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인간이기에 음모론에 빠진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음모론에 빠진다


기자명 한동윤 PD

[미디어비평] EBS 다큐 '음모론의 심리학’

지난 1월, 대한민국 사법부의 상징인 법원 청사가 아수라장이 되었다. 서울서부지방법원의 윤석열 구속영장 발부에 불만을 품은 특정 집단 지지자들이 법원에 난입해 유리창을 부수고 경찰과 몸싸움을 벌인 것이다. 그들은 법원의 결정을 정치적 음모로 규정하고 물리력을 행사했다. 이 사건은 음모론이 더 이상 온라인상 소문이나 소수의 괴담이 아님을 보여준다. 음모론은 어느새 우리 사회에서 공론장을 파괴하고 민주주의 시스템을 위협하며 때로는 실제 폭력으로 이어지는 심각한 병리 현상이 되었다.

왜 평범한 시민이었던 사람들이 명백한 사실보다 허황한 거짓 정보를 더 신뢰하고 폭력 행사까지 하게 된 것일까. <EBS> 다큐프라임 '음모론의 심리학'은 바로 이 질문에서 출발한다. 제작진은 음모론자를 무지한 사람들로 치부하지 않는다. 대신 평범하고 이성적인 인간이 어떻게 비합리적인 믿음의 늪에 빠지게 되는지 그 심리 기제를 과학적으로 해부한다. 다큐멘터리는 음모론이 특정 집단만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의 불완전한 뇌, 그리고 진화 과정에서 만들어진 본능과 관련된 현상임을 보여준다.

확증편향의 덫: 보고 싶은 것을 보는 우리

다큐멘터리는 이를 위해 심리학의 고전인 ‘웨이슨 선택 과제’를 제시한다. 참가자 앞에는 네 장의 카드가 놓여 있다. ‘ㅏ’(모음) ‘ㅈ’(자음) ‘4’(짝수) ‘7’(홀수).

"카드 한 면에 모음이 적혀 있으면, 뒷면에는 반드시 짝수가 적혀 있어야 한다."

이 규칙이 참인지 거짓인지 알아내기 위해 딱 두 장만 뒤집어야 한다면 무엇을 골라야 할까.

‘음모론의 심리학’에서 연출된 실험 중 카드가 참여자들에게 제시되고 있다. EBS 유튜브 갈무리

실험 결과 90%가 넘는 대다수 참가자는 모음인 'ㅏ'와 짝수인 '4'를 선택하지만, 정답은 ‘ㅏ’와 홀수인 '7'이다. 규칙은 모음 뒤에 짝수를 요구했고 짝수 뒤에 모음이 와야 한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짝수 카드 뒤에 무엇이 있든 규칙을 깨뜨리지 못한다. 반면 ‘7’(홀수)을 확인하는 건 명제의 참 거짓 여부를 확인할 수 있다. 홀수 카드 뒤에 자음이 나온다면 규칙은 참이 되고 모음이 나온다면 거짓이 된다.

실험에서 명제를 검증하려면 가설이 맞다는 증거(짝수 카드)를 찾으면 안 되고, 가설이 틀렸다는 증거(홀수 카드)를 찾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본능적으로 기존 생각이 옳음을 지지해 주는 증거만 수집하려 하는 확증편향 기제가 있기 때문에 정답을 쉽게 지나친다. 다큐멘터리는 이 간단한 실험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기존의 믿음을 반박하는 정보를 회피하고 싶어 하는지, 또 이것이 어떻게 음모론을 견고하게 만들어가는지 설명한다.

음모론에 빠진 이들의 심리, 그 이면에는

다큐멘터리는 세계적인 행동경제학자이자 듀크대 교수인 댄 애리얼리의 경험을 통해 음모론을 감싸고 있는 심리 기제를 파악한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부와 빌 게이츠 재단과 연계해 활동하던 그는 ‘전 세계적인 바이러스 확산을 기획하고 백신으로 인류를 통제한다’라는 황당한 음모론의 핵심 대상자로 지목됐다. 애리얼리 교수는 자신을 공격하는 음모론자들을 직접 인터뷰하며 그들의 심리 기저에 극심한 스트레스가 있다는 것을 발견한다. 실직, 질병, 사회적 혼란 등 감당하기 힘든 현실 앞에서 인간은 심리적 안정을 찾기 위해 인과관계를 설명해 줄 이야기를 찾는다. 세상이 무작위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의 거대한 계획하에 있다는 믿음이 그들에게 막연한 불안감 대신 심리적 안정을 준다는 것이다.

그가 만난 한 여성의 사례는 이 메커니즘이 얼마나 치명적인지 보여준다. 그녀는 코로나 시기 겪은 불안을 해소하기 위해 ‘제약회사가 돈을 위해 병을 만든다’라는 음모론에 깊이 빠져들었다. 비극적이게도 팬데믹 이후 그녀는 암 진단을 받았다. 하지만 이미 형성된 '제약회사는 거대 악'이라는 믿음은 생존 본능마저 압도했다. 그녀는 병원의 항암 치료와 복약지도를 제약회사의 또 다른 음모로 치부하며 거부했고, 결국 치료 시기를 놓쳐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음모론이 확증편향을 통해 강화되어 생명을 앗아가는 흉기가 된 것이다.

2021년 미 의회 난입 세력이 경찰과 대립하고 있다. 출처 연합뉴스

큐어넌을 통해 들여다본 집단화된 망상

개인에서 시작된 음모론은 집단을 만나면서 정치적 행동으로 진화한다. 다큐멘터리는 미국의 대표적 음모론 집단 '큐어넌'을 조명한다. 이들은 워싱턴 정계 엘리트들이 사탄을 숭배하고 아동 인신매매를 한다고 주장하는 익명의 작성자 ‘Q’를 맹신한다. 큐어넌이 믿는 대표적인 음모론 중 하나가 케네디 주니어 부활론이다. 1999년 비행기 사고로 사망한 존 F. 케네디 전 대통령의 아들, 존 F. 케네디 주니어가 사실은 살아있으며 그가 도널드 트럼프를 돕기 위해 돌아온다는 주장이다. 이 음모론은 민주당 가문의 인물이 공화당 대통령을 돕는다는 논리적 모순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추종자를 부활 장소로 예견된 댈러스로 집결시켰다.

약속된 시간과 장소에는 당연히 케네디 주니어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지만 추종자들은 실망하며 해산하지 않는다. 그들은 인지부조화를 해결하기 위해 현실을 부정하고 믿음을 수정한다. "날짜가 연기됐다"거나 "우리의 믿음이 시험받고 있다"라며 오히려 결속을 강화한다. 음모론 추종자들은 자신이 믿던 정보의 허위가 드러나도 신념을 바꾸기보단 사실 자체를 외면하거나 다르게 인식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집단적 망상은 결국 2016년 피자 게이트 사건과 2021년 미 의회 난입 사태라는 실제 폭력으로 이어졌다. 피자 가게 지하실에 아이들이 감금되어 있다는 허위 조작 정보를 믿고 총기를 난사한 남성이 확인한 것은 애초에 지하실조차 없는 평범한 가게였다는 허무한 사실뿐이었다. 대통령 선거 결과가 조작되었다는 음모론을 맹신한 군중들이 민주주의의 심장인 의회 의사당을 무력으로 점거하는 과정에서 사상자까지 발생한 의사당 난입 사건은 음모론이 국가 시스템을 어떻게 마비시킬 수 있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주었다. 다큐멘터리는 음모론이 현실 세계를 파괴하는 물리적 위협임을 경고한다.

정보 과잉의 시대, 편향에 취약한 것은 인간이기 때문

음모론에서 확인한 편향이라는 특질은 인류가 생존하기 위해 패턴을 찾고 위험을 감지하면서 형성된 오랜 진화의 산물이다. 진화 심리학자들은 위험이 없는데 있다고 판단하는 것이, 위험이 실제로 있는데 없다고 판단하는 것보다 생존에 훨씬 유리했다고 설명한다. 풀숲에서 나는 소리를 호랑이로 착각하면 불필요한 도망이지만, 호랑이를 바람 소리로 착각하면 생명을 잃는다. 무의식적으로 정보를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편향은 생존을 위해 우리 유전자에 각인된 본능이기에 국경이나 문화를 초월하여 나타나는 보편적인 현상이다. 정보 과잉의 현대 사회에서 알고리즘을 통해 편향이 증폭되고 정치적 양극화가 이를 무기로 삼는 현상이 전 세계 어디서나 목격되는 이유다.

한국 사회 역시 안전지대가 아니다. 서두에서 언급한 법원 난입 시도와 같은 일련의 사건들은 신념이 폭력으로 변질될 때 사회가 치러야 할 비용을 보여줬다. 자신들의 신념과 다르면 법원의 판단조차 정치적 음모로 규정하고 물리력을 행사하는 모습은 미국의 의회 난입 사태와 굉장히 닮아있다.

지난 1월 일부 윤석열 대통령 지지자들이 서울서부지방법원 난입 후 현판이 파손됐다. 출처 연합뉴스

'음모론의 심리학'은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며 결론을 내지 않지만, 인간의 본능적 한계를 직시하게 함으로써 문제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한다. 제작진은 음모론자를 타자화하거나 비난하는 대신 그 기저에 깔린 인간의 본성과 음모론을 믿게 되는 환경을 이해해야 한다고 말한다. 결국 이 다큐멘터리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나 또한 틀릴 수 있다"라는 겸손함, 그리고 ‘우리는 편향될 수밖에 없는 불완전한 존재’임을 인정하는 자기 성찰의 필요다.

우리는 인간이기에 음모론에 빠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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