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탐구 1] 시진핑의 푸젠(福建) 17년 지방에서 나라를 만들다

 [중국 탐구 1] 시진핑의 푸젠(福建) 17년

지방에서 나라를 만들다

40년 전, 32세 젊은 엘리트 최일선 오지로 가다
푸젠 17년간 낙후지역 현장 단련, 시진핑 이해의 열쇠
300만→800만→3500만 지역 행정으로 국가 경영 기반을 다지다
장기계획, 생태문명, 공동부유···중국식 현대화 원형을 만들다

푸젠성 근무 시절 시진핑의 대표 치적으로 거론되는 '진창 경험' 선전판. 민영 경제 중심의 진장시가 2002년 정부의 본격적 지원으로 세계적인 신발 섬유 등의 산업 클러스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지역 기업 ANTA 등이 OEM을 벗어나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로 거듭나게 됐다.[사진= 이석봉 기자] 
푸젠성 근무 시절 시진핑의 대표 치적으로 거론되는 '진창 경험' 선전판. 민영 경제 중심의 진장시가 2002년 정부의 본격적 지원으로 세계적인 신발 섬유 등의 산업 클러스터로 거듭나는 계기가 됐다. 이를 계기로 지역 기업 ANTA 등이 OEM을 벗어나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로 거듭나게 됐다.[사진= 이석봉 기자] 
중국이 부상하고 있다. '세계의 중심 나라'라는 한자 그대로의 중국(中國)이 돌아오는 것이다. 아직까지는 미완이지만, 이 흐름대로라면 10년 이내다. 1949년 세워진 신중국은 1840년 아편전쟁 이전 중국을 원형으로 본다. 서세동점(서양의 동양 지배)에 의해 중국은 시련을 당했고, 이후 신중국이 세워지기 전까지를 치욕의 세기로 본다. 1949년부터 ‘백년의 마라톤’(마이클 필리버스의 저서)을 하며 2049년을 중국 귀환 목표 연도로 생각했다. 현재로서는 그 목표가 앞당겨질 공산이 크다.
중국이 서구로부터 왕좌를 잃어버리게 된 큰 원인으로 삼는 게 과학기술이다. 그래서 '뒤쳐지면 맞는다(落后就要挨打)'라는 구호 속에 과학기술 발전에 진력했다. 마오 시대의 양탄일성, 덩 시대의 개혁개방 등 이전 시기에도 비약적 발전이 있었지만, 중국 과학기술이 빠르게 발전한 시기가 시진핑 집권기이다. 시진핑 집권기가 주목되는 이유는 중국 홀로서기가 시작됐고, 더 나아가 추격자에서 선도자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을 강대국으로 이끌고 있는 시진핑을 이해하는 것은 앞으로의 중국을 예측한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 그 이해의 열쇠는 푸젠성(福建省)에 있다.
관련기사를 라디오 팟케스트로 들어보세요 (관련 링크)
◇ 푸젠성 — 동남아 화교의 고향, 시진핑 청춘의 무대
푸젠성은 상대적으로 한국인에게는 낯선 곳이다. 동남아를 좀 아는 사람들은 객가(客家)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본래 화북(華北) 출신이나 전쟁·기근·정권 교체 때마다 남쪽으로 피난해 정착한 사람들을 현지인과 구분하는 말이다. 이들은 중국의 남동쪽 푸젠·광동·장시 등에 정착했다가 이후 동남아로 퍼져 나갔다. 중국의 유대인으로도 불리는 이들은 교육을 중시하고 기술과 근면함을 바탕으로 낯선 곳에서도 뿌리를 내렸다. 싱가포르의 리콴유, 과거 홍콩 최고 부자 리카싱, 대만 총통 리덩후이 등이 다 객가 출신이다. 푸젠은 그런 점에서 동남아 화교들의 고향이기도 하다.
세계 최대 매체인 중국 신화통신사 초청으로 푸젠성을 다녀오게 됐다. 사전 조사를 하니 흥미로운 점이 발견됐다. 시진핑 주석이 32세에서 49세까지 17년간을 지낸 곳이었다. 젊음을 다 바친 곳이라 해도 좋을 것이다. 오늘날 중국을 이끄는 그가 17년을 보낸 곳이면 그의 흔적이 남아 있지 않을까, 오늘의 중국을 이해하고 미래를 예측하는 데 도움을 받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를 하게 됐다.
결론은 '실마리는 얻었다'이다. 이야기를 풀어나가보자.

◇ 중국 인재 양성 시스템의 비밀
중국을 이해하려면 그들의 인재 양성 시스템을 봐야 한다. 시진핑이 32세부터 49세까지 17년간을 푸젠성에서 보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중국에서 지방 경험은 최고 지도자가 되기 위한 필수 코스다.
구체적 수치가 이를 증명한다. 시진핑 1기의 정치국 상무위원 7명 전원이 지방 현장에서 최소 20년 이상 근무했다. 이들은 지방에서 경제 발전, 빈곤 퇴치, 환경 문제, 사회 갈등 등 국가 경영의 모든 영역을 경험했다. 지방은 그들에게 '교과서'가 아닌 '실전 연습장'이었다.
지방에서 권력으로: 시진핑 1~3기 상무위원들의 지방 근무 경력 분석.[표= 대덕넷]
지방에서 권력으로: 시진핑 1~3기 상무위원들의 지방 근무 경력 분석.[표= 대덕넷]
베이징이 전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4% 정도다. 중국에서 지방 경험이 없으면 리더가 안 된다. 지방정부가 직접 투자를 하고, 세금 우대 정책과 인재 유치 정책 등을 실시하는 자율성이 주어진다. 낙후된 지방을 환골탈태시킨 성과가 있어야 이를 기반으로 보다 영향력 있는 자리에 올라갈 수 있다. 중국은 각 성(省)에 '시행권(试点权)'을 부여해 정책을 시험한다. 
◇ 1985년, 32세 시진핑, 푸젠으로 내려가다
지방 중시란 기본 철학에 따라 시진핑은 32세 때인 1985년 푸젠성 내 샤먼시 부시장으로 부임한다. 아버지 시중쉰의 영향력도 작용했다. 매가 자식을 공중에서 떨어뜨려 날도록 가르치는 것처럼 아들을 베이징에 두지 않고 오지로 보낸 것이다.
당시 푸젠성은 대만과의 군사대치 최전선이었고, 경제력도 전국 평균을 밑도는 낙후 지역이었다. 시진핑 자신도 이곳에서 17년을 지내리라고는 생각지 못했을 것이다.
'지방에서 나라를 만든다(地方造國)'. 시진핑의 푸젠 17년은 이 말을 실증한 시간이었다. 그는 이후 17년간 샤먼(厦门)–닝더(宁德)–푸저우(福州)–푸젠성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부시장 → 시장 → 부성장 → 성장으로 올라섰다. 지방의 중간 간부로 시작해 성급 행정의 최고 자리까지 올라간, 이례적이면서도 입체적인 경로였다.
 
시진핑의 청년 시절, 38세 800만 푸저우시 당서기 근무시기(1991년)이다. 근대 중국 사상의 출발점으로 인정받는 혁명가 임각민(林觉民, Lín Juémín) 옛집 복원과 관련해 의논하고 있는 모습. 아래는 그해 복원 완공식 참석 사진이다.[사진= 이석봉 기자]
시진핑의 청년 시절, 38세 800만 푸저우시 당서기 근무시기(1991년)이다. 근대 중국 사상의 출발점으로 인정받는 혁명가 임각민(林觉民, Lín Juémín) 옛집 복원과 관련해 의논하고 있는 모습. 아래는 그해 복원 완공식 참석 사진이다.[사진= 이석봉 기자]
  ◇ 샤먼(厦门) 3년 (1985-1988) — 장기 계획과 생태문명의 씨앗
샤먼시는 덩샤오핑이 1980년 승인한 네 개의 경제특구 중 하나로, 초기 면적은 2.5㎢에 불과했다. 1985년 시진핑이 부시장으로 부임한 직후 특구는 131㎢로 확장되었다. 당시 인구 5백만의 샤먼은 중대한 기로에 서 있었다. 내부에서는 싱가포르 모델을 따를지 홍콩 모델을 모방할지 논쟁이 벌어졌다. 대만 투자를 적극 유치해야 한다는 주장과 안보 리스크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충돌했다. 무엇보다 단기 성과에 대한 압박이 컸다.
32세의 젊은 부시장은 파격적 제안을 내놓았다. 단기 실적보다 장기발전을 강조하며 '15년 종합발전계획' 수립을 제안했다. 정치적으로는 위험한 선택이었다. 보통 지방 간부는 3~5년이면 다른 곳으로 이동한다. 자신이 샤먼을 떠난 후의 일까지 책임지겠다는 것이었다.
그는 베이징과 상하이의 전문가 100여 명을 초청해 산업·무역·물류·교육 등 21개 주제를 연구하게 했다. 시민들의 의견을 공개 모집해 설계에 반영했다. 1980년대 중국에서 이는 파격이었다. 계획은 샤먼을 대만과의 교류 중심지로 만들어, 첨단 산업과 서비스업을 육성하여 국제도시로 발전시키는 목표를 담았다. 산업·항만·환경을 통합한 중국 지방 최초의 장기 도시계획이었다.
◇ 윤당호 정비 — 생태문명의 원형
이 시기 주목할 만한 정책은 윤당호(筼筜湖) 종합정비였다. 1980년대 말 도심에 자리한 윤당호는 생활하수·공장폐수로 악취가 심한 '도시의 상처'였다.
1988년 상무부시장이 된 시진핑은 "依法治湖, 截污处理, 清淤筑岸, 搞活水体, 美化环境"의 20자 방침을 내걸고 단계적 정비를 추진했다. 의법치호(依法治湖) 법에 따라 호수를 다스리고, 절오처리(截污处理) 오염을 차단하며, 청어축안(清淤筑岸) 퇴적을 준설하고 제방을 쌓으며, 고활수체(搞活水体) 물의 순환을 활성화하고, 미화환경(美化环境) 환경을 아름답게 가꾼다는 법치–정화–복원–활성–미화의 5단계였다.
주목할 것은 첫 단계가 '법치'라는 점이다. 그는 환경 문제를 단순한 기술 문제가 아닌 법과 제도의 문제로 본 것이다. 오염 배출 기업에 대한 강력한 규제, 환경 기준 법제화, 위반 시 처벌 시스템 구축이 먼저였다. 그 후 30여 년간 5차례에 걸친 종합 복원이 이어지며 윤당호는 샤먼의 '도심 거실'로 재탄생했다.
그는 "깨끗한 환경이 곧 생산력"이라며 생태를 경제와 동일선상에 놓았다. 당시 중국 지방 간부들은 GDP 성장률에 집착하던 시기였다. 시진핑의 선택은 장기적 지속가능성을 본 것이었다. 이는 훗날 중앙에서 '생태문명(生态文明)'을 국가 전략으로 격상시킨 사상적 출발점이 되었다.
◇ 닝더(宁德) 2년 (1988-1990) — 좌절 속에서 배운 현장 정치
샤먼시 부시장으로 3년을 보낸 뒤 1988년 그가 간 곳은 인구 3백만의 닝더(宁德)시. 오늘날 세계 최고 배터리 기업인 CATL 본사가 있는 지역이다.
당시 닝더는 빈곤·교통단절·산악지대로 악명 높던 지역이었다. 인구의 절반 이상이 절대빈곤선 이하였고, 일부 지역은 '전기·도로·우편이 없는 3무(無)' 상태였다. 35세에서 37세까지 근무하며 빈곤퇴치·농촌 인프라 개선 정책을 추진했다.
그는 “빈곤 탈출은 스스로 일어설 여건을 만드는 것”이라며 현지 자원과 주민의 자발성, 교육과 기술훈련, 도로·전기·의료·주거 개선을 하나로 묶은 자립형 빈곤극복 모델을 추진했다. 닝더에서 시작된 이 실험은 나중에 중국 전역의 빈곤퇴치(精准扶贫)와 공동부유(共同富裕) 철학으로 발전했다. 
2년이라는 짧은 기간에 구조적 빈곤 문제를 해결하기는 어려웠으나 빈곤의 실상을 눈으로 확인하고, 당사자들의 자발성과 자원을 기반으로 개선책을 모색했다는 점에서 훗날 중요한 자산이 되었다.
◇ 푸저우(福州) 6년 (1990-1996) — 복잡성을 다루는 법을 배우다
닝더시에 이어 근무하게 된 곳은 푸젠성의 성도(省都)인 푸저우(福州). 인구 8백만이다. 37세인 1990년에 8백만 도시의 수장으로 부임한다. 이 시기가 시진핑의 푸젠 17년 중 가장 중요한 시기였다.
샤먼은 경제특구로서 비교적 단순한 구조였다. 닝더는 빈곤 지역으로 문제가 명확했다. 그러나 푸저우는 달랐다. 성도로서 정치·경제·문화·교육이 모두 집중된 복합 도시였다. 국영기업, 민영기업, 외자기업이 뒤섞여 있었고, 전통 건축 보존과 도시 개발 사이에서 갈등이 끊이지 않았다. 시진핑은 여기서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정하는 능력을 배웠다.
그는 취임 직후 '3820 전략공정(三八二〇战略工程)'을 제시했다. 3단계 목표, 8대 전략, 20년 계획이라는 의미로, 행정·산업·생태가 균형을 이루는 청사진이었다. 1단계(3년)는 기초 인프라 구축, 2단계(8년)는 산업 구조 고도화, 3단계(20년)는 국제 도시 완성을 목표로 했다.
8대 전략은 산업 발전, 항만 물류, 도시 건설, 환경 보호, 과학기술, 문화교육, 대외개방, 사회복지를 포괄했다. 단순히 경제 성장만이 아니라 도시의 종합적 발전을 목표로 한 것이다.
6년을 근무하며 그는 '도시의 품격은 생태에서 나온다'는 철학 아래 악취가 풍기던 서호(西湖)를 정비했다. 또한 三坊七巷(산팡치샹)이라 불리는 명청 시대 주거 지역을 보존하는 정책을 추진했다. "도시의 정체성은 역사에서 나온다. 오래된 건물을 지키는 것이 곧 도시의 미래를 지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개발업자들은 반발했지만, 그는 밀어붙였다. 오늘날 산팡치샹은 푸저우의 대표 관광지가 되었고, 문화 보존과 경제 발전을 동시에 이룬 모범 사례로 평가받는다.
푸저우는 대만해협을 사이에 두고 대만과 마주하고 있다. 시진핑은 푸저우 시장 재임 기간 동안 대만 기업 유치에 적극적이었다. 그는 대만 투자자들을 직접 만나 푸저우의 장점을 설명했고, 대만 기업에 세금 우대와 행정 편의를 제공했다.
◇ 푸젠성 6년 (1996-2002) — 3500만 성급(省级) 리더로서의 종합 경영
1996년경 그는 약 43세 무렵 당시 인구 3천5백만의 푸젠성 부성장(副省长)으로 승진하여 성 전체 행정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이후 대행 성장을 거쳐 49세 무렵 2002년에 정식 성장으로 일한다.
푸젠성은 9개의 시(市)로 구성되어 있었고, 각 시마다 산업 구조와 발전 수준이 달랐다. 시진핑은 이제 한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성 전체의 균형 발전을 고민해야 했다. 이런 질문들은 훗날 중국 전체를 통치할 때 마주하게 될 문제들의 축소판이었다.
이 시기의 핵심은 '진장 경험(晋江经验)'이었다. 진장은 푸젠성 남부 취안저우시 관할의 현급 도시로, 1980년대부터 민영기업이 급성장한 지역이었다. 국영기업이 아닌 민영기업이 지역 경제를 이끌었다. 정부는 제도적 지원과 조정 역할에 집중했다. 토지 사용권 확보, 세금 우대, 인재 유치, 물류 인프라 구축 등이 정부의 역할이었다.
시진핑은 이를 "정부는 봉사하고, 기업은 주체가 된다(政府服务, 企业主体)"는 원칙으로 정리했다. 정부가 모든 것을 계획하고 통제하는 것이 아니라, 민간의 창의성과 역동성이 발휘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정부의 역할이라는 철학이었다.
중국의 정책 담론에서 '경험'(经验)은 특정 지역 모델을 전국화 할 가치가 있는 모범 사례를 의미한다. 중앙정부는 진장 경험을 국가급 모범사례로 지정했고, 이후 여러 성들이 이 경험을 참조해 지역 여건에 맞게 보완하여 응용하고 있다.
아울러 시진핑은 '디지털 푸젠'을 표방하며 전자정부 구축에도 힘을 쏟았다. 2000년 전후 인터넷이 막 보급되던 시기, 그는 행정의 디지털화가 효율성을 높이고 부패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성 차원의 통합 데이터베이스 구축을 지시했고, 기업 등록, 세금 납부, 민원 처리 등을 온라인으로 할 수 있게 만들었다.
◇ 푸젠 17년의 의미 — 지방 실험에서 국가 경영으로
2002년 말 시진핑은 저장성 대리성장으로 취임해 2007년까지 5년을 저장성에서 일한다. 2007년 중국 최대 경제도시인 상하이시 당서기로 임명되고 이후 정치국 상무위원이 되면서 중앙정치 무대에 서게 된다. 그리고 2012년, 중국공산당 총서기이자 국가주석으로 선출된다.
시진핑의 경력 중 푸젠성에서 보낸 17년은 개인에 있어 가장 역동적인 시기(30대 후반 ~ 40대 후반)에 해당하며, 여러 경험을 하며 업적도 쌓아 실질적 기반을 단단히 다진 기간으로 평가된다. 대부분 간부들은 지방 근무 기간이 보통 5년 내외에 그치는데, 시진핑이 17년이나 푸젠에 머물렀다.
푸젠 시절 시진핑의 리더십은 세 가지 키워드로 요약된다. 장기계획(长远规划), 생태문명(生态文明), 민영경제(民营经济). 이 세 축은 훗날 중앙에서 국가 전략으로 정착했다.
장기계획: 샤먼의 15년 계획, 푸저우의 3820 전략은 모두 한 세대를 내다본 청사진이었다. 집권 후 시진핑은 '일대일로', '2035 혁신', '2049 중국몽' 등 장기 비전을 계속 제시했다.
생태문명: 윤당호와 서호 정비에서 시작된 "환경이 곧 생산력"이라는 철학은 2012년 집권 후 '생태문명건설'이라는 국가 전략이 되었다. 2017년 당장(黨章)에 생태문명이 명시되었고, 환경 보호가 경제 발전과 동등한 위치에 놓였다. 민영경제: 진장 경험에서 출발한 "정부는 봉사하고, 기업은 주체"라는 원칙은 중국 경제 발전의 핵심 동력이 되었다. 거기에 공동부유를 덧붙이며 중국 경제의 방향 전환을 꾀했다.

푸젠성의 경우 시진핑 부임 이전에는 동부 연안의 주요 성들보다 발전 수준이 낮았으나, 퇴임 시점엔 여러 지표들이 크게 향상되었다. 중국 전체 명목 GDP는 1985년~2002년 기간에 약 10~15배 성장한 반면, 푸젠성은 약 20배 이상 증가했다. 1인당 GDP는 1985년 몇백 달러 수준에서 2002년 약 1,600달러로 증가했다. 당시 중국 평균 1,100달러보다 높은 수치이다.
그러나 이를 해석할 때 주의가 필요하다. 1985~2002년은 덩샤오핑의 개혁개방 정책으로 중국 전체가 고도성장하던 시기였다. 푸젠성은 경제특구로 지정되어 중앙정부의 집중 투자를 받았다. 따라서 푸젠성의 성장이 시진핑 개인의 능력 때문인지, 시대적 흐름과 중앙 정책의 결과인지는 구분해서 볼 필요가 있다.
그럼에도 시진핑의 샤먼과 푸저우에서의 장기 계획은 대체로 성공적이란 평가를 받는다. 전체적으로 도시의 발전 방향을 잘 잡아 정책이 장기적 안목에서 추진될 수 있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시진핑의 복건 17년 생활을 다룬 도서들. '진장 경험' 전시장에는 샤먼 닝더 푸저우 등 지역에서의 활동을 기록한 책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현장을 다니는 지도자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사진= 이석봉 기자]
시진핑의 복건 17년 생활을 다룬 도서들. '진장 경험' 전시장에는 샤먼 닝더 푸저우 등 지역에서의 활동을 기록한 책들이 전시돼 있다. 그는 현장을 다니는 지도자로 사람들에게 기억되고 있다.[사진= 이석봉 기자]
◇ 지방조국(地方造國) — 중국 시스템의 작동 원리
중국에는 '지방조국(地方造國)'이라는 표현이 있다. 지방에서의 경험과 사례를 통해 나라를 만든다는 의미다. 이 시스템은 역사적 배경에서 나왔다. 1949년 건국 당시 중국공산당은 혁명은 할 줄 알았지만 경제 경영은 몰랐다. 마오쩌둥 시대(1949~1976)는 실패의 연속이었다. 대약진운동으로 3천만 명이 아사했고, 문화대혁명으로 10년간 혼란에 빠졌다.
덩샤오핑이 1978년 개혁개방을 시작하며 내세운 철학이 '실사구시'(实事求是, 사실에서 진리를 찾는다)와 '모색착석'(摸着石头过河, 돌을 더듬으며 강을 건넌다)였다. 명확한 답을 모르니 일단 시도해보고, 잘 되면 확대하고 안 되면 철회한다는 방식이었다. 지방을 전국 정책을 실시하기 전의 실험장으로 본 것이다. 지방에서 성공한 것을 다른 지역에 적용하며 전체 수준을 끌어올리려는 것이었다.
그는 푸젠에서 도시 설계, 빈곤퇴치, 산업 육성, 환경 복원 등 거의 모든 행정 경험을 쌓았다. 이후 저장(浙江)·상하이(上海)·베이징(北京)으로 이어진 그의 경력은 '지방의 실험이 중앙의 통치 철학으로 진화한 과정'이었다. 샤먼의 15년 계획은 국가 차원의 장기 비전으로, 윤당호 정비는 전국적 생태문명 건설로, 진장 경험은 민영경제 육성 정책으로, 디지털 푸젠은 중국의 IT 굴기로 확장되었다. 지방에서 실험하고 검증한 것을 전국으로 확산시키는 것, 이것이 중국 시스템의 핵심이었다.
◇ 시진핑의 푸젠 17년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
지방에서 나라를 만든다는 중국의 실험, 그 출발점이 바로 시진핑의 푸젠이었다. 중국은 이에 맞게 지방에 실권을 준다. 인재들도 지방에 가서 많은 경험을 하며 실력을 쌓는다.
한국은 아쉽지만 중앙 중심이다. 중앙이 자원과 권한을 모두 갖는다. 인재와 자본도 수도권으로 쏠린다. 지방에는 창의적 실험의 여지가 없다. 지방세율, 규제 완화, 산업정책 설계의 자율성 모두 중앙 승인 없이는 불가능하다. 이런 인식이 지방을 소모시키고, 결국 국가 전체의 활력을 떨어뜨린다.
이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지방을 기회의 문으로 인식해야 한다. 중앙의 의사결정권자들은 물론이고, 지방 사람들도 자신들의 지역을 혁신의 자원으로 바라봐야 한다. 지방이 실험하고 성장할 수 있는 자율성을 주어야 한다. 중국이 지방에서 국가를 만들어가는 동안, 한국이 여전히 중앙집권의 틀에 갇혀 있다면 그 격차는 더욱 벌어질 것이다. 시진핑의 푸젠 17년을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이유이다.
푸저우 도심에 있는 서호(西湖 Xīhú). 1980년대에는 악취로 시민들에 많은 고통을 주었다. 시진핑이 1990년대 푸저우시 당서기 시절 호수 정화에 진력해 시민들이 즐기는 장소로 거듭났다. 그는 1988년 샤먼시에 근무할 때도 도시의 상처라 불리던 윤당호(筼筜湖)를 생태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바 있다.[사진= 이석봉 기자]
푸저우 도심에 있는 서호(西湖 Xīhú). 1980년대에는 악취로 시민들에 많은 고통을 주었다. 시진핑이 1990년대 푸저우시 당서기 시절 호수 정화에 진력해 시민들이 즐기는 장소로 거듭났다. 그는 1988년 샤먼시에 근무할 때도 도시의 상처라 불리던 윤당호(筼筜湖)를 생태공원으로 탈바꿈시킨 바 있다.[사진= 이석봉 기자]
*본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과 중국 신화통신사가 공동주관한 한중 언론인 교류 사업의 지원을 받아 제작되었습니다. https://www.hellodd.com/news/articleView.html?idxno=1094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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