습니다. 3년 간 날지도 않고 울지도 않는데, 무슨 새인지 아십니까?”라고 하자 왕은 “이 새가 비록 날지는 않지만 한 번 날면 하늘에 가득차고, 또한 울지 않지만 한 번 울면 세상 사람들이 놀란다(此鳥不飛則已 一飛沖天 不鳴則已 一鳴驚人)”고 대답하였다. 그리고는 다음날부터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다른 사람이 되어 정사를 돌보았다고 한다.
心卽佛(심즉불)이라 했다. 마음이 곧 부처라는 말이다. “우리의 본래 성품이 바로 부처이며 이 본래 성품을 떠나 부처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本性是佛 離性無別佛)”는 이야기다. 누구에게나 부여된 본성을 깨쳐 성불(成佛)하였으면 좋겠다.
볼 見(견)의 구성은 눈 목(目)과 사람의 발모양을 본뜬 사람 인(儿)으로 이루어졌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罒)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인체 중에서도 유독 눈을 강조한 회의글자이다. 여타 다른 동물의 시각이 아니라 오직 사람(儿)의 입장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본다(目)는 데서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성품 性(성)은 마음 심(忄)과 날 생(生)으로 구성되어 있다. 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인 忄(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작용과 관련이 깊다. 生(생)은 땅거죽(土)을 뚫고 자라나는 풀(屮)을 본떠 ‘낳다’라는 뜻을 부여 했다. 따라서 性(성)의 전체적인 의미는 변화무쌍하게 나타나는 우리 마음(忄)이 자라나는(生) 본체라는 데서 ‘성품’ ‘성질’을 뜻하게 되었다. 즉 하늘이 부여한 생명의 본체를 말하는데, 그것은 누구나 같은 근원에서 출발한 본래부터 밝은 빛의 존재(明德)였다.
이룰 成(성)의 글자형성은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관련이 깊다. 십간은 곡식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수확되어 창고에 갈무리되었다가 다시 파종되는 일련의 순서를 나타낸다. 즉 씨앗이 파종되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내리게 되는데, 甲(갑)의 자형하부가 곧 뿌리를 뜻한다. 乙(을)은 싹이 터 어느 정도 자라난 모양을, 丙(병)은 자라나 저마다 꼴의 형태를 갖춘 것을, 丁(정)은 장성하게 자라난 모양을, 戊(무)는 지나치게 웃자라지 못하도록 전지가위를 이용해 잘라주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장성하게 자라(丁) 전지(戊)해 줄 정도가 되면 식물의 성장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부처 佛(불)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상형한 사람 인(亻)과 아니 불(弗)로 이루어졌다. 弗(불)에 대해서는 일반적으로 굽은 나무(세로의 두 획)를 한 가닥의 끈(弓)을 이용하여 ‘바르게 편다’는 데서 ‘바로잡다’가 본뜻이라고 본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 보면 활 弓(궁)의 자형적 의미를 무시할 수 없다. 따라서 활대(弓)를 만들기 위해 두 줄로 묶어둔(丿+丨, 세로의 두 획) 나무는 아직은 활로 쓸 수 없다는 데서 ‘아니다’는 뜻이 발생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따라서 佛(불)의 전체적인 의미는 산스크리트어의 붓다(Buddha: 깨달은 자)의 음역인 불타(佛陀)를 뜻하면서도, 세상의 잘못됨을 바로잡는(弗) 사람(亻), 혹은 보통 사람이 아닌(弗) 깨달음을 이룬 사람(亻)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見性成佛이란 자신의 본성을 보면 부처가 된다는 뜻으로, 불교에서 자신의 본성, 즉 본래의 마음을 깨치면 깨달음의 경지에 이를 수 있다는 말이다. 교외별전(敎外別傳), 불립문자(不立文字), 직지인심(直指人心)과 함께 선종의 4대 종지 중 하나이다. 『육조단경』「반야품」의 “우리 본래의 성품은 맑고 깨끗하니, 만약 자신의 이러한 마음을 알면 견성하는 것이니 모두가 부처의 도를 이루리라(我本元自性淸淨 若識自心見性 皆成佛道)”라는 대목에서 유래했다.
무한대한 우주를 움직이는 궁극적인 힘은 무엇에 의한 것일까! 질서정연하게 움직이는 대자연의 법칙은 누가 조정하는 것일까! 나라는 존재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것일까! 아마도 인류가 오랫동안 고민하고 고민한 사인일 것이다.
바를 正(정)은 한 일(一)과 발 지(止)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正(정)자는 흙이나 나무로 만든 목책을 둘러친 성(城)을 뜻하는 ‘囗’모양과 止(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소전에 이르러서 단순하게 ‘一’모양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따라서 애초에 正(정)의 의미는 공격목표인 성곽(囗)을 향해 가다(止), 즉 ‘정벌하다’가 본뜻이었으나 후에 파생된 ‘바로잡다’ ‘바르다’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칠 정(征)’자를 별도로 만들었다. 그러나 인문학적인 지식을 더해 한자를 해석한 한나라의 허신은 正(정)에 대해 『說文』에서 “正은 옳다는 뜻이며 一(일)로 구성되었는데, 한 곳에 멈추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일반적으로 한 곳(一)에 멈추어 서서(止) 살피는 게 ‘바른 일’이라고 해석하고 있지만, 오히려 한 길(一)을 따라 가도록 하는 것(止)이 ‘바른 일’이라는 점으로 해석하는 것이 좀 더 나을 것 같다. 止(지)는 ‘멈춘다’는 뜻도 있지만 많은 자형에서 ‘가다’는 의미로도 쓰이기 때문이다. 즉 정사 政(정)에서처럼 한 나라의 올바른 정치이념에 따라 일관(一)되게 국민이 따라가도록(止) 독려(攵)하는 것이 위정자가 의도한 ‘바른 일’이기 때문이다.
법 法(법)은 물 수(氵)와 갈 거(去)로 구성되어 있다. 去(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去는 사람이 서로 어긋나간다는 뜻이다. 大(대)로 구성되었고 자형하부의 凵(거)모양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와 고대인들의 주거지인 동굴을 의미하는 口(구)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사람(大)이 주거지인 동굴(口)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물을 버리는 구덩이 위에서 대변을 보고 사람의 상형이라는 설로 ‘버리다’가 본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法(법)의 의미는 물(水)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게 순리적이라는 것으로 자연적인 ‘규칙’을 의미한다. 또 한편으로는 물(水)과 같이 순리적이지 못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규범’적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러나 더 본래적인 의미는 法(법)의 옛글자인 ‘법 灋(법)’ 자에 담겨 있다. 灋자의 구성은 물 수(氵)와 해태 치(廌), 그리고 갈 거(去)로 짜여 있다. 옛 사람들은 앞에 공평함을 뜻하는 물(氵)을 놓고서 옳고 그름(是非)과 선과 악(善惡)을 가려내는, 상체는 사슴(鹿)을 닮았고 하체는 새(鳥)의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인 해태에게 가서(去)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눈 眼(안)의 구성은 겉으로 보이는 눈의 모양을 상형한 눈 목(目)과 그칠 간(艮)으로 이루어졌다. 艮(간)은 눈 목(目)의 간략형과 사람의 모습이 변화됨을 뜻하는 ‘匕(화)’가 어우러져 만들어진 회의글자다. 즉 눈(目)을 뒤로 돌려보는 사람(匕)의 모습을 담은 글자로, 앞에 산이나 언덕(阝=阜)이 나타나면 오던 길을 되돌아본다(艮)는 더 이상 어쩔 수 없는 한계(限界)나 한정(限定)의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眼(안)의 전체적인 의미는 밖으로 드러난 눈동자를 비롯한 흰자위 등의 눈(目) 뿐만이 아니라 눈 속 깊숙이에 내재한 수정체 초자체 망막 등과 같은 드러나지 않은 눈 전체(艮)를 뜻한다. 그래서 눈을 전담한 의료의 분과를 目(목)과라 하지 않고 眼科(안과)라 한 것이다.
감출 藏(장)의 구성은 풀 초(艹)와 착할 장(臧)으로 이루어졌다. 艹(초)는 두 포기의 풀을 본뜬 것으로 풀 草(초)의 본디글자이며 모든 풀의 총칭으로서 보통 자형의 상부에 놓이는 艸(초)의 간략형이다. 臧(장)은 평상이나 형틀을 의미하는 나뭇조각 장(爿)과 노예의 튀어나온 눈을 뜻하는 신하 신(臣) 그리고 창과 같은 무기를 뜻하는 창 과(戈)로 구성되었다. 즉 그 의미는 형틀(爿)에 묶어 뾰쪽한 창(戈)끝으로 전쟁 포로의 눈(臣)을 찌르니, 잡혀온 노예는 고분고분 말을 잘 들어 ‘착하다’는 의미를 부여 했다. 따라서 藏(장)의 전체적인 의미는 갖은 고초를 당한 노예(臧)가 옥을 도망쳐 나와 풀숲(艹)에 숨어버렸으니, ‘숨다’ 또는 ‘감추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正法眼藏이란 부처님이 지혜의 눈으로 갈무리한 올바른 법이란 뜻으로, 청정법안(淸淨法眼)이라고도 한다. 여기서 정법안(正法眼)은 우주의 진리를 확연하게 깨달아 보는 지혜의 눈이며, 장(藏)은 삼라만상에 비밀하게 갖추어진 우주의 법칙을 의미한다. 이러한 사실을 말로는 설명할 수 없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전하여지는 부처님의 깨달음, 즉 우주의 진리를 깨달은 자의 지혜의 눈으로 바라본 비밀한 법을 말한다.
자식을 낳아 어른이 되지 않고서는 부모의 마음을 모른다고 했다. 또한 부모를 여의지 않고서는 어버이의 소중함을 모른다고도 했다. 인류의 역사가 수없이 반복되어도 뚜렷하게 개선되지 않는 것이 바로 ‘부모에 대한 효도’인 것 같다.
바람 風(풍)은 무릇 범(凡)과 벌레 충(虫)으로 구성되었다. 風(풍)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風은 팔풍(八風)을 말한다. 동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명서풍(明庶風)이라 하고, 동남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청명풍(淸明風)이라 하며, 남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경풍(景風)이라 하고, 서남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양풍(涼風)이라 하며, 서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창합풍(閶闔風)이라 하고, 서북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부주풍(不周風)이라 하며, 북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광막풍(廣莫風)이라 하고, 동북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융풍(融風)이라 한다. 虫(훼)로 구성되었고, 凡(범)이 소리요소다. 바람이 일면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8일이면 벌레(蟲)는 변화한다”고 하였다. 風(풍)은 무릇 범(凡)과 벌레 충(虫)으로 구성된 회의글자다. 凡(범)은 본래 바람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배의 ‘돛’을 뜻하였으나 ‘무릇’이나 ‘평범’ 등의 의미로 쓰이자, 그 뜻을 더 명확히 하고자 일정한 크기의 천(베)을 뜻하는 巾(건)을 더하여 ‘돛 帆(범)’을 따로 제작하였다. 또한 虫(충)은 여러 벌레를 의미하는 蟲(충)의 생략형이다. 따라서 風(풍)의 전체적인 의미에는 바람을 추상적으로 그려낸 게 凡(범)인데, 즉 바람결(凡)에 휩싸여 벌레들(虫)이 이동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봄바람이 불면 겨우내 웅크렸던 벌레들이 깨어난다는 뜻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나무 樹(수)는 나무의 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과 세울 주(尌)로 구성되었다. 尌(주)는 악기이름 주(壴)와 마디 촌(寸)으로 짜였다. 壴(주)는 나무 받침대(ㅛ) 위에 놓인 북을 본뜬 것인데, 자형의 상부는 북을 장식한 모양이다. 고대에는 壴(주)가 북을 의미하였지만 후에 북의 종류를 총괄하여 북 鼓(고)로 통일하였다. 즉 북(壴)을 손(又)에 막대(十)를 쥐고서 두드린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寸(촌)은 단독으로 쓰일 때는 ‘마디’나 ‘촌수’ ‘마음’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주로 손의 용도로 쓰인다. 그래서 尌(주)는 악기(壴)를 쓰러지지 않도록 손(寸)을 써서 조심스럽게 ‘세우다’는 뜻을 담았다. 따라서 樹(수)의 전체적인 의미는 악기를 세우듯(尌) 심어져 자라고 있는 나무(木)를 뜻하기도 하며, 악기를 바르게 세우듯(尌) 나무(木)를 ‘심다’는 뜻도 아울러 가지고 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여기서는 ‘--의’라는 뜻으로 쓰인 어조사이다.
탄식할 嘆(탄)의 구성은 사람의 입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와 진흙 근(堇)으로 이루어졌다. 堇(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堇은 차진 진흙이다. 黃(황)의 생략형과 土(토)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머리에 장식을 한 관(卝) 모양과 입(口)이 강조된 사람(大)의 발아래에 불 화(火)의 고어 혹은 뫼 산(山)자가 놓인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금문의 후기로 오면서 흙 토(土)로 변화된 자형을 보여 주고 있다. 산 정상에 오른 제사장이 기우제를 올리는 모습이 아닌가 추측되기도 한다. 그런데 허신이 『說文』을 저술할 당시에는 본뜻과는 달리 ‘진흙’이란 의미로 일반화되었다. 따라서 嘆(탄)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늘에 소원을 빌기 위해 제사장(堇)이 입(口)을 크게 벌려 호소한다는 데서 ‘탄식하다’ ‘한숨 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風樹之嘆이란 바람과 나무의 탄식이란 뜻으로, 즉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음을 탄식한다는 뜻이다. 뭔가를 하려해도 주변의 여건상 이룰 수 없음을 탄식한다는 말로, 특히 부모에게 효도를 하려해도 이미 돌아가셔서 그 뜻을 이룰 수 없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시경詩經』의 해설서인 「한시외전漢詩外傳」에 “나무는 고요하고자 하나 바람이 멈추질 않고, 자식이 봉양하려고 하나 부모는 기다려주지 않는다(樹欲靜而 風不止, 子欲養而 親不待)”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不恥下問(불치하문)’이라 했다. 배움에 있어서는 비록 자신보다 지위나 학식이 낮고, 나이가 어릴지라도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아니함을 두고 이르는 말이다. 자기가 모르는 것을 알아가는 것이 배움의 길이다. 타산지석(他山之石)이 지닌 뜻 역시 이와 다를 바 없다.
다를 他(타)의 구성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상형한 사람 인(亻)과 어조사 야(也)로 이루어졌다. 也(야)는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키는 여성의 자궁을 상형한 것이었으나 지금은 본뜻을 잃고 문장 끝에 놓여 어조사로써의 기능을 하고 있다. 也(야)의 본뜻을 지닌 글자로 만물을 탄생시키는 ‘땅 地(지)’와 물을 가두어 두는 ‘못 池(지)’, 그리고 他(타)가 있다. 한자의 기원은 모계사회까지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되었지만 많은 글자들이 남성중심의 사고에서 만들어졌다. 한자 중에 ‘사람 人(인)’자 들어가면 대부분 남성을 의미하며, 여자관련 뜻에서는 반드시 ‘여자 女(여)’를 부수로 활용했다. 따라서 他(타)의 전체적인 의미는 남자(亻)의 입장에서 볼 때 다른 생식구조를 가진 여자(也)는 자신들과는 다르다는 데서 ‘다르다’ ‘다른 사람’을 뜻하게 되었다.
뫼 山(산)은 세 개의 산봉우리를 본뜬 상형글자로 산봉우리들이 길게 늘어선 ‘산’을 뜻하게 되었다. 한자에서 셋일 때는 단지 새 개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많은 수를 함축하여 줄인 경우가 많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는 ‘--의’라는 뜻으로 쓰인 어조사이다.
돌 石(석)의 구성은 낭떠러지와 험한 산기슭을 뜻한 산기슭 엄(厂)과 돌덩이를 뜻하는 口(구)모양으로 이루어졌다. 즉 언덕이나 산기슭(厂) 아래에 굴러다니는 돌덩이(口)의 모양을 본떠 ‘돌’을 그려냈다.
他山之石이란 다른 산의 돌멩이라는 뜻으로, 다른 산에서 나는 거칠고 나쁜 돌일지라도 자신의 옥을 아름답게 갈 수 있는 숫돌로 쓰일 수 있으므로 다른 사람의 하찮은 언행일지라도 자신의 지혜와 덕을 쌓는데 도움이 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시경詩經』「소아편小雅篇」의 “아름다운 저 동산에는 박달나무가 있고, 그 아래에는 밧줄을 만들 닥나무도 있다네. 다른 산의 돌멩이일지라도 이로써 옥을 갈 수 있다네(樂彼之園 爰有樹檀 基下維穀 他山之石 可以攻玉)”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즉 학식이 뛰어난 군자라 할지라도 소인을 통해 학덕을 쌓을 수 있음을 말한 것이다.
주자는 중용장구(中庸章句)의 서문에서 “중(中)이란 치우치지 않고 기울지 않으며 지나치거나 미치지 못함이 없는 것을 이름 한다. 용(庸)이란 평범하고 떳떳함이다(中者,不偏不倚、無過不及之名. 庸,平常也.)”라고 하였다.
클 太(태)의 구성은 큰 대(大)와 점 주(丶)로 짜여 있다. 大(대)는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정면에서 바라본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크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여기에 점(丶)을 첨가하였는데, 그 점은 大(대)의 약칭으로 보고 ‘크고도 크다’는 뜻으로 해석한다. 또 일부에서는 클 泰(태)의 약자로 보기도 한다.
굳셀 剛(강)의 구성은 산등성이 강(岡)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岡(강)은 줄로 엮어 만든 그물을 본뜬 그물 망(网)과 세 개의 산봉우리를 상형한 뫼 산(山)으로 구성되었다. 그 뜻은 산봉우리(山)들이 그물망(网)처럼 연이어진 ‘산등성이’를 그려내고 있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이에 비해 여럿이라는 뜻을 지닌 다 첨(僉)과 칼 도(刀)로 짜인 검(劍)은 양 날을 지닌 칼을 뜻한다. 따라서 剛(강)의 전체적인 의미는 산허리(岡)라도 잘라버릴 만큼 단단한 칼(刂)이라는 데서 ‘굳세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곧 則(즉, 법칙 칙)은 솥 鼎(정)의 간략형인 조개 패(貝)와 칼 도(刀)로 구성되었다. 則(칙)이라는 글자는 금문에서 볼 수 있는데, 솥을 뜻하는 鼎(정)의 그림문자와 칼 刀(도)가 새겨져 있다. 금문(金文)이란 은나라시대의 종정문(鐘鼎文), 즉 제기(祭器) · 무기(武器) · 악기(樂器) 등에 새긴 명문(銘文)으로 주로 틀에 글자를 써서 새기고 금속을 녹여 부어서 주조(鑄造)한 것이므로 필사체(筆寫體)인 경우가 많다. 주조하는 경우도 있지만 때에 따라서는 청동제품인 솥(鼎)에 법 삼을만한 글귀를 날카로운 칼(刂=刀)을 이용하여 새겨 넣기도 하였다. 따라서 則(칙)의 전체적인 의미는 제사용으로 쓰이는 청동 솥(鼎=貝)에 조각 칼(刂)을 이용해 본받을 만한 글귀를 새겨 넣었음을 그려낸 것으로, 청동제품에 새겨진 내용은 곧 사람으로서 지켜야 될 도덕적인 내용에서부터 법령 등과 같은 ‘법칙’이 주된 것이었다. ‘곧’이나 ‘만일 -이라면’이라는 의미는 파생된 것이다.
꺾을 折(절)의 구성은 손 수(扌)와 도끼 근(斤)으로 이루어졌다. 扌(수)는 다섯 손가락을 본뜬 상형글자 手(수)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여 ‘손’의 쓰임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斤(근)은 도끼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이에 따라 折(절)은 도끼(斤)자루를 손(扌)에 쥐고 풀이나 나무를 자르거나 쪼갠다는 데서 ‘꺾다’ ‘자르다’ ‘쪼개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太剛則折이란 지나치게 강하면 꺾어지기 쉽다는 뜻으로, 『회남자淮南子』「범론훈氾論訓」의 “지나치게 강하면 꺾어지기 쉽고, 너무나 부드러우면 말리기 쉬우니, 성인은 강하고 부드러운 사이에서 자신을 바르게 함으로써 도의 근본을 깨우친다(太剛則折, 太柔則卷. 聖人正在剛柔之間 乃得道之本)”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하였다. 흑백의 논리에서 벗어나 중용(中庸)의 도를 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각 개인이 느끼는 안락한 삶과 직업의 만족도는 객관적으로 수치화할 수 없다. 무엇보다도 끝없는 욕망에 휩싸이다보면 만족할 수가 없다. 즐거운 마음으로 일 할 수 있는 직업이나 안락한 삶은 상통하는 법이다.
편안할 安(안)의 구성은 집 면(宀)과 여자 여(女)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 그려진 宀(면)은 지붕뿐만 아니라 양 벽면을 길게 늘어뜨려 그려내고 있어 깊숙하고 은밀한 내부모양을 암시하고 있다. 주로 사람이 주거하며 사는 집을 뜻한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安(안)자의 본래는 신을 모신 사당(宀)에서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女)을 뜻하였다. 고대 모계사회에서 신을 모신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부계사회로 오면서 그 뜻이 여자(女)가 집안(宀)에 머물러 있어야 가족의 화목과 함께 편안함이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살 居(거)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옛 고(古)로 이루어졌다. 尸(시)의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과 흡사하기도 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거주하는 집의 지붕을 뜻한다. 古(고)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서는 입에 문 악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아버지와 자식 간을 보통 1세대(世代)라 하는데, 이 때 쓰인 世자는 열 십(十)에 스물 입(卄)의 합자인 30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옛날이라는 의미는 대략 열(十) 세대(10☓30=300)인 3백여 년 가량 사람들의 입(口)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즉 3백여 년 전을 뜻한다. 따라서 居(거)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오랫동안(古) 살아왔던 집(尸)을 그려내 ‘살다’ ‘있다’ ‘가주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즐길 樂(락, 풍류 악, 좋아할 요)은 상형글자로 현악기와 타악기를 그려내고 있다. 즉 줄이나 실을 의미하는 두 개의 작을 요(幺)는 거문고 해금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를, 가운데 흰 백(白)은 북과 같은 타악기를 본 뜬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를 받침으로 한 현악기(幺)와 타악기(白)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래서 ‘풍류’를 뜻하기도 하고 ‘좋아한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업 業(업)의 구성은 풀 무성할 착(丵)과 나무의 모양을 상형한 목(木)으로 이루어진 상형글자다. 여기서 丵(착)모양은 여러 개의 걸개가 달린 나무로 만든 틀인데, 요즘의 옷걸이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나무(木)로 만든 이러한 도구(丵)는 숙련된 장인이 여러 악기를 만들어 걸어두는 걸개 역할을 한 데서 본래는 ‘장식 널’이란 뜻이었으나, 이러한 일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업종’을 뜻하게 되었다. 또한 불교에서는 ‘선악을 짓는 일’로 차용하기도 하였다.
安居樂業이란 편안하게 살면서 즐겁게 일한다는 뜻으로, 현재의 생활에 만족하면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가 맡은 일을 즐김을 나타낸 고사성어이다. 이러한 것은 누구나 바라는 희망사항이었던지 여러 고전에서 언급되고 있다. 먼저 『도덕경』 에서는 “백성들은 먹고 마시는 것을 달콤하게 여기고, 입는 옷을 아름답게 여기며, 그들이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기고, 풍속을 즐거워한다(甘其食, 美其服, 安其居, 樂其俗)”고 했고, 『장자』에서도 “그 풍속을 즐거워하고, 사는 곳을 편안하게 여긴다(樂其俗, 安其居)”하였다. 또 『한서』에서도 “각자가 사는 곳을 편안히 여기고, 맡은 바 직업을 즐긴다(各安其居而樂其業)”고 하였다. 이 모든 것은 마음의 문제다. 작은 것에 만족하지 못하면 불평불만은 끝없이 증폭되기 마련이다.
말이 길다고 해서 사람을 감동시킬 수는 없다. 짧은 한 마디로도 상대의 급소를 찔러 당황스럽게 할 수도 있고, 감동의 눈물을 흘리게 할 수도 있다. 촌철살인(寸鐵殺人)과도 같은 한 마디, 수천 마디의 말을 능가할 수 있다.
마디 寸(촌)은 손가락을 펼친 손(十)의 엄지부위에 점(丶)을 찍어 손가락 마디만큼의 짧은 길이를 나타내 ‘마디’를 뜻하게 되었다. 寸(촌)에 대해 한대의 문자학자 허신은 『說文解字설문해자』에서 “寸 은 10分(분)의 길이이다. 사람의 손끝에서 손목 쪽으로 1寸(촌)을 거슬러 맥이 뛰는 곳을 촌구(寸口)맥이라 하며 又(우)와 一(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寸(촌)이 단독으로 쓰일 때는 ‘마디’나 ‘촌수’ ‘마음’이라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며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주로 손의 용도로 쓰인다.
쇠 鐵(철)의 구성은 쇠 금(金)과 자형우변의 날카로울 철(十 +戈 +呈)로 이루어졌다. 金(금)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고 금문에 보이는데, 잘 살펴보면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리요소인 금(今)의 생략형에다 흙(土)에 덮여 있는 두 덩어리(두 점)의 금을 나타낸 형성글자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금문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금(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 청동기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우변의 철(十 +戈 +呈)은 명확하지는 않지만, 글자 전체의 의미를 고려할 때 쇠붙이(金)를 녹여 칼이나 창(十, 戈)과 무기를 만들어 관청 등에 바친다(呈)는 데서 ‘철’ ‘검은 쇠’ 등의 뜻을 지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죽일 殺(살)의 구성은 죽일 살(杀)과 몽둥이 수(殳)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 새겨진 杀(살)은 절지동물로서 맹독을 가지고 있는 지네의 상형이었다. 즉 상부의 ‘乂’모양은 지네의 머리이며 하부의 ‘木’모양은 여러 개의 발을 생략하여 그린 것이기는 하지만 현재자형으로는 그 뜻을 전혀 유추할 수 없다. 다만 고대인에게 지네는 해충에 지나지 않았기 때문에 보이는 대로 ‘죽였다’는 추측이 가능한데, 소전에 이르러 몽둥이나 창을 손에 들고 때린다는 뜻을 지닌 殳(수)를 더해 현재 자형이 되었다. 이에 따라 현재자형으로 인문적인 해석을 가한다면, 나무(木)를 죽일 때는 베어(乂: 벨 예)버리거나 또는 창이나 몽둥이로 때려서(殳) 죽인다는 데서 ‘죽이다’ ‘베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사람 人(인)은 서서 손을 내민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지며 좌변에 놓일 때는 亻(인)모양으로, 그리고 하변에 놓일 때는 儿(인)으로 변형된다. 『說文』에서는 “人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 글자는 주문(籒文)으로 팔과 다리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문(籒文)이라 함은 열 가지의 서체의 하나로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라는 사람이 창작한 한자의 글씨체(字體)이다.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寸鐵殺人이란 한 치의 쇠붙이로 사람을 죽인다는 뜻으로, 재기발랄한 날카로운 말 한 마디로 상대편의 급소를 찔러 당황하게 하거나 감동을 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남송의 나대경(羅大經)이 주희 구양수 소식 등의 어록이나 평론과 함께 내방객과의 주목할 만한 대화를 기록한 『학림옥로鶴林玉露』에 나오는데, 종고선사가 선(禪)에 대해 “살인수단에 비유하자면 한 수레의 병장기를 싣고 와서 하나로 재주부림을 마치면 또 하나를 꺼내서 재주를 부린다고 해서 사람을 죽일 수 있는 수단은 아니다. 나는 단지 조그마한 쇠붙이만 있어도 사람을 죽일 수 있다( 殺人手段譬如人載一車兵器 弄了一件 又取出一件來弄 便不是殺人手段 我則只有寸鐵 便可殺人)”고 하였다. 즉 禪(선)이라는 것은 수백 마디의 말보다도 정신일도하사불성(精神一到何事不成)과 같은 집중력을 가질 때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말한 것이다.
어떠한 일을 성사시키기 위해서 그 일을 잘 처리할 적합한 인물을 물색(物色)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모든 사물은 나름대로의 생김새를 지니고 있는데, 겉으로 드러난 꼴이나 빛깔만으로도 어느 정도 가름할 수 있다. 즉 외형으로도 물색할 수 있다는 말이다.
물건 物(물)은 소 우(牛)와 말 물(勿)로 구성되었다. 牛(우)는 소의 뿔과 몸통을 강조한 상형글자이다. 소(牛)는 한 가정의 재산목록 중 상위를 차지할 만큼 큰 물건(物件)이다. 勿(물)에 대해 『說文』에서는 “勿은 큰 고을이나 작은 마을에 세운 깃발을 말한다. 깃대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세 개의 깃발이 있는데, 여러 색의 천을 사용하며 깃 폭의 상하를 다르게 한다.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때문에 다급히 모이는 것을 ‘勿勿’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지만 학자들의 해석이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현재 주로 ‘부정’과 ‘금지’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성한 장소의 출입을 금하는 깃발로 생각된다. 장대 끝에 세 가지 색깔의 깃발을 매단 모양의 상형글자로 신성한 의미를 담아 특정 지역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禁止)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지만, 여기서는 얼룩무늬라는 뜻으로 쓰였다. 따라서 物(물)에는 소(牛) 중에서도 얼룩무늬(勿)가 들어간 칡소와 같은 얼룩소를 최고의 ‘물건’으로 여긴다는 뜻이 담겨있으며, 모든 존재를 뜻하는 ‘만물’ ‘사물’ 등은 확장된 뜻이다.
빛 色(색)은 서있는 사람을 상형한 사람 인(人)의 변형인 ‘⺈’ 모양과 꿇어앉은 사람의 모습이 변한 꼬리 파(巴)로 구성되었다. 위에 있는 사람(⺈: 남자)과 아래에 있는 사람(㔾: 여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남녀상열(男女相悅)일 때는 서로의 얼굴에 밝은 빛의 홍조가 띄기 마련이어서 ‘낯빛’을 뜻하는 글자였지만, 후대로 오면서 색깔을 나타내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物色이란 본래는 희생의 제물로 바칠 소의 털 빛깔을 살핀다는 뜻이었는데, 물건의 빛깔 혹은 사람이나 물건의 생김새를 뜻하기도 하며 주로 어떤 일에 쓸 만한 사람을 찾는다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예기禮記』「월령편月令篇」에 “제물의 살찌고 마름을 살피고, 제물의 털 빛깔을 살핀다((瞻肥瘠, 察物色)”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어떠한 일을 할 때, 때로는 신중에 신중을 기할 필요가 있다. 앞날은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같을 如(여)는 여자 여(女)와 사람의 입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이에 따라 如(여)의 의미는 시대적인 변천에 따라 다른 뜻이 파생되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최초의 의미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女)이 소원하는 말(口)과 ‘같이’ 이루어달라는 데서 ‘같다’는 뜻이 발생했다. 그러다 모계사회가 무너지고 남자 중심의 유교가 널리 유행하면서 여자(女)는 삼종지도(三從之道)에 따라 부모 남편 자식의 말(口)에 따라야 한다는 데서 ‘따르다’는 뜻도 파생하였다.
밟을 履(이, 리)의 구성은 주검 시(尸)와 다시 부(復, 되돌아올 복)로 이루어졌다. 尸(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尸는 늘어져 있다는 뜻이다. 엎드려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 표현된 자형은 사람의 옆모양을 그려 놓았지만 다리부분이 구부러져 있어, 무릎을 굽히고 웅크리고 있는 모양이다. 죽은 사람을 뜻해 ‘주검’이라는 의미를 부여했다. 여기에서는 허리를 굽히고 신발을 신으려는 사람을 나타낸다. 復(복, 다시 부 )의 구성은 조금 걸을 척(彳)과 돌아올 복(㚆=复)으로 짜여 있다. 彳(척)은 여기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네 거리’를 본뜬 行(행)의 생략형으로 보아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复(복)은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참조할 때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는 도구인 ‘풀무’와 발을 뜻하는 止(지)가 더해진 모양이었으나 현재자형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 여기서 말한 풀무는 발을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로 밟을 때마다 통 속의 칸막이가 왕복으로 오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따라서 復(복)의 전체적인 의미는 풀무(复)와 같이 오고가다(行)가 본뜻이었으나 ‘돌아오다’는 의미로 더 쓰였고, 또한 ‘회복하다’ ‘다시’라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따라서 履(이)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허리를 굽히고(尸) 길을 오가기(復)위해 신발을 신는 모습을 그려내 ‘신’ ‘신다’ ‘밟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엷을 薄(박)은 풀 모양을 상형한 풀 초(艹)와 넓을 부(溥)로 이루어졌다. 溥(부)는 물줄기가 갈라지고 모이는 강을 본뜬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펼 부(尃)로 구성되었는데, 尃(부)는 클 보(甫)와 사람의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甫(보)는 갑골문을 참조할 때 초목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을 상형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인데,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尃(부)는 밭(田)에 뿌린 곡식의 모(屮)가 잘 자라도록 일일이 손(寸)으로 넓게 옮겨 심는다는 데서 ‘펼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薄(박)의 전체적인 의미는 땅위에 넓게(溥) 퍼져서 자라는 풀(艹)은 땅에 비해 상대적으로 엷다는 데서 ‘엷다’ ‘가볍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얼음 氷(빙)의 본래자형은 冰(빙)으로 처마에 매달린 고드름을 상형한 얼음 빙(冫)과 물 수(水)로 이루어졌다. 水(수)는 강물이 한데 모아지고 나누어지는 물줄기를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氵)로 표시하거나 氺(수)로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氷(빙)의 의미는 물(水)이 고드름(冫)처럼 얼어붙었다는 데서 ‘얼다’ ‘얼음’을 뜻하게 되었다.
如履薄氷이란 엷은 살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는 뜻으로, 몹시 위험하고 아슬아슬한 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시경詩經』의 “깊은 연못에 임하는 것 같이 하며, 엷은 살얼음을 밟는 것 같이 하라(如臨深淵 如履薄氷)”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우리 속담에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라고 했다.’ 그래서 1978년 개혁개방을 선언했던 중국의 등소평도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너라(摸着石頭過河)’라고 하였다.
지금 현재 우리의 뇌리 속에서 꿈틀거리는 생각의 편린들이 곧 나의 미래를 만드는 퍼즐이 된다면, 우리는 온갖 종교 경전들에서 말하고 있는 ‘올바르고, 긍정적이며, 용서하고, 화해하고 등등의 가르침’을 실행할 수 있을까? 우리가 일상에서 말하고 생각하는 일체 행위가 곧 우리 몸에 빠짐없이 반영된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도 입증되고 있기 때문이다.
마음 心(심)은 사람의 심장을 본뜬 상형글자다. 고대 사람들은 ‘마음’ 혹은 몸을 운용하는 주체인 ‘영혼’이 심장에 머물고 있다고 보아 군주지관(君主之官)으로 분류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다.
재계할 齋(재)의 구성은 가지런할 제(齊)와 보일 시(示)로 이루어졌다. 齊(제)는 갑골문에는 창끝모양 세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것을 보리이삭과 같은 곡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형인 齊(제)를 눈여겨보면 그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도(刀)나 氏(씨), 그리고 중앙부의 辛(신) 모양은 모두가 도검류와 관련이 깊으며 자형하부는 그것을 가지런히 꽂을 수 있는 대(臺)라 할 수 있다. 따라서 齊(제)의 의미는 창이나 도검류를 나무로 만든 형틀에 가지런히 꽂아놓은 모습이라 할 수 있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이다. 따라서 齋(재)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늘이나 조상신에게 제사(示)을 지낼 때는 의복은 물론 몸을 정갈(齊)하게 해야 한다는 데서 ‘재계하다’ ‘공손하고 삼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앉을 坐(좌)는 흙(土)을 의자처럼 깎아 내리고 두 사람(从)이 마주 앉은 모습을 그려낸 회의글자이다.
잊을 忘(망)의 구성은 망할 망(亡)과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더불어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인데, 여기서는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이다. 따라서 忘(망)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 몸의 주체인 마음(心)에서 없어져버렸다(亡)는 데서 ‘잊다’의 뜻을 갖게 되었다.
心齋坐忘이란 장자가 제창한 심신 수양법으로, 심재는 『장자』「인간세편」에 나오는 단어로 인간의 감각이나 의식을 잠재우고 마음을 화평하게 하는 것이며, 좌망 역시 『장자』「대종사편」에 나오는 어휘로 일상의 잡다한 생각을 잊어버리는 좌선법을 말한다. 이는 곧 우리 몸의 주체인 마음의 작용에 따라 신체가 영향을 받기 때문에 마음 다스림을 최우선으로 하였던 것이다.
한 때 독재정권이 들어섰을 때 무소불위(無所不爲)의 정치권력을 휘두른 사람이 자주 등장하고는 했다. 그러나 이러한 짓은 오래가지 않는 법, 무소불위의 권력이란 항상 그 말로가 좋지 못하다.
없을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바 所(소)의 구성은 지게 호(戶)와 도끼 근(斤)으로 짜여 있다. 戶(호)는 사람이 거주하는 방으로 통하는 외짝 문을 말하며, 보다 큰 문은 두 짝으로 만들어진 門(문)으로 집 초입의 대문 등을 말한다. 斤(근)은 도끼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따라서 所(소)의 전체적인 의미는 땔나무를 하기 위해 주로 사용하던 도끼(斤)는 눈에 잘 띄는 방문(戶)곁 시렁과 같은 일정한 장소에 놓아 둔데서 ‘곳’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할 爲(위)의 구성은 손톱 조(爫)와 코끼리 상(象)의 변형으로 이루어졌다. 조(爫)에 대해 『說文』에서는 “爪는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을 ‘爪’라 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象(상)은 코끼리의 특징이기도 한 긴 코와 넓은 귀, 엄니 그리고 네 발과 꼬리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다. ‘코끼리’가 본뜻이지만 ‘상상하다’ ‘그리다’의 뜻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한비자韓非子・해로解老』편에서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코끼리를 볼 일이 드물어서 죽은 코끼리의 뼈를 줍게 되면, 그것을 근거로 살아있는 모습을 상상하여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모두 象(상)이라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원전 2-3세기에 살았던 한비자보다 훨씬 이전시대에는 중원의 대륙에도 코끼리가 살았다는 이야기다. 즉 만리장성과 같이 무거운 석재가 쓰이는 건축물 등을 축조할 때, 인간에 비해 엄청난 힘을 지닌 코끼리(象)를 동원(爫)한 고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이 글자에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 스스로가 아닌 ‘코끼리를 부려 일하다’는 뜻이 함축된 ‘하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無所不爲란 하지 못할 일이 없다, 또한 못할 일이 없다는 뜻으로 『삼국지三國志』「오서吳書·장온전張溫傳」에서 유래했다. 즉 “간사한 마음을 헤아려보니 하지 못할 짓이 없을 것 같다(揆其奸心,無所不爲)”는 내용이다. 썩 좋지 않은 일에 쓰이곤 한다. 전지전능(全知全能)이 신(神)의 능력을 말한 것이라면, 무소불위는 인간이 정치권력을 악용하는 경우에 자주 사용되고 있다.
눈에 익고 마음 깊이 담아 둔 것이라면 어둠 속에서도 손의 촉감만으로 찾아 낼 수 있다. 또한 마음속에 사모하는 사람이라면 손의 감촉만으로도 알아 낼 수 있다.
어둘 暗(암)의 구성은 밝게 빛나는 태양을 상형한 해 일(日)과 소리 음(音)으로 이루어졌다. 音(음)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소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몸 밖으로 나옴이 마디마디가 있는 것을 音(음)이라 한다.”라고 했는데, 갑골문 등에서는 입(口)에 나팔과 같은 관악기를 불고 있는 모양으로 그려내고 있다. 즉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暗(암)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물을 분간할 수 없는 해(日)가 진 밤에는 오직 소리(音)로만 상황을 파악할 수 있다는 데서 ‘어둡다’ ‘밤’을 뜻하게 되었다.
가운데 中(중)은 간단한 자형임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갑골문에 새겨진 모양은 어떠한 공간을 나타낸 ‘口’모양에 긴 장대(丨)를 세워둔 모양인데, 장대의 상부에는 두세 가닥의 깃발도 함께 그려져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보다 간략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가운데 쓰인 ‘口’모양에 대해 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설,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한 판이라는 설, 장대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기위해 달아 놓은 나무틀이라는 설, 해의 변형으로 정오를 뜻한다는 설 등이다. 필자가 보기에 갑골문과 금문을 참조할 때, 마을(口)의 중앙광장에 부족의 상징인 깃발을 단 장대(丨)를 세웠다는 데서 ‘중앙’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찾을 摸(모)의 구성은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간략형인 손 수(扌)와 저물 모(莫: 없을 막, 고요할 맥)으로 이루어졌다. 莫(모)는 풀 초(艹)와 해 일(日) 그리고 큰 대(大)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大(대)는 본래는 풀 초(艹)였으나 간략화 시킨 것이다. 그 뜻은 해(日)가 수풀(艹 + 大)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저물 모’로도 쓰이고 또한 모든 사물이 활동을 멈추고 잠 속으로 빠져드니 ‘고요할 맥’으로도 쓰인다. 그리고 어둠이 사위를 감싸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부정의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摸(모)의 전체적인 의미는 해가 진 어둠(莫)속에서 사물을 분간할 수 없으니 손(扌)을 써서 더듬는다는 데서 ‘찾다’ ‘더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찾을 索(색, 동아줄 삭)은 열 십(十)과 덮을 멱(冖) 그리고 실타래모양을 본뜬 가는 실 사(糸)로 구성되었는데, 갑골문을 보면 자형상부의 十(십)은 꼬아진 동아줄을, 그리고 冖(멱)은 두 손의 모양이 간략화 된 것이다. 즉 아직 새끼를 꼬기 전의 실타래(糸)를 두 손(冖)을 엇 비벼 꼬아 동아줄 같은 튼실한 줄(十)을 만드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래서 ‘동아줄 삭’이란 뜻을 갖게 되었으며, 또한 동아줄이나 보다 튼실한 줄을 만들기 위해서 광주리 등에 담겨 있는 실의 끝인 실마리(糸)를 두 손(冖)으로 찾아내 두 가닥을 꼬아(十)야 하기 때문에 ‘실마리를 찾다’는 뜻도 담겨 있다.
暗中摸索이란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뭔가를 찾아낸다는 뜻으로, 어림짐작으로 무엇을 알아내거나 찾아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수당가화隨唐嘉話』에 나오는 말로, 당나라 때 방금 만난 사람도 잊어버리는 건망증이 아주 심한 허경종(許敬宗)이란 뛰어난 학자가 있었는데, 어느 날 한 친구가 비꼬아 말하길 “경께서는 사람 식별하기가 그렇게 어렵소?(卿自難識)”하니, 허경종이 대답하길 “만약 하손(何遜)·유효작(劉孝綽)·심약(沈約)과 같은 문장가들을 만나면, 어둠 속에서 손을 더듬어 찾더라도 확실히 또한 알아낼 수 있다네(若遇何劉沈謝, 暗中摸索著亦可識)”라고 하였다.
만물이 약동하는 봄, 온 들녘과 산천에 녹음방초(綠陰芳草)의 향연이 베풀어지는 봄, 괴나리봇짐이라도 짊어지고 길을 떠나고 싶은 봄, 따사로운 햇살과 아련하게 아지랑이 피어오르는 봄, 봄이 오면 만사만물이 활력을 얻는다.
일만 萬(만)은 전갈(全蝎)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전갈이 한 번에 많은 알을 낳는다는 데서 ‘많다’는 뜻의 ‘일만’이란 의미를 상징적으로 부여하였다. 거미류 중에서는 가장 기원이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갈은 대부분 열대와 아열대지역에 분포하며 야행성이다. 종류에 따라 꼬리 끝의 독침에는 치명적인 맹독을 지니고 있어 예부터 경계대상이었다. 이러한 전갈이 많은 수를 뜻하는 것은 한 번에 많은 알을 많이 낳는다는 점을 차용한 것이다. 주로 나무 밑이나 언덕(厂)에 숨어 사는 전갈(萬)은 무섭고 사나운(厲: 사나울 려) 존재였다.
될 化(화)는 서 있는 사람을 측면에서 본 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비수 비(匕)로 짜여 있다. 匕(비)에 대해 『說文』에서는 “匕는 서로 더불어 나란히 늘어서다는 뜻이다. 人(인)이 반대로 된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匕(비)는 또한 밥을 먹는데 사용하는 도구로 쓰이기에 숟가락(柶)이라고 부르기도 한다.”라고 하였다. 匕(비)가 다른 자형에 더해져 숟가락(匙)이란 뜻도 있지만, 化(화)에서처럼 정상적인 사람(亻)이 늙어 웅크리고 있는 모습(匕)을 뜻하기도 한다. 즉 정상적인 사람(亻)이 늙거나 병들어 웅크리고 있는 모양(匕)은 곧 바뀌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바뀌다’는 뜻을 갖은 變(변) 자에 비해 짧은 시간에 바뀐다는 의미가 化(화) 자에 담겨 있다. 이러한 내용은 꽃 화(花)자를 보면 분명해진다. 즉 나뭇가지나 풀대(艹)에 꽃망울이 맺힌 가 싶더니 며칠도 지나지 않아 화려하게 꽃망울을 터트리며 그 모습을 완전히 바꿔버리기(化) 때문이다.
모 方(방)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方은 나란히 묶여진 배를 뜻한다. 두 척의 배를 간략히 하여 뱃머리를 묶은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즉 두 척의 배를 나란히 묶은 모양을 본뜬 것으로 그 모습이 네모져 ‘모나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고, 또한 그 뱃머리가 목적지를 가리킨다 하여 ‘방향’이라는 뜻도 갖게 되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땅을 갈아엎기 위해 만들어진 손잡이가 달린 쟁기를 본뜬 것인데, ‘사방’ 또는 ‘네모’라는 뜻으로 보아서는 허신의 주장이 오히려 설득력을 갖은 것으로 보인다.
화창할 暢(창)의 구성은 펼 신(申)과 빛날 양(昜)으로 이루어졌다. 申(신)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번갯불’이 땅을 향해 퍼져나가는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펴다’ ‘늘이다’는 뜻을 지녔다. 昜(양)은 태양을 본뜬 日(일)과 햇볕이 내리 쬐이는 모양(一 + 勿)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둥근 해(日)아래에 T자형의 장대를 세워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햇살을 빗금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暢(창)의 전체적인 의미는 천둥 번개(申)가 치다가 구름이 걷히고 밝은 햇살(昜)이 비친다는 데서 ‘화창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萬化方暢이란 겨울잠에서 깨어난 온갖 생물이 따뜻한 봄날을 맞아 싹을 틔우고 자라남을 이르는 말이다. 이러한 봄의 정경을 노래한 작자미상의 유산가(遊山歌)가 있는데, 첫머리를 옮겨본다. “화란춘성(花欄春城)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이라. 때 좋다 벗님네야, 산천경개(山川景漑)를 구경을 가세. 죽장망혜(竹杖芒鞋) 단표자(單瓢子)로 천리강산을 들어를 가니, 만산 홍록(滿山紅綠)들은 일년일도(一年一度) 다시 피어 춘색(春色)을 자랑하노라 색색이 붉었는데, 창송취죽(蒼松翠竹)은 창창울울(蒼蒼鬱鬱)한데, 기화요초(琪花瑤草) 난만중(爛漫中)에 꽃 속에 잠든 나비 자취 없어 날아난다.” 봄의 정취가 물씬 묻어난다.
자신이 처한 처지를 잘 파악하고 분수에 넘치는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 마음도 편안하고 삶도 여유로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지나친 욕심이다. 살아가면서 5욕(식욕, 색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을 잘 다스리는 것이 곧 자기수양의 길이다.
편안할 安(안)의 구성은 집 면(宀)과 여자 여(女)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 그려진 宀(면)은 지붕뿐만 아니라 양 벽면을 길게 늘어뜨려 그려내고 있어 깊숙하고 은밀한 내부모양을 암시하고 있다. 주로 사람이 주거하며 사는 집을 뜻한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安(안)자의 본래는 신을 모신 사당(宀)에서 고요하고 편안한 마음으로 기도하는 사람(女)을 뜻하였다. 고대 모계사회에서 신을 모신 사람은 여성이었는데, 부계사회로 오면서 그 뜻이 여자(女)가 집안(宀)에 머물러 있어야 가족의 화목과 함께 편안함이 이루어진다고 여겼다.
나눌 分(분)은 여덟 팔(八)과 칼 도(刀)로 이루어졌다. 八(팔)은 어떠한 사물을 나누는 모양을 본뜬 것인데, 음을 빌려 ‘여덟’을 뜻하게 되었다. 『說文』에서는 “八은 나눈다는 뜻이며, 갈라지고 나뉘어 서로 등진 형태를 본떴다.”고 하였다. 刀(도)는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오늘날 주로 주방에서 쓰는 칼과 같이 한 쪽 면만 날을 세우고 다른 한 면은 양념 등을 다질 수 있도록 등을 만든 것을 ‘刀’라고 한다. 이에 따라 分(분)의 의미는 칼(刀)로 뭔가를 나눈다(八)는 데서 ‘나누다’란 뜻을 갖게 되었다.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발 足(족)은 사람의 다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 있다”라고 하였다.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 자형상부의 口(구)를 허벅지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說文』에서는 몸 전체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넉넉하다’ ‘만족하다’는 뜻은 확장된 것이다.
安分知足이란 편안한 마음으로 자기의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을 아는 것을 말한다. 송나라의 홍매(洪邁)가 저술한 『용재수필容齋隨筆』「삼필·인당지족三筆·人當知足」의 “편안한 마음으로 분수를 지키며 만족할 줄 앎에 뜻을 두고 평생토록 변심하지 아니해야 한다(其安分知足之意終身不渝)”는 대목에서 유래했다.
예나 지금이나 초야에 묻혀 단사표음(簞食瓢飮)일지언정 안빈낙도(安貧樂道)하며 살려는 은사(隱士)들이 있다. 옛 사람들은 관직에서 물러나면 향리로 내려가 자연을 벗 삼았고, 요즘 사람들은 은퇴를 하면 전원주택을 지어 한가로움을 즐기길 원하는 것 같다.
대광주리 簞(단)의 구성은 대나무의 곧은 줄기와 죽순껍질을 상형한 대 죽(竹)과 홑 단(單)으로 이루어졌다. 單(단)은 짐승의 목을 단숨에 제압할 수 있는 막대의 끝이 V자 모양으로 이루어진 사냥도구일 뿐만 아니라 양 끝에 돌덩이를 매달아놓은 원시적인 무기의 일종이다. 또한 땅을 평평하게 고르는데 쓰이는 삼태기와 같은 도구를 의미하기도 하였다. 따라서 簞(단)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나무(竹) 잘게 쪼개 엮어 만든 삼태기(單)와 같은 도구라는 데서 ‘대광주리’ ‘소쿠리’를 뜻하게 되었다.
먹일 食(사, 밥 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다. 皀(급)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의미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皀)에 담아 뚜껑(亼)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食(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食은 한데 모은 쌀을 뜻한다. 皀(핍)으로 구성되었으며 亼(집)은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그릇(豆)에 밥을 담아 뚜껑(亼)을 덮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보다 설득력을 갖는다.
바가지 瓢(표)의 구성은 증표 표(票)와 오이 과(瓜)로 이루어졌다. 票(표)는 덮을 아(襾)와 제단을 상형한 보일 시(示)로 구성되었는데, 소전에는 현재의 襾(아)는 두 손(臼)으로 뭔가(囟)를 잡고 있는 모양이고, 示(시)로 변화된 자형은 불 화(火)로 그려져 있다. 즉 두 손으로 뭔가를 잡고서 불에 태운다는 데서 ‘불똥이 튀다’가 본뜻이었는데, 인문학적인 지식이 더해져 제단(示)위에 누구를 위한 제사인지 위패(位牌)를 올려놓은 모양(襾)이라는 데서 ‘증표’ ‘표지’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瓜(과)는 상형글자로 오이덩굴에 열려 있는 오이의 모양을 그려냈다. 자형외곽은 넝쿨을 뜻하고 가운데는 달랑 하나만 열려 있는 오이와 같은 열매를 의미한다. 따라서 瓢(표)의 전체적인 의미는 오이(瓜)와 같이 넝쿨에 열리는 박을 따 반쪽으로 잘라 표식(票)을 넣어 만든 도구라는 데서 ‘표주박’ ‘바가지’ ‘박’을 뜻하게 되었다.
마실 飮(음)의 구성은 앞에서 살펴본 밥 식(食)과 하품 흠(欠)으로 이루어졌다. 欠(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欠은 입을 벌려서 내부의 공기를 내보냄을 뜻한다. 공기가 사람의 위로부터 나가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인데,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모양 그대로이다. 따라서 飮(음)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품하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欠) 물이나 술 따위를 먹는다(食)는 데서 ‘마시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簞食瓢飮이란 한 소쿠리의 밥과 표주박에 담긴 물이란 뜻으로, 매우 검소하고 소박한 생활을 하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논어論語』「옹야편雍也篇」의 “어질구나, 안회여! 한 소쿠리의 밥과 표주박에 담긴 물을 마시며 누추하고 비좁은 곳에 산다면, 다른 사람들은 그 불편을 감당해내지 못하거늘 안회는 그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어질도다. 안회여!(賢哉回也 一簞食一瓢飮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라고 공자가 안회를 칭찬하는 대목에서 유래했다.
백중지세(伯仲之勢)란 말이 있다. 형제간에 우열을 가릴 수 없을 만큼 뛰어난 인물들을 묘사할 때 자주 쓰이는 말이다. 그러나 형만 한 아우 없다고 했다. 훌륭한 형이 있었기에 또 그만 한 아우도 생겨나는가 보다.
두 兩(량, 양)은 두 마리의 말이 수레를 끌 때 목에 씌운 ‘멍에’를 나타낸 상형글자다. 수레 車(차)의 갑골문을 살펴보면 두 마리의 말이 이끄는 수레의 모양을 그려놓았는데, 그 원형을 갖춘 글자가 바로 수레 輛(량)이다. 그래서 그 의미는 ‘둘’ ‘짝’ ‘수레’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봉새 鳳(봉)의 구성은 무릇 범(凡)과 새 조(鳥)로 이루어졌다. 凡(범)은 본래 바람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배의 ‘돛’을 뜻하였으나 ‘무릇’이나 ‘평범’ 등의 의미로 쓰이자, 그 뜻을 더 명확히 하고자 일정한 크기의 천(베)을 뜻하는 巾(건)을 더하여 ‘돛 帆(범)’을 따로 제작하였다. 鳥(조)에 대해 『說文』에서는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鳥(조)는 비교적 꽁지가 긴 새를 의미하는 상형글자이며, 반면에 새 隹(추)는 꽁지가 짧고 통통한 작은 새를 그린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鳳(봉)의 전체적인 의미는 바람으로 움직이는 거대한 돛(凡)과 같이 어마어마하게 큰 새(鳥)인 봉황의 ‘봉새’를 상징적으로 그려냈다. 여기서 수컷은 봉새, 암컷은 황새를 뜻한다. 고대인들은 봉황은 바람을 조절하고, 용은 비를 내리게 한다고 믿었다.
가지런할 齊(제)의 갑골문을 살펴보면 창끝모양 세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것을 보리이삭과 같은 곡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형인 齊(제)를 눈여겨보면 그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도(刀)나 氏(씨), 그리고 중앙부의 辛(신) 모양은 모두가 도검류와 관련이 깊으며 자형하부는 그것을 가지런히 꽂을 수 있는 대(臺)라 할 수 있다. 따라서 齊(제)의 의미는 창이나 도검류를 나무로 만든 형틀에 가지런히 꽂아놓은 모습이라는 데서 ‘가지런하다’ ‘단정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날 飛(비)는 새가 날개를 펼치며 날아오르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飛(비)에 대해 『說文』에서 “飛는 새가 날아오르는 것이다. 상형글자다.”라고 하였다. 새가 양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나는 모양을 본뜬 글자인데, 갑골문과 금문에는 보이지 않으며 소전에서 볼 수 있는 것으로 보아 후대에 만들어진 글자이다. 즉 갑골문에도 보이는, 양 날개를 펼친 모양의 非(비)가 ‘아니다’는 부정의 뜻으로 쓰이자 새가 나는 모양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해 만든 글자가 바로 飛(비)라는 글자다.
兩鳳齊飛란 두 마리의 봉새가 나란히 날아간다는 뜻으로, 형제가 나란히 출세와 영달의 길을 감을 이르는 말이다. 북제(北齊)의 최릉(崔陵)과 그의 동생 중문(仲文)이 같은 날에 나란히 재상(宰相)이 되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옛 성현들은 대우주의 진리를 깨달을지언정 말이나 글로는 표현하기 어렵다고 했다. 아니 말이나 글로 표현하면 그 자체는 이미 도(道)가 아니라고 했다. 그래서 언어보다는 상징으로써 의미를 압축하기도 했지만 이심전심(以心傳心)을 최우선으로 하였다.
집을 拈(염, 념)의 구성은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간략형인 수(扌)와 차지할 점(占)으로 이루어졌다. 占(점)은 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견갑골을 구워 갈라진 금(卜)을 보고서 미래의 일을 말(口)해 준다는 데서 ‘점치다’의 뜻이 발생했으며, 또한 특정한 땅의 영역(口)을 차지하기 위해서 깃발(卜)을 꽂는다는 데서 ‘차기하다’ ‘점령하다’의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拈(염)의 전체적인 의미는 점(占) 친 내용이 기록된 뼈를 손(扌)으로 집는다는 데서 ‘집다’ ‘집어 들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빛날 華(화)는 풀 초(艹)와 잎이 늘어진 가운데 화려하게 꽃봉오리가 진 모양을 상형한 모양으로 이루어져 ‘꽃’을 뜻하였다. 그런데 주나라 때부터 쓰였던 꽃봉오리를 본떠 만든 이 ‘꽃 華(화)’가 붓으로 쓰기가 쉽지 않자 초서(草書)가 유행한 한나라 말 무렵부터 간편하게 쓰기 위해 꽃 화(花)를 별도로 만들었고, 華(화)는 ‘화려하다’ ‘빛나다’ ‘번성하다’는 뜻으로 쓰였다.
보일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示(시)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示는 하늘이 상(象)을 드리워 사람들에게 길흉(吉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자형 상부의 두 획(二)은 윗 상(上)의 옛글자로 보았으며 자형 하부의 세 획(小)에 대해서는 해(日)와 달(月), 그리고 별(星)을 상징한다고 철학적 의미를 제시하였다. 그래서 신성한 신에게 정성을 드러내 ‘보이다’라는 의미였으나 후대로 내려오며 그 뜻이 확장되어 ‘보일 시’ 외에도 ‘땅 귀신 기’와 ‘둘 치’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이 示(시)자가 들어가는 글자는 제사나 귀신 혹은 신령한 의미를 담게 된다.
무리 衆(중)은 초기글자인 갑골문에서는 태양(日)아래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亻亻亻)을 나타내 ‘많다’ 사람의 ‘무리’를 뜻하였는데, 후대로 오면서 해(日)가 피 혈(血)로 바뀌고 세 명의 사람도 형체를 잃어버렸다. 인문학적인 해석을 더해보자. 『說文』에서는 “血은 제사를 지낼 때 올리는 희생의 피를 말한다. 皿(명)으로 구성되었고, 一(일)은 그릇에 담긴 피를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는데, 고대에는 제사를 지낼 때는 희생 동물의 피를 그릇에 가득 담아 바쳤다. 특히 촌각을 다투는 전쟁에 앞서 승리를 기원하며 毛血盤(모혈반)제사를 지냈는데, 즉 살아 있는 동물에서 자른 꼬리털(毛)과 피(血)를 쟁반(盤)에 담아 간략히 지냈다. 즉 전쟁에 앞서 촌각을 다투며 간단히 모혈반(血)제사를 올리려 운집한 장병들(亻亻亻)의 모습을 담아 ‘무리’라는 뜻을 부여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拈華示衆이란 한 송이 꽃을 들어 대중에게 보인다는 뜻으로, 말이나 글에 의하지 않고 마음과 마음으로써 전한다(以心傳心)는 뜻이 담겨 있다. 이는 『대범천왕문불결의경大梵天王問佛決疑經』에서 유래한 것으로, 석가모니가 연꽃 한 송이를 들어 제자들에게 보여주었으나 아무도 그 의도를 알아채지 못하고 있을 때, 오직 제자 가섭만이 홀로 미소를 지어보였으므로 그에게 진리를 전해주었다는 이야기를 나타낸 것으로 달리 염화미소(拈華微笑) 심심상인(心心相印)이라고도 한다.
탁상공론(卓上空論)은 어느 시대에나 있어 왔다. 이러한 공리공론이 사회전반에 넘쳐나면 반드시 이를 배격하는 사람들이 출현하기 마련이다. 이러한 현상은 물질문명이 지나치게 흥성할 때 나타나는 현상이다. 그래서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다고 했는가 보다.
열매 實(실)의 구성은 벽을 쌓아 올리고 지붕을 덮어지은 집을 뜻하는 집 면(宀)과 꿸 관(貫)으로 이루어졌다. 貫(관)은 어떠한 사물을 꿰뚫은 모양의 꿰뚫을 관(毌)과 조개 패(貝)로 구성되었다. 貝(패)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로 활용했는데, 여느 바다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개가 아니라 남중국해나 인도양 등지에서 나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아주 단단한 것이었다. 이에 따라 貫(관)은 화폐로 쓰인 조개(貝)를 꿰뚫어(毌)서 휴대하기 편리하도록 꾸러미로 가지고 다녔는데, 이의 영향을 받아 후대에도 가운데 구멍이 뚫린 ‘엽전’으로 발전하였다. 따라서 實(실)의 전체적인 의미는 집(宀)안에 돈 꾸러미(貫)를 가득 채웠다는 데서 ‘가득 차다’가 본뜻이었지만, 곶감 역시 이와 같이 꿰뚫어 말린데서 ‘열매’란 뜻이 파생되었다. ‘실제’와 ‘진실’이란 뜻은 파생된 것이다.
일 事(사)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처음에는 기록을 주로 하는 사관(史官)을 뜻하였다. 이는 자형의 유래가 같은 ‘역사 史(사)’와 ‘벼슬아치 吏(리)’ 역시 갑골문에는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정의한 것처럼 史(사)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리)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사)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
구할 求(구)는 짐승의 가죽을 벗겨낸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자형의 상부는 머리가죽과 귀를, 하부의 氺모양에서 가운데(亅)는 몸통을, 좌우로 삐친 것은 네 다리의 가죽을 그대로 본뜬 것이다. 고대에는 의복을 짓는 기술이 발달되지 않아 짐승의 가죽을 벗겨 몸에 걸쳤다. 따라서 가죽을 ‘구하다’ ‘모으다’는 뜻이 생겨났다.
옳을 是(시)의 구성은 항상 이지러지지 않는 둥근 태양을 상형한 해 일(日)과 바를 정(正)으로 이루어졌다. 正(정)은 한 일(一)과 발 지(止)로 구성되었는데, 갑골문에 새겨진 正(정)자는 흙이나 나무로 만든 목책을 둘러친 성(城)을 뜻하는 ‘囗’모양과 止(지)로 이루어져 있었는데, 소전에 이르러서 단순하게 ‘一’모양으로 바뀌어 오늘날에 이르고 있다. 이에 따라 애초에 正(정)의 의미는 공격목표인 성곽(囗)을 향해 가다(止), 즉 ‘정벌하다’가 본뜻이었으나, 후에 파생된 ‘바로잡다’ ‘바르다’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칠 정(征)’자를 별도로 만들었다. 이에 따라 是(시)의 의미는 항상 하늘을 운항하는 태양(日)처럼 한 길(一)을 따라 가는(止) 것은 ‘바르고’ ‘옳은 일’이라는 뜻이 담겨 있다.
實事求是란 사실에 토대를 두고 올바른 진리를 탐구한다는 뜻으로, 공리공론을 떠나 정확한 사실과 고증을 바탕으로 하는 과학적이면서 객관적인 학문태도를 말한다. 『후한서後漢書』「하간헌왕덕전河間獻王德傳」의 “학문을 닦을 때는 옛것을 바탕으로 사실에 입각하여 진리를 탐구한다(修學好古實事求是)”는 대목에서 유래한 것으로, 청나라의 고증학(考證學)을 주창한 학자들이 공리공론으로 비친 송명이학(宋明理學)을 배격하며 내세운 표어다. 줄여 실학(實學)이라고도 하며, 조선중기 우리나라에도 유입되어 많은 실학자를 배출시켰다.
성인의 경지에 오른 사람은 한가하게 자신만의 여가를 즐길 틈이 없는가 보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실천하고 일반 대중에게 알리려 했기에 늘 바빴다. 부처님, 예수님, 공자님은 늘 대중을 깨치기 위해 동분서주했다.
자리 席(석)은 집 엄(广)과 스물 입(卄), 그리고 수건 건(巾)으로 구성되었다. 广(엄)은 지붕은 있지만 사면의 벽 중 일부는 애초부터 쌓지 않고 개방한 차고나 조정의 건물을 말한다. 卄(입)은 열 십(十) 두 개가 겹친 것으로 스물을 뜻한다. 巾(건)은 허리춤에 차고 있는 수건을 본뜬 것이지만, 여기서는 바닥에 여러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깐 천을 뜻한다. 따라서 席(석)의 전체적인 의미는 개방형 공간(广)에 스무 명(卄) 이상의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도록 융단이나 천(巾)을 깔아 자리를 마련한다는 데서 ‘자리’ ‘깔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겨를 暇(가)의 구성은 해 일(日)과 빌 가(叚)로 이우어졌다. 日(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日은 가득 차 있음을 말한 것이다. 태양의 정기 및 모양이 이지러지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과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태양의 둥근 모양과는 달리 네모지게 그린 것은 거북껍질이나 소의 견갑골 등에 새기려면 아무래도 둥글게 칼을 쓰는 것보다는 결을 따라 네모지게 하는데 편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叚(가)는 금문에 처음 보이는데, 바위산과 같은 산기슭(厂엄)아래에서 채굴한 광물을 뜻하는 두 점(二)과 우변에 그것을 잡으려는 두 손(ㄷ의 반대모양과 又)이 그려져 있다. 즉 산에서 광물을 채취하는 모양을 그려내고 있는데, 이는 곧 대자연에서 사람들이 좋아 하는 옥이나 금 또는 광물을 잠시 ‘빌려’ 쓴다는 철학적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暇(가)의 전체적인 의미는 쉬는 날(日)을 잠시 빌어(叚) 쓰니 ‘한가하다’ ‘겨를이 생기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뜻할 暖(난)의 구성은 태양을 본뜬 해 일(日)과 이에 원(爰)으로 이루어졌다. 爰(원)은 손과 손으로 어우러진 상형글자다.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긴 막대기(一) 양끝을 잡은 두 개의 손(又)이 그려져 있는데, 함정이나 물에 빠진 사람을 막대기를 통해 구해내는 모양이다. 금문을 거치면서 구원자의 손길은 자형상부를 이루는 손톱 조(爫)로 바뀌고 도움이 필요한 조난자(遭難者)는 두 손을 맞잡고 악수하는 모양의 友(우)로 정착되었다. 즉 구원자(爫)가 막대기나 줄(一)을 이용해 조난자(友)를 ‘구해낸다’ ‘돕다’ ‘당기다’가 본뜻이었으나 어조사인 ‘이에’ ‘이때에’ 등의 뜻으로 가차(假借)되었다. 따라서 暖(난)의 전체적인 의미는 햇볕(日)을 서로서로 끌어당긴다(爰)는 데서 ‘따뜻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席不暇暖이란 앉은 자리가 따뜻할 겨를이 없다는 뜻으로, 앉을 겨를도 없이 자주 드나들어 매우 바쁨을 일컫는 말이다. 후한의 역사가 반고(班固)가 『답빈희答賓戱』에서 “공자의 자리는 따뜻해질 겨를이 없고, 묵자 집의 굴뚝은 검어질 틈이 없다(孔席不暖 墨突不黔)”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즉 공자나 묵자 두 사람은 자신의 사상을 널리 알리려고 분주하게 돌아다녔음을 표현한 것이다.
‘실패는 성공의 어머니’라고 했다. 대부분 지레짐작으로 실패를 두려워하며 도전자체를 포기하는 경우가 많은데, 수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나오는 게 성공이라는 삶의 작품이다. 실패라는 과정이 곧 보다 단단한 꿈을 이루어주는 것이다.
일백 百(백)의 구성은 한 일(一)과 흰 백(白)으로 짜여 있다. 一(일)은 지사글자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해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일)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서는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꺾을 折(절)의 구성은 손 수(扌)와 도끼 근(斤)으로 이루어졌다. 扌(수)는 다섯 손가락을 본뜬 상형글자 手(수)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여 ‘손’의 쓰임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斤(근)은 도끼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이에 따라 折(절)은 도끼(斤)자루를 손(扌)에 쥐고 풀이나 나무를 자르거나 쪼갠다는 데서 ‘꺾다’ ‘자르다’ ‘쪼개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어지러울 撓(요)의 구성은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간략형인 손 수(扌)와 요임금 요(堯)로 이루어졌다. 堯(요)는 사람이름 요(垚)와 우뚝할 올(兀)로 구성되었는데, 그 뜻은 흙덩이들(垚)을 우뚝하게(兀) 쌓아올린 높은 자리를 말한다. 즉 삼황오제 중의 한 사람이었던 요임금을 상징적으로 높여 부른 글자다. 따라서 撓(요)의 전체적인 의미는 흙을 토대로 한 높은 자리에 오른 사람(堯)이 손(扌)으로 다양한 지시를 내리니 밑에 있는 사람들로서는 ‘어지러울’뿐 아니라 ‘요란스럽게’ 보이고, 또한 그 지시에 따른다는 데서 ‘굽히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百折不撓란 백 번을 꺾일지언정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뜻으로, 실패를 거듭해도 자신의 의지를 굽히지 않는 정신과 자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나라 때 교현(喬玄)이라는 강직한 선비를 기리는 『태위교공비太尉喬玄碑』라는 비문의 “백 번 꺾일지언정 굽히지 않았고, 큰 절개를 대하면서도 빼앗을 수 없는 풍모를 지녔다(有百折不撓, 臨大節而不可奪之風)”라고 칭송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명품이나 큰 인물은 단번에 이루어지지는 않는다. 끊임없는 자기성찰과 각고의 자기공부를 통한 오랜 노력의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꿈은 크게 가져야 한다. 큰 꿈을 가진 사람만이 큰 사람이 될 수 있다.
큰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그릇 器(기)는 네 개의 입 구(口)와 개 견(犬)으로 구성되었다. 器(기)자는 고대의 장례풍속인 순장(殉葬)제와 관련이 깊다. 특히 지배계급의 왕족이 사망하면 죽은 사람과 가까운 아내나 신하, 그리고 첩이나 노예를 시신과 함께 묻는 순장은 고대문명권에서는 전 세계적으로 분포하는 습속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신라 지증왕 3년(서기 502년) 3월에 순장법을 금지하는 법령이 반포되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 대안으로 사람대신 동물, 특히 동물 중에서도 사람 가까이서 잘 지켜주는 개를 금은으로 만든 귀중한 보물 및 그릇 등과 함께 무덤 속에 묻었다. 따라서 器(기)의 전체적인 의미는 죽은 사람의 시신 곁에 순장한 개(犬)와 귀중한 보물 및 평소 망자가 사용했던 그릇(네 개의 口)을 부장품으로 함께 묻었던 고대인의 장례습속을 표현한 것으로 ‘그릇’ ‘도구’라는 뜻이 담겨있다.
저물 晩(만)의 구성은 태양을 상형한 해 일(日)과 면할 면(免)으로 이루어졌다. 免(면)은 자형상부의 사람 인(人)이 변형된 모양(⺈)과 가운데 산모의 엉덩이를 나타낸 옆으로 누인 ‘日’모양, 그리고 사람의 발을 뜻하는 儿(인)으로 이루어져 있다. 즉 아이가 어머니(⺈)의 엉덩이(뉜 日모양) 밑 다리(儿) 사이로 나오는 모양을 그려내 ‘해산하다’의 뜻을 부여했다. 그러나 산모가 엄청난 산통으로부터 벗어난 상태라는 점에서 ‘면하다’는 뜻으로 더 쓰이게 되자 이후에 사람들은 산모를 의미하는 女(여)자를 더해 娩(만)자를 별도 만들게 되었다. 따라서 晩(만)의 전체적인 의미는 산모가 어두운 곳에서 아이 낳는 모습을 그려낸 어두울 명(冥)처럼, 산모가 아이를 낳기(免) 위해 어두운 산실로 들어가듯 태양(日)이 서쪽 하늘밑으로 들어간다는 데서 ‘저물다’ ‘해질 무렵’을 뜻하게 되었다.
이룰 成(성)의 글자형성은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관련이 깊다. 십간은 곡식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수확되어 창고에 갈무리되었다가 다시 파종되는 일련의 순서를 나타낸다. 즉 씨앗이 파종되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내리게 되는데, 甲(갑)의 자형하부가 곧 뿌리를 뜻한다. 乙(을)은 싹이 터 어느 정도 자라난 모양을, 丙(병)은 자라나 저마다 꼴의 형태를 갖춘 것을, 丁(정)은 장성하게 자라난 모양을, 戊(무)는 지나치게 웃자라지 못하도록 전지가위를 이용해 잘라주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장성하게 자라(丁) 전지(戊)해 줄 정도가 되면 식물의 성장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大器晩成이란 큰 그릇은 더디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큰 인물이 되기 위해서는 많은 노력과 시간이 필요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도덕경道德經』제41장의 “아주 크게 네모진 것은 모서리가 없고(大方無隅), 큰 그릇은 더디 이루어지며(大器晚成),큰 소리는 드물게 소리를 내고(大音希聲),큰 모습은 형체가 없으며(大象無形),도는 감추어져 이름 할 수도 없지만(道隱無名), 오직 도(道)만이 잘 베풀어주고 이루어준다(夫惟道善貸且成)”고 한 대목에서 유래했다.
누구나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手不釋卷) 전력을 다해 공부하면 놀랄 만큼의 성취감을 맛볼 수 있다. 늘 책을 가까이 하는 사람을 보면 내면의 향기가 느껴진다. 자기혁신, 공부에 있다.
깎을 刮(괄)의 구성은 혀 설(舌)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舌(설)은 입 밖으로 내민 혀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舌(설)에 대해 『說文』에서는 “舌은 입 안에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맛을 구별하는 것이다. 干(간)과 口(구)로 짜여있다.”라고 하였다. 즉 입(口)안에서 방패(干)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오늘날 주로 주방에서 쓰는 칼과 같이 한 쪽 면만 날을 세우고 다른 한 면은 양념 등을 다질 수 있도록 등을 만든 것을 ‘刀’라고 한다. 따라서 刮(괄)의 전체적인 의미는 동물의 혀(舌)를 주방용 칼(刂)로 잘라낸다는 데서 ‘도려내다’가 본뜻이며, 혀(舌)에 낀 설태를 칼(刂)로 긁어낸다는 데서 ‘긁다’ ‘깎아내다’는 뜻과 함께 ‘비비다’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눈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 썼는데(罒),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옛사람들은 사람의 얼굴 중에 눈(目)을 ‘마음의 창’이라 하여 상대의 마음을 읽을 수 있는 곳으로 여겼다. 그래서 관상(觀相)에서 눈이 차지하는 비율이 8할이라 하였다.
서로 相(상)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눈 목(目)으로 짜여 있다. 木(목)은 한 그루의 나무를 가지와 줄기 뿌리까지 본뜬 상형글자이며, 目(목)은 사람의 한 쪽 눈을 본뜬 것으로 쓰기에 편리하도록 세로로 세운 모양이다. 相(상)의 본뜻은 어린 묘목(木)의 성장을 눈(目)으로 살펴보는 데서 ‘보다’ ‘살피다’ ‘돕다’인데, 오늘날 주로 쓰이는 ‘서로’ 란 뜻은 살피고 보살핀 데서 파생된 것이다. 한편 나무(木)의 싹이 움트는 모습을 살펴보면 항상 대칭적으로 싹눈(目)이 형성됨을 볼 수 있는데, 이 또한 ‘서로’라는 의미의 파생과정을 엿볼 수 있다.
대답할 對(대)의 구성은 풀 무성할 착(丵)의 하변에 一(일)을 더한 모양과 손의 모양을 상형한 마디 촌(寸)으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丵(착)모양은 여러 개의 걸개가 달린 나무로 만든 틀인데, 여기에 안정적으로 고정하기 위해 밭침(一)을 더한 모양으로 요즘의 옷걸이를 상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러한 도구는 여러 악기를 걸어두는 걸개 역할을 한 ‘장식 널’의 일종인데, 항상 음양의 조화를 위해 좌우에 쌍으로 배치하였다. 따라서 對(대)의 전체적인 의미는 악기를 걸어두기 위한 걸개(丵+一)를 무대의 좌우에 쌍으로 배치(寸)한다는 데서 ‘마주보다’ ‘짝’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대답하다’는 파생된 것이다.
刮目相對란 눈을 비비고 상대를 다시 보며 대한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의 학식이나 업적이 크게 진보한 것을 이르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오지吳志」에 나오는데, 오나라 왕 손권이 장수 여몽(呂蒙)이 무술은 뛰어나나 학문이 일천한 것을 나무라자 손에서 책을 놓지 않고 열공했다. 후에 노숙(魯肅)이란 사람이 그의 학식의 진보에 놀라자 여몽은 “선비가 삼일을 떨어져 있다 다시 대할 때는 눈을 비비고 보아야 합니다(士別三日 卽當刮目相對)”라고 응대한 구절에서 유래했다.
천하의 이치와 사리를 깨달은 사람(明哲), 또한 나아가고 물러남에 있어서도 이치에 어긋남이 없는 사람(保身)을 일컬어 옛사람들은 명철보신(明哲保身)이라 했다. 늘 밝고 맑게 깨어 있음이 또한 수양의 한 방편이다.
밝을 明(명)은 창문의 생략형 글자인 일(日)과 달 월(月)로 구성되었다. 明(명)에서 자형좌변의 (日)은 태양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본디글자에서는 囧(경)이다. 囧(경)은 창문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빛이 들어 밝아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月(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月은 이지러진다는 뜻이다. 태음(太陰)의 정수로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三陰三陽論(삼음삼양론)에 따르면 음기(陰氣)가 가장 큰 상태를 태음이라 하며, 그 다음이 소음 궐음 순이다. 陽(양)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태양으로 항상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實(실)이라 하며, 陰(음)인 月(월)은 이지러져 있는 때가 많기에 闕(궐)이라 한다. 그래서 갑골문 등에도 반달과 같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따라서 明(명)은 어둠이 내린 밤에 달빛(月)이 창문(囧)을 통해 집안을 비추니 ‘밝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밝을 哲(철)의 구성은 꺾을 절(折)과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이루어져 있다. 折(은) 손의 모양을 상형한 手(수)의 간략형인 수(扌)와 도끼 근(斤)으로 짜여 있다. 斤(근)은 도끼모양을 본뜬 것으로,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이에 따라 折(절)은 도끼(斤)자루를 손(扌)에 쥐고 풀이나 나무를 자르거나 쪼갠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哲(철)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리의 옳고 그름을 분석(析)하여 말한다(口)는 데서 ‘밝다’ ‘슬기롭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지킬 保(보)의 구성을 살펴보면 서있는 사람의 옆모양을 본뜬 사람 인(亻)과 어리석을 매(呆)로 짜여 있다. 呆(매)는 금문에 처음 보이는데, 강보에 싸여 있는 갓난아이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즉 자형상부의 ‘口’모양은 갓난아이의 머리, 가운데(一)는 아이의 두 팔, 하부는 다리(丨)를 감싼 강보(八)의 상형이다. 본래의 뜻은 ‘보호하다’인데, 강보에 싸인 아기는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에 ‘어리석다’는 뜻으로 쓰이자 본뜻을 살리기 위해 사람 인(亻)을 더해 ‘지킬 保(보)’자를 따로 만들었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明哲保身이란 이치에 밝고 사리에 분명하고 도리에 어긋나지 않게 처신하여 자신을 보전한다는 뜻으로, 『시경詩經』「증민편蒸民篇」의 “밝고 또한 분명하게 행동하여 자기 몸을 보전한다(旣明且哲 以保其身)”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부부로 만나 한 평생을 함께 살며 생사고락을 함께 한다는 것은 복 받을 일이다. 그래서 부부는 닮아간다고 했다. 같이 웃고 함께 슬퍼하니 얼굴의 표정이 닮아가는 것이다.
함께 偕(해)의 구성은 서 있는 사람을 본뜬 사람 인(亻)과 다 개(皆)로 이루어졌다. 皆(개)는 견줄 비(比)와 고백(告白)에서처럼 말하다는 뜻으로 쓰인 말할 백(白)으로 구성되었는데, 比(비)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한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의 자형들을 살펴보면 같은 뜻의 글자라 하더라도 그 구성부수의 순서나 위치가 바뀌는 경우가 많은 점을 고려할 때, 从(종)이나 比(비)는 같은 의미를 지닌 글자로 보인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从(종)은 두 사람이 서로 따라간다는 뜻으로 정해지면서 현재 쓰이는 從(종)의 옛글자로서 뿐만 아니라 요즘에는 이의 간체자(簡體字)로도 쓰이고 있다. 또한 比(비)는 두 사람이 어깨를 나란히 하고서 앉아(匕) 있다는 데서 ‘견주다’ ‘나란히 하다’의 뜻이 발생했다. 이에 따라 皆(개)는 여러 사람(比)이 다 같이 찬동하며 말한다(白)는 데서 ‘모두’ ‘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偕(해)의 전체적인 의미는 모든(皆) 일을 함께 할 수 있는 사람(亻)이라는 데서 ‘함께 하다’ ‘같이 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늙을 老(로, 노)는 사람의 머리털이나 짐승의 털 모양을 본뜬 털 모(毛)의 변형과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상형한 사람 인(人), 그리고 지팡이 모양이 변환된 비수 비(匕)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老(로)의 의미는 머리카락(毛)을 길게 산발하고 허리를 굽힌 사람(人)이 지팡이(匕)를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노인’을 뜻한다.
한 가지 同(동)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이지만 통일된 해석이 없다. 인문적인 접근을 한다면 대나무와 같이 속이 텅 비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마디마디를 절단해도 거의 한결같은 크기라는 뜻이 내포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또한 한 무리(冖)의 사람들이 모두 한(一) 목소리(口)를 낸다고도 보아 ‘한 가지’ ‘함께’ ‘다같이’ 등의 뜻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구멍 穴(혈)은 고대의 주거의 형태로 땅을 파내어 만든 동굴형태 집의 출입구를 본뜬 것으로 상형글자이다. 그래서 그 의미는 ‘구멍’ ‘동굴’ ‘움집’ 등을 뜻하게 되었다. 즉 자형상부의 집 면(宀)이 동굴전체를 표현한 것이고, 하부의 ‘八’모양이 사람이 드나드는 출입문을 뜻한다고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지맥의 정기가 모인다는 묘혈을 뜻한다.
偕老同穴이란 부부가 한평생을 함께 살며 늙고 죽어서는 한 무덤에 묻힌다는 뜻으로, 생사를 함께 하자는 부부 간의 굳은 언약을 이르는 말이다. 『시경詩經』「격고擊鼓」라는 시의 “죽으나 사나 오래 떨어져 있어도 그대와 함께 하자 언약했지. 그대의 손을 잡고 그대와 함께 늙겠노라(死生契闊, 與子成說. 執子之手, 與子偕老)”는 구절에서 유래했다.
눈물 젖은 빵을 먹어보지 않은 사람이 어찌 그 고초를 알까! 때로 세상의 풍정을 알려면 온갖 시름 걷어내고 만행의 길에 오르는 것도 자신을 성찰할 수 있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바람 風(풍)은 무릇 범(凡)과 벌레 충(虫)으로 구성된 회의글자다. 凡(범)은 본래 바람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배의 ‘돛’을 뜻하였으나 ‘무릇’이나 ‘평범’ 등의 의미로 쓰이자, 그 뜻을 더 명확히 하고자 일정한 크기의 천(베)을 뜻하는 巾(건)을 더하여 ‘돛 帆(범)’을 따로 제작하였다. 또한 虫(충)은 여러 벌레를 의미하는 蟲(충)의 생략형이다. 따라서 風(풍)의 전체적인 의미에는 바람을 추상적으로 그려낸 게 凡(범)인데, 즉 바람결(凡)에 휩싸여 벌레들(虫)이 이동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봄바람이 불면 겨우내 웅크렸던 벌레들이 깨어난다는 뜻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먹을 餐(찬)의 구성은 후빌 잔(歺+又)과 밥 식(食)으로 이루어졌다. 잔(歺+又)은 살을 발라내고 뼈만 남은 부서진 뼈 알(歺)과 오른 손 모양을 뜻하는 또 우(又)로 구성되었는데, 마땅히 도구가 없었던 고대에는 뼈(歺)를 손(又)에 쥐고서 창이나 흙을 파는 도구로 활용했기에 ‘후비다’는 뜻을 갖게 되었으며 여기서는 숟가락 대용의 의미를 지닌 것으로 본다.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는데,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에 담아 뚜껑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따라서 餐(찬)의 전체적인 의미는 동물의 뼈(歺)를 오른손(又)에 들고서 밥(食)을 먹는다는 데서 ‘먹다’ ‘음식’ ‘밥’을 뜻하게 되었다.
이슬 露(로)의 구성은 비 우(雨)와 길 로(路)로 이루어졌다. 雨(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雨는 물이 구름으로부터 떨어진다는 뜻이다. 一(일)은 하늘을 본떴고 冂(경)은 구름을 상형하였는데, 물방울이 그 사이에서 떨어진다.”고 하였다. 달리 해석한다면, 하늘(一)아래 한정된(冂) 지역에 국한하여 빗방울이 떨어진다고도 볼 수 있다. 路(로)의 구성은 발 족(足)과 각각 각(各)으로 짜여 있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있다”라고 하였다. 各(각)은 뒤처져 올 치(夂)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뒤처져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口(구)는 움푹하게 파인 고대인들의 거주지인 움집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저마다 자기의 움집(口)으로 돌아간다(夂)는 데서 ‘각각’ ‘각기’라는 뜻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路(로)는 일방적으로 가는 길이 아니라 가고(足) 오는(各) ‘길’을 의미한다. 따라서 露(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오가는 길가(路)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풀잎에 맺힌 물방울(雨)이라는 데서 ‘이슬’을 뜻하게 되었다.
묵을 宿(숙)의 구성은 집 면(宀)과 일백 백(佰)으로 이루어졌다. 宀(면)은 지붕과 양 벽면을 본뜬 것으로 사람이 사는 집을 뜻한다. 보통 맞배지붕처럼 대칭구조로 이루어진 지붕형태를 취한 집을 의미한다. 여기서 佰(백)은 숫자 ‘백’을 뜻하는 게 아니라 사람(亻)이 이부자리나 돗자리(百) 위에서 잠을 자거나 쉬고 있음을 나타낸 자형이 변형된 것이다. 따라서 宿(숙)의 전체적인 의미는 아늑한 집안(宀)에서 사람이 이부자리나 돗자리(佰) 위에 누워있다는 데서 ‘잠을 자다’ ‘묵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風餐露宿이란 바람막이도 없는 한데서 밥을 먹고 지붕도 없는 노천에서 이슬을 맞으며 잔다는 뜻으로, 일정한 거처도 없이 떠돌아다니며 고생스러운 생활을 하는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편으로 큰 뜻을 세우려는 사람이 온갖 만행의 고초를 겪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만 여수에 가까운 시를 남긴 남송의 시인 육유(陸游)의 숙야인가시(宿野人家詩)의 “늙으니 내세로 가는 길도 흐릿하고 기억력도 가물가물하구나, 이슬을 맞으며 잠을 자고 바람을 맞으며 밥을 먹으니 허물인지 알지도 못 하겠구나(老來世路渾諳盡,露宿風餐未覺非)”에서 유래하였다.
어느 시대에나 군계일학(群鷄一鶴)처럼 뛰어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우리 시대에는 어떤 이를 들 수 있을까! 종교계나 학계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이미 떠나 버린 사람들이 많다. 이 시대를 이끌 태산북두가 우뚝 솟아올랐으면 좋겠다.
클 泰(태)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두 개의 손 수(手)와 물 수(氺)로 이루어졌는데, 금문과 소전을 보면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을 상형한 큰 대(大)와 두 개의 손(手) 그리고 물 수(氺)로 짜여있음을 볼 수 있다. 이로 미루어볼 때, 泰(태)의 전체적인 의미는 고대의 종교의식에 앞서 대표자(大)를 물(氺)로 목욕재계 시키는(手+手) 모습을 그려내 ‘편안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이러한 의식은 부족이나 한 나라의 입장에서 볼 때는 큰일이기에 ‘크다’는 뜻으로도 불어나게 되었다.
뫼 山(산)은 세 개의 산봉우리를 본뜬 상형글자로 산봉우리들이 길게 늘어선 ‘산’을 뜻하게 되었다. 한자에서 셋일 때는 단지 새 개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많은 수를 함축하여 줄인 경우가 많다.
북녘 北(북)은 두 사람이 서로 등을 지고 앉아 있는 모양을 그려낸 것으로 본뜻은 ‘배반하다’였으나, 보통 사람은 북쪽을 등지고 앉는다는 데서 ‘북쪽’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北(북)에 대해 『說文』에서는 “北은 어그러지다는 뜻으로 두 사람이 서로 등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두 사람이 서로 등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서로 등을 진다는 데서 ‘배반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사람은 햇살이 풍부한 남쪽을 향하기 때문에 등이 북쪽을 향하게 돼 ‘북방’을 뜻하기도 한다.
말 斗(두)는 긴 자루(十) 끝에 뭔가(:)를 담아낼 수 있는 국자모양의 기구가 달린 ‘말’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斗(두)에 대해 허신은 “斗는 열 되의 용량을 말한다. 상형글자이며 자루가 달려 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데, 긴 자루 끝에 국자모양의 뭔가를 담아낼 수 있는 기구가 달려 있다. 본래는 술을 퍼내는 기구였으나 나중에는 여러 용도로 쓰였다. 주두 두(枓)의 본래자라 할 수 있다.
泰山北斗란 중국 대륙에서 제일의 명산으로 알려진 태산과 동북아 사람들에게 영혼의 고향으로 숭앙받는 북두칠성이라는 뜻으로, 학문이나 예술분야에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을 받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당서唐書』「한유전韓愈傳」에서 유래한 것으로 당나라의 한유(韓愈)는 이백(李白) 두보(杜甫) 백거이(白居易)와 함께 4대 시인이며,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히는 문장가이자 사상가여서 그를 일컬어 태산북두에 비유했다.
꾸미지 않는 어린아이의 해맑은 웃음소리처럼 정겨운 게 있을까! 그래서 옛사람들은 어린아이의 순진무구한 모습으로 돌아가는 환동(還童)을 수양의 목표로 삼기도 했다.
하늘 天(천)은 큰 대(大)와 한 일(一)로 이루어진 회의글자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본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一(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天(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위로 끝없이 펼쳐진 허공(一)을 표시하여 ‘하늘’이란 뜻을 부여하였다.
옷 衣(의)는 사람의 목을 중심으로 옷깃이 좌우로 나뉜 모양을 상형한 윗저고리 옷을 말하며 아랫도리는 치마 상(裳)을 써서 구별하였다. 衣(의)에 대해『說文』에서는 “衣는 의지한다는 뜻이다. 윗옷을 衣(의)라 하고 아래옷은 常(상)이라 하며, 두 명의 사람을 뒤덮은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에 새겨진 모양은 두 사람이 아니라 목을 중심으로 옷깃이 좌우로 나뉜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상체에 입는 옷을 말한다.
없을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꿰맬 縫(봉)의 구성은 실 사(糸)와 만날 봉(逢)으로 이루어졌다. 糸(사)는 가느다란 실을 감아놓은 실타래를 본뜬 상형글자다. 逢(봉)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끌 봉(夆)으로 구성되었는데,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夆(봉)은 뒤져서 올 치(夂)와 풀 무성할 봉(丰)으로 구성되었는데,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정상적인 발걸음이 아닌 어긋난 발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丰(봉)의 갑골문 모양을 참조하면 뿌리 부분이 흙덩이로 싸여 있는 나무모양인 점으로 볼 때, 묘목(丰)을 땅에 심은 뒤 두발로 엇 딛으며(夂) 다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에 따라 逢(봉)은 옛사람들은 종교의식의 하나로 산봉우리에 올라 하늘과 소통하는 의미로 나무를 심고 발로 다졌는데(夆), 이 때 많은 사람이 쉬엄쉬엄 산봉우리로 올라와(辶) 함께 했다는데서 ‘만나다’ ‘점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縫(봉)의 전체적인 의미는 옷이 헤지거나 구멍이 났을 때 천을 덧대어 실(糸)로써 천과 천이 만나게(逢) 한다는 데서 ‘꿰매다’ ‘깁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天衣無縫이란 하늘나라의 선녀가 입는 옷은 바느질로 꿰맨 흔적이 없다는 뜻으로, 어떤 사람의 언행이 조금도 꾸민 데가 없이 자연스럽거나 또는 시나 문장의 흐름이 기교를 부린 데가 없이 매우 자연스러움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태평광기太平廣記』에서 유래한 것으로 천상의 직녀가 지상계의 청년 곽한(郭翰)을 흠모하여 저녁이면 내려와 담소를 나누었는데, 하루는 선녀의 옷이 꿰맨 흔적이 없는 것을 보고 묻자 “천상계의 옷은 본디 바늘이나 실로 꿰매어 만들지 않는답니다(天衣本非針線爲也)”라고 하였다고 한다. 꾸미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이야 말로 진정한 아름다움이다.
로마에 가면 로마의 법을 따라야 한다고 했다. 세상 어디를 가든 해당 지역만의 독특한 풍속이 있기 마련이다. 이러한 풍속은 바람(風) 길이 다른 산과 물이 흐르는 계곡이나 강(俗)을 경계로 나뉘어져왔다.
들 入(입)은 사람이 건물이나 경계 안으로 들어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지사문자이다. 入(입)에 대해 『說文』에서는 “入은 안으로 들어감을 말한다. 밖으로부터 안으로 들어가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안 내(內)자를 살펴보면 보다 명확히 그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자형 외곽의 멀 冂(경)은 들 坰(경)의 옛글자인데, 사람들이 거주하는 곳을 邑(고을 읍)이라 하고, 읍 밖을 郊(성 밖 교)라 하며, 郊의 밖을 野(들 야)라 하고, 野 밖을 林(수풀 림)이라 하며, 林 밖을 冂(먼데 경)이라 한다. 따라서 먼 곳(冂)으로부터 안으로 들어온다(入)는 뜻이 담겨 있다.
골 鄕(향)은 요즘 중국에서 간체자로 쓰고 있는 시골 향(乡)과 고소할 급(皀) 그리고 사람이 모여 사는 마을을 뜻하는 읍(邑)의 다른 형태인 우부방(阝)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에 그려진 모양을 살펴보면 현재 사용하고 있는 자형(鄕)과는 다르다. 즉 고소한 냄새를 풍기는 그릇에 담긴 밥(皀)이 차려진 음식상을 가운데 두고서 두 사람(人)이 마주 앉은 모양의 상형글자였다. 따라서 ‘마주하고서 음식을 먹다’가 본래 뜻으로 번잡한 도시에서 벗어나 한가롭게 음식상을 마주할 수 있는 곳은 ‘시골’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돌 循(순)의 구성은 조금 걸을 척(彳)과 방패 순(盾)으로 이루어져 있다. 彳(척)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彳은 작은 걸음으로 걷는다는 뜻이며 사람의 다리를 형성하는 세 부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지만, 여기서는 行(행)의 생략형으로 보아야 글자해석이 용이하다. 行(행)은 갑골문 등에서는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로 풀이하고 있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거리에서의 행위를 나타내게 된다. 盾(순)은 얼굴을 중심으로 몸을 방어하기 위해 방패를 잡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즉 자형의 ‘厂’모양이 방패이고 여기서 ‘十’은 방패의 손잡이를 잡은 모양이다. 또한 눈을 상형한 目(목)은 눈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상징하는 축약형 글자다. 따라서 循(순)의 전체적인 의미 적의 동태를 살피거나 방어를 목적으로 창과 방패(盾)를 들고서 일정한 경계구역을 오간다(行)는 데서 ‘돌다’ ‘돌아다니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풍속 俗(속)은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골짜기 곡(谷)으로 구성되었다. 谷(곡)은 상형글자로 아래 구(口)는 물이 흐르는 여울 가운데 놓인 돌이나 바위(石)를 의미하며 위에 쓰인 겹쳐진 ‘八’의 형태는 돌 양옆으로 비켜 흐르는 물살의 모습을 본뜬 것이다. 즉 시냇가 가운데 놓인 바위(口)와 그것을 비켜 흐르는 물살(겹친 八)을 본떠, 골짜기를 회화적으로 그려낸 글자로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한 ‘계곡’을 뜻한다. 요즘처럼 다리가 건설되기 전에는 강이나 계곡(谷)을 경계로 사람들(亻)이 모여살기 마련인데, 교통이 원활하지 않기 때문에 강 건너편과 ‘관습’이나 ‘풍속’이 다를 수밖에 없었다. 이에 따라 한 골짜기(谷)를 중심으로 생활하는 사람들(亻)은 같은 관습 속에 산다는 데서 ‘풍속’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入鄕循俗이란 어떤 고장에 가면 그곳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는 뜻으로, 『회남자淮南子』「제속편齊俗篇」에 “그 나라에 들어가는 사람은 그곳의 풍속을 따라야 한다(入其國者 從其俗)”고 한 것에서 유래했다. 『중용中庸』14장에도 “현재 부유하고 존귀하다면 부유하고 존귀롭게 행하고, 현재 가난하고 천시 받는다면 빈천스럽게 행하며, 현재 오랑캐 땅에 있다면 오랑캐의 풍속대로 행하고, 현재 어려움에 처해 있다면 어려움에 맞추어 행하니, 군자는 어느 곳을 가든지 스스로 거기에 맞게 행하지 아니함이 없다(素富貴,行乎富貴;素貧賤,行乎貧賤;素夷狄,行乎夷狄;素患難,行乎患難;君子無入而不自得焉)”라고 하였다.
단단한 것은 깨지기 쉽고 강한 것은 부러지기 쉽다고 했다. 강풍에 거목은 부러지기 쉽지만 유연한 풀은 꺾이지 않는다. 단단하게 쌓아올린 자신의 아집을 허물고 생각의 유연성을 갖는 것, 나이 듦의 지혜다.
부드러울 柔(유)의 구성은 창 모(矛)와 나무 목(木)으로 짜여 있다. 矛(모)는 긴 나무 끝에 날카로운 쇠창을 박고 또한 작은 깃발이나 장식을 단 모양의 ‘창’을 본뜬 상형글자다. 특히 쇠로 만든 칼끝이 꼬부라지고(乛) 또한 옆으로는 갈고리처럼 굽어진 모양(乛)의 칼날이 달렸으며 깃발이나 장식(丿)을 달았다. 주로 전투용 병차에 앞세우고 다녔다. 이에 따라 柔(유)의 전체적인 의미는 이러한 창(矛)은 부드럽고 나긋나긋한 긴 나무(木)를 사용해야 탄력성을 갖춘 유용한 무기가 된다는 데에서 ‘부드럽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능할 能(능)은 곰의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다. 머리와 주둥이(厶), 그리고 살집이 많은 몸통(月=肉)과 다리(匕)를 표현하였다. 허신은 『說文』에서 “能은 곰의 무리를 말한다. 발은 사슴과 비슷하다. 肉(육)으로 구성되었으며 㠯(이)가 소리요소다. 곰이라는 짐승은 중용을 견지하므로 현능(賢能)이라고도 하며, 또한 강하고 굳세므로 능걸(能傑)이라고도 부른다.”라고 하였다. 허신이 발을 사슴(鹿)과 비슷하다 한 것은 다리를 두 개의 匕(비)로 나타냈기 때문이다. 能(능)은 본래 재주 많고 움직임이 좋은 ‘곰’을 뜻하였지만, ‘능하다’는 뜻으로 더 많이 쓰이자, 별도로 ‘곰 熊(웅)’을 제작하였다.
억제할 制(제)의 구성은 아닐 미(未)의 변형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制(제) 자의 금문을 보면 확실히 아닐 未(미)로, 자라고 있는 나무와 가지 끝을 나타낸 상형글자이다. 즉 나무(木)의 끝(一)은 아직 완전하게 자라지 않은 모양이어서 아직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아니다’라는 부정의 뜻과 함께 미래적 뜻을 지닌 ‘아직은 --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오늘날 주로 주방에서 쓰는 칼과 같이 한 쪽 면만 날을 세우고 다른 한 면은 양념 등을 다질 수 있도록 등을 만든 것을 ‘刀’라고 한다. 따라서 制(제)의 전체적인 의미는 아직은 완전히 다 자라지 않은 나무(未)의 가지를 톱이나 전정가위(刂)로 잘라낸다는 데서 ‘억제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덜 자랐지만 밑 둥 부분의 재목은 마름질하여 생활도구를 만들 수 있다는 데서 ‘만들다’는 뜻도 있다.
굳셀 剛(강)의 구성은 산등성이 강(岡)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岡(강)은 줄로 엮어 만든 그물을 본뜬 그물 망(网)과 세 개의 산봉우리를 상형한 뫼 산(山)으로 구성되었다. 그 뜻은 산봉우리(山)들이 그물망(网)처럼 연이어진 ‘산등성이’를 그려내고 있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이에 비해 여럿이라는 뜻을 지닌 다 첨(僉)과 칼 도(刀)로 짜인 검(劍)은 양 날을 지닌 칼을 뜻한다. 따라서 剛(강)의 전체적인 의미는 산허리(岡)라도 잘라버릴 만큼 단단한 칼(刂)이라는 데서 ‘굳세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柔能制剛이란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길 수 있다는 뜻으로, 『황석공삼략黃石公三略』에 “부드러운 것이 능히 단단한 것을 이기고, 약한 것이 능히 강한 것을 이길 수 있다(柔能制强 弱能勝强)”라고 하였다. 이는 곧 『도덕경道德經』78장의 “천하에 물보다 더 부드럽고 여린 것은 없지만(天下莫柔弱於水), 단단하고 강한 것을 공격하는데 있어서 그 어느 것도 물을 능가할 수는 없으며(而攻堅強者莫之能勝), 그 어느 것도 물을 대신할 수는 없다以其無以易之). 나긋나긋한 것이 강한 것을 이기고(弱之勝強), 부드러운 것이 단단한 것을 이긴다(柔之勝剛)”고 한 노자의 사상을 계승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개천에서 용 난다’는 우리말 속담이 있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쉼 없는 자기 노력과 때가 맞물려 성공할 뿐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성공한 모습만을 바라보고 부러워한다. 인간으로 태어난 모든 이에게는 저마다 자기만의 사명이 주어진다. 자기성찰을 통해 주어진 사명을 계발하는 일, 우리가 사는 이유다.
물고기 魚(어)는 물고기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즉 자형상부의 ‘勹’모양은 물고기의 머리를, 중간의 ‘田’모양은 몸통을, 그리고 하변의 ‘灬’는 지느러미를 나타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속에 사는 물고기의 총칭(總稱)으로 쓰이고 있다. 글자의 초기형태인 갑골문의 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변할 變(변)의 구성은 어지러울 연(䜌)과 회초리를 든 모양을 상형한 칠 복(攴)의 간력형인 복(攵)으로 이루어졌다. 䜌(연)은 실 사(絲)와 말씀 언(言)으로 구성되었다. 絲(사)는 누에가 입으로 토해낸 고치를 풀어 잣아 놓은 두 개의 실타래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길게 이어진 명주실을 의미한다.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즉 䜌(연)은 상대에게 하는 말(言)이 잣아 놓은 실타래의 실(絲)처럼 끝없이 이어지니 듣는 사람의 입장에서는 ‘어지럽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變(변)의 전체적인 의미는 아이들의 올바른 가르침을 위해 끝없이 이어지는 실(絲)과 같이 좋은 말씀(言)으로 다독이면서도 때로는 회초리를 들어(攵=攴)서 다독이며 교육한다는 데서 ‘변하다’ ‘달라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룰 成(성)의 글자형성은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관련이 깊다. 십간은 곡식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수확되어 창고에 갈무리되었다가 다시 파종되는 일련의 순서를 나타낸다. 즉 씨앗이 파종되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내리게 되는데, 甲(갑)의 자형하부가 곧 뿌리를 뜻한다. 乙(을)은 싹이 터 어느 정도 자라난 모양을, 丙(병)은 자라나 저마다 꼴의 형태를 갖춘 것을, 丁(정)은 장성하게 자라난 모양을, 戊(무)는 지나치게 웃자라지 못하도록 전지가위를 이용해 잘라주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장성하게 자라(丁) 전지(戊)해 줄 정도가 되면 식물의 성장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용 龍(룡, 용)은 상상의 동물을 그려낸 것으로, 용이 머리(立)와 몸뚱이(月)를 꿈틀거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飛) 모양의 ‘용’을 표현한 것이다. 龍(용)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龍은 비늘을 갖은 동물 중의 우두머리다. 몸체를 숨길 수도 있고 드러낼 수도 있으며, 아주 작게 할 수도 크게 할 수도 있고, 짧게 할 수도 길게 할 수도 있다. 춘분이 되면 하늘로 오르며 추분이 되면 내려와 깊은 연못 속으로 잠긴다. 肉(육)으로 구성되었으며, 자형의 우변은 날아가는 모양(飛)이다. 童(동)의 생략형이 소리요소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이루어진 것으로 ‘임금’이나 ‘뛰어난 인물’에 비유되곤 한다. 龍(용)은 상상의 동물 가운데 하나로 기린ㆍ봉황ㆍ거북과 함께 사령(四靈)의 하나로서 천자에 비유되며, 인도에서는 불법을 수호하는 사천왕의 하나로 생각하고 있다. 용의 모습은 9가지 종류의 동물을 합성한 것으로 얼굴은 낙타, 뿔은 사슴, 눈은 귀신, 몸통은 뱀, 머리털은 사자, 비늘은 물고기, 발은 매, 귀는 소와 닮은 모양이다.
魚變成龍이란 물고기가 변하여 용이 된다는 뜻으로, 평범했던 사람이 자기성찰을 통한 각고의 노력 끝에 자신의 꿈을 이룬다는 비유적인 표현이다. 사찰에 가면 종각에 범종, 법고, 목어가 걸려 있는데, 대부분 목어는 잉어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머리는 용의 형상을 하고 여의주를 물고 있는 모습으로 제작된다. 이는 곧 불철주야 수행을 하여 불교 최고의 경지인 해탈성불(解脫成佛)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사람의 마음은 갈대와 같다’고 했던가! 그래선지 어떤 대상에 대한 애정을 갖느냐 아니면 증오심을 갖느냐에 따라 그 대함은 전혀 딴판이 될 수 있다. 흔들리지 않는 부동심을 갖기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남을 餘(여)의 구성은 밥 식(食)과 나 여(余)로 짜여있다.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는데,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에 담아 뚜껑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余(여)는 나무(木)로 지붕(亼)을 인 작은 집을 의미하는 상형글자인데, 홀로 들어가 있으니 여유롭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 ‘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남다’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餘(여)의 전체적인 의미는 음식(食)을 먹고도 남아(余)돈다는 데서 ‘남다’ ‘넉넉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복숭아나무 桃(도)는 나무 목(木)과 조짐 조(兆)로 구성되었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兆(조)는 고대 사람들이 길흉(吉凶)을 알아보기 위해 거북이를 불에 구워 배딱지나 등딱지의 갈라진 줄무늬 잔금을 보았던 것에서 유래한 상형글자다. 그 갈라진 금을 보고서 어떤 일의 ‘조짐’을 파악하였고, 또한 그 갈라진 잔금이 아주 많아 ‘많다’는 뜻으로 활용되었다. 따라서 桃(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열매의 씨앗에 많은(兆) 잔주름이 난 나무(木), 혹은 아주 많은(兆) 열매를 매단 나무(木), 바로 복숭아나무로 해석할 수 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허물 罪(죄)의 구성은 그물 망(罒)과 아닐 비(非)로 이루어졌다. 罒(망)의 본디글자는 물고기나 새를 잡기위해 만든 그물을 상형한 网(망)인데, 쓰기 편하게 축약한 것이다. 非(비)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非는 어긋난다는 뜻이다. 飛(비)의 자형하부의 날개 모양으로 구성되었으며, 날개가 서로 대칭으로 등진 것을 취하였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는, 양 날개를 펼친 모양의 非(비)가 ‘아니다’는 부정의 뜻으로 쓰이자 새가 나는 모양을 보다 구체적으로 묘사해 飛(비)를 만들었으며, 또한 양 날개의 모양을 깃 우(羽)를 별도로 만들었다. 따라서 罪(죄)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릇된 행위(非)를 한 사람을 그물을 쳐(网) 잡아들인다는 데서 ‘죄’ ‘허물’이란 뜻을 부여했다. 이 글자는 후대에 진시황제가 만들어 낸 글자다. 본래 글자는 허물 辠(죄)자였는데, 자신을 지칭한 황제(皇帝)의 임금 황(皇)과 비슷하다는 이유로 황명을 내려 쓰지 못하게 하였다. 즉 辠(죄)는 코의 모양을 상형한 스스로 자(自)와 얼굴에 문신을 뜨는 고문도구의 일종인 쇠꼬챙이를 본뜬 매울 신(辛)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는 죄를 지은 사람의 코(自)를 베거나 얼굴에 쇠꼬챙이(辛)이로 문신을 새기는 묵형(墨刑)을 가한다는 데서 ‘죄’를 뜻하였다.
餘桃之罪란 먹다 남은 복숭아를 준 죄라는 뜻으로, 같은 행동이라도 총애를 받을 때와 미움을 받을 때 각기 다르게 받아들여짐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세난편說難篇」에서 유래하였다. 위(衛)나라에 왕의 총애를 받는 미자하(彌子瑕)라는 미소년이 있었는데, 어느 날 모친의 병을 이유로 왕의 수레를 훔쳐 타거나 먹다 남은 복숭아를 왕에게 주어도 칭찬이 자자했지만 사랑이 식자 하찮은 일로도 왕은 옛일을 들먹이며 꾸짖었다는 것. 같은 일일지라도 애증에 따라 결과는 달라진다. 멀리 보지 않아도 여러 자녀를 키워 본 사람은 안다. 한결같은 마음을 갖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온 나라 백성들이 고복격양(鼓腹擊壤)하는 날이 올까! 예나지금이나 한 나라를 이끄는 통치자로 인해 백성들의 행불행이 좌우되는 경우가 많다. 진정 자신에 앞서 백성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통치자의 출현은 언제나 가능할 수 있을까!
줄 與(여)의 구성은 마주 들 여(舁)와 짚이나 끈 등으로 꼬아 만든 새끼줄을 본뜬 여(与)로 이루어졌다. 舁(여)는 네 손을 사용하여 무언가를 함께 들어 올리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자형상부의 두 손으로 무언가를 들어 올리는 모양은 본래는 절구를 뜻하는 臼(구)가 아니라 밑변이 떨어져 있는 국(⺽)이었는데, 많은 자형에서 혼용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전에서 찾을 때도 臼(구)부수에서 찾아야 할 만큼 원래의 뜻이 무시되고 있다. 자형의 하부는 두 손으로 뭔가를 받들어 올린다는 ‘두 손으로 받들 공(廾)’이다. 그래서 舁(여)의 의미는 두 사람이 양손(⺽ + 廾)을 사용하여 어떤 물건을 마주 들고 있는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與(여)의 전체적인 의미는 여러 사람이 양 손(舁)을 이용하여 부족의 결속을 다지기 위해 함께 꼬아 만든 동아줄(与)을 들어 올린다는 데서 ‘더불다’ ‘참여하다’ ‘함께하다’의 뜻이 생겨났으며, ‘주다’의 뜻은 확장된 것이다.
백성 民(민)은 뾰족한 바늘과 같은 꼬챙이로 한쪽 눈을 찔린 ‘노예’나 ‘죄수’를 뜻하는 상형글자인데, 후대로 오면서 이들의 자손들이 불어나 부족의 일원이 되면서 ‘백성’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고대에는 주로 죄수나 포로를 지칭하는 글자였다. 즉 지배계층이 아닌 노예와 같은 하층의 사람을 뜻했다. 그러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일반적인 사람 모두, 즉 평민을 뜻하게 되었다.
한 가지 同(동)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이지만 통일된 해석이 없다. 인문적인 접근을 한다면 대나무와 같이 속이 텅 비었음을 나타낼 뿐만 아니라 마디마디를 절단해도 거의 한결같은 크기라는 뜻이 내포되었다고도 볼 수 있고, 또한 한 무리(冖)의 사람들이 모두 한(一) 목소리(口)를 낸다고도 보아 ‘한 가지’ ‘함께’ ‘다같이’ 등의 뜻이 발생했다고 볼 수 있다.
즐길 樂(락)은 상형글자로 현악기와 타악기를 그려내고 있다. 즉 줄이나 실을 의미하는 두 개의 작을 요(幺)는 거문고 해금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를, 가운데 흰 백(白)은 북과 같은 타악기를 본 뜬 것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木)를 받침으로 한 현악기(幺)와 타악기(白)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래서 ‘풍류’를 뜻하기도 하고 ‘좋아한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與民同樂이란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한다는 뜻으로, 백성과 동고동락하는 통치자의 자세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맹자孟子』「양혜왕장구梁惠王章句」하편에서 유래하였다. 맹자가 양혜왕에게 왕이 백성들에게 고통만 주고 자신만 즐긴다면 반발하겠지만 즐거움을 함께 한다면 백성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 왕은 질병이 없으신가 보다. 어찌 저리 사냥도 잘하실까!’ 한다면 이는 다른 게 아니라 왕이 백성과 더불어 즐거움을 함께 하기 때문이다(吾王庶幾無疾病與. 何以能田獵也. 此無他, 與民同樂也.)”라는 내용이다. 백성들과 즐거움을 함께 하는 통치자의 지도력이 필요한 때이다.
한 사람의 능력을 판단하기란 쉽지 않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신언서판(身言書判)을 기준으로 삼아 그에 걸 맞는 인물을 으뜸으로 여겼다. 모두가 꾸준한 자기 연마를 통해 갖출 수 있는 요건이기도 하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말씀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言(언)에 대해 『說文』에서는 “직접 말하는 것을 言(언)이라 라고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것을 語(어)라고 한다. 口(구)로 구성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辛의 하부에서 一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즉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口)을 통해 찌르듯이(辛)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글 書(서)의 구성은 붓 율(聿)과 가로 왈(曰)로 짜여 있다. 聿(율)은 붓 대(丨)를 손으로 잡고(彐)있는 모양과 함께 동물의 가는 털을 모아 만든 붓(二)의 형태를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다.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따라서 書(서)의 전체적인 의미는 성인(聖人)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말씀(曰)하신 것을 붓(聿)으로 기록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듯 훌륭한 책을 경전(經典)이라 하여 받들어 왔다는 데서 ‘글’ ‘책’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판단할 判(판)의 구성은 반 반(半)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半(반)은 ‘나누다’라는 뜻을 지닌 여덟 팔(八)과 소 우(牛)의 생략형으로 짜여 있다. 즉 소(牛)는 그 몸집이 너무나 커서 식용으로 할 때는 척추를 중심으로 절반으로 나누지(八) 않으면 운반이나 관리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요즘에도 도살장에서는 소를 절반(半)으로 나누어 정육한다. 刂(도)는 ‘칼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에만 칼날이 선 주방용 칼과 같은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따라서 判(판)의 전체적인 의미는 소를 대칭되게 절반(半)으로 자르듯이(刂)이 어떠한 사물을 나누어 본다는 데서 ‘쪼개다’ ‘나누다’의 뜻뿐만 아니라 ‘판단하다’의 의미도 지니게 되었다.
身言書判이란 당나라 때 관리를 뽑는 네 가지 기준으로 신(身)은 그 사람의 풍채와 용모(體貌), 언(言)은 그 사람의 언변(言辯)을, 서(書)는 그 사람의 필적(筆跡)을, 판(判)은 문리(文理)를 통해 사물을 분별하는 판단력이 요구되었다. 이러한 조건을 갖춘 사람을 등용의 조건으로 삼았다. 오늘날에도 각각의 조직에서 인재를 뽑는 기준에서 크게 벗어나지는 않는 것 같다.
예나지금이나 유능한 인재를 얻은 자가 성공할 수 있음은 역사 곳곳에 기록되어 있다. 즉 인재경영이 조직의 성패를 가르는 관건이라는 것. 대한민국이 한류바람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동력은 바로 축적된 문화적 역량과 인재교육에 힘쓴 결과일 것이다.
석 三(삼)은 옆으로 세 개의 선을 그은 모양으로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이기도 하지만, ‘거듭’ ‘자주’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 三(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三은 하늘ㆍ땅ㆍ사람의 도(道)를 뜻하며, 자형에서 보듯 一과 二가 짝을 이루어 三이 되었으니 완전수인 성수(成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동양학에서는 천지인을 뜻하면서도 사물을 이루는 기본수로 인식, 천지인뿐만 아니라 삼태극(三太極)에서 보여주듯 삼원사상(三元思想)을 확립하게 되었다.
돌아볼 顧(고)의 구성은 품 팔 고(雇)와 머리 혈(頁)로 이루어졌다. 雇(고)는 사람이 거주하는 방으로 통하는 외짝 문을 상형한 지게 戶(호)와 새 추(隹)로 이루어졌는데,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가금류와 같은 새(隹)를 외짝 문이 달린 우리(戶)에서 기르기 위해서는 사람이 품이 필요하다는데 ‘품을 팔다’ ‘품을 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되어 있다. 따라서 顧(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새장 속에 기르는 새를 기르기 위해 품을 팔며(雇) 얼굴(頁)을 디밀고 보살핀다는 데서 ‘돌아보다’ ‘관찰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풀 草(초)는 풀 초(艸)의 약자인 초(艹)와 새벽 조(早)로 구성되었다. 艸(초)에 대해 허신은 “艸는 모든 풀을 의미하며 두 개의 屮(초목의 싹)로 짜여 있다”라고 하였다. 나아가 屮(풀 철)이 세 개인 것은 보다 간소하게 ‘풀 훼(卉)’로 하였고, 屮이 네 개인 것은 ‘잡풀 우거질 망(茻)’으로 하였는데, 대부분의 자형에서 글자의 상부에 놓일 때는 艹(초)로 약칭되었고 하부에 놓일 때는 十(십)자나 大(대)자로 더욱 간략화 되어 쓰이고 있다. 早(조)는 태양을 본뜬 해 일(日)과 열 십(十)으로 구성되었는데, 자형하부의 十(십)을 해가 뜬 높이를 가늠하여 시간을 알 수 있는 ‘측량 막대’로 해석한다. 그러나 아침 朝(조)를 보면 해(日)를 중심으로 상하에 풀 초(艹)의 생략형으로 십(十)을 배치하고 달(月)을 첨가하여 ‘아직 해는 수풀 속에 잠겨있고 달은 서녘하늘가에 걸려 있는 새벽’을 뜻 한데서 볼 수 있듯, 早(조)는 이제 막 수풀(十)속을 벗어나 떠오르는 해(日)의 운행 시점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草(초)의 전체적인 의미는 수풀 위로 솟아오르는 이른 아침의 태양(早) 빛에 더욱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풀(艹)이란 데서 그 뜻을 강조하고 있다.
오두막집 廬(려)의 구성은 사방을 벽으로 감싼 집(宀)과는 달리 한쪽 벽만을 쌓아 올린 개방형 건물을 뜻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창고나 관청 같은 건물의 용도를 뜻하는 집 엄(广)과 밥그릇 로(盧)로 이루어졌다. 현재 밥그릇으로 쓰이고 있는 盧(로)의 본래 의미는 화로였다. 盧(로)의 구성을 보면 호피무늬 호(虍)와 밭 전(田), 그리고 그릇 명(皿)으로 짜여 있는데, 요즘처럼 집과 온돌이 없던 옛날에는 주로 동굴에 살며 차가운 벽면에 호랑이 가죽(虍)으로 치장하고 가운데 큰 그릇(皿)에 모닥불(田)을 피워 추위를 이겼다. 본래는 盧(로)가 화로를 뜻하였지만 보다 확실하게 불 화(火)를 더해 ‘화로 로(爐)’로 그 의미를 확실하게 나타냈다. 따라서 廬(려)의 전체적인 의미는 잠시 머물기 위해 대충 지붕을 인 집(广)에 밥을 짓거나 추위를 이기기 위해 화로(盧)를 들여놓은 집이라는 데서 ‘농막’ ‘오두막집’을 뜻하게 되었다.
三顧草廬란 유비가 남양(南陽)에 은거하고 있던 제갈량의 초옥을 세 번이나 찾아갔다는 데서 유래한 것으로, 유능한 인재를 얻기 위해서 자신의 지위에 상관없이 참을성 있는 노력이 필요함을 표현한 성어다.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제갈량전諸葛亮傳」의 출사표(出師表)에서 유래하였다. 의형제를 맺은 장비와 관우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자신을 찾은 유비에게 제갈량은 출사표에서 “선제(유비)께서 소신을 천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외람되게도 몸을 낮추시어 세 번이나 소신의 초막을 찾아오셔서 당면한 세상사를 물으시니, 이로 말미암아 감격하여 마침내 선제를 모실 결심을 하였습니다(先帝不以臣卑鄙,猥自枉屈,三顧臣於草廬之中,諮臣以當世之事,由是感激, 遂許先帝以驅馳)”라고 감회를 밝히고 있다.
세상에는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난형난제(難兄難弟), 춘란추국(春蘭秋菊)과 같은 형세가 수없이 많다. 이러한 형세 속에서 서로의 기량이 늘고 실력이 배양된다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 서로의 기량을 점검할 수 있는 맞수가 있다는 것, 행복한 일이다.
맏 伯(백, 패)의 구성은 사람 인(亻)과 흰 백(白)으로 이루어졌다. 亻(인)은 서 있는 사람을 옆에서 본 모양을 본뜬 人(인)의 변형자이며, 다른 부수의 좌변에 주로 놓인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 이르러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어 희다는 뜻을 가진 白(백)과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희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어서인지 ‘아뢰다’는 뜻도 있다. 이에 따라 伯(백)의 의미는 형제를 대표하여 윗사람에게 아뢰는(白) 사람(亻)이란 데서 ‘맏아들’뿐만 아니라 ‘우두머리(패)’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형제 중에서 엄지손가락(白)에 해당하는 사람(亻)이나 ‘맏’이나 ‘우두머리’의 뜻을 지닌 것으로도 유추할 수 있다.
버금 仲(중)은 사람의 서있는 모양을 상형한 인(亻)과 가운데 중(中)으로 구성되었다. 中(중)은 간단한 자형임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갑골문에 새겨진 모양은 어떠한 공간을 나타낸 ‘口’모양에 긴 장대(丨)를 세워둔 모양인데, 장대의 상부에는 두세 가닥의 깃발도 함께 그려져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보다 간략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가운데 쓰인 ‘口’모양에 대해 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설,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한 판이라는 설, 장대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기위해 달아 놓은 나무틀이라는 설, 해의 변형으로 정오를 뜻한다는 설 등이다. 필자가 보기에 갑골문과 금문을 참조할 때, 마을(口)의 중앙광장에 부족의 상징인 깃발을 단 장대(丨)를 세웠다는 데서 ‘중앙’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仲(중)의 의미는 형제들 중에서 가운데(中)인 사람(亻)이란 데서 첫째가 아닌 ‘버금’ ‘다음’ ‘가운데’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는데, 보통 둘째 아들을 뜻한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주로 ‘가, 이’ ‘--의’와 같은 어조사로 쓰인다.
기세 勢(세)의 구성은 심을 예(埶)와 농기구를 상형한 힘 력(力)으로 이루어졌다. 埶(예)는 언덕 坴(육)과 둥글 丸(환)으로 구성되었다. 坴(륙)은 버섯 록(圥)과 흙 토(土)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는 버섯(圥)이 솟아 오른 것처럼 땅(土)이 돋아 오른 ‘언덕’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여기서 丸(환)은 묘목을 잡고 있는 사람의 손이 변한 것이다. 즉 나무를 손으로 잡고(丸) 흙을 돋우어(坴)심는 모습을 담고 있다. 또한 변화된 자형 역시 나무를 심을 때는 묘목을 중심으로 흙을 둥글게(丸) 언덕(坴)처럼 북돋아 주어야 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勢(세)의 전체적인 의미는 흙을 돋우어 정성스럽게 심은 나무(埶)가 힘차게(力) 자라나는 모습에서 ‘기세’ ‘형세’라는 뜻을 취했다.
伯仲之勢란 형제인 장남과 차남의 차이처럼 우열을 가리기가 어려운 형세, 비유적으로 인물이나 기량 지식 등이 서로 비슷해 우열을 가릴 수가 없다는 뜻으로 쓰인다. 위(魏)나라를 세운 황제 조비(曹丕)의 『전론典論』에서 유래하였다. 즉 “문인들이 서로를 경시하는 풍조는 예부터 그러하였다. 그러나 부의와 반고의 문장실력은 우열을 가릴 수 없는 백중지간이었다(文人相輕 自古而然 傅儀之於班固 伯仲之間耳)”고 한 기록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간에서는 백중지세(伯仲之勢)가 보다 널리 활용되고 있다.
인간의 삶은 태어난 순간부터 죽을 때까지 배움의 연속이어야 한다. 학교는 다만 기본적인 지식을 배울 뿐이며, 온전한 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전인교육(全人敎育)이 지향하는 것처럼 끊임없는 깨우침이 필요하다.
읽을 讀(독)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팔 매(賣)로 이루어졌다.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賣(매)는 선비 사(士)와 살 매(買)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사(士)자는 본디 날 출(出)이 변화된 것이다. 買(매)는 그물 망(罒)과 조개 패(貝)로 짜여 있다. 罒(망)의 본디글자는 网(망)인데, 쓰기 편하게 축약한 것으로 그 의미는 장사하는 사람은 돈(貝)이 될 만한 물건이라면 투망을 던지듯 망(网)을 쳐서 ‘사들인다’는 행위를 그리고 있다. 또한 반대의미를 지닌 賣(매)는 미리 사들였던 돈 될 만한 물건(買)을 이제는 적당한 이문을 붙여 내다파는(出) 행위를 그려내 ‘팔다’는 뜻을 부여했다. 따라서 讀(독)의 전체적인 의미는 상인이 손님에게 물건을 팔기(賣)위하여 외쳐대듯 소리(言)를 내어 책을 ‘읽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글 書(서)의 구성은 붓 율(聿)과 가로 왈(曰)로 짜여 있다. 聿(율)은 붓 대(丨)를 손으로 잡고(彐)있는 모양과 함께 동물의 가는 털을 모아 만든 붓(二)의 형태를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다.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따라서 書(서)의 전체적인 의미는 성인(聖人)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말씀(曰)하신 것을 붓(聿)으로 기록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듯 훌륭한 책을 경전(經典)이라 하여 받들어 왔다는 데서 ‘글’ ‘책’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석 三(삼)은 옆으로 세 개의 선을 그은 모양으로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이기도 하지만, ‘거듭’ ‘자주’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 三(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三은 하늘ㆍ땅ㆍ사람의 도(道)를 뜻하며, 자형에서 보듯 一과 二가 짝을 이루어 三이 되었으니 완전수인 성수(成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동양학에서는 천지인을 뜻하면서도 사물을 이루는 기본수로 인식, 천지인뿐만 아니라 삼태극(三太極)에서 보여주듯 삼원사상(三元思想)을 확립하게 되었다.
남을 餘(여)의 구성은 밥 식(食)과 나 여(余)로 짜여있다.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는데,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에 담아 뚜껑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余(여)는 나무(木)로 지붕(亼)을 인 작은 집을 의미하는 상형글자인데, 홀로 들어가 있으니 여유롭기도 하였을 것이다. 그래 ‘나’를 의미하기도 하고 ‘남다’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餘(여)의 전체적인 의미는 음식(食)을 먹고도 남아(余)돈다는 데서 ‘남다’ ‘넉넉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讀書三餘란 책을 읽기에 적당한 세 가지 여가, 즉 겨울과 밤 그리고 비가 내리는 때를 말한다. 『삼국지三國志』「위지魏志」에 전한다. 후한 말기에 동우(蕫遇)라는 뛰어난 학자가 있었는데, 가르침을 받기 위해 많은 젊은이들이 찾아오면 “책을 백번이고 두루 읽게 되면 그 뜻이 절로 드러나게 되어있다(讀書百遍而義自見)”고 하였고, 그러할 시간이 없다고 하면 “한 해의 끝인 겨울, 하루의 끝인 밤, 그리고 비가 오는 때가 있잖은가(冬者歲之餘, 夜者日之餘, 陰雨者時之餘也)”하면서 독서를 권유하였다. 시간 없다는 말은 빈말이다. 하루 중 허투루 보내는 시간이 얼마나 많은가는 되돌아보면 스스로가 잘 알 것이다.
천리 길도 한걸음부터라는 속담이 있듯,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다. 일의 순서를 무시하고 했을 경우 반드시 탈이 나게 되어 있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급할수록 돌아가라 했다.
오를 登(등)은 등질 발(癶)과 제기그릇 두(豆)로 구성되었다. 癶(발)은 활을 쏘거나 총을 쏠 때 양 발을 엇비슷하게 등져놓은 자세나 산을 오를 때처럼 양 발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豆(두)는 뚜껑(-)을 덮어 따뜻한 국물을 담을 수 있는 발(ㅛ)이 달린 비교적 작은 그릇(口)을 본뜬 것으로 일반적으로 제기(祭器)를 의미한다. ‘콩’이란 의미는 콩이나 팥을 뜻하는 ‘좀콩 荅(답)’과 발음이 비슷한데서 가차하여 쓴 것이며, 보다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해 식물을 뜻하는 풀 초(艹)를 더해 ‘콩 荳(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이에 따라 登(등)은 제사를 지내기 위해 제사용 그릇(豆)을 들고서 높은 제단에 오른다(癶)는 데서 ‘오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높을 高(고)는 성(城)의 망루를 본뜬 상형글자다. 즉 高(고)자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출입구(口)를 갖춘 성곽(冂)위에 높이 지어진 망루(자형상부의 亠+口)를 상형한 것으로 높이 치솟은 모양에서 ‘높다’ ‘뽐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비싸다’ ‘뛰어나다’ 등은 파생된 뜻이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쓴다.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다.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짜여 있는데, 코(自)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自’의 현재 의미는 ‘--로부터’ 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낮을 卑(비)의 구성은 귀신의 모습을 상상하여 만든 탈을 쓴 모양을 그려낸 귀신머리 불(甶)과 손을 뜻하는 又(우)의 변형인 ‘十’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옛날 묘제(墓祭)를 지낼 때는 망자(亡者), 즉 이미 죽은 사람의 모양을 그린 허수아비와 같은 의장(儀仗)을 묘에 옆에 안치하고서 거행했다. 이때 그 의장(甶)을 손으로 들고(又⟶十) 있는 사람은 신분이 낮은 사람이 했기 때문에 ‘낮다’ ‘천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登高自卑란 높은 곳에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부터 올라야 한다는 뜻으로, 모든 일은 순서를 지켜 행해야 함을 이르는 말이다. 『중용中庸』제15장에서 유래했다. 즉 “군자의 도는 비유하자면 먼 길을 가기위해서는 반드시 가까운 곳에서부터 출발해야 하고, 또 비유하자면 높은 곳을 오르려면 반드시 낮은 곳으로부터 시작해야 하는 것과 같다(君子之道,辟如行遠必自邇,辟如登高必自卑)”고 하였다.
적토성산(積土成山)이라 했다. 한 줌의 흙이 모이고 모여 산이 된다는 말이다. 그러니 반대로 아무리 큰 산이라 할지라도 한 삼태기 두 삼태기 씩 덜어내다 보면 산을 옮길 수도 있다. 한 가지 일에 매진하다보면 언젠가는 이루어낼 수 있는 게 인간사 아니겠는가!
어리석을 愚(우)의 구성은 긴 꼬리 원숭이 우(禺)와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禺(우)는 긴 꼬리를 갖은 원숭이나 나무늘보가 앉아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자형의 래원은 다르지만 비슷한 글자로 전갈의 모양을 상형한 ‘일만 萬(만)’자 있는데, 사나운 전갈의 집게발(자형상부의 艹모양)을 떼어버리면 전갈 특유의 전투력을 상실해 ‘어리석다’는 뜻으로 이해해도 괜찮을 것 같다. 心(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愚(우)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에 비해 사고력이나 마음작용(心)이 떨어진 원숭이(禺)에 빗대서 ‘어리석다’ ‘고지식하다’는 뜻을 부여하였다.
공변될 公(공)은 ‘나누다’ ‘가르다’가 본뜻인 八(팔)과 사사로울 사(厶)로 되어있지만 갑골문에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입 구(口)로 새겨져 있어 본뜻은 ‘입가에 진 주름살’을 그려낸 것이었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인문적인 해석이 더해져 사람의 수(口)대로 뭔가를 나누니(八) ‘공변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옮길 移(이)의 구성은 벼 화(禾)와 많을 다(多)로 짜여 있다. 禾(화)는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곡식의 이삭이 익어 수그러진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즉 볏대(木)에서 이삭이 영글어 드리워진(丿) 모양을 본뜬 것으로, 벼는 곡식 중에서도 대표성을 갖기 때문에 곡식의 총칭으로 쓰인다. 多(다)에 대해서 『說文』에서는 “多는 포개어졌다는 뜻이다. 夕(석)이 포개어진 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저녁이란 어둠이 계속 이어져 있기 때문에 多(다)라 한다. 夕(석)이 포개어지면 多(다)가 되고, (일)이 포개어지면 疊(첩)이 된다.”라고 하였다. 대부분 허신의 설명에 따라 어젯밤(夕)과 오늘 및 내일 밤(夕)이 거듭되어 날짜 ‘많아진다’고 해석한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고기육(肉)의 모양이 ‘夕’과 비슷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多(다)자 역시 두 개의 고깃덩어리(夕)가 쌓여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이에 따라 ‘많다’라는 뜻이 생겨 낳다. 따라서 移(이)의 전체적인 의미는 못자리의 많은(多) 볏모(禾)를 써레질한 논에 옮겨 심는다는 데서 ‘옮기다’ ‘모내기 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뫼 山(산)은 세 개의 산봉우리를 본뜬 상형글자로 산봉우리들이 길게 늘어선 ‘산’을 뜻하게 되었다. 한자에서 셋일 때는 단지 새 개만을 뜻하는 게 아니라 많은 수를 함축하여 줄인 경우가 많다.
愚公移山이란 우공이라는 사람이 산을 옮긴다는 뜻으로, 남이 보기에는 어리석은 일처럼 보일지라도 한 가지 일을 꾸준하게 하다보면 언젠가는 목적을 달성할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열자列子』「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이야기로, 옛날 나이 90세나 되는 우공이란 사람이 북산에 살고 있었는데 두 개의 큰 산에 막혀 불편했다. 그래서 자식들을 불러놓고 부인의 반대를 무릅쓰면서도 옮기기로 하였다. 이것을 본 친구가 비웃으며 만류하자 “나는 늙어 죽음을 앞두고 있지만 나에게는 자식이 있다. 아들이 또 손자를 낳고 그 손자는 또 자식을 낳아 자자손손 한없이 대를 잇겠지만, 산은 더 불어나는 일이 없잖은가. 그러니 언젠가는 평평하게 될 날이 오지 않겠는가?(雖我之死, 有子存焉, 子又生孫, 孫又生子, 子又有子, 子又有孫, 子子孫孫, 無窮匱也, 而山不加增, 何苦而不平)”라고 하였다. 결국에는 하늘도 탄복하여 두 산을 옮겨주었다는 이야기다.
인생의 향방을 잡는 키를 함축적으로 나타낸 것이 곧 좌우명이다. 한 집안의 삶의 목표를 나타내는 가훈과 더불어 자신의 목표를 드러낼 수 있는 좌우명, 늘 가슴에 새겨둠으로써 삶의 활력을 얻을 수 있다.
자리 座(좌)의 구성은 집 엄(广)과 앉을 좌(坐)로 짜여있다. 집 면(宀)이 사방을 벽으로 막은 사람이 기거하는 집이라면, 집 엄(广)은 우마차 등을 보관하는 창고나 공연장과 같이 무대를 향해 한 쪽 벽면이 개방된 건축물을 말한다. 坐는 흙(土)을 의자처럼 깎아 내리고 두 사람(从)이 마주 앉은 모습을 그려낸 회의글자이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공연장과 같은 개방형건물(广)안에 마련된 앉을 자리(坐)라는 데서 ‘자리’ ‘방석’이란 뜻과 함께 ‘지위’라는 의미로도 확장되었다.
오른 右(우)는 오른손을 뜻하는 又(우)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자신이 아닌 남을 도울 때는 주로 오른손(又)을 사용하면서 입(口)도 거들게 되는 것처럼 ‘돕다’가 본뜻이었는데, ‘오른손’이라는 의미로 쓰이자 사람 인(亻)을 더해 ‘도울 佑(우)’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새길 銘(명)의 구성은 쇠 금(金)과 이름 명(名)으로 이루어졌다. 金(금)은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이다. 금(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 청동기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名(명)의 구성은 저녁 석(夕)과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짜여 있다. 夕(석)은 달의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로 해질녘 동쪽 산위로 떠오르는 모양을 그렸다. 고대에는 夕(석)이 해질녘과 밤을 의미하였지만 후대에 보다 구체적으로 밤을 의미하는 밤 야(夜)를 제작하였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깜깜한 밤(夕)에는 그 사물이나 사람의 구체적인 특징을 입(口)으로 말하여야 구분할 수 있었다는 데서 ‘이름’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銘(명)의 전체적인 의미는 청동(金)으로 솥이나 종 등을 주조할 때는 경구와 함께 주조하는 사람의 이름(名)을 새겨 넣는다는 데서 ‘새기다’ ‘금석에 새긴 글자’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座右銘이란 자리 옆에 자신의 삶에 도움이 될 만한 경구나 글귀를 써 붙이고서 늘 되새겨 봄을 이르는 말이다. 자신의 좌우명을 정할 때는 함축적인 의미를 나타낼 수 있는 한자로 된 성어가 좋은데, 특히 아호를 지을 때 유용하다. 인생의 목표가 함축된 것이라면 더욱 좋다. 좌우명을 가슴 깊이 되새길 때마다 그 바람대로 이루어지기 때문이다.
심신이 지쳤을 때 예나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이 찾는 곳이 있다. 바로 대자연의 넉넉한 품이다. 자연의 품은 선악을 가리지 않고 오고감을 탓하지 않는다. 사시사철 천의무봉으로 갈아입고 늘 그 자리에 서있으니 누군들 싫어하랴.
샘 泉(천)은 산기슭이나 평지에 형성된 옹달샘을 상형한 글자이다. 위 백(白)자는 물이 솟아오르는 옹달샘을 그려낸 것이며, 하부의 물 수(水)는 샘을 넘쳐흐르는 물줄기를 뜻하고 있다. 즉 평지나 산기슭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옹달샘에서 물이 넘쳐흐르는 전체적인 모습을 본뜬 것이다.
돌 石(석)의 구성은 산기슭 엄(厂)과 돌덩이를 뜻하는 口(구)모양으로 이루어졌다. 즉 언덕이나 산기슭(厂) 아래에 굴러다니는 돌덩이(口)의 모양을 본떠 ‘돌’을 그려냈다.
살찔 膏(고)의 구성은 높을 고(高)와 육달월(月=肉)로 이루어졌다. 高(고)는 성(城)의 망루를 본뜬 상형글자다. 즉 高(고)자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출입구(口)를 갖춘 성곽(冂)위에 높이 지어진 망루(자형상부의 亠+口)를 상형한 것으로 높이 치솟은 모양에서 ‘높다’ ‘뽐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비싸다’ ‘뛰어나다’ 등은 파생된 뜻이다. 肉(육)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데, 일반적으로 짐승의 사체에서 잘라낸 살코기를 뜻하며 肉(육)자가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동일한 뜻을 지닌 月(육달월)로 줄여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膏(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나 동물의 살(月=肉)이 토실토실 윤기나 뽐낼(高)정도 올랐다는데서 ‘살찌다’ ‘기름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명치끝 肓(황)의 구성은 망할 망(亡)과 살코기를 뜻하는 육달월(月=肉)로 이루어졌다.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더불어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肓(황)의 전체적인 의미는 인체의 급소인 명치부위(月=肉)를 치면 죽을(亡) 수도 있다는 데서 명치뼈의 아래에 위치한 ‘명치끝’을 나타내며, 고대의 의사들은 약효가 그곳까지는 미치지 못하는 곳으로 여기기도 했다.
泉石膏肓이란 자연을 상징하는 샘과 돌이 고황에 들었다는 뜻으로, 자연을 벗하고자 하는 마음이 고질병처럼 나을 수 없이 깊어졌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여기서 고황(膏肓)은 심장과 횡격막부위로 옛날에는 병이 여기까지 이르면 고칠 수 없는 고질병으로 여겼다. 『당서唐書』「은일전隱逸傳」에 기록되어 있다. 당나라 고종 때, 명망이 높은 전유암(田游巖)이라는 은사가 있었는데 조정에서 여러 차례 불렀으나 응하지 않았다. 후에 고종이 숭산에 행차하였다가 그를 찾아 안부를 묻자 전유암은 “신은 샘과 돌이 고황에 든 것처럼, 자연을 벗하는 것이 고질병처럼 되었습니다(臣所謂泉石膏肓, 煙霞痼疾者)”라고 하였다는 것. 예나지금이나 심신이 지치면 대자연의 품으로 돌아가고자 한다. 전원생활을 꿈꾸는 자, 가능하다면 빠를수록 좋다고 한다.
세상 사람들은 모두가 아는데 아무도 모를 거라는 자신만의 얕은꾀에 빠져든 어리석은 사람들이 있다. 이는 곧 남의 말을 경청하지 않고 자신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독선적이고 고집불통인 사람들의 전형이다.
가릴 掩(엄)의 구성은 손 수(扌)와 가릴 엄(奄)으로 이루어졌다. 扌(수)는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약자로 쓰기 편하게 한 획을 줄인 것이다. 奄(엄)은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을 상형한 큰 대(大)와 번개 전(电)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电(전)은 申(신)의 변형이다. 申(신)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자형으로 ‘번갯불’이 땅을 향해 퍼져나가는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펴다’ ‘늘이다’는 뜻을 지녔다. 이에 따라 奄(엄)은 남자(大)의 생식기인 고환을 도려내는 고통을 번갯불(电)로 그려낸 데서 ‘환관’ ‘고자’가 본뜻이며, ‘가리다’ ‘덮다’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여기에 뭔가를 가리는 모양의 손(扌)을 더해 ‘가리다’ ‘덮다’는 뜻을 강조한 掩(엄)을 만들었다.
귀 耳(이)는 사람의 귀를 본뜬 상형글자다. 耳(이)에 대해 『說文』에서는 “耳는 듣는 것을 주관하는 기관을 말한다. 상형글자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이나 금문에서도 현재의 자형과는 다르지만 사람 귀의 모양을 그리고 있다.
훔칠 盜(도)의 구성은 침 연(㳄)과 그릇 명(皿)으로 짜여 있다. 㳄(연, 선)에 대해서 허신은 『說文』에서 “㳄은 뭔가를 원하고 바랄 때 입에 고이는 액체이다. 欠(흠)과 水(수)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사람의 입에서 침이 튀어나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다른 부수에 더해져 주로 부러움이나 탐욕 등과 관련 된 뜻을 지닌다. 즉 ‘부러워하다’는 뜻을 지닌 羨(선)이나 다음에 살펴볼 탐이나 물건을 ‘훔치다’는 의미의 盜(도)에서 그 용례를 살펴볼 수 있다. 皿(명)은 밥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새로운 글자를 형성할 때는 대부분 자형의 하부에 놓여 그릇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盜(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릇(皿)에 담긴 음식을 보고서 침을 흘리다(㳄) 몰래 집어 먹는다는 데서 ‘훔치다’는 뜻이 생겨 낳다. 이는 생계형 좀도둑을 말한다.
방울 鈴(령, 영)의 구성은 쇠 금(金)과 이제 하여금 령(令)으로 이루어졌다. 金(금)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고 금문에 보이는데, 잘 살펴보면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리요소인 금(今)의 생략형에다 흙(土)에 덮여 있는 두 덩어리(두 점)의 금을 나타낸 형성글자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금문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금(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 청동기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令(령)은 모일 집(亼)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병부 절(卩)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亼(집)은 높다랗게 팔자지붕으로 지어진 사당이나 공공건물을 의미한다. 즉 한마을의 촌장이나 제사장이 거주하는 높다란 건물(亼)안에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卩)이라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鈴(령)의 전체적인 의미는 한 무리의 우두머리가 명령(令)을 내리듯 쇳소리(金)로써 알린다는 데서 ‘방울’ ‘요령’ ‘종’을 뜻하게 되었다.
掩耳盜鈴이란 자신의 귀를 막고 방울을 훔친다는 뜻으로, 자신이 듣지 않는다고 남도 듣지 않으리라는 어리석은 생각이나 모든 사람이 그 잘못됨을 알고 있는데 얕은꾀를 써서 남을 속이려 함을 이르는 말이다. 『여씨춘추呂氏春秋』「불구론不苟論」에 나오는데 본래는 엄이도종(掩耳盜鐘)이었다. 진(晉)나라 명문가 범씨 집안에는 가보인 큰 종이 있었는데, 집안이 몰락한 틈을 타 한 도둑이 종을 훔치려 하였지만 너무 무거워 힘이 들자 조각을 내려고 망치로 내리쳤다. 그러자 ‘꽝’하는 소리에 다른 사람들이 들을까 겁이나 재빨리 자신의 귀를 막았다는 것이다.
관상과 사주에 능통한 마의도자라는 사람도 사주팔자보다는 관상을, 관상보다는 심상(心象)을 보아야 한다고 했다. 사람의 외양보다는 마음이 보다 중요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번지레하거나 꾀죄죄한 외양만을 보고 그 사람의 인품을 판단하지는 않는가!
버들 楊(양)의 구성은 나무의 전체적인 모양을 본뜬 나무 목(木)과 볕 양(昜)으로 이루어졌다. 昜(양)은 태양을 본뜬 日(일)과 햇볕이 내리 쬐이는 모양(一 + 勿)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둥근 해(日)아래에 T자형의 장대에 깃발(勿)을 달아 세워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햇살에 휘날리는 깃발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楊(양)의 전체적인 의미는 햇살에 휘날리는 깃발(昜)과 같이 가느다란 가지 줄기를 늘어뜨린 나무(木)라는 데서 ‘버드나무’ ‘냇버들’을 뜻하게 되었다.
베 布(포)의 구성은 사람의 두 손 중에서도 왼손을 뜻하는 좌(屮)의 변형과 수건 건(巾)으로 이루어졌다. 巾(건)은 허리에 차고 있는 넓은 천으로 만든 ‘수건’을 본떴다. 옛날 의복에는 오늘날과 같이 호주머니가 없었으므로 노동을 할 때 허리춤에 묶어두고(佩) 흐르는 땀을 닦아내기도 했으며, 오늘날과 같이 바지가 일반화되기 이전에는 남자도 치마형태의 의복을 착용하였다. 말을 타기에 용이한 바지는 유목민들이 주로 착용한 것으로 춘추전국시대 이후에야 남자들에게 일반화 되었다. 이에 따라 布(포)는 넓은 천으로 만든 수건(巾)과 같은 천을 손(屮)으로 펼치고 있는 모양을 그려내 ‘베’ ‘넓게 펼치다’를 뜻하며, 이러한 ‘베’는 공물로 바칠 수 있는 물건이기에 ‘조세’ ‘돈’이란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개 狗(구)의 구성은 개 견(犭)과 글귀 구(句)로 이루어졌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인다. 句(구)는 쌀 포(勹)와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說文』에서는 “勹는 감싼다는 뜻이다. 사람이 허리를 구부린 모양을 본뜬 것이며, 뭔가를 감싸서 안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뭔가를 안은 듯 한 모양을 옆에서 본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이에 따라 句(구)의 의미는 입에서 나온 말(口)을 한 단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문장의 ‘단락’이나 ‘글귀’ ‘구절’을 뜻하기도 하며, 또한 어떠한 물체(口)를 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올가미’ ‘함정’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狗(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가슴에 싸안을(句) 만큼 작은 개(犭)라는 데서 ‘강아지’를 뜻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개의 총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楊布之狗란 양포라는 사람의 개라는 뜻으로, 겉모습이 변한 것을 보고 속마음까지 변해버렸다고 우겨대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설림說林」하편에 기록되어 있다. 그 옛날 “양주(楊朱)의 동생 양포(楊布)가 흰옷을 입고 외출했다가 비를 맞아 흰옷을 벗고 검은 옷으로 갈아입고 귀가했는데, 그 집 개가 알아보지 못하고 마구 짖어댔다. 양포는 화가 나서 개를 때리려 하자 형인 양주가 ‘양포야 때리지 말거라. 너 또한 이놈과 같지 않더냐! 만약에 너희 집 개가 흰털로 나갔다가 검은 털을 하고 돌아온다면 어찌 너라고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느냐?’며 타일렀다(楊朱之弟楊布衣素衣而出.天雨, 解素衣, 衣緇衣而反, 其狗不知而吠之.楊布怒, 將擊之.楊朱曰: ‘子毋擊也, 子亦猶是.者使女狗白而往, 黑而來, 子豈能毋怪哉?’)”는 이야기다. 겉모습이 변했다고 속마음까지 변했다고 속단하지는 않아야겠다.
잠시의 성취감에 도취될 수는 있지만 그러한 도취감에서 헤어나지 못하면 다음을 기약하기 어려운 법이다. 무엇보다도 아랫사람의 충언을 가슴에 새길 수 있어야 군자라 할 수 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일시적인 성취감에 도취하다 자멸하였는가!
좋을 良(양)은 초기자형인 갑골문과는 비교가 어려울 만큼 변화되었다. 본래 良(양)은 본체 좌우의 다른 별체를 오갈 수 있도록 지붕을 인 회랑을 상형한 글자로 눈비가 와도 편리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편안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약 藥(약)의 구성은 풀 초(艹)와 즐길 락(樂)으로 이루어졌다. 艹(초)는 풀 艸(초)의 간략형으로 무성하게 돋아난 풀을 뜻하는데, 두 개의 싹날 屮(철)로 구성되었다. 艹(초)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초목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그리고 ‘즐길 樂(락, 풍류 악, 좋아할 요)’은 상형글자로 현악기와 타악기를 그려낸 것이다. 즉 줄이나 실을 의미하는 두 개의 작을 요(幺)는 거문고 해금 가야금과 같은 현악기를, 가운데 흰 백(白)은 북과 같은 타악기를 본 뜬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나무(木)를 받침으로 한 현악기(幺)와 타악기(白)를 연주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이 담겨 있다. 그래서 풍류를 뜻하기도 하고 좋아한다는 의미로도 쓰였다. 이를 종합하여 볼 때, 藥(약)의 의미는 초목(艹)의 뿌리나 잎으로 만든 것을 먹었을 때 고통이 사라지고 즐거움(樂)을 준다는 데서 ‘약’이나 ‘약초’를 뜻하게 되었다.
쓸 苦(고)의 구성은 풀을 뜻하는 艸(초)의 간략형인 풀 초(艹)와 옛 고(古)로 짜여 있다. 여기서 옛날을 뜻하는 古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여 있는데, 그 의미는 적어도 열(十) 세대(30년)정도 입에서 입(口)으로 전해져 온 시간인 300여년을 말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초목(艹)이 오랜 세월(古)동안 베어진 채 햇볕에 노출되면 오미(五味) 중에서도 쓴맛이 강렬해 진다는 데서 ‘쓰다’는 뜻과 함께 ‘괴롭다’는 의미도 파생하였다.
입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다.
良藥苦口란 좋은 약은 입에 쓰다는 뜻으로, 충성스런 신하의 말은 귀에 거슬림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공자가어孔子家語』에 나온다. 항우(項羽)를 물리치고 한나라를 건국한 유방(劉邦)에 얽힌 이야기다. 진나라 황궁에 입성한 그는 그 화려함에 마음을 빼앗겨 술과 여색에 빠지자 부하인 장량(張良)이 충언을 하며 “충언은 귀에 거슬리나 행실에는 이로움이 되고, 좋은 약은 입에는 쓰나 병에는 이로운 법입니다(忠言逆耳 利於行, 良藥苦口 利於病)”라고 하자 유방은 크게 뉘우쳤다고 한다. 귀를 열고 아랫사람의 말을 귀담아 듣는 것, 예나지금이나 자신의 역량을 키우는 법이다.
인간지사 새옹지마(人間之事 塞翁之馬)라 했다. 사람이 한 평생 살아가다보면 길흉화복이 끊임없이 이어진다. 아무리 슬픈 일이라 할지라도 그 가운데에는 기쁜 일이 잠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때문에 세상사 일희일비(一喜一悲)할 것은 아니다.
변방 塞(새, 막힐 색)의 구성은 집 면(宀)과 짤 구(冓)의 생략형, 그리고 흙무더기를 쌓아올린 모양을 본뜬 흙 토(土)로 이루어졌다. 宀(면)은 지붕과 양 벽면을 본뜬 것으로 사람이 사는 집을 뜻한다. 보통 맞배지붕처럼 대칭구조로 이루어진 지붕형태를 취한 집을 의미한다. 冓(구)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冓는 목재를 교차시켜 쌓아 놓은 것을 뜻하며, 대칭지어 교차한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즉 집이나 어떤 물건을 만들기 위해 쌓아 둔 목재가 뒤틀리지 않게 위해 교차해서 보관하는 방법이 담겨 있다. 또한 집을 짓기 위해 나무를 얽어 만든 모양이기도 하다. 따라서 塞(색)의 전체적인 의미는 집(宀)을 짓기 위해 나무로 얼개를 짜 맞춘(冓) 다음 바람이나 한기가 들지 않도록 틈새를 흙(土)으로 채운다는 데서 ‘막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적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국경을 막는다 하여 ‘요새’ ‘변방’이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늙은이 翁(옹)의 구성은 공변될 공(公)과 깃 우(羽)로 이루어졌다. 公(공)은 ‘나누다’ ‘가르다’가 본뜻인 八(팔)과 사사로울 사(厶)로 되어있지만 갑골문에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입 구(口)로 새겨져 있어 본뜻은 ‘입가에 진 주름살’을 그려낸 것이었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인문적인 해석이 더해져 사람의 수(口)대로 뭔가를 나누니(八) ‘공변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羽(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羽는 새의 기다란 깃털을 뜻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새의 날개는 반드시 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란히 그렸는데, 좌우 날개를 상형한 非(비)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자 羽(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羽(우)는 다른 부수에 더해져 주로 ‘날개’나 ‘난다’는 의미로 쓰이지만 여기서는 한 부족의 추장이나 원로들이 복장에 갖추는 장식용 깃털이다. 따라서 翁(옹)의 전체적인 의미는 한 부족을 이끄는 추장이나 원로는 장식용 깃털(羽)을 복장에 갖추고 모든 사람이 공평(公)되게 살 수 있도록 중재를 하는데, 이 때 원로는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이라는 데서 ‘늙은이’ ‘노인을 높이는 말’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塞翁之馬란 변방에 사는 노인의 말이란 뜻으로, 세상만사는 변화가 많아 행불행을 예측하기 어려워 잠시 행복하다고 기뻐할 일도 아니며 불행하다고 슬퍼할 일이 아님을 이르는 말이다. 즉 인생의 길흉화복은 늘 바뀌어 변화가 많음을 드러낸 말이다. 『회남자淮南子』「인간훈人間訓」에서 유래했다. 국경 인근에 도술이 뛰어난 노인이 있었는데, 하루는 그가 기르던 말이 도망치자 사람들이 위로하였지만, 노인은 괘념치 않았으며 몇 달 후에는 도망갔던 그의 말이 훌륭한 준마 한 마리를 데리고 나타나자 마을사람들이 기뻐했다. 그러나 노인은 이 또한 언제 화(禍)가 될지 모른다 했는데, 말타기를 좋아했던 아들이 말에서 떨어져 다리가 부러졌다. 1년 후에는 오랑캐들이 쳐들어와 마을의 젊은이들은 전쟁터에 나가 대부분 전사하였지만 아들은 무사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복이 화가되고 또한 화가 복이 되기도 하여 그 변화가 끝이 없으니 그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다(故福之爲禍 禍之爲福 化不可極 深不可測也)”고 한 것이다.
삼인행 필유아사(三人行 必有我師)라 했다. 세 사람이 길을 가다보면 반드시 그 중에는 스승 될 만한 사람이 있다는 것. 사람에게는 어떤 이든 자기만의 달란트가 주어지기 때문에 때론 스승이 될 수 있다. 모르는 것을 묻는 것, 나를 찾는 길이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부끄러워할 恥(치)의 구성은 사람의 한 쪽 귀 모양을 상형한 귀 이(耳)와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졌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인데, 여기서는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이다. 이에 따라 恥(치)는 양심(心)에 가책을 느끼면 얼굴 중에서도 귀(耳)가 빨개짐을 나타내 ‘부끄럽다’는 뜻을 부여했다.
아래 下(하)는 上(상)자와 함께 사람의 생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지사(指事)글자다. 갑골문에 새겨진 자형을 보면 드넓은 지평선을 의미하는 긴 횡선 아래에 보다 짧은 가로선을 그은 모양이었다가 금문으로 오면서 아래의 짧은 횡선이 세로로 바뀐 ‘丅’모양이 되었으며, 그러다 하단 오른쪽에 점(丶) 하나를 더 찍어 오늘날의 자형이 되었다. 그 뜻은 지평선(一)보다 낮은 위치(卜)를 나타내 ‘아래’ ‘낮다’ 등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물을 問(문)의 구성은 문 문(門)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외짝의 문은 戶(호)인데 단출하고 가난한 집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에 비해 門(문)은 부잣집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의 입을 상형한 口(구)는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다. 따라서 問(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문이나 방문(門)을 사이에 두고 인사말(口)을 하면서 안부를 ‘묻다’가 기본 뜻이다.
不恥下問이란 자신보다 지위나 나이가 어린 사람에게 묻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논어論語』「공야편公冶篇」에 기록되어 있다. 공자의 제자인 자공(子貢)이 위나라의 대부인 공문자(公文子)의 시호에 왜 문(文)자가 들어갔는지를 공자에게 묻자 “행동이 민첩하여 배우기를 좋아하고 아랫사람에게마저 묻는 것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기 때문에 문(文)을 넣은 것이다(敏而好學 不恥下問 是以謂文也)”라고 하였다. 배움은 끝이 없다. 공자 역시 아낙네에게 물어 개미허리에 실을 묶어 구슬을 꿰었다는 공자천주(孔子穿珠)라는 고사성어도 있으니, 모르는 것은 부끄러워 말고 묻자.
세상은 모순투성이다. 이 세상자체가 크게는 음과 양이라는 대립구조로 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자가 있으니 여자가 있고, 여자가 없으면 남자 역시 존재할 수 없다. 이렇듯 물질세계는 상호균형을 위해 음양이 양립하고 있는데, 지금 우리네 사회는 ‘좌파니 우파니’ 싸우며 상대를 없애려 하지만 그 자체가 모순인 것이다.
창 矛(모)는 긴 나무 끝에 날카로운 쇠창을 박고 또한 작은 깃발이나 장식을 단 모양의 ‘창’을 본뜬 상형글자다. 특히 쇠로 만든 칼끝이 꼬부라지고(乛) 또한 옆으로는 갈고리처럼 굽어진 모양(乛)의 칼날이 달렸으며 깃발이나 장식(丿)을 달았다. 주로 전투용 병차에 앞세우고 다녔다.
방패 盾(순)은 얼굴을 중심으로 몸을 방어하기 위해 방패를 잡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즉 자형의 ‘厂’모양이 방패이고 여기서 ‘十’은 방패의 손잡이를 잡은 모양이다. 또한 눈을 상형한 目(목)은 눈뿐만 아니라 몸 전체를 상징하는 축약형 글자다.
矛盾이란 창과 방패란 뜻으로, 말이나 행동에 있어 앞뒤가 맞지 아니함을 이르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난일・난세편難一・難世篇」에서 유래했다. 그 내용을 살펴보면, “초나라에 방패와 창을 파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자랑스럽게 말하길 ‘나의 방패는 견고하여 어떤 것으로도 뚫을 수 없답니다’라고 하였다. 또 그는 ‘내가 만든 창은 날카로워 어떤 물건도 뚫지 못할 게 없답니다’라며 자랑스럽게 외쳐댔다. 그러자 그걸 듣고 있던 어떤 사람이 ‘당신이 만든 창으로 당신이 만든 방패를 뚫는다면 어찌될까요?’라고 하자 그 상인은 말문이 막혀버렸다(楚人有鬻盾與矛者 譽之曰 吾盾之堅 莫能陷也 又譽其矛曰 吾矛之利 於物無不陷也 或曰 以子之矛 陷子之盾 何如 其人弗能應也)”는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는 세상은 모순덩어리다. 그러나 어찌 보면 이는 당연한 물질세계의 균형을 위한 음양의 법칙이다.
왜 뛰어난 천재들은 요절(夭折)을 할까! 보통사람이 한평생 이루어야 할 것을 이른 나이에 이루어서 그럴까! 번득이는 재능을 한 번에 촉발시키는 것도 인류에게 공헌하는 것이지만, 오랜 경험에서 우려낸 체득(體得)을 통한 지혜로움 또한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
들을 聞(문)의 구성은 문 문(門)과 귀 이(耳)로 이루어졌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耳(이)는 사람의 귀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聞(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외부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듣는 귀(耳)는 곧 우리 몸체의 문(門)이라는 데서 ‘듣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열 十(십)은 숫자 一(일)에 세로 선을 내리 그어 1의 10배를 뜻하는 ‘열’이 되었고, 동일한 방법으로 세로 선 두 개를 그어 내리면 스물 卄(입), 세 개는 서른 卅(삽)이 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철학적인 의미를 부여했다. 十(십)에 대해 『說文』에서는 “十은 완전히 갖춘 수이다. 一은 동과 서쪽이고 丨은 남과 북쪽이니 사방과 중앙을 갖추었다.”고 하였다. 한자에서 숫자 十(십)은 완성수로 여기기 때문에 신(神)이 아닌 인간에게는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둑이나 무술에 있어서 그 경지가 아무리 뛰어나다할지라도 최고 9단일뿐 10단은 없다.
聞一知十이란 하나를 들으면 미루어 열을 안다는 뜻으로, 매우 총명하고 영특한 이를 두고 이르는 말이다. 『논어論語』「공야장公冶長」편에 나온다. 공자의 제자 중에서 가난하지만 총명한 안회(顔回), 그리고 운영자금의 대부분을 충당했던 언변이 뛰어난 자만심 강한 자공(子貢)에게 공자가 물었다. “너와 안회, 누가 더 뛰어난가?(女與回也孰愈)” 그러자 자공은 “제가 어찌 감히 안회를 넘볼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들으면 열을 알지만, 저는 하나를 들으면 둘이나 알까 합니다(賜也何敢望回 回也聞一以知十 賜也聞一以知二)”고 대답했다. 그러나 안회는 32세로 요절했고 공자는 참으로 안타까워했다.
세상사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려 있다. 늘 긍정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과 매사를 부정적인 시각으로 보는 사람의 인생행로는 결국엔 엄청난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다. 즉 지금 하는 생각이 곧 나의 미래가 되는 것이다.
바랄 望(망)은 망할 망(亡)과 달 월(月), 그리고 오뚝할 임(壬)으로 구성되었다. 亡(망)은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소리요소이면서 보름달이 날이 지날수록 이지러져 간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높다란 언덕위에 올라(壬) 앞으로 이지러져(亡)갈 둥근 보름달(月)을 바라보며 자신의 소원을 빈다는 데서 ‘바라다’ ‘원하다’ ‘우러러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바라본다’는 의미를 강조하기 위해 눈을 강조한 臣(신)을 亡(망)대신 첨가해 보름 朢(망)자를 따로 제작하기도 하였다.
매화나무 梅(매)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매양 매(每)로 짜여 있다. 木(목)은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每(매)는 비녀를 꽂아 아름답게 치장한 머리모양의 자형상부와 어미 모(母)로 구성되었다. 母(모)는 두 손을 마주하고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을 본뜬 女(녀)자에 유방을 가리키는 두 점을 강조하여 ‘아이를 낳아 젖을 주는 여자’, 즉 산모(産母)를 뜻하였으나 ‘어머니’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은 많아야 하나둘 아이를 낳지만 고대에는 다산(多産)이 곧 축복이자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는 머리를 올려 예쁜 머리장식의 하나인 아름다운 비녀를 꽂을 수 있었다. 즉 자형상부는 머리를 올려(丿) 비녀(一)를 꽂은 모양이다. 그러한 모습을 담은 글자가 바로 ‘많다’는 뜻을 지닌 매양 每(매)로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만의 특권이었다. 그래서 물(氵)이 많으면(每) ‘바다 海(해)’가 되고, 마음(忄)을 많이(每) 쓰게 된다는 것은 뭔가를 뉘우치고 있어 ‘뉘우칠 悔’가 된다. 따라서 梅(매)의 전체적인 의미는 열매가 많이(每) 열리는 나무(木)라는 뜻이 담겨 있다.
발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그래서 ‘발’이란 뜻과 함께 ‘멈추다’ ‘그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목마를 渴(갈)의 구성은 물줄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모양을 상형한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어찌 갈(曷)로 이루어졌다. 曷(갈)은 가로 왈(曰)과 빌 개(匃, 빌 갈)로 구성되었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다.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匃(개)는 사람 인(人)과 없다는 뜻도 지닌 망할 망(亡)으로 구성되었는데, 사람(人) 뭔가 부족하고 갖은 게 없어서(亡) 빌린다는 데서 ‘빌다’ ‘구걸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曷(갈)은 어떤 이에게 자신의 저간의 사정을 말(曰)하고 뭔가를 구걸(匃)한다는 데서 ‘어찌’ ‘어찌하여’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渴(갈의 전체적인 의미는 갈증이 나 물(氵)을 달라고 구걸(匃)하듯 말한다(曰)는 데서 ‘목마르다’ ‘갈증’을 뜻하게 되었다.
望梅止渴이란 시디 신 매실을 바라보며 갈증을 멈추게 한다는 뜻으로, 상상만으로도 마음의 위안을 얻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가휼假譎」편에 나온다. 그 내용은 삼국시대 조조(曹操)에 관한 이야기다. 즉 군사를 이끌고 행군 도중 물이 떨어져 병사들은 갈증이 심해 전진하기 어려워하자 모두를 향해 “저 앞에는 넓은 매실나무 숲이 있는데, 시고도 달콤하여 갈증을 해소할 수 있다( 前有大梅林饒子,甘酸,可以解渴)”고 외쳤다. 병사들이 매실의 신맛을 생각하자 곧 입 안에 침이 돌아 갈증을 잊고 행군하였다는 것. 마음만으로도 몸의 변화를 유도할 수 있으니, 매사에 긍정적인 마인드가 필요한 법이다.
때로 말한 사람의 의도와는 달리 앞뒤를 싹 잘라버리고(去頭截尾) 몇 마디만을 옮기다보면 본뜻과는 달리 와전되는 경우가 많다. 독서망양(讀書亡羊)도 그렇다. 있는 글자만 해석할 때, 요즘 같으면 양을 잃은 것쯤이야 공부를 하다 그랬는데 하며 대수롭게 여기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읽을 讀(독)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팔 매(賣)로 이루어졌다.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賣(매)는 선비 사(士)와 살 매(買)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사(士)자는 본디 날 출(出)이 변화된 것이다. 買(매)는 그물 망(罒)과 조개 패(貝)로 짜여 있다. 罒(망)의 본디글자는 网(망)인데, 쓰기 편하게 축약한 것으로 그 의미는 장사하는 사람은 돈(貝)이 될 만한 물건이라면 투망을 던지듯 망(网)을 쳐서 ‘사들인다’는 행위를 그리고 있다. 또한 반대의미를 지닌 賣(매)는 미리 사들였던 돈 될 만한 물건(買)을 이제는 적당한 이문을 붙여 내다파는(出) 행위를 그려내 ‘팔다’는 뜻을 부여했다. 따라서 讀(독)의 전체적인 의미는 상인이 손님에게 물건을 팔기(賣)위하여 외쳐대듯 소리(言)를 내어 책을 ‘읽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글 書(서)의 구성은 붓 율(聿)과 가로 왈(曰)로 짜여 있다. 聿(율)은 붓 대(丨)를 손으로 잡고(彐)있는 모양과 함께 동물의 가는 털을 모아 만든 붓(二)의 형태를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다.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따라서 書(서)의 전체적인 의미는 성인(聖人)과 같은 훌륭한 사람이 말씀(曰)하신 것을 붓(聿)으로 기록한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이렇듯 훌륭한 책을 경전(經典)이라 하여 받들어 왔다는 데서 ‘글’ ‘책’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망할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더불어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양 羊(양)은 예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는데, 두 뿔과 몸통 및 네 발 그리고 꼬리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羊(양)에 대해 『說文』에서는 “羊은 상서롭다는 뜻이다. 두 뿔과 네 발, 그리고 꼬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羊(양)은 牛(소)와 함께 신에게 바치는 대표적인 동물로 희생할 犧(희)의 자형을 이루고, 또한 착하고 온순하다는 이미지를 빌어 착할 善(선)에도 차용되고 있다.
讀書亡羊이란 양치기가 책을 읽느라 양을 잃어버렸다는 뜻으로, 자신의 본분을 잃어버리고 다른 일에 정신을 뺏겨 소임을 소홀히 함을 말한다. 『장자莊子』「변무편騈拇篇」에서 유래했다. “장과 곡이라는 두 사람이 함께 양을 치다가 둘 다 양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장에게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죽간을 끼고 내용을 읽다가 그랬다는 것, 또 곡에게도 어찌된 일이냐고 물었더니 장기(博塞)를 두며 놀다가 잃어버렸다고 하였다. 두 사람이 한 일은 같지 않지만 양을 잃어버린 결과는 같다(臧與穀二人相與牧羊 而俱亡其羊 問臧奚事 則挾策讀書 問穀奚事 則博塞以遊 二人者事業不同 其於亡洋均也)”는 것. 장자는 이어 백이가 충절 때문에 수양산에서 죽고 도척은 이익을 추구하다 죽었지만, 사람들은 백이는 군자이고 도척은 소인이라 하는데 이는 잘못 되었다는 것. 어찌 사람을 군자니 소인이니 하며 차별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만물은 평등하다는 수평적 사고를 피력하려 한 것이 장자의 의도였다. 그러나 본뜻과는 다르게 활용되고 있다.
아무리 용감무쌍해도 인간이나 동물과 같은 무리에게는 한계가 있는 법이다. 그런데 제 분수 모르고 날뛰는 경우가 의외로 많은 것 같다. 나를 아는 것,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다. 사마귀의 평소 습관대로 수레바퀴에 맞서는 무모함은 없는지 살펴 볼 일이다.
사마귀 螳(당)의 구성은 벌레 충(虫)과 집 당(堂)으로 이루어졌다. 虫(충)은 벌레나 파충류, 그리고 양서류와 같은 생물들이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굴이나 집을 지어 사는 벌레의 총칭이다. 堂(당)의 구성은 높일 상(尙)과 흙무더기를 쌓아올린 모양을 상형한 흙 토(土)로 짜여 있다. 尙(상)은 여덟 팔(八)과 향할 향(向)으로 이루어졌는데, 向(향)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과 지붕을 본뜬 집 면(宀)과 집의 입구를 뜻하는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고대 마을의 가옥구조는 중앙의 광장이나 신전을 중심으로 외곽에 배치되어 있는데, 집(宀)의 입구(口)가 모두 중앙의 신전이나 특정 건물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향하다’라는 뜻과 함께 방향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이에 따라 尙(상)의 의미는 집(向) 중에서도 신전과 같은 특별한 건물은 일반 가옥과는 달리 지붕위에 깃발(八)과 같은 표식을 하여 모든 사람이 신성하게 ‘받들어 모시다’ ‘높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堂(당)의 전체적인 의미는 흙(土)을 돋우어 높다랗게 지은 신전과 같은 집(尙)을 말한다. 따라서 螳(당)의 전체적인 의미는 신을 받들어 모신 신전(堂)처럼 우뚝 서 있기 좋아하는 벌레(虫)라는 데서 ‘사마귀’ ‘버마재비’를 뜻하게 되었다.
사마귀 螂(랑)의 구성은 벌레의 총칭인 벌레 충(虫)과 사나이 랑(郞)으로 이루어졌다. 郞(랑)은 좋을 량(良, 양)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고을을 뜻하는 邑(읍)의 간략형인 우부 방(阝)으로 구성되었다. 良(량)은 초기자형인 갑골문과는 비교가 어려울 만큼 변화되었다. 본래 良(량)은 본체 좌우의 다른 별체를 오갈 수 있도록 지붕을 인 회랑을 상형한 글자로 눈비가 와도 편리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편안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郞(랑)의 의미는 여러 사람이 모여 사는 고을(阝=邑)에서 훌륭한(良) 남자를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螂(랑)의 전체적인 의미는 건장한 사나이(郞)처럼 용맹스러운 전투적인 벌레(虫)라는 데서 ‘사마귀’를 뜻하게 되었다.
막을 拒(거)의 구성은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약자인 수(扌)와 클 거(巨)로 이루어졌다. 巨(거)는 가운데에 손잡이가 달린 커다란 자인 곡척(曲尺)을 본떠 ‘크다’ ‘많다’는 뜻을 부여했다. 금문에 보이는데, 工(공) 자 모양의 커다란 자를 사람(大)이 손을 뻗어 잡고 있는 모양이다가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의 자형을 이루었다. 이에 따라 拒(거)의 의미는 두 손(扌)을 크게(巨) 휘저으며 덤벼드는 사람과 맞선다는 데서 ‘막다’ ‘맞서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바퀴 자국 轍(철)의 구성은 수레바퀴의 모양을 본뜬 수레 거(車)와 통할 철(徹)의 생략형으로 이루어졌다. 徹(철)의 구성은 작은 걸음으로 걷는다는 뜻을 지닌 조금 걸음 척(彳)과 기를 육(育), 그리고 손(又)에 회초리(卜)를 들고 때린다는 뜻을 지닌 칠 복(攴)의 간략형인 복(攵)으로 이루어졌다. 育(육)은 갑골문에 새겨진 ‘기를 毓(육)’자가 소전에 이르러서 간략하게 새롭게 만들어진 자형이다. 育(육)의 자형상부는 산모의 자궁에서 머리를 내밀고 나오는 아이(子)를 상형한 것이며 아래의 ‘月’은 고기 육(肉)의 간략형으로 몸을 뜻한다. 이에 따라 育(육)에 담긴 뜻은 어머니가 자녀(子)를 잘 먹여 살(月=肉)이 통통하게 길러낸다는 양육의 의미가 함축되어 있다. 따라서 徹(철)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머니가 아이를 기를(育) 때 적당히 회초리(攵)를 들어 사물의 이치를 가르쳐 행동(彳)하게 하면 나아가 사리에 ‘통할’뿐만 아니라 ‘꿰뚫어 볼 수 있는’ 안목을 지니게 된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轍(철)의 전체적인 의미는 수레(車)가 지나갔음을 확연하게 알 수 있다(徹)는 데서 ‘바퀴 자국’ ‘궤도’ ‘차도’ ‘흔적’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螳螂拒轍이란 사마귀가 수레바퀴를 막아선다는 뜻으로,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지 않고 무모하게 강자에게 함부로 덤빔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장자莊子』『회남자淮南子』『한시외전漢詩外傳』등 여러 문헌에 기록되어 있다. 제나라 장공이 사냥을 나갔는데, 다리를 들고 다가서는 벌레를 보고 이름을 물었다. “사마귀라 하는데, 저 놈은 앞으로 나아갈 줄만 알고 물러설 줄을 모르며 제 힘은 헤아리지 않고 적을 가벼이 보고 대항하는 놈입니다”라고 하자, 장공은 “이 놈이 사람이었다면 반듯이 천하의 용맹한 무사였을 것이다”하고는 마차를 돌려 피해갔다(此所謂 螳螂者也 其爲也 知進而不知却 不量力而輕敵 莊公曰 此爲人而必 天下勇武矣 廻車而避之)는 고사가 있다.
살다보면 ‘애간장이 타들어 가는 마음’을 한두 번 쯤은 겪었을 것이다. 자식이 속을 썩이면, 밤을 꼴딱 새우고도 잠을 이룰 수 없는 애절한 마음이야 모성만한 게 있을까 싶다.
끊을 斷(단)의 구성은 이을 계(㡭)와 도끼 근(斤)으로 구성되었다. 㡭(계)는 상자 방(匚)의 변형과 네 개의 작을 요(幺)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幺(요)는 실타래를 뜻하는 가는 실 사(糸)의 자형하부가 생략된 것으로 ‘실타래’로 그 의미는 상자(匚)에 가지런하게 담긴 여러 개의 실타래(幺)를 뜻한다. 斤(근)의 모양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斷(단)의 전체적인 의미는 여러 개의 실타래(㡭)를 도끼(斤)로 내려쳐 ‘끊어버린다’는 뜻이 담겨 있다. 반면에 계(㡭)에 실 사(糸)를 더하면 ‘잇다’는 뜻의 ‘이을 계(繼)’가 된다.
창자 腸(장)의 구성은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달월(月)과 볕 양(昜)으로 짜여 있다. 昜(양)은 태양을 본뜬 (일)과 햇볕이 내리 쬐이는 모양(一 + 勿)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둥근 해(日)아래에 T자형의 장대를 세워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햇살을 빗금으로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현재 자형에 대한 인문적인 해석을 가한다면 昜(양)은 아침 단(旦)과 깃발을 뜻하기도 하는 말 물(勿)로 이루어져 있는데, 지평선(一)위로 솟아오르는 아침 해()는 하루 중 해가 질 때와 마찬가지로 세워둔 깃발(勿)의 그림자가 ‘길게’ 드리워지기 마련이라는 뜻도 유추할 수 있다. 따라서 腸(장)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 몸 속 기관 중에서도 여타 장기에 비해 그 길이가 긴(昜) 작은창자와 큰창자 같은 장기(肉=月)를 나타낸 것으로 ‘창자’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斷腸이란 뱃속의 창자가 끊어진다는 뜻으로, 창자가 끊어지는 것과 같은 극심한 슬픔이나 괴로움을 나타낸 말이다. 『세설신어世說新語』「출면편黜免篇」에 나오는데, “진나라의 환온이 촉나라를 정벌하기 위해 삼협에 이르렀을 때 한 병사 가 새끼원숭이를 잡아 배에 싣고 떠나자, 그 어미가 강 연안을 따라 애절하게 부르짖으며 백여리를 쫓아 왔다. 마침내 어미가 몸을 날려 배위로 뛰어올랐지만 곧 죽어버렸다. 어미 원숭이의 배를 가르자 창자가 마디마디 끊어져 있었다(桓公入蜀, 至三峽中, 部伍有得猨子者, 其母緣岸哀號, 行百餘里不去, 遂跳上船, 至便卽絶. 破視其腹中, 腹皆寸寸斷.)고 한다. 자식을 구하려는 어미의 심정이 얼마나 애절했었으면 창자가 끊어지겠는가. 어머니의 자식사랑만큼 더 큰 게 어디 있으랴! 싶다.
인간은 이성을 주관하는 대뇌의 발달로 다른 동물에 비해 영성적 지혜를 잃어 버렸다. 지구에 어떠한 재난이 닥칠 때 미물로 취급 받는 다양한 동물들은 미리 알아차리고 피난을 하는데, 인간들이 전혀 예측할 수 없음은 바로 이성적 지식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늙을 老(로, 노)는 사람의 머리털이나 짐승의 털 모양을 본뜬 털 모(毛)의 변형과 서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상형한 사람 인(人), 그리고 지팡이 모양이 변환된 비수 비(匕)로 이루어졌다. 따라서 老(로)의 의미는 머리카락(毛)을 길게 산발하고 허리를 굽힌 사람(人)이 지팡이(匕)를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노인’을 뜻한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슬기 智(지)의 구성은 알 지(知)와 태양을 상형한 해 일(日)로 짜여 있다.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입 구(口)로 제작되었는데,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智는 온 세상을 두루 비추는 태양(日)과 같이 대자연의 운행질서를 밝게 안다(知)는 의미를 담고 있다.
老馬之智란 늙은 말의 지혜라는 뜻으로, 나이가 많으면 그 만큼 경륜이 쌓여 사물의 이치를 파악하는 지혜와 특기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한비자韓非子』「설림說林」전에서 유래했다. 제나라 환공 때의 일로, “관중과 습붕이 환공을 따라 고죽국을 정벌하기 위해 봄에 떠났다가 겨울에서야 돌아오다 폭설과 혹한에 미혹되어 길을 잃었다. 관중이 나서 말하길 ‘늙은 말의 지혜를 이용하자’고 제안하며, 곧 늙은 말을 풀어 따라가니 마침내 길을 찾아 행군하였다( 管仲·隰朋從於桓公而伐孤竹, 春往冬反, 迷惑失道. 管仲曰, “老馬之智可用也” 乃放老馬而隨之, 遂得道行)고 한다. 경륜 많은 늙은 말의 지혜로움이 인간을 구한 것이다.
하늘은 누구에게나 적어도 한 가지 이상씩은 자신만의 달란트를 부여했다. 그 재능을 찾아내는 길(道)이 곧 수행의 첩경이다. 나에게 어떠한 재능이 있는지는 철저한 자기 관찰이 필요하다. 싫증나지 않는 일, 해도 해도 재미나는 일.
주머니 囊(낭)의 구성은 입 구(口)와 도울 양(襄)으로 이루어졌다.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이다. 襄(양)의 금문을 살펴보면 겉옷(衣) 사이로 양손을 내밀어 쟁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흙을 파헤치는 모양임을 추측할 수 있다. 즉 농기구로 단단한 땅을 잘게 부수어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돕다’는 뜻이 생겨났고,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흙을 돋우기 때문에 ‘오르다’는 뜻도 파생하였다. 따라서 囊(낭)의 전체적인 의미는 소지품이나 손을 넣을(口) 수 있도록 불룩하게 돋아 올랐다(襄)는 데서 ‘주머니’ ‘자루’를 뜻하게 되었다.
가운데 中(중)은 간단한 자형임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갑골문에 새겨진 모양은 어떠한 공간을 나타낸 ‘口’모양에 긴 장대(丨)를 세워둔 모양인데, 장대의 상부에는 두세 가닥의 깃발도 함께 그려져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보다 간략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가운데 쓰인 ‘口’모양에 대해 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설,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한 판이라는 설, 장대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기위해 달아 놓은 나무틀이라는 설, 해의 변형으로 정오를 뜻한다는 설 등이다. 필자가 보기에 갑골문과 금문을 참조할 때, 마을(口)의 중앙광장에 부족의 상징인 깃발을 단 장대(丨)를 세웠다는 데서 ‘중앙’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송곳 錐(추)의 구성은 쇠 금(金)과 새 추(隹)로 이루어졌다. 金(금)은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이다. 본래는 주물하기 쉬운 청동(靑銅)을 의미하였지만 자형에 따라 ‘황금’을 뜻하기도 한다.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따라서 錐(추)의 전체적인 의미는 새(隹)의 부리처럼 뾰족한 쇠(金)라는 데서 ‘송곳’ ‘바늘’을 뜻하게 되었다.
囊中之錐란 주머니 속에 있는 송곳이란 뜻으로, 재주나 재능이 아주 빼어난 사람은 숨어 있어도 저절로 남의 눈에 드러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평원군전平原君傳」에서 유래했다. 전국시대 말엽, 진나라의 공격을 받은 조나라 혜문왕은 동생이자 재상인 평원군을 초나라에 보내 구원군을 요청하기로 하고 3000여 식객 중에서 수행원 20명을 선발하기로 하였는데, 한 명이 모자랐다. 이에 3년여 동안 머물던 모수(毛遂)라는 식객이 스스로 추천하였다. 평원군은 눈에 띄지 않았던지라 못마땅해 하며“재능이 뛰어난 사람은 세속에 머물러도 마치 주머니 속의 송곳 끝이 밖으로 나오듯이 드러난 법이요(夫賢士之處世也, 譬若錐之處囊中, 其末立見)”라고 하자 “그래서 오늘에야 주머니 속에 들어갈 기회를 잡았다”고 응대하며 일행에 합류해 큰 공을 세웠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걱정도 팔자’라는 속담이 있다. 아직 오지도 않은 미래에 대해 걱정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은 것 같다. 지금 당장이 중요한 것이지 아직 오지도 않은 내일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지금 현재에 깨어 있는 것, 내 몸 안에 깨어 있는 것이 곧 수행이다.
나라 이름 杞(기)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자기 기(己)로 이루어졌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己(기)에 대해 『說文』에서는 “己는 방위상 중궁을 뜻한다. 만물이 안으로 갈무리 하므로 구부러진 모양을 본떴다. 己(기)는 戊(무) 다음에 오며, 사람의 배를 상징한다.”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 역시 지금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몇 군데 매듭을 지어놓은 새끼줄의 상형’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문자가 있기 전 고대 사람들이 새끼줄이나 띠 따위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은 결승문자(結繩文字)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杞(기)의 전체적인 의미는 새끼줄(己)처럼 가느다란 나무(木)라는 데서 ‘구기자나무’를 뜻하며, 구기자나무를 많이 재배한 지역이라는 데서 ‘나라 이름’을 뜻하기도 한다.
근심할 憂(우)는 머리 혈(頁)과 마음 심(心) 그리고 천천히 걸을 쇠(夊)로 짜여 있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책의 면수(페이지)를 나타낼 때는 ‘책면 엽’으로 읽는다. 心(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夊(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따라서 천천히 걸을 夊(쇠)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더디 걷거나 끌려가지 않으려는 뜻을 담게 된다. 이에 따라 憂(우)자에 담긴 내용은 머리(頁)와 가슴(心) 속에 온통 걱정꺼리가 가득 차 그 발걸음(夊)마저도 무거워 보이는 모양을 그려 ‘근심하다’ ‘걱정하다’의 뜻을 담았다.
杞憂란 일어나지도 않을 앞일에 대해 쓸데없는 걱정을 함을 이르는 말로, 옛날 기나라 사람이 ‘만약 하늘과 땅이 무너지면 어디로 피해야 좋을 것인가’하고 먹고 자는 것도 잊고 걱정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기인지우(杞人之憂) 또는 기인우천(杞人憂天)의 줄임말이다. 『열자列子』「천서天瑞」편에 기록되어 있다. 닥치지도 않은 일로 걱정에 휩싸여 있지는 않은가? 지금 당장 내 몸은 어떠한지, 손발은 따스한지 살펴보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예부터 ‘굽은 나무가 선산 지킨다’고 했다. 곧고 좋은 나무는 먼저 베이는 법이다. 사람 사는 세상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 자신의 재주만을 믿고 뽐내다가 다치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다.
달 甘(감)은 입(口)안에 있는 혀(一)로 무언가를 맛보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특히 혀 중에서도 끝부분은 오미(五味) 중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있으며, 신맛은 혀 안쪽의 가장자리, 매운맛은 혀 앞쪽의 가장자리, 쓴맛은 혀의 안쪽부분, 그리고 짠맛은 혀 전체로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입(口)안의 혀 중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있는 혀끝(一)을 나타내어 ‘달다’의 뜻과 함께 ‘맛있다’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甘(감)에 대해 『說文』에서는 “甘은 맛이 좋다는 뜻이다. 입(口)안에 음식물(一)을 머금은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다른 부수에 甘(감)이 더해지면 음식물의 맛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샘 泉(천)은 산기슭이나 평지에 형성된 옹달샘을 상형한 글자이다. 위 백(白)자는 물이 솟아오르는 옹달샘을 그려낸 것이며, 하부의 물 수(水)는 샘을 넘쳐흐르는 물줄기를 뜻하고 있다. 즉 평지나 산기슭에 자연스럽게 형성된 옹달샘에서 물이 넘쳐흐르는 전체적인 모습을 본뜬 것이다.
먼저 先(선)의 구성은 갈 지(之)의 변형과 어진사람 인(儿)으로 짜여 있다. 앞서서 가는(之) 어질고 본받을 만한 사람(儿)이란 뜻이 담겨 있다. 갑골문에도 왼발을 뜻하는 止(지)모양에 儿(인)으로 그려져 있어, 사람의 앞에서 먼저 간다는 데서 ‘먼저’ ‘나아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다할 竭(갈)의 구성은 설 립(立)과 어찌 갈(曷)로 이루어졌다. 立(립)은 두 팔을 벌리고 서있는 사람(大)이 평평한 땅(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나중에는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거나 ‘세우다’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曷(갈)은 가로 왈(曰)과 빌 개(匃, 빌 갈)로 구성되었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다.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匃(개)는 사람 인(人)과 없다는 뜻도 지닌 망할 망(亡)으로 구성되었는데, 사람(人) 뭔가 부족하고 갖은 게 없어서(亡) 빌린다는 데서 ‘빌다’ ‘구걸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曷(갈)은 어떤 이에게 자신의 저간의 사정을 말(曰)하고 뭔가를 구걸(匃)한다는 데서 ‘어찌’ ‘어찌하여’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竭(갈)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들이 줄을 서서(立) 자신의 사정을 호소하며 구걸(曷)한다는 데서 ‘다하다’ ‘없어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甘泉先竭이란 물맛이 좋은 샘물이 먼저 마른다는 뜻으로, 재주나 재능이 뛰어난 사람이 먼저 다치거나 타인의 질시를 받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감정선갈(甘井先竭)이 있다. 곧고 좋은 나무가 먼저 베인다고 했다. 그래서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제4장에서 “그 빛남을 부드럽게 하고, 세속과 함께 해야 한다(和其光,同其塵)”고 했다. 즉 자신의 지덕(智德)과 재기(才氣)를 감추고 세속을 따른다는 화광동진(和光同塵)을 강조하였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고 했다. 잘못 쓴 글은 지울 수 있지만 한 번 내 뱉은 말은 주어 담을 수 없으니 함부로 말하지 말고 신중하라는 우리의 속담이다. 그래서 옛 사람들은 적어도 세 번은 생각하고 말하라(三思一言)고 하였다. 무심코 던진 말이 상대에게는 엄청난 가슴앓이를 하게 할 수도 있다.
사마 駟(사)의 구성은 말 마(馬)와 넉 사(四)로 이루어졌다.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四(사)는 초기글자인 갑골문에서는 옆으로 네 개의 선을 그은 ‘亖’모양이었는데, 후대로 오면서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의 입과 코 모양을 본뜬 ‘四’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 가차한 것이다. 四(사)에 대해 『說文』에서는 “四는 음(陰)의 숫자이다. 넷으로 나뉜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亖’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따라서 駟(사)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나의 수레를 네(四)마리의 말(馬)이 끈다는 데서 ‘말 네 마리’ ‘사마수레’를 뜻하게 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미칠 及(급)은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사람 인(人)과 오른손의 모양을 상형한 오른손 우(又)로 구성되었는데, 앞서가는 사람(人)을 뒤에서 손(又)으로 붙잡을 수 있다는 데서 ‘미치다’ ‘도달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혀 舌(설)은 입 밖으로 내민 혀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舌(설)에 대해 『說文』에서는 “舌은 입 안에 있는 것으로 말을 하고 맛을 구별하는 것이다. 干(간)과 口(구)로 짜여있다.”라고 하였다. 즉 입(口)안에서 방패(干)와 같은 역할을 한다는 의미를 부여하였다.
駟不及舌이란 네 마리의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한다는 뜻으로, 입소문은 빨리 퍼지므로 말조심하라는 말이다. 『논어論語』「안연편顔淵篇」에 나오는 말이다. 위나라 대부 극자성(棘子成)이 언변과 이치에 뛰어난 자공(子貢)에게 “군자는 자질만 갖추면 되는 것이지 무엇 때문에 학문을 하는 것이요?(君子質而已矣, 何以文爲)”라고 물었다. 그러자 자공이 말하길 “참으로 안타깝군요. 그대가 하는 말은 군자답지만, 네 마리 말이 끄는 빠른 수레도 사람의 혀에는 미치지 못하는 법이요. 학문이 자질과 같고 자질이 학문과 같다면, 그것은 마치 호랑이와 표범 가죽을 개나 양가죽과 같다고 한 것과 진배없지요(惜乎, 夫子之說, 君子也! 駟不及舌. 文猶質也, 質猶文也. 虎豹之鞹猶犬羊之鞹)”라고 대답하였다. 즉 극자성에게 이치에 어긋나게 말한 것이니 입 조심하라는 자공의 진언이다. 이와 비슷한 말로는 ‘입은 재앙을 불러들이는 문이라는 뜻의 구화지문(口禍之門)과 비슷한 뜻의 구시화문(口是禍門)이 있다.
역사 속에는 무수히 많은 난형난제(難兄難弟)의 뛰어난 형제들이 있었다. 요즘이라고 별반 다를 것은 없지만, 그래도 형만한 아우는 없다고 했다. 읍참마속(泣斬馬謖)의 주인공인 마속의 형이기도 했던 마량(馬良)과 관련해서 나온 고사성어가 바로 백미(白眉)이다.
흰 白(백)은 사람의 엄지손가락을 본뜬 것으로 손톱의 흰 부위를 나타낸 데서 ‘희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외에도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 이르러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어 희다는 뜻을 가진 白(백)과 구분하기 시작하였다. ‘희다’는 뜻으로 주로 쓰이기는 하지만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어서인지 ‘아뢰다’는 뜻도 있다.
눈썹 眉(미)의 구성은 눈썹모양을 그려낸 자형상부와 눈 목(目)으로 이루어졌다. 目(목)은 사람의 한 쪽 눈을 본뜬 것으로 쓰기에 편리하도록 세로로 세운 모양이다. 따라서 眉(미)의 의미는 눈(目)위의 눈썹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눈썹’이란 뜻과 함께 장수하여 ‘눈썹이 긴 노인’을 의미하기도 하였다.
白眉란 흰 눈썹을 뜻하는 것으로, 여럿 가운데 가장 뛰어난 사람 및 훌륭한 물건이나 작품을 비유적으로 이를 때 쓰는 말이다. 그 유래는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마량전馬良傳」에 나온다. 제갈공명과도 친교를 맺은 촉나라의 마량(馬良)은 형제 다섯 중에서 가장 뛰어난 인물이었다. 어렸을 때부터 눈썹에 흰 털이 섞여 있었는데 사람들은 “마씨 형제 다섯 중에서 흰 눈썹이 가장 뛰어나다(馬氏五常, 白眉最良)” 고 하였다.
예부터 노인은 지혜의 상징이었다. 그러나 우리사회의 현실은 그렇지 않다. 풍부한 경험을 쌓은 노인은 커녕 나이 50대만 되면 물러나야 되는 조기명퇴가 불문율처럼 자행되고 있다. 지혜로운 노인들이 존경받고 조직사회에 등용될 때 보다 견실한 항해를 할 수 있을 것이다.
아교 膠(교)의 구성은 육달월(月)과 높이 날 료(翏)로 이루어졌다. 肉(육)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데, 일반적으로 짐승의 사체에서 잘라낸 살코기를 뜻하며 肉(육)자가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동일한 뜻을 지닌 月(육달월)로 줄여 쓰이기도 한다. 翏(료)는 깃 우(羽)와 숱 많고 머리 검을 진(㐱)으로 구성되었다. 羽(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羽는 새의 기다란 깃털을 뜻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새의 날개는 반드시 짝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나란히 그렸는데, 좌우 날개를 상형한 非(비)가 ‘아니다’라는 의미로 확장되자 羽(우)가 그 역할을 하고 있다. 따라서 羽(우)는 다른 부수에 더해져 주로 ‘날개’나 ‘난다’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㐱(진)은 서있는 사람을 상형한 사람 인(人)과 터럭 삼(彡)으로 구성되었다. 彡(삼)은 가지런하게 난 짐승의 윤기 있는 털을 본뜬 것인데, 다른 자형에 더해져 ‘빛나다’는 뜻을 지니게 한다. 이에 따라 㐱(진)은 사람(人) 숱이 많고 검게 빛나는(彡) 머리털을 말한다. 그래서 翏(료)는 머리털(㐱)을 휘날리며 날개(羽)짓 한다는 데서 ‘높이 날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膠(교)의 전체적인 의미는 동물의 가죽이나 뼈 등(肉)을 고아 만든 동물아교와 물에서 잘 뜨고 유영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부레(翏)를 고아 만든 어류아교인 부레풀이라는 데서 통칭하여 ‘아교’라고 하였다.
기둥 柱(주)의 구성은 나무의 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과 주인 주(主)로 이루어졌다. 主(주)의 본래글자는 자형상부에 놓인 불똥 주(丶)로 갑골문이나 금문에도 보이는데 등잔의 불꽃과 같은 모양을 본뜬 것이었다. 그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등잔(王)과 불꽃(丶)을 본떠 主(주)자를 제작하였는데, 그 뜻이 불을 관리하는 ‘주인’이라는 의미로 확장되자 다시 불(火)의 뜻을 강조해 심지 炷(주)를 따로 만들었다. 따라서 柱(주)의 전체적인 의미는 지붕을 받치는 주된(主) 나무(木)라는 데서 ‘기둥’ 가야금이나 거문고의 줄 밑에 괴는 ‘기러기발’을 뜻하게 되었다.
북 鼓(고)의 구성은 악기 이름 주(壴)와 가를 지(支)로 짜여 있다. 壴(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壴는 악기를 진열해 놓고 서서 위에서 본 모양이다. 屮(철)과 豆(두)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나무 받침대(ㅛ) 위에 놓인 북(口)을 본뜬 것인데, 자형의 상부(士)는 북을 장식한 모양이다. 고대에는 壴(주)가 북을 의미하였지만 후에 북의 종류를 총괄하여 북 鼓(고)로 통일하였다. 즉 손(又)에 막대(十)를 쥐고서 북(壴)을 두드린다는 데서 ‘북’을 뜻하게 되었다.
큰 거문고 瑟(슬)의 구성은 쌍옥 각(珏)과 반드시 필(必)로 이루어졌다. 珏(각)은 두 개의 구슬 옥(玉)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는 거문고의 음을 조절하기 위해 줄밑에 괸 기러기발(雁足)을 뜻한다. 이 자형에 활용된 必(필) 역시 거문고의 단면을 보여주는 모양이라 할 수 있다. 瑟(슬)은 긴 오동나무통에 25개의 줄을 건 악기로 고대 중원지방에서 사용하던 것으로 조선 1116년(예종 11)에 유입되어 문묘제례악에 사용하였다. 항상 여섯 줄의 거문고(琴금)와 함께 편성되기 때문에 금슬(琴瑟)이라고도 하는데, 비유하여 사이가 좋은 부부를 가리켜 ‘ 금슬이 좋다’고도 한다.
膠柱鼓瑟이란 음률을 조절하는 거문고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 놓고 연주한다는 뜻으로, 규칙만을 고수하여 융통성이 없이 꽉 막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사기史記』「염파 인상여열전廉頗 藺相如列傳」에서 유래했다. 조나라의 왕이 경험이 많은 노장 염파대신 실전경험이 없는 조괄을 총사령관으로 임명하자 인상여가 간언하기를 “왕께서 그 이름만을 믿고 조괄을 대장으로 임명하려는 것은 마치 기러기발을 아교로 붙여놓고 거문고를 연주하는 것과 같습니다. 괄은 단지 그의 아버지가 전해준 병법을 읽었을 뿐, 상황에 맞추어 변통할 줄 모릅니다(王以名使括 若膠柱而鼓瑟耳 括徒能讀其父書傳 不知合變也.)”라며 반대하였다. 결과적으로 경험이 없는 조괄은 병법서에 따라 전투를 지휘하다 40만 대군을 잃는 참패를 당하였다. 예나지금이나 경험이 많은 노장의 지혜가 필요한 법이다.
수많은 생명이 공존하는 지구촌, 세월은 마냥 흐르는 게 아니라 많은 것을 변화시킨다. 특히 이성적 감성이 살아있는 사람은 지난날의 과오와 선행을 되돌아보는 반성(反省)을 통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 계절의 변화가 그 계기를 제공한다.
고칠 改(개)는 몸 기(己)와 회초리를 잡고서 친다는 뜻을 담은 칠 복(攵=攴)로 짜여 있다. 여기서 己(기)는 잘못을 저지르고서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을 뜻하는데, 그 못된 버릇을 올바로 잡기 위해 회초리를 잡고 매질을 한다(攵)는 데서 ‘고치다’ ‘바로잡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허물 過(과)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입 비뚤어질 와(咼)로 이루어져 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咼(와)는 살 발라낼 뼈 과(冎)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冎(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冎는 사람의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둠을 뜻하는 상형글자로 머리의 융기된 뼈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列子』에 보면 “염(炎)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친척이 죽으면 살을 도려내어 버린다.”라고 하였다. 즉 사체(死體)의 살보다는 뼈를 중시하는 장례풍습으로 아마도 유골(遺骨)이 곧 동기감응(同氣感應)에 따라 후손에게 영향을 미친다고 본 고대 동양 사람들의 사상적 맥락이 반영된 것이다. 이에 따라 살을 발라낸 앙상한 뼈(冎)만으로 된 입(口)은 비뚤어져 보인 데서 ‘입이 비뚤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過(과)의 전체적인 의미는 입이 비뚤어진 사람의 입(咼)에서 나온 말은 심성이 곱지 못해 말 역시 잘못되어 나온다(辶)는 데서 ‘허물’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그 말이 정도를 넘어선다는 데서 ‘지나치다’의 뜻도 함유하게 되었다.
옮길 遷(천)의 구성은 쉬엄쉬엄 걸어가는 모양을 그려낸 착(辵)의 간략형인 쉬엄쉬엄 갈 착(辶)과 오를 선(䙴, 천)으로 이루어졌다. 䙴(선)은 두 손을 내려 뭔가를 잡고 있는 모양의 덮을 아(襾)와 두 팔을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을 상형한 큰 대(大), 그리고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의 모양을 그린 병부 절(㔾)로 구성되었는데, 그 의미는 꿇어앉은(㔾) 사람(大)을 가마에 태워 마주 들고(襾)가는 모양으로 遷(천)의 옛글자다. 따라서 遷(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을 가마에 태워(䙴) 천천히 간다(辶)는 데서 ‘옮기다’ ‘바꾸다’ 등의 뜻을 부여했다.
착할 선(善)의 구성은 양 양(羊)과 말다툼할 경(誩)의 생략형으로 짜여 있다. 羊(양)은 예부터 상서로운 동물로 여겼는데, 두 뿔과 몸통 및 네 발 그리고 꼬리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羊(양)은 牛(소)와 함께 신에게 바치는 대표적인 동물로 희생할 犧(희)의 자형을 이루고, 또한 착하고 온순하다는 이미지를 빌어 살펴볼 善(선)자의 부수로 활용되고 있다. 금문에 처음 보인 善(선)의 자형하부는 본래 말씀 언(言)자 두 개가 겹쳐진 誩(경)이었는데, 단순화하여 입(口)을 강조하고 있다. 言(언)은 입(口)에서 나온 소리(辛)를 나타낸 글자로써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언어적 행위와 관련된 뜻을 지니게 된다. 따라서 두 사람이 언성을 높여 말다툼 한다는 것을 誩(경)이라는 글자에 담았다. 그러나 사람이 아닌 양(羊)의 경우에는 두 마리 이상이 어울려도 그 하는 말들이(言+言) 오순도순 정답게 보여 ‘착하다’ ‘좋다’는 의미를 부여 했다.
改過遷善이란 지나간 과거의 허물이나 잘못을 고치고 착한 사람으로 거듭남을 이르는 말이다. 『진서晉書』「본전本傳」에 나오는 말로 진나라 혜제(惠帝) 때 주처(周處)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열 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방탕하고 포악한 일을 일삼아 주변 사람들로부터 장교(長橋)의 교룡(蛟龍)과 함께 삼해(三害)라는 평을 받았다. 그는 지난날의 과오를 깨닫고 새사람이 되겠다고 다짐했지만 마을 사람들은 믿지 않았다. 결국 그는 마을을 떠나 학자 육기(陸機)를 만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그의 덕담을 가슴에 새기고 10여 년 동안 학문과 덕을 쌓아 온전히 새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가슴을 울리는 덕담은 사람을 새롭게도 할 수 있다.
요즘은 휴대폰의 성능이 다양화됨에 따라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종이책 읽는 사람을 보기가 드물다. 갈수록 이러한 현상은 더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종이책만 하겠는가 하는, 책장을 넘기는 재미를 대신할 수 있겠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강 이름 洛(낙)의 구성은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각각 각(各)으로 이루어졌다. 各(각)은 뒤처져 올 치(夂)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뒤처져 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여기서 口(구)는 움푹하게 파인 고대인들의 거주지인 움집을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그 의미는 저마다 자기의 움집(口)으로 돌아간다(夂)는 데서 ‘각각’ ‘각기’라는 뜻이 생겨났다. 이에 따라 洛(낙)은 물길(氵)이 아래로 계속해서 흘러간다(各)는 데서 ‘잇다’를 본뜻으로 하며 강 이름인 ‘낙수’를 뜻하기도 한다.
볕 陽(양)의 구성은 언덕 부(阝)와 볕 양(昜)으로 이루어졌다. 阝(부)는 인공으로 만든 계단을 본뜻으로 한 阜(부)의 약자(略字)다. 갑골문을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 모양이다. 즉 고대 황하유역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토굴을 오르내리기 쉽게 통나무를 깎아 계단을 만든 모양이었다. 또한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기 쉽도록 흙을 깎아내 계단을 만들었는데 본뜻인 ‘계단’보다는 ‘높은 언덕’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昜(양)은 태양을 본뜬 (日)과 햇볕이 내리 쬐이는 모양(一 + 勿)으로 구성되었다. 그러나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둥근 해(日)아래에 T자형의 장대를 세워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는 ‘해시계’를 뜻하는 것으로 나타나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햇살을 빗금으로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陽(양)의 전체적인 의미는 햇볕(昜)이 내리 쬐이는 양지바른 언덕(阝)이란 데서 ‘양지’ ‘볕’을 뜻하게 되었다.
종이 紙(지)의 구성은 가는 실 사(糸)와 각시 씨(氏)로 이루어졌다. 糸(사)는 가느다란 실을 감아놓은 실타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氏(씨)는 땅속으로 뻗어 내린 나무의 뿌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즉 여성으로 상징되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사는 나무의 하부를 나타낸 글자로 모계사회에서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남성인 아버지의 계통을 나타내는 글자가 되었다. 따라서 紙(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누에고치에서 뽑은 섬유질(糸)과 나무뿌리 등을 두드려 얻은 섬유질(氏)을 물에 불려서 만든 ‘종이’를 뜻하게 되었다.
귀할 貴(귀)의 자형상부는 갑골문에서는 두 손으로 뭔가를 움켜쥐고 있는 모양의 국(국臼: 자형하변이 떨어져 있음)자 형태였는데 금문과 소전으로 오면서 가운데에 ‘人’모양이 끼어들면서 ‘삼태기 궤’자이다 오늘날과 같은 ‘虫’자 형으로 변했다. 그래서 본뜻은 삼태기와 같은 고리짝(虫)에 진귀한 보물이나 돈(貝)을 담아 소중히 간직한다는 데서 ‘귀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자형상부의 모양을 벌레 충(虫)으로 보고서 조개(貝)에 아름다운 진주가 형성되려면 먼저 모래나 작은 이물질이 그 속에 착상되어야 하는데, 옛사람들은 이를 벌레(虫)가 먹은 것으로 파악하였다. 따라서 인문학적인 해석을 가해 벌레(虫) 먹은 조개(貝)는 나중에 영롱한 진주를 머금게 돼 귀한 존재로 대접받았다는 데서 ‘귀하다’로 해석하기도 한다.
洛陽紙貴란 낙양의 종이가 귀해졌다는 뜻으로, 지은 책이 호평을 받아 잘 팔림을 이르는 말이다. 『진서晉書』「문원전文苑傳」에 나오는 말로, 제(齊)나라의 좌사(左思)라는 사람이 『제도부齊都賻』라는 명문을 쓰고 난 후 10여 년에 걸쳐『삼도부三都賻』를 썼지만 알아주는 이가 없었는데, 어느 날 서진의 유명한 시인인 장화(張華)가 읽어 보고 대문장가인 ‘반고(班固)와 장형(張衡)에 버금가는 작품’이라고 칭찬하였다. 그러자 많은 사람들이 베껴 쓰려 해 낙양의 종이 값이 올랐다고 한다. 요즘 말로 하면 베스트셀러가 되었다는 얘기다.
살다보면 아무 연관도 없는 것 같은데, 화를 당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불교에서는 이것마저도 인연의 법칙으로 해석하기도 하지만, 당한 사람의 입장에서는 여간 억울한 게 아닐 것이다. 그런데 어쩌랴. 우리 사는 우주에 인연 아닌 게 없다는데.
재앙 殃(앙)의 구성은 부서진 뼈 알(歹)과 가운데 앙(央)으로 이루어졌다. 歹(알)에 대해 『說文』에서는 “歺은 뼈가 부서진 잔해를 말한다. 뼈 발라낼 冎(과) 자를 반 쪼갠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冎(과) 자는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둔 것인데, 이를 또 반으로 쪼개니 뼈의 잔해라는 뜻이다. 따라서 歺(알: 歹)이 다른 부수와 자형을 이룰 때는 ‘죽음’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央(앙)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보이는데, 두 팔과 다리를 벌리고 서 있는 사람의 모양을 상형한 大(대)의 머리 부분에 갑골문에서는 ‘凵’모양으로 그려져 있고, 금문 이하에서는 ‘冂’모양으로 차이가 난다. 초기자형의 갑골문에 따르면 ‘凵+大’는 곧 베개(凵)의 중앙을 베고 누운 사람(大)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금문에는 현재자형과 비슷한 ‘冂+大’는 곧 긴 막대기 양 끝에 물건을 얹고서 중앙부위를 어깨에 메고 다니는 담가(擔架, 冂)로 보기도 하는데, 둘 다 ‘중앙’을 뜻하는 데는 큰 무리가 없을 것 같다. 따라서 殃(앙)의 전체적인 의미는 뼈가 으스러질 정도(歹)로 부상을 당해 베개를 베고 누워(央)있다는 데서 ‘재앙’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미칠 及(급)은 서있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사람 인(人)과 오른손의 모양을 상형한 오른손 우(又)로 구성되었는데, 앞서가는 사람(人)을 뒤에서 손(又)으로 붙잡을 수 있다는 데서 ‘미치다’ ‘도달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못 池(지)의 구성은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강을 본뜬 水(수)를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한 물 수(氵)와 어조사 야(也)로 이루어졌다. 也(야)는 금문과 소전에 나타난 모양으로 볼 때, 여성의 생식기를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그래서 허신도 『說文』에서 ‘也는 女陰也’라 하였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也(야)가 단순히 여성의 생식기만을 상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를 잉태한 어머니의 자궁(子宮)을 뜻한다. 이러한 흔적은 땅(土)은 만물을 키워내는 어머니(也)라는 점에서 ‘땅 地(지)’, 물(氵)은 만물을 키워내는 근원(也)이라는 점에 ‘못 池(지)’라 하였음을 볼 수 있다.
물고기 魚(어)는 물고기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즉 자형상부의 ‘勹’모양은 물고기의 머리를, 중간의 ‘田’모양은 몸통을, 그리고 하변의 ‘灬’는 지느러미를 나타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속에 사는 물고기의 총칭(總稱)으로 쓰이고 있다. 글자의 초기형태인 갑골문의 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殃及池魚란 재앙이 연못 속의 물고기에 미친다는 뜻으로, 뜻밖의 재앙을 당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그 유래가 『여씨춘추呂氏春秋』「필기편必己篇」과 『태평어람太平御覽』에 전한다. 춘추전국시대에 송나라에 환(桓)이라는 사람이 진귀한 보석을 가지고 있었는데, 죄를 짓고 도망가자 왕은 그 보석을 탐을 내 환관에게 찾을 것을 명했다. 어렵사리 찾아냈는데, 환은 보석을 도망칠 때 궁궐 앞의 연못에 던져버렸다고 했다. 이에 연못에 그물을 던져 훑어도 없자 결국에는 물을 모두 퍼내게 하였지만 보석은 찾지 못하고 애꿎은 연못의 물고기만 떼죽음을 당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또한 초나라의 성문에 화재가 나자 불을 끄기 위해 연못의 물을 다 퍼다 쓰자 물고기들이 말라 죽었다는 것이다.
“아는 사람은 말하지 않고, 말하는 사람은 알지 못한다(知者不言, 言者不知)”고 도덕경 56장에서 서술하고 있다. 예부터 아는 사람은 행동을 귀히 여길 뿐, 뭔가를 안다고 말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무리 群(군)의 구성은 임금 군(君)과 양 양(羊)으로 짜여 있다. 君(군)은 통치의 상징인 지팡이를 오른손에 쥐고(尹)서 입(口)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곧 ‘임금’이나 ‘주권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羊(양)의 자형상부는 두 개의 뿔을, 중앙은 통통한 몸통과 네 다리를, 그리고 하부는 꼬리를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유순한 양은 동물 중에서도 떼를 지어 다니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따라서 群(군)의 전체적인 의미는 무리를 지어 떼로 몰려다니는 양(羊)은 가장 힘이 센 우두머리(君)를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그 특징 살펴 ‘무리’라는 뜻을 부여 하였다.
소경 盲(맹)의 구성은 망할 망(亡)과 눈 목(目)으로 이루어졌다.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 썼는데(罒),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따라서 盲(맹)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물을 관찰할 수 있는 눈(目)의 기능을 잃어(亡)버렸다는 데서 ‘소경’ ‘장님’ ‘눈이 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어루만질 撫(무)의 구성은 손 수(扌)와 없을 무(無)로 이루어졌다. 扌(수)는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약자로 쓰기 편하게 한 획을 줄인 것이다.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따라서 撫(무)의 전체적인 의미는 춤을 추듯(無) 몸을 움직여 뭔가를 손(扌)으로 붙들거나 만진다는 데서 ‘어루만지다’ ‘쥐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코끼리 象(상)은 코끼리의 특징이기도 한 긴 코와 넓은 귀, 엄니 그리고 네 발과 꼬리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다. ‘코끼리’가 본뜻이지만 ‘상상하다’ ‘그리다’의 뜻도 지니고 있는데, 이를 『한비자韓非子・해로편解老篇』에서는 “사람들은 살아있는 코끼리를 볼 일이 드물어서 죽은 코끼리의 뼈를 줍게 되면, 그것을 근거로 살아있는 모습을 상상하여 그리게 되었다. 그래서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상상하는 것을 모두 象(상)이라 하였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기원전 2-3세기에 살았던 한비자보다 훨씬 이전시대에는 중원의 대륙에도 코끼리가 살았다는 이야기다. 즉 코끼리의 긴 코를 잡고서 일을 시켰던 ‘할 爲(위)’자에 그 흔적이 남아 있다. 아마도 수십만 년 전 살았던 공룡의 뼈를 통해 공룡을 복원하는 것을 빗대어 생각하면 될 것 같다.
群盲撫象이란 여러 장님들에게 코끼리를 만지게 한다는 뜻으로, 전체를 파악하지 못하고 부분만을 아는 좁은 소견을 이를 때 비유적으로 쓰이는 성어다. 『열반경涅槃經』「사자후보살품獅子吼菩薩品」에서 유래한 것으로, 어느 왕이 장님들을 불러 모아 각자 코끼리를 만져보게 하였다. 그리고는 무엇과 비슷한가를 묻자 상아를 만진 사람은 무와, 귀를 만져본 사람은 키와, 다리를 만져 본 사람은 절구와, 등을 만져본 사람은 침상과, 배를 만진 사람은 독과, 꼬리를 만져본 사람은 새끼줄과 같다고 하였다. 이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분명 코끼리를 말하고 있지만 각자의 소견에 따른 것일 뿐 전체를 말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떤 사물을 파악할 때 작은 일부분으로 전체를 판단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지는 않은지 살펴볼 일이다.
마음에서 우러난 감정을 글로 쓰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모든 사람이 감동할만한 문장력을 갖춘다는 것은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수많은 글을 읽고 수없이 써보는 것 외에 달리 방도가 있는 것은 아니다.
아래 下(하)는 上(상)자와 함께 사람의 생각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대표적인 지사(指事)글자다. 갑골문에 새겨진 자형을 보면 드넓은 지평선을 의미하는 긴 횡선 아래에 보다 짧은 가로선을 그은 모양이었다가 금문으로 오면서 아래의 짧은 횡선이 세로로 바뀐 ‘丅’모양이 되었으며, 그러다 하단 오른쪽에 점(丶) 하나를 더 찍어 오늘날의 자형이 되었다. 그 뜻은 지평선(一)보다 낮은 위치(卜)를 나타내 ‘아래’ ‘낮다’ 등의 의미를 부여하였다.
붓 筆(필)의 구성은 대나무 죽(竹)과 붓 율(聿)로 짜여 있다. 竹(죽)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竹은 겨울에도 살아 있는 풀이며 상형글자이다.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죽순의 껍질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서는 대나무 줄기(丨)에 죽순이 올라오며 자연스레 벗겨지는 껍질을 나타낸 것이다. 죽(竹)이 다른 부수를 만나 새로운 글자를 만들 때는 대부분 자형의 상부에 놓이며 대나무와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聿(율)은 붓 대(丨)를 손으로 잡고(彐)있는 모양과 함께 동물의 가는 털을 모아 만든 붓(二)의 형태를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로 본디 ‘붓’을 뜻하였으나 ‘마침내’ ‘드디어’ ‘이에’ 등의 어조사로 쓰이자, 붓대의 재질인 대나무를 뜻하는 竹(죽)을 더하여 筆(필)을 따로 만들었다.
이룰 成(성)의 글자형성은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관련이 깊다. 십간은 곡식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수확되어 창고에 갈무리되었다가 다시 파종되는 일련의 순서를 나타낸다. 즉 씨앗이 파종되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내리게 되는데, 甲(갑)의 자형하부가 곧 뿌리를 뜻한다. 乙(을)은 싹이 터 어느 정도 자라난 모양을, 丙(병)은 자라나 저마다 꼴의 형태를 갖춘 것을, 丁(정)은 장성하게 자라난 모양을, 戊(무)는 지나치게 웃자라지 못하도록 전지가위를 이용해 잘라주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장성하게 자라(丁) 전지(戊)해 줄 정도가 되면 식물의 성장이 다 ‘이루어진’ 것으로 보는 것이다.
글 章(장)의 구성은 소리 음(音)과 열 십(十)으로 이루어졌다. 音(음)은 입(口)에 나팔과 같은 관악기(辛)를 불고 있는 모양, 즉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한자에서 十(십)은 완전함을 갖춘 수를 의미하는데, 여기서는 한 단락을 뜻한다. 따라서 章(장)의 전체적인 의미는 음악(音)의 한 단락(十), 또는 소리(音)를 글자로 구성한 한 단락(十)이란 데서 ‘문장’ ‘악곡의 한 절’을 뜻한다.
下筆成章이란 붓을 들어 쓰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다는 뜻으로, 뛰어난 글재주를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삼국지三國志』「위서魏書」에서 유래한 것으로, 조조(曹操)의 아들 조식(曹植)이 한 말이다. 조조가 조식이 쓴 뛰어난 문장을 보고 “너! 다른 사람이 대신 써 준 것이 아니냐?”라고 묻자, 조식은 무릎을 꿇고 말하길 “저는 입을 열기만 하면 논리를 갖추게 되고, 붓을 들어 쓰기만 하면 문장이 이루어진답니다. 원하신다면 마땅히 아버님 앞에서 써볼지언정, 어찌하여 남에게 대신 써 달라고 하겠습니까?(太祖嘗視其文,謂植曰:‘汝倩人邪?’ 植跪曰:‘言出爲論,下筆成章,顧當面試,奈何倩人?’)라고 대답하였다. 비슷한 성어로 하필성문(下筆成文)과 하필성편(下筆成篇)이 있다.
분위기를 환기시키기 위해서 때로는 희생양이 필요한 법이다. 전체를 위해서는 소수가 희생된 사례는 역사 속에서 숱하게 많다. 위정자들이 알아야 될 덕목이기도 하다. 전체를 위한 질서와 기강확립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울 泣(읍)의 구성은 물줄기가 모이고 흩어지는 모양을 상형한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설 립(立)으로 이루어졌다. 立(립)은 사람(大)이 땅(一) 위에 서 있는 모습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나중에는 그 뜻이 확대되어 사람에 국한하지 않고 서거나 ‘세우다’라는 의미를 담게 되었다. 따라서 泣(읍)의 의미는 대성통곡한다는 뜻이 담긴 哭(곡)과는 달리 서서(立) 눈물방울(氵)을 뚝뚝 흘리며 소리 없이 눈물짓는다는 데서 ‘울음’ ‘울다’를 뜻하게 되었다.
벨 斬(참)의 구성은 수레 차(車)와 도끼 근(斤)으로 이루어졌다. 車(차)는 우마차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갑골문을 보면 현재의 자형보다 훨씬 자세하게 그려져 있다. 현재 자형에서는 하나의 바퀴(曰)만을 그려놓았는데, 중앙의 ‘丨’은 굴대를 나타냈고 아래위의 ‘二’는 바퀴가 빠지지 않도록 고정시킨 굴대의 빗장이다. 갑골문에 보이는 것처럼 고대의 수레는 두 바퀴로 만들어졌는데, 두 마리의 말이 끄는 게 일반적이었다. 斤(근)의 모양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斬(참)의 전체적인 의미는 고대에 행해진 형벌에서 칼이나 도끼(斤)로 목을 베거나 사지를 마차(車)에 묶어 능지처참하였다는 데서 ‘베다’ ‘끊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일어날 謖(속)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날카로울 측(畟)으로 이루어졌다. 言(언)은 입(口)에서 나온 소리(辛)를 나타낸 글자로써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언어적 행위와 관련된 뜻을 지니게 된다. 畟(측)은 밭 전(田)과 쟁기의 보습을 나타낸 모양(儿), 그리고 천천히 걸을 쇠(夊)로 구성되었다. 田(전)은 경작지를 두둑으로 경계 지은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이다. 대륙의 경작지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大地)여서 논보다는 밭이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산도 없이 구릉으로 이루어져 ‘사냥터’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夊(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畟(측)은 천천히 발걸음 놓으며(夊) 날카로운 쟁기의 보습(儿)을 이용해 밭(田)을 가는 모습을 그려내 ‘보습 날카롭다’는 뜻을 부여했다. 따라서 謖(속)의 전체적인 의미는 쟁기의 날카로운 보습(畟)을 이용해 밭을 갈 때 말이나 소에게 채찍을 가하며 소리(言)낸다는 데서 ‘일어나다’ ‘일어서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泣斬馬謖이란 눈물을 머금고 마속의 목을 벤다는 뜻으로, 사사로운 감정을 버리고 엄정히 법을 지켜 기강을 바로 세우는 일에 비유하는 말이다. 『삼국지三國志』「촉지蜀志·마속전馬謖傳」에서 유래하였다. 유비의 군사 제갈량은 유능한 장군 마속을 중용하였으나, 그가 가정(街亭)의 싸움에서 제갈량의 명령을 어기고 싸우다 패하였다. 이에 제갈량은 마속을 아끼는 마음을 억누르고 군율에 따라 목을 베어 전 군사의 기강을 확립했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우리의 정치현실을 볼 때, 제갈량의 지혜가 필요한 때인 것 같다.
인간의 본성은 선(善)한가? 아니면 악(惡)한가? 는 철학자들의 오랜 숙제였다. 성인들의 가르침은 대부분 선하다고 하였다.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영혼 본디 밝은 빛의 존재였기에 생을 거듭하며 더렵혀진 성을 닦는다하여 수행(修行)이라 하였다.
넉 四(사)는 초기글자인 갑골문에서는 옆으로 네 개의 선을 그은 ‘亖’모양이었는데, 후대로 오면서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의 입과 코 모양을 본뜬 ‘四’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 가차한 것이다. 四(사)에 대해 『說文』에서는 “四는 음(陰)의 숫자이다. 넷으로 나뉜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亖’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실마리 端(단, 바를 단)의 구성은 설 립(立)과 시초 단(耑)으로 짜여 있다. 立(립)은 두 팔을 크게 벌린 사람(大)이 땅(一)위에 서있는 모양을 그대로 상형한 것이다. 耑(단)에 대해 한나라의 문자학자 허신은 “耑은 식물이 처음으로 나오면서 내미는 머리다. 자형의 상부는 자라는 모양을 본떴고, 하부는 뿌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본디 ‘시초’나 ‘실마리’ 등의 뜻을 지녔으나 그 뜻을 보다 명확히 하기위해 설 립(立)을 첨가해 ‘실마리 端(단)’을 별도로 제작하게 되었다.
일곱 七(칠)은 끊을 절(切)의 본래 글자였는데, 숫자 ‘일곱’을 뜻하게 되자 칼 도(刀)를 더해 그 뜻을 명확히 한 경우이다. 즉 七(칠)자의 가로선은 잘리는 물건을, 세로선은 자르는 칼을 뜻한 것으로 보았다. 열 十(십)과 유사해 소전에 이르러 세로획을 현재의 글자 모양으로 변형시켰다. 『說文』에서는 “七은 양(陽)의 바른 수이며 一(일)로 구성되었다. 미약한 음의 기운이 가운데서 비껴 나오는 것이다.”고 하였다.
뜻 情(정)의 구성은 마음 심(忄)과 푸를 靑(청)으로 짜여 있다. 마음(心)의 또 다른 표현인 忄(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러한 心(심)은 놓이는 위치에 따라 자형의 좌변에서는 忄(심), 그리고 자형의 하부에서는 心(심)과 㣺(심)으로 쓰이고 있는데 마음작용과 관련이 깊다. 靑(청)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靑은 동쪽 방향을 나타내는 색이다. 木(목)은 火(화)를 낳는다(오행의 상생관계, 목생화木生火를 뜻함). 生(생)과 丹(단)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문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데, 자형(丹)이 형성된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아 구리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붉은 뜻을 갖은 丹(단)은 안료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다. 이에 따라 구리(丹)가 산화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 착안하여 ‘푸를 靑’이라 하였다. 따라서 情(정)의 전체적인 의미는 깊은 마음(忄)속에서 우러나는 푸른 하늘처럼 맑고 깨끗한(靑) ‘사랑’이나 ‘정’을 말한다.
四端七情이란 성리학의 철학적 개념 가운데 하나로, 사단은 사람의 본성 가운데 인(仁)에서 우러나오는 측은지심(惻隱之心), 의(義)에서 우러나는 수오지심(羞惡之心), 예(禮)에서 우러나는 사양지심(辭讓之心), 지(知)에서 우러나는 시비지심(是非之心)을 말하며, 칠정은 인간의 본성이 사물을 접하면서 나오는 일곱 가지 감정으로 기쁨(喜), 노여움(怒), 슬픔(哀), 두려움( 懼), 사랑(愛), 미움(惡), 욕망(欲)을 말한다. 이러한 감정이 일어나기 전의 상태를 『중용中庸』에서는 중(中)이라 하였다. 현재의 삶에서 자신의 본성을 본래의 모습대로 닦아 가는가! 아니면 오히려 더렵혀가는가!를 곰곰 생각해 볼 일이다.
예부터 많은 사람들이 후세 사람들에게 하는 조언 중에 ‘꿈은 크게 꿀수록 좋다’고 하였다. 마음으로 늘 꾸며가는 자신만의 원대한 꿈은 보다 치밀하게 꿀수록 이루어질 가능성도 높아진다. 마음속에 담긴 포부를 꿈꾸는 자에게는 반듯이 그 길이 열리기 때문이다.
붕새 鵬(붕)의 구성은 벗 붕(朋)과 새 조(鳥)로 이루어졌다. 朋(붕)의 갑골문을 보면 고대시대에 화폐로 쓰였던 조개에 구멍을 뚫어 두 줄에 꿰어 놓은 모양이다. 그래서 고대에는 열 개의 조개를 꿴 것을 1붕이라 하였다. 나란히 두 줄에 꿴 모양에서 고만고만한 또래들이 어울린 ‘벗’ ‘친구’를 뜻하게 되었다. 鳥(조)에 대해 『說文』에서는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현재의 자형 중간부위를 말하며 하부의 네 개의 점은 꼬리를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鵬(붕)의 전체적인 의미는 수많은 벗(朋)을 거느린 듯 엄청나게 큰 새(鳥)라는 데서 하루에 구만리를 난다는 상상의 ‘붕새’를 뜻하게 되었다.
단위 程(정)의 구성은 벼 화(禾)와 드러낼 정(呈)으로 이루어졌다. 禾(화)의 자형은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곡식의 이삭이 익어 수그러진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즉 고개를 숙인 이삭(丿)과 좌우로 뻗은 잎사귀(一), 그리고 줄기(丨)와 뿌리(八)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벼는 곡식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점을 감안하여 모든 곡식의 총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呈(정)은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와 오뚝할 정(壬)으로 구성되었다. 현재는 자형으로만 볼 때, 壬(임)과 壬(정)은 같지만 초기 갑골문에서는 전혀 다른 뜻을 가지고 있다. 壬(임)의 갑골문자형은 ‘工’의 모양으로 되어 있는데, ‘두 개의 도끼’ ‘베틀’ 혹은 ‘사람이 임신한 모양’ 또는 그 모습이 마치 짐을 진 것 같다하여 ‘짊어지다’의 뜻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壬(정)의 갑골문을 보면 우뚝한 땅(土)위에 서있는 사람(亻)을 그려내고 있다. 이에 따라 呈(정)은 높은 곳에 올라간 사람(壬)이 대중을 위해 말(口)하는 모습을 그려내 ‘드러내다’는 뜻을 부여했다. 따라서 程(정)의 전체적인 의미는 벼와 같은 곡식(禾)의 량을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 일정한 도량형을 선포(呈)한다는 데서 ‘단위’ ‘도량형의 계량기’를 뜻하게 되었다.
일만 萬(만)은 전갈(全蝎)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전갈이 한 번에 많은 알을 낳는다는 데서 ‘많다’는 뜻의 ‘일만’이란 의미를 상징적으로 부여하였다. 거미류 중에서는 가장 기원이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갈은 대부분 열대와 아열대지역에 분포하며 야행성이다. 종류에 따라 꼬리 끝의 독침에는 치명적인 맹독을 지니고 있어 예부터 경계대상이었다. 이러한 전갈이 많은 수를 뜻하는 것은 한 번에 많은 알을 많이 낳는다는 점을 차용한 것이다. 주로 나무 밑이나 언덕(厂)에 숨어 사는 전갈(萬)은 무섭고 사나운(厲: 사나울 려) 존재였다.
마을 里(리)는 밭 전(田)과 흙무더기를 쌓아놓은 모양을 상형한 흙 토(土)로 구성되었다. 田(전)은 경작지를 두둑으로 경계 지은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이다. 대륙의 경작지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大地)여서 논보다는 밭이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산도 없이 구릉으로 이루어져 ‘사냥터’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里(리)의 의미는 일정한 농토(田)를 중심으로 흙(土)을 쌓아 올려 줄지어서 집을 짓고 산다는 데서 ‘마을’을 뜻하게 되었다.
鵬程萬里란 붕새가 한 번 날아가면 그 길이 만 리라는 뜻으로, 머나먼 노정, 또는 원대한 사업이나 계획을 비유적으로 말할 때 쓰인다. 『장자莊子』「소요유편逍遙遊篇」에서 유래한 것으로, “붕새는 등의 넓이만도 몇 천리인지 모른다. 힘껏 날아오르면 그 날개가 마치 하늘을 뒤덮은 구름과 같았다(鵬之背 不知其幾千里也 怒而飛 其翼若垂天之雲)”고 하였을 만큼 웅장하고 상상을 초월한 크기로 비유하고 있다. ‘참새가 어찌 봉황을 뜻을 알랴’에서처럼 큰 뜻을 품은 사람을 뜻하기도 한다. 꿈은 클수록 좋다.
고대인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무협영화를 보면 일평생 아버지의 원수를 죽이기 위해 무술을 닦는 이야기들을 자주 접할 수 있다. 죽임과 죽임이 계속되는 한 원수는 원수를 낳을 뿐이다. 용서(容恕)는 곧 누굴 위해서가 아니라 자기 자신의 내공을 위한 것이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함께 俱(구)의 구성은 서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사람 인(亻)과 갖출 구(具)로 이루어졌다. 具(구)는 갑골문과 금문에도 보이는데, 두 손(廾)으로 밥을 지을 수 있는 솥(鼎이 간략화된 자형상부)을 들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즉 신분고하를 막론하고 밥 짖는 솥은 어느 집이나 갖추어야 되는 필수적인 용품이라는 데서 ‘갖추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俱(구)의 의미는 여러 사람(亻)이 한 집안의 밥 짓는 솥을 함께 거들어 갖춘다(具)는 데서 ‘함께’ ‘모두’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일 戴(대)의 구성은 다를 이(異)와 才(재)의 간략형인 열 십(十) 그리고 창 과(戈)로 짜여 있다. 異(이)에 대해 자전에서는 밭 전(田)과 함께 공(共)으로 짜인 것으로 분류하고 있는데, 금문을 살펴보면 괴이한 탈을 쓰고 있는 사람을 상형한 것이다. 異(이)에 대해『說文』에서는 “異는 나눈다는 뜻이며, 廾(공)과 畀(비)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여기서 畀(비)는 물건(田)을 나누어 준다(廾)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를 바탕으로 단옥재는 주석에서 “(어떤 물건이든) 나누게 되면 이것과 저것의 다름이 있게 된다.”라고 설명하였다. 그러나 금문에 새겨진 모양은 ‘귀신의 탈을 쓰고 있는 무당과 같은 사람’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귀신의 탈을 썼으니 ‘기이’하기도 하고 일반인과는 ‘다르다’는 뜻을 담게 되었다. 才(재)는 초목이 어느 정도 자란 모양을 본뜬 글자였지만 ‘재주’나 ‘재능’을 뜻하게 되었다. 또한 베고 찌르는 살상용 무기를 본뜬 戈(과)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대부분 찌르고 자르는 의미를 갖게 된다. 따라서 戴(대)의 전체적인 의미는 귀신의 탈을 쓴 기이한 형색을 한 사람(異)이 머리위로 몽둥이(十)이나 창(戈)을 치켜든 모습을 그려내 ‘이다’ ‘머리 위에 올려놓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하늘 天(천)은 큰 대(大)와 한 일(一)로 이루어진 회의글자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본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一(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라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天(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위로 끝없이 펼쳐진 허공(一)을 표시하여 ‘하늘’이란 뜻을 부여하였다.
不俱戴天이란 같은 하늘을 이고는 함께 살 수 없는 원수(怨讐)를 뜻하는 것으로, 『예기禮記』「곡례편曲禮篇」에서 유래하였다. 즉 “아버지의 원수와는 함께 하늘을 이고 살 수 없고(父之讐弗與共戴天), 형제의 원수를 보고 무기를 가지러 가면 늦으며(兄弟之讐不反兵), 친구의 원수와는 나라를 같이 해서는 안 된다(交遊之讐不同國)”는 기록이 그것이다. 전쟁을 일삼았던 고대인들의 가부장제식 의리관을 보여주는 사례다.
때로 듬직함이 좋기는 하지만 무뚝뚝함은 곁에 있는 사람을 답답하게 만든다. 살가운 미소와 함께 다정다감하게 다가오는 사람이 각광받는 이유다. 유불선 삼교 중에서도 유교의 영향이 컸던 우리네 조상들은 남존여비사상과 함께 지나치게 과묵함을 강조, 가족 간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 같다.
푸를 碧(벽)의 구성은 구슬 옥(玉)과 흰 백(白) 그리고 돌 석(石)으로 짜여 있다. 玉(옥)자는 옥으로 만든 둥근 구슬 세 개(三)를 실에 꿰어(丨) 놓은 모습인데,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점(丶)을 생략한 채 王(왕)자처럼 쓴다. 白(백)은 ‘엄지손가락’의 흰 부위를 본떴다는 설과 ‘사람의 머리’를 상형하였다는 설이 있는데, 갑골문에서는 白(백)과 百(백)이 혼용되다가 금문(金文)에 이르러 百(백)이 숫자 100을 뜻하는 것으로 정착되어 희다는 뜻을 가진 白(백)과 구분하기 시작한 것 같다. 石(석)은 산기슭이나 낭떠러지를 상형한 厂(엄)과 그러한 곳에 떨어져 굴러다니는 돌(口)을 본뜬 상형글자다. 따라서 碧(벽)의 전체적인 의미는 흰빛(白)을 띠는 푸른빛의 옥(玉) 돌(石)이라는 데서 ‘푸르다’ ‘옥돌’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창성할 昌(창)은 해 일(日)과 가로 왈(曰)로 구성되었다. 갑골문에 새겨진 昌(창)의 자형은 해(日)와 그 아래에 네모진 모양(口)이다가 소전에 이르러서야 曰(왈)의 고문이 그려지게 되었다. 日(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日은 가득 차 있음을 말한 것이다. 태양의 정기 및 모양이 이지러지지 않음을 나타낸 것이다. ‘○’과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태양의 둥근 모양과는 달리 네모지게 그린 것은 거북껍질이나 소의 견갑골 등에 새기려면 아무래도 둥글게 칼을 쓰는 것보다는 결을 따라 네모지게 하는데 편리하였기 때문일 것이다.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다.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따라서 昌(창)의 전체적인 의미는 찬란하게 빛나는 해(日)와 같이 밝게 말한다(曰)는 데서 ‘창성하다’ ‘번성하다’ ‘아름답다’는 등의 뜻을 나타내고 있다.
소 牛(우)는 소의 뿔과 몸통을 강조한 상형글자이다. 牛(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牛는 일하다와 어떠한 이치라는 뜻이며, 두 개의 뿔과 머리를 나타낸 이 셋과 양 어깨 및 꼬리의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소는 농경문화에서는 논밭을 일구는 일(事)의 대명사라 할 수 있으며, 또한 사람을 대신해서 천제(天祭)에 바치는 제물로 쓰임에 따라 상서로움을 안고 있는 동물로 묘사하고 있다. 따라서 돼지(豕)나 말(馬), 코끼리(象) 등은 네 다리를 그려 넣고 있는데 반해 신성한 의미의 소(牛)는 다리를 그리지 않고 있다. 그래서 牛(우)자는 어떤 중요한 물건(物件)을 나타내거나 제사와 관련된 희생(犧牲)과 같은 의미로 쓰이고 있다.
碧昌牛란 우리나라 평안북도의 벽동(碧潼)과 창성(昌城) 지방의 크고 억센 소라는 뜻으로, 미련스러울 만큼 고집이 세고 억척스러워 말이 통하지 않는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일반적으로 말하는 ‘벽창호’의 본딧말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여우하고는 살아도 곰하고는 못 산다’고 했는가 보다.
동양사회의 미덕이었던 대가족제도가 해체된 요즘 가정의 위계질서는 물론 노인을 공경하는 아름다운 미풍이 흔들리고 있다. 핵가족이라는 단출함이 때론 홀가분하기도 하지만 인정(人情)이 메마르게 된 한 원인이 되고 있다.
되돌릴 反(반)의 구성은 기슭 엄(厂)과 또 우(又)로 짜여 있다. 厂(엄)은 산기슭이나 낭떠러지를 의미한다. 또한 又(우)는 오른손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양 손의 사용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두 손(又)을 사용하여 낭떠러지(厂)를 거슬러 올라간다는 뜻이 담겼다. 또한 如反掌(여반장)의 ‘손바닥 뒤집듯이’에서처럼 ‘뒤집다’는 뜻도 있다.
먹일 哺(포)의 구성은 입 구(口)와 클 보(甫)로 이루어졌다.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다. 甫(보)는 갑골문을 참조할 때 초목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을 상형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인데,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哺(포)의 전체적인 의미는 밭에서 기른 각종 곡식(甫)을 입(口)으로 먹는다는 데서 ‘먹이다’ ‘먹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효도 孝(효)의 구성은 늙을 노(老)의 간략형인 노(耂)와 아들 자(子)로 이루어져 있다. 老(노)는 ‘머리카락(毛)을 길게 산발하고 허리를 굽힌 사람(人)이 지팡이(匕)를 짚고 서 있는 모양’으로 노인을 뜻한다. 여기서 子(자)는 어린아이가 아닌 자식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금문에 처음 보인 孝(효)의 의미는 늙은 어버이(耂)를 지팡이 대신 자식(子)이 업고 있는 모양을 그려내 부모를 잘 모신다는 뜻을 담아 ‘효도’를 뜻하게 되었다.
反哺之孝란 새끼 까마귀가 자란 뒤에는 도리어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는 효성이라는 뜻으로, 자식이 성장하여 부모님을 지극한 효성으로 봉양함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이시진의 『본초강목本草綱目』에 따르면 ‘까마귀는 부화되어 60일 까지는 어미 새의 보살핌을 받지만 성장한 이후부터는 지극정성으로 어미 새에게 먹이를 물어다 준다’고 습성을 기록하고 있다. 그래서 동양사회에서는 까마귀를 효도를 뜻하는 반포조(反哺鳥), 인자한 까마귀라는 뜻의 자오(慈烏)로 불리고 있다.
동서고금(東西古今)을 넘나들며 유람할 수 있는 일은 독서를 통해서이다. 행간 뒤에 숨은 뜻까지를 파악하자면 속독보다는 읽은 시간 이상의 곱씹는 시간이 소요되어야 한다. 양서를 만나는 일이 곧 훌륭한 스승을 모시는 것과 진배없다.
넓을 博(박)의 구성은 열 십(十)과 펼 부(尃)로 짜여있다. 十(십)에 대해 『說文』에서는 “十은 완전히 갖춘 수이다. 一은 동과 서쪽이고 丨은 남과 북쪽이니 사방과 중앙을 갖추었다.”라고 하였다. 한자에서 숫자 十(십)은 완성수로 여기기 때문에 신(神)이 아닌 인간에게는 부여하지 않는다. 그래서 바둑이나 무술에 있어서 그 경지가 아무리 뛰어나다할지라도 최고 9단일뿐 10단은 없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많다’ ‘넓다’는 뜻으로 쓰였다. 尃(부)는 클 보(甫)와 사람의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甫(보)는 갑골문을 참조할 때 초목의 새싹을 틔워 자라나는 모양을 상형한 싹날 철(屮)과 밭 전(田)이 새겨진 모양인데, 소전으로 오면서 현재자형의 모양을 갖추었다. 막 새싹(屮)이 자라날 때의 밭(田)은 상대적으로 크게 보인다는 데서 ‘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밭(田)을 일구고 농사(屮)를 짓는 사람은 남자라는 데서 이름(字) 뒤에 미칭(美稱)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는데, 그래서 ‘사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이에 따라 尃(부)는 밭(田)에 뿌린 곡식의 모(屮)가 잘 자라도록 일일이 손(寸)으로 넓게 옮겨 심는다는 데서 ‘펼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博(박)의 전체적인 의미는 모판에 심은 농작물의 모종을 보다 넓은(十) 땅에 옮겨 심는다(尃)는 데서 ‘넓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볼 覽(람, 남)의 구성은 볼 감(監)과 볼 견()으로 짜여 있다. 監(감)은 신하 신(臣)과 사람 인(人), 그리고 한 일(一)과 그릇 명(皿)으로 구성되었다. 臣(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臣은 끌고 간다는 뜻이다. 군왕을 섬기는 사람으로 몸을 굽혀 복종하는 모습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 등에서는 부릅뜬 눈을 본뜬 글자로 그려져 있다. 즉 노예로 붙잡혀 온 사람의 툭 튀어나온 눈을 그렸다. 따라서 고대에는 왕의 노예가 주로 수발을 들었으니 후에는 신하로까지 그 의미가 발전한 것으로 본다. 人(인)은 서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것이며, 여기서 一(일)은 물을 담은 그릇에 어리비치는 모양을 나타낸다. 皿(명)은 음식이나 뭔가를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그래서 監(감)의 의미는 사람(人)이 물을 담은 대야와 같은 용기(皿)에 어리비치(一)는 자신의 얼굴을 굽어본다(臣)는 뜻이 담겨 ‘보다’ ‘살피다’ ‘거울’ 등의 의미였으나, 청동기(金)가 도입되면서 ‘거울’을 뜻하는 자형으로 鑑(감)을 별도로 제작하였다. 見(견)은 사람의 눈을 상형한 목(目)과 사람의 발을 본뜬 儿(인)을 결합하여 뭔가를 ‘본다’는 뜻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覽(람)의 전체적인 의미는 고개를 숙여 보고(監) 또 본다(見)는 뜻으로 철저하게 ‘살펴본다’는 행위적 요소를 강조하였다.
굳셀 强(강)은 넓을 홍(弘)과 벌레 충(虫)으로 이루어져 있다. 弘(홍)은 활 궁(弓)과 사사로울 사(厶)로 구성되었다. 弓(궁)에 대한 갑골문의 자형은 활의 모양을 그대로 그린 모양이며, 금문에 와서 활시위를 매지 않은 모양으로 변화하였다. 이는 곧 쓰지 않을 때는 활시위를 풀어 둠으로써 활의 탄력성을 높이려는 의도로 보인다. 厶(사)는 활의 가장 단단한 부위를 표시한 것이라고도 하나, 팔뚝 厷(굉)의 생략형으로 보는 게 의미적으로 설득력을 갖는다. 또한 화살을 쏠 때의 소리를 표시한 것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따라서 弘(홍)의 의미는 활(弓) 시위를 힘껏 당겨(厶) 쏠수록 멀리 나아간다는 이치를 담아 ‘넓다’ ‘크다’는 뜻을 부여하였다. 虫(충)은 벌레나 파충류, 그리고 양서류와 같은 생물들이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굴이나 집을 지어 사는 벌레의 총칭이다. 따라서 强(강)의 전체적인 의미는 쌀벌레의 일종인 바구미(虫)를 뜻한 것으로, 몸체 작지만 단단하여 한 번 기승을 부리면 쌀에 대한 피해가 크다(弘)하여 사람의 주식인 쌀을 없애는 ‘강한 놈’으로 인식한데서 ‘강하다’의 뜻이 생겼으며, ‘억지를 부리다’는 뜻은 파생한 것이다.
기록할 記(기)는 말씀 언(言)과 몸 기(己)로 이루어졌다.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己(기)에 대해 『說文』에서는 “己는 방위상 중궁을 뜻한다. 만물이 안으로 갈무리 하므로 구부러진 모양을 본떴다. 己(기)는 戊(무) 다음에 오며, 사람의 배를 상징한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 역시 지금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몇 군데 매듭을 지어놓은 새끼줄의 상형’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문자가 있기 전 고대 사람들이 새끼줄이나 띠 따위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은 결승문자(結繩文字)로 보는 것이다. 따라서 記(기)의 전체적인 의미는 새끼줄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은 己(기)가 ‘몸’이라는 뜻으로 쓰이자 言(언)을 더해 ‘기록하다’는 뜻을 보다 확실히 했다.
博覽强記란 동서고금의 책을 두루두루 읽고 생생하게 잘 기억한다는 뜻으로, 인류가 기록한 서적들을 통해 시공을 넘나들며 지식과 지혜를 쌓음을 말한다. 생명의 한계 때문에 훌륭한 스승을 만나기란 쉽지 않지만, 각자가 체득한 지식과 지혜를 담은 책들은 영원한 스승이 될 수 있다. 따라서 책을 쓰는 일, 후세인에게 남길 수 있는 유산이다.
아무리 뛰어난 사람이라 할지라도 자식과 머리를 맞대고 이성적으로 가르치는 아버지를 보지 못했다. 이성적인 지식의 교환보다는 감정의 골만이 더욱 깊어짐을 보았을 뿐이다. 아마도 너는 내 자식이라는 소유욕을 버리지 못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역자교지(易子敎之)했다.
바꿀 易(역, 쉬울 이)에 대한 분분한 해석은 네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 변화무쌍한 ‘도마뱀’을 상형한 것으로 ‘도마뱀 蜴(척)’의 본디글자라는 주장이다. 둘째, 갑골문의 자형에 따른 것으로 용액을 의미하는 세 점(氵)과 주석덩어리를 나타낸 ‘주석 錫(석)’의 본자라는 설이다. 셋째, 시간의 변화를 주도하는 해와 달의 상형설인데 갑골문이나 금문과는 전혀 다르고 현재자형으로 확립된 소전을 보고서 해석한 것이다. 넷째는 초기 갑골문의 자형을 보고서 두 손을 이용하여 그릇에 담긴 물을 다른 용기에 붓는 모양으로 해석하며, 그릇에서 다른 용기로 물을 붓는 모양에서 ‘바꾸다’라는 뜻을 유추해기도 한다. 대체로 네 번째의 주장을 따르고 있으나, 글자 역시 사상의 변화를 반영하는 것이기에 현재자형을 무시할 수는 없다. 양기(日)와 음기(月)의 성쇠에 따라 계절이 바뀌므로 ‘변화’의 뜻을 잘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해석해도 될 것 같다.
아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였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또한 후대로 오면서 남자의 경칭으로 쓰이기도 하고, 스승이나 작위의 이름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대되었다.
가르칠 敎(교)의 구성은 효 爻(효)와 아들 자(子) 그리고 칠 복(攵)으로 짜여 있다. 이 敎(교)자는 갑골에 새겨진 자형을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해오고 있는 글자중의 하나이다. 먼저 살펴볼 爻(효)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爻는 교차한다는 뜻이다. 易(역) 六爻(육효)의 앞머리가 교차하는 것을 본떴다.”고 하였다. 고문의 그림에서는 점을 치거나 숫자를 셀 때 썼던 산가지가 흩어져 있는 모양이다. 따라서 자형에 爻(효가) 첨가되면 배울 학(學)이나 깨달을 각(覺)에서처럼 ‘가르침을 주는 교재’의 뜻을 지니게 된다. 옛날에는 귀족 아이들을 중심으로 육예(六藝), 즉 禮(예: 도덕), 樂(악: 음악), 射(사: 활쏘기), 御(어: 말타기), 書(서: 서예), 數(수: 산수)를 주요과목으로 가르쳤다. 子(자)는 두 팔을 벌린 어린아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攵(복)은 攴(복)의 간략형으로 손(又)에 회초리나 몽둥이(卜)를 들고서 친다는 뜻을 지녔다. 일반적으로 글월 문(文)과 비슷하다하여 붙여진 ‘등(等) 글월 攵(문)’이라고도 하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인다. 따라서 敎(교)의 전체적인 의미는 아버지가 회초리(攵)를 들고서 아이(子)에게 효도를 시작으로 세상의 이치(爻)를 가르치고 있는 모양이 그대로 담겨 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易子敎之란 자식을 서로 바꾸어 가르친다는 뜻으로, 『맹자孟子』「이루離婁」편에서 유래했다. 대성인인 공자가 자식을 직접 가르치지 않는 이유를 공손추가 맹자에게 묻자 “가르치는 사람은 반듯이 바른 길을 제시하는데, 바름을 행하지 않으면 화가 치솟게 되고, 이러한 노여움이 계속되다보면 서로 반목하기 마련이다. 자식은 생각키를 아버지는 자신에게 바름을 가르친다고 여기시지만 아버지 역시 바른 길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생각을 품게 되면 부자간 서로 화목함은 사라지고 더욱 나빠질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친구 간에 서로 자식을 바꾸어 가르쳤단다(敎者必以正 以正不行 繼之以怒 繼之以怒則反夷矣 父子敎我以正 父子未出於正也 則是父子相以也 父子相夷則惡矣 古者 易子而敎之)”라고 하였다. 성인도 이러했으니 섣불리 자식에게 가르치려 들지 말고 말없이 모범을 보여야 할 뿐이다.
우리 속담에 ‘낙숫물이 댓돌을 뚫는다’고 했다. 지금 현재는 미미하게 보일지 모르지만 하루하루의 작은 내면의 공부가 중요한 법이다. 큰 그릇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는 법이 없다. 마부작침(磨斧作針)의 마음이라야 전인공부의 완성을 기할 수 있다.
물 水(수)는 강물이 한데 모아지고 나누어지는 물줄기를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氵)로 표시하거나 氺(수)로 쓰이기도 한다. 水(수)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水(수)는 평평하다는 뜻이다. 북쪽 방위를 나타내는 오행이다. 여러 물줄기가 나란히 흐르는 가운데 미미한 양(陽)의 기운이 있는 것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이 역(易) 괘체 중의 하나인 물을 뜻하는 坎(감, ☵)을 세로로 세운 것과 같아 외곽의 陰(음, --)이 가운데 陽(양, ㅡ)을 에워싼 모양에 빗대어 설명한 것이다.
물방울 滴(적)의 구성은 물 수(水)의 간략형인 수(氵)와 밑동 적(啇)으로 이루어졌다. 啇(적)은 임금 제(帝)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는데, 帝(제)는 꽃봉오리를 연결해주는 꽃대를 상형한 것이었다. 그런데 帝(제)가 임금이란 뜻으로 쓰이자 본뜻을 보존하기 위하여 ‘꼭지 체(대艹 + 帝, 蔕와 뜻이 같음)’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여기서 帝(제)아래에 더해진 ‘口’모양은 열매를 뜻한다. 그래서 啇(적)의 의미는 꽃이 핀 후 맺힌 열매의 배꼽에 해당하는 ‘밑동’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滴(적)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에 매달린 열매의 밑동(啇)에 맺힌 물(氵)이라는 데서 ‘물방울’ ‘극히 적은 분량’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뚫을 穿(천)의 구성은 구멍 혈(穴)과 어금니 아(牙)로 이루어졌다. 穴(혈)은 고대의 주거의 형태로 땅을 파내어 만든 동굴형태 집의 출입구를 본뜬 것으로 상형글자이다. 그래서 그 의미는 ‘구멍’ ‘동굴’ ‘움집’ 등을 뜻하게 되었다. 牙(아)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牙는 어금니를 뜻하며, 위아래가 서로 어긋나 있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그러나 이빨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齒(치)는 치근(齒根)이 하나인 앞니와 송곳니를 나타내며, 또한 牙(아)자에서 보듯 자형상부는 맷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금니 상부를 그려냈고 자형하부는 치근(齒根)이 둘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빨전체를 말할 때는 치아(齒牙)라고 해야 옳은 표현된다. 따라서 穿(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금니(牙)와 같은 공구로 구멍(穴)을 뚫는다는 데서 ‘뚫다’ ‘구멍’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돌 石(석)의 구성은 산기슭 엄(厂)과 돌덩이를 뜻하는 口(구)모양으로 이루어졌다. 즉 언덕이나 산기슭(厂) 아래에 굴러다니는 돌덩이(口)의 모양을 본떠 ‘돌’을 그려냈다.
水滴穿石이란 처마에서 떨어지는 작은 물방울이 바위를 뚫는다는 뜻으로, 작은 노력이라도 끊임없이 하다보면 마침내는 큰일을 이루어낼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그려낸 말이다. 용(龍)이 승천을 위해서는 오랜 시간 잠용(潛龍)으로서의 내공이 필요한 법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한 줌의 흙이 쌓이고 쌓여 산이 된다(積土成山)고 하였다. 자신의 내공을 위해서는 끊임없는 도야(陶冶)가 필요하다.
친구를 위해 대신 목을 내줄만한 벗이 있는가! 하고 자문해 본다. 아마도 여러 가지 이유를 대며 발을 뺄 것이다. 예나지금이나 신의(信義)는 너무나도 소중한 덕목이다. 나를 낮추고 상대를 인정할 때만이 믿음이 생겨난다.
목 벨 刎(문)의 구성은 말 물(勿)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勿(물)은 높이 세운 장대에 매단 세 가닥의 깃발을 상형한 것으로 ‘금지’의 뜻을 지니고 있다. 勿(물)에 대해『說文』에서는 “勿은 큰 고을이나 작은 마을에 세운 깃발을 말한다. 깃대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세 개의 깃발이 있는데, 여러 색의 천을 사용하며 깃 폭의 상하를 다르게 한다. 이것으로써 사람들을 모이게 하기 때문에 다급히 모이는 것을 ‘勿勿’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지만 학자들의 해석이 각양각색이다. 그러나 현재 주로 ‘부정’과 ‘금지’의 뜻으로 쓰이는 것으로 미루어 신성한 장소의 출입을 금하는 깃발로 생각된다. 즉 장대 끝에 세 가지 색깔의 깃발을 매단 모양의 상형글자로 신성한 의미를 담아 특정지역에 드나드는 것을 금지(禁止)하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따라서 刎(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고대시대의 전쟁을 상징적으로 그려낸 것으로, 부족을 상징하는 깃발(勿)의 깃대를 칼(刂)로 베어버린다는 데서 ‘베다’ ‘자르다’ ‘목을 베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목 頸(경)의 구성은 물줄기 경(巠)과 머리 혈(頁)로 이루어졌다. 巠(경)은 땅(一) 아래의 빈 공간(工)으로 흐르는 물줄기(巛)를 말한다.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머리 부분이 강조되어 있다. 따라서 頸(경)의 전체적인 의미는 몸무게의 2-3%에 불과한 뇌로 흐르는 혈류량이 전체의 20%를 차지하기 때문에 머리(頁)쪽으로 흐르는 목 부위의 경동맥이 마치 물줄기(巠)와 같다는 데서 ‘목’ ‘목덜미’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귈 交(교)는 사람이 팔다리를 비비꼬며 춤추는 모양을 그려낸 상형글자다. 허신은 『說文』에서 “交는 다리를 교차한 모양이다. 大(대)로 구성되었으며 다리를 교차한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역시 다리를 교차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며 소전도 역시 같다. 즉 머리(亠)와 양 팔(八)을 흔들고 다리(乂)를 꼬며 춤추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에 따라 서로 춤을 추며 ‘사귀다’ ‘벗하다’의 뜻이 생겨났다.
刎頸之交란 서로를 위해서라면 대신 목이 잘린다 해도 후회하지 않을 정도의 사귐이라는 뜻으로, 생사를 같이 할 정도로 가까운 벗을 말한다. 『史記사기』「廉頗藺相如列傳염파인상여열전」에서 유래하였다. 전국시대 조나라 혜문왕 때 인상여와 염파라는 신하가 있었는데, 두 사람 모두 큰 공을 세웠지만 무명의 인상여를 경대부에 임명하자 염파의 시기가 대단했다. 염파는 때를 노려 인상여를 망신주려 했는데, 이를 알고 인상여는 일부러 피했다. 부하들이 왜 그러느냐고 묻자 “진나라가 우리나라를 공격하지 못하는 이유는 나와 염장군이 있기 때문이다며 그래서 싸움을 피한 것”이라 하였다. 이를 들은 염파는 사죄하는 마음으로 인상여의 집을 찾아 “비천한 이 사람이 장군의 너그러움이 이와 같음을 알지 못했다”고 하여 마침내는 인상여와 염파가 문경지우가 되었다(鄙賤之人, 不知將軍寬之至此也. 卒相如驩, 爲刎頸之交)는 이야기다.
때론 세상이 너무나 투명하면 사는 재미도 없는가 보다. 그래서 채근담에서는 “거칠고 더러운 땅에는 다양한 생물이 살고, 물이 맑으면 물고기가 살지 않는다(地之穢者多生物, 水之淸者常無魚)”고 했다.
낯 面(면)은 얼굴 전체의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형상부의 一(일)모양은 비교적 넓은 이마를, 그리고 얼굴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진 코(自)를 중심으로 좌우의 뺨(囗)부위를 그려내 ‘낯’ ‘얼굴’을 뜻하게 되었으며, ‘겉’이나 ‘표면’은 파생된 것이다.
좇을 從(종)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辵)과 좇을 종(从)으로 짜여 있다. 辵(착)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辵은 갑자기 가거나 갑자기 멈춘다는 뜻이며 彳(척)과 지(止)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辵(착)은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지만 이 從(종)에서 활용되었다. 대부분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따라서 辶(착)과 더해 만든 글자 중에는 빠를 迅(신)처럼 발걸음을 재촉하는 뜻으로 쓰이기도 하고 더딜 遲(지)와 같이 멈추어 선 듯 한 의미로도 활용되고 있다. 从(종)은 갑골문의 자형을 그대로 따르고 있는 글자로 두 사람(人)을 나란히 그렸다. 즉 어떤 사람(人)이 앞서가는 다른 어떤 사람(人)을 따르고 있는 모양으로 추종자와 인도자, 혹은 뜻이 맞는 사람끼리 어울린 모양을 그려내고 있는데 從(종)의 원형글자이다. 따라서 從(종)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람(人)이 앞서가는 사람(人)을 따라간다(辵)는 데서 ‘좇다’ ‘따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배 腹(복)은 육달월(月=肉)과 돌아올 복(㚆=复)으로 구성되었다. 肉(육)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데, 일반적으로 짐승의 사체에서 잘라낸 살코기를 뜻하며 肉(육)자가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동일한 뜻을 지닌 月(육달월)로 줄여 쓰이기도 한다.㚆(복)은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참조할 때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는 도구인 ‘풀무’와 발을 뜻하는 止(지)가 더해진 모양이었으나 현재자형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 여기서 말한 풀무는 발을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로 밟을 때마다 통 속의 칸막이가 왕복으로 오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따라서 腹(복)의 전체적인 의미는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复)와 같이 호흡을 할 때 마다 들고나는 살(肉)이 많은 곳, 즉 ‘복부’를 뜻하게 되었다.
등 背(배)의 구성은 북녘 북(北)과 살코기 덩이를 상형한 고기 육(肉)의 변형인 육(月)로 이루어졌는데, (肉=月)이 자형에 더해지면 대부분 신체부위를 지칭하게 된다. 北(북)에 대해 『說文』에서는 “北은 어그러지다는 뜻으로 두 사람이 서로 등지고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두 사람이 서로 등지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져 있는데, 서로 등을 진다는 데서 ‘배반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또한 사람은 햇살이 풍부한 남쪽을 향하기 때문에 등이 북쪽을 향하게 돼 ‘북방’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背(배)의 의미는 보통 사람은 따스한 햇볕을 받으러 남쪽을 향해 앉게 되는데 이 때 몸(月)의 북쪽(北)은 곧 ‘등’이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面從腹背란 겉으로 드러난 얼굴로는 따르는 체 하지만 뱃속 깊숙한 마음으로는 배반함을 이르는 말이다. 세상을 살다보면 겉 다르고 속 다름을 수없이 겪는다. 내 마음마저도 표리부동한데 남들 마음이야 오죽하겠는가! 비슷한 말로 양봉음위(陽奉陰違), 소리장도(笑裏藏刀), 면종후언(面從後言), 구밀복검(口蜜腹劍) 등이 있다.
하루의 일을 마치면 고단한 몸을 앉히고 술잔을 기울였던 선술집이 사라지고 있다. 너털웃음과 함께 이야기꽃이 피고, 때로는 서민들의 애환이 풀리던 단출한 술집이 바로 목로주점(木壚酒店)이었다.
나무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즉 한그루의 나무를 표현하였다.
흑토 壚(로)의 구성은 흙무더기를 쌓은 모양을 본뜬 흙 토(土)와 밥그릇 로(盧)로 이루어졌다. 현재 밥그릇으로 쓰이고 있는 盧(로)의 본래 의미는 화로였다. 盧(로)의 구성을 보면 호피무늬 호(虍)와 밭 전(田), 그리고 그릇 명(皿)으로 짜여 있는데, 요즘처럼 집과 온돌이 없던 옛날에는 주로 동굴에 살며 차가운 벽면에 호랑이 가죽(虍)으로 치장하고 가운데 큰 그릇(皿)에 모닥불(田)을 피워 추위를 이겼다. 본래는 盧(로)가 화로를 뜻하였지만 보다 확실하게 불 화(火)를 더해 ‘화로 로(爐)’로 그 의미를 확실하게 나타냈다. 따라서 壚(로)의 전체적인 의미는 난방을 위해 불을 지핀 화로(盧)에서 타고 남은 재는 검은 흙(土)과 같다는 데서 ‘흑토(黑土)’를 뜻하고 있지만 ‘화로’ ‘향로’라는 뜻으로도 쓰인다.
술 酒(주)자의 구성은 물 수(氵)와 닭 유(酉)로 짜여 있다. 酉(유)는 술 항아리의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다. 본래 ‘술’이라는 뜻이었지만 열 번 째 지지(地支)인 ‘닭’이라는 뜻으로 차용되자 액체 상태의 술을 뜻하는 물 수(氵)를 더해 ‘술 酒(주)’를 따로 만들었다. 따라서 酒(주)의 의미는 술병(酉)에 가득 담긴 물(氵), 즉 잘 우러난 ‘술’을 뜻한다. 항간에서는 주도(酒道)를 말하면서 술 마실 때는 실수를 줄이기 위해서 닭(酉)처럼 한 모금 한 모금 물(氵)을 쪼아 먹듯 해야 한다고 풀어 말하기도 하는데, 때에 따라 교훈적 의미를 담아 해석하기 나름이어도 좋을 것 같다.
가게 店(점)의 구성은 집 엄(广)과 차지할 점(占)으로 이루어졌다. 广(엄)은 사방을 벽으로 감싼 집(宀)과는 달리 한쪽 벽만을 쌓아 올린 개방형 건물을 뜻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창고나 관청 같은 건물의 용도를 말한다. 占(점)은 거북의 배딱지나 소의 견갑골을 구워 갈라진 금(卜)을 보고서 미래의 일을 말(口)해 준다는 데서 ‘점치다’의 뜻이 발생했으며, 또한 특정한 땅의 영역(口)을 차지하기 위해서 깃발(卜)을 꽂는다는 데서 ‘차기하다’ ‘점령하다’의 뜻도 지니고 있다. 따라서 店(점)의 전체적인 의미는 여러 사람이 드나들 수 있도록 지은 건물(广)안을 수많은 상품들이 차지하였다(占)는 데서 ‘가게’를 뜻하게 되었다.
木壚酒店이란 술잔을 올릴 수 있도록 기다란 널빤지로 상을 만들고 따스한 화롯불을 피우며 단출하게 술을 파는 집, 즉 선술집을 뜻한다. 주머니가 가벼운 시절 누구나 한두 번 쯤 들러 세상을 이야기하고 고단한 몸을 풀었던 선술집, 삼십촉 백열등이 그네를 타는 그러한 술청이 그리운 요즘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고 하였다. 한평생을 살면서 수없이 쓰고 부르는 자신의 이름, 지금 현재 이름값은 하고 있는지 살펴본다. 명예나 명성에 휘둘릴 필요는 없으나 자신의 영적 존재감을 위해 늘 마음을 닦으려 노력해야 한다.
이름 名(명)의 구성은 저녁 석(夕)과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짜여 있다. 夕(석)은 달의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로 해질녘 동쪽 산위로 떠오르는 모양을 그렸다. 고대에는 夕(석)이 해질녘과 밤을 의미하였지만 후대에 보다 구체적으로 밤을 의미하는 밤 야(夜)를 제작하였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깜깜한 밤(夕)에는 그 사물이나 사람의 구체적인 특징을 입(口)으로 말하여야 구분할 수 있었다는 데서 ‘이름’을 뜻하게 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아니다’라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빌 虛(허)는 호피무늬 호(虍)와 언덕 구(丘)의 변형으로 구성되었다. 호랑이의 모습을 그대로 본뜬 虎(호)는 자형상부는 머리를, 가운데(厂과 七)는 늘름한 몸통을, 그리고 하부는 사람의 발(儿)을 가차하여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다른 부수에 더해 새로운 자형을 만들 때는 보통 하부의 발(儿)을 생략한 채 虍(호)만을 사용하는데, 그래도 호랑이라는 본뜻은 그대로 있다. 丘(구)는 요즘에는 주로 ‘언덕이나 무덤’과 같이 낮은 흙더미를 뜻하지만, 갑골문을 살펴보면 높은 산에 둘러싸인 분지(盆地)와 같은 개념이었다. 따라서 虛(허)의 전체적인 의미는 높은 산으로 둘러싸인 울창한 산림의 구릉(丘)에 모든 짐승의 왕인 호랑이(虍)가 살게 되면 그 일대에는 사람은 물론 어떤 다른 동물들도 무서워 살지 않기 때문에 텅 빌 수밖에 없다는 데에서 ‘비다’ ‘없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전할 傳(전)의 구성은 사람 인(亻)과 오로지 전(專)으로 짜여 있다. 亻(인)은 사람이 서 있는 모습을 옆에서 보아 그려낸 것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여 언행(言行)과 관련된 뜻을 부가한다. 專(전)은 자형상부의 실을 잣아 감아두는 실패모양(叀)과 손을 뜻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실패(叀)를 손(寸)으로 잡고서 물레에 잣아 둔 실을 감을 때 다른 생각 없이 오로지 마음을 집중(專心)하여야만 실이 꼬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오로지’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傳(전)의 전체적인 의미는 물레에 잣은 실을 온 마음을 다하여 끊이지 않게 실패(專)에 감듯 사람(亻)이 살아온 이력이나 잊지 말아야 할 사항을 ‘전하다’는 뜻이 담겨 있다.
名不虛傳이란 어떠한 사람의 명성이나 명예가 헛되이 전해진 것이 아니란 뜻으로, 적어도 그러한 데에는 이름이 널리 퍼질만한 까닭이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사마천의 『史記사기』에서 유래한 것으로 “세상에 전하기를 맹상군이 손님 맞기를 좋아하고 스스로 즐겨하였다 하니 그 이름이 헛된 것은 아니었다(世之傳孟嘗君好客自喜 名不虛矣)” 라고 하였다. 살다보면 수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진다. 이름값은 하고 있는지 자성(自省)할 필요가 있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이라는 사계절이 비교적 뚜렷한 동아시아에 살았던 사람들은 여백의 미를 살린 수묵화를 즐겨왔다. 문인이라면 당연히 사군자를 그려내 자신의 서기(書氣)를 담아냈고, 삶의 지혜나 당부의 말을 남기기도 하였다.
매화나무 梅(매)의 구성은 나무 목(木)과 매양 매(每)로 짜여 있다. 木(목)은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每(매)는 비녀를 꽂아 아름답게 치장한 머리모양의 자형상부와 어미 모(母)로 구성되었다. 母(모)는 두 손을 마주하고서 다소곳이 앉아 있는 여자의 모양을 본뜬 女(녀)자에 유방을 가리키는 두 점을 강조하여 ‘아이를 낳아 젖을 주는 여자’, 즉 산모(産母)를 뜻하였으나 ‘어머니’라는 의미로 쓰이게 되었다. 요즘은 많아야 하나둘 아이를 낳지만 고대에는 다산(多産)이 곧 축복이자 모두가 바라는 염원이었다. 그래서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는 머리를 올려 예쁜 머리장식의 하나인 아름다운 비녀를 꽂을 수 있었다. 즉 자형상부는 머리를 올려(丿) 비녀(一)를 꽂은 모양이다. 그러한 모습을 담은 글자가 바로 ‘많다’는 뜻을 지닌 매양 每(매)로 아이를 많이 낳은 여자만의 특권이었다. 그래서 물(氵)이 많으면(每) ‘바다 海(해)’가 되고, 마음(忄)을 많이(每) 쓰게 된다는 것은 뭔가를 뉘우치고 있어 ‘뉘우칠 悔’가 된다. 따라서 梅(매)의 전체적인 의미는 열매가 많이(每) 열리는 나무(木)라는 뜻이 담겨 있다.
난초 蘭(란, 난)의 구성은 풀의 모양을 상형한 풀 초(艹)와 가로막을 란(闌)으로 짜여 있다. 闌(란)은 문 문(門)과 가릴 간(柬)으로 구성되었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외짝의 문은 戶(호)인데 단출하고 가난한 집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에 비해 門(문)은 부잣집을 뜻하기도 한다. 柬(간)은 묶을 속(束)과 여덟 팔(八)로 구성되었다. 束(속)은 나뭇가지(木)를 줄로써 동여맨(口) 모양을 한 회의글자다. 숫자 8을 나타내기도 하는 八(팔)은 어떤 물건을 쪼개거나 나눈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闌(란)은 문(門) 앞에 뭔가를 풀어헤쳐(柬) 막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蘭(란)의 전체적인 의미는 고급스러운 문이나 창문가에 놓아(闌)두는 풀(艹)을 말한다.
국화 菊(국)의 구성은 풀 초(艹)와 움켜쥘 국(匊)으로 이루어졌다. 艹(초)는 풀 艸(초)의 간략형으로 무성하게 돋아난 풀을 뜻하는데, 두 개의 싹날 屮(철)로 구성되었다. 艹(초)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초목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匊(국)은 어떠한 물건을 둘러싼다는 뜻을 지닌 쌀 포(勹)와 쌀 미(米)로 구성되었다. 米(미)는 벼와 기장의 알맹이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가로획(一)을 중심으로 상하에 각각 세 점이 곡식의 낟알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하얀 쌀(米)을 손가락으로 감싸(勹)쥔 모양을 타나내 ‘움켜쥐다’의 뜻을 표현하였다. 따라서 菊(국)의 전체적인 의미는 손가락을 움켜쥔(匊)듯한 모양의 꽃을 피우는 풀(艹)이란 데서 ‘국화’를 뜻하게 되었다.
대 竹(죽)은 대나무의 곧은 줄기와 죽순껍질을 상형한 글자다. 竹(죽)에 대해 『說文』에서는 “竹은 겨울에도 살아 있는 풀이며 상형글자이다.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죽순의 껍질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서는 대나무 줄기(丨)에 죽순이 올라오며 자연스레 벗겨지는 껍질을 표현하였다.
梅蘭菊竹이란 사계절을 대표하는 봄 매화(雪梅), 여름 난초(春蘭), 가을 국화(秋菊), 겨울 대나무(靑竹)를 지칭한 것으로 동양문화권에서는 수묵화의 소재로서 문인들의 사랑을 받았으며, 달리 사군자라 말한다. 여백의 미를 한껏 살린 수묵화는 동양인의 정서가 녹아든 여유로움이다. 우리의 삶도 이러했음 좋겠다.
모든 것은 하나로부터 나와 종국에는 다시 하나로 돌아간다. 그 하나는 곧 혼돈상태의 카오스이며 양극으로 나뉘기 전의 무극(無極)이다. 우주의 변화는 하나로부터 삼라만상이 태어나는 일법만상(一法萬象)이자 만법귀일(萬法歸一)이다. 모든 것을 하나로 규합하는 블랙홀이 있다면 그 하나로부터 빅뱅하는 화이트홀이 있는 게 우주의 법칙이다.
일만 萬(만)은 전갈(全蝎)의 모양을 본뜬 상형문자이다. 전갈이 한 번에 많은 알을 낳는다는 데서 ‘많다’는 뜻의 ‘일만’이란 의미를 상징적으로 부여하였다. 거미류 중에서는 가장 기원이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는 전갈은 대부분 열대와 아열대지역에 분포하며 야행성이다. 종류에 따라 꼬리 끝의 독침에는 치명적인 맹독을 지니고 있어 예부터 경계대상이었다. 이러한 전갈이 많은 수를 뜻하는 것은 한 번에 많은 알을 많이 낳는다는 점을 차용한 것이다. 주로 나무 밑이나 언덕(厂)에 숨어 사는 전갈(萬)은 무섭고 사나운(厲: 사나울 려) 존재였다.
법 法(법)은 물 수(氵)와 갈 거(去)로 구성되어 있다. 去(거)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去는 사람이 서로 어긋나간다는 뜻이다. 大(대)로 구성되었고 자형하부의 凵(거)모양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와 고대인들의 주거지인 동굴을 의미하는 口(구)모양으로 그려져 있다. 따라서 그 의미는 사람(大)이 주거지인 동굴(口)을 떠나 어디론가 간다는 뜻을 담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에서는 오물을 버리는 구덩이 위에서 대변을 보고 사람의 상형이라는 설로 ‘버리다’가 본뜻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法(법)의 의미는 물(水)은 높은데서 낮은 곳으로 흘러가는(去) 게 순리적이라는 것으로 자연적인 ‘규칙’을 의미한다. 또 한편으로는 물(水)과 같이 순리적이지 못한 사람을 제거(去)한다는 ‘규범’적 의미도 담고 있다. 그러나 더 본래적인 의미는 法(법)의 옛글자인 ‘법 灋(법)’ 자에 담겨 있다. 灋자의 구성은 물 수(氵)와 해태 치(廌), 그리고 갈 거(去)로 짜여 있다. 옛 사람들은 앞에 공평함을 뜻하는 물(氵)을 놓고서 옳고 그름(是非)과 선과 악(善惡)을 가려내는, 상체는 사슴(鹿)을 닮았고 하체는 새(鳥)의 형상을 한 상상의 동물인 해태에게 가서(去) 판정을 받았다고 한다.
돌아갈 歸(귀)의 구성은 흙덩이 모양을 본뜬 부수(자형좌변 상부)와 발 지(止) 그리고 비 추(帚)로 짜여 있다. 자칫 자형좌변상부의 흙덩이 모양을 언덕 阜(부)에서 열 십(十)이 생략된 것으로 잘못 보기도 하는데, 阜(부)는 통나무나 흙을 깎아 만든 계단을 뜻하는 상형글자라는 점이 다르다. 발의 모양을 본떠 만든 자형인 止(지)는 멈춘다는 뜻도 있지만 여기서는 ‘가다’라는 의미로 쓰이고 있다. 帚(추)는 빗자루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지만, 조합된 부수 또한 나름의 뜻을 지니고 있다. 즉 자잘한 나뭇가지나 헝겊(巾)을 한데 묶어(冖) 만든 빗자루를 손으로 잡고(彐)서 쓸거나 닦아낸다는 뜻이 담겨 있다. 歸(귀)의 의미를 명확히 이해하려면 먼저 옛날의 결혼 풍속을 알아야 할 것 같다. 남자는 장가를 들고 여자는 시집을 간다고 했다. 남자는 먼저 신부의 집에서 보통 3년 정도 처가살이를 하며 딸을 준 보답을 해야 하는데, 즉 장가(丈家)는 장인 장모님의 집을 말한다. 신부는 3년 동안 부모님의 품에서 살다 이제는 남편의 부모님이 계시는 시댁(媤宅: 시집)으로 되돌아가야 했다. 따라서 歸(귀)의 전체적인 의미는 흙덩이(자형좌변 상부)와 신부의 주된 역할이 될 빗자루(帚)를 들고서 간다(止)는 뜻인데, 시집을 간 신부는 좀처럼 다시 부모님 품으로 돌아갈 수 없어 시댁의 풍토에 적응하기 위한 방편(身土不二)으로 가져간 흙을 물에 조금씩 타서 마셨다고 한다. 이러한 결혼 풍속 때문에 歸(귀)는 ‘돌아간다’ ‘시집간다’ ‘돌려보내다’는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萬法歸一이란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결국에는 하나로 돌아간다는 뜻으로, 불교의 1700가지 공안(公案) 가운데 하나이다. 특히 일심(一心)·화쟁(和諍)·무애(無碍)사상을 펼쳤던 신라시대의 원효대사가 내세운 대표적인 법구(法句)이다. 순수무잡(純粹無雜)한 본래의 마음을 회복하는 것이 곧 종교의 목적이다.
삼라만상의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은 주위 환경에 따라 큰 영향을 받는다.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의 교훈에서처럼 사람 역시 환경에 따라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게 되어있다. 하얀 백지와 같은 어린이들은 특히 주변 환경이 보다 중요하다.
삼 麻(마)는 집 엄(广)과 삼실 파(朩朩)로 구성되었다. 广(엄)은 사방을 벽으로 감싼 집(宀)과는 달리 한쪽 벽만을 쌓아 올린 개방형 건물을 뜻해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창고나 관청 같은 건물의 용도를 말한다. 파(朩朩)는 두 개의 삼줄기 껍질 빈(朩)으로 구성되었는데, 朩(빈)은 나무 木(목)과는 그 래원이 다르다. 즉 대마(大麻)라는 삼(屮)껍질을 쪼개서(八) 잘게 짼 삼실을 뜻한다. 따라서 麻(마)의 전체적인 의미는 개방형 건물과 같은 창고(广)에 삼껍질을 벗겨 잘게 째 한데 묶어 걸어둔 삼실(朩朩)이라는 데서 ‘삼’을 뜻하기도 하였으며, 또한 대마초의 원료라는 점에서 ‘마비시키다’의 뜻도 지니고 있다.
가운데 中(중)은 간단한 자형임에도 다양한 의견이 제시되고 있다. 갑골문에 새겨진 모양은 어떠한 공간을 나타낸 ‘口’모양에 긴 장대(丨)를 세워둔 모양인데, 장대의 상부에는 두세 가닥의 깃발도 함께 그려져 있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보다 간략하게 이루어진 것이다. 문제는 가운데 쓰인 ‘口’모양에 대해 부족이 모여 사는 마을이라는 설, 바람의 방향을 측정하기 위한 판이라는 설, 장대의 그림자로 시간을 알기위해 달아 놓은 나무틀이라는 설, 해의 변형으로 정오를 뜻한다는 설 등이다. 필자가 보기에 갑골문과 금문을 참조할 때, 마을(口)의 중앙광장에 부족의 상징인 깃발을 단 장대(丨)를 세웠다는 데서 ‘중앙’ ‘가운데’라는 뜻을 지닌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쑥 蓬(봉)의 구성은 두 포기의 풀을 본뜬 풀 초(艸)의 간략형인 초(艹)와 만날 봉(逢)으로 이루어졌다. 逢(봉)은 쉬엄쉬엄 갈 착(辶)과 끌 봉(夆)으로 구성되었는데,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夆(봉)은 뒤져서 올 치(夂)와 풀 무성할 봉(丰)으로 구성되었는데, 갑골문에서는 천천히 걸을 쇠(夊)와 뒤져서 올 치(夂)가 구분되지는 않으나 대체적으로 정상적인 발걸음이 아닌 어긋난 발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丰(봉)의 갑골문 모양을 참조하면 뿌리 부분이 흙덩이로 싸여 있는 나무모양인 점으로 볼 때, 묘목(丰)을 땅에 심은 뒤 두발로 엇 딛으며(夂) 다지는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이에 따라 逢(봉)은 옛사람들은 종교의식의 하나로 산봉우리(峯)에 올라 하늘과 소통하는 의미로 나무를 심고 발로 다졌는데(夆), 이 때 많은 사람이 쉬엄쉬엄 산봉우리로 올라와(辶) 함께 했다는데서 ‘만나다’ ‘점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蓬(봉)의 전체적인 의미는 동북아지역에 자생하는 것으로 어디를 가나 쉽게 만날 수(逢) 있는 풀(艹)이라는 데서 ‘쑥’을 지칭하게 되었다.
麻中之蓬이란 삼 밭 속에서 자라는 쑥이란 뜻으로, 보통 곧게 자라지 않는 쑥이지만 키가 크게 자라는 삼 밭 속의 쑥은 햇빛을 받으려고 스스로 삼처럼 곧게 자람을 표현 것이다. 즉 쑥과 같이 사람도 주위환경에 따라 선하게 또는 악하게 자랄 수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荀子순자』「勸學篇권학편」에서 유래한 것으로 “삼 밭 속에서 자라는 쑥은 붙들어주지 않아도 스스로 곧게 자란다(蓬生麻中 不扶而直)” 라고 하였다.
네다섯 번을 우려내도 거의 비슷한 맛을 내는 차를 마시다보면 마음이 숙연해 진다. 이런 차는 만나기가 쉽지 않다. 구증구포(九蒸九曝)를 거쳤느냐가 문제가 아니라 얼마나 좋은 찻잎과 정성이 깃들었냐가 관건일 것이다.
차 茶(다, 차 차)의 구성은 풀 초(艹)와 사람 인(人), 그리고 나무 목(木)으로 이루어졌다. 艹(초)는 두 포기의 풀을 본뜬 것으로 풀 草(초)의 본디글자이며 모든 풀의 총칭으로서 보통 자형의 상부에 놓이는 艸(초)의 간략형이다. 人(인)은 서 있는 사람을 옆에서 바라본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따라서 茶(다)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人)이 풀(艹)이나 나무(木)의 잎을 따 달여 먹는다는 데서 ‘차’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반 半(반)은 ‘나누다’라는 뜻을 지닌 여덟 팔(八)과 소 우(牛)의 생략형으로 짜여 있다. 즉 소(牛)는 그 몸집이 너무나 커서 식용으로 할 때는 척추를 중심으로 절반으로 나누지(八) 않으면 운반이나 관리가 쉽지가 않다. 그래서 요즘에도 도살장에서는 소를 절반(半)으로 나누어(八) 정육한다는 데서 ‘반’ ‘절반’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향기 香(향)은 벼 화(禾)와 밥솥을 본뜬 모양의 ‘曰’로 구성되었다. 禾(화)는 볏 대(木)에서 이삭이 여물어 드리워진(丿) 모양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로 ‘벼’를 뜻한다. 특히 벼는 곡식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점을 감안하여 모든 곡식의 총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자형하부를 이루는 ‘曰’에 대해 대부분 맛있게 음식물을 먹고 있는 입모양을 본뜬 甘(감)으로 보고 있지만, 갑골문에 그려진 모양은 밥을 짓는 ‘솥’을 표기한 것이다. 따라서 香(향)의 전체적인 의미는 쌀이나 기장 등 곡식(禾)을 솥(曰)에 넣고 밥을 지으니 그 냄새가 참으로 향기롭다는 데서 ‘향기’ ‘향기롭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처음 初(초)의 구성은 옷 의(衤=衣)와 칼 도(刀)로 구성되어 있다. 衣(의)는 목을 중심으로 옷깃이 좌우로 나뉜 모양을 상형한 윗저고리 옷을 말하며 아랫도리는 치마 상(裳)을 써서 구별하였다. 그러나 여기서 衣(의)는 의상을 대표하고 있다. 刀(도)는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오늘날 주로 주방에서 쓰는 칼과 같이 한 쪽 면만 날을 세우고 다른 한 면은 양념 등을 다질 수 있도록 등을 만든 것을 ‘刀’라고 한다. 따라서 初(초)의 의미는 의복(衤=衣)을 만들려면 칼이나 가위(刀)를 통해 먼저 재단을 해야 한다는 데서 ‘처음’ ‘시작’이라는 뜻을 담고 있다.
茶半香初란 차를 우려 마신지 반나절이 지났는데도 그 향기가 처음과 같다는 뜻으로, 늘 한결같은 원칙과 태도를 지켜나감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자기 성찰이 없이는 쉽지 않은 일이다. 자신만의 소신과 삶의 철학을 갖는 일, 그것이 올바른 인생길을 가는 비결이라면 비결일 것이다.
누구나 이 세상에 온 까닭은 진리를 깨닫기 위해서다. 사람마다 타고난 근기(根機)가 다르기 때문에 각자의 목적 달성을 위해서는 자기에게 맞는 방편을 찾아야 한다. 내게 맞지도 않는 수행법으로 평생을 허비할 수는 없지 않겠는가!
얻을 得(득)은 조금 걸을 척(彳)과 얻을 득(㝵)으로 구성되었다. 彳(척)은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발을 그려낸 부수로 잰걸음으로 걷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㝵(득)은 돈을 의미하는 조개 패(貝)의 생략형과 손을 의미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貝(패)는 조개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고대에는 조개를 화폐로 활용했는데, 여느 바다나 강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일반적인 조개가 아니라 남중국해나 인도양 등지에서 나는 희귀하고 아름다운 아주 단단한 것이었다. 갑골문의 자형은 두 쪽으로 벌려진 조개의 모습이었으나 금문으로 오면서 두 개의 촉수를 내민 현재의 글자모양을 갖추게 되었다. 즉 돈(貝)이 될 만한 무언가를 손으로 줍는다(寸)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잰걸음으로 다니면서(彳) 무언가 재화가 될 만한 물품을 손으로 거두어들인다(㝵)하여 ‘얻다’ ‘손에 넣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물고기 魚(어)는 물고기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즉 자형상부의 ‘勹’모양은 물고기의 머리를, 중간의 ‘田’모양은 몸통을, 그리고 하변의 ‘灬’는 지느러미를 나타낸 것이다. 일반적으로 물속에 사는 물고기의 총칭(總稱)으로 쓰이고 있다. 글자의 초기형태인 갑골문의 자형이 비교적 잘 유지되고 있다.
잊을 忘(망)의 구성은 망할 망(亡)과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더불어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인데, 여기서는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이다. 따라서 忘(망)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 몸의 주체인 마음(心)에서 없어져버렸다(亡)는 데서 ‘잊다’의 뜻을 갖게 되었다.
통발 筌(전)의 구성은 대 죽(竹)과 온전할 전(全)으로 이루어졌다. 竹(죽)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竹은 겨울에도 살아 있는 풀이며 상형글자이다.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죽순의 껍질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서는 대나무 줄기(丨)에 죽순이 올라오며 자연스레 벗겨지는 껍질을 나타낸 것이다. 죽(竹)이 다른 부수를 만나 새로운 글자를 만들 때는 대부분 자형의 상부에 놓이며 대나무와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全(전)에 대해 『說文』에서는 “全의 본래자형은 㒰(전)이다. 玉(옥)으로 구성되었으며 흠집이 없는 구슬을 곧 全(전)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즉 흠집 하나 없이 완전한 구슬(玉)을 집안에 들여(入) 놓았다는 데서 ‘완전하다’ ‘온전하다’ ‘흠 없는 옥’을 뜻하게 되었다. 따라서 筌(전)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나무(竹)를 잘게 쪼개 물고기가 한 번 들어오면 나갈 수 없도록 원통형 모양으로 완전(全)하게 만든 도구라는 데서 ‘통발’을 뜻하게 되었다.
得魚忘筌이란 물고기를 잡고 나서는 통발을 잊어버린다는 뜻으로, 성취하고자 한 바를 얻었으면 그에 따른 방편은 잊어버려야 함을 이른 말이다. 『莊子장자』「外物篇외물편」에서 유래한 것으로 “통발은 물고기를 잡는 도구인데, 물고기를 잡고 난 뒤에는 통발은 잊어버려야 한다(筌者所以在魚 得魚而忘筌).”라고 하였다. 강을 건너면 더 이상 배는 필요 없듯이, 진리를 깨달았으면 진리에 도달하기 위해 사용한 모든 수단을 버린다는 뜻이다.
예부터 사람이 한 평생을 살면서 진실한 벗 세 명만 사귈 수 있다면 성공한 삶이라 해도 무방하다고 했다. 벗이란 말 그대로 ‘벗고 지내는 사이’라고도 할 수 있다. 있는 그대로를 그대로 드러낼 줄 아는 사이, 마음이 통하는 벗과 술잔을 기울이는 아름다운 모습이 눈에 그려진다.
쇠 金(금)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고 금문에 보이는데, 잘 살펴보면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리요소인 금(今)의 생략형에다 흙(土)에 덮여 있는 두 덩어리(두 점)의 금을 나타낸 형성글자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금문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금(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 청동기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난초 蘭(란, 난)의 구성은 풀의 모양을 상형한 풀 초(艹)와 가로막을 란(闌)으로 짜여 있다. 闌(란)은 문 문(門)과 가릴 간(柬)으로 구성되었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외짝의 문은 戶(호)인데 단출하고 가난한 집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에 비해 門(문)은 부잣집을 뜻하기도 한다. 柬(간)은 묶을 속(束)과 여덟 팔(八)로 구성되었다. 束(속)은 나뭇가지(木)를 줄로써 동여맨(口) 모양을 한 회의글자다. 숫자 8을 나타내기도 하는 八(팔)은 어떤 물건을 쪼개거나 나눈다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闌(란)은 문(門) 앞에 뭔가를 풀어헤쳐(柬) 막는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蘭(란)의 전체적인 의미는 고급스러운 문이나 창문가에 놓아(闌)두는 풀(艹)을 말한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사귈 交(교)는 사람이 팔다리를 비비꼬며 춤추는 모양을 그려낸 상형글자다. 허신은 『說文』에서 “交는 다리를 교차한 모양이다. 大(대)로 구성되었으며 다리를 교차한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역시 다리를 교차한 모양으로 그려져 있으며 소전도 역시 같다. 즉 머리(亠)와 양 팔(八)을 흔들고 다리(乂)를 꼬며 춤추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이에 따라 서로 춤을 추며 ‘사귀다’ ‘벗하다’의 뜻이 생겨났다.
金蘭之交란 두 사람 간의 사귐이 쇠처럼 단단하고 난의 향처럼 품위가 있다는 뜻으로, 서로 뜻을 함께 하고 사귐이 두터워 떼려야 뗄 수 없는 우정 깊은 사이를 말한다. 『易經역경』「繫辭傳계사전」에서 유래한 것으로 “두 사람의 마음이 한결같으니 그 날카로움이 쇠를 자를 수 있고, 한결같은 마음에서 나오는 말은 그 냄새가 난향과 같다(二人同心 其利斷金 同心之言 其臭如蘭.)”라고 하였다. 달리 금란지계(金蘭之契), 금석지계(金石之契), 단금지계(斷金之契)라고도 한다.
인성과 덕성은 물론 실력을 갖춘 뛰어난 인물은 어디에서든 도드라지기 마련이다. 특히 영적인 능력이 탁월한 성인과 동시대를 산다면 알게 모르게 많은 영향을 받을 수 있다.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는 바로 이러한 영성을 닦기 위함이 아닐까!
무리 群(군)의 구성은 임금 군(君)과 양 양(羊)으로 짜여 있다. 君(군)은 통치의 상징인 지팡이를 오른손에 쥐고(尹)서 입(口)으로 명령을 내릴 수 있는 사람이 곧 ‘임금’이나 ‘주권자’라는 뜻을 지니고 있다. 羊(양)의 자형상부는 두 개의 뿔을, 중앙은 통통한 몸통과 네 다리를, 그리고 하부는 꼬리를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유순한 양은 동물 중에서도 떼를 지어 다니는 대표적인 동물이다. 따라서 群(군)의 전체적인 의미는 무리를 지어 떼로 몰려다니는 양(羊)은 가장 힘이 센 우두머리(君)를 따라 이동하기 때문에 그 특징 살펴 ‘무리’라는 뜻을 부여 하였다.
닭 鷄(계)의 구성은 어찌 해(奚)와 새 조(鳥)로 이루어졌다. 奚(해)는 손아귀에 뭔가를 쥔 모양의 손톱 조(爫)와 작은 끈을 상형한 작을 요(幺) 그리고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큰 대(大)로 구성되었는데, 사람(大)의 목에 끈(幺)을 묶어 손으로 잡고(爫) 있는 것으로 전쟁에 져 포로가 된 사람을 뜻한다. ‘어찌’란 뜻은 가차된 것이다. 鳥(조)에 대해 『說文』에서는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현재의 자형 중간부위를 말하며 하부의 네 개의 점은 꼬리를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鷄(계)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의 머리를 부여잡듯(奚) 목을 부여잡고 비틀어 잡는 새(鳥)가 곧 ‘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닭의 특성을 살펴, 잘 날지는 못하지만 새(鳥)의 특징을 지닌 닭은 크고(大) 작은(幺) 덤불이나 짚 등을 발(爫)로 헤집으며 먹잇감을 찾아 먹는 성품으로 묘사하면 보다 윤리적일 것 같다.
한 一(일)은 옆으로 선 하나를 그어 ‘하나’를 뜻한 것으로 가장 기본적인 지사글자다. 단순한 자형이지만 후대로 오면서 심오한 철학적의를 부여하기도 했다. 一(일)자에 대해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학 鶴(학)의 구성은 새 높이 날 확(隺, 뜻 고상할 각)과 새 조(鳥)로 짜여 있다. 隺(확)은 하늘을 상징하는 덮을 멱(冖)과 새 추(隹)로 구성되었는데,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그래서 隺(확)의 의미는 새(隹)가 하늘(冖)을 뚫듯이 ‘높이 낢’을 뜻할 뿐만 아니라 하늘을 뚫을 만큼 높이 나니 ‘고상하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또한 허신은 鳥(조)에 대해서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현재의 자형 중간부위를 말하며 하부의 네 개의 점은 꼬리를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鶴(학)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늘 높이 나는(隺) 새(鳥)를 나타내 ‘학’이나 ‘두루미’를 뜻하게 되었다.
群鷄一鶴이란 닭의 무리 속에 끼어 있는 한 마리의 학이란 뜻으로, 여러 평범한 사람들 가운데 뛰어난 한 사람이 섞여 있음을 이르는 말이다. 달리 계군일학(鷄群一鶴)이라고도 한다.『晉書진서』「嵆紹傳혜소전」에서 유래했다. 원문을 옮겨보면 “어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가는 혜소를 처음 보았는데, 그 드높은 기상이 마치 닭의 무리 속에 있는 야생의 학 같았다(昨於稠人中始見嵇紹, 昂昂然如野鶴之在雞群)” 혜소에 대한 인물평이다.
예나지금이나 일부 정치하는 사람의 행보는 ‘눈 가리고 야웅’하는 식이다. 겉으로는 웃음기를 띄고 있지만 속내에는 음흉한 술책이 감춰져 있다. 바로 구밀복검(口蜜腹劍)이다. 사탕발림의 속임수는 오래가지 못한다.
입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다.
꿀 蜜(밀)의 구성은 잠잠할 밀(宓)과 벌레 충(虫)으로 이루어져 있다. 宓(밀)은 집 면(宀)과 반드시 필(必)로 구성되었다. 宀(면)은 지붕과 양 벽면을 본뜬 것으로 사람이 사는 집이나 사당을 뜻한다. 보통 맞배지붕처럼 대칭구조로 이루어진 지붕형태를 취한 집을 의미한다. 必(필)의 초기글자인 갑골문을 살펴보면 긴 자루가 달린 국자와 함께 몇 개의 물방울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제사를 지낼 때 술을 퍼 담는 기구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제사를 지낼 때는 술은 반드시 필요한 제수(祭需)였다는 점에서 술을 담는 국자 역시 반드시 함께 있어야할 용품이기에 ‘반드시’라는 의미를 가차한 것이다. 이에 따라 宓(밀)은 사당(宀)에서 조상신에게 제사를 지내기 위해 국자(必)로 술 담아 올릴 때는 모두가 숨을 죽이고 고요한 마음으로 예를 갖춘다는 데서 ‘잠잠하다’ ‘고요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虫(충)은 벌레나 파충류, 그리고 양서류와 같은 생물들이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굴이나 집을 지어 사는 벌레의 총칭이다. 따라서 蜜(밀)의 전체적인 의미는 벌(虫)들이 집(宀)을 짓고서 그 안에 국자(必)로 퍼 담듯 꿀을 모아 저장하는 특성을 살려 ‘꿀’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배 腹(복)은 육달월(月=肉)과 돌아올 복(㚆=复)으로 구성되었다. 肉(육)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데, 일반적으로 짐승의 사체에서 잘라낸 살코기를 뜻하며 肉(육)자가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동일한 뜻을 지닌 月(육달월)로 줄여 쓰이기도 한다.㚆(복)은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참조할 때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는 도구인 ‘풀무’와 발을 뜻하는 止(지)가 더해진 모양이었으나 현재자형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 여기서 말한 풀무는 발을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로 밟을 때마다 통 속의 칸막이가 왕복으로 오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따라서 腹(복)의 전체적인 의미는 바람을 일으키는 풀무(复)와 같이 호흡을 할 때 마다 들고나는 살(肉)이 많은 곳, 즉 ‘복부’를 뜻하게 되었다.
칼 劍(검)의 구성은 다 첨(僉)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僉(첨)은 모일 집(亼)과 사람의 입을 뜻하는 두 개 입 구(口)와 두 개의 사람 인(人)으로 짜여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한다하여 ‘모두’ 혹은 ‘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따라서 劍(검)의 전체적인 의미는 한 쪽 날만을 세운 도마용 칼과는 달리 양 날(僉)을 세운 칼(刂)이라는 데서 ‘검’ ‘칼로 찌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口蜜腹劍이란 입으로는 꿀과 같이 달콤하게 말하지만 뱃속 깊숙이에는 날카로운 칼을 품고 있다는 뜻으로, 겉으로 다정하고 친절한 척 하지만 내심으로는 음흉한 생각을 품고 나중에 음해할 뜻을 가지고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다. 당 현종(玄宗) 때의 간신 이임보(李林甫)를 두고 하는 말이다. 재상에 오른 그는 충신들의 간언을 막고 자신과 야합하지 않으면 주살(誅殺)을 일삼았는데, 『唐書당서』에 “이임보는 현명한 사람을 미워하고 능력 있는 사람을 질투한 성정이 음흉하고 위험한 인물이다. 사람들은 그를 입에는 꿀을 묻히고 뱃속에는 칼을 감추고 있었다고 여겼다(李林甫 妬賢嫉能 性陰險 人以爲 口有蜜腹有劒)”라고 기록하고 있다. 양귀비와 주색에 빠졌던 현종은 이임보가 죽은 뒤에야 이러한 사실을 알고서 생전의 관직발탁은 물론 부관참시(剖棺斬屍)라는 극형을 내렸다.
지구촌의 많은 동물 중에서도 오직 인간만이 문자를 통한 학문의 세계를 구현하고 있다. 그래서 고전을 통해 옛사람들의 가르침을 배울 수 있고, 또한 새로운 학문의 영역을 구축할 수 있다. 그러나 학문이 와전되면 동물의 세계보다도 무질서하게 된다.
굽을 曲(곡)은 曲(곡)에 관한 부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참조해 보면 두 개의 손을 뜻하는 왼손 좌(屮)와 오른 손(又) 사이에 밭 전(田)이 그려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즉 밭에서 두 손을 사용하여 일하는 모습이 담겨 있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굽은 대바구니의 상형인 曲(곡)으로 단순화 된 것이다. 그래서 『說文』에서는 “曲은 휜 그릇에 물건을 담은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즉 광주리 모양을 본떴다 하여 ‘굽다’ 또는 ‘굽은 자(曲尺)’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배울 學(학)은 양손으로 잡을 ⺽(국)과 효 효(爻), 그리고 덮을 멱(冖)과 아들 자(子)로 구성되었다. ⺽(국)은 자형의 밑변이 떨어져 있는 것으로 양 손으로 뭔가를 잡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것이다. 爻(효)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爻는 교차한다는 뜻이다. 易(역) 六爻(육효)의 앞머리가 교차하는 것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고문의 그림에서는 점을 치거나 숫자를 셀 때 썼던 산가지가 흩어져 있는 모양인데, 여기서는 사물의 이치를 밝힌 책을 뜻한다. 冖(멱)은 천이나 수건 등으로 어떤 물건을 덮은 모양을 본뜬 것이나 여기서는 건물의 지붕이 변한 모양이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간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學(학)의 전체적인 의미는 서당과 같은 건물(冖)에서 아이들(子)이 양 손(臼)으로 책(爻)을 펼치고 사물의 이치를 ‘배우다’ ‘깨치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아첨할 阿(아, 언덕 아)의 구성은 언덕 부(阝)와 옳을 가(可)로 이루어졌다. 阝(부)는 인공으로 만든 계단을 본뜻으로 한 阜(부)의 약자(略字)다. 갑골문을 보면 인공적으로 만든 계단 모양이다. 즉 고대 황하유역 사람들의 거주지였던 토굴을 오르내리기 쉽게 통나무를 깍아 계단을 만든 모양이었다. 또한 높은 언덕을 오르내리기 쉽도록 흙을 깍아내 계단을 만들었는데 본뜻인 ‘계단’보다는 ‘높은 언덕’이라는 의미로 확대되었다. 可(가)에 대한 해석은 두 개로 나뉜다. ‘ㄱ’자 모양의 농기구로 땅을 일구면서 입(口)으로 노래를 부른다는 것과 누군가 뭔가를 요청했을 때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ㄱ, ‘숨 막힐 고’의 반대 모양) 입(口)에서 나오는 소리는 곧 ‘옳다’거나 ‘허락’한다는 뜻을 의미한다고 보는 견해이다. 따라서 阿(아)의 전체적인 의미는 언덕이나 계단(阝)을 오를 때처럼 허리를 굽히고 옳다(可)고만 한다는 데에서 ‘아첨하다’ ‘알랑거리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언덕’ ‘산기슭’이란 뜻도 파생하였다.
대 世(세)는 열 십(十)에 스물 입(卄)의 더한 합자인데, 30을 의미하면서 ‘대’를 뜻한다. 숫자 一(일)에 세로 선을 내리 그어 1의 10배를 뜻하는 ‘열’이 되었고, 동일한 방법으로 세로 선 두 개를 그어 내리면 스물 卄(입), 세 개는 서른 卅(삽)이 되었다. 즉 숫자 30을 뜻하는 卅(삽)의 변형글자이며, 보통 남녀가 서른 즈음에 결혼을 하여 다음 세대를 이어간다는 데서 ‘대’를 뜻하게 되었다. ‘세상’ ‘인간’이란 뜻은 파생한 것이다.
曲學阿世란 자기가 배운 학문을 올바르게 펴지 못하고 그것을 굽혀가면서 세상에 아첨하여 출세하려는 태도나 행동을 가리키는 말이다. 『史記사기』「儒林傳유림전」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나라 경제(景帝) 때 천하의 인물을 찾다가 중신들의 반대에도 90세의 산동사람 원고(轅固)를 등용하였다. 같은 동향의 젊은 학자 공손홍(公孫弘)이 깔보고 무시했는데, 개의치 않고 충고하기를 “배운 것을 바르게 말하기를 힘쓰고, 배운 것을 굽히어 세상에 아첨하는 일은 없도록 하게나(務正學以言 無曲學以阿世).”라고 했다고 한다. 예부터 학문을 하는 진정한 뜻은 자신을 성찰하는데 있지 출세하는데 있지 않음을 많은 선현들이 설파하여 왔다.
때로 군사작전에서는 부득이하게 고육지책을 써야 할 때가 있다. 유비와 손권의 연합군과 조조의 대군이 맞서 싸운 적벽대전이 그랬다. 요즘엔 기업 간에도 치열한 정보 전쟁이 또한 그렇다. 더불어 함께 잘 사는 세상은 실현하기 어려운 것일까!
쓸 苦(고)의 구성은 풀을 뜻하는 艸(초)의 간략형인 풀 초(艹)와 옛 고(古)로 짜여 있다. 여기서 옛날을 뜻하는 古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여 있는데, 그 의미는 적어도 열(十) 세대(30년)정도 입에서 입(口)으로 전해져 온 시간인 300여년을 말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초목(艹)이 오랜 세월(古)동안 베어진 채 햇볕에 노출되면 오미(五味) 중에서도 쓴맛이 강렬해 진다는 데서 ‘쓰다’는 뜻과 함께 ‘괴롭다’는 의미도 파생하였다.
고기 肉(육)은 썰어 놓은 고기의 근육을 나타낸 상형글자다. 肉(육)에 대해『說文』에서는 “肉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일반적으로 짐승의 사체에서 잘라낸 살코기를 뜻하며 肉(육)자가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군살 胬(노)처럼 자형의 하부에 놓이며, 자형의 좌측이나 상부에 놓일 때는 배 腹(복)이나 장수 將(장)과 같이 동일한 뜻을 지닌 月(육달월)로 줄여 쓴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채찍 策(책)의 구성은 대 죽(竹)과 가시 자(朿)로 이루어졌다. 竹(죽)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竹은 겨울에도 살아 있는 풀이며 상형글자이다. 아래로 드리워진 것은 죽순의 껍질이다.”고 하였다. 고문에서는 대나무 줄기(丨)에 죽순이 올라오며 자연스레 벗겨지는 껍질을 나타낸 것이다. 죽(竹)이 다른 부수를 만나 새로운 글자를 만들 때는 대부분 자형의 상부에 놓이며 대나무와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朿(자)는 나무의 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에 덮을 멱(冖)으로 구성되었는데, 표피가 가시로 둘러싸인(冖) 나무(木)라는 뜻이다. 따라서 策(책)의 전체적인 의미는 소나 말과 같은 동물을 길들이기 위해 대나무(竹)를 쪼개 만들어 가시(朿)로 찌르듯 따끔하게 때리는 도구라는 데서 ‘채찍’를 뜻하였으며, 이러한 채찍질은 동물들이 말을 잘 듣도록 요령 있게 해야 한다는 데서 ‘꾀’ ‘계책’의 뜻도 생겨났다.
苦肉之策이란 적을 속이기 위해 자기 몸에 고통을 가하면서까지 꾸며내는 계책이라는 뜻으로, 절박한 위기의 순간을 벗어나기 위해 고통을 감내하고 어쩔 수 없이 쓰는 계략을 이르는 말이다. 오나라의 손권과 유비가 연합하여 위나라 조조의 대군과 맞선 적벽대전 직전, 연합군 주유의 심복인 황개로 하여금 무참한 형벌과 함께 조조에게 거짓 투항시키면서 배에 잔뜩 실은 기름을 기화로 조조군의 대함선을 불태우면서 적벽대전을 승리로 이끈 것을 두고 한 말이다. 달리 고육지계(苦肉之計)라고도 한다.
쓸모없는 사람이란 없다. 남의 눈엔 하찮은 재주일지라도 한 가족의 생계를 이을 수 있으며, 또한 나라의 초석이 될 수 있다. 어떠한 사물이든 때와 장소에 따라 요긴하게 쓰일 수 있다. 어떤 것이든 백해무익(百害無益)이란 있을 수 없다.
닭 鷄(계)의 구성은 어찌 해(奚)와 새의 모양을 상형한 새 조(鳥)로 이루어졌다. 奚(해)는 손아귀에 뭔가를 쥔 모양의 손톱 조(爫)와 작은 끈을 상형한 작을 요(幺) 그리고 사람이 두 팔을 벌리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큰 대(大)로 구성되었는데, 사람(大)의 목에 끈(幺)을 묶어 손으로 잡고(爫) 있는 것으로 전쟁에 져 포로가 된 사람을 뜻한다. ‘어찌’란 뜻은 가차된 것이다. 따라서 鷄(계)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의 머리를 부여잡듯(奚) 목을 부여잡고 비틀어 잡는 새(鳥)가 곧 ‘닭’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닭의 특성을 살펴, 잘 날지는 못하지만 새(鳥)의 특징을 지닌 닭은 크고(大) 작은(幺) 덤불이나 짚 등을 발(爫)로 헤집으며 먹잇감을 찾아 먹는 성품으로 묘사하면 보다 윤리적일 것 같다.
울 鳴(명)의 구성은 입 구(口)와 새 조(鳥)로 짜여 있다.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이다.
또한 허신은 鳥(조)에 대해 “鳥는 꼬리가 긴 새를 아울러 부르는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고문에 그려진 것은 새의 발이 匕(비)처럼 생겼기 때문에 匕(비)로 구성되었다고 했다. 현재의 자형 중간부위를 말하며 하부의 네 개의 점은 꼬리를 그려내고 있다. 따라서 鳴(명)의 전체적인 의미는 새(鳥)가 주둥이(口)를 벌리고 소리를 내는 것을 사람의 입장에서는 그저 운다고 본데서 ‘울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개 狗(구)의 구성은 개 견(犭)과 글귀 구(句)로 이루어졌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인다. 句(구)는 쌀 포(勹)와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說文』에서는 “勹는 감싼다는 뜻이다. 사람이 허리를 구부린 모양을 본뜬 것이며, 뭔가를 감싸서 안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뭔가를 안은 듯 한 모양을 옆에서 본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이에 따라 句(구)의 의미는 입에서 나온 말(口)을 한 단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문장의 ‘단락’이나 ‘글귀’ ‘구절’을 뜻하기도 하며, 또한 어떠한 물체(口)를 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올가미’ ‘함정’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狗(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가슴에 싸안을(句) 만큼 작은 개(犭)라는 데서 ‘강아지’를 뜻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개의 총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훔칠 盜(도)의 구성은 침 연(㳄)과 그릇 명(皿)으로 짜여 있다. 㳄(연, 선)에 대해서 허신은 『說文』에서 “㳄은 뭔가를 원하고 바랄 때 입에 고이는 액체이다. 欠(흠)과 水(수)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사람의 입에서 침이 튀어나오는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다른 부수에 더해져 주로 부러움이나 탐욕 등과 관련 된 뜻을 지닌다. 皿(명)은 밥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새로운 글자를 형성할 때는 대부분 자형의 하부에 놓여 그릇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盜(도)의 전체적인 의미는 그릇(皿)에 담긴 음식을 보고서 침을 흘리다(㳄) 몰래 집어 먹는다는 데서 ‘훔치다’는 뜻이 생겨 낳다. 이는 생계형 좀도둑을 말한다.
鷄鳴狗盜란 닭 울음소리를 잘 내는 사람과 개 울음소리 흉내를 잘 내는 좀도둑이란 뜻으로, 하찮은 재주를 가진 사람일지라도 때로는 요긴하게 쓸모가 있음을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史記사기』「孟嘗君傳맹상군전」에서 유래했다. 전국시대, 진나라의 소양왕(昭襄王)이 제나라의 귀족 맹상군(孟嘗君)을 초청했는데, 진나라의 국상이 맹상군에게 인재가 많음을 시기하여 그를 죽이려 하였다. 이에 맹상군은 식객들을 시켜 진왕에게 선사했던 흰 여우 가죽옷(狐白裘)을 개 흉내를 내어 훔쳐내어 진왕이 총애하는 왕비에게 주고 구원을 요청하여 궁을 빠져 나왔고, 또한 함곡관(函谷關)에 이르렀을 때는 닭 울음소리를 낼 줄 아는 이를 시켜 새벽인 것처럼 꾸며 관문을 빠져 나왔다고 한다.
사람이 이 세상에 나온 이유는 자신에게 부여된 재능과 소명을 계발하여 다른 사람들에게 이로움을 주기 위한 것일 것이다. 하늘이 나에게 부여한 달란트가 무엇인지를 알기위해서는 어찌해야 할까! 자신을 면밀히 들여다보는 것이다.
밭갈 耕(경)의 구성은 쟁기 뢰(耒)와 우물 정(井)으로 짜여 있다. 耒(뢰)는 풀 어지러이 날 개(丯)와 나무 목(木)으로 구성된 회의글자이다. 논밭에 어지럽게 난 잡초(丯)를 나무(木)로 만든 땅을 파 뒤엎을 수 있는 ‘따비’나 소에 멍에를 씌우고 땅을 갈아엎는 ‘쟁기’를 뜻한다. 井(정)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丼은 여덟 가구가 하나의 우물을 사용한다는 뜻이다. 우물 위에 나무로 짜 얹은 형틀을 본떴으며 가운데 점(丶)은 두레박의 모양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가운데 점이 없는 井(정)자가 보인다. 여덟 가구에 하나의 우물이란 후대에 시행한 정전제(井田制)를 말한 것으로 井(정)자와 같이 구등분한 땅의 중앙은 여덟 가구가 공동으로 경작하여 나라에 바치는 공전(公田)이며, 사방 외곽의 여덟 곳의 땅은 사전(私田)으로 각자가 경작하여 개인이 소유하게 된다. 따라서 耕(경)의 전체적인 의미는 따비와 쟁기(耒)를 이용해 땅을 갈아 농작물을 심고서 잘 자랄 수 있도록 우물(井)을 파 물을 줄 수 있도록 한 행위적 뜻이 담겨 있다.
마땅할 當(당)의 구성은 높일 상(尙)과 밭 전(田)으로 이루어졌다. 尙(상)은 여덟 팔(八)과 향할 향(向)으로 구성되었으며, 向(향)은 벽면을 길게 늘어뜨린 모습과 지붕을 본뜬 집 면(宀)과 집의 입구를 뜻하는 입 구(口)로 이루어졌다. 고대 마을의 가옥구조는 중앙의 광장이나 신전을 중심으로 외곽에 배치되어 있는데, 집(宀)의 입구(口)가 모두 중앙의 신전이나 특정 건물을 향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래서 ‘향하다’라는 뜻과 함께 방향을 나타낼 때 주로 쓰인다. 이에 따라 尙(상)의 의미는 집(向) 중에서도 신전과 같은 특별한 건물은 일반 가옥과는 달리 지붕위에 깃발(八)과 같은 표식을 하여 모든 사람이 신성하게 받들어 모신다는 데서 ‘숭상하다’ ‘높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當(당)의 전체적인 의미는 부족의 신을 모시는 신전(尙)에 딸린 밭(田)은 당연히 마을 공동으로 경작해야 한다는 데서 ‘마땅히’란 뜻이 발생했다.
물을 問(문)의 구성은 문 문(門)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외짝의 문은 戶(호)인데 단출하고 가난한 집을 상징하기도 하며, 이에 비해 門(문)은 부잣집을 뜻하기도 한다. 사람의 입을 상형한 口(구)는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다. 따라서 問(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문이나 방문(門)을 사이에 두고 인사말(口)을 하면서 안부를 ‘묻다’가 기본 뜻이다.
종 奴(노)의 구성은 여자 여(女)와 또 우(又)로 이루어졌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又(우)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奴(노)의 전체적인 의미는 주로 손(又)을 사용하여 잡일을 하는 붙잡혀 온 여자(女) 노예로서 ‘여자 종’ ‘노예’를 지칭하였으나 후대로 오면서 ‘사내 종’으로 바뀌었으며, 자신을 낮추는 대명사로 쓰이기도 하였다.
耕當問奴란 밭가는 일은 마땅히 밭가는 일을 전문으로 하는 노예에게 물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떠한 일을 도모할 경우에는 마땅히 해당분야의 전문가에게 자문을 구하여 행해야 탈이 나지 않음을 말한 것이다. 송나라의 문제가 북위를 정벌하려고 귀족들에게 의논하고 협조를 구하여 군사를 일으키려 했을 때 교위(校尉) 심경지(沈慶之)가 그들의 주장을 못마땅하게 여겨 말하길 “밭일은 종에게 물어야 하고, 길쌈질은 하녀에게 물어야 잘 알 수 있습니다. 북위를 징벌하고자 하시면서 희고 고운 얼굴에 오로지 글만 읽는 사람들과 그 일을 도모하신다면 어떻게 성공을 기약할 수 있겠습니까?(耕當問奴, 織當問婢. 欲伐國而與白面書生, 謀之事何由濟)”하였다. 경험이 풍부한 노장이나 노인은 지혜롭다. 하늘은 모든 사람에게 적어도 한 가지 재주는 주었다. 자기에게 부여된 달란트를 계발하는 것, 바로 그것이 전문가가 되는 길이다.
배움은 끝없는 자기 성찰을 필요로 한다. 눈 코 귀 입이라는 감각기관이 밖으로만 향하고 내면으로 향하지 않을 때는 지식은 얻을지언정 지혜를 얻기가 쉽지 않다. 자신을 돌아보는 반성(反省)이 동반될 때 실다운 앎이 이루어진다.
알 識(식)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찰진 흙 시(戠)로 이루어졌다.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담았는데,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戠(시)는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추상적으로 나타낸 소리 음(音)과 창 과(戈)로 구성되었다. 戈(과)는 긴 나무자루 끝에 날카로운 창과 낫과 같이 또 다른 가지가 달린 무기를 나타낸 상형글자다. 이에 따라 戠(시)는 진흙으로 이겨 만든 아직 소성하지 않은 그릇에 말씀(音)을 날카로운 조각칼(戈)로 새겨 넣는다는 뜻을 지녔다. 따라서 識(식)의 전체적인 의미는 전해오는 훌륭한 말씀(言)을 진흙으로 된 그릇에 날카로운 칼로 새겨(戠)넣어 많은 사람에게 알린다는 데서 ‘알다’ ‘판별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글자 字(자)의 구성은 집의 모양을 본뜬 집 면(宀)과 아직 잘 걷지 못하는 아이의 모양을 상형한 아들 자(子)로 짜여 있다. 고대의 풍속에서는 아이가 태어나 일정 기간이 지나면 가족의 일원이 생겨난 것으로 여기고 비로소 조상을 모신 사당에 보고하는 의식이 있었다. 이때 아이에게 이름을 지었는데, 그것이 바로 字(자)다. 그러다 인문학적인 해석이 더해지면서 집안(宀)에 자식(子)이 불어나듯 글자가 증가한 파생글자를 의미하게 되었다. 육서 중에 두 글자의 뜻을 합해 새로운 글자를 만들어 내는 회의(會意)와 뜻을 의미하는 글자와 소리글자를 더해 새로운 글자를 만드는 형성(形聲), 그리고 이미 만들어진 글자를 가지고 새로운 뜻을 유추해내는 전주(轉注)와 이미 만들어진 글자의 뜻에 관계없이 음이나 형태만을 빌려 쓰는 가차(假借)가 곧 문자 중에서도 字(자)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근심할 憂(우)는 머리 혈(頁)과 마음 심(心) 그리고 천천히 걸을 쇠(夊)로 짜여 있다. 사람의 얼굴(머리)을 뜻하는 頁(혈)은 갑골문과 금문에도 사람의 몸과 머리털을 비교적 상세하게 그려내고 있는데, 특히 얼굴이 강조되어 있다. 또한 책의 면수(페이지)를 나타낼 때는 ‘책면 엽’으로 읽는다. 心(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夊(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따라서 천천히 걸을 夊(쇠)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더디 걷거나 끌려가지 않으려는 뜻을 담게 된다. 이에 따라 憂(우)자에 담긴 내용은 머리(頁)와 가슴(心) 속에 온통 걱정꺼리가 가득 차 그 발걸음(夊)마저도 무거워 보이는 모양을 그려 ‘근심하다’ ‘걱정하다’의 뜻을 담았다.
근심 患(환)의 구성은 꿸 관(串)과 사람의 마음이 담겨 있다고 여긴 심장을 상형한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串(관)은 꼬챙이 찬(丳)의 본래 자형으로 고대 화폐의 일종인 조개의 가운데 구멍을 뚫어 꿴 모습, 또는 두 개의 고기(丨을 제외한 모양)를 불에 굽기 위해 긴 꼬챙이(丨)에 꿴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꿰다’ ‘익히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에 따라 患(환)은 마음(心)이 꿰뚫어질(串) 만큼 아픈 상태로 요즘말로 하면 스트레스로 인한 심인성 질환이라는 데서 ‘근심’ ‘걱정’ ‘병’을 의미하게 되었다.
識字憂患이란 글자를 아는 것이 도리어 걱정과 근심된다는 뜻으로, 너무 많이 알기에 도리어 쓸데없는 걱정도 그 만큼 많다는 것이다. 『三國志삼국지』에서 유래했다. 유비 휘하의 서서(徐庶)는 조조에게는 눈엣가시였는데, 그가 효자라는 것을 알고 그의 어머니 위부인의 서체를 모방한 거짓편지로 결국 조조의 진영으로 끌어들이는 데 성공했다. 나중에 이를 안 위부인은 탄식하며 “여자가 글씨를 안다는 것이 결국엔 근심 걱정을 낳게 하는구나(女子識字憂患)”라고 하였다고 한다. 때로 ‘아는 것이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인간으로 태어 낳기에 죽는 순간까지 영성의 진화를 위해 끊임없는 자성(自省)의 공부가 필요하다.
살다보면 수많은 일을 벌이고 또한 매듭을 짓는다. 어떤 일이든 매듭이 없으면 완결된 것이라 할 수 없다. 매듭을 져야만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 올해도 벌써 매듭을 져야할 12월이다.
맺을 結(결)의 구성은 가는 실 사(糸)와 길할 길(吉)로 짜여 있다. 糸(사)는 누에고치에서 막 뽑아 잣아 놓은 실타래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吉(길)의 구성은 선비 사(士)와 입 구(口)로 짜여 있다. 士(사)의 갑골문을 보면 청동(靑銅)으로 만든 도끼모양을 그렸다. 그러나 한나라의 문자학자인 허신(許愼)은 인문학적인 지식을 더해 “士는 어떤 일(事)을 뜻한다. 숫자는 一에서 시작하여 十에서 끝나며, 士자의 구성은 一과 十으로 짜여있다.”라고 하였다. 동양학에서 十(십)은 사물의 이치를 통달한 지극한 경지를 의미한다. 따라서 士(사)자의 의미는 하나(一)에서 열(十)까지 모든 일에 통달한 사람을 뜻한다. 그래서 요즘에도 士(사)자가 들어가는 바둑의 기사(棋士)나 도사(道士)와 같이 해당분야에서 뛰어난 사람에게 붙여주는 칭호로 쓰이고 있다. 이에 따라 吉(길)은 하나에서 열까지 사물의 이치를 낱낱이 아는 성인과 같은 사람(士)이 일러주는 말씀(口)을 귀담아 들으면 좋은 일만 생긴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結(결)의 전체적인 의미는 좋고 길조를 보이는 것(吉)들을 흩어 지지 않도록 실(糸)로 단단히 묶는다는 데서 ‘맺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마치다’ ‘끝맺다’는 확장된 것이다.
놈 者(자)는 본래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그런데 현재 자전에서 者(자)를 찾으려면 耂(로)부수에서 찾아야 되는 ‘회의글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그 해석 또한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耂)이 나이 어린사람에게 말할 때(白) ‘이놈저놈’ 한다는 데에서 ‘놈’이란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자형하부의 ‘白’은 솥단지가 변화된 것이며 상부의 ‘耂’는 나물이나 고깃덩어리가 부글부글 끓면서 솟아오르는 김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삶다’가 본뜻이었다. 그런데 솥에 삶은 국을 ‘이놈저놈’이 나누어 먹는 다는 뜻을 담아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는 ‘놈 者(자)’로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불 화(灬)를 더해 ‘삶을 煮(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풀 解(해)의 구성은 동물의 머리에 난 뿔을 상형한 뿔 각(角)과 칼 도(刀), 그리고 소 우(牛)로 이루어졌다. 갑골문과 금문을 살펴보면 칼(刀)이 아니라 두 손(廾)으로 그려져 있다. 즉 소(牛)를 잡을 때는 두 손(廾)으로 단숨에 쇠뿔(角)을 뽑아버림을 그려낸 것이었다. 그러다 소전에 이르러 두 손(廾) 대신 칼(刀)로 바뀌었다. 따라서 解(해)의 전체적인 의미는 소(牛)를 식용으로 할 때는 날카로운 칼(刀)로 두 뿔(角)사이를 쳐 절명시킨 뒤 부위별로 해체한다는 데서 ‘가르다’ ‘해부하다’는 뜻 분만 아니라 ‘깨닫다’ ‘통달하다’는 뜻으로까지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結者解之란 매듭을 묶은 자가 풀어야 한다는 뜻으로, 어떤 일을 저지른 사람이 끝까지 해결해야 함을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다사다난(多事多難) 했던 올 한 해, 여기 오시는 모든 분들이 올 한 해 잘 매듭짓기를 소망한다. 나이 듦이 좋다. 천국으로 갈 날이 더 가까이 오기 때문이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걸지는 않는가! 세상이 각박하면 인정도 메마르는가 보다. 요즘 서민경제가 어려워지다 보니 국민의 정서가 각박해지고 있다. 그래선지 조그마한 일에도 모두가 민감하게 반응을 한다.
볼 見(견)의 구성은 눈 목(目)과 사람의 발모양을 본뜬 사람 인(儿)으로 이루어졌다. 目(목)은 상형글자로 사람 눈의 모양, 처음에는 보통 눈과 같이 가로로 길게(罒) 썼는데, 후대로 내려오면서 현재와 같은 세로의 긴 자형(目)으로 변형되었다. 인체 중에서도 유독 눈을 강조한 회의글자이다. 여타 다른 동물의 시각이 아니라 오직 사람(儿)의 입장에 서서 눈을 크게 뜨고 본다(目)는 데서 ‘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모기 蚊(문)의 구성은 벌레 충(虫)과 무늬 문(文)으로 이루어졌다. 虫(충)은 벌레나 파충류, 그리고 양서류와 같은 생물들이 자신만이 들어갈 수 있는 굴이나 집을 지어 사는 벌레의 총칭이다. 文(문)은 가슴에 다양한 형태의 문신이 새겨진 사람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 고대 장례 풍속에서는 죽은 사람의 시신에 문신을 새김으로써 경건함을 나타냈을 뿐만 아니라 신에게 알리는 소통의 의미를 지녔다. 이는 곧 죽으면서 피를 흘려야만 영혼이 왔던 곳으로 돌아간다고 믿었던 의식이 반영된 것이다. 이와 같이 文(문)은 본래 어떠한 ‘무늬’를 뜻하였으나, 초기의 글자가 곧 사물의 문양이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기 때문에 ‘글자’라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따라서 蚊(문)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의 몸을 물면 발갛게 무늬(文)가 새겨지게 하는 벌레(虫)라는 데서 ‘모기’를 뜻하게 되었다.
뽑을 拔(발)의 구성은 손 수(扌)와 달릴 발(犮)로 이루어져 있다. 扌(수)는 다섯 손가락의 모양을 그대로 본떠 만든 상형글자 手(수)의 약자로 쓰기 편하게 한 획을 줄인 것이다. 犮(발)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견(犬)과 오른손 모양을 본뜬 우(又)의 간략형인 ‘丿(별)’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즉 개(犬)의 털을 뽑으려 손(又)을 대려 하면 도망친다는 데서 ‘달리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본뜻인 털을 ‘뽑다’의 의미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그러나 본뜻보다는 ‘달리다’의 뜻으로 활용되자 본래의 의미를 살리기 위해 손 수(扌)를 더해 ‘뽑다’의 뜻을 강조하였다.
칼 劍(검)의 구성은 다 첨(僉)과 칼 도(刂)로 이루어졌다. 僉(첨)은 모일 집(亼)과 사람의 입을 뜻하는 두 개 입 구(口)와 두 개의 사람 인(人)으로 짜여 있는데,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이구동성(異口同聲)으로 말한다하여 ‘모두’ 혹은 ‘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따라서 劍(검)의 전체적인 의미는 한 쪽 날만을 세운 도마용 칼과는 달리 양 날(僉)을 세운 칼(刂)이라는 데서 ‘검’ ‘칼로 찌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見蚊拔劍이란 모기를 보고서 칼을 뽑는다는 뜻으로, 사소한 일에 크게 성을 내며 덤빔을 이르는 말이다. 마치 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태우는 것이나 다를 바 없다. 조그마한 일에 화를 내다보면 큰일을 도모할 수 없다. 부부싸움의 경우도 사소한 일로 시작되어 가정의 불화나 파탄으로 까지 발전하는 경우가 많은 것 같다. 사소한 일에 목숨 걸지 않았음 좋겠다.
사람에 대한 업적의 평가는 적어도 사후 백여 년이 지난 뒤에야 올바른 평가를 할 수 있다고 한다. 동시대를 산 사람들의 평가는 아무래도 정한 등에 얽혀 시시비비를 올바르게 할 수 없기 때문일 것이다.
덮을 蓋(개)의 구성은 풀 초(艹)와 덮을 합(盍)으로 이루어졌다. 盍(합)은 갈 거(去)와 밥그릇이나 함지박과 같은 그릇을 본뜬 그릇 명(皿)으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가다’는 뜻의 갈 거(去)는 그릇의 뚜껑을 그려낸 것이다. 즉 그릇(皿)에 뚜껑(去)을 ‘덮는다’는 뜻이었는데, 그 뜻을 보다 강조하기 위해 풀(풀 초: 艹)을 얹었다. 수레의 차양을 의미하기도 한다.
널 棺(관)의 구성은 나무의 가지와 줄기 그리고 뿌리모양을 상형한 나무 목(木)과 벼슬 관(官)으로 이루어졌다. 官(관)은 집 면(宀)과 쌓일 퇴(㠯)로 구성되었다. 宀(면)은 지붕과 양 벽면을 본뜬 것으로 사람이 사는 집을 뜻한다. 보통 맞배지붕처럼 대칭구조로 이루어진 지붕형태를 취한 집을 의미한다. 㠯(퇴)는 흙을 쌓아 만든 작은 언덕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官(관)은 언덕이나 토대를 쌓아(㠯) 지은 집(宀)으로 ‘관청’을 뜻하였다. 따라서 棺(관)의 전체적인 의미는 관청(官)의 건물처럼 네모반듯하게 나무(木)로 만들어 시체를 넣는 ‘널’ ‘관’을 뜻하게 되었다.
일 事(사)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을 상형한 것으로 처음에는 기록을 주로 하는 사관(史官)을 뜻하였다. 이는 자형의 유래가 같은 ‘역사 史(사)’와 ‘벼슬아치 吏(리)’ 역시 갑골문에는 ‘붓을 손으로 잡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이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허신이 『설문해자』에서 정의한 것처럼 史(사)는 ‘일을 기록하는 사람’으로, 吏(리)는 ‘사람을 다스리는 자’로, 事(사)는 ‘직책’으로 분화되었다.
정할 定(정)은 지붕과 벽면의 모양을 상형한 집 면(宀)과 필 필(疋: 발 소)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집(宀)은 사당을 뜻하며, 필(疋)은 바를 정(正)의 옛글자로 똑바르게 한 길(一)로 간다(止=之)는 의미가 담겨 있다. 따라서 신을 모시는 사당(宀)의 물건들을 요소요소에 똑바르게(疋=正) 그 위치를 지정한다는 데서 ‘정하다’ ‘정해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蓋棺事定이란 특정한 사람이 죽었을 때 관 뚜껑을 덮고서야 그 사람의 업적을 정리할 수 있다는 뜻으로, 사람은 죽고 난 뒤에라야 이해관계에 얽히지 않고 올바르고 정당한 평가를 내릴 수 있다는 말이다. 두보(杜甫)가 사천성 기주(虁州)에 머물고 있을 때 친구의 아들인 소혜(蘇徯)가 그곳으로 유배 와 실의에 빠져 지내는 것을 안타까워하며 지어 보낸 시다. 일부를 옮겨 보면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길가에 버려지다 시피 한 연못을.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눈앞에 꺾여 진 오동나무를. 죽은 오동나무는 백년 후에야 거문고를 만들기에 알맞다네. 조그마한 묵은 연못일지언정 교룡을 숨기기도 한다네. 장부의 삶은 관 뚜껑이 덮여야만 그 시비를 정할 수 있으니, 그대는 다행히 아직도 늙지 않았다네.(君不見道邊廢棄池,君不見前者摧折桐. 百年死樹中琴瑟, 一斛舊水藏蛟龍. 丈夫蓋棺事始定, 君今幸未成老翁.)”라며 궁벽한 곳으로 유배 온 그에게 원대한 포부를 키울 것을 독려하였다.
요즘처럼 SNS(Social Networking Service)가 발달되어 의사소통이 원활한 것 같지만, 지나치게 소소한 것 까지도 넘쳐나 때로는 언로의 소중함을 잃어버릴 때가 많다. 정보의 홍수 탓에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불필요한지를 가려내는 것도 번거롭고, 정보의 방만함이 오히려 심신을 괴롭히는 요즘이다.
편안할 康(강)의 구성은 곡식 경(庚)의 생략형과 쌀 미(米)의 변형으로 이루어져 있다. 庚(경)에 대한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아도 곡식의 수확과 관련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자형이 고문과는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그 뜻에 있어서는 보다 명확히 하고 있다. 즉 열매나 알곡을 수확(彐)하여 창고(广)에 들여놓은(入) 모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곡식’이란 뜻과 함께 ‘가을’이란 뜻도 공유하고 있다. 일곱째 천간을 뜻하는 것은 가차된 것이다. 米(미)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米는 곡식의 알맹이라는 뜻이다. 벼와 기장의 알맹이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가로획(一)을 중심으로 상하에 각각 세 점이 곡식의 낟알을 표시하고 있다. 이에 따라 康(강)의 전체적인 의미는 가을 맞아 창고에 가득 곡식을 수확(庚)하였을 뿐만 아니라 주식인 쌀(米)도 쌓아 두었으니 ‘풍년들다’의 뜻으로 쓰였으며, ‘편안하다’ ‘즐겁다’의 뜻은 이로부터 파생된 것이다.
네거리 衢(구)의 구성은 다닐 행(行)과 놀랄 구(瞿)로 이루어졌다. 行(행)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거리에서의 행위적 요소로 쓰이지만 ‘항렬(行列)’이나 같은 ‘또래’를 나타내는 글자로도 그 의미가 확장되었다. 瞿(구)는 눈의 모양을 상형한 눈 목(目) 두 개를 겹쳐 써 뭔가를 분주히 살피는 모양을 그려낸 두리번거릴 구(䀠)와 새 추(隹)로 이루어졌다.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瞿(구)는 새(隹)가 뭔가에 놀라 두 눈을 두리번거리(䀠)며 사방을 살핀다는 데서 ‘놀라다’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衢(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과 우마차 등이 분주히 오가 사방을 잘 살펴(瞿) 가야하는 네거리(行)라는 데서 ‘네거리’ ‘갈림길’을 뜻하게 되었다.
연기 煙(연)의 구성은 타오르는 불꽃을 본뜬 불 화(火)와 막을 인(垔)으로 이루어졌다. 垔(인)은 덮을 아(襾)와 흙덩이 쌓은 모양을 본뜬 흙 토(土)로 짜여 있는데, 襾(아)에 대해 『說文』에서는 “襾는 덮는다는 뜻이다. 冖(멱)으로 구성되었으며 위아래를 덮는 모양이다.”라고 하였다. 자형 상부의 一(일)은 하늘을 뜻하고 위에서 아래로 덮는 것은 冖(멱)이며 아래서 위로 덮는 것은 자형 중앙에 있는 ‘凵’모양이다. 즉 위아래에서 감싼 것을 말한다. 이에 따라 垔(인)은 흙(土)으로 쌓아 올린 부뚜막이나 연기가 잘 빠져 나갈 수 있도록 조형한 굴뚝(襾)을 연상할 수 있다. 따라서 煙(연)의 전체적인 의미는 불(火)을 지필 때 생성된 연기가 굴뚝(垔)으로 빠져나가 공중으로 피어나는 모습을 그려내 ‘연기’라는 뜻을 나타냈다.
달 月(월)은 반달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다. 月(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月은 이지러진다는 뜻이다. 태음(太陰)의 정수로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三陰三陽論(삼음삼양론)에 따르면 음기(陰氣)가 가장 큰 상태를 태음이라 하며, 그 다음이 소음 궐음 순이다. 陽(양)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태양으로 항상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實(실)이라 하며, 陰(음)인 月(월)은 이지러져 있는 때가 많기에 闕(궐)이라 한다. 그래서 갑골문 등에도 반달과 같은 모양으로 기록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글자인 夕(석)은 해가 서산으로 지고 반달이 동쪽 산허리에 걸친 모양이라 할 수 있다. 갑골문에는 반달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月(월)이나 夕(석)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月(월)은 달 자체를, 夕(석)은 밤을 뜻하다, 밤을 뜻하는 夜(야)의 등장으로 夕(석)은 또다시 해질녘으로 세분화 되었다.
康衢煙月이란 사람과 우마차가 분주히 오가는 번화한 크고 넓은 네거리에 저녁밥 짓는 연무사이로 은은하게 내리 비치는 달빛을 그려낸 것으로, 태평성대의 평화로운 풍경을 나타냈다. 『列子』에 수록된 「康衢謠강구요」에서 유래한 것으로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요임금이 민심을 살피려고 저자거리에 나와는 데 때마침 아이들이 “우리 백성이 이렇게 잘 살고 있는 것은 모두가 임금의 지극한 덕이네. 우리는 아무것도 모르지만 임금이 정하신 대로 살아간다네(立我烝民 莫匪爾極 不識不知 順帝之則)”라고 노래를 불렀다 한다. 그야말로 요순지절(堯舜之節)은 태평성대(太平聖代)요, 고복격양(鼓腹擊壤)하였으니 그 시절이 부러울 따름이다.
살다보면 알게 모르게 수많은 도움을 받고 사는 게 이승의 삶이다. 그래서 죽어서라도 그 은혜를 갚겠다는 백골난망(白骨難忘)이 있는가 하면 결초보은(結草報恩)의 마음을 지니는 게 우리네 인정이다.
새길 刻(각)은 돼지 해(亥)와 칼 도(刂)로 구성되었다. 亥(해)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亥는 뿌리라는 뜻이다. 10월이 되면 미약한 양기(陽氣)가 일어나 왕성한 음기(陰氣)와 접한다. 二(상)으로 구성되었으며, ‘二’은 上(상)의 옛글자이다. 한 사람은 남자이고 한 사람은 여자다. 乚(은)으로 구성되었는데, 아이 밴 모양을 본뜬 것이다. 『春秋傳춘추전』에도 ‘亥의 두 획은 머리모양이고 여섯 획은 몸의 모양이다.’고 했다.”고 기록하고 있다. 소전의 자형을 설명한 것으로 남녀가 교합하여 아들(子)을 낳는다는 것, 즉 12지지가 亥(해)에서 끝나지만 다시 子(자)로 이어지는 순환관계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돼지라는 뜻은 가차한 것이며 허신의 설명처럼 남녀, 즉 음양(陰陽)을 나타낸 글자다. 刂(도)는 刀(도)의 간략형으로 한 쪽 날만을 세운 칼이다. 오늘날 주로 주방에서 쓰는 칼과 같이 한 쪽 면만 날을 세우고 다른 한 면은 양념 등을 다질 수 있도록 등을 만든 것을 ‘刀’라고 한다. 이에 비해 다 첨(僉)과 칼 도(刀)로 짜인 검(劍)은 양 날을 지닌 칼을 뜻한다. 따라서 刻(각)의 전체적인 의미는 조각칼(刂)을 이용하여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음양(陰陽), 즉 양각(陽刻) 혹은 음각(陰刻)으로 ‘새김’을 뜻한다.
뼈 骨(골)은 뼈 발라낼 과(冎)와 육달 월(月=肉)로 구성되었다. 冎(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冎는 사람의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둠을 뜻하는 상형글자로 머리의 융기된 뼈를 말한다.”라고 하였다. 『列子』에 보면 “염(炎)나라 사람들은 자신의 친척이 죽으면 살을 도려내어 버린다.”고 하였다. 肉(육)은 크게 썬 고기 덩이를 뜻하는 상형글자인데, 일반적으로 짐승의 사체에서 잘라낸 살코기를 뜻하며 肉(육)자가 다른 부수와 합해질 때는 동일한 뜻을 지닌 月(육달월)로 줄여 쓰이기도 한다. 따라서 骨(골)의 전체적인 의미는 살(月=肉)을 발라내고 남은 뼈(冎)라는 데서 ‘뼈’를 뜻하며, 또한 뼈대는 체형을 이루는 근간이라는 데서 ‘요긴하다’의 뜻도 지니게 되었다.
어려울 難(난)의 구성은 진흙 근(堇)의 변형과 새 추(隹)로 이루어져 있다. 堇(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堇은 차진 진흙이다. 黃(황)의 생략형과 土(토)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머리에 장식을 한 관(卝) 모양과 입(口)이 강조된 사람의 발아래에 불 화(火)의 고어가 놓인 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금문의 후기로 오면서 흙 토(土)로 변화된 자형을 보여 주고 있다. 또한 隹(추)에 대해서도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따라서 難(난)의 전체적인 의미는 진흙(堇) 속에 빠진 새(隹)가 날아가려 할 때 어렵사리 발을 뺀다는 데서 ‘어렵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잊을 忘(망)의 구성은 망할 망(亡)과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더불어 속자로 亾(망)으로 쓰기도 하는데, 사람이 언덕에서 굴러 떨어져 죽음을 뜻하기도 한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인데, 여기서는 생각을 하는 주체로서의 마음이다. 따라서 忘(망)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리 몸의 주체인 마음(心)에서 없어져버렸다(亡)는 데서 ‘잊다’의 뜻을 갖게 되었다.
刻骨難忘이란 남에게 입은 은혜로움이 뼈에 새길 만큼 깊고 깊어 잊기가 어려움을 말한 것으로, 비슷한 말로 백골난망(白骨難忘)과 결초보은(結草報恩)이 있다. 살다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일들이 참으로 많다. 부정적인 기억은 지워버리고 은혜로움과 같은 긍정적이고 힘을 북돋게 하는 아름다운 기억은 늘 가슴에 안고 살아가는 게 심신의 건강에도 좋다.
우선 듣기 좋은 말은 유혹일 가능성이 높다. 예나지금이나 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서 온갖 아첨을 떠는 사람들이 참으로 많다. 특히 정치판에 그러한 사람들이 많을 때는 큰 정변이나 나라의 주인이 바뀐다는 징조일 것이다.
공교할 巧(교)의 구성은 장인 공(工)과 공교할 교(丂)로 이루어졌다. 工(공) 자는 갑골문과 금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글자인데, 대체적으로 장인들이 일을 할 때 쓰던 길이를 재거나 뭔가를 깎아내고 구멍을 파는 ‘공구’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工(공)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工은 정교하게 꾸민다는 뜻이다. 사람이 가늠자(規矩)를 들고 있는 것을 본떴으며, 巫(무)자와 글자의 제작의도가 같다.”라고 하였다. 다른 부수에 工(공)이 더해지면 도구로써 일을 한다는 의미를 지니게 된다. 한편으로는 소리를 내기위해 틀에 매달린 석경(石磬)으로 보기도 한다. 여러 음계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각기 정교하게 돌을 깎아 다듬어야 한다는 데서 ‘장인’ ‘기교’ ‘솜씨’ 등의 뜻이 발생하였다. 丂(교)는 巧(교)의 옛글자로 돌이나 나무를 다듬는 공구를 그려낸 것이다. 따라서 巧(교)의 전체적인 의미는 솜씨 좋은 장인(工)이 끌이나 망치와 같은 공구(丂)를 손에 들고서 뭔가를 만든다는 데서 ‘공교하다’ ‘솜씨가 좋다’ ‘예쁘다’ ‘약삭빠르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말씀 言(언)은 입(口)에 나팔모양의 악기(辛)를 대고서 소리를 낸다는 뜻을 표현하였다. 言(언)에 대해 『說文』에서는 “직접 말하는 것을 言(언)이라 라고 여러 사람이 토론하는 것을 語(어)라고 한다. 口(구)로 구성되었으며 자형 상부의 건(辛의 하부에서 一이 빠진 글자)이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즉 스스로 생각한 바를 입(口)을 통해 찌르듯이(辛) 말한다는 뜻이다. 따라서 言(언)이 들어가는 글자는 입을 통해 소리로 묘사하는 다양한 행동적 양식을 나타내게 된다.
명령할 令(영, 령)의 구성은 모일 집(亼)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을 본뜬 병부 절(卩)로 이루어져 있다. 여기에서 亼(집)은 높다랗게 팔자지붕으로 지어진 사당이나 공공건물을 의미한다. 즉 한마을의 촌장이나 제사장이 거주하는 높다란 건물(亼)안에 많은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卩)이라는 데서 ‘명령하다’ ‘시키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빛 色(색)은 서있는 사람을 상형한 사람 인(人)의 변형인 ‘⺈’ 모양과 꿇어앉은 사람의 모습이 변한 꼬리 파(巴)로 구성되었다. 위에 있는 사람(⺈: 남자)과 아래에 있는 사람(㔾: 여자)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이는 사랑을 나누고 있는 장면이다. 남녀상열(男女相悅)일 때는 서로의 얼굴에 밝은 빛의 홍조가 띄기 마련이어서 ‘낯빛’을 뜻하는 글자였지만, 후대로 오면서 색깔을 나타내는 의미로 확장되었다.
巧言令色이란 남의 마음을 사로잡기 위해 교묘하게 꾸며서 하는 말과 함께 아첨하려 낯빛을 바꾼다는 뜻으로, 『論語논어』「學而篇학이편」에 나오는 말이다. 공자가 강조하여 말하길 “교묘한 말과 함께 아첨하는 얼굴을 하는 사람은 착한 사람이 드물다(巧言令色鮮矣仁)”라고 하였다. 그럴 듯한 말과 함께 남의 비위를 잘 맞추거나, 싱글싱글 웃으며 다가오는 사람치고 마음 착하고 진실 된 사람이 드물다는 뜻이다. 그래서 노자도 『道德經도덕경』에서 “믿음직스러운 말은 아름답지 않고, 아름다운 말은 믿음직스럽지 못하다(信言不美, 美言不信)”라고 하였다.
군자의 나라가 있을까! 있다. 고대 중국인들에게 비친 우리 선조인 동이족이 세운 고조선을 두고 하는 역사적 기술이다.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서로 다투지 않았던, 이러한 정신은 어디로 간 걸까!
좋을 好(호)의 구성은 여자 여(女)와 아들 자(子)로 이루어졌다. 女(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따라서 好(호)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머니(女)가 순진무구한 아이(子)를 따스한 품에 안고 있는 정겨운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그 모습은 누가 보아도 좋고 아름답기 때문에 ‘좋다’ ‘아름답다’ 등의 뜻을 부여하였다.
사양할 讓(양)의 구성은 사람의 입에서 나온 말소리를 기호화 한 말씀 언(言)과 도울 양(襄)으로 짜여 있다. 襄(양)의 금문을 살펴보면 겉옷(衣) 사이로 양손을 내밀어 쟁기와 같은 도구를 이용하여 흙을 파헤치는 모양임을 추측할 수 있다. 즉 농기구로 단단한 땅을 잘게 부수어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하기 때문에 ‘돕다’는 뜻이 생겨났고, 또한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흙을 돋우기 때문에 ‘오르다’는 뜻도 파생하였다. 따라서 讓(양)의 전체적인 의미는 도움(襄)을 주려는 상대에게 겸손한 말(言)로써 거절한다는 데서 ‘사양하다’ ‘겸손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아닐 不(불)의 갑골문을 보면 ‘나무뿌리’와 같은 모양이나, 허신이 『說文』에서 “不은 새가 하늘로 날아올라가 땅으로 내려오지 않는다는 뜻이다. 一(일)로 구성되었으며, 一(일)은 하늘을 뜻하며 상형글자다.”고 한 이래 ‘하늘로 날아가 내려오지 않은 새’로 해석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래서 부정을 뜻하는 부사로 가차되어 쓰이고 있다.
다툴 爭(쟁)의 구성은 손톱 조(爫)와 다스릴 윤(尹)으로 이루어졌다. 尹(윤) 자의 ‘彐’라는 부수는 요즘에는 ‘돼지머리 혜’나 ‘고슴도치 머리’ 등으로 불리기도 하지만, 여기에서는 오른 손으로 뭔가를 쥐고 있는 모습인데, 삐침 별(丿)은 지휘봉이나 깃발을 상징하고 있다. 따라서 爭(쟁)의 전체적인 의미는 우두머리(尹)가 무리를 다스리기 위해 통솔의 상징물을 오른 손에 쥐고서 지휘를 하는데, 또 다른 사람이 손(爫)을 써서 그 상징물을 빼앗기 위해 서로 ‘다툰다’는 뜻을 나타낸 것이다. 이는 인간들의 투쟁을 그려낸 글자이다.
好讓不爭이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서로 다투지 않는다는 뜻으로, 동북아 최고의 지리서인 『山海經산해경』「海外東經해외동경」에서 고조선을 지칭하여 기술한 내용이다. 즉 “군자의 나라가 북쪽에 있는데, 의복을 갖추고 관을 썼으며 칼을 차고 다닌다. 육식을 하며 큰 호랑이 두 마리를 곁에서 호위케 하였다. 그 나라 사람들은 양보하기를 좋아하고 다투지 않는다. 훈화초(무궁화)가 있는데, 아침에 피었다가 저녁에 진다(君子國在其北 衣冠帶劍 食獸 使二大虎在旁 其人好讓不爭 有薰華草 朝生夕死).”라고 하였다. 요즘의 정치인은 물론 사회지도자들이 다시금 본받아야 할 민족정신이다.
살아 있는 생명은 모두가 나름대로 존귀한 존재다. 존귀한 존재임을 아는 것이 또한 깨달음의 과제이기도 하다. 그래서 선지자들은 모든 생명의 근원은 밝은 빛과 같은 존재임을 설파했다.
오직 唯(유)의 구성은 입 구(口)와 새 추(隹)로 짜여 있다. 口(구)는 사람의 입을 상형한 것으로 인체 기관에 국한하지 않고 다양한 쓰임으로 확장된다. 먹고 말하는 것은 물론 사람이 들고나는 문이나 한 개체를 말하는 단위 등 가장 활발하게 이용되는 기본부수 중 하나이다. 隹(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따라서 唯(유)의 전체적인 의미는 새(隹)가 짧게 짹짹 지저귀(口) 듯이 ‘짧게 대답하다’는 것이 본뜻이며, 또한 새의 지저귐을 사람의 입장에서 들을 때는 ‘오직’ 같은 소리로만 들리기에 ‘오직’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나 我(아)는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은 세 개의 칼날을 지닌 삼지창의 모양이었지만 금문과 전서를 거치면서 손의 모양을 상형한 손 수(手)와 창이나 칼과 같은 무기류를 뜻하는 창 과(戈)로 이루어져 있다. 즉 손(手)으로 창(戈)을 들고서 방어하는 주체자인 ‘나’를 뜻하게 되었다.
홀로 獨(독)은 큰 개 견(犭)과 누에 촉(蜀)으로 구성되어 있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인다. 蜀(촉)은 누에의 상형(罒)과 고치에 싸인(勹) 번데기(虫)를 의미한다. 獨(독)자는 이 두 동물의 식생과 관련하여 그 뜻을 지니게 되었다. 즉 큰 개(犭)와 누에(蜀)는 먹이를 주면 오직 혼자만 먹으려 하기 때문에 적당한 거리를 유지시키며 ‘홀로’ 떼어놓아야 별탈이 없다는 데서 ‘홀로’ ‘홀몸’을 뜻하게 되었다.
높을 尊(존)은 우두머리 추(酋)와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酋(추)는 항아리에 담긴 술(酉)로써 오랫동안 잘 발효시켜 좋은 향이 퍼짐(八)을 표현한 자형이다. 즉 잘 발효된 좋은 술은 우두머리와 같은 높은 사람이 마실 수 있으니 ‘추장’ 혹은 ‘우두머리’와 같은 뜻으로도 확장되었는데, 본뜻은 ‘잘 익은 술’이란 뜻이다. 寸(촌)은 여러 가지 의미가 있는데, 이 자형에서는 두 손으로 바침을 뜻한다. 즉 잘 익은 좋은 술(酋)을 두 손(寸)으로 들고서 제사상 혹은 윗사람에게 바치는 모양에서 ‘높이다’ ‘공경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높이다’는 뜻으로 할 때는 ‘존’으로 읽지만 ‘술잔’과 같은 제기(祭器)의 용도로 쓰일 때는 ‘준’으로 발음한다.
唯我獨尊이란 오직 나 홀로 존귀하다는 뜻으로, 석가의 탄생게(偈)인 천상천하(天上天下) 유아독존의 줄임말이다. 즉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은 그 자체로서 존엄성과 존귀한 존재임을 일깨워 인간 본래의 성품인 진아(眞我)를 깨달아 실현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게송이다. 내 안의 ‘참된 나(眞我)’를 찾자면 끊임없는 자기 성찰(省察)이 필요하다. 밖에 있는 게 아니라 바로 내 안에 있기 때문이다.
평상심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은 언제 보아도 여유롭다. 심신일여(心身一如)라고 했다. 몸은 곧 마음을 상태로 그대로 반영한다. 그래서 마음을 한결같이 안정되게 유지하는 것이 곧 건강한 몸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자 첩경이다.
말씀 談(담)의 구성은 말씀 언(言)과 불꽃 염(炎)으로 짜여 있다. 言(언)은 입을 통해서 나오는 소리를 의미하는데, 말이란 마음에 담아둔 것이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 값이다. 따라서 말이나 소리 값을 통해서 그 사람의 질(質)도 가늠할 수 있다고 보았다. 炎(염)은 두 개의 불 화(火)로 구성되었는데, 잉걸불이 활활 타오르는 모습이 담겨 있다. 따라서 談(담의 전체적인 의미는 화톳불이나 모닥불(炎)을 피워 놓고 빙 둘러앉아 정겹게 이야기(言)를 나눈다는 뜻이 담겨 있다.
웃을 笑(소)는 대나무 죽(竹)과 어릴 요(夭)로 구성되었다. 대나무를 간략화 하여 그려낸 竹(죽)은 겨울철에도 푸르름을 잃지 않은 절개의 상징이자 또한 속을 텅 비웠기 때문에 무욕(無慾)을 추구하는 선비들이 가까이 하는 매란국죽(梅蘭菊竹) 중의 하나이다. 초기자형인 笑(소)의 소전(小篆)을 보면 夭(요)가 아니라 개 견(犬)으로 되어 있는데, 예서체로 넘어오면서 현재의 자형인 사람의 모습을 담은 夭(요)로 바뀌었다. 夭(요)는 정면에서 바라 본 사람의 모습을 본뜬 大(대)자에 고개를 뒤로 젖힌 머리모양(丿)을 나타낸 상형글자이다. 夭(요)는 다양한 뜻을 담고 있는데, 앞으로 내달리기 위해 연신 고개를 앞뒤로 흔들며 뛰어가는 모습에서는 어린아이들과 같다하여 ‘어리다’는 뜻을, 머리를 갸웃거리며 요염하게 교태를 부린다하여 ‘예쁘고 아름답다’는 뜻을, 또한 고개를 젖히고 있는 모양에서는 ‘일찍 죽는다’ 하여 요절(夭折)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즉 夭(요)자가 갖는 핵심은 바로 고개를 전후좌우로 흔들어 댄다는 행위적 요소이다. 따라서 笑(소)의 전체적인 의미는 작은 바람결에도 몸체를 일렁이는 대나무 숲의 모습과 함께 바스락거리는 소리요소를 동시에 대나무(竹)에서 취하고, 또한 사람이 즐거움에 겨워 기쁨을 나타낼 때 고개를 전후좌우로 흔들어대는 모습을 더해 ‘웃음’의 소리와 행위적 요소를 담았다고 볼 수 있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쓴다.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다.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짜여 있는데, 코(自)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自’의 현재 의미는 ‘--로부터’ 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같을 若(약)의 구성은 풀 초(艹)와 오른쪽 우(右)로 이루어져 있다. 갑골문에는 사람이 두 손에 뭔가를 쥐고 머리위로 들어 올려 흔들어대는 모양인데, 아마도 신대를 잡은 무녀가 점을 치는 행위인 것 같다. 그래서 신(神)이 말하려는 것과 무녀의 입에서 나온 말이 ‘같다’는 의미를 나타내려한 것이 아니었던가 추측해 본다. 그러나 글자 역시 사상의 발전에 따라 그 표현도 달라지는데, 현재자형을 인문학적인 측면에서 살펴보기로 한다. 艹(초)는 풀 艸(초)의 간략형으로 무성하게 돋아난 풀을 뜻하는데, 두 개의 싹날 屮(철)로 구성되었다. 艹(초)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초목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右(우)는 오른손을 뜻하는 又(우)와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자신이 아닌 남을 도울 때는 주로 오른손(又)을 사용하면서 입(口)도 거들게 되는 것처럼 ‘돕다’가 본뜻이었는데, ‘오른손’이라는 의미로 쓰이자 사람 인(亻)을 더해 ‘도울 佑(우)’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따라서 若(약)의 전체적인 의미는 손(右)으로 골라 뽑아내는 풀(艹)이 비슷비슷 하다는 데서 ‘같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만약’이나 ‘너’를 의미는 가차된 것이다.
談笑自若이란 늘 그러하듯이 태연하게 이야기를 나누며 웃는다는 뜻으로, 어떠한 곤경이나 위험한 상황에서도 평상심을 잃지 않고 의연하게 대처함을 비유적으로 나타낸 말이다. 『三國志삼국지』「甘寧傳감녕전」에서 유래하였다. 조조와 손권이 적벽대전을 치를 때, 조조의 40만 대군 앞에서도 태연자약하게 평상심을 유지하며 대군을 함락시킨 감녕의 용맹스러움을 기린 이야기다.
인적 드문 골짜기를 걸어 본 사람은 안다. 사람의 향기가 참으로 아름답다는 것을. 일면식도 없는 사람마저도 그저 반갑다. 낙엽 진 골짜기에서 사람의 발자국 소리, 고독해보지 않은 사람은 모른다.
빌 空(공)의 구성은 구멍 혈(穴)과 장인 공(工)으로 이루어졌다. 穴(혈)은 고대의 주거의 형태로 땅을 파내어 만든 동굴형태 집의 출입구를 본뜬 것으로 상형글자이다. 그래서 그 의미는 ‘구멍’ ‘동굴’ ‘움집’ 등을 뜻하게 되었다. 工(공)자는 갑골문과 금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글자인데, 대체적으로 장인들이 일을 할 때 쓰던 길이를 재거나 뭔가를 깎아내고 구멍을 파는 ‘공구’로 보는 게 일반적이다. 한편으로는 소리를 내기위해 틀에 매달린 석경(石磬)으로 보기도 한다. 여러 음계의 소리를 내기 위해서는 각기 정교하게 돌을 깎아 다듬어야 한다는 데서 ‘장인’ ‘기교’ ‘솜씨’ 등의 뜻이 발생하였다. 따라서 空(공)의 전체적인 의미는 땅을 파내(工) 만든 굴(穴)처럼 안이 텅 ‘비다’ ‘없다’ 등의 뜻이 생겨났다.
골 谷(곡)은 상형글자인데, 『說文』에서는 “샘(泉)에서 흘러나와 하천(川)으로 통하게 하는 것이 谷이다. 물줄기가 굴(口)에서 나오는 것이 반쯤 드러나 보이는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도 현재의 모양과 거의 같은데, 산 사이의 골짜기로 난 물길이 아직은 완만하게 흐르는 하천이 아니라 바윗돌(口)과 같은 장애물을 비껴 흐르는(두 개의 八) 모양이다. 이에 따라 谷(곡)의 전체적인 의미는 자연스레 흐르는 물길(八이 겹친 부분)사이로 솟아난 바위(口)를 상형한 글자로 잔잔하게 흐르는 강의 상류, 산과 산 사이에 위치한 ‘계곡’을 뜻한다.
발 足(족)은 사람의 다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 있다”라고 하였다.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 자형상부의 口(구)를 허벅지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說文』에서는 몸 전체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소리 音(음)은 입(口)에 나팔과 같은 관악기(辛)를 불고 있는 모양, 즉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표현한 지사글자이다. 音(음)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소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몸 밖으로 나옴이 마디마디가 있는 것을 音(음)이라 한다. 宮(궁)ㆍ商(상)ㆍ角(각)ㆍ徵(치)ㆍ羽(우)는 ‘소리’이고, 絲(사)ㆍ竹(죽)ㆍ金(금)ㆍ石(석)ㆍ匏(포)ㆍ土(토)ㆍ革(혁)ㆍ木(목)은 가락(音)이다”고 하였다. 8음이란 다음의 여덟 가지 재료(絲ㆍ竹ㆍ金ㆍ石ㆍ匏ㆍ土ㆍ革ㆍ木)로 만든 악기에서 나는 소리를 말한다. 자형 상부의 모양(立)은 소리의 꼴을 나팔처럼 형상화한 것이다.
空谷足音이란 인적도 없는 텅 빈 골짜기에서 들리는 사람의 발자국 소리란 뜻으로, 적적하고 외로울 때 사람이 찾아오는 것을 기뻐하고 반가워하는 마음을 표현 것이다. 『莊子장자』「徐無鬼篇서무귀편」에서 유래했다. 사람은 누구나 외롭다. 그 외로움을 어떻게 받아 들이냐에 따라 영성을 기르는 수단이 될 수도 있다.
인간은 5욕(식욕, 색욕, 수면욕, 재물욕, 명예욕)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가! 그 중에서도 마시고 먹고픈 욕망과 종족 보존을 위한 남녀 간의 본능인 색욕은 인간이 삶을 영위하는 기본적인 수단이다. 이 성어는 1995년 음식과 남녀 간의 이야기를 다룬 이안감독의 영화제목으로 더 잘 알려져 있다.
마실 飮(음)의 구성은 다음에서 살펴 볼 밥 식(食)과 하품 흠(欠)으로 이루어졌다. 欠(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欠은 입을 벌려서 내부의 공기를 내보냄을 뜻한다. 공기가 사람의 위로부터 나가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인데,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입을 벌리고 하품하는 모양 그대로이다. 따라서 飮(음)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품하는 것처럼 입을 크게 벌리고(欠) 물이나 술 따위를 먹는다(食)는 데서 ‘마시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밥 食(식)은 밥그릇의 뚜껑을 그려내고 있는 亼(집)과 고소할 皀(급)으로 짜여 있다. 食(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食은 한데 모은 쌀을 뜻한다. 皀(핍)으로 구성되었으며 亼(집)은 소리요소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의 자형을 보면 그릇(豆)에 밥을 담아 뚜껑(亼)을 덮은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보다 설득력을 갖는다. 皀(급)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그 의미는 고소한 냄새가 나는 먹음직스러운 밥을 그릇(皀)에 담아 뚜껑(亼)으로 덮어놓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보통 명사로서 ‘밥’을 뜻하기도 하지만 동사로 쓰일 때는 ‘먹다’라는 의미로 쓰인다.
사내 男(남)의 구성은 밭 전(田)과 힘 력(力)으로 이루어졌다. 田(전)은 경작지를 두둑으로 경계 지은 모양을 그대로 본뜬 상형글자이다. 대륙의 경작지는 끝없이 펼쳐진 대지(大地)여서 논보다는 밭이 대부분일 뿐만 아니라 산도 없이 구릉으로 이루어져 ‘사냥터’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力(력)은 끝이 세 갈래인 오늘날의 쇠스랑과 같은 농기구를 본뜬 것이다. 일부에서는 힘의 상징인 팔뚝의 모양을 본뜬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男(남)의 전체적인 의미는 논밭(田)에서 가래나 쇠스랑과 같은 농기구(力)를 사용하기 위해서는 사내와 같은 힘이 요구됨을 표현한 것으로 ‘사내’ ‘장정’을 뜻한다.
여자 女(녀, 여)는 무릎을 꿇고서 두 손을 모아 신에게 기도하는 사람을 그려낸 상형글자이다. 모계사회 때 만들어진 글자로 당시에는 남자보다는 여자가 중심이 되어 제사를 주도하게 되었는데, 이후 부계사회로 넘어오면서 여자를 지칭하는 대명사로 남게 되었다.
飮食男女란 마시고 먹는 식욕과 남녀 간의 색욕을 뜻한 것으로, 『禮記예기』「禮運예운」편에 “먹고 마시는 음식과 남녀 간의 사랑은 사람들의 가장 큰 본능적 욕망이며, 죽어 없어지는 것 및 가난과 고통은 사람들이 가장 싫어하는 본능적 욕구다(飮食男女 人之大欲存焉, 死亡貧苦 人之大惡存焉)”라고 한 대목에 유래했다. 그러나 이러한 본능적 욕망을 줄여나가는 것 또한 심신수양의 한 수단이 될 수 있다.
누구든 미래에 대한 생각이 있다면 눈앞의 이익에만 급급하지 않고, 또한 결과가 훤히 보이는데도 눈앞의 차이만 알고 결과가 같은 것을 모르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을 것이다. 옛 말에는 이러한 교훈이 담긴 성어들이 많다.
아침 朝(조)의 구성은 열 십(十)과 이를 조(早), 그리고 초승달이나 반달을 본뜬 달 월(月)로 짜여 있다. 여기서 해 일(日)의 상하에 배치된 十은 풀 초(艹)의 간략형이다. 早(조)는 이제 막 수풀(十)속을 벗어나 떠오르는 해(日)의 운행 시점을 본뜬 것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내용은 날을 밝히는 해(日)는 아직 풀(艹) 속에서 나오지 않았고, 대신 달(月)이 서쪽 하늘가에 남아 새벽을 밝히고 있다는 데서 ‘아침’을 뜻하였으며, 조정의 신하들이 아침 일찍 임금이 주석하고 있는 궁을 찾는다는 데서 ‘알현하다’의 뜻도 아울러 지니고 있다.
석 三(삼)은 옆으로 세 개의 선을 그은 모양으로 숫자 ‘3’을 뜻하는 지사글자이기도 하지만, ‘거듭’ ‘자주’라는 뜻도 지니고 있다. 이 三(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三은 하늘ㆍ땅ㆍ사람의 도(道)를 뜻하며, 자형에서 보듯 一과 二가 짝을 이루어 三이 되었으니 완전수인 성수(成數)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따라서 동양학에서는 천지인을 뜻하면서도 사물을 이루는 기본수로 인식, 천지인뿐만 아니라 삼태극(三太極)에서 보여주듯 삼원사상(三元思想)을 확립하게 되었다.
저물 暮(모)의 구성은 저물 모(莫, 없을 막, 고요할 맥)와 해 일(日)로 이루어졌다. 莫(모)는 풀 초(艹)와 해 일(日) 그리고 큰 대(大)로 구성되었는데, 여기서 大(대)는 본래는 풀 초(艹)였으나 간략화 시킨 것이다. 그 뜻은 해(日)가 수풀(艹 + 大) 속으로 들어가 버렸으니 ‘저물 모’로도 쓰이고 또한 모든 사물이 활동을 멈추고 잠 속으로 빠져드니 ‘고요할 맥’으로도 쓰인다. 그리고 어둠이 사위를 감싸니 아무것도 보이지 않아 ‘없다’ 또는 ‘아니다’라는 부정의 뜻도 지니게 되었다. 본디 해가 진 상태를 나타냈던 莫(모)자가 ‘없다’는 뜻을 지닌 莫(막)자로 더 쓰이자, 日(일)을 더해 태양(日)이 수풀 속으로 사라져 없어졌다(莫)는 데서 ‘저물다’ ‘해가 질 무렵’이란 뜻을 보다 명확히 하였다.
넉 四(사)는 초기글자인 갑골문에서는 옆으로 네 개의 선을 그은 ‘亖’모양이었는데, 후대로 오면서 소나 돼지와 같은 동물의 입과 코 모양을 본뜬 ‘四’와 발음이 같다는 이유에서 가차한 것이다. 四(사)에 대해 『說文』에서는 “四는 음(陰)의 숫자이다. 넷으로 나뉜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亖’모양으로 그려져 있는데,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서 이루어진 것이다.
朝三暮四란 원숭이게 주는 먹이를 아침에는 세 개 저녁에는 네 개를 준다는 뜻으로, 간사한 꾀로 남을 속여 희롱함을 비유한 말이다. 『列子열자』「黃帝篇황제편」에 나오는 이야기로, 중국 송나라의 저공(狙公)이라는 사람이 원숭이들에게 아침에는 3개 저녁에는 4개를 주겠다고 했더니 적다고 화를 내더니, 그럼 아침에는 4개 저녁에는 3개를 준다는 말에 좋아하였다는 고사에서 유래하였다.
오곡백과를 수확하는 풍요로운 가을 이면에는 쓸쓸한 그림자가 드리워 있다. 화려한 단풍으로 맵시를 낸 나무들도 머잖아 찬바람에 옷을 벗고 나목(裸木)으로 겨울을 맞을 것이다. 수확을 거둔 황량한 들판, 생명력을 뿌리로 내린 초목의 풍경만으로도 쓸쓸하다.
외로울 孤(고)의 구성은 아들 자(子)와 오이 과(瓜)로 이루어져 있다. 子(자)는 강보에 싸인 아기를 본뜬 상형글자로 머리와 두 팔 그리고 하나의 다리로 묘사하고 있다. 다리를 하나로 그린 것은 아직 서서 걷지 못하는 ‘갓난아이’임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본뜻은 그러하였지만, 보통 장성하지 않은 아이들을 총칭하게 되었다. 瓜(과)는 상형글자로 오이덩굴에 열려 있는 오이의 모양을 그려냈다. 자형외곽은 넝쿨을 뜻하고 가운데는 달랑 하나만 열려 있는 오이와 같은 열매를 의미한다. 따라서 孤(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덩굴에 매달린 오이(瓜)처럼 의지할 부모가 없는 자식(子)이라는 데서 ‘외로움’을 뜻한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새 한 마리 隻(척)의 구성은 새 추(隹)와 또 우(又)로 이루어졌다. 隹(추)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隹는 꽁지가 짧은 새들을 아우른 명칭이며,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꼬리가 긴 새는 鳥(조)라 하며 비교적 짧은 꽁지를 가진 참새나 도요새 등을 지칭하는 글자를 나타낼 때는 隹(추)에 다른 부수를 더해 참새 雀(작)이나 도요새 雂(금)처럼 활용된다. 又(우)는 오른 손을 세 손가락으로 줄여서 만든 상형글자로 왼손에 비해 자주 쓰기 때문에 ‘또’ ‘다시’라는 의미로 확장되었으나 다른 자형에 더해질 때는 주로 ‘손’이라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隻(척)의 전체적인 의미는 한 마리의 새(隹)를 사람의 손(又)으로 잡고 있다는 데서 ‘새 한 마리’ ‘외짝’을 표현하였으며, 두 마리의 새(隹+隹)를 손(又)에 잡고 있으면 ‘둘’ ‘한 쌍’을 뜻하는 쌍 雙(쌍) 자가 된다.
그림자 影(영)의 구성은 볕 경(景)과 터럭 삼(彡)으로 이루어졌다. 景(경)은 밝게 빛나는 태양을 상형한 해 일(日)과 서울 경(京)으로 구성되었다. 京(경)은 상형글자로 옛날에는 높은 언덕위에 신전을 모시고 그 주위에 사람들이 집을 짓고서 산데서 유래하였다. 특히 높다랗게 지은 집을 뜻하기도 하는데, 튼실한 기둥(小)을 세우고 그 위에 내실(口)을 조형하며 제일 상부에 지붕(亠)을 덮은 모양이다. 즉 주거용의 집이라기보다는 궁궐이나 관공서와 같은 건물을 뜻하는데, 그러한 건물이 밀집한 곳이 ‘수도’인데서 ‘서울’이라는 의미를 부여 하였다. 이에 따라 景(경)은 높다란 건물(京) 위를 내리비추는 태양(日)을 그려내 ‘볕’이란 뜻과 함께 ‘경치’란 의미도 부여했다. 彡(삼)은 가지런하게 난 짐승의 윤기 있는 털을 본뜬 것인데, 다른 자형에 더해져 ‘빛나다’는 뜻을 지니게 한다. 따라서 影(영)의 전체적인 의미는 높다란 건물위로 해가 비추면(景) 햇살이 빛날(彡)뿐만 아니라 ‘그림자’도 생기기 마련이다.
孤身隻影이란 외로운 몸과 짝이 없는 하나의 그림자란 뜻으로, 의지할 곳도 없이 외롭게 떠도는 고독한 신세를 비유적으로 이른 말이다. 인생은 나그네라지만, 사회적 관계에 익숙해진 사람들은 갈수록 홀로 있음을 못 견뎌 하는 것 같다. 때론 홀로 있음이 곧 자신의 내면을 되돌아보아 영성의 진화를 꾀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하다.
뛰어난 인물을 뽑는 일은 참으로 쉽지 않은 일이다. 사회적 동물인 인간에 오래전부터 한 무리를 이끌고 대표할 인물을 선택해 왔다. 인구와 조직이 많은 오늘날에는 수없이 많은 선택을 해야 한다. 미디어가 발달한 요즘이지만 여전히 사람 뽑는 일은 어렵다.
가릴 選(선)의 구성은 쉬엄쉬엄 갈 착(辶) 유순할 손(巽)으로 짜여 있다. 辶(착)의 본래자형은 辵(착)으로 가다(彳) 서다(止)를 반복하며 쉬엄쉬엄 가다는 뜻을 지닌다. 辵(착)의 자형 그대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다른 글자와 합하여 새로운 글자로 불어날 때는 辶(착)으로 간략화 되어 쓰인다. 巽(손) 무릎을 꿇고 앉아 있는 사람을 상형한 두 개의 절(卩)과 함께 공(共)으로 구성되었다. 여기서 共(공)은 스물 입(卄)과 두 손으로 받들 공(廾)으로 구성되었는데, 두 개의 열 십(十)으로 짜여 20을 나타내는 卄(입)은 여기서는 그러한 뜻이 아니라 갑골문이나 금문에서처럼 어떤 물건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다. 고대 사람들은 천원지방(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지다’고 믿어 하늘에 제사를 올릴 때는 하늘색을 닮은 비취색의 둥근 옥을 바치고, 땅에 제사를 지낼 때는 땅의 색깔인 네모난 황옥을 바쳐 풍년을 기원했다. 즉 옥이나 또 다른 제물(卄)을 두 손으로 받들어(廾) 바친다는 뜻이 담겨 있다. 그런데 巽(손)의 갑골문은 꿇어앉은 두 사람이었는데, 금문과 소전을 거치면서는 제단을 의미하는 丌(기) 첨가되었다가 후대로 오면서 共(공)으로 정착되었다. 이에 따라 巽(손)의 의미는 제단(共)위에 바쳐진 두 사람(卩+卩)이 공손하게 앉아 있는 데서 ‘유순하다’고 하였다. 따라서 選(선)의 전체적인 의미는 천제를 지내기 위해 제단에 바쳐질 사람(巽)을 가려 뽑기 위해 특정한 장소로 간다(辶)는 데서 ‘가리다’ ‘뽑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좋을 良(량)은 초기자형인 갑골문과는 비교가 어려울 만큼 변화되었다. 본래 良(량)은 본체 좌우의 다른 별체를 오갈 수 있도록 지붕을 인 회랑을 상형한 글자로 눈비가 와도 편리하게 이동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좋다’ ‘편안하다’ ‘뛰어나다’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選良이란 훌륭하고 뛰어난 사람을 가려 뽑음, 또는 그렇게 가려 뽑힌 사람을 이르는 말이다. 오늘은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었는지, 서울시장을 비롯한 42명의 선량을 다시 뽑는 보궐선거의 날이다. 뽑힌 선량들도 중요하지만 가려낸 유권자의 끊임없는 후원과 감시도 필요하다.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했다. 지금 하는 생각은 곧 뇌간의 교감신경과 부교감신경인 자율신경계를 통해 전신의 세포에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생각이 바르면 몸도 바르게 되고 사특한 생각이 많으면 몸속 조화를 잃게 된다.
생각할 思(사)는 뇌를 뜻하는 정수리 신(囟)의 간략형인 田(전)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었다. 囟(신)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囟은 머리의 두개골이 합해진 부위를 말하며 상형글자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도 보이며 정수리 부위의 숨골, 즉 어린이의 머리가 단단하게 굳지 않았을 때 아직 닫히지 않은 부위를 말한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思(사)의 전체적인 의미를 인문학적인 관점에서 살펴보자. 여기서 ‘田’모양은 이성적인 생각을 하는 뇌를 의미하는데, 요즘 두뇌력의 측정지수인 IQ를 뜻하고 있다. 또한 감성지수인 EQ를 의미하는 心(심)은 동양적인 정감을 뜻한다. 따라서 선조들이 강조한 생각이라는 것은 이성적인 뇌(田)의 판단뿐만 아니라 가슴(心)으로 느끼는 정감까지 아우러져 나와야 만이 진정한 ‘생각’으로 여겼음을 알 수 있다.
없을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간사할 邪(사)의 구성은 어금니 아(牙)와 고을 읍(邑)의 간략형인 우부방(阝)으로 이루어졌다. 牙(아)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牙는 어금니를 뜻하며, 위아래가 서로 어긋나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이빨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齒(치)는 치근(齒根)이 하나인 앞니와 송곳니를 나타내며, 또한 牙(아)자에서 보듯 자형상부는 맷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어금니 상부를 그려냈고 자형하부는 치근(齒根)이 둘인 모습을 그리고 있다. 따라서 이빨전체를 말할 때는 치아(齒牙)라고 해야 옳은 표현된다. 邑(읍)은 성곽을 뜻하는 囗(위)아래에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卩)을 그려내 많은 사람이 거주하는 ‘고을’을 뜻하는데, 다른 자형의 우측에 놓일 때는 간략히 ‘阝’로 줄여 쓴다. 따라서 邪(사)의 전체적인 의미는 본래는 어금니(牙)처럼 단단한 지형에 형성된 고을(⻏)인 산동성에 위치한 낭야(琅邪)를 뜻하는 ‘땅 이름 야’였는데,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풍속이 요사스러웠던 데서 ‘간사하다’ ‘사악하다’는 뜻으로 확장되었다.
思無邪란 생각하는 바가 바르므로 사악함이나 사특함이 없음을 말한 것으로, 『論語논어』「爲政篇위정편」의 “공자께서 말씀하시길, 시 300편이 한마디로 축약하여 말한다면 ‘생각에 사악함이 없다’고 하였다.”라고 한 대목에서 유래하였다. 즉 공자께서 『詩經시경』에 들어갈 시 305편을 산정한 후 한 말이다.
역사는 수레바퀴와 같다고 했다. 미래가 불확실한 것 같아도 그 예시는 과거의 역사 속에서 논증되고 있다. 그래서 옛것이라고 소홀이 할 수 없는 것이다. 고전에는 수많은 사람이 체득한 삶의 향기가 피어나기 때문이다.
따뜻할 溫(온)의 구성은 물 수(氵)와 가둘 囚(수) 그리고 그릇 명(皿)으로 짜여 있다. 溫(온)의 본래모양이 그려진 갑골문을 살펴보면 욕조(皿)와 같은 곳에서 따뜻한 물에 사람(人)이 목욕을 하는 모습을 본뜬 것이었는데, 일부에서는 옥에 갇힌 죄수(囚)에게 따뜻한 먹을 것을 그릇(皿)에 담아 주었기에 ‘따뜻한’ 뜻을 지니게 되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따뜻한 물(氵)을 담은 욕조(皿)에서 사람(人)이 물을 끼얹으며(口) 목욕을 하는 모습을 그려낸 것으로 ‘따뜻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익히다’ ‘학습하다’는 뜻도 파생하였다.
옛 故(고)의 구성은 옛 고(古)와 칠 복(攵)으로 이루어졌다. 古(고)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여 있다. 갑골문에서는 입에 문 악기를 뜻하기도 하지만,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기로 하자. 아버지와 자식 간을 보통 1세대(世代)라 하는데, 이 때 쓰인 世자는 열 십(十)에 스물 입(卄)의 합자인 30을 의미한다. 이에 따라 옛날이라는 의미는 대략 열(十) 세대(10☓30=300)인 3백여 년 가량 사람들의 입(口)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즉 3백여 년 전을 뜻한다. 攵(복)은 오른 손(又)에 나무 막대기(卜)를 들고 있는 攴(복)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데, 주로 자형의 우변에 놓여 ‘때리다’ ‘치다’ ‘다듬다’ 등의 의미를 더해준다. 따라서 故(고)의 전체적인 의미는 오래된 옛날(古) 일을 다시 들추어내(攵) 그 까닭을 깬다는 데서 ‘까닭’ ‘연유’라는 뜻으로 뿐만 아니라 古(고)의 뜻을 되살려 ‘옛날’이라는 의미로도 쓰인다.
알 知(지)는 화살 시(矢)와 과녁을 뜻하는 구(口)로 구성되었다. 矢(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矢는 활을 통해 격발하는 화살을 말한다. 入(입)으로 구성되었고, 화살촉과 활 시위대 그리고 깃털로 만들어진 전체 모양을 본떴다. 옛날에 이모(夷牟)라는 사람이 처음 화살을 만들었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을 보면 들 입(入)자와는 관련이 없으며 화살 전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임 분명하다. 矢(시)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화살이란 본뜻을 유지하는가 하면 짧을 短(단)의 용례에서처럼 그 규모가 짧거나 왜소한 뜻을 지니면서 장단의 기준이 되기도 한다. 따라서 知(지)의 전체적인 의미는 활에서 당겨진 화살(矢)이 과녁(口)을 향해 날아가는 방향을 끝까지 지켜보아야 향방을 ‘알 수 있다’는 뜻을 담고 있다.
새로울 新(신)의 구성은 메울 신(辛)의 생략형인 설 입(立)과 나무 목(木) 그리고 도끼 근(斤)으로 짜여 있다. 소리요소이기도 한 辛(신)은 죄인의 이마나 팔뚝에 먹물로 죄명을 새겨 넣던 문신의 도구를 상형한 것으로 본래 ‘죄’를 뜻하였으나 묵형(墨刑)을 당할 때의 고초가 몹시도 매서웠기 때문에 ‘맵다’와 ‘살상’의 뜻으로까지 확대 되었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또한 도끼의 모양을 본뜬 斤(근)의 자형에서 가로획(一)은 도끼의 머리와 날을, 세로획(丨)은 자루를 본뜬 것이며 좌변(厂)은 도끼날을 받는 나무와 같은 대상물을 본뜬 상형글자다. 따라서 新(신)의 전체적인 의미는 나무에 따라 다르기는 하지만, 보통 나무(木)에 생채기(辛)를 내거나 도끼(斤)로 자르게 되면 새롭게 새싹이 돋아난다는 점에서 ‘새롭다’는 뜻을 부여받게 되었다. 그러나 본뜻은 도끼 등으로 잘라낸 ‘땔나무’였는데, ‘새롭다’는 의미로 쓰이자 풀 초(艹)를 더하여 ‘섶나무 薪(신)’을 별도로 제작하게 되었다.
溫故知新이란 옛것을 먼저 익히어 그것으로 말미암아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됨을 이른 말이다. 『論語논어』「爲政篇위정편」에 ‘옛것을 익혀 새 것을 알면 스승이 될 수 있다(溫故而知新可以爲師矣).”라고 한 구절에서 유래하였다. 배움이란 곧 전인교육(全人敎育)적 입장에서 익혀야 한다. 어느 한편에만 치우치면 온전한 인성을 갖추기가 어렵다. 자신의 영성진화를 위해서는 더욱 그렇다.
얼굴은 그 사람의 마음과 기운상태를 알 수 있는 자동차의 계기판이나 다름없다. 특히 마음의 창이라 할 수 있는 눈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래서 예부터 눈을 돌출된 뇌라고 까지 하였다.
얻을 得(득)은 조금 걸을 척(彳)과 얻을 득(㝵)으로 구성되었다. 彳(척)은 허벅지와 종아리 그리고 발을 그려낸 부수로 잰걸음으로 걷는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㝵(득)은 돈을 의미하는 조개 패(貝)의 생략형과 손을 의미하는 마디 촌(寸)으로 구성되었다. 즉 돈(貝)이 될 만한 무언가를 손으로 줍는다(寸)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잰걸음으로 다니면서(彳) 무언가 재화가 될 만한 물품을 손으로 거두어들인다(㝵)하여 ‘얻는다’는 뜻을 담게 되었다.
뜻 意(의)의 구성은 소리 음(音)과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音(음)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소리가 마음에서 우러나와 몸 밖으로 나옴이 마디마디가 있는 것을 音(음)이라 한다.”라고 했는데, 갑골문 등에서는 입(口)에 나팔과 같은 관악기를 불고 있는 모양으로 그려내고 있다. 즉 사람의 입을 통해 나오는 소리를 표현한 것이다. 따라서 意(의)는 소리(音)로써 자신의 마음(心)에 담긴 의지를 알리거나 생각한다는 데서 ‘뜻’과 ‘생각’이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찰 滿(만)의 구성은 물 수(氵)와 평평할 만(㒼)으로 이루어졌다. 氵(수)는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강을 본뜬 水(수)를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한 것으로 자형의 좌변에 놓여 강이나 물의 뜻으로 쓰인다. 㒼(만)은 열 십(十)을 겹쳐 쓴 스물 입(卄)과 두 량(兩)으로 구성되었는데, 兩(량)은 두 마리의 말이 수레를 끌 때 목에 씌운 ‘멍에’를 나타낸 상형글자다. 이에 따라 㒼(만)은 전투에 앞서 일렬로 도열한 많은(卄) 수레를 이끄는 말의 멍에(兩)가 평평하게 보인다는 데서 ‘평평하다’ ‘빈틈이 없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滿(만)의 전체적인 의미는 전투에 앞서 너른 평원에 빈틈없이 도열한 전차(㒼)와 같이 물(氵)이 가득 찬 모양을 그려내 ‘가득 차다’ ‘꽉 채우다’는 뜻을 부여하였다.
낯 面(면)은 얼굴 전체의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자형상부의 一(일)모양은 비교적 넓은 이마를, 그리고 얼굴 중에서도 가장 도드라진 코(自)를 중심으로 좌우의 뺨(囗)부위를 그려내 ‘낯’ ‘얼굴’을 뜻하게 되었으며, ‘겉’이나 ‘표면’은 파생된 것이다.
得意滿面이란 뜻한 바를 이루어서 얼굴 가득 기쁨의 표정이 넘쳐난다는 뜻으로, 성취하고자 했던 목표가 달성되었을 때 얼굴에 나타난 느낌을 표현한 것이다. 가을철 풍성하게 오곡백과를 수확한 농부의 만면 가득 번진 환한 웃음을 떠 올려 보라.
눈이 시리게 푸르른 하늘을 보고 있노라면 아득히 멀고 먼 유년의 추억들이 가슴을 치고 올라온다. 옛 동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하늘 가득 번진다. 그런데 벌써 하늘나라에서 놀고 있는 동무들이 늘어나고 있다.
하늘 天(천)은 큰 대(大)와 한 일(一)로 이루어진 회의글자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一(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天(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위로 끝없이 펼쳐진 허공(一)을 표시하여 ‘하늘’이란 뜻을 부여하였다.
높을 高(고)는 성(城)의 망루를 본뜬 상형글자다. 즉 高(고)자를 보다 자세히 살펴보면 출입구(口)를 갖춘 성곽(冂)위에 높이 지어진 망루(자형상부의 亠+口)를 상형한 것으로 높이 치솟은 모양에서 ‘높다’ ‘뽐내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비싸다’ ‘뛰어나다’ 등은 파생된 뜻이다.
말 馬(마)는 말의 특징인 갈기와 몸통 그리고 꼬리를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馬(마)에 대해 『說文』에서는 “馬는 성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말의 머리와 갈기 털, 그리고 꼬리와 네 다리의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보다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다.
살찔 肥(비)의 구성은 살코기의 모양을 상형한 고기 육(肉)의 간략형인 육(月)과 꼬리 파(巴)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巴(파)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의 절(㔾=卩)이 변화된 것이지 뱀이 똬리를 틀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巴(파)는 아니다. 따라서 肥(비)의 의미는 무릎을 꿇고 있는 사람(㔾)의 허벅지가 통통하게 살(肉=月)이 찐 모양을 그려내 ‘살찌다’ ‘기름지다’는 뜻을 부여했다.
天高馬肥란 하늘은 높고 말은 살찐다는 뜻으로, 가을 하늘은 맑아 내리비치는 햇살은 숙살지기(肅殺之氣)를 지녀 오곡백과가 무르익을 수 있는 결실의 계절을 이르는 말이다. 벌써 올 한 해도 무르익고 있다. 벽공(碧空)의 푸르른 하늘을 보며 마음을 비워야겠다.
세상에는 허황되고 근거도 없는 이야기로 뭇사람을 현혹하는 경우들이 많은 것 같다. 삼인성호(三人成虎)라고 세 사람이면 없던 호랑이도 만든다고 했다. 거짓말이라도 여러 사람이 말하면 참말로 믿게 되는 게 세상사다.
거칠 荒(황)의 구성은 두 포기의 풀 모양을 본뜬 풀 초(艹)와 망할 황(巟)으로 이루어졌다. 巟(황)은 망할 망(亡)과 개미허리변 천(巛)으로 구성되었다. 亡(망)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亡은 도망간다는 뜻이다. 入(입)과 乚(은)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즉 사람이 으슥한 데로 숨어(乚) 든다(入)해서 ‘도망하다’ ‘없어지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또한 사람(亠)이 땅에 영구히 묻히기(乚) 때문에 ‘죽다’라는 뜻으로 보기도 한다. 巛(천)은 川(천)의 본래글자이지만 그 의미는 약간 다르다. 즉 川(천)은 사람의 손길이 닿은 인공적인 하천을 말한다. 즉 자형의 가운데 ‘丨’이 물줄기를 뜻하고 좌우는 인공적으로 쌓아올린 제방을 의미한다. 고대의 정책 중 가장 중요한 일이 곧 물길을 다스리는 치수(治水)였듯이 제방을 쌓아 물이 범람하지 않도록 했음이 川(천)자에 담겨 있다. 또한 巛(천)은 ‘재앙 재(災)’에서 볼 수 있듯 홍수로 인해 범람한 하천을 뜻한다. 이에 따라 巟(황)은 하천의 범람(巛)으로 인해 농작물이 유실(亡)되었다는 뜻을 담고 있다. 따라서 荒(황)의 전체적인 의미는 하천의 범람(巟)으로 인해 농작물이나 초목(艹)을 휩쓸고 간 자리가 ‘거칠다’ ‘황폐하다’는 뜻이며, 이렇게 되니 또한 ‘흉년들다’의 뜻도 지니게 되었다.
당황할 唐(당, 나라 당)의 구성은 클 경(庚)과 사람의 입모양을 상형한 입 구(口)로 이루어졌다. 庚(경)에 대한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아도 곡식의 수확과 관련한 글자임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자형이 고문과는 많이 달라지기는 했어도 그 뜻에 있어서는 보다 명확히 하고 있다. 즉 열매나 알곡을 수확(彐)하여 창고(广)에 들여놓은(入) 모양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곡식’이란 뜻과 함께 ‘가을’이란 뜻도 공유하고 있으며, 곡식은 옛사람들에게는 크나 큰 선물이라는 데에서 ‘크다’는 뜻도 있다. 일곱째 천간을 뜻하는 것은 가차된 것이다. 따라서 唐(당)의 전체적인 의미는 지나치게 큰(庚) 목소리로 말한다(口)는 데서 ‘허풍떨다’ ‘황당하다’ ‘당황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없을 無(무)의 구성은 자형상부의 모양과 불 화(灬)로 짜여 있다하여 회의글자로 분류하고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사람(大)이 양 손에 대나무 가지 등으로 만든 도구(丰)를 들고서 춤추는 무녀(巫女)의 모습을 그려낸 상형적 글자임을 알 수 있다. 자형하부의 ‘灬’는 불의 의미로 쓰인 게 아니라 사람의 발과 양 손에 든 장신구를 나타내려 한 것이다. 요즘도 그렇지만 신이 내려 춤을 추는 무녀의 모습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몰아(沒我)의 경지에서 춤을 춘다. 그래서 일시적으로 자아가 없이 춤추는 무녀의 모습을 보고서 ‘없다’라는 뜻이 발생했다. 無(무)가 본디 ‘춤추다’였으나 ‘없다’ 혹은 ‘아니다’라는 뜻으로 쓰이자, 두 발모양을 본뜬 어그러질 舛(천)을 더해 ‘춤출 舞(무)’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상고할 稽(계)의 구성은 벼 화(禾)와 더욱 우(尤)와 맛 지(旨)로 이루어졌다. 禾(화)의 자형은 갑골문에도 보이는데, 곡식의 이삭이 익어 수그러진 모습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즉 고개를 숙인 이삭(丿)과 좌우로 뻗은 잎사귀(一), 그리고 줄기(丨)와 뿌리(八)를 그려내고 있다. 특히 벼는 곡식 중에서도 가장 으뜸인 점을 감안하여 모든 곡식의 총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尤(우)는 손(又)의 끝부분 즉 손가락에 난 상처를 점(丶)으로 표시한 상형문자다. 또 다른 해석은 손(又)에 쥐고 있던 물건(丶)을 떨어뜨렸다는 데서 ‘허물’을 뜻한다는 견해도 있다. 旨(지)는 비수 비(匕)와 그릇의 모양을 나타낸 ‘日’모양으로 구성되었다. 즉 그릇(日)에 담긴 음식물을 수저나 국자(匕)를 이용해 맛을 본다는 데서 ‘맛’ ‘맛있는 음식’을 본뜻으로 하고 있다. 따라서 稽(계)의 전체적인 의미는 벼(禾)의 낱알을 손에 쥐고 놓으며(尤) 헤아리거나 입맛(旨)을 본다는 데서 ‘상고하다’ ‘헤아리다’ ‘셈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荒唐無稽란 허황되고 허풍스러워 생각해 볼 필요도 없음을 말한 것으로, 말이나 행동이 터무니없고 믿을 수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달리 황탄무계(荒誕無稽)라고도 한다. 요즘엔 인터넷이나 트위터, 페이스북과 같은 SNS(Social Networking Services)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아 황당무계한 일은 금새 폭로가 되는 잇점도 있지만, 역으로 이를 통해 황탄무계한 일을 조장하는 일도 많아지고 있는 것 같다.
세상에는 스스로 잘못한 일은 없는지 하루에 세 번 자신을 살폈다(一日三省吾身)는 부류가 있는가 하면, 저만 잘났다고 목소리를 높이는(自鳴得意) 사람들도 있다. 스스로를 살피고 심신을 다스리는 일은 인간으로서의 숙명(宿命)이어야 한다.
스스로 自(자)는 사람의 얼굴 중앙에 위치한 코를 본뜬 상형글자이다. 自(자)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自는 사람의 코를 뜻한다. 코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그러나 요즘에는 ‘코’의 의미로 쓰이는 경우는 드물고 별도로 제작된 코 비(鼻)를 쓴다. 鼻(비)는 ‘코밑 진상’이라는 의미를 적나라하게 드러낸 글자다. 鼻(비)는 코를 뜻하는 自(자)와 누구에게 무엇을 준다는 의미의 줄 畀(비)로 짜여 있는데, 코(自)아래 입(田=口)으로 먹을 것을 바치게(두 손으로 받들 공:廾) 되면 안 넘어 갈 사람이 없다는 뜻이 담겨 있다. 따라서 ‘自’의 현재 의미는 ‘--로부터’ 와 ‘자기 자신’, 그리고 ‘저절로’ ‘스스로’라는 뜻으로 활용되고 있다.
원망할 怨(원)의 구성은 누워 뒹굴 원(夗)과 마음 심(心)으로 이루어졌다. 夗(원)은 저녁 석(夕)과 사람이 무릎을 꿇거나 구부리고 있는 모양을 상형한 㔾(절)로 구성되었다. 夕(석)은 해가 서산으로 지고 반달이 동쪽 산허리에 걸친 모양이라 할 수 있다. 이에 따라 夗(원)에는 밤(夕)이 되어 낭군도 없이 홀로 자리에 누워있자니 잠이 오지 않아 이리 뒤척 저리 뒤척(㔾)이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心(심)은 몸의 한 가운데 위치한 심장을 본뜬 것으로 옛사람들은 마음작용을 일으키는 주된 역할을 오장 중 심장이 하는 것으로 보았다. 따라서 怨(원)의 전체적인 의미는 원함이나 억울함으로 밤이 되어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 뒹굴 저리 뒹굴(夗)거리는 사람의 마음(心)을 그려내 ‘원망하다’ ‘슬퍼하다’는 뜻을 담았다.
스스로 自(자)는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다.
쑥 艾(애)의 구성은 풀 초(艹)와 벨 예(乂)로 이루어졌다. 艸(초)에 대해 허신은 “艸는 모든 풀을 의미하며 두 개의 屮(초목의 싹)로 짜여 있다.”고 하였다. 나아가 屮(풀 철)이 세 개인 것은 보다 간소하게 ‘풀 훼(卉)’로 하였고, 屮(풀)이 네 개인 것은 ‘잡풀 우거질 망(茻)’으로 하였는데, 대부분의 자형에서 글자의 상부에 놓일 때는 艹(초)로 약칭되었다. 乂(예)는 낫을 이용하여 풀을 좌우로 베는 모양을 그려낸 자형으로 은유적으로 풀을 베는 행위는 곧 ‘다스림’을 뜻하기도 했다. 이에 따라 낫을 좌우로 움직여 풀(艹)을 베는(乂) 행위 곧 민초(民草)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뿐만 아니라 ‘쑥’이란 의미로 가차되었다.
自怨自艾란 자신의 잘못을 스스로 책망하고 스스로를 다스린다는 뜻으로, 잘못을 깨닫고 자신의 허물을 고친다는 말이다. 『孟子맹자』의 “태갑이 자신의 잘못을 참회하며, 스스로 책망하고 스스로를 다스려 동이란 지방에서 어짊을 행하고 의롭게 행하기를 3년 동안 하였다.(三年 太甲悔過 自怨自艾 於桐處仁遷義 三年)”라는 대목에서 유래하였다. 자신의 잘잘못을 알아내는 반성(反省)이야 말로 영성진화의 시작과 끝이라 할 수 있다.
세상 만물은 돌고 돈다. 흥할 때가 있으면 쇠할 때가 있고, 또한 쇠하다가도 다시 일어나는 게 대자연의 순환법칙이다. 우리 인간사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 그래서 젊어서 고생은 사서도 한다고 했다.
쓸 苦(고)의 구성은 풀을 뜻하는 艸(초)의 간략형인 풀 초(艹)와 옛 고(古)로 짜여 있다. 여기서 옛날을 뜻하는 古는 열 십(十)과 입 구(口)로 짜여 있는데, 그 의미는 적어도 열(十) 세대(30년)정도 입에서 입(口)으로 전해져 온 시간인 300여년을 말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초목(艹)이 오랜 세월(古)동안 베어진 채 햇볕에 노출되면 오미(五味) 중에서도 쓴맛이 강렬해 진다는 데서 ‘쓰다’는 뜻과 함께 ‘괴롭다’는 의미도 파생하였다.
다할 盡(진)은 붓 율(聿)과 불 화(灬) 그리고 그릇 명(皿)으로 구성되었다. 聿(율)은 붓 대(丨)를 손으로 잡고(彐)있는 모양과 함께 동물의 가는 털을 모아 만든 붓(二)의 형태를 담아 글자로 만든 것이다. 여기서 灬(화)는 자형의 본뜻인 모닥불로 쓰인 게 아니라 그릇(皿)에 남겨진 찌꺼기를 뜻한다. 皿(명)은 음식물을 담아내는 다양한 그릇의 총칭이다. 따라서 盡(진)의 전체적인 의미는 음식을 담아 먹고 난 그릇(皿)에 남겨진 찌꺼기(灬)를 붓처럼 생긴 솔(聿)로 한 점도 남김없이 깨끗이 씻어낸다는 데서 ‘다하다’ ‘없어지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달 甘(감)은 입(口)안에 있는 혀(一)로 무언가를 맛보고 있는 모양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특히 혀 중에서도 끝부분은 오미(五味) 중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있으며, 신맛은 혀 안쪽의 가장자리, 매운맛은 혀 앞쪽의 가장자리, 쓴맛은 혀의 안쪽부분, 그리고 짠맛은 혀 전체로 그 맛을 느낄 수 있다. 따라서 입(口)안의 혀 중에서도 단맛을 느낄 수 있는 혀끝(一)을 나타내어 ‘달다’의 뜻과 함께 ‘맛있다’는 의미를 표현하였다.
올 來(래)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來는 주나라가 얻은 상서로운 보리인 래모(來麰)를 말한다. 한줄기의 보릿대와 두 개의 보리이삭으로 까끄라기의 가시를 본떴다. 하늘이 내려준 것이므로 ‘가고 오다’의 래(來)로도 쓰인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에서는 본디 보리의 뜻으로 쓰였으나 후대에 ‘오다’는 뜻으로 확장되자 보리의 뜻을 명확히 하기 위하여 보리 麥(맥)자를 별도로 만들었다.
苦盡甘來란 쓴 것이 다하면 단 것이 온다는 뜻으로, 고생 끝에 즐거움이 온다는 말이다. 이와는 반대말이 흥진비래(興盡悲來)인데, 즐거운 일이 다하면 슬픈 일이 닥쳐온다는 뜻으로, 세상만사가 순환됨을 이르는 말들이다. 따라서 하는 일이 잘 풀린다고 우쭐대며 자만(自慢)하지 말고, 또한 잘 되지 않는다고 낙담하지 말라는 말이다. 내실을 쌓고 닦아놓으면 기회는 늘 다가오기 마련이다.
인간은 본디 선(善)할까 악(惡)한 존재일까! 이는 인류가 존재한 이후부터 많은 사람들이 논의한 문제이다. 갓난아이의 해맑은 미소를 보면 아마도 인간은 선한 존재일 것이다. 그래서 옛사람들은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이 일었을 것이다.
공경할 敬(경)은 진실로 구(苟)와 칠 복(攵)으로 구성되었다. 苟(구)는 현재자형에는 풀 초(艹)로 되어 있지만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머리장식의 일종인 북상투 관(卝)으로 그려져 있고, 勹(포)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이며 구(口)는 금문과 소전에 와서야 첨가 되었다. 즉 머리장식(卝)을 하기 위해 다소곳이 꿇어앉은 모양(勹)에서 장식이 흐트러지지 않도록 ‘조신하다’ ‘근신하다’본뜻이었는데, 여기에 입(口)조심까지 더해졌다. 그러다 후대로 내려오면서 관(卝)이 풀 초(艹)로 변하면서 ‘풀이름’ 또는 ‘진실로’ ‘구차하다’는 뜻으로 가차되었다. 攵(복)은 회초리나 몽둥이를 손에 들고 있는 칠 攴(복)과 같은 뜻을 지닌 부수로 주로 자형의 우방에 놓이며 ‘치다’ ‘때리다’ 등의 뜻을 더해준다. 따라서 敬(경)의 전체적인 의미는 의관을 잘 갖추어 조신하고 근신(苟)할 수 있도록 독려(攵)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를 공경하는 마음자세를 갖추도록 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하늘 天(천)은 큰 대(大)와 한 일(一)로 이루어진 회의글자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一(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天(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위로 끝없이 펼쳐진 허공(一)을 표시하여 ‘하늘’이란 뜻을 부여하였다.
사랑 愛(애)자는 손톱 조(爫)와 덮을 멱(冖), 그리고 마음 심(心)과 천천히 걸을 쇠(夊)로 구성되어 있다. 조(爫)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爪는 손으로 잡는다는 뜻이다.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하는 것을 ‘爪’라 하며 상형글자이다”라고 하였다. 冖(멱)은 천이나 수건 등으로 어떤 물건을 덮은 모양을 본뜬 것이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夊(쇠)에 대해 허신은 “夊는 느릿느릿 발을 질질 끌면서 걷는 것을 말한다. 사람이 양 발로 신을 끌고 가듯 걷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이에 따라 천천히 걸을 夊(쇠)가 다른 부수에 더해지면 더디 걷거나 끌려가지 않으려는 뜻을 담게 된다. 이 愛(애) 자를 살펴보면 옛사람들의 사랑에 대한 지혜가 담겨 있다. 사랑은 줄다리기라는 말처럼 일방적이어서는 마음의 문을 열기가 쉽지 않다. 상대방의 닫힌 마음(冖 +心)을 온갖 수단을 동원하여 얻으려는데(爫), 상대는 마음을 줄듯 말듯 아주 천천히 다가오는 것(夊)이 오래가는 사랑법이란 데서 ‘사랑’을 뜻하게 되었다.
사람 人(인)은 서서 손을 내민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지며 좌변에 놓일 때는 亻(인)모양으로, 그리고 하변에 놓일 때는 儿(인)으로 변형된다. 『說文』에서는 “人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 글자는 주문(籒文)으로 팔과 다리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문(籒文)이라 함은 열 가지의 서체의 하나로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라는 사람이 창작한 한자의 글씨체(字體)이다.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敬天愛人이란 하늘을 공경하고 사람을 사랑한다는 뜻으로, 고대 동양 사람들에게 절대적 존재였던 하느님을 받들어 숭배하고 널리 사람을 사랑하는 순박한 정신세계를 말한 것이다. 하늘 무서운 줄 알고 사람 귀한 것을 안다면 누구도 악한 마음을 품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가는 심정은 어떠할까! 두려움과 함께 미지의 세계를 탐구하는 희열도 있으리라. 처음 가는 길이 낯설기도 하겠지만 굽이굽이를 돌 때마다 새롭게 전개되는 또 다른 세상, 그러나 태양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앞 前(전)은 초기 문자인 갑골문에 비해 자형이 많이 변해 버렸다. 초기에는 발을 뜻하는 止(지) 아래에 손과 발을 씻을 수 있는 대야의 모양과 물방울이 그려져 있다. 즉 제사에 참여하기에 앞서 반드시 손발을 씻어야 한다는 의미를 담아 ‘앞서’ ‘먼저’ 등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그러다 금문에 이르러서는 세숫대야의 모양이 ‘月(월)’의 형태를 취해 ‘肯(긍)’으로, 또는 ‘止아래에 舟’의 모양이다가 오늘날과 같은 ‘前’의 형태로 변했다. 그 뜻은 조상신을 모신 사당에 들어가기에 앞서 세숫대야(月)에 발(止)을 담가 깨끗이 씻고 의관을 칼(刀=刂)로 자르듯 가지런히 한 후에 제사를 지낸다하여 ‘앞서’ ‘먼저’란 뜻을 부여했다. 또한 자형상부에 놓였던 止(지)의 의미를 살려 ‘앞으로 나아가다’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사람 人(인)은 서서 손을 내민 채 몸을 약간 구부리고 있는 사람의 옆모습을 본뜬 상형글자다. 다른 자형에 더해지며 좌변에 놓일 때는 亻(인)모양으로, 그리고 하변에 놓일 때는 儿(인)으로 변형된다. 『說文』에서는 “人은 하늘과 땅 사이에 생명 중에 가장 고귀한 것이다. 이 글자는 주문(籒文)으로 팔과 다리의 모양을 본뜬 것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주문(籒文)이라 함은 열 가지의 서체의 하나로 주(周)나라 선왕(宣王) 때에, 태사(太史)였던 주(籒)라는 사람이 창작한 한자의 글씨체(字體)이다. 소전(小篆)의 전신으로 대전(大篆)이라고도 한다.
아닐 未(미)는 나무의 끝을 나타낸 상형글자이다. 木(목)은 나무의 모양을 본뜬 상형글자로 자형상부는 나뭇가지를, 하부는 땅에 뿌리를 내리고 있는 모양을 본뜬 것이다. 즉 나무(木)의 끝(一)부위는 완전하게 자라지 않은 모양이어서 아직은 분명치 않기 때문에 ‘아니다’라는 부정의 뜻과 함께 미래적 뜻을 지닌 ‘아직은 --이 아니다’라는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밟을 踏(답)의 구성은 발 족(足)과 유창할 답(沓)으로 이루어졌다. 足(족)은 사람의 다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足(족)에 대해 『說文』에서는 “足은 사람의 발을 뜻하며 몸의 아래쪽에 위치해 있다. 口(구)와 止(지)로 짜여 있다”라고 하였다.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대부분 자형상부의 口(구)를 허벅지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說文』에서는 몸 전체를 비유한 것이라고 보고 있다. 沓(답)은 물줄기가 갈라지고 모이는 강을 본뜬 물 수(水)와 가로 왈(曰)로 구성되었는데, 曰(왈)은 입의 모양을 본뜬 구(口)와 입에서 나오는 말을 추상적으로 표현한 것이 바로 一(일)의 형태다. 그래서 ‘가로되’ ‘말하다’ ‘이르다’ 등의 뜻을 나타낸 지사글자다. 이에 따라 沓(답)은 물줄기(水)가 흐르듯 말을 한다(曰)는 데서 ‘유창하다’는 뜻과 함께 말을 계속하니 ‘거듭하다’는 뜻도 있다. 따라서 踏(답)의 전체적인 의미는 발걸음(足)을 거듭(沓)해서 놓는다는 데서 ‘밟다’ ‘조사하다’ ‘살피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前人未踏이란 이전 사람이 아직 밟지 않았다는 뜻으로, 지금까지 아무도 손을 대거나 발을 디딘 일이 없음을 이르는 말이다. 비슷한 말로 이전 세대에서는 아직 들어 본적이 없다는 전대미문(前代未聞)과 일찍이 부터 있어 본적 없다는 미증유(未曾有)가 있다.
우리는 우리 한민족의 시원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많은 인류의 고대사가 신화로 전해오고 있다. 단군신화 역시 예외는 아니다. 너무나도 오래된 역사는 때로 신화화 된다. 환인과 환웅시대를 빼더라도 올해로 단기 4344년이다. 지구상에서 이렇게 오랜 세월동안 끈을 놓지 않은 민족이 또 있을까!
열 開(개)의 구성은 문 문(門)과 열 개(开)로 이루어졌다. 門(문)은 갑골문의 자형 중에서 출입문의 상부에 놓인 지붕(一)이 생략된 채 오늘날 까지 비교적 온전하게 유지되어 오고 있는 상형글자다. 두 개의 문짝으로 만들어진 ‘대문’의 상형이다. 开(개)는 빗장을 뜻하는 ‘一’모양과 두 손으로 받들 공(廾)으로 구성되었는데, 두 손(廾)으로 빗장(一)을 들어 올려 문을 여는 모양이다. 따라서 開(개)의 전체적인 의미는 두 손으로 빗장을 들어 올려(开) 두 개의 문짝으로 된 대문(門)을 연다는 데서 ‘열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하늘 天(천)은 큰 대(大)와 한 일(一)로 이루어진 회의글자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一(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天(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위로 끝없이 펼쳐진 허공(一)을 표시하여 ‘하늘’이란 뜻을 부여하였다.
마디 節(절)은 대나무 모양을 상형한 대 죽(竹)과 곧 즉(卽)으로 구성되었다. 卽(즉)은 고소할 급(皀)과 병부 절(卩)로 이루어졌는데, 皀(급)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卩(절)은 나무를 쪼개 만든 신분을 알 수 있는 병부(兵符)나 신표(信標)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은 모양을 나타낸다. 즉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밥그릇(皀) 앞으로 다가 앉아(卩) 숟가락을 들고서 ‘곧’ 밥을 먹으려는 모양을 그려내고 있어, 밥상 ‘가까이’ 혹은 ‘다가가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의 뜻을 나타낸 글자로 이미 기(旣)자가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서 밥상(皀)에서 고개를 돌린 모양(旡)을 그리고 있어 ‘이미’ ‘벌써’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節(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나무(竹)를 빌어 식물의 마디를, 즉(卽)을 빌어서는 동물의 관절이라는 뜻을 담은 데서 ‘마디’가 본뜻이며, ‘시기’ ‘절제’ ‘절약’ 등의 뜻은 파생된 것이다.
開天節이란 하늘을 연 시절이란 뜻으로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날을 기념하는 국경일이다.
10월 3일. 1949년 10월 1일 ‘국경일에 관한 법률’을 제정·공포하여 이 날을 개천절로 정하고 국경일로 하였다. ‘개천’의 본래의 뜻은 단군조선의 건국일을 뜻한다기보다는, 환웅(桓雄)이 천신(天神)인 환인(桓因)의 뜻을 받아 처음으로 하늘 문을 열고 태백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홍익인간(弘益人間) · 이화세계(理化世界)의 대업을 시작한 BC 2457년(上元 甲子年) 음력 10월 3일을 뜻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네이버 백과사전)
예부터 ‘참을 인 자 한글자만 잘 새겨도 사람 죽이는 일을 면할 수 있다고 했다(忍之一字 免殺人)’. 숱한 스트레스에 노출된 요즘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덕담이라 할 수 있다. 욱하는 마음에 너무도 많은 일들이 저질러지고 있는 요즘이다.
참을 忍(인)의 구성은 칼날 인(刃)과 마음 심(心)으로 짜여 있다. 刃(인)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刃은 칼날을 뜻하며, 칼에 날이 선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즉 칼(刀)의 날이 선 부위에 점(丶)을 찍어 ‘칼날’을 강조하였다. 心(심)은 우리의 몸 가운데 마음이 머무는 곳으로 생각했던 심장을 본떠 만든 상형글자이다. 따라서 忍(인)의 전체적인 의미는 몸의 주인인 마음이 머무는 심장(心)을 날카롭게 날이 선 칼(刃)로 도려내는 듯한 아픔이 있지만 견뎌낸다는 데서 ‘참다’라는 뜻을 부여했다. 또한 이렇게 고통을 가하는 행위자체를 두고 ‘잔인하다’ ‘동정심이 없다’는 뜻도 부가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가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할 爲(위)의 자형하부는 코끼리의 모양인 象(상)의 변형이며 상부의 爫(조)는 코끼리의 기다란 코를 붙잡은 사람의 손을 뜻하는 상형글자이다. 즉 만리장성과 같이 무거운 석재가 쓰이는 건축물 등을 축조할 때, 인간에 비해 엄청난 힘을 지닌 코끼리를 동원한 고대 사람들의 생활양식이 이 글자에 담겨 있다. 그래서 사람 스스로가 아닌 ‘코끼리를 부려 일하다’는 뜻이 함축된 ‘하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덕 德(덕)의 구성은 다닐 행(行)의 생략형인 척(彳)과 클 덕(㥁)으로 이루어져 있다. 行(행)은 갑골문에도 보이는 아주 오래된 자형으로 사람과 우마차가 다니는 네거리를 본뜬 상형글자다. 그래서 行(행)자 들어간 글자는 대부분 어떠한 행위를 나타내는 뜻으로 쓰인다. 㥁(덕)은 곧을 직(直)과 마음 심(心)으로 구성되었는데, 直(직)에 대한 갑골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눈(罒) 위에 수직으로 세운 막대(丨)를 상형한 모양을 그려내고 있다. 여기서 수직의 막대는 측량을 위해 세운 것이다. 현재의 자형은 소전에 와서 이루어진 것으로 인문학적인 해석을 더하고 있다. 즉 수직과 수평의 측량막대는 ‘ㄴ’자형으로 표현되었다. 따라서 여러 사람(十)의 눈으로 보더라도(目) 곧고(丨) 바르게(一) 되어있음을 형상화한 글자가 바로 直(직)이다. 따라서 德(덕)의 전체적인 의미를 인문학적인 입장에서 살펴보면, 열 사람(十)의 눈(目)으로 보더라도 한결(一)같은 마음(心)으로 행동(彳)하는 사람을 가리켜 德(덕)을 지닌 사람이라고 한다. 우리 인간에게는 허물이 없을 수 없으니, 성인(聖人)의 경지를 넘어선 사람을 말한다. 여기서 열 사람이란 많은 사람, 즉 대중이나 국민을 뜻한다.
忍之爲德이란 참아내는 것이 덕이 됨을 이른 말이다. 적어도 하루에 세 번 자신을 되돌아 살펴보면(一日三省吾身) 적어도 과오는 면할 수 있다. 우리 사회현실을 보아도 참는 힘이 부족한 것 같다. 사람의 만남에서도 오래가지 못하고, 처용가에서처럼 지혜로운 참음이 적으니 이혼율도 높아지는 것 같다.
세상에 쓸모없는 게 있을까 만은 요긴하게 쓰이다가도 더 이상 쓰임새가 줄어들면 홀대를 받는 게 인지상정인 것 같다. 젊음을 다 바쳐 일한 직장에서 정년도 못 채우고 실직한 사람들이 갈수록 많아지고 있는 요즘, 제2의 삶을 위한 준비도 해두어야 하는 현실이다.
토끼 兎(토)는 토끼의 모습을 상형한 것이다. 兎(토)에 대해 『說文』에서는 “兎는 토끼라는 짐승을 말한다. 토끼가 웅크리고 앉은 모양과 뒤의 꼬리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특히 유난히 큰 귀와 짧은 꼬리모양을 특징적으로 그려내었다.
죽을 死(사)는 부서진 뼈 알(歹=歺)과 사람이 꿇어앉은 모습을 나타낸 匕(비) 자로 구성되었다. 歹(알)에 대해 『說文』에서는 “歺은 뼈가 부서진 잔해를 말한다. 뼈 발라낼 冎(과) 자를 반 쪼갠 모양으로 구성되었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한 冎(과) 자는 살을 도려내고 뼈만 남겨둔 것인데, 이를 또 반으로 쪼개니 뼈의 잔해라는 뜻이다. 따라서 歺(알: 歹)이 다른 부수와 자형을 이룰 때는 ‘죽음’과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즉 앙상하게 뼈만 남은 백골(歹) 앞에서 사람이 꿇어앉아(匕) ‘죽음’을 애도하는 모습을 그리고 있다.
개 狗(구)의 구성은 개 견(犭)과 글귀 구(句)로 이루어졌다. 犭(견)은 개의 모양을 상형한 犬(견)의 간략형으로 주로 자형의 좌변에 놓인다. 句(구)는 쌀 포(勹)와 사람의 입모양을 본뜬 입 구(口)로 구성되었다. 『說文』에서는 “勹는 감싼다는 뜻이다. 사람이 허리를 구부린 모양을 본뜬 것이며, 뭔가를 감싸서 안고 있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의 자형은 사람이 허리를 구부리고 두 손으로 뭔가를 안은 듯 한 모양을 옆에서 본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이에 따라 句(구)의 의미는 입에서 나온 말(口)을 한 단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문장의 ‘단락’이나 ‘글귀’ ‘구절’을 뜻하기도 하며, 또한 어떠한 물체(口)를 줄로 싸안는다(勹)는 데서 ‘올가미’ ‘함정’을 뜻하기도 한다. 따라서 狗(구)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이 가슴에 싸안을(句) 만큼 작은 개(犭)라는 데서 ‘강아지’를 뜻하였으나, 일반적으로 개의 총칭으로 쓰이기도 한다.
삶을 烹(팽)의 구성은 형통할 형(亨)과 불 화(灬)로 이루어졌다. 亨(형)의 구성은 성곽위에 높다랗게 지은 건물을 상형한 높을 고(高)의 생략형과 마칠 료(了)로 이루어졌다. 여기서 高(고)의 생략형인 ‘亠+口’모양은 곧 조상신을 모셔놓은 사당을 뜻한다.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了(료)가 아닌 제사용 그릇모양(曰)이었는데 후대로 오면서 인문적인 지식이 더해져 변한 것이다. 了(료)는 산모의 뱃속에서 양손을 몸에 붙인 채 막 출산되는 모양을 본뜬 것으로 해산이 ‘끝났다’는 데서 ‘마치다’의 뜻이 발생했다. 따라서 亨(형)의 전체적인 의미는 조상신의 위패를 모신 사당(亠+口)에 제물을 올리고 제사를 마치면(了) 모든 일이 잘 풀린다는 데서 ‘형통하다’는 뜻이 발생했다. 灬(화)는 불꽃을 뜻하는 火(화)의 변형이다. 火(화)는 타오르는 불꽃을 본뜬 상형글자로 주로 자형의 하부에 놓일 때는 연화발이라 하여 ‘灬’로 쓰기도 한다. 따라서 烹(팽)의 전체적인 의미는 자손들의 만사형통(亨)을 위해 사당의 제단에 바치기 위한 제물을 솥에 넣고 불(灬)에 삶는다는 데서 ‘삶다’ ‘삶아 죽이다’ ‘삶은 음식’을 뜻하게 되었다.
兎死狗烹이란 토끼가 죽으면 더 이상 사냥개도 필요 없게 되어 오히려 주인에게 삶아 먹히게 된다는 뜻으로, 필요할 때는 쓰고 필요 없을 때는 야박하게 내치는 경우를 이르는 말이다. 『史記사기』「越王句踐世家월왕구천세가」에 나오는 말로 “새 사냥이 끝나면 좋은 활도 감추어지고, 교활한 토끼를 다 잡고 나면 사냥개를 삶아 먹는다(蜚鳥盡, 良弓藏, 狡兎死, 走狗烹)”라고 하였다. 교활한 간신배들을 물리친 충성스러운 부하라 할지라도 제 역할이 끝나면 더 이상 총애를 받기는 어려운 게 고금(古今)의 일인 것 같다.
우리 인간의 입장에서 보았을 때 하늘과 땅만큼 영원성을 갖는 게 있을까. 보통 남녀 간에 사랑의 언약을 맺을 때 하늘과 땅처럼 영원히 변치 말자지만 쉬운 일은 아니다. 하늘과 땅 사이의 살아 있는 모든 것은 유한하며 수시로 변화에 직면하기 때문이다.
하늘 天(천)은 큰 대(大)와 한 일(一)로 이루어진 회의글자다. 大(대)는 사람이 두 팔다리를 활짝 벌리며 서있는 모습을 정면에서 바라보아 본뜬 상형글자이다. 사람의 다른 모습에 비해 최대한 크게 보이는 형체여서 ‘크다’는 뜻으로 쓰여 왔다. 一(일)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는 “一은 유추해보면 처음의 태극(太極)이며, 도(道)는 一을 바탕으로 하늘과 땅을 나누어 만들고 만물을 화육시켜 이루어 내었다.”고 밝히고 있다. 즉 一을 만물의 근원인 태극으로 보았다. 따라서 글자의 제작에 있어서도 지사글자인 一은 모든 자형의 근본이 되고 있다. 그 뜻은 첫째, 처음을 의미하면서도 만물의 근본이기에 ‘전체’라는 뜻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天(천)의 전체적인 의미는 사람(大)의 머리위로 끝없이 펼쳐진 허공(一)을 표시하여 ‘하늘’이란 뜻을 부여하였다.
길 長(장)은 긴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노인을 본뜬 상형글자다. 長(장)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長은 오래되고 멀다는 뜻이다. 兀(올)과 匕(화)로 구성되었다. 亾(망)은 소리요소이다. 兀(올)은 높고 멀다는 뜻이다. 오래되면 변화한다.”고 하였다. 그러나 갑골문의 자형을 살펴보면 사람의 긴 머리와 발을 그린 것으로, 특히 사람의 신체 중 가장 긴 것이 머리카락이므로 ‘길다’는 뜻으로 쓰였을 뿐만 아니라 어린아이보다는 노인의 머리카락이 보다 길므로 ‘어른’을 뜻하기도 하였다. 즉 자형의 상부는 풀어헤친 머리칼을 본뜬 모양이며 하부는 발의 모양을 나타내려 한 것이다. 보통 남자들은 정수리나 머리 뒷부분에 상투를 틀어 올렸는데, 머리숱이 드문 노인들은 그냥 산발한 채 지내는 경우가 많았다. 따라서 長(장)의 본뜻은 ‘산발한 노인’이었다가 ‘어른’ ‘우두머리’ ‘길다’란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늘이다’는 뜻은 확장된 것이다.
땅 地(지)의 구성은 흙 토(土)와 어조사 야(也)로 짜여 있다. 土(토)는 갑골문에는 흙무더기를 쌓아 놓은 모습이나 일부에서는 땅(一)에 초목(十)이 나는 모습을 본뜬 글자라고도 한다. 也(야)는 여성의 성기를 본뜬 상형글자이지만, 지금은 본뜻을 잃고 문장의 끝에 놓아 종결사적 의미로서 뿐만 아니라 ‘또한’ ‘역시’와 같은 접속사로서의 역할을 하고 있다. 금문에 그려진 地(지)는 현재자형과 아주 다른 모양이었으나 소전에 이르러서 지금과 같은 형태를 갖추게 되었다. 즉 인문학적인 의미를 더해 흙(土)은 여성의 음부(也)와 같이 만물을 생산한다는 데서 ‘땅’을 뜻하게 되었다.
오랠 久(구)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久는 사람을 뒤에서 받치고 있는 모습이다. 사람의 두 정강이 뒤에 뭔가 달려있는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갑골문이나 금문에는 보이지 않는다. 이 久(구)자에 대해서는 몇 가지 설이 있는데, 첫째는 한 쪽 다리를 잘랐으니 그 걸음걸이 더뎌 목적지에 다다르기 까지는 ‘오래’ 걸린다는 것, 둘째는 다리에 족쇄를 채웠으니 또한 그 걸음걸이가 ‘오래’ 걸린다는 것, 셋째는 사람의 뒤꽁무니를 붙들고서 놓아주지 않으니 당사자로서는 아주 ‘길고 오래’동안 붙들린 것처럼 느낀다는 것, 마지막으로 사람의 등이나 엉덩이에 불에 달군 쇠붙이로 낙인을 찍게 되면 그 흔적이 ‘오래 간다’는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는 마지막 주장이 보다 설득력을 갖게 한다. 처음에는 죄수나 노예를 구별하기 위한 낙인이었지만, 후에는 뜸과 치료술로도 쓰였을 것이다. 그런데 久(구)자가 이러한 본뜻과는 달리 ‘오래’라는 의미로 쓰이자, 원래의 뜻을 살리기 위해 불 火(화)를 더해 ‘뜸 灸(구)’를 따로 만든 것이다.
天長地久란 하늘은 길고 땅은 오래되었다는 뜻으로, 하늘과 땅은 오래토록 변하지 않는다는 영원성을 이르는 말이다. 또는 하늘과 땅이 영원히 변하지 않는 것과 같이 사물이 길이길이 이어짐을 축원하는 말이기도 하다. 특히 남녀 간에 사랑을 약속할 때 비유적으로 쓰기도 한다.
가을햇살이 눈부시다. 이 맑은 햇살을 받아 오곡백과가 무르익어가고 모든 사물은 다가올 겨울을 준비하느라 부산하다. 숲속의 나뭇잎들도 가을빛을 머금어가고 있다. 잣나무를 오르내리는 청솔모의 몸짓도 날렵하다. 이렇게 가을이 익어가고 있다.
쇠 金(금)은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고 금문에 보이는데, 잘 살펴보면 주물(鑄物)을 할 때 쓰이던 거푸집(亼)과 녹인 쇳덩이(土와 두 개의 점)를 상형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부분 소리요소인 금(今)의 생략형에다 흙(土)에 덮여 있는 두 덩어리(두 점)의 금을 나타낸 형성글자로 보는 경향이 많은데 금문을 고려하지 않은 탓이다. 금(金)이라는 글자가 만들어진 시기는 상나라이후 선진시대 청동기문화가 활발하게 꽃피던 때로 ‘황금’을 의미한다기보다는 ‘청동(靑銅)’을 뜻했는데, 후대로 오면서 모든 쇠를 아우른 금속의 대표명사가 되었다. 그러나 본 사자성어에서는 ‘황금’이라는 의미로 쓰였다. 여기서 金(금)은 오행(五行) 중 가을을 뜻하면서 곡식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숙살(肅殺)의 기운을 나타낸다.
왕성할 旺(왕)의 구성은 밝게 빛나는 둥근 태양을 상형한 해 일(日)과 임금 왕(王)으로 이루어졌다. 王(왕)은 일반 무사들이 가지고 있는 도끼보다도 더 크고 머리부위에 장식이 달린 ‘큰 도끼’를 본뜬 모양이다. 이러한 큰 도끼는 부족의 우두머리나 한 나라의 왕만이 가질 수 있다는 데서 ‘임금’이란 뜻을 지니게 되었다. 후대로 오면서 철학적인 의미도 부여했는데, 『說文』에서 “王은 천하가 돌아가는 곳”이라며, 가로의 삼 획이 의미하는 하늘 땅 사람을 관통하는 것이 왕이라고 규정하고 있다. 즉 제일 상부의 一은 하늘(天), 가운데 一은 땅(地), 제일 아래 一은 사람(人)을 의미하는데, 이 셋을 아울러 관통(丨)할 수 있는 사람이 곧 왕(王)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천지인을 관통한 왕은 하늘의 천신(天神)을 향해서는 천제(天祭)를, 곡식을 관장하는 지신(地神)을 위해 지제(地祭)를, 왕실을 있게 한 인신(人神)에 해당하는 조상신을 위해 종묘(宗廟)에서 제사를 주관하게 된다. 따라서 旺(왕)의 전체적인 의미는 한 나라를 다스리는 왕(王)의 기세처럼 햇빛(日)이 성성하게 비춘다는 데서 ‘왕성하다’ ‘곱다’ ‘아름답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갈 之(지)는 발 모양을 상형한 지(止) 아래에 출발선을 뜻하는 ‘一’모양을 더한 글자가 ‘之’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인데, 어디론가 간다는 의미를 담았다. 특히 발모양을 본뜬 止(지)의 갑골문을 보면 자형 우측의 옆으로 뻗는 모양(-)은 앞으로 향한 엄지발가락이며 중앙의 세로(丨)와 좌측의 작은 세로(丨)는 각각 발등과 나머지 발가락을, 자형 하부의 가로(一)는 발뒤꿈치를 나타내며 앞으로 향한 좌측 발의 모습을 그려내고 있다.
마디 節(절)은 대나무 모양을 상형한 대 죽(竹)과 곧 즉(卽)으로 구성되었다. 卽(즉)은 고소할 급(皀)과 병부 절(卩)로 이루어졌는데, 皀(급)은 고소한 흰 쌀밥을 그릇가득 담아 놓은 모양을 본뜬 글자임을 갑골문이나 금문을 보면 알 수 있다. 卩(절)은 나무를 쪼개 만든 신분을 알 수 있는 병부(兵符)나 신표(信標)를 뜻하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사람이 무릎을 꿇고 앉은 모양을 나타낸다. 즉 맛있는 냄새를 풍기는 밥그릇(皀) 앞으로 다가 앉아(卩) 숟가락을 들고서 ‘곧’ 밥을 먹으려는 모양을 그려내고 있어, 밥상 ‘가까이’ 혹은 ‘다가가다’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이와는 반대의 뜻을 나타낸 글자로 이미 기(旣)자가 있는데, 식사를 마치고서 밥상(皀)에서 고개를 돌린 모양(旡)을 그리고 있어 ‘이미’ ‘벌써’라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따라서 節(절)의 전체적인 의미는 대나무(竹)를 빌어 식물의 마디를, 즉(卽)을 빌어서는 동물의 관절이라는 뜻을 담은 데서 ‘마디’가 본뜻이며, ‘시기’ ‘절제’ ‘절약’ 등의 뜻은 파생된 것이다.
金旺之節이란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 오행 가운데서 금(金)의 기운이 왕성한 절기인 가을을 뜻한다. 특히 가을철의 금기(金氣)는 곡식이 결실을 맺을 수 있도록 하는 숙살(肅殺)의 기운과 함께 생명력이 더 이상 무성해지지 않도록 하는 절제력을 지니고 있다. 조직이나 부의 확장도 중요하지만 때로 안팎을 단단하게 조이는 갈무리도 필요한 법이다.
모든 것은 자기 안에 다 갖추어져 있다. 그래선지 종교에서는 반성(反省)을 수행의 일 순위에 올려놓았다. 참회, 묵상이니 그 용어만 다를 뿐 자기 자신을 되돌아보는 것이다. 극기복례(克己復禮) 또한 유교의 수행법이다.
이길 克(극)에 대해『說文』에서는 “克은 견디어 이겨낸다는 뜻이다. 지붕 아래 다듬어 받친 나무기둥의 모양을 본떴다.”고 하였다. 克(극)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난무하고 있는데, 사람(兄)이 상체에 갑옷이나 투구를 착용하고서 적과 싸워 ‘이겨 낸다’ 뜻으로 보는 게 좋을 것 같다.
몸 己(기)는 본래의 뜻을 잃어버린 글자 중 하나다. 갑골문의 자형 역시 지금과 큰 차이는 없지만, 일부에서 주장하는 ‘몇 군데 매듭을 지어놓은 새끼줄의 상형’이라는 설이 설득력을 갖는다. 문자가 있기 전 고대 사람들이 새끼줄이나 띠 따위에 매듭을 지어 기호로 삼은 결승문자(結繩文字)로 보는 것이다. 이러한 흔적이 ‘기록할 記(기)’나 ‘벼리 紀(기)’에 남아 있다. 그러나 후대로 오면서 본뜻을 잃고 ‘일어날 起(기)’나 ‘왕비 妃(비)’에서처럼 사람이 무릎을 꿇고 있는 모양도 동시에 나타내고 있지만 그 기원은 다르다. 己(기)에 대해 『說文』에서는 “己는 방위상 중궁을 뜻한다. 만물이 안으로 갈무리 하므로 구부러진 모양을 본떴다. 己(기)는 戊(무) 다음에 오며, 사람의 배를 상징한다.”라고 하였다.
돌아올 復(복, 다시 부 )의 구성은 조금 걸을 척(彳)과 돌아올 복(㚆=复)으로 짜여 있다. 彳(척)에 대해 『說文』에서 “彳은 작은 걸음으로 걷는다는 뜻이며 사람의 다리를 형성하는 세 부위가 서로 연결되어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말하는 세 부위는 넓적다리와 정강이, 그리고 발을 말하는 것으로 움직일 때 활용되는 다리 전체를 의미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는 사람들이 분주히 오가는 ‘네 거리’를 본뜬 行(행)의 생략형으로 보아야 그 의미가 살아난다. 复(복)은 갑골문에 나타난 자형을 참조할 때 대장간에서 불을 지피는 도구인 ‘풀무’와 발을 뜻하는 止(지)가 더해진 모양이었으나 현재자형에서는 알아볼 수 없을 만큼 변해버렸다. 여기서 말한 풀무는 발을 사용하여 바람을 일으키는 것으로, 발로 밟을 때마다 통 속의 칸막이가 왕복으로 오가며 바람을 일으켰다. 따라서 復(복)의 전체적인 의미는 풀무(㚆)와 같이 오고가다(行)가 본뜻이었으나 ‘돌아오다’는 의미로 더 쓰였고, 또한 ‘회복하다’ ‘다시’라는 뜻으로도 확장되었다.
예도 禮(예, 례)의 구성은 보일 시(示)와 풍성할 풍(豊, 굽 높은 그릇 례)로 이루어졌다. 示(시)는 제사를 지내기 위한 제단(祭壇)을 본뜬 상형글자인데, 자형 상부의 一(일)은 조상신이나 천신에게 올린 제물을, 가운데 자형(丅)은 제단을, 그리고 좌우로 삐친 자형(八)은 제물에서 흘러나온 피를 의미하는 것으로 본다. 豊(풍)의 본래자형은 ‘豐(풍)’으로 제사용 그릇을 상형한 豆(두) 위에 또 다른 그릇(凵)을 올려 온갖 제물을 예쁘고(丰: 예쁠 봉) 단아하게(丰)하게 쌓아올린 데서 ‘풍성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으며 禮(예)의 옛글자다. 후대로 오면서 현재의 자형으로 변했는데, 그다지 의미의 변화는 없다. 즉 豊(풍)의 구성요소인 曲(곡)은 대나무나 싸리나무로 만든 것처럼 비교적 큰 그릇을 뜻하고 豆(두)는 뚜껑(-)을 덮어 따뜻한 국물을 담을 수 있는 발(ㅛ)이 달린 비교적 작은 그릇(口)을 의미한다. 따라서 전체적인 의미는 신에게 올리는 제단(示)에 큰 그릇(曲)과 종지(豆) 가득 풍성하게 제물을 담아 정성스레 예를 갖춘다는 뜻이 담겨 있다.
克己復禮란 자신의 욕망이나 삿된 마음을 극복하고 사회적 약속인 예의를 회복함을 말한다. 『論語논어』「顔淵안연」편에 나오는 말로, “안연이 인에 대하여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감이 인이다. 하루라도 나를 이기고 예로 돌아가면 천하가 인으로 돌아간다. 인을 행함은 자기를 말미암은 것이니 다른 사람에게서 말미암겠는가. 안연이 그 조목(條目)에 대해 물었다. 공자가 말하기를 예가 아닌 것은 보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듣지 말고 예가 아닌 것은 말하지 말고 예가 아니면 행동하지 말라.(顔淵問仁. 子曰克己復禮爲仁. 一日克己復禮 天下歸仁焉. 爲仁由己 而由人乎哉. 顔淵曰, 請問其目. 子曰 非禮勿視 非禮勿聽 非禮勿言 非禮勿動)”고 했다.
하루살이도 한 해 살이 풀도 번창할 때가 있다. 세상의 모든 것은 생노병사에서 벗어 날 수 없다. 누구도 죽음에서 예외 일 수는 없다. 그 죽음을 염두해 둔다면 하루하루의 삶이 헛되지는 않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든다.
성할 盛(성)의 구성은 이룰 성(成)과 그릇 명(皿)으로 이루어졌다. 成(성)의 글자형성은 십간(十干: 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과 관련이 깊다. 십간은 곡식의 씨앗이 자라 열매를 맺고 수확되어 창고에 갈무리되었다가 다시 파종되는 일련의 순서를 나타낸다. 즉 씨앗이 파종되면 가장 먼저 뿌리가 내리게 되는데, 甲(갑)의 자형하부가 곧 뿌리를 뜻한다. 乙(을)은 싹이 터 어느 정도 자라난 모양을, 丙(병)은 자라나 저마다 꼴의 형태를 갖춘 것을, 丁(정)은 장성하게 자라난 모양을, 戊(무)는 지나치게 웃자라지 못하도록 전지가위를 이용해 잘라주어야 할 정도로 성장한 모양을 뜻한다. 그래서 장성하게 자라(丁) 전지(戊)해 줄 정도가 되면 식물의 성장이 다 이루어진(成)것으로 보는 것이다. 皿(명)은 밥이나 음식을 담는 그릇을 본뜬 상형글자이다. 다른 부수에 더해져 새로운 글자를 형성할 때는 대부분 자형의 하부에 놓여 그릇과 관련한 의미를 지니게 된다. 따라서 盛(성)의 전체적인 의미는 신이나 조상에게 제사를 지낼 때는 그릇(皿)에 잘 갖추어진(成) 제물을 겹겹이 담아 올린다는 데서 ‘성대하다’ ‘많다’의 뜻을 지니게 되었다.
놈 者(자)는 본래는 솥에 음식물을 넣고 삶는 모양을 상형한 글자다. 그런데 현재 자전에서 者(자)를 찾으려면 耂(로)부수에서 찾아야 되는 ‘회의글자’로 분류되어 있다. 그래서 그 해석 또한 대부분 나이 많은 노인(耂)이 나이 어린사람에게 말할 때(白) ‘이놈저놈’ 한다는 데에서 ‘놈’이란 의미가 부여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갑골문과 금문에 나타난 자형을 살펴보면, 자형하부의 ‘白’은 솥단지가 변화된 것이며 상부의 ‘耂’는 나물이나 고깃덩어리가 부글부글 끓면서 솟아오르는 김의 모양을 나타낸 것으로 ‘삶다’가 본뜻이었다. 그런데 솥에 삶은 국을 ‘이놈저놈’이 나누어 먹는 다는 뜻을 담아 평범한 사람을 의미하는 ‘놈 者(자)’로 쓰이자, 본래의 뜻을 보다 명확히 하고자 불 화(灬)를 더해 ‘삶을 煮(자)’를 별도로 제작하였다.
반드시 必(필)의 초기글자인 갑골문을 살펴보면 긴 자루가 달린 국자와 함께 몇 개의 물방울이 그려져 있는데, 아마도 제사를 지낼 때 술을 퍼 담는 기구로 보인다. 지금도 마찬가지 이지만 제사를 지낼 때는 술은 반드시 필요한 제수(祭需)였다는 점에서 술을 담는 국자 역시 반드시 함께 있어야할 용품이기에 ‘반드시’라는 의미를 가차한 것이다. 그러나 必(필)자를 사전에서 찾으려면 心(심)부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러한 점을 감안하여 인문학적인 해석을 해본다. 즉 마음(心)에 깊이 각인시키려면 반드시 말뚝(丿)을 박듯이 해야만 된다는 데에서 ‘반드시’ ‘꼭’이란 뜻이 발생했고, 잔인하기는 하지만 생명을 완전히 죽이려면 반드시 심장(心)에 비수(丿)를 꽂아야만 한다는 데에서 ‘반드시’라는 뜻을 유추할 수 있다.
쇠할 衰(쇠, 최)의 구성은 옷 의(衣)와 ‘丑’모양으로 이루어졌다. 衣(의)는 목을 중심으로 옷깃이 좌우로 나뉜 모양을 상형한 윗저고리 옷을 말하며 아랫도리는 치마 상(裳)을 써서 구별하였다. 소전에 나타난 글자 중앙의 ‘丑’모양은 소맷자락이나 옷깃에 단을 하지 않아 실이 너풀거리는 모양을 표현하려 한 것이었다. 지금도 그렇지만 부모 잃은 상주(喪主)는 단을 대지 않고 엉성하게 지은 삼베옷을 입는데, 그 슬픔을 더욱 간절하게 나타내기 위한 것으로 이러한 상복을 참최(斬衰)라 한다. 즉 실이 너풀거리는 초라한 삼베옷을 입은 상주의 모습이 초라하다 하여 ‘쇠약하다’의 뜻을 유추해 내었다.
盛者必衰란 한 때 번성한 것은 반드시 쇠하기 마련이란 뜻으로, 사물의 기세가 융성해지면 반드시 쇠망할 수밖에 없는 자연의 이치를 말한 것이다. 성할 때가 있으면 반드시 쇠할 때도 있는 것이 우주변화의 원리다. 우리 육체 또한 여기서 예외일 수는 없다. 누구나 젊을 때는 세상 무서울 것 없이 함부로 하기 일쑤지만 나이 들어 쇠약해지기 시작하면서 거개가 질병에 노출되기 마련이다. 나이를 받아들이며 늙어가는 것 또한 건강한 삶의 지혜인 것 같다.
요즘 같은 선선한 날에는 소나무 숲속 한적한 곳에 자릴 잡고 맑은 바람을 받으며, 밝게 부서져 내리는 달빛을 안주 삼아 술잔을 기울여도 좋을 것 같다. 가을이 농익어가는 밤, 풀벌레 소리가 오케스트라의 선율 못지않다.
맑을 淸(청)의 구성은 물 수(氵)와 푸를 청(靑)으로 짜여 있다. 氵(수)는 물줄기가 갈라지고 합해지는 강을 본뜬 水(수)를 간략히 세 개의 물방울로 표시한 것으로 자형의 좌변에 놓여 강이나 물의 뜻으로 쓰인다. 靑(청)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靑은 동쪽 방향을 나타내는 색이다. 木(목)은 火(화)를 낳는다(오행의 상생관계, 목생화木生火를 뜻함). 生(생)과 丹(단)으로 구성되었다.”고 하였다. 갑골문에는 보이지 않지만 금문에 그려진 자형을 보면 광산의 갱도(井)에서 광물(丶)을 깨내는데, 자형(丹)이 형성된 시대적인 배경으로 보아 구리일 가능성이 높다. 여기서 붉은 뜻을 갖은 丹(단)은 안료로 쓰이는 주사(朱砂)나 진사(辰砂)를 의미하기도 하지만, 구리(銅)를 나타내기도 했다. 따라서 구리(丹)가 산화되면 푸른빛을 낸다(生)는 점에서 착안하여 ‘푸를 靑’이라 하였다. 따라서 淸(청)의 전체적인 의미는 푸른 빛(靑)을 띤 물(氵)은 ‘맑고’ ‘깨끗하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바람 風(풍)은 무릇 범(凡)과 벌레 충(虫)으로 구성되었다. 風(풍)에 대해 허신은『說文』에서 “風은 팔풍(八風)을 말한다. 동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명서풍(明庶風)이라 하고, 동남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청명풍(淸明風)이라 하며, 남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경풍(景風)이라 하고, 서남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양풍(涼風)이라 하며, 서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창합풍(閶闔風)이라 하고, 서북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부주풍(不周風)이라 하며, 북쪽으로부터 부는 바람은 광막풍(廣莫風)이라 하고, 동북쪽으로부터 이는 바람은 융풍(融風)이라 한다. 虫(훼)로 구성되었고, 凡(범)이 소리요소다. 바람이 일면 벌레가 생기기 때문에 8일이면 벌레(蟲)는 변화한다.”고 하였다. 風(풍)은 무릇 범(凡)과 벌레 충(虫)으로 구성된 회의글자다. 凡(범)은 본래 바람의 힘을 받아 움직이는 배의 ‘돛’을 뜻하였으나 ‘무릇’이나 ‘평범’ 등의 의미로 쓰이자, 그 뜻을 더 명확히 하고자 일정한 크기의 천(베)을 뜻하는 巾(건)을 더하여 ‘돛 帆(범)’을 따로 제작하였다. 또한 虫(충)은 여러 벌레를 의미하는 蟲(충)의 생략형이다. 따라서 風(풍)의 전체적인 의미에는 바람을 추상적으로 그려낸 게 凡(범)인데, 즉 바람결(凡)에 휩싸여 벌레들(虫)이 이동하는 것으로 보았다. 또한 봄바람이 불면 겨우내 웅크렸던 벌레들이 깨어난다는 뜻도 유추해 볼 수 있다.
밝을 明(명)은 창문의 생략형 글자인 일(日)과 달 월(月)로 구성되었다. 明(명)에서 자형좌변의 日(일)은 태양을 상징하는 게 아니라 본디글자에서는 囧(경)이다. 囧(경)은 창문의 모양을 본뜬 것으로 빛이 들어 밝아진다는 뜻을 내포하고 있다. 따라서 明(명)은 어둠이 내린 밤에 달빛(月)이 창문(囧)을 통해 집안을 비추니 ‘밝다’는 뜻을 지니게 되었다.
달 月(월)은 반달 혹은 초승달을 본뜬 상형글자다. 月(월)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月은 이지러진다는 뜻이다. 태음(太陰)의 정수로 상형글자이다.”고 하였다. 三陰三陽論(삼음삼양론)에 따르면 음기(陰氣)가 가장 큰 상태를 태음이라 하며, 그 다음이 소음 궐음 순이다. 陽(양)의 대표적인 상징물은 태양으로 항상 빛으로 가득 차 있기 때문에 實(실)이라 하며, 陰(음)인 月(월)은 이지러져 있는 때가 많기에 闕(궐)이라 한다. 그래서 갑골문 등에도 반달과 같은 모양으로 새겨져 있다. 이와 비슷한 글자인 夕(석)은 해가 서산으로 지고 반달이 동쪽 산허리에 걸친 모양이라 할 수 있다. 갑골문에는 반달 모양으로 그려져 있어 月(월)이나 夕(석)의 구분이 뚜렷하지 않았다. 그러다 후대로 오면서 月(월)은 달 자체를, 夕(석)은 밤을 뜻하다, 밤을 뜻하는 夜(야)의 등장으로 夕(석)은 또다시 해질녘으로 세분화 되었다.
淸風明月이란 시원하게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이라는 뜻으로, 청백하고 따스한 성격을 지닌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기도 한다. 이백(李白)의 『襄陽歌양양가』에서 유래하였다. 이백의 말대로 ‘맑은 바람과 밝은 달을 사는 데는 돈 한 푼도 들지 않으니(淸風明月不用一錢買)’, 때론 고단한 몸과 마음을 위해 청풍명월로 어루만져주는 아량도 베풀어주자.
살아가면서 내가 사는 이유는 무엇인지, 도대체 나는 누구인지, 나는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물음에 답을 해줄자는 나 이외에는 아무도 없다. 내 몸과 마음에 해답이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자기 수양이 필요하다.
닦을 修(수)의 구성은 바 유(攸)와 터럭 삼(彡)으로 짜여 있다. 攸(유)는 사람 인(亻)과 땀 흘리는 모양을 형상화 한 곤(丨) 그리고 칠 복(攵)으로 구성되었다. 그 뜻은 스승이 손에 회초리를 들고(攵=攴)서 제자(亻)가 땀을 흘리며(丨) 열심히 몸을 단련하도록 독려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특히 금문(金文)에 새겨진 세 개의 점(氵→丨)을 핏방울(血)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는 몽둥이(攵)이로 때린다는 의미에서 그렇게 보는 것 같다. 彡(삼)은 가지런하게 난 짐승의 윤기 있는 털을 본뜬 것인데, 다른 자형에 더해져 ‘빛나다’는 뜻을 지니게 한다. 따라서 修(수)의 전체적인 의미는 어떤 사람(亻)이 땀 흘려(丨) 열심히 몸을 단련하도록 회초리를 들고(攵)서 독려하여 결국엔 빛이 나도록(彡)한다는 뜻이 담겨 있다. 즉 攸(유)에 담긴 뜻이 신체를 통한 닦음이라면, 彡(삼)은 몸 안의 내면 즉 마음수양을 뜻하고 있다.
몸 身(신)의 갑골문 자형을 보면 배가 불룩한 사람, 즉 아이를 임신한 여자가 허리를 펴고 서있는 모습으로 표현한 것으로 본래 ‘아이 배다’는 뜻이었는데, ‘몸’이란 뜻으로 확대되었다.
가지런할 齊(제)는 갑골문에는 창끝모양 세 개가 나란히 그려져 있는데, 대부분 이것을 보리이삭과 같은 곡물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의 자형인 齊(제)를 눈여겨보면 그 해석이 매끄럽지 못하다. 도(刀)나 氏(씨), 그리고 중앙부의 辛(신) 모양은 모두가 도검류와 관련이 깊으며 자형하부는 그것을 가지런히 꽂을 수 있는 대(臺)라 할 수 있다. 즉 칼이나 창을 일정하게 짠 틀에 나란히 꽂아둔 모양을 본떠 ‘가지런하다’는 뜻을 부여했다.
집 家(가)는 지붕과 벽면의 모양을 상형한 집 면(宀)과 돼지 시(豕)로 구성되어 있는데, 한 집안을 의미한다. 한문으로 당내(堂內)라고도 하는 ‘한집안’이란 보통 8촌 이내의 같은 성씨(姓氏)를 갖은 사람들을 말한다. 家(가)자가 만들어질 당시에는 돼지는 귀한 존재였다. 그래서 한집안의 제사를 모신 집(宀)에서는 돼지(豕)를 길러 결혼이나 초상과 같은 큰일을 치를 경우 제물로 활용하는 한편 손님을 위한 음식용으로 대접했다. 豕(시)에 대해 허신은 『說文』에서 “豕는 돼지를 뜻한다. 그 꼬리가 등으로 말려 올려가 있기 때문에 豕(시)라고 말한다. 털과 다리 그리고 뒤에 꼬리가 있는 모양을 본떴다.”라고 하였다. 갑골문과 금문의 자형은 지금의 모양과는 달리 보다 사실적이다. 豕(시)가 다른 자형에 더해지면 돼지와 관련한 뜻을 지니게 된다. 또한 아래층에는 돼지(豕)를 키우고 위층에서는 사람이 거주하는 가옥(宀)구조를 본떴다고도 한다.
修身齊家란 먼저 자신의 몸을 바르게 닦고 난 이후에야 집안을 잘 다스릴 수 있음을 말한 것으로, 『大學대학』의 8조목인 ‘格物致知(격물치지), 正心誠意(정심성의), 修身齊家(수신제가), 治國平天下(치국평천하) 중의 일부이다. 자신이 올바르지 못하면서 가족 구성원이 잘 되기를 바랄 수는 없다. 率先垂範(솔선수범)하는 어른이 된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아이들만 나무랄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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